사쿠라이 마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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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회장
초대 일본제일당 당수
사쿠라이 마코토
桜井誠 | Sakurai Makoto


파일:타카다 마코토.jpg

본명
타카다 마코토 (髙田誠)
출생
1972년 2월 15일 (52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야하타니시구
거주지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도쿄도 치요다구 칸다네리베이초 45
라이온스맨션 아키하바라501 (활동지)
직업
정치인, 작가, 극우파 활동가
학력
후쿠오카현 현립 나카마고등학교
소속 단체
동아시아 문제 연구회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원전의 불을 끄게 하지 않는 국민 회의
도정을 국민의 손에 되찾는 회
행동하는 보수운동
일본제일당
정당

[[일본제일당|
일본제일당
]]

영향받은
인물

니시무라 슈헤이 (우익 활동가)
미즈시마 사토루 (위안부 발언자)
세토 히로유키 (우익단체 회원)
프로그램
제너레이션 정글[1]
일본문화채널 사쿠라
종교
불교 정토진종혼간지파 (니시혼간지)
별명
도론파 (Doronpa)
경력
구청 경비
동아시아 문제 연구회 대표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회장
원전의 불을 끄게 하지 않는 국민 회의 회장
도정을 국민의 손에 되찾는 회장
행동하는 보수운동 대표
일본제일당 당수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Ameba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약력
3. 활동
3.1. 오사카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난동
3.2.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
4. 소속 정당
5. 선거 이력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일본 넷 우익의 아버지이자 대안 우파의 초기 인물 중 하나이다.[2]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일명 재특회의 초대 회장이며 2016년에는 일본제일당을 창당했다.

반외국인 정책, 그 중에서도 특히 혐한 정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애초에 제도권 정치인이 아닌지라 현실성 없는 주장도 걍 싸지르고 보는 중. 타카다 마코토는 외국인(특히 재일 한국인)에 대한 비상식적인 반감과 인종차별적 사상을 표출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넷우익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기존 우익과 차이점을 보인다.[3] 그래서 한국인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이 사람을 매우 싫어하고 극도로 혐오한다. 당연히 일본인들 중에서도 이 사람 안티는 좌우 막론하고 생각보다 있는 편이다.[4]


2. 약력[편집]


후쿠오카현 키타큐슈시 출신으로, 호스티스 출신으로 물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불행한 성장과정을 거치며 자랐다. 아버지는 일찍이 집을 나가 없었다고 하며, 동창들은 그를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특별구 구청 경비직을 지냈다. 젊은 시절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싫어지는 희한한 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고 본인은 말하고 있다. 한국으로 진짜 여행을 간적이 있는 지는 불명.

초기에는 중앙일보 인터넷판 한일 번역게시판에서 konkon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네이버 번역 게시판(Enjoy korea)으로 갈아타면서 닉네임을 Doronpa로 변경, 이후 웹사이트 "이상한 나라의 한국", "Doronpa의 혼잣말"을 개설했다.

이후 세이린도를 통해 대혐한시대라는 저서를 내놓기에 이른다. 참고로 발간해준 세이린도 출판사 역시 일본에서 악명높은 애국 비즈니스계 출판사 중 하나다.


3. 활동[편집]


파일:사쿠토코1.jpg
파일:사쿠토코3.jpg

일본 우익단체는 셀 수 없이 많으나, 이 사람의 특이한 점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온 인사라는 점. 본인이 블로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 중앙일보 웹사이트의 일본어판[5] 게시판에서 한국 네티즌들과 키배를 벌인 듯 하며, 그 뒤에 네이버 인조이재팬으로 옮겨서 키배를 하다가 아예 오프라인으로 뛰쳐나와 극우선전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쓰던 id는 doronpa[6]로 HOT판에서 활동했었다. (당시 역사/전통문화판에서 활동하던 네이버 총독부 멤버들과는 관계없다.) 그 덕분에 인조이재팬 시절 타카다 마코토가 직접 올린 글이 아직 남아있는데 잊을 수 없는 있는 한국인과의 만나 【사고하기 때문이야말로 인간인】 이 글을 보면 자신의 예전 학창시절때 부터 넷우익으로서 한국 중앙일보 웹사이트의 일본어판 게시판에서 활동하는 이야기까지 전부 다 나오지만 어디까지가 진짜 사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그가 이끌고 있는 재특회 회원도 기존의 길거리 극우와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래서 재특회를 보면 연령층이 청년에서 부터 주부, 노인까지 다양한 편이다.

