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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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역대}}} 파일:bluedragonfilmawards_logo.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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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상
제24회
(2003)


제25회
(2004년)


제26회
(2005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태극기 휘날리며

혈의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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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문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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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40회
(2004년)


제41회
(2005년)

오아시스

태극기 휘날리며

그때 그 사람들




파일:태극기 휘날리며 로고.png (2004)
TaeGukGi: Brotherhood Of War

파일:external/imgmovie.naver.com/C6666-00.jpg

장르
전쟁, 드라마, 액션, 어드벤처, 시대극
감독
강제규
각본
강제규, 한지훈, 김상돈
출연
장동건, 원빈, 이은주, 공형진
음악
이동준
제작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강제규필름
배급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디자인 소프트, 쇼박스
촬영 기간
2003년 2월 10일 ~ 2003년 10월 31일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년 2월 5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1년 3월 17일[재개봉]
상영 시간
145분 (2시간 25분)
148분 (2시간 28분)[재개봉]
제작비
148억원
월드 박스오피스
$76,287,982
대한민국 총 관객 수
11,746,135명 (최종)
상영 등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R등급 로고.svg

1. 개요
2. 예고편
3. 시놉시스
4. 특징
5. 등장인물
6. 설정
7. 줄거리
8. 시대 연출
8.1. 국방부 지원 불발 비화
8.2. 오류
9. OST
10. 평가
11. 흥행
12. 판권 문제 관련
13. 기타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강제규 연출, 장동건, 원빈 주연의 6.25 전쟁을 다룬 영화.

쉬리, 친구,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와 함께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이며 실미도에 이은 두번째 천만 관객 돌파 영화이기도 하다.

모티브가 된 것은 전쟁기념관에 있는 '형제의 상'의 실화와 최승갑 일병의 유품[1]이다. '형제의 상'은 실제 형제였던 박규철 소위(형)와 박용철 하전사(동생)의 이야기다. 황해도 평산군 신암면 출신인 형제는 이북 땅에 소련군정이 들어서면서 형만 월남하고 동생은 남은 상태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결국 형은 대한민국 육군으로서, 동생은 조선인민군 육군으로 참전했고 원주시 치악고개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극적으로 만나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박규철 소위는 동생을 귀순시켜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다고 한다. 모티브가 된 얘기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도 있다. 배우 김영옥의 두 오빠 얘기 등.


2. 예고편[편집]





3. 시놉시스[편집]


"민주주의,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 진학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생활을 해나간다. 1950년 6월의 어느 날,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호외가 배포되고, 두 형제는 평온한 일상에서 갑작스레 전쟁터로 내몰린다. 훈련받을 시간조차 없이 국군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으로 실전 투입된 ‘진태’와 ‘진석’. 동생과 같은 소대에 배치된 ‘진태’는 아직 학생인 동생의 징집 해제를 위해 대대장을 만나게 되고, 동생의 제대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동생의 생존을 위해 총을 들며 영웅이 되기를 자처하게 되고, 끝내 생각지도 못한 운명의 덫이 두 형제를 기다리고 있는데…



4. 특징[편집]


액자식 구성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노렸다고 밝힌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특수효과가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때까지의 한국 영화들 중 최고 수준의 특수효과를 보여주었다. 사실 이후에 나온 한국 전쟁영화들도 이 영화만큼의 정교한 특수효과나 스케일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15세 관람가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장면이 많다.[2][3] 지뢰를 밟아서 다리가 잘리거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해 머리의 반이 날아가는 장면, 마취 없이 복부를 절개해서 장기가 나오는 장면[4], 감염된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장면, 돌로 머리를 여러번 찍어 죽이는 장면, 손가락으로 눈알을 찍어 누르는 장면, 팔이 총에 맞아 절단되는 장면 등이 표현된다. 잔인한 장면 못 보는 사람들은 감안하기를 권한다. 올드보이와 더불어 후일담을 담고 제작 당시 현장을 담은 컬러 사진이 들어간 책이 나온 바 있는데 분장용 시체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온 몸이 토막나는 시체들이나 얼굴이 터져나가는 시체를 촬영하던 모습도 사진으로 나왔는데 정말 멋모르고 보면 끔살된 시체를 치울 정도로 잘 만들었다. 다시말해 전쟁의 참상과 잔인함, 무서움, 열악한 환경 등이 실로 리얼하게 영화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강제규 감독은 전쟁터의 무서움을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반영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제작에 참여한 이가 케냐로 이민가서 책을 냈는데 제작을 회상하며 이 정교한 시체 1개를 만드는데 1천만원이 들어가서 수십여개를 만들어 박살내야 했다고 한다.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만들어진 블록버스터급 전쟁 영화에 걸맞게 선술한 전쟁의 참상 뿐만 아니라 주먹밥뿐인 끼니, 불시에 시작될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흙바닥에서 쭈그리고 자는 상황까지 전쟁터의 열악한 환경을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묘사해냈다. 전체적인 영화 내용도 화려한 전투 장면만 보여주지 않고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얼마나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무척이나 현실적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제목은 '태극기 휘날리며'이지만 반공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과는 거리가 많이 멀다. 되려 국가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제대로 묘사했다. 그 일례로 반공청년단 단장 역의 김수로는 반공을 빙자한 학살을 자행하며 이덕화도 울고 갈 제대로 된 악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특히 중간 중간 군인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장면이 몇몇 등장하는데,[5] 정작 주인공인 이진태는 배신을 하고 인민군으로 들어가거나나, 같은 국민끼리 총구를 들이대기도 한다. 같은 형제 민족끼리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지 말자는 은유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해외판은 'The Brotherhood of War'라는 좀 더 명료한 부제가 붙었다. 극중에서 북한 측의 주조연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는 한국전쟁 영화인 포화속으로고지전 등과는 달리[6] 반공 영화의 느낌이 난다는 견해도 있었으나 영화 전체의 흐름과 디테일한 설정 등을 보면 반공 영화로 보기에는 다소 어렵다.

작중 북한 육군이 악랄한 행위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위의 사항이나 이런 점으로 인해 북한을 좋게 묘사한다든지 친북 영화라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논단남부군, 하얀전쟁과 같이 한국군 비하 영화라고 비판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적다고는 해도, 15살이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다가 머뭇거리는 틈을 타 통수치는 인민군 육군 하전사, 철수하던 북한군이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시체들의 일부를 쌓아놓고 그 안에 압력식 (또는 시체에 줄을 메단) 부비트랩을 설치해 이를 수습하던 국군 몇 명을 사상시킨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7] 그리고 이를 목격한 부대원들은 "이 개새끼들이 이젠 이런 함정까지 설치하느냐"라고 극도로 분노, 뒤어어 벌어진 전투에서 무기를 버리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인민군들을 말 그대로 학살한다.

그 뒤로도 계속 진격하면서 생포한 포로들을 죽이려 드는 모습을 주인공이 제지하고, 이를 왜 막나며 분개하는 소대원들에게 "죄없는 포로들을 마구잡이로 다 죽이는 우리가 빨갱이들이랑 뭐가 다르냐"라고 일갈하자 이를 그만두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빨간 건 다 싫어한다, 특히 빨갱이 개새끼들"이라던 임 하사는 본래 이북에 살다가 온 식구가 인민군 손에 몰살당하고 홀로 월남했다는 뒷사정을 붙이는 등, 적어도 남한 측 인물이 북한을 아무 이유 없이 적개하는 것은 아니라는 묘사도 나온다. 즉, 아무 맥락도 없이 인민군을 악랄한 악의 축으로만 묘사하거나 무작정 동정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씨네 21에서는 '이게 친북영화? 극중 북한군 이미지는 1980년대 반공 영화에 나오던 이미지랑 차이가 없는데도? 영화나 보고 욕이나 하는 걸까?'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물론 씨네21이 한겨레에서 펴내는 잡지인건 고려해야 하긴 해도, 극중 인민군도 결코 좋게 나오는 게 아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태극기 휘날리며 개봉 당시 여러 매체에서 한국전쟁 소재라면서 정작 한국전쟁스럽지 않은 연출, 너무나도 틀에 박힌 클리셰적인 스토리, 적아 구분이 안되는 조악한 촬영 등을 들면서 이 영화를 맹비난했지만, 왜 천만명이나 본 줄 모르겠다는 너무 막나간 비난, 그리고 칼럼 막판에 영화를 보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민군을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싸우는' 군인으로, 주인공 형제를 '부르주아적 환상과 가부장적인 가치'에 매몰된 인물로 단정하면서 가부장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꿈을 꾸는 무산계급 형제들은 왜 사회주의의 군대와 싸우면서 자신들의 꿈이 얼마나 부르주아적 환상인지 의심하지 않느냐고 하는 지나친 억측과 본인의 편향성이 매우 묻어나오는 터라 공감을 사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반전 성향의 영화는 이전에도 하얀전쟁 등 존재하긴 했지만, 대규모 블록버스터에서도 이런 시각을 보여준 것은 주목할 만하다. 진석이 징집되어 열차에 탑승하고 이에 진태가 진석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국군 대위를 주먹으로 후려패고 진석을 구출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 진태도 저지당하는데 이 때 국군 대위가 너도 징집 대상이야!라고 일갈하며 진태, 진석 형제를 같이 강제로 끌고가서 억지로 입대시킨다. 이 영화 제작진은 원래 국방부 측의 제작지원을 요청했었으나 이런 장면들로 인해 국방부로부터 거절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2004년부터 장교의 각 임관별 사관후보생 과정에서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을 교보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우, 배달의 기수, 3840 유격대 등등 오직 프로파간다를 위해서만 제작되는 싸구려 전쟁 영화 따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쟁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 전쟁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는지에 대한 비중이 훨씬 높아서 휴머니즘이 넘친다. 다만 예시로 든 작품들은 과거 반공 정책이 강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여러 배경을 봐야한다.

한편 돌아오지 않는 해병도 저런 싸구려 전쟁 영화라고 오해받고 있지만, 사실 이건 무려 1963년, 전쟁 끝나고 이제 10년된 때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반전을 넣고 있으며 권선징악과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득하던 당시 한국 전쟁 영화들 중에서 전쟁의 참상 속에서 발휘되는 인간애와 전우애를 내용으로 담은 작품이다. 감독인 이만희는 이후 어처구니없게도 반공 영화임에도 <7인의 여포로>(1965)에서 북한군 장교를 멋지다고 칭찬하는 묘사[8] 등으로 재판을 받고 교도소를 가야 했던 시대였다.

전쟁씬에서 셰이키 캠이 사용되었다.

5. 등장인물[편집]