주요 활동은 '자신이' 반일적이라고 생각하는 집단이나 집회 등에 끼어들어 깽판을 치는 것. 예를 들면 일본군 위안부 증언회나, 재일민단의 참정권 시위들에 끼어 확성기로 폭언을 퍼부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국내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 우토로 재일 조선인 거주지에도 쳐들어가서 시 공무원에게 당장 쫓아내라고 갈군다거나, 또한 정치 문제도 아닌데 쓰시마 섬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쓰시마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한국인들로부터 지키자'는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폭언을 일삼는다든가 ("조선인은 쓰시마에서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하는 짓을 해 왔다.

이후 한국에도 소개된 북한조총련의 학교인 조선학교 습격사건 때문에 마침내 일본의 오프라인 언론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일본 국내언론은 물론 외국언론(한국 포함)에까지 인터뷰가 쇄도, 매스컴을 크게 탔다. 이 사건 때문에 국제 망신을 당한 몇몇 일본인들이 대신 사과문을 쓴 것이 국내 인터넷 신문에도 떴는데 그 사과문 중 하나에 동인 캐릭터인 윳쿠리가 등장해서 윳쿠리가 국내 최초로 매스컴에 출현하게 됐다. 이후 2010년 1월 다시 같은 학교에 쳐들어가서 또 그 짓을 했다.

사쿠라이 본인이 직접 이 영상들을 모두 유튜브에 올리기 때문에 그 행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으며, 니코니코 동화 등에도 추종자가 있다. 다만, 이 모습만 보고 모든 일본인들이 이 사람의 추종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개념이 있는 일본인이라면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헛짓거리를 인터넷에 올리며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역겹게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또 인터넷을 배경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2ch를 비롯한 일본 웹에서 나도는 혐한 떡밥의 생성과 유포, 이용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볼 수 있다. 또 본인이 직접 "반일한국인 격퇴메뉴얼" 등 책을 몇 권 쓰기도 했다. 문제는 내용 자체가 허황된 것들뿐이라 한국인은 커녕 행패부리는 취객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생겨먹은 내용들 뿐이다.

파일:사쿠라이 마코토 위안부망언.jpg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7]

이 사람의 가치관은 단 하나, 일본은 최고!! 일본 욕하는 놈들은 다 죽어라!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식민지화로 은혜를 베풀어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하고 어리석은 놈이고 일본군 성노예나 강제연행, 중국의 난징 대학살 사건은 완전한 날조이며, 태평양 전쟁은 자위권 행사라 주장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주일미군의 범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다.

또한 일본어 위키에 따르면 경술국치 100년째가 되는 해를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애니메이션의 지휘를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8] 쿠메타 코지안녕 절망선생에서 의미는 없지만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필수요소로 등극하였다.

어쨌거나 오프라인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일본 넷 우익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인물이자 그들의 대변인쯤 되는 인물. 2ch에서도 꽤 유명인사로 알려졌다. 다만 이 인간이 널리 알려지자 이 바닥에서 전형적인(?) 외모와 그에 걸맞는 오덕력 때문에 안여돼 오덕후 히키코모리 넷 우익 니트족 등 넷 우익과 2ch와 관련된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고착화되는 역효과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지만, 다른 혐한 단체들에게는 행동력이 약하다며 놀림을 받고 재특회도 역시 그들 단체들과 다투고 있다. 당장 수백만 정도로 추산되는 넷 우익 세력중 오프라인 활동까지 벌일 정도로 적극적인 사람들은 200명 가량 밖에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 설립을 지지한다며 원전 설립 지지자들을 모아 오프라인에서 대규모 행진을 하겠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그 동안 자금문제로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이 거의 없었으면서 갑자기 행사를 주관할 자금이 어디서 났는지 의문이다.

2011년 8월에는 후지 TV 시위를 주도했다고 알려졌다.[9]

2012년 3월에는 김태희가 과거 독도 관련 캠페인 활동을 한 것을 문제삼아 집요하게 김태희 퇴출시위를 주도하고 인터넷에다가 김태희 능욕 임신 출산 따위의 음담패설 개소리를 줄줄 달아댔으며 김태희를 기용한 기업을 협박한 혐한 세력의 중심에 재특회 일당이 있음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었다.