  • 이진태(장동건)
  • 이진석(청년 시절: 원빈, 노년 시절: 장민호)
  • 김영신(이은주)
  • 고영만(공형진):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 소대원 사이에서 은근한 개그캐릭터이자 분위기 메이커 중 한명이다. 극 중 일제시대때는 나라를 지키려고 싸웠는데 지금은 형제끼리 총질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본인보다 계급높은 임하사에게 하극상을 일으키는 등 전쟁의 참혹함을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인물. 평양 전투 중 무리하게 인민군 대좌를 생포하기 위해 나선 진태를 구하다가 인민군에게 총을 맞게 된다. 쓰러지면서 해당 인민군을 명중하는데 성공하지만 결국엔 목숨을 잃게 된다.
  • 허대일(안길강): 진태 소대의 부소대장[9]으로 계급은 이등 중사.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할 때 저항하던 의용군 포로가 탈취한 권총에 맞아 전사한다.
리더십과 카리스마 병사들을 걱정하는모습 등 부소대장으로써 자격과 전투력은 확실한 인물 죽는순간까지 자신을 걱정하는 진태에게 본인 괜찮으니 빨리 퇴각하라고 했다. 사실상 이 대사가 유언
  • 양길섭(박길수): 본명보단 '양 주사'로 더 많이 불린다. 진태 소대에서 나이도 제일 많고 가장 오래 복무한 고참이며 일반적인 고참병 이미지와는 달리 말도 많고 유쾌한 인물이지만, 기습 작전에서 맨손으로 인민군의 목뼈를 부러뜨려 죽이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창고에 갇힌 진석을 구해 주는 등 고참병으로서의 실력은 확실한 인물. 진태와 진석을 제외한 주연 군인들중에선 제일 취급이 좋은편인데 허대일은 사망하고 고영만도 권총을 맞고 안타깝게 사망했으며 임하사는 폭탄을 맞고 팔을 잃었고 주연은 아니지만 어린병사인 이승철은 다리 잘리고 배가 터지고 턱에 총을 쏴 머리가 터지며 가장 잔인하게 죽었다. 하지만 양주사는 영화 후반까지 멀쩡한 모습으로 진석와 어울리며 웃기도하고 사과도 주는등 진석을 거의 조카급으로 소중히 아낀다. 경험이 많은만큼 잘 다치지 않는듯하다.
소대 내에서는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젊은 병사들에겐 좋은 삼촌과 같은 존재.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가 되어 농사를 짓고 싶어한다.
  • 김철수(황택하)[10]: 더벅머리에다가 말이 많은 병사로 이진태의 분대원. 고영만과 더불어 분위기 메이커이자 개그캐릭터이기도하고 기습 작전때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는등 단순 개그캐릭터은 아니다 용구와 자주 엮기며 친하다
  • 임수철(정진)[11]: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병사로 계급은 하사.[12][13] 원래는 이북에서 살다가[14][15] 공산당의 손에 처자식이 모두 몰살당하고 홀로 월남한 탓에 빨갱이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 그때의 상처가 어지간히도 컸던지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하던 중 폭격으로 오른팔을 잃었을 때도 빨갱이 새끼들을 다 죽여버리라며 악에 받쳐 소리칠 정도. 후반부에 진태의 전향 소식을 알게 됐을 때도 그가 무슨 심정으로 전향했을지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진석이 진태를 설득하기 위해 전선으로 돌아가려 하자 어머니와 영신의 동생들을 생각하라면서 만류하나 끝내 떠나는 진석을 보고 단념하며 그의 행운을 빌어 준다. 전쟁이 끝나면 어부가 되고 싶다고 한다.
  • 림태수(조운): 평안북도 신의주시에서 월남한 꺽다리 일병으로, 지원화기 담당이라 BAR을 자주 들고다닌다. 지뢰매설 작전 당시 BAR로 무장하여 국군을 기습한 인민군과 달리 자동화기가 없었던 지뢰매설조원들 중 유일하게 자동화기 사수였던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원들이 복귀할 수 있었다.(전투 장면을 살펴보면 BAR을 저속 자동모드로 계속 갈겨대는 림태수를 볼 수 있다.) 후반엔 화염방사기를 사용하는 장면도 있다. 초반에는 서북 방언을 쓴다는 이유로 임수철에게 험악한 눈빛을 받았다. 결혼해 처자가 신의주에 있다고 하는데 처자의 운명은 불명.영화 초반엔 궁지에 몰린 소대를 보고 차라리 이렇게 죽을바엔 차라리 항복하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 용구: 서남 방언을 사용하는 일병. 초반 기습작전 때 무려 탄약 상자를 백병전 무기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철수와 콤비로 자주 엮기며 밥을때 같이 대화하거나 돌 치우는작업때 물을 나눠 마시기도하고 재밌는 사투리 발음으로 이쪽도 개그캐릭터면이 강한편이다. 물론 군인답게 기습작전때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 조진구 일병(배상철): 통성명하다가[16] 포격 맞고 바로 사망하는 병사로 포격 장면에서 자세히 보면 양 주사와 다른 분대원들이 응급처치를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찾아보기 힘들다.
  • 강효열(김효열): 진태, 진석이 속해있는 소대의 무전병으로서 계급은 일병. 주 무기는 M1 카빈을 사용하나 기습 작전 때 무전기 수화기로 인민군을 두들겨 패다 철모를 벗어 그걸로 인민군을 때려잡는다.
  • 이승철(엄성모)[17]: 명문중학교를 다니다 자원 입대하여 참전한 어린 병사. 지뢰 매설 작전에 참가했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돼 복부에 총을 맞고 괴로워하며 걷다 지뢰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는다. 열악한 전황 탓에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상처에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에 공황장애를 일으켜 다른 부상병들에게 총을 난사한 후 자신의 턱에 총을 쏴 자살한다.
  • 대대장(조원희): 진태가 진석을 제대시켜 달라고 하자 "다른 부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입대했다가 아들이 제대했는데, 어떻게 제대했는지 궁금하지 않아?"라며 전쟁 영웅이 되라고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이에 진태가 목숨을 걸고 태극무공훈장까지 따내어 진석을 제대시키기 직전까지 가지만 혜산진 철수 이후 다른 부대로 이임하고[18] 새로 부임한 대대장은 훈장 받았으니 동생을 전역시켜 달라는 진태의 말을 무시해 버린다.[19] 거기에 보도연맹 학살로 영신이 죽게 되면서 형제가 아예 반목해 버리고 떨어지게 되면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려 이마저도 도루묵이 되었다.
  • 용석(전재형)
  • 어머니(이영란)
  • 영국(고도희): 진석의 가족. 바가지머리 소녀. 이 세 동생들은 악혼녀 영신의 동생들이다.
  • 영자(주아름[20]): 진석의 가족.
  • 영민(김경환): 진석의 가족. 진태의 지게에 탔다.
  • 이유진(조윤희): 진석의 손녀로 유해발굴 감식단원이 전화해 진석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서둘러 할아버지인 진석에게 전화를 바꿔준다. 통화를 한 후 진석이 현장으로 직접 가 보려고 하자 진석을 모시고 현장으로 향한다. 이후 유해발굴 현장에서 진석이 큰할아버지 진태의 유골 앞에 주저앉아 형을 부르며 오열하자 눈물을 흘린다. 극 초반부에도 진석이 진태의 행방을 찾으러 중국 연변까지 갔다온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할아버지의 참담한 심정을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 인민군 대좌(최민식): 우정출연
  • 청년단장(김수로): 우정출연
    • 그 외
      • 대좌 참모(정두홍): 우정출연
      • 인민군 장교(정호빈): 우정출연
      • 신임 대대장(김해곤): 우정출연
      • 인민군 소대장(박동빈): 우정출연
      • 인민군2(이건우)
      • 낙동강 방어선 중대장(박유신)
      • 위문공연단 드럼(최재혁)
      • 소대원4(박태원)
      • 수송병(김범주)
      • 위문공연단 색소폰(한재민)
      • 캘리버 30 사수(김대영)
      • BAR 사수(민지혁)
      • 학도병(임동빈)
      • 유해발굴현장단원(김재중)[1]
      • 위문공연가수(박성희)
      • 아이스께끼 소년(이정훈): 초반에 등장하는 소년으로 진태가 단단하게 얼어있는 것 하나만 달라고 하자 2명인데 2개 먹으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권유한다.
      • 구두닦이 소년(오명준)
      • 왕구 소대원3(이주원)
      • 의무장교(이환희)
      • 진석 老역(장민호)
      • 연대장(권태원)
      • 피난민(최교식)
      • 인민군 무전병(전승재)
      • 평양 방어 인민군(조성모): 카메오. 엔딩 크레딧에는 안 나왔다.
      출처(엔딩 크레딧)

6. 설정[편집]




7. 줄거리[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4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6.25 전쟁 격전지 중 하나인 두밀령 일대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한다. 그런데 발굴 도중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 유품을 하나 발견했고, 곧바로 만년필에 새겨진 이름으로 신원조회를 하기 시작한다. 만년필의 주인은 두밀령 전투[21]에 참전했던 육군 1사단 12연대 소속 이진석 하사.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생존자였다.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유품이 나온 걸 의아하게 생각한 감식단원들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이진석의 자택으로 전화를 건다.[22]

자택의 정원에서 가지치기를 하고 있던 백발의 노인 이진석(장민호 분)은 육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는 손녀 유진(조윤희 분)의 말에 다급히 전화를 받는다. 유해발굴감식단원과 자신의 생존 여부에 대한 통화를 하던 진석은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다가 혹시 이진태가 아니냐고 물으나,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맞다는 대답과 함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는 사과를 끝으로 통화는 끝난다. 진석은 어딘가 미심쩍음을 감추지 못하고는 직접 현장에 가 보기로 결심하며 옷을 챙겨입는다. 나가기 전, 빛바랜 가족사진과 서랍 한켠에 고이 모셔둔 구두 한 켤레를 꺼내보고는 그간 가슴 속에 품어왔던 50여 년 전 과거를 회상한다.

1950년 6월 서울 종로. 당시 18세의 고등학생이었던 진석은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우등생으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수재였고 그의 형 이진태는 이런 동생을 뒷바라지해주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구두닦이 일을 하고 있었다.[23]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우애가 돈독한 형제였고 국수가게를 하는 언어장애 어머니와[24] 진태의 약혼녀 김영신, 그리고 영신의 동생들(영국, 영자, 영민)과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불행하게도 얼마 안 있어 끝나 버리게 된다.

6월 25일. 그날도 진태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구두닦이 조수 용석과 구두를 닦으며 동네 꼬맹이들 재롱에 장단을 맞춰 주고 있었는데 진석이 급히 달려오더니 아무 소식 못 들었냐며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전한다. 진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피커를 단 군용 트럭들이 지나가면서 휴가중인 장병들의 부대 복귀를 지시하고, 거리에는 북한이 불법 남침을 했다는 신문 호외와 방송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평화롭던 종로 거리는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변해버린다.

그날 밤, 가족들은 외삼촌 댁이 있는 밀양으로 피난을 떠나기로 하고 짐을 챙긴다. 하지만 집안 살림을 하나도 두고 갈 수 없었던 영신은 이삿짐 싸듯 모든 짐을 다 챙겨 가져가려 했고 이를 본 진태는 밀양이 옆동네인 줄 아냐며 곧 돌아올 거라고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챙기라고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느냐며 언제 돌아올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냐는 영신과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영신은 앞날을 걱정하며 울먹이고 진태는 영신을 다독이며 결국 영신의 말대로 짐들을 전부 챙긴다. 진태가 군대에 끌려가면 어떡하냐며 걱정하는 영신에게 진태는 닦새나 시키면 모를까 자신 같은 놈을 데려가서 뭐 하냐며 영신을 안심시킨다.

그 해 7월 대구에서 피난 중이던 형제는, 진석은 밀양으로 가는 열차편을 알아보러, 진태는 몸이 아픈 영신의 동생 영민의 약을 구하러 잠시 흩어지게 된다. 대구역에는 피난민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어 있었지만 민간 열차는 운행이 전면 중지된 상황. 허탕만 치고 돌아온 진석은 진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나, 갑자기 군용트럭이 나타나 멈춰서더니 헌병들이 내려서서 잠시 조사할 사항이 있으니 '만 18세에서 30세까지의 남자들'은 전부 다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25] 말로는 별일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쟁터에 투입시킬 병사들을 징집하는 것이었다. 진석은 자네는 몇 살이냐고 묻는 헌병에게 얼떨결에 열여덟이라고 대답해버렸고 가지 말라며 만류하는 영신과 어머니에게 걱정 말라며 안심시키지만 곧 헌병의 손에 이끌려 나간다.

이후 간신히 약을 구해 돌아온 진태는, 진석이 조사를 할 게 있다는 군인들에게 이끌려 간 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영신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동생을 찾아나선다. 그리고 진석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군용 병력수송 열차에까지 뛰어들어온 진태는 객실 한켠에 앉아 있던 진석을 발견해 데리고 다시 내리려 했지만 이미 객실 양쪽의 출구는 군인들에 의해 막힌 상황. 진태는 내리려고 했지만 당연히 군인들은 이런 두 사람을 막아서며 열차가 곧 출발하니 자리에 앉으라고 강압적으로 명령한다. 처음에는 열차를 잘못 타서 내릴 거라고 정중하게 말하던 진태는 결국 제지하는 군인들을 뚫으려 몸싸움을 벌이지만 되려 군인들에게 제압당한다. 이때 진태에게 얻어터지고 쓰러진 군인이 외모상 중년이라 하기 힘든 청년같은 진태를 보더니, "너도 징집 대상자야!"[26]라고 못 박아버리고 강제로 앉혀버리는 바람에[27] 결국 진태까지 형제가 둘다 강제로 징집당해 전쟁터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고, 결국 형제를 태운 열차는 전방을 향해 출발해 버린다. 그리고 걱정되어 뒤따라온 영신과 어머니에겐 곧 뒤따라갈 테니 먼저 외삼촌 댁에 가 있으라고 말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형제는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된다.[28]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낙동강 방어선에 투입된 형제. 피를 잔뜩 흘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부상자들,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을[29] 한데 쌓아 태워버리는 소각 현장까지[30] 참혹한 전선의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히 목격하게 된다. 진태는 병사들을 인솔하는 장교[31]에게 동생이 아직 어린 학생인데다 총도 쏠 줄 모른다며 자신이 옆에서 가르칠 테니 같이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장교가 이를 허락해 줘 다행히 형제는 같이 있을 수 있게 된다. 이후 인사나 하고 지내자며 먼저 통성명을 해 오는 고영만(공형진 분)을 비롯, 소대 최고참 양 주사(박길수 분)와 부소대장 허 중사(안길강 분), 빨갱이라면 치가 떨리도록 증오하는 임 하사(정진 분), 중학교를 다니다가 입대한 최연소 병사 승철(엄성모 분)과 무전병(김효열 분), 신의주에서 월남해 온 림태수(조운 분), 조 일병[32] 등등 각기 다른 사연으로 전쟁터에 오게 된 소대원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심장병을 앓는 동생이 참혹한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진태는 대대장을 찾아가 하라는 건 뭐든 할 테니 동생을 후방의 병원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하지만 대대장은 진석처럼 아픈 병사들을 전부 다 후방으로 보내버리면 여긴 누가 싸우냐고 하면서 멀쩡한 놈이 하루아침에 병신 되고 비실비실 다 죽어가는 놈이 멀쩡해지는 곳이 전쟁터라며 딱 잘라 거절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준다. 얼마 전 옆 연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진태·진석 형제처럼 강제 징집되어 왔는데 전쟁 도중 아버지가 무공훈장을 받아 아들을 전역시켜 줬다는 이야기였다. 이때부터 진태의 관심은 오직 무공훈장만을 향한다.

진태는 다음날부터 시키지도 않은 지뢰 매설 작전에 자원해 훈장을 받기 위한 전공을 차근차근 세워나가기 시작한다. 대전차 지뢰 매설을 마무리하고 복귀하려는 찰나 갑작스러운 북한군의 기습을 받게 되고, 이 와중에 아군 병사 한 명이 총에 맞아 전사한다.[33] 그리고 또 다른 병사 승철은 복부에 총을 맞고 괴로워하다 지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발목까지 날아간다. 다행히 허 중사와 양 주사가 북한군의 총격을 피해 승철을 데려오는 데 성공하고 허 중사는 퇴각 명령을 내리지만, 진태는 허 중사의 명령을 무시하고 북한군과 맞서기 시작한다.

퇴각해 돌아온 부대원들은 발목이 잘려나간 승철을 의무대로 데려와 응급처치를 하고,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승철의 모습을 보다 못한 진태는 막사 밖으로 나와 복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철모를 땅에 내팽개치며 화풀이를 한다.[34] 그 사이 허 중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진태에게 다가와 '오늘은 처음이라 그냥 넘어가지만 한번만 더 이런 식으로 멋대로 행동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조금만 늦었으면 승철이는 죽었을 거다'라고 경고가 담긴 충고를 한 뒤 가 버린다. 진석 역시 진태의 이런 무모함에 분노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하지만, 진태는 동생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알았다고 대답한다.

그 뒤, 계속되는 전투와 무더위로 인해 부대원들은 지칠 대로 지치고, 설상가상으로 적에게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에서 북한군의 심리전 방송까지 더해져 부대원들의 사기는 갈수록 더 떨어진다. 한편 승철은 야전침대에 누워 구토까지 하며 복통을 호소한다.[35] 이 무렵,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부상자들 때문에 의약품은 진작에 바닥난 데다 사방이 적에게 포위당해 의약품 추가 보급이나 후방 병원 후송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이에 양 주사가 복부에 감긴 붕대를 들춰 보니 그 안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에 열받은 양 주사가 의무병을 다그치는 사이[36] 공황장애가 온 승철은 총을 집어들어 막사 안에 있던 다른 부상병들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의 턱에 총구를 들이댄 뒤 쏘아 자살해버린다.

대소란에 전 중대원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양 주사는 죽은 승철을 붙들고 좀만 참지 그랬냐고 오열한다. 허 중사가 병사들을 해산시키려 하자 양 주사가 우린 이렇게 다 죽는거냐고 울부짖기 시작하는데, 영만이 굶어죽든 총맞아 뒤지던 둘 중 하나 아니겠냐고 이를 갈고, 임 하사가 죽기는 왜 죽냐고 하자, 밥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싸우냐면서 군인은 사람도 아니냐고 대든다. 임 하사가 밥 한끼에 인민군 군복으로 갈아입겠다면서 으르렁대자, 까짓거 못할 거 어디냐면서 일제때는 일본놈들에게 뺏긴 나라라도 되찾으려고 싸웠는데 형제들끼리 총질하는게 어딨냐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자 임 하사가 "이 빨갱이 새끼야!"라고 영만을 구타하고 난장판이 벌어진다. 이때 양 주사에 의해 임 하사가 왜 그토록 빨갱이를 싫어하고 증오하는지가 드러난다. 그는 원래 이북 출신인데[37] 북한정권에 의해 처자식이 몰살당하고 홀로 살아남아 월남했던 것. 북한정권에 의해 가족이 다 죽임을 당한 사람 앞에서 형제들끼리 총질을 하는 게 중요하냐느니 하는 말이 어떤 경우든 좋게 들릴 리가 없다.

허 중사는 영만과 임 하사의 주먹다툼으로 동요하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부대원들을 해산시키려 한다. 이때 진태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 아니냐며 역으로 북한군을 기습하자고 주장하고, 이에 상당수의 부대원들이 동조해 국군의 야습 작전이 감행된다. 그곳에서 진태는 선두에 서서 북한군의 기관총 진지 뒤편의 무기고를 터뜨려 국군을 승리로 이끈다. 한편 전투만 벌어졌다 하면 심장발작을 일으켜 호흡곤란에 시달리던 진석은 점차 초반의 유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강해지기 시작했고 그간 형의 온갖 무모한 행동들이 자신을 전역시키기 위한 무공훈장 수훈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는 형의 목숨을 담보로 훈장을 받아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와 영신 누나를 무슨 낯짝으로 보냐며 따진다. 그리고 앞으로 상관들에게 자신을 전투에서 빼 달라는 부탁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한편 야습 작전을 승리로 이끌어 영웅이 된 진태는 전공을 인정받아 중사[38]로 진급하게 되었고 서울 수복 후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까지 하는 영광을 누린다. 하지만 진석은 무공훈장을 받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모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형이 불편하기만 했고 취재 인터뷰와 회식에 참여하느라 가족들에게 편지를 부치는 일마저 미루는 진태의 모습을 보고는 원망감이 커져만 갔다.[39] 그래서 지금이라도 무공훈장 생각은 버리고 영신과 가족들만을 생각하는 평소의 형으로 돌아오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10월, 38선을 넘어 북진한 국군은 평양에서 북한군과 전투를 벌인다. 그러던 중 진태는 후퇴하는 몇몇 북한군을 보고는 소대원들을 이끌고 쫓아가려 하지만, 진석은 더 이상 저들을 쫓는 건 무리라며 만류한다. 하지만 진태는 동생을 밀쳐내고 소대원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소리치며 앞장서 뛰어가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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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한군을 쓸어내다 인민군 육군 총좌[40]를 발견한 그는 곧장 달려들어 드잡이를 시작한다. 멀리서 이를 본 영만이 진태를 돕기 위해 달려와 마주오던 북한군 한 명을 사살한 후 총좌에게 총을 겨누며 꼼짝말라고 소리치지만, 옆에 쓰러져 있던 총좌의 부관[41]이 몸을 일으켜 영만의 가슴팍에 권총을 쏘고 말았다. 가슴에 총상을 입은 영만은 비틀거리지만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 총좌의 부관을 쏴 사살하고 쓰러진다. 뒤따라온 진석과 다른 전우들이 쓰러진 영만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시작하지만 이미 상처가 너무 심각하고 출혈이 심했던 터라 얼마 못 가서 전사한다. 그때까지도 진태는 총좌와 몸싸움을 벌이느라 영만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아무튼 진태의 활약으로 국군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평양 수복에 성공하고, 북한군 총좌 생포라는 큰 공을 세운 진태는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무공훈장 수훈이 확정됐다. 하지만 진석은 형 때문에 영만이 형이 죽었다며 대체 그까짓 훈장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냐고 따진다. 그리고 형이 자신을 전역시켜 주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본인의 진급과 명예욕을 위해 싸운다고 여기며 증오심까지 더해졌다. 이때부터 돈독했던 형제 간의 우애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극명하게 갈라진 형제의 성격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진격을 계속하던 중 북한군이 퇴각하며 마을 주민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현장을 접하게 된 부대원들이 주민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현장을 정리하던 중 북한군이 설치해 둔 부비트랩이 시체 더미 안에서 터지는 바람에 몇몇 부대원이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는다. 이에 분기탱천한 부대원들은 뒤이어 벌어진 전투에서 전의를 잃고 투항하려 하는 북한군 병사들까지 무차별로 쏴죽인다. 진태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인민군 장교를 총검으로 쑤신 다음에 산체로 불태워죽이고 포로 학살 때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포로들을 확인사살하기까지 한다.[42]

이후 북한군 패잔병들이 숨어 있다고 의심되는 탄광 안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화염방사기를 분사해 그 안에 숨어 있던 북한군 병사 네다섯 명이 콜록거리며 제발로 걸어나오게 만드는데, 이들을 사로잡는 와중에 진석은 이들 중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그의 정체는 바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 진태가 데리고 있던 구두닦이 조수로 진태·진석 가족과도 친하게 지내던 용석. 진석은 용석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고 용석은 울먹거리며 북한군의 협박에 못 이겨 의용군에 강제로 징집됐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진태는 이들을 교전 중 전원 사살한 걸로 하라며 데리고 가 봐야 짐밖에 안 된다고 쏘아붙이고 용석을 빨갱이와 한패로 간주한다. 이어 임 하사를 비롯한 다른 부대원들 역시 진태의 말에 동조해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라며 포로들을 모두 죽이려 들었지만 진석은 무장 안 한 포로들을 사살했다고 본대에 보고할 테니 어디 한 번 쏴보라며 부대원들에 맞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죄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빨갱이들이랑 다를 게 뭐냐며 소리친다. 하지만 임 하사가 이 새끼들이 하는 짓 못 봤냐며 포로고 나발이고 이것들이 인간이냐고 진석과 말다툼을 벌인다. 이에 진석은 다 똑같다며 자신이 직접 포로를 옷깃 붙잡고 흔들면서[43] 어서 쏘라고 욕설까지 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고, 결국 진태는 포로들을 죽이지 않고 말없이 가버린다. 이에 임 하사와 부대원들도 포로들에게 니들 오늘 운 좋은 줄 알라며 포로 사살을 포기하고, 용석과 포로들은 처형을 면하고 국군의 포로가 된다.

11월, 함박눈이 쏟아지는 혜산진 진석 덕분에 운좋게 살아남은 용석은 국군의 포로로 노역을 하게 되고, 진석은 이런 용석에게 남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며 살뜰하게 챙겨준다. 그리고 용석으로부터 가족들의 소식을 듣게 된다. 용석의 말에 따르면, 형제와 헤어진 후 어머니와 영신은 형제가 혹시 군대에서 나오게 되면 서울 집으로 올 거라며 밀양으로 피난가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로 다시 돌아왔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형제의 소식을 묻고 다녔다. 그리고 평소에도 국수 장사를 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시던 어머니는 서울로 돌아온 후 병치레를 하면서 거동이 더 불편해지셨다. 이런 상황에서 영신은 혼자서 아픈 어머니의 병간호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일을 도맡고 있었다. 그녀는 북한군의 등쌀 때문에 가게도 할 수 없게 되자 밤낮으로 부역이며 인민대회며 배급이 나오는 곳마다 모조리 쫓아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진석은 마음이 몹시 착잡해진다.

하지만 이런 동생과는 달리 진태는 사로잡은 북한군 포로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진 새끼는 이틀 동안 밥을 안 줄 거라며 비인도적인 학대 행각을 벌인다. 포로들이 싸울 의지를 보이지 않자 이틀을 5일로 늘리지만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직접 내려가서 두 사람 모두를 때려눕히며 이렇게 하는 거라고 비아냥댄다.[44] 이를 보다 못한 진석은 결국 형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여 주기로 하고 직접 내려가서 포로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그날 밤, 진태는 고열 때문에 앓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진석[45]의 이마에 손수건을 올려 주며 잠시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다음날, 부대원들은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왔다는 방송[내용]을 들으며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한다. 한편 진태는 무공훈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진석에게 이를 알린다. 하지만 진석은 평양 전투 당시 영만의 죽음으로 받은 훈장이라고 우겨 결국 형제는 크게 다툰다. 그때 중공군의 개입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며 대대적인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국군은 후퇴하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해 정신없이 퇴각하던 와중 허 중사가 전사했으며[46], 임 하사는 포탄에 맞아 오른쪽 팔이 잘려나갔고, 그 외에도 곳곳에서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국군의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잡혀있던 포로 중 한 명이 부상을 입고 쓰러진 허 중사의 권총을 탈취해 국군에게 총질을 하며 탈출을 시도하고 다른 포로는 아예 국군 병사 한 명을 붙잡고 인질극까지 벌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부대원들이 일제히 포로들을 향해 총을 겨눈다. 용석을 비롯한 나머지 포로들은 당황해 연신 주위만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한다.

국군 병사를 인질로 잡아 목을 조르고 칼까지 대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협박하는 포로 때문에 부대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총만 겨눈 채 대치하고 있던 중, 진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겨 포로를 사살하는데 문제는 총을 한 번 더 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용석까지 총에 맞고 죽게 된다.[47] 영만을 죽게 한 데 이어 용석까지 죽여 버린 형을 본 진석은 분노가 폭발해 진태에게 달려들어 미친듯이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고 다른 부대원들이 말리면서 겨우 일단락된다.

결국 국군은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끝없는 후퇴를 계속하고, 12월 말 국군과 피난민들은 장단군(파주)까지 밀려 내려오게 된다.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이 후퇴는 서울까지의 후퇴로 이어진다. (1.4 후퇴) 이후 수많은 피난민들이 기차로 몰려드는 장면도 나온다.

그 후 진태는 그동안의 전공으로 드디어 무공훈장을 받게 되고[48], 국군은 부대를 재편성하기 위해 각 대대마다 집결지를 정해 놓고 정해진 시각까지 그곳에 집결하도록 한다. 진석을 찾던 진태는 부대원들에게 진석의 행방을 묻고, 양 주사가 진석은 조금 전 먼저 출발해버렸으며 편찮으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 집에 들를 것 같다고 대답한다. 이에 진태는 서둘러 동생을 찾아 서울 집으로 향한다.

용석의 죽음으로 진태에게 빈정이 단단히 상한 진석은 홀로 서울의 집에 들러 가족들을 찾고, 집을 지키고 있던 영신과 재회한다. 그런데 집 앞에 웬 트럭 한 대가 멈춰서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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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빨갱이들을 처단하는 반공 청년단장(김수로)을 중심으로 한 청년단원들로, 보도연맹 가입자 명단[49]을 근거로 하여 배급을 받기 위해서 명단에 기재된 이름과 주소를 찾아 영신을 체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진석은 영신을 구하기 위해 청년단원들에게 총을 겨누며 막아서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진석도 수상히 여기며 빨갱이 첩자인지 알아봐야겠다며 영신과 같이 끌고 간다.

청년단원들이 두 사람을 끌고 온 곳은 방첩단. 그곳에서는 영신과 같은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을 가차없이 총살해버리고 있었다. 영신도 끌려나와 속절없이 총살당하려던 찰나에 어디선가 달려온 진태가 청년단장에게 총을 겨누고 허튼짓 하지 말라며 막아선다. 진석보다 조금 늦게 집에 도착한 그는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영신과 진석, 그리고 울며불며 둘을 쫓아가는 영신의 동생들을 보고는 다급히 방첩단까지 쫓아온 것이었다.

그 무렵, 영신과 떨어져 따로 심문받기 위해 끌려가고 있던 진석 역시 몰래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그를 호송하던 방첩대원의 목을 찔러 제압하고는 그를 인질로 끌고 현장으로 달려온다. 진석은 진태와 영신에게 어서 나가라고 소리치지만 청년단원들은 "인민군 새끼들한테 아랫도리 돌린 년이 누군데?"[50], "저년 화냥질한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 "피난 안 간 이유도 다 그런 거 아니야?"라며 비아냥댔고[51] 영신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인민군 간부들 집안일을 좀 해준 것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진태에게도 사실이 아니라고 울먹이며 호소하지만 진태는 정말로 영신이 북한군과 (자의든 타의든을 떠나서) 놀아난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동요하며 주저한다. 진석은 진태에게 어서 영신을 데리고 나가라며 계속 소리친다.