참고로 위 프로그램에 나온 Kimchiroach(김치바퀴벌레)라는 아이디를 쓰면서 한국에 대한 루머를 유포하는 사람 역시도 사쿠라이 마코토와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위에 언급 되었듯이 바퀴벌레 드립을 자주 쓰기도 하다. 일본 혐한에서 바퀴벌레 드립의 원조[10]라고 봐도 된다.

(日) 재특회에 대한 분석서 인터넷과 애국 -재특회의 어둠을 쫓아서- 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논픽션잡지 G2에 연재되던 르포를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11]

그리고 2013년 6월 16일, 어김없이 혐한시위를 벌이다가 반혐한 단체와 충돌을 빚어 끝내 사쿠라이 마코토를 비롯한 재특회 회원 8명이 폭행혐의로 체포됐다. 넷 우익들은 발광하며 실제 폭력을 휘두른것은 재일로 이루어진 반혐한 단체이고 재일을 옹호하는 경찰에게 재특회가 억울하게 잡혀간 것마냥 물타기하고 있지만, 워낙 결과가 분명하다보니 대부분은 빼도박도 못하고 초상집 분위기다.

2013년 8월 20일 현장 21에서도 취재대상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혐한 기질을 보이며 니네가 먼저 일본인 죽이자고 해서 우리도 조센징 죽이자고 하는건데 뭐가 불만이냐?식의 논리를 펼치고 혐한 시위를 한 층 더 끌어들이겠다는 말을 했다.

2014년 1월 28일 이번에는 MBC PD수첩에 등장하였다. 2014년 첫 혐한시위를 벌이며 재일 기자를 미리 통보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쫓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전히 인터뷰에서는 "한국인이 먼저 Kill Jap이라고 했으니 우리도 시위를 하는 것" 이라고 했다. 재특회의 활동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재일동포나 일본국내 한국인에 대한 특례를 폐지할 때까지라고 답했으며 폐지 즉시 재특회를 해산하겠다고 답했다.

2014년 2월 갑작스레 스즈키 노부유키의 유신정당 신풍(말뚝테러 사건을 일으킨 단체)의 히틀러 탄생 125주년 파티에 지지의사를 날렸다. 2013년 아소 다로의 '바이마르 헌법 처럼 수정하자' 발언을 미국의 유대인 인권단체 시몬 비젠탈 센터(simon wiesenthal center)가 비판함과 함께 "일본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니 재특회를 감시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이에 관계없는 유대인 단체가 왜 끼어드냐며 항의문을 보내고, 몇번의 다툼 끝에 유대인들을 '중동의 조선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본인의 방송에서는 '먼저 쳤으니까 되돌려 주는 것 뿐이다'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팔레스타인 인권문제를 끌어오고 있다.

2014년 11월 아래의 간담회 사건 후 뜬금없이 재특회 회장직을 사임했다. 재특회도 탈퇴하고 개인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표면적 이유는 전임자의 이름이 남아 있으면 후임자의 일이 어렵게 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재특회의 인터넷 방송채널을 빌려 활동하고 있다.

마코토크(Makoトーク)란 이름으로 개인방송을 진행 중. 2015년 1월 15일자 방송에서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직후에 유럽에 반이민자, 반 이슬람 시위가 일어나는 걸 일본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재특회와 자신만 비난한다면서 징징거렸으며 질리지도 않는지 2013년 12월 중의원 총무위원회 내용을 들고와 NHK 직원들이 해상보안청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 세금도둑에다가 공영방송이면서 타국적의 직원이 더 많은 재일방송이라면서 비난했다. 물론 여기서 재일은 진짜 재일이 아닌 자신의 사상이 아닌 사람을 뜻한다.

3.1. 오사카 시장과의 간담회에서 난동[편집]


2014년 10월 20일 혐한시위를 두고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과 간담회를 가졌는데 실제 간담회 시간 7분, 간담회 준비시간 3분 합쳐 10여분 만에 파토났다. 서로 존칭을 생략한 채 막말을 하다가 급기야 사쿠라이 마코토가 "너는 일본인이 아니다" 하며 발끈해 하시모토한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의 보좌관들이 사쿠라이를 제지해 물리적인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원래 하시모토 시장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막말하는 스타일인데 사쿠라이 마코토도 막말이라면 결코 지지 않는 인물이라 초면부터 '너 임마 정신차려'와 같은 막말로 대화가 시작된 탓. 그런데 하시모토가 유도 유단자임을 감안하면 몸싸움이 일어났을 때 사쿠라이 마코토가 오히려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을 상황이었다. 도리어 시장 측근들이 타카다 마코토의 신상을 지켜준 것이며 경호원들을 믿고 깝치는 것은 사쿠라이 마코토다.