뜻하지 않은 소동으로 청년단원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영신과 같이 끌려나왔던 양민 두 명이 탈출을 시도하고, 다른 단원들이 이들에게 총을 쏘자 이를 본 다른 양민들 역시 탈출을 시도하거나 어차피 죽을 각오로 힘을 합쳐 청년단원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52]. 진태와 진석도 단원들과 맞서 싸우는 사이[53] 청년단장이 영신을 쏴 버린다.[54] 그리고는 확인사살을 위해 다가가려는 찰나, 영신이 총을 맞는 것을 본 진석이 절규하며 달려들어 청년단장을 주먹으로 후려갈기고 분노에 차 청년단장의 머리를 잡고 연속으로 땅바닥에 내려찍어버린다.[55] 진태는 영신이 준 손수건으로 영신을 지혈하려 하지만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영신은 피가 쏟아져나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마지막 힘을 다해 자신은 진태에게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 결백을 호소하고 동생들 걱정을 하며 나 죽으면 안 된다는 말과 진태에게 보고 싶었다며 사랑한다고 말한 뒤[56] 결국 숨이 끊어졌고 영신의 죽음을 목격한 진태 또한 넋이 나가 버리고 만다. 결국 진태와 진석은 청년단원들에게 제압당하고 영신의 시체는 형제가 보는 앞에서 부역자 총살 후 시체 매장을 위해 파둔 구덩이에 내던져진다. 이 싸움에서 대다수의 청년단원들이 중상을 입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망자들과 탈출에 성공한 극소수 양민들도 생겼다.

이 일로 인해 진태·진석 형제는 청년단원들의 방첩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되고, 북한군 포로들과 함께 창고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 와중에 쭈그려 앉아있던 진석은 진태를 노려보고 분노하면서 "영신이 누나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 니가 죽인 거야 영신이 누나... 니가 죽였어... 니가... 미친 새끼..." 라고 중얼거리며 진태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주위 사람들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미치광이로 취급하고 진태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 사실상 의절을 선언한다.

한편 신임 대대장(김해곤 분)은 진태를 심문하기 위해서 그를 불러내서 아군끼리 총질하고 니가 그러고도 군인이냐면서 군대 꼴 잘 돌아간다고 빈정대며 무공훈장 수훈자가 있는 대대라서 기대했는데 이게 뭐냐고 어이없어한다[57]. 이에 진태는 그에게 전임 대대장과의 약속을 언급하며 동생을 전역시켜 달라고 하지만 그는 군대가 무슨 장사치 소굴인 줄 아냐며 묵살해 버린다. 진태는 "흥정은 그쪽에서 먼저 한 겁니다."라고 싸늘하게 대꾸를 하지만 대대장 역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어떤 얼빠진 새끼가 그따위 소릴 했는지는 몰라도 나한텐 안 통해!"라고 쏘아붙이며 진태를 도로 창고에 처넣어버리라고 소리친다.[58] 그리고 대대장이 1중대의 전화를 받으려던 찰나 중공군의 포격이 시작된다. 선제 포격이 공교롭게도 본부에 떨어져 참모들이 몰살당하자 진태는 죽은 장교의 권총을 집어들어 대대장에게 겨누며 진석이 갇혀 있는 창고의 문을 열라고 위협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대대장은 화가 났는지 오히려 "포로들 전원 소각해!"라고 명령을 내렸고[59], 이에 진태는 대대장을 총으로 때리면서 다시 지시하라고 하지만 포격으로[60] 무전기가 망가지고 만다.

진태는 대대장을 팽개치고 급히 뛰쳐나갔지만 이미 예하 부대원들이 창고에 불을 지르고 있었고, 이를 제지하러 다가가다 포격에 휘말려 정신을 잃는다[61]. 그리고 깨어났을 땐 진석이 갇혀 있던 창고는 이미 잿더미가 된 후였고, 창고 안을 살피던 그는 잿더미 속에서 동생 이름이 적힌 만년필과 그 옆에 있는 백골 시체를 발견한다. 그 백골을 동생의 시체라고 여긴 그는 극도로 분노가 폭발해 중공군에게 끌려가고 있던[62] 대대장의 머리를 돌로 수차례 내려쳐서 무참히 살해를 해버렸고[63] 본인 역시 중공군에게 붙잡혀서 끌려다니는 처지가 된다.

이후 시간은 흘러 1951년 7월 여름. 죽은 줄 알았던 진석은 양 주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창고를 빠져나오면서 살아남았지만 빠져나오던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국군대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던데다 의병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64] 진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양 주사는 진태가 집으로 편지를 보낸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대로 다시 되돌아왔다면서 봉투 한 장을 건넸고 진태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진석은 굳은 얼굴로 "관심없다" 라면서 딱 잘라 이야기한다. 그때 멀리 서 있던 간호사가 상담실로 오라며 진석을 불렀고 진석은 곧 상담실로 향한다.

진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보부 장교들. 장교들은 진석에게 인민군의 삐라 한 장을 보여준다. 거기엔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진태였다. 대대장을 살해한 진태는 사랑하는 영신과 동생 진석을 잃은 실망과 분노로 인해 북한군으로 전향했고 뒤이어 그동안의 뛰어난 무공을 감안해 붉은 깃발부대를 지휘하는 육군 군관(소좌)이 된 것이다.[65] 뒤이어서 장교들은 태극무공훈장까지 받은 국군 영웅이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됐으니 우릴 설득하지 못하면 자네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진석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미 진태에 대한 분노로 가득차 있던 진석은 "제가 알고 있는 이진태는 종로통에서 구두를 닦았고,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고 끔찍이도 동생을 아끼던 사람이었어요. 무공훈장 받고 깃발부대장하고 있는 그 사람, 제 형 아닙니다." 라며 북한군으로 변절해버린 진태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한다.[66]

한편, 오른팔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진석과 같이 입원해 있던 임 하사도 마찬가지로 사단 정보과에서 진태에 관해 조사를 받는다. 그는 조사가 끝나자마자 진석에게 달려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묻는다. 팔을 잃은 후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임 하사는 눈에 띠게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다. 진석은 일부러 대답 않고 밥만 먹었지만 임 하사가 너밖에 모르던 사람인데 애인 죽고 너까지 국군 손에 죽었다고 생각해서 월북한거 아니겠냐고 하자 욱해서 수저를 팽개치며 "그 인간 훈장 못 받아서 환장한 인간인데 이번엔 중대장이나 대대장쯤 시켜준다고 했나 보지! 그 인간 뒈지든 말든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니까 더 이상 내 앞에서 얘기 꺼내지 마세요!" 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하지만 그날 밤 진석은 낮에 양 주사에게서 받은 진태의 편지를 읽고 진태의 진심을 깨닫는다.

어머니께

어머니 보고 싶어요. 우리 갈 때까지 건강하세요. 내 목숨 걸어서 진석이 살릴 거예요. 전쟁터가 험해도 우리 진석이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영신이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어머니, 이번에 제대해서 돌아가면 꼭 구두가게 열어서 어머니 호강시켜 드릴게요.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가족 다시 만날 때까지 꼭 건강하세요.[67]


편지를 다 읽은 진석의 두 눈시울은 촉촉히 젖고 전쟁터에 오기 전, 영신과 동생들과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종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형과 화목하게 지냈던 행복한 일상들을 떠올린다.

진석은 북한군으로 전향한 형을 만나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최전선으로 향하려고 한다. 하지만 임 하사는 여기 병원에 오는 환자들 절반은 전부 다 그쪽 전선에서 오는 사람들이고, 설령 가더라도 형을 만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으며 다음주면 제대인데 어머니와 영신의 동생들 생각도 하라면서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지만 이미 결심이 확고한 진석은 전선으로 떠나는 지프차에 올라타 출발해버리고, 임 하사는 결국 진석을 말리지는 못하고 멀어지는 지프차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몸조심하라는 말을 남긴다.[68]

국군 측은 진태가 목격된 두밀령 고지에 진석을 투입시켜 진태를 회유하는 것을 계획했지만 미 해군 항공대의 요청으로 작전 개시가 24시간 앞당겨지는 바람에 원래 계획을 취소하고 투항 권고 방송으로 대체하기로 한다. 진석은 연대장에게 방송만으로는 형이 믿지 않을 테니 자신이 직접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작전을 위해선가, 형을 구하기 위해선가?" 라는 연대장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버린다.[69]

이후 장병들이 작전 준비를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통신대에 남겨진 진석은 그곳에 있던 통신병들을 때려눕힌 뒤 사실상 탈영을 감행, 홀로 북한군 진지로 달려가 투항하고 형을 만나러 왔다며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북한군 소대장은 진석의 멱살을 잡고는 만약 사실이 아니면 죽을 줄 알라고 협박한다.

소대장의 지시로 통신병이 사실 여부 확인을 위해 상부에 무전을 하는데, 통신병에게 돌아온 답변은 깃발부대장의 동생은 얼마 전에 사망해서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진석은 자기가 직접 통화하겠다며 전화기를 뺏어들고 형을 부르지만, 진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소대장은 진석에게 총구를 겨누고는 뭘 염탐하러 온 거냐고 다그친다. 이 때 진석을 보안대로 끌고 오라는 명령이 내려오면서 진석은 일단 보안대로 이송되기 위해 바깥 진지로 나오게 된다.

북한군 병사의 감시 아래 참호를 따라 보안대로 이송되던 진석. 그런데 참호를 보강하던 북한군이 미 해군 F4U 편대의 공습에 난리가 났고, 뒤이어 국군도 포격으로 후속 타격을 한 뒤 전차와 함께 진격해 온다. 이 와중에 기총사격으로 진석을 끌고 가던 병사가 죽고,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자 진석은 위험을 무릅쓰고 형을 찾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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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누군가가 "깃발부대다! 깃발부대다!"라고 외치고, 그 말을 들은 진석이 고지 위를 쳐다보자 붉은 깃발을 총대에 멘 북한군 깃발부대가 나타나서 고지 밑으로 쏟아져 내려와 국군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한다. 진석은 형을 찾기 위해 난전 속에서 깃발부대의 공격을 막아내며 헤매던 도중 국군과 백병전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는데 바로 진태였다.[70][71]

진태는 소중한 동생과 영신을 잃었다는 배신감, 증오와 분노, 원망으로 이성을 잃어버려 동생이 눈 앞에 있어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국군 두 명을 참살한 뒤 진석도 죽이려고 든다. 진석은 이런 형을 진정시키려고 난투극을 벌이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진태에게 두들겨맞다가 총검이 머리에 쑤셔질 위기에 놓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빗나가나 진태는 곧 진석을 완전히 제압한 뒤 방아쇠를 당기려 든다. 이때 또 다른 국군 한 명이 대검으로 진태의 옆구리를 찌르지만 진태 역시 대검을 꺼내 곧바로 그 국군을 찔러 죽인다. 진석은 다급히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붕대를 주워 와 진태의 상처를 지혈하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진태는 여전히 그 와중에도 진석의 멱살을 잡으며 증오에 가득 찬 욕지거리만 내뱉는다.[72]

북한군 증원병력이 가세해 밀고 내려오자[73] 국군 중 누군가가 "퇴각! 퇴각해!"라고 소리치고 국군은 퇴각하기 시작한다. 여전히 잔뜩 광분해 있는 진태를 어쩔 수 없이 한 대 때려 기절시킨 진석은 형을 들쳐업고 퇴각하지만 다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져 버린다. 절망한 진석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울부짖으며 "엄마한테 가야 될 거 아냐? 영신이 누나 산소에도 가 봐야 될 거 아니냐? 나 대학가는 건 봐야 될 거 아니냐고?" 라면서 울먹이자 그제야 진태는 진석을 알아보고, 동생이 살아있음을 깨닫고 이성을 되찾는다.

그러나 북한군의 총탄이 빗발치고 있는 데다 부상까지 입은 형제가 함께 무사히 돌아가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74] 주위를 둘러보고 전황을 파악한 진태는 진석만이라도 살려보내려고 빨리 퇴각하라고 하지만, 진석은 한사코 같이 가야 한다며 움직이지 않는다. 진태는 대학 가면 너 주려고 만든 구두 다 만들기 전까지는 난 절대 안 죽을 거라며 품 속에서 불에 탄 창고에서 발견한 진석의 만년필을 꺼내 진석에게 건네준다. 하지만 진석은 나중에 돌아오면 그 때 주라며 만년필을 받지 않았고, 꼭 돌아오라는 말을 남긴 후 형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진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을 예감했는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진석을 보내고 진태는 진석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도록 전장에 방치된 M1917 브라우닝을 장전, 조금 전까지 같은 편이었던 북한군을 향해 난사하여 다수를 사살한다. 다리를 다친 진석이 한 번 넘어지긴 했지만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던 것은 진태가 필사적으로 싸워서 북한군의 공세를 크게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다 진태는 결국 재장전과 거치를 마친 두 명의 북한군 DP-28 기관총사수의 총격에 당해 쓰러진다.[75] 진석은 후퇴를 하면서도 계속 형이 있는 곳을 되돌아보았고, 진태 역시 죽음 직전까지 동생이 무사히 돌아갔는지를 확인하려고 뒤를 돌아보다가 숨을 거두고 퇴각중인 국군 잔존 병력들이 진태의 시신을 넘어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탄피가 잔뜩 쏟아져 있는 흙바닥에 쓰러진 진태의 모습이 뼈만 남은 유해로 변하면서 시간은 다시 2004년 유해발굴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날 숨을 거둔 진태는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있다가 50여 년 만에야 유골로 발견된 것이다. 백발의 노인이 된 진석은 같이 발견된 유품 중 만년필을 보고서 발굴된 유해가 진태라는 사실을 깨닫고, 형의 유골 앞에 쓰러져서 오열한다.[76]

}}}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이러고 있어요?
뭐라고 말 좀 해요...
5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이 동생한테 뭐라고 말 좀 해요...
그 때 형 혼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형... 형...!!!

광란의 전쟁으로 뒤틀리던 형제의 운명은 결국 그렇게 5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점철된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다시 과거 장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진석은 형이 옷장 한 켠에 보관해 둔 구두를 꺼내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이후 진석은 서울 종로 거리에서 영신의 어린 동생들과 함께 다시 장사를 하고 있던 어머니와 재회하면서 영화는 끝난다.[77][78]


8. 시대 연출[편집]


군사전문 잡지 플래툰의 김세랑 기자가 군사 자문을 담당[79]했다. 군장이라든지 몇몇 부분에 자잘한 오류가 있으나 한국 전쟁 영화치고는 전반적인 소품 재현이 대단히 잘 된 편이다. 사실상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잘 반영한 유일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군의 군복이나 장비 면에서는 현실과 거의 일치한 모습을 담아냈다. 심지어 이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국방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다만, 군장 등의 몇 가지 자잘한 오류들과 전술이나 전략 묘사 부분에서는 밀덕들에게 이해가 안 가는 면이 다소 있으나 이런 것은 스토리 진행을 위한 연출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볼거리 외에 극중에서 묘사되는 전술 면에서는 적지 않은 문제를 보였다. 특히 백병전과 근접전 위주의 연출이 매우 자주 등장하는데 총 놔두고 너무 엉겨붙어 싸우는 장면만 자주 나와 문제가 있는 편이다. 이런 전술 문제를 비판하는 관객이나 평론가들은 '6.25식 장비를 걸치고 1차 대전식 전투를 하는 영화'라고 깐다. 물론 극적 연출로 보자면 격렬함과 처절함을 잘 살려 좋으니 마냥 까기도 곤란한 요소. 근데 이건 한국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해서 막연히 그 이전보다는 발전된 전술만 펼쳐졌을 거라고 오해해서 생기는 일인데, 한국전쟁기 국군은 백선엽 등 고위 장교 말고도 소위 같은 하급 장교나 부사관 중에도 일본군 출신이 많았던 탓에 일본군 전술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1차대전마냥 돌격전을 펼치는 것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2차대전기 일본군은 20세기 초반 기준으로 일본 외에는 후진국들 모임이나 다를 바 없는 아시아에 위치한 탓에 유럽의 군대들과는 달리 비슷한 전력을 가진 군대끼리 꾸준히 부대끼며 전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1차대전 당시 유럽에서 펼쳐진 전쟁의 양상을 자기들 나름대로 분석하기도 했으나 가장 중요한 실전경험에 있어서 일본군보다 질적으로 뒤떨어지는 중국군이나 식민지 치안 유지용 군대와 충돌해온 탓에 그 이상의 발전이 느려졌고, 그러다보니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시기까지도 1차대전 전술의 완성형에 가까운 전술을 펼쳤지 동시대 유럽 국가들과 유사한 전술을 펼쳤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물론 일본군도 돌대가리 집단은 아닌만큼 꾸준히 미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전술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사이판 전투 이전까지는 미군과 대규모로 부딪혀본 게 과달카날 전역 정도밖에 없었고 그 외에는 대부분 소규모 국지전이었던데다가, 패배를 수치스럽게 여겨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집단 자살하거나 무의미한 반자이 돌격으로 대부분의 인명을 소모해버리는 일본군 특성상 미군과 싸워본 숙련병들이 나오기가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그 숙련병 역시 제해권을 뺏기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태평양이라는 전장 특성상 일본까지 실어나를 겨를이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은 대 미군 전술을 어느 정도 발전시킨 이오지마 전투나 오키나와 전투 때까지도 일본군 특유의 정신론과 1차대전식 전술이 짬뽕된 결과로 탄생한 착검돌격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고, 이 영향은 일본군 출신이 많았던 한국전쟁기 국군에게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 후반기 미군의 빠방한 물자지원과 교육 덕분에 미군식 화력지원을 퍼부을 수 있었던 한국군은 미군 못지않은 화력지원을 등에 업고 일본군식 착검돌격을 하는(....) 흠좀무한 상황도 만들어내곤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은 적국의 본토와 그 동맹국들을 공격하는 데에 아무 장애물이 없었던 2차대전과는 달리 세계대전이 끝난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피로감과 공산 진영 전체와의 충돌을 우려한 서방권의 정치적 판단이 겹친 탓에 대놓고 지원을 퍼붓는 중공과 소련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능했던지라 후반 들어서는 1차대전 때처럼 고착된 전선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차대전식 전투가 벌어지는게 크게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한반도 특유의 산악지형 탓에 전차 없이 알보병만으로 돌격해야 하는 상황도 제법 있었고.

그리고 위에서 백병전 위주의 연출이 많다고 하지만 백병전이 주된 요소로 등장하는 전투는 첫 전투와 마지막 전투 뿐이다. 첫 전투의 경우 보급이 끊겨 식량과 무기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마지막 전투는 포격 후의 고지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백병전이 나오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나머지 전투의 경우 시가전과 포격전 매복전 등 다양한 전투 상황을 묘사함에도 주인공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전투와 결말을 향해 치닫는 마지막 전투를 백병전이 장식해서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남은 탓이 크다. 또한 영화의 초점 자체가 부대가 아닌 형제 개인에게 맞춰져있기 때문에 굳이 전술적 행동을 묘사하는건 영화적으로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강제규는 소품팀에게 배우들에게 M1 개런드, M1 카빈, 스프링필드 M1903, 모신나강 등을 비롯한 소총류만 지급할 것을 지시했지만, 소품팀이 밀덕이었는지 차마 그럴 수 없다면서 평양 전투 씬에서 바주카, 기관단총(톰슨 기관단총, M3 기관단총, 스프링필드 M1903A4, PPSh-41, PPS-43, 남부 권총), 경기관총(M1918 브라우닝, M1919 브라우닝,DP-28) 중기관총(M1917 브라우닝,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등 다양한 중화기를 지급했고 후에도 M2 화염방사기 등이 등장한다. 감독은 소품팀의 항명에도 결과가 괜찮아서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또 여담이지만 평양 전투 씬을 다 찍고 나오는 길에 엑스트라 한명이 감독의 표현대로 '(나몰라라) 예비군 정신'을 발휘해, 촬영용 소총을 아무 데나 짱박아두고 오는 바람에 모든 스텝들이 밤새도록 세트장을 돌아다녀서 간신히 찾았다고 한다.

양덕들이 이 영화에 나온 무기들을 철저하게 분석해놨다.[80] 사진과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무기가 사용되었고 이 영화의 재현이 꽤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한국전쟁 관련물에서는 별 관심도 안 두던 공산권 무기인 모신나강만 해도 3종류나 사용된 걸로 봐서 상당히 신경 쓴 걸 알 수 있다.참고 바람 모신나강 외에도 공산군의 장비들도 이전의 한국전쟁을 다룬 반공 영화에서는 약모(전투모)와 따발총(PPSh-41)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철갑모를 쓴 북한군도 꽤 등장하는 등 제법 재현에 신경을 쓴 편이다.

여기에 쓰인 총기류 소품은 경로가 매우 다양한데 실물 프롭건, 국내에서 새로 제작된 더미건[81], 원래 쓰던 더미건, 일본제 모델건[82] 등이 다양하게 쓰여 당시 총덕들 사이에서 평가가 높았다. 그 외에도 옛날 교련 때 쓰였던 교련용 고무총도 등장하였는데, 서구권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사격을 안 하는 조연 등에게는 안전이나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고무총을 쥐어주며, 이것만 전문적으로 대여해 주는 업체도 있다.

작중 진태가 인민군 포로들끼리 붙여 놓은 싸움에 진석이 스스로 뛰어들어 난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진석이 "어차피 게임이잖아"라는 말을 한다. '저 시대에 게임이란 단어가 있어?'라는 생각이 날 수 있겠지만 사실 1940년대에도 스포츠 경기를 '게임'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 옛날 신문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1949년 경기여자중학교 학생들도 정구(테니스) 대회를 두고 게임이라는 말을 쓴다. 서울대 진학을 노릴 만큼 성적 좋은 우등생이었던 진석이 이 정도의 영단어를 모를 리는 없다. 사실 일상적으로 영단어를 쓰는 것은 20세기 후반부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레디메이드 인생 같은 1930년대 작품이나 당시 신문만 봐도 20세기 초중반부터 간단한 영단어가 꽤 흔하게 쓰였다. 구한말, 대한제국 시절 개화기 무렵부터 이미 서양 문물과 외국인들이 들어오며 영단어도 함께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두절미하고 영화 초반 아이스께끼에서 아이스가 어느나라 단어인지 생각해보면 편하다

인민군 육군 소좌가 됐다던 이진태가 군관용 전투복인 키텔 튜닉을 입지 않고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키텔 튜닉은 목부분의 카라가 가쿠란과 똑같은 형태인 차이나 카라인데, 영화에서 묘사된 진태의 전투복은 마치 일반적인 셔츠 형태의 카라처럼 되어 있다. 6.25 당시의 군관 전투복으로는 키텔 튜닉만이 사용되었고, 그 외의 전투복은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 북한이 사용하는 똥색 인민복식 전투복도 6.25 이후에나 제식화 된 것. 깃발부대 등장 씬 이전의 장면으로, 평양 전투 당시 진태가 생포한 인민군 총좌가 입고 있던 차이나 카라 형태의 전투복과, 진석이 형을 만나기 위해 인민군 진지로 도주해 투항했을 때, 진석을 의심하던 북한군 소대장이 입고 있던 전투복이 바로 키텔 튜닉이다. 이들은 진태가 입은 군복과는 다르게 현실을 반영한 형식의 옷들이다. 그냥 진태가 입은 군관 전투복만 이질적인 셈. 허나, 진태가 국군에서 전향해 인민군 깃발부대장으로 현지임관한 '해방군관'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진태가 기존에 입고있던 미군복에 북한군 견장만 달아놓았다고 칠 경우 개연성 측면에서 봤을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작중 몇몇 인민군 육군의 머리카락이 긴 경우가 있는데,(대표적으로 인민군 육군 대위라든가, 포로라든가) 원칙적으로 당시 인민군 육군의 두발 규정이 빡빡 민 스타일인 건 맞다. 하지만, 전투가 지속되면 가뜩이나 다른 신경쓸 일도 많은데 그깟 머리 길이 따위 신경쓰는 지휘관도 별로 없고, 삭발은 하전사에게만 적용되고 군관은 규정상 단정하게 기를 수 있었다. 포로의 경우는 잡히자마자 빡빡머리가 덥수룩해졌다는 건데... 설득력이 많이 약하다. 게다가 워낙 급박한 전면전 상황이다 보니 아무나 막 잡아다 징병을 해대는데 머리 깎을 겨를조차 없어서 그냥 징병하는 대로 전투에 집어넣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1950년 6월까지 전면전도 아니고 비상경계령 상황만 지속되었을 때에도 장병들이 목욕도 이발도 못할 지경이었다.[83]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인민군 육군이 빡빡이 스타일인 건 맞지만 머리가 길다고 무조건 오류는 아니다. 다음 사진을 보자.
파일:external/ichef.bbci.co.uk/_85104199_nkorea_prisoners_g.jpg
사진
김포에서 미 해병대에 잡힌 인민군 육군소좌 김친수(조수석)
이 인민군 하전사의 머리도 꽤 길다.

극중 진석과 진태가 줄곧 배치된 부대는 육군 1사단이었다. 그런데 영화 초반 유해발굴단이 만년필에 적힌 이름을 가지고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는 과정에서 진석의 소속부대가 1사단 8연대로 표기돼 있었다. 그리고 이후 전화에서는 '12연대 소속 이진석 하사님 맞으십니까' 라고 묻는데, 아마 대전으로 후송된 뒤 형을 찾기 위해 작중 마지막 전투인 두밀령 고지(피의 능선 전투) 담당(혹은 인접) 연대에 자진 배치된 걸 이전 기록과 뒤섞어 기록한 결과라는 설정일 듯 싶다.[84] 문제는 아무리 임시 배속이라 하더라도 8연대는 한번도 1사단 밑에서 싸운 적이 없으니[85] 이를 미심쩍게 여겨 다른 자료들과 교차검증해 본 소속을 알아내 그걸로 부른 걸 수도 있다.[86] 혹은 제작진의 단순한 실수이거나, 아니면 군사보안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제작진이 일부러 유도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어느 연대가 몇 사단 소속인지 정도의 정보는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도의 정보이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육군의 연대급 이하 부대의 편제에 관련된 정보는 보안사항에 속한다.

또한 초반 데이터베이스 기록을 보면 진석이 참전한 전투는 다부동 전투, 평양 탈환작전, 운산 전투, 장진호 전투, 초산 전투, 두밀령 전투(피의 능선 전투)다. 사실 이 중 6사단이 치른 초산과 5사단 36연대가 치른 두밀령(983)고지 전투를 제외하곤 모두 1사단이 크든 작든 참여했다. 덧붙여 데이터베이스 기록에는 진석의 전역일이 1951년 8월 30일로 되어 있는데, 두밀령 전투가 포함된 "피의 능선 전투"가 1951년 8월 18일에서 9월 5일까지 벌어졌음을 감안하면 제작진이 이 전투를 염두에 두었다가 바꾸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극장 개봉 당시 팸플릿, 그리고 아트북에서 두밀령 전투의 공식 명칭을 파주 석현리 전투로 표기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좋게 보자면 파주 석현리에 두밀령이란 가상의 고지를 만들어 벌인 가상의 전투이고, 나쁘게 보면 설정오류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줄거리 또한 前 외교관 윤영엽의 실제 이야기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은, 영화 속에서는 이진석의 형인 이진태가 죽었지만 실제로는 윤영엽의 동생이 폭사를 당했다는 부분이다. 상술되었듯이 모티브는 따로 있기에 그냥 유사 사례다.해당링크 참조.[87]

피난민들이 기차역에 몰려드는 장면의 증기 기관차는 촬영 당시 직접 제작한 물건이다. 정확히는 진짜 증기기관차는 아니고 불도저 엔진을 넣어서 연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차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옛 곡성역에서 촬영했으며, 곡성 기차마을에 관광객용 열차로 남아 있다. 그런데 촬영 이후 폐기된 세트를 안 치우고 방치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중에 부랴부랴 제작사에서 회수하여 폐기 처분했다.