간담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자들 앞에서 계속 뭐라고 하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토론하는 것만 찍는다고 했는데 건물 위에서 찍은 언론사 뭐냐, 왜 그런 식으로 하냐 → 이런 식이니까 미디어, 신문은 안된다, 그러고도 언론사냐 → 마이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NHK 등 싫어하는 언론사 집어서 까기 → 일본인이 싫어서 방송 편집 그런식으로 했지?'이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언론에게 반말식+훈계식으로 부채로 가리키면서 '왜 그런식으로 하냐? 대답 안하냐? 왜 여기 왔냐?'라는 식으로 말한다. 일본의 경우 상위권 신문사+방송국 기자는 최상위권 대학(도쿄대, 게이오, 와세다 등) 출신이 대부분이며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도 높은 편인데 거기에 저학력에 넷 우익 짓으로 먹고사는 타카다 마코토가 지랄하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해서 좋은 기사가 나오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파일:external/static.news.zumst.com/20141021162802452598.jpg

그런데, 하시모토 도루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하시모토 시장도 마코토에게 뒤지지 않는 극우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하시모토 시장의 보여주기식 정치쇼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오사카로 유입되는 한국, 중국 관광객의 수가 격감된 상태라 오사카 상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하시모토는 하시모토대로 당시 하락세인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이슈몰이를 통해 회복하려고 이런 쇼를 벌였다는 것. 한편 하시모토 토오루가 일본인이지만 온갖 차별을 받는 집단인 부라쿠민 출신이라 사람의 출신을 트집잡아 비하하는 것에 매우 민감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이 사건으로 하시모토 도루는 위안부 비하 발언으로 생긴 차별주의자 혐오주의자 타이틀을 조금 무마하는 효과를 얻었고[12], 사쿠라이 마코토는 자신이 쓴 혐한 도서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한다.

참고로 하시모토 도루는 은퇴 이후로 혐한과 우경화에 대해서 어느정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3.2. 도쿄도지사 선거 출마[편집]


2016년 6월 29일, 무소속으로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돌연히 선언했다. # 출마를 선언한 선거는 정치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으로 자민당 마스조에 요이치 전 도쿄도지사가 사퇴한 이후 치루어지는 보궐 선거로써 7월 31일 투표 예정이었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출마 선언 기자회견장에서 「일본을 되찾을 7개의 약속」 이라는 제목으로 7가지 공약을 발표했다.

1. 도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생활보호비 지급 중지하고, 생활보호비의 수급 대상을 일본인으로만 한정한다.

2. 도내의 불법체류자를 4년 내에 반으로 줄인다.

3. 일본인에 대해서 거짓된 역사에 기초하여 몰아세우는 반일 헤이트 스피치를 금지한다.

4. 조세의 공평성에 반하고 있는 조총련민단의 중앙본부 및 관련단체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

5. 위법 도박 파칭코를 규제한다.

6. 조선 학교 건설을 중지한다.

7. 컴팩트 올림픽[13]

의 의견을 반영해서, 현행 도쿄 올림픽의 개선을 강구한다.


공약 발표와 더불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에게 지지 않을 내셔날리즘'을 표명했다.

이 날 출마 선언에 대해서 2ch을 비롯한 넷우익 사이트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출마 선언에 관련한 기사, 스레드가 마토메 사이트를 비롯한 스레드 랭킹 상위권을 차지했다. 일부에서는 마코토 이전에 도쿄도지사에 도전하였으며 역시 넷 우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의 사례를 들면서, 타카다 마코토도 최대 6% 득표를 받으면 선전한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 선거공학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마코토의 도쿄 도지사 출마는 이해가 안가는 악수(惡手)라는 평이 많았다. 실제 이런 짓을 했다간 도쿄도는 관광 수입이 끊기고 외국에서 평판이 안 좋아진다. 그리고 이 자는 선동에는 능하지만 정치나 행정적개념은 하시모토 토오루나 이시하라보다 더 무식한 작자이다. 하시모토나 이시하라는 우익 인사 소린 듣지만 변호사와 소설가, 직업 정치인이라는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의 정치적, 행정적 개념을 갖추곤 있었다. 그러나 마코토는 아예 도쿄도의 관광 산업을 말아 먹을려고 작정을 한 폐쇄주의자이다.

또 도쿄 내에는 소수파지만 최대 1~20%까지 非자민당 계열 극우성향 유권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6년 24회 참의원 선거에서 도쿄 선거구는 현행 선거구 제도상 6등까지도 당선이 된다. 그러므로 9-10퍼센트 정도만 얻어도 당선을 바라볼 수 있다. 마코토와 정치성향이 유사한 다모가미 도시오의 경우 군소정당으로 출마해서 2014년 12월 중의원선거에서 18.5퍼센트를 득표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성향, 지지층이 겹치는 타모가미 토시오는 4월달에 선거법 위반으로 체포되어서 이번 선거에는 강제 불출마 되었기 때문에, 극우 표만 대충 단속해도 10% 전후 득표로 5등이나 6등으로 당선을 노려볼만한 절호의 찬스(?)로 볼 수 있는데, 그런 도쿄도 참의원 선거를 걷어차고 1등만 당선되는,[14] 승리가능성 0%에 수렴하는 도쿄 도지사선거에 왜 출마를 했는지 의문. 참고로 24회 참의원선거 도쿄 선거구 결과 6등으로 간신히 당선된 민주당의 오가와 토시오(小川敏夫) 후보의 득표율은 8.2%였다.

결국 도쿄 도지사 역사상 최초의 여성 후보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후보가 당선되어 마코토의 도지사 꿈은 사라져버렸다. 타카다 마코토는 11만표(1.7%)를 획득하면서 5위에 올라 낙선했다. 이러한 결과에 타카다 마코토가 다모가미에 비해서 훨씬 저조한 득표를 한 이유는, 일본이 우경화되긴 했지만 두드러진 우익후보가 없었던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 도쿄 선거구와 달리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는 방위상이란 경력에 성향도 강성 우익인 고이케에게 우익표가 쏠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15]

3.3. 일본제일당 창당[편집]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예 2016년 8월 29일에 총무성에 설립신고를 신청하여 일본제일당이란 극우 대안우파 성향의 정당을 정식적으로 설립했고, 2017년 2월 26일에는 아파 호텔[16]에서 창당회를 맞이했다. 창당회에서 당원수는 약 1600명으로 발표되었고, 당수는 타카다 마코토, 최고 고문은 세토 히로유키가 취임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일본제일당 항목 참조.

2016년엔 정부기관의 감시대상자로 찍히기도 했는데, 2016년도 공안조사청 자료에서 도쿄도지사 선거출마건이 게재되어 우파계 시민단체의 감시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2017년 11월 7일, 타카다 마코토의 트위터 계정이 정지되었다. 뒤이어 2018년경 유튜브 채널마저 정지되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21일, 한국의 역사왜곡금지법안 트윗에서, 일본국민 전체를 싸잡아 1억 명의 알츠하이머 환자들라고 비하하는 글을 남겼다. #

인터뷰에서 하만의 스피커 브랜드인 JBL 스피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데 하만삼성전자 소유가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모양.

2019년 4월 22일 본인이 운영하는 인터넷 생방송에서 사쿠라이 본인이 심장 쪽 지병을 앓고 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미 심장에 스텐트 시술을 받아, 4개의 스텐트를 박아넣은 상태라고 한다. 이후 4~5년 뒤에는 더 이상의 정치 활동을 접고 시골로 귀촌할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

만일 그가 은퇴한다면 지금의 넷 우익 최종보스 자리는 쿄모토 카즈야가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본에서는 간혹 마코토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인지도를 얻고 있기 때문.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고졸. 한국의 관한 정보는 2ch같은 인터넷으로 주워들은 지식이라는 것.[17] 엉터리 혐한 지식으로 무장했으니 당연히 혐한 성향이다.

2020년 신년 인사로 일본제일당은 계속 나아갈 것이며, 앞으로도 일본제일당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했다.#

7월에 있을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가 확실시하다고 한다. 사쿠라이 마코토 당수는 6월 4일 니코니코 생방송으로 출마 선언을 예정했다.# 결국 사쿠라이는 출마 선언을 하였다.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발표한 8대 공약을 보면 최저임금제 엄격 적용, 생활보호지급 기준 완화, 학자금 지원 확대처럼 의외로 경제관에선 극우스럽지 않은 좌익에 가까운 면모도 몇 보여줬다.# 사실 이런 극우들이 결집한 계기가 좌익들이 추구한 복지국가의 열매를 자기들이 따먹어야 되는데 난데없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따먹는 것처럼 자기들 기준에선 보이자 열받아 그랬다는 주장도 있는만큼 이해못할건 아니다.