작 중 딱 두 번 나오는 공습 장면[88] 중 두밀령 전투 때 나온 미 해군 F4U 콜세어 전투기는 CG인데, 재현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제작진에서 반지의 제왕 CGI 팀인 웨타 디지털을 섭외하다 원하는 결과물이 안 나오자 미국까지 찾아가며 만들어냈다고 한다. 다만 추락 이후 파편씬에서 CG 티가 많이 난다고 까이긴 했다. 왜 하필 공군이 아닌 해군의 콜세어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미군 등 UN군 항공모함의 해군 항공대도 작중 묘사처럼 지상지원 임무를 많이 수행했다. 당시 공산군의 해상 전력은 소수의 어뢰정 정도를 제외하면 존재 의미가 사실상 없다시피했기 때문이다. 해병대 항공대와 같은 일부 부대는 아예 공군처럼 지상기지에 배치해서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창작의 여지를 생각하면 이상한 부분은 아니다.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는 CG 작업에도 용이해서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

극중 인민군 대좌(최민식)가 탑승한 차량은 구 소련의 GAZ-67이다. 이 차량이 등장하는 영화가 거의 없기도 하고 비중이 있는것도 아닌데 이것까지 재현했다.

평양 시가전과 후반부 고지전에 나오는 M4 셔먼은 아래 서술된 이유로 국방부 지원이 불발되어 제작진이 불도저를 개조해서 만들었다. 불도저 엔진을 자작한 M4 셔먼 차대에 얹었다고 한다.


8.1. 국방부 지원 불발 비화[편집]


대규모 전쟁영화임에도 국방부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 메이킹 북에 그 이유가 서술되어 있다. 감독은 '전쟁영화이기에 국방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7개월 간의 접촉 끝에 결국 무산됐다고 한다. 대한민국 육군 측에서 수십 군데에 달하는 시나리오 수정 요구가 있었고, 제작진은 본질을 훼손하면서 영화를 제작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특히 강제규와 국방부가 가장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부분이 이 영화 극초반에 나온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진석을 군인들이 나이를 물어보고, 진석이 "18살입니다"라고 답하자 "앞으로 나오라"고 얘기한다. 이에 진태가 진석을 데리러 갔지만 둘 다 징병 대상이라며 육군 대위와 헌병들이 열차에서 못 내리게 막는다. 진태와 진석은 저항했지만 결국 잡혀서 같이 강제로 입대하는 묘사다. 국방부는 제작지원을 받으려면 진태와 진석이 자원입대 하는 것으로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강제규는 자신의 설정을 고집했다.[89] 다만, 현실 재현으로는 문제가 없어도 해당 부분을 수정하면 영화 설정에 문제가 생기는 건 사실이었다. 영화 시놉시스부터가 형제가 강제징병되어서, 형이 동생만이라도 어떻게든 다시 멀쩡히 제대시키기 위해 열심히 싸운다는 건데, 이걸 자원입대하는 걸로 바꿨다면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모조리 뜯어고쳐야 했을 것이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첫 번째 이유는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 2번째 이유는 형제가 자원 입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 징집당한다는 것이다. 본문 내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를 틀어버리면 흥행까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극 자체에 대한 평가가 역대급의 감동 대신 개쩌는 반공 영화 같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또한 영화가 촬영 중일 때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던 이준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국군 영웅이 상관을 죽이고 인민군 장교가 되는 것도 문제삼았다고 한다. 실제로 국방부에서도 이 두세 가지 요소는 빼는 것을 협조의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강제규 감독이 거부하고 국방부 협조 없이 찍었다. 이처럼 국방부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요소가 몇 군데 있어서 '국방부에서 노골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제작과 흥행을 방해하고 휴가 장병들에게 이 영화를 보지 말 것을 강요했다'는 루머까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로, 이 작품이 아닌 5.18 영화 <화려한 휴가> 때 한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한 2004년, 당시 국방부 장관인 조영길은 장병을 대상으로 무료 시사회를 2차례나 열며 오히려 관람을 권장했다.

국방부가 이 영화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에도 사정이 더 있었다고 한다. 2001년 당시 여순 사건을 그린 영화 <애기섬>에 각종 지원을 했었으나 흥행은 흥행대로 안 되고 국방부 이미지만 나빠지는 결과가 나와 <태극기 휘날리며>에 불똥이 튄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예상외로 엄청난 흥행을 하자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했을 것"이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링크.


8.2. 오류[편집]


이렇게 전반적으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는 우수한 평가를 받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오류 사례가 없지는 않다. 영화적인 연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희생한 부분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실수에 가까운 부분도 있다.

  • 인민군 소좌가 된 진태가 군복에 달고 있는 견장은 소좌 견장이 아닌 대위(현 상위) 견장이었고, 사병이었던 이진석이 육군 보병 장교용 병과 휘장을 달고 있다.

  • 진태가 최민식이 연기한 인민군 육군 총좌대좌라 부르고, 이후 이 생포 작전을 보고받은 대대장도 계속 대좌라 부르는 것도 오류이다. 현재 인민군 군관 계급은 '소-중-상-대'지만 1953년 이전의 한국전쟁 당시에는 '소-중-대-총'이었고, 따라서 영화 속 최민식처럼 좌관급인데 계급장에 별이 4개 붙어있으면 현재 인민군 기준으론 대좌지만 1953년 이전 기준으론 '총좌'이다. 단, 이건 진태에게 먼저 알려 준 한국군 장교가 계급장을 잘못 보고 알려주고 진태도 인민군 계급장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이게 상급 부대에서도 행정상 문제로 정정이 제대로 안 되는 등 여러 이유로 계속 "대좌 잡은 건"으로 불리고 있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 해석하기에 따라선 오류일 수도, 그냥 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상 묘사일 수도 있다. 물론 후자였다 해도 제작진이 한국전 당시의 인민군 계급 체계를 모르고 각본에 저리 쓴 거라면 그건 오류는 아닐지라도 제작진의 사전조사 부족으론 까여야 한다. 비슷하게 진태가 태극무공훈장을 받을 때도 '이등중사 이진태'가 아니라 그냥 '중사 이진태'라고 호명되었다. 다만 관객들에게 생소한 계급명이라 바꿨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 낙동강 전선이 막 생성될 당시 입대한 진태가 진석을 제대 시키기 위해 훈장을 받으려고 몰두 한다. 그러나 무공훈장 제도는 낙동강에서 전선이 올라가고도 한참 지나 1950년 10월 18일에 생겼다. (무공훈장령 1950. 10. 18. 제정 및 시행 / 대통령령 제385호)

  • 작중 진태가 무공훈장을 수여받는 장면에서 대통령을 대신하여 진태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상관이 연도를 “일천구백오십(1950)년”이라고 읽는다. 당시에도 서력을 쓰기는 했는데 당시의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이었으므로(오히려 북한이 서력기원을 사용했다.) 훈장증과 같은 공문서에 서력기원을 쓸 수는 없다. “단기 4283년”이어야 옳다. 예컨대 서울 현충원에 가보면 6.25 때 전사자들의 묘비에는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이걸 서력에 익숙한 현시대 관객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바꿨다고 볼 수도 있으나, 훈장수여식의 연도 언급이 현행과 다르다고 해서 극 진행에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으므로 오류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 또한 대대장(조원희님)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한다라고 말을 하는데, 현재와 같은 무공훈장 호칭(태극,을지,충무,화랑)은 1951년 9월 9일 대통령령 제522호에 의하여 시행하였으므로 작중 1950년 12월 1일은 '1등 무공훈장'으로 표현해야 옳다.

  • 대한민국 무공훈장은 1950년 10월 18일 <무공훈장령>이 제정되고 같은 해 12월 31일, 무공을 세운 국군 장병들에게 대한 첫 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작중 이진태(장동건분)가 1950년 12월 1일에 받았으니 실제 현실보다 한달은 일찍 수여받은 셈이다. 그리고 국군 최초의 태극무공훈장 수훈자는 故 박노규 육군준장으로 수훈날짜는 1951년 4월 28일이다. 작중 이진태는 무려 중사 계급으로 태극무공훈장 최초 수훈자가 되는 셈이다.

  • 영화 중반 서울 수복 후, 병사들이 스테인리스 식판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야전병원에서 진석이 스테인리스 식판으로 식사를 하는데, 그 당시 스테인리스 식기는 있었으나 식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식판이 국군에서 쓰이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 중반 이후였다. 그 때 까지는 부대마다 틀리긴 했지만 양은 추라이(쟁반을 뜻하는 영단어 Tray 트레이 발음의 우리식 변형)에 알루미늄 양재기 2개가 전부였다. 양재기 1개에는 밥, 나머지 1개에는 국을 퍼주었고, 김치 등 간단한 반찬을 밥 위에다 부어 주었다. 식기로는 젓가락이 없었으며 수저는 각개 병사가 항상 소지해야 했던 미군용 스푼[90]이었다.

  • 이진태가 동생 진석에게 허쉬 초콜릿 자이언트바를 보여주는 간접광고 장면이 있다. 한국에도 6.25 전쟁 때나 직후에 미군들이 가져왔기 때문에 허쉬 초콜릿이 등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단, 양덕들은 여기서 1950년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바코드와 성분 표시가 붙어있는 오류를 발견했다. 사실 저 시대의 군납 허쉬 캔디 바라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현대의 자이언트바처럼 납작한 게 아니라, 흡사 양갱 두 개를 붙여놓은 것처럼(이라기보다는 현대의 고형 카레처럼 생긴) 뚱뚱한 직사각형의 덩어리였다.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맛을 조정하라고 주문한 미군 당국 때문에 자이언트바에 비하면 끔찍하게 맛없는 것은 덤. 이는 비상식량이 너무 맛있으면 평시에 다 까먹어버리고 정작 비상시에 먹을 게 없어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아래의 오리온제과의 예처럼 영화 완성도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어느정도 어른의 사정이 끼어든 결과라 봐야 할 듯. 그러나 제 아무리 맛 없어봐야 모든 것이 크고 풍족하던 미국에서 맛있는 걸 먹던 미군 병사들 한정이고, 일본 제국에서 막 독립한 가난한 신생 국가의 극빈층 성장기 아이들(어쩌면 어른도) 입맛엔 실로 천상의 맛이었다. 그러니 이진태도 동생에게 챙겨 준 거고. 실제론 안남미 정도는 되어야 그래도 먹을 순 있네하며 먹었다.

  • 평양 시가전 초반 부분에 건물 외벽에 오리온제과 라고 쓰여진 간판이 잠깐 나오는데, 오리온제과는 휴전 이후인 1956년에 설립되었고 그나마도 상표가 오리온이지 회사 이름은 '동양제과'였다.(오리온으로 사명을 바꾼 것은 IMF이후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메인 투자사인 쇼박스오리온그룹의 미디어계열사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1]

  • 이진태가 북한군에 합류하고 깃발부대가 맹위를 떨칠 때 북한 측이 살포한 유인물에 사용된 폰트가 1990년대 이후 컴퓨터용으로 개발된 폰트이다. 영화상의 유인물과 현재 남아있는 당시의 삐라 자료를 비교해보면 차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잠시 스치듯 나오는 장면이므로 큰 공을 들이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앞서 최민식이 연기한 북한 장교가 탑승한 차량까지 재현할 정도로 현실 반영에 신경을 쓴 영화이기에 의아한 부분.

  • 개전 초기 일선 국군의 개인화기는 일본군이 버리고 간 아리사카 99식 소총이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자원병을 모집하는 후방부대의 헌병들이 전방에도 다 지급되지 않았던 M1 개런드를 들고 다닌다.

  • 국군 병사들은 전원이 낙동강 전선 에서부터 가죽 전투화를 착용한다. 그렇지만, 수많은 참전용사들의 회고록에서 당시에 헝겊 전투화(BB화)를 신었다고 증언하고 있다.[92]

  • 포격을 당하는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당시 북한군이나 중공군은 야포가 거의 없어서 박격포 정도만 운용할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에서도 중공군이 실제로 투입할 수 있던 것도 박격포가 전부였다. 박격포는 보병전에 쓰이는 무기이며, 육안으로 적을 관측해 사격하기 때문에 후방에서 적을 타격할 때는 쓰지 않는다.

  • F4U 콜세어가 공중지원을 하러 왔는데 네이팜 하나 떨구지 않고 기총소사만 하다가 보병의 대공사격에 맞아 추락한다. 문제는 엔진에 피격되었는데 빙글빙글 롤을 하며 추락한다는 것이다. 형엔진은 본래 한 곳이 피탄되어도 출력은 어느 정도 유지되며,출력을 완전히 잃었더라도, 모든 항공기는 무동력 활공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피탄 시 바로 롤을 하면서 추락하려면 조종면 한쪽이 파괴되어야 하는데 화면상으로는 기체에 파괴된 부위가 없다.

  • 소속 불명의 M48A3E2가 나오는데, 만약 해당 전차가 한국군 배속이면 고증 오류다. 전쟁기에 쓰인 육군 전차는 이게 아니라 M36 잭슨이라는 대전차 자주포였고, 육군은 M4 전차를 휴전 이후에 받았다.

  • 실제 보도연맹 사건은 1950년 6월 부터 9월까지인데 영화에서는 1951년 1.4 후퇴 이후로 나온다

9. OST[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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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 태극기 휘날리며 에필로그

발매일
곡명
아티스트
링크
2004년 2월 23일
태극기 휘날리며 프롤로그
이동준
유튜브
지난 기억
유튜브
-
오빠는 풍각쟁이
Various Artists

2004년 2월 23일
이태리 구두
이동준
유튜브
행복한 나날
유튜브
전쟁
유튜브
이별
유튜브
전투
유튜브
영신 1
유튜브
영신 2
유튜브
영신의 죽음
유튜브
비극
유튜브
편지
유튜브
출정 그리고 귀환
유튜브
깃발부대
유튜브
최후의 순간
유튜브
나의 형
유튜브
태극기 휘날리며 에필로그
유튜브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유튜브
형! 우리 가야해
유튜브
50년 동안 기다렸는데...
유튜브
태극기 휘날리며 (Piano Solo Version)
유튜브
행복한 나날 (실내악 Version)
유튜브
태극기 휘날리며 (실내악 Version)
유튜브
태극기 휘날리며 (trailer Version)
유튜브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리는 테마곡도 유명하다. 은행나무 침대, 유령, 퇴마록, 지구를 지켜라!, 쉬리, 2009 로스트 메모리즈, 7번방의 선물, 포화속으로 같은 영화 음악으로 알려진 이동준이 음악을 맡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유명세 덕인지 이곡을 접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참전용사분들 생각나 눈물난다", "순국선열분들 감사합니다" 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뭉클하면서도 아련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던 옛추억을 떠올리는 듯한 잔잔한 선율이 6.25 전쟁 참전용사분들의 심정을 담은 곡 같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 20년이나 지났지만, 뭔가 국민적 비극이 일어나는 상황, 특히 군인과 관련된 사고라면 이 BGM이 자주 사용된다..