도지사 선거 결과, 고이케 유리코, 우쓰노미야 겐지, 야마모토 타로, 오노 다이스케의 뒤를 이어 2016년 선거 때처럼 5위의 지지율을 얻었다. 득표 수는 17만 8,000여 표로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때의 사쿠라이 득표 숫자보다 60% 이상 증가하긴 했지만 절대치론 여전히 낮은 수준. 분석글

사쿠라이 마코토는 협심증, 동맥경화 등 여러 심장 지병이 있어서, 2021년 시행 예정인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할 뜻이라고 밝혔다. 당선이 되면 그 임기만 수행하고 낙선하면 바로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당선될 확률은 지금으로 봐선 희박하다.

2021년 신년 인사를 올렸다.#

결국 2021년 10월 31일에 시행된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의 추천을 받은 무소속 후보인 가키자와 미토가 당선되면서 결국 사쿠라이 마코토는 낙선하였다. 이후에는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약속대로 정계를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18]

2022년 5월 26일 위안부 소녀상의 모습을 한 풍선인형을 앉혀두고 성행위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위안부를 조롱하는 행위를 했다.JTBC 보도 정치를 그만 두면서 눈치 볼 것도 없어진 모양.

한국언론에게도 아예 묻혀버렸다. 최근 근황으로는 후원금을 바탕으로 최근 윤석열 정부의 한국과 기시다 내각이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풀려고 하는 모습에 강력 반발하면서 주일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등 자랑스럽다고 글을 올리거나 10월에는 반이민의 날이라면서 이민을 거부해야 한다는 시위라는 명목의 추태를 부렸다. 2022년 아베 신조 前총리의 총살사건 당시에는 아베를 맹비난 하면서 국장을 치르면 국격이 떨어진다면서 결사반대 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3년 8월 IAEA의 감시하에 후쿠시마 원전 방류조치가 결정되고 중국이 강력 반발하며 일본 수산물 수입 금지 등 경제보복을 취하자 혐한 발언보다 혐중 발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도 중국을 지나(일본의 중국 인종차별 단어)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이 일본을 침공의지를 드러내고 있다며 뇌피셜까지 적는 중이다. 그러면서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 싫다며 혐한을 드러냈다.

2023년 오랜 갈등과 적대적 공생 끝에 과격 테러단체 하마스가 자행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발발, 하마스의 비인도적인 학살행위에 이스라엘측이 대대덕인 공습을 하고 지상군투입 예정인데 이에 사쿠라이는 이스라엘이 행하는 짓은 과거 나치독일의 정화작업이랑 같다면서 이스라엘은 더이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반유대주의를 보이고 있다.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2016
정계 입문

[[일본제일당|
일본제일당
]]

2016 -
창당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선거구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
비고
2016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도쿄도

[[무소속|
무소속
]]

114,171표(1.7%)
낙선(5위)

2020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일본제일당|
일본제일당
]]

178,874.293표[19](2.9%)
낙선(5위)

2021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도쿄 15구
9,449표(4.0%)
낙선(6위)

2022
제2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비례대표
24,047표(0.21%)
낙선



6. 기타[편집]


  • 저 만행을 모두 보고 나면 한국에서 일본의 우익 정치인으로 나름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아소 다로, 하시모토 도루, 고이케 유리코[20]도 타카다 마코토에 비하면 상식인을 넘어선 개념인으로 보일 정도이다.[21][22] 허나 타카다 마코토는 이 문제와 별개로 무고한 재일 한국인들에게 (애들 듣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 인종차별을 거리낌없이 한다. 실제 하시모토 도루와는 이 문서 바로 위 내용과 같이 혐한 관련 토론회에서 1:1 맞짱을 뜨기도 했다. 같은 우익 취급 받던 사람들끼리도 파고보면 사상과 생각이 많이 다른 것이다. 다만 하시모토는 은퇴이후 성향이 중도화 되어서 혐한 성향도 많이 줄었다.

  • 한국에서 일본인 관광객 여아 강간사건이 무죄로 판결[23][24]되었다는 허위 기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는 헛소리를 유포한 사건이 있었다. 그 뒤가 더 가관인데, "애초에 허위 기사를 유포한 쪽이 잘못이고, 유포자로부터 아무런 사죄가 없었으니 사실로 간주하는 것 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했다. 2채널에서도 다수 낚여나갔다.

  • 한국에 대해서 매우 잘 아는 척을 하며 한국 전문가임을 자부하지만 정작 한국에 살아보기는 커녕 한글조차 읽을 줄도 모른다.[25] 그러니 지식의 소스가 전부 일본의 인터넷 찌라시들이고, 그걸 교차검증할 능력도 없다. 일본내에서도 이 점이 비판 대상이 되고 있으며, 혐한 넷우익이 넘쳐나는 니코니코 동화에서도 이 점에 대한 비판이 많다.

  • 미국의 앤드류 슐라플라이와는 2차 대전의 역사관으로 인해 철천지 원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도 그럴 게, 사쿠라이 마코토는 일제를 추앙하니까. 사실, 대안우파인 사쿠라이 마코토의 입장에선 그는 그냥 호응해주는 이들도 없는 찌질이에 광신도로 비춰지니까 그렇다.

  •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두고 '너희 흑인들도 동양인 비하를 일삼았으니 조지 플로이드는 잘 죽었으며 당해도 싸다'[26]고인드립을 시전했으며 일본에 거주하는 흑인들을 상대로 '일본인들에게 공포감을 주지 말고 하루빨리 일본에서 나가라'는 망언을 했다.# 이에 대해 화가 난 재일 외국인 흑인들의 반발이 빗발치자 트윗을 지우고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27]

  • 대안우파여서 그런지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지고 있다.