관광열차 DMZ-train 차내에서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으로 진입할 때 내레이션과 함께 BGM으로도 사용된다.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6화에서 문석구가 사장실로 찾아온 소비자들을 설득시키는 장면에서 이 OST가 흘러나오며, 감동스러운 연설을 하는 문석구는 덤.

스포츠계에서도 쓴 적이 있다. 프로야구 kt wiz의 응원가 "수원 kt 승리를 위해"가 이 영화의 프롤로그를 원곡으로 썼으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서 대표팀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듀엣 자유 루틴(유나미, 김성은)과 2005년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의 듀엣 자유 루틴(유나미, 김민정)에서 이 곡(프롤로그)을 쓴 적이 있다. 해외에서는 브래디 테넬이 2017-18 시즌 쇼트 프로그램 곡으로 이 OST를 사용하여 주목을 받았다. 증조 할아버지가 한국 전쟁 참전 용사였던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2006년에 순직한 블랙이글스 소속 김도현 중령의 순국 15주기를 맞아 추모식이 거행되었는데, 현장에서 BGM으로 사용 되었다.#

장례식장 광고에서도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93]

2022년 중국에서 중일전쟁 시기를 무대로 제작한 역사 드라마 '폭풍에 맞서다(凭栏一片风云起)'는 에필로그를 비롯한 태극기 휘날리며의 테마를 표절한 곡을 오프닝 테마#로 사용하였는데,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위 곡과는 별개로, 가수 보아 역시 OST에 참여했는데, 일본 상영판의 엔딩 테마곡[94]으로만 쓰였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95] 곡명은 We 이며, 국내 정규 앨범 4집인 My Name에 수록되어 있다. 극중 주인공 형제의 애절한 우애와, 전쟁으로 인해 생이별 해야만 했던 수많은 이산가족 분들의 마음을 담은듯 한 그리움에 애끓는 가사를 듣다보면 울컥해지는 곡이다. 작곡/편곡을 본 영화 OST를 담당한 이동준 작곡가가 맡아서 영화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숨겨진 명곡.

10.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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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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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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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만큼 뛰어나고 <쉬리>처럼 아쉽다

이동진 (★★★☆)

흥행과 비평 모두 대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한국 영화 중의 하나이고, 한국 전쟁 영화의 롤모델로 인식될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작품 이후로 개봉하는 한국 전쟁 영화들은 모두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교될 정도. 또한 강제규는 쉬리와 이 작품을 계기로 '블록버스터의 규모와 스토리 모두를 다룰 줄 아는 명감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IMDb 평가에서 8.1 로튼토마토에서 평가지수 80을 받는 등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해외 팬들과 평론가들의 평가는 국내 평들처럼 매우 좋은 편이다. 잊힌 전쟁이라 할 정도로 한국 전쟁에 대해 잘 모르던 외국인들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견하며 호평을 보냈고 영화의 배경이 된 한국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매우 바람직한 경우도 있었다.[96] 특히 '한국전쟁 배경인데도 미군이 거의 안 나오는 영화'라는 점이 그 쪽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듯.[97]


11. 흥행[편집]


2004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2003년
실미도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왕의 남자#흥행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돌파 영화
2003년
실미도
(11,081,000명)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11,746,135명)


2005년
왕의 남자#흥행
(12,302,831명)




2004년 2월 5일에 개봉하여 1,174만 6,135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는 역대 2번째 천만 관객 돌파 기록이며, 2019년 11월 기준 역대 흥행 순위 17위(한국 영화로는 역대 14위)에 올라있다. 더불어 명량 개봉 전까지 10년 간 한국 극장 개봉 전쟁 영화 최고 흥행작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98] 일본에서도 15억 엔을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다.

2023년 기준으로도, 대한민국에서 2월에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높은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12. 판권 문제 관련[편집]




2020년까지는 판권 문제로 국내의 인터넷 서비스 상에서는 한때 관람이 불가능했다. 네이버를 비롯한 국내 VOD 사이트는 물론, 넷플릭스유튜브 같은 해외 서비스에서도 서비스가 중지되어 있다. 이에 대해 유튜브 관계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미국 판권사와는 계약이 체결돼 미국 지역에서 서비스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유통 가능한 판권을 보유한 업체가 확인되지 않아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 판권 문제가 악화되었는지 추가로 2020년 기준으로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루트는 증발한 상태였다. 즉 오프라인에서 비디오나 DVD를 중고로 사거나 빌려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으며, PC나 모바일상으로는 볼 수 있는 루트가 어둠의 경로 뿐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감독 강제규가 속해 있던 강제규필름이 청산되며 제3자에게 판권이 넘어갔는데, 이때 그 제3자가 플랫폼들인 유튜브, 넷플릭스 등과 계약을 추가로 맺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때문에 강제규의 다른 영화인 쉬리 등도 전부 내려간 상태라고. 배급을 맡았던 쇼박스 역시 자신들은 2차 판권이 없어서 관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제3자가 이 영화의 판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유튜브에 전체가 올라와 있음에도 삭제가 되지 않고 있다. 강제규의 다른 영화들 뿐만 아니라 몽정기 등의 영화도 함께 끊긴 상황이다.

이후 2021년 2월 태극기 휘날리며가 리마스터링 작업 후 3월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영화의 판권은 바로 강제규의 누나의 회사인 '주식회사 빅픽쳐'에서 소유하고 있었고 이 리마스터링을 진행하는 콘텐츠존과 저작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재개봉이 확정되었고, 3월 17일부터 CGV 시그니처K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99] 그리고 블루레이 재출시가 발표되었다.

2021년 4월 wavve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리마스터링을 감상할 수 있다.
2023년 11월 현재 쿠팡플레이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13. 기타[편집]


  •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급 전쟁 영화이며 강제규 감독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노렸다고 했다. 실제로 영화의 스토리가 주인공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회상으로 끝이 나는 등,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 스태프들 중 일부는 중국에서 2008년 개봉된 전쟁 영화 "집결호"의 제작에 참가해서 노하우를 전해주었다. 평론가들 중에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컴플렉스를 가진 영화"라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작 스태프들의 인터뷰를 보면 미술과 촬영, 특수효과 등에서 오히려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 감독 장 자크 아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강제규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집착은 나중에 나온 마이 웨이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개선되지 않은 연출력 때문에 결과는 시망....

  • 개봉 전에는 한국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참전 용사들을 위한 특별시사회를 가졌는데, 시사회에 참석한 참전 용사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전쟁 당시를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 일본에서도 2004년 6월 26일에 원어판과 더빙판으로 개봉했었다. 일본에서는 Brotherhood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은 나쁘지 않다. 일본 더빙 성우는 이진태 역은 모리카와 토시유키, 이진석 역은 테츠노 마사토요(청년)/이나가키 타카시(노년),[100] 임수철 하사 역은 미야우치 아츠시, 영자[101] 역은 미야모토 유메.

  • 조성모가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조선인민군 육군 하전사로 0.5초 정도 나오고 사라진다. 2003년 10월 29일, 평소 친분이 있던 강제규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경남 합천의 촬영현장을 찾았는데, 이전에 아시나요 뮤직비디오에서 군인 역을 맡은 적이 있어 이 영화 촬영에 관심을 가지고 강제규에게 엑스트라로 출연하고 싶다고 부탁했다. 이때 강제규는 곧바로 최민식이 역을 맡은 인민군 대좌와 관련된 인민군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서 역을 줬다고 한다. 이후 조성모는 크랭크업 파티에도 참석해 챔피언을 불렀다고 한다. 기사 단, 엔딩 크레딧에는 안 나왔다.

  • 김재중도 데뷔 전 엑스트라로 나왔다. 초반부 유해발굴현장단원[102]으로 등장했다. 또한 후반부 중공군 역으로 나왔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본인은 중공군 부분에서 자신이 카메라에 나온 장면을 찾지 못했으며, 데뷔 당시 수많은 팬들이 무한 팬심으로 찾아봤지만 못 찾았다고 한다. 2004년 인터뷰2008년 10월 해피투게더(기사)에서 중공군 역으로 나왔다고 얘기했지만, 정작 엔딩 크레딧에는 없다. 후술할 역에서 등장한 엑스트라를 맡은 사람의 말처럼 얼굴이 자세하게 나오는 장면이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0년 기사에서 엔딩 크레딧에는 안 나와 틀렸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2004년 인터뷰의 내용이 상세한 데다가 4년이 지난 2008년 시점에서도 내용이 일치한 걸로 보아 조성모의 엑스트라 출연처럼 크레딧에만 안 나왔지 기억은 사실인 걸로 보인다. 유해발굴현장단원으로 나온 것만 크레딧에 있다. 이 유해조사단원 역도 눈에 잘 띄지 않아 2009년 경 한 영화 프로그램에서 해당 장면이 나오는 부분이 뒤늦게 밝혀졌다. 나중에 김재중도 팬미팅에서 이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본인이 아니고 닮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현재까지도 영화에서 김재중을 발견한 사람이 없다.

  • 이병헌도 출연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한 인터뷰에서 출연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밝혔다. 인터넷에 올라온 해당 스틸컷에 대해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이병헌은 본인이 출연한 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못박았고, 되려 "혹 정두홍씨가 아니냐"라고 우스갯소리로 답했다. 기사. 만약 출연했다면 김수로최민식처럼 대사가 있는 역할을 줬지 엑스트라로 쓸 리가 없다.

  • 김수로최민식은 우정출연으로 등장했다. 김수로는 청년단장으로 1분 정도 등장하는데 진태의 약혼자 영신이 반공청년단 때문에 죽게 되는 줄거리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에 나오는 김수로를 보면 출연시간이 지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치는 악역 연기로 미친 존재감을 내뿜는다. 최민식은 평양 전투 당시 북한 육군 총좌로 잠시 얼굴을 비추었는데,[103] 잠깐 비춘 것치곤 상당한 임팩트를 주었다. 해당 장면만 보면 마치 최민식이 영화 전체의 최종보스 역으로 보일 정도다.


  • 영화의 제목은 1955년 작곡된 김동진 작곡의 곡 <조국찬가>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장동건은 영화 흥행 이후 자기 휴대폰의 컬러링을 이 곡으로 바꾸기도 했다. 기사


  •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이에 해당되는 패러디가 존재하는데, 엘나스 필드의 히든스트리트 맵 중 왕관을휘날리며라는 맵이 존재한다. 특히 올드비라면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맵 이름답게 몬스터 페페들이 빠르게 달리는게 마치 왕관을 휘날리면서 달린다해서 혹자는 이런 의미를 담지 않았나하는 추측. 관계는 없지만 2004년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개봉 이후 메이플스토리에선 오르비스/엘나스를 첫 선보이게 되었다.

  • 온게임넷(現 OGN)에서는 마우스 휘날리며라는 제목의 스타크래프트 1 명경기를 재방송해주는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었다.



  • 이근이라는 만화가[104]가 전 2권짜리 만화를 출판한 적이 있다.[105] 전체적인 구성은 영화와 동일하지만 인민군 포로들끼리 격투 시합을 시키는 부분이나 진석이 형을 구하기 위해 CP텐트에 있던 행정병들을 때려눕히고 인민군 진영으로 도주하는 모습은 묘사하지 않는 등 일부 장면이 생략됐다. 또한 영화에서는 국군이나 인민군이나 다양한 총기를 쓰는것과 달리 만화에서는 국군은 무조건 M1 개런드, 인민군은 PPSH 기관단총만 쓰는것으로 표현된다. 중화기들 모습 또한 실제 모습과 괴리감이 있는 편이며, 전사한 영만의 묘지의 비석에 '상병 고영만'이라 적는 등[106] 오류도 몇몇 있다. 다만 작화는 훌륭한 편이다.


  • 이 영화는 김수로가 맡은 배역 중 가장 악역이며, 김수로는 비록 카메오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야말로 악역의 진수를 보여줬다.[107]

  • 대한민국에서 미남 배우의 대명사격인 두 사람을 주연으로 내세웠다보니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화라는 드립이 나올 정도의 전무후무한 캐스팅이지만[108] 둘다 영화 내내 전쟁터에서 흙탕물 피범벅이 되며 끝장나게 구르는지라 딱히 외모가 돋보이는 장면은 없다. 물론 흙탕물 속에서도 잘생기긴 했지만(...)[109] 그리고 이 두 배우는 훗날 같은 배우인 고소영, 이나영과 세기의 결혼을 했다. 그래도 이런 엄청난 캐스팅 덕에 극중 나이든 이진석의 손녀로 나온 조윤희가 지나치게 예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는 소감[110]에, 할아버지가 원빈, 큰할아버지가 장동건이니 손녀가 예쁜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이 문서의 이 부분이 유머화되었다.


  • 선술했듯이 2003년 합천에서 평양 시가전을 찍을때 세트장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있어서 2004년 4월 합천영상테마파크를 열었다. 링크

  • 부천시에서는 야인시대 세트장 옆으로 하류인생 세트장과 함께 이 영화의 세트장이 설치되면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규모를 확대[111]하기도 했었다. 단, 시설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로 2011년 8월 4일에 폐쇄했다.