  • 2023년 들어서는 소식이 굉장히 뜸하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의 유튜브 채널 '현재사는 심용환'에 출연한 요시카타 베키 서울대학교 언어능력측정센터 선임연구원이 혐한 문제 전문 언론인인 야스다 고이치와의 대화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개인적인 문제가 불거져 지지층이 등을 돌린 뒤로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다. 요직에 고등학교 졸업도 아직 하지 않은 어린 청소년 남성을 앉혀 논란이 되었는데, 그 청소년이 "나는 사쿠라이 마코토에게 이용당했다"고 폭로한 뒤 정치적 스펙트럼이 완전히 정반대인 극좌 단체로 소속을 옮기며 떠나버렸다는 것. 게다가 이 과정에서 동성애소아성애가 성적 취향임이 드러나, 해당 청소년을 요직에 앉힌 뒤 학대했다는 정황이 파악되어 지지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지층에서 대거 민심 이반이 일어나며 그동안 주도해왔던 단체와 정당 내에서 힘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 이 사건으로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입으며 극우세력 내에서도 외면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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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년~2003년도 토론프로그램이다.[2] 서구권서 대안우파가 탄생하기 전부터 대안우파 사상을 설파한 인물. 최초인진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대안우파 정치인의 초창기 인물 중 하나이긴 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안우파의 '대안'은 '절충'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문서 참조.[3] 물론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거지 기존 우익이라고 딱히 친한이거나 외국에 우호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애초 배타적 우익 사관에 함몰된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외세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4] 대표적인 예로 스승이란 별명을 가진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히라사와 스스무. 그는 욕을 잘 안하는 성격이지만 사쿠라이에게 쿠소카키(쪼다새끼 정도)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또한 히라사와는 예전부터 혐한시위가 일어날 때마다 맞불 시위에 가담할 정도로 혐한 세력과의 충돌이 잦았다.[5] 이쪽도 예전에 인조이재팬 둘째 가라면 서러운 한일키배 토론장이었다.[6] 도론파 혹은 도롬파(보통 일본어에서 ぱ행에 오는 ん의 음가는 ㅁ받침이다.)로 읽고 아마도 접두사 '도'(드레드노트에서 유래한 접두어)와 논리를 깨부수다는 뜻의 논파를 합친듯 하다.[7] 문맥에서 대략 유추가 되겠지만, 사쿠라이는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하고 있다. 2008년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일본처녀 이나리 아끼꼬의 진실찾기" 편에서 SBS 측과 인터뷰를 통해 "종군 위안부는 현재 일본에서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과 같은 단순 매춘부"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쓰시마 관광객을 습격했던 우익단체 회장인 니시무라 슈헤이도 이 방송에서 실명으로 나란히 등장하였다.[8] 딱 봐도 오덕 포스가 느껴지는데 실제로 애니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오타쿠로 알려져 있으며, 애니 지식을 줄줄 꿴다고 한다.[9] 다만 본인이 직접 참여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10] https://www.youtube.com/watch?v=6xx0FRMlU7g [11] 이 책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진지하게 혐한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싶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 보자.[12] 일본 내에서도 혐오 발언은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터넷에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이 가득하지만 실명을 밝힌 정치가가 발언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은 일본내에서 여성문제로도 인식되기 때문에 굉장히 표에 악영향을 미친다.[13] 일부 일본 언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도쿄 올림픽 개선안.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서 새로운 시설을 신축하는 것보다는 기존 시설을 적극 활용하여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14]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도쿄도지사로 십수년간 당선, 재직했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원래 90년대 이전엔 수십년간 자민당 소속으로 활동했던 정치인이라 이야기가 좀 다르다.[15] 다만 이 선거 직후 3개월만에 치뤄진 2017년 일본 중의원 총선거에서 고이케의 희망의 당이 (심지어 도쿄에서도) 참패하면서, 당시 고이케의 선전은 리버럴 성향 반아베 유권자들이 고이케에 표를 몰아준 것이라는 분석이 더 힘을 얻게 되었다.[16] 난징 대학살 부정 등의 내용을 담은 극우 서적을 배치해 한중에서 논란을 일으킨 그 호텔 맞다.[17] 카즈야는 방한까지 했으나 의도적으로 부정적 내용만 소개했다.[18] 가키자와 미토 의원은 당선 이후 자민당에 입당하였다.[19] 안분표[20] 다만 이 사람은 리버럴한 국내 정치 한정이며 국제관은 마코토보다 살짝 나은 수준으로 평가된다.[21] 참고로 고이즈미, 아베, 아소 모두 역사나 영토 문제 관련해 망언을 하거나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있어도, 최소한 인간적인 상식선은 지켰다. 당장 고이즈미는 총리 시절 독립투사들이 갇혀있던 서대문형무소에 방문한 적도 있었고 또한 중국에서 북송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을 구해주는 등 과거사와 영토문제에는 외교적으로 강경보수지만 어느 정도 인간미는 있었던 인물이였다 , 아소 다로는 망언으로 유명하지만 총리 시절엔 한일해저터널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던 적도 있었고, 아베 역시 의외로 지한파로 한국 음식을 좋아해 자주 먹었다고 한다. 실제 아베는 마코토가 이끄는 재특회의 혐한 시위는 부끄럽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 세사람은 과거사나 역사 문제에 관련하여 강경하고 민감하게 반응하였지만 한인을 싸그리 언어폭력으로 괴롭히는 타카다 마코토와 달리 역사나 영토문제와 무관한 한국인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세사람은 정치적으로 역사나 영토문제에서 한국과 갈등을 빚지만 자기 나라 국익을 위해서는 안보적 경제적 문화적으로는 한국과 타협하는 면모도 있지만 타카다 마코토는 그딴거 없이 한국이라면 이유도 없이 무조건 배척하는 극단적인 배타적인 면모가 강하다. 즉, 정치적으로 한국과 갈등을 빚는 것과 한국인이란 집단 자체를 싸잡아 저주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물론 위안부 할머니 같은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적 망언도 거의 인간 흉기 수준의 발언이긴 하겠지만.[22] 이시하라 또한 망언으로 국내외로 욕먹고 악명은 높지만 망언으로 욕먹었지 타카다 마코토처럼 저질스러운 횡포나 패악질은 벌이진 않았다.[23] 기사 내용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린 여아를 강간했다는 허위사실을 뿌리는 기사이다. 상관없겠지만 해당 사진이 있는 곳은 서귀포시 법원 등기소로 서귀포 중앙로터리(일호광장)에 있으며 근처에 NH농협은행과 버스정류장이 있다.[24] 해당 사이트는 넷상에서 모은 허위 혐한기사를 올리는 사이트로, 정식 한국 뉴스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한국어로 번역하여 올리고 있지만, 번역기로 돌린 탓에 문장이 완전 개판이며 중간중간에 번역이 제대로 안되어서 일본어가 섞여있기도 하다. 당장 해당 기사만 봐도 뜬금없이 聞こえん이라는 일본어가 섞여있다.[25] 한국으로 치면 자칭 일본 전문가라면서 일본에 살아보기는 커녕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조차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인 셈이다.[26] 정작 미국에 사는 교포들 말을 들어보면 자긴 흑인들과 잘만 지내는데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소린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오거나, 반대로 흑인들에게 차별을 많이 당한다는 말도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케바케로 보인다. 게다가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로 둘 다 차별을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27] 본인의 트위터가 아닌 대변인의 계정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