  • 중국 가요 小苹果(샤오핑궈, 소평과)의 뮤직비디오의 3분 55초부터 나오는 한국전쟁 부분에서 패러디되었다. 이 부분은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는데, 그럴만한 게 뮤직비디오 감독은 조성모의 '아시나요', 김범수의 '보고 싶다'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김세훈 감독이다. 깨알같이 군복의 이름에 '장동건'이라고 써 있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당시의 우방이었던 인민군이 아니라 국군으로 나온다.


  • 실베스터 스탤론이 인터뷰에서 밝힌 좋아하는 영화 목록에 이 영화가 포함되었다.

  • 키무라 타츠나리가 런치타임 끝났습니다 런치토크 중 이 영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배우로써 해보고 싶은 역할을 묻자 '전쟁물 같이 시대를 전달할 수 있는 역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는데, 이후 전쟁물 중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일본 개봉명 brother hood)요. 가족애, 전쟁이라는 건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2차세계대전 때의 오키나와 전쟁도 마찬가지로, 보고 있으면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고요. 중간에 끊어진(跡絶える) 부분들도 전달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비극적인 의미에서요. 그런 것들을 한 작품으로써 저도 함께 참여하면서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라고 답했다. 28초

  • 크로아티아의 축구선수 데얀 로브렌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고 하여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기사, 기사2[112] 동생 다보르 로브렌도 한때 인스타 소개에 태극기 휘날리며의 영제 taeguki를 써놨을만큼 이 영화를 감명깊게 본 것 같다. 데얀 로브렌의 모국 크로아티아도 내전의 아픔을 겪은 나라인 데다가, 그는 보스니아에서 태어나서 내전을 한 번 더 겪었던 만큼 이 영화가 다른 서양인들에 비해 더 인상 깊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이 인터뷰 이후로 한국 팬들에게 엄청난 양의 과자를 받은 걸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

  • 외국인들 중에서는 영화에서 국군 장병들이 미군 장비로 무장한 모습을 보고는 '미군을 연기하고 싶었는데 미국인 배우를 고용할 돈이 없어서 자기네 나라 사람을 대신 썼나 보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영화를 만든 측에서는 현실에 맞게 당시 미군의 물자 지원 상황을 영화에 반영한 것일 뿐인데 해외에선 이런 사실을 몰랐기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 특히 유튜브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영화의 배경도 모른 채 일부 명장면만 보고 적은 외국 댓글들에서 잘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아는 몇몇 네티즌들은 댓글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 2013학년도 3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영역 43~45번 시나리오 제재의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14. 둘러보기[편집]


대한민국 천만 관객 돌파 영화
실미도
(2003)

태극기 휘날리며
(2004)

왕의 남자
(2005)

[재개봉] A B [1] 다부동 전투 당시 369고지를 사수하던 중 전사했는데 유품으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삼각자가 출토되었는데 이 순간을 다룬 다큐를 보고 강제규 감독이 영감을 떠올렸다고 한다.[2]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고, 그 외에도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나라가 많다.[3]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한국 영등위는 이상하게 전쟁 영화들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퓨리같이 미국에서 R등급 받은 전쟁 영화들도 한국에선 15세 등급을 받았다. 아무래도 과거에 반공영화로 더한 잔혹한 장면을 초등학교에서 유료 상영하고 감상기를 내라고 하던 시절 여파가 커서인 듯. 실제로 1970~90년대에도 전쟁 영화 등급은 호러나 다른 장르보다 훨씬 관대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전에 리얼 전쟁 영화라고 하던 햄버거 힐도 1990년 한국 개봉 당시 등급은 중학생 이상 관람가로서 12세 정도 등급이었다. 이 영화도 매우 사실적 전쟁 묘사로 전투 도중, 얼굴이 터져나가거나 폭발을 당해 창자가 터져나와 고통속에 죽어가는 미군 병사가 엄마...라고 울며 죽는 장면이라든지 사지가 잘려져 있는 장면같은 묘사가 여럿 나옴에도 불구하고 이 등급을 받아 미성년자가 충격을 먹는 일이 잦았다. 물론 R등급=청소년 관람불가라고 할 수는 없긴 하지만, 아마 일반적인 액션 영화와 달리 전쟁 영화의 경우는 오락성이나 흥미보다는 전쟁 자체의 리얼리즘이나 참혹성같은 반면교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심의가 내려가는 것으로 보인다.[4] 장기가 튀어나오려 해서 그 장기를 손으로 잡고 집어넣는다.[5] 다만 이는 군대 지휘관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다. 배경이 된 시기는 전시이니만큼 더욱 그렇다.[6] 여담으로 드라마 전우의 경우 옛날 것들은 명백한 반공물이지만 2010년에 나온 신버전의 경우 사연이 많은 드라마틱한 북한 인민군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여 전혀 반공물로 보이지 않는다.[7] 1987년 스탠리 큐브릭작 풀 메탈 재킷에서도 베트남군이 마을에서 인형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미군이 사망하는 장면이 있다. 참고로 시체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것은 국제 전쟁법 위반이다.[8] 고작해야 극중 국군 여군을 강간하려던 중공군을 북한군 장교가 막아주자 고마워하며 하던 칭찬을 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장교는 이후 여군에게 감화되어서 함께 탈출해 남한으로 귀순하는게 영화의 결말이다.[9] 소대장은 기습 작전에서 북한군의 기관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 이후 소대장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가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소대장 역을 맡은 배우는 윤희원으로 마이웨이에서 손기정역을 맡았다.[10] 드라마 대조영에서 이해고의 부장이자 거란의 장수 모개 역을 연기했다.[11] 해안선(한국 영화)에서 소초장(소대장) 역을 연기한 배우로 강한철 역의 장동건과 같이 출연했다.[12] 참고로 현재 부사관 계급인 하사와 달리 한국전 당시의 하사는 계급이다.[13] 참고로 소설판에서는 일병으로 나온다.[14] 이북에서 내려왔지만 황해남도나 경기도 북부 지역 출신으로도 보기 어려운 아주 깔끔한 현대 서울말을 쓴다. 그리고 림태수가 평안도 사투리를 쓰자 꼬라보는 등 이북에서 내려왔다고 보기에는 좀 괴상한 태도를 보인다. 무슨 복잡한 뒷사정이 있다기 보다는 철저한 반공 성향을 드러내기 위한 백그라운드 스토리가 생각 없이 얽힌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황해도 출신일지도.[15] 만화판에서는 가족이 모두 몰살당하고, 홀로 내려온 것으로 나와있다.[16] "인사는 무슨, 얼마나 볼 거라고"라고 이야기한다.[17] 모를수도 있지만 황산벌(영화)에서 김흠순의 아들 반굴을 연기한 배우다.[18] 정황상 진태의 하드캐리로 대대장도 많은 활약을 한 것으로 평가받아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대장은 약속대로 형제 둘 다 제대시켜 주려 했는데, 이때 하필 영신이 사망하면서 형제가 사고를 쳤다. 게다가 이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대대장이 바뀐 것이라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19] 전임 대대장은 신상필벌이 확실하고 부하들을 아끼는 성격이었으나, 후임 대대장은 꽉 막힌데다 부하들을 파리목숨 취급했었다.[20] 당시 활동명 주다영[21] 실존하는 전투이긴 한데 (영화 팜플렛에서처럼) 파주 석현리에서 벌어진 건 아니고 강원도 양구에서 벌어진 피의 능선 전투의 하위 전투였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22] 영화 속에서는 이름 한번 검색하니까 바로 신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유품만으로 참전용사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름과 소속까지 병기된 수통을 찾은 적도 있는데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6월 21일자 진짜 사나이에서 6.25 특집으로 유해발굴단 편을 방영하였는데, 유해를 찾아 유족에게 전달하기까지 보통 3년은 걸린다고 나온다. 게다가 이진석이란 이름은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흔한 이름이라 검색 범위가 육군 1사단 내라고 해도 찾는 데 몇십 분은 걸린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세세하게 현실을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장면은 빠른 전개를 위한 허구라고 볼 수 있다.[23] 그냥 구두만 닦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구두 가게를 차려서 구두 장인으로 대성할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차 정거장에서 하교하는 진석을 맞이하고 같이 돌아오는 장면에서 진석에게 구두의 종류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24] 소설판에서 밝혀진 바로는 형제의 유년 시절,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형제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들의 손에 죽는 광경을 눈앞에서 본 뒤부터 열병에 시달리다 이내 언어장애를 앓았다고 한다.[25] 사실 이 부분에는 오류가 있다. 헌병이 말한 징집 연령이 잘못된 것이었다. 1950년 당시는 그야말로 국군 역사상 최악의 혼란기로 무기도 장비도 훈련 시설도 모든 게 열악한 실정이었기에(괜히 학도병들이 철모도 못 쓰고 싸운 게 아니다) 그냥 좀 젊다고 해서 아무 무기나 쥐어 주고 전쟁터에 투입시킬 수 없었다. 즉 청년 중에서도 완전 건장한 청년이어야 군대에도 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당시는 징집 연령도 만 25세까지로 제한되어 있었다.(물론 당시는 오늘날처럼 국가의 행정 처리 능력이 발전하여 신원 조회가 쉽게 되는 시대가 아니었던 만큼 당시의 급박한 전황을 고려하면 일일이 나이를 따질 여유 따위는 없었고 후술하듯이 작중 진태처럼 징집 적령기가 아닌 사람이나 군역 면제 대상자도 청년 같다 싶으면 닥치는대로 잡아갔다. 심지어 누가 봐도 중장년 아저씨 같아보이는 사람을 닭띠라는 이유로 잡아가는 장면도 나온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이 전개되고 어느 정도 전선이 안정화되었어도 여전히 병력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징집 연령도 그만큼 상향되게 된다. 이것이 절정에 달한 것은 1952년 중공군과 소모전을 계속하던 시기의 일로, 이를 충당하기 위해 30세 이상까지 높였다.[26] 형제의 나이 차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진태는 결혼 준비중이였는데 그 당시 초혼연령이 30안쪽인걸 생각하면 진태도 징집대상자는 맞다. 책에서는 당시 진석이 19세(만 18세), 진태가 26세였다고 나온다.[27] 엄밀히 말하자면 진태가 때리기 전에 "동생이 열차를 잘못 탔어요. 지금 내릴 겁니다."라고 말하자 지휘봉으로 진태의 가슴팍을 툭툭 치면서 강압적으로 한 말이다.[28] 이때는 징병제라는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되기 전이었고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젊은 남자들은 보이는 족족 징집되었다고 한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를 보면 한 청년이 길을 가다 마주친 군인들에게 그 자리에서 징집되었는데 자랑스럽게 군 면제 증명서를 내보였더니 육군 장교가 그걸 보고는 부욱 찢어버리고 "닥치고 따라와!"를 시전했다고 한다.[29] 불태워지고 있는 시체들은 군복으로 보아 인민군으로 보인다. 참호에 인민군들 시체도 널브러져 있는걸 보아하니 형제가 전선에 투입되기 전에 격렬한 육탄전이 벌어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30] 사람의 시체가 소각장에 던져져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짧게나마 대놓고 묘사되는지라 사람에 따라 흠칫할 수도 있다. 작중에서도 소각 현장의 끔찍한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아 구토하는 병사들도 나타날 정도였다. 참고로 시체에다가 욕을 하고 횃불을 던져 넣는 사람은 임 하사다.[31] 영화를 자세히 보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이 보인다.[32]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인사는 무슨, 얼마나 볼 거라고"라는 말을 하며 간단하게 이름만 소개하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후 포격을 당하고 그대로 전사하고 만다. 영화판에서는 그냥 툭 던지고 지나가는 수준이고 이후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다가 죽지만, 이근이 그린 만화판에서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얼마나 볼거냐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그 순간 포격을 맞고 죽어버린다.[33] 이때 지목했던 7명중에 허대일, 고영만! 림태수, 강효열, 양길섭, 장인호! 이승철인데 고영만 대신에 이진태가 들어갔고 허대일, 양주사! 림태수는 그 이후에도 매우 자주 나오고 강효열은 기습작전때 생존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승철은 이후에 사망했기 때문에 이때 죽은 병사는 장인호 병사인듯.[34] 북한군을 전부 죽여서 돌아온건지는 불명이지만 정황상 소대급 단위로 있었던 북한군을 진태 혼자서 죽이는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35] 참고로 소설판에선 이때 그의 과거가 양 주사에 의해 밝혀지는데 어릴 때 친부를 잃고 명문중에 입학할 당시 친모까지 잃어 고아가 되어 버렸고 이후부터 끼니를 제대로 해결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군대에 자원입대한 것 역시 끼니 해결 때문이라고 한다.[36] 소설판에서는 의무병이 '니미. 약은 커녕, 붕대 쪼가리도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고'라고 항변한다.[37] 사투리를 쓰지 않고 오히려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림태수를 꼬라보는 묘사를 보면 아주 북쪽은 아니고 38선에 걸쳐져 있던 경기도나 황해도 출신으로 보인다.[38] 참고로 6.25 당시 국군의 계급체계는 현재의 계급체계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의 중사는 현재의 병장~하사급에 해당한다.[39] 물론 진태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게, 취재 인터뷰 때 "백척간두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공산당 아래 신음할 가족을 생각하며 동생과 같이 자원입대해 열심히 싸웠다"고 거짓말을 했으나, 딱 봐도 미리 정해진 원고를 보고 국어책 읽기를 시전하는 수준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공부와는 담을 쌓아온 진태는 한글도 제대로 못 쓰는 까막눈이었고 그런 그가 백척간두니 공산당이니 하는 단어를 알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회식의 경우 항목을 참조하자. 100% 강제였을 것이다.[40] 작중에선 대좌라고 잘못 부른다.[41] 여담으로 부관 역을 맡은 배우는 무술감독으로 유명한 정두홍이다.[42] 다만 부대원들과 달리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은 진석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북한군 병사를 일부러 뒤쪽의 벽을 쏘며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진석과 달리 진태는 광기에 휩싸여 한 새끼도 남기지 말라며 앞장서서 북한군을 닥치는 대로 죽여 대고 북한군 장교를 붙잡아 불 속에다 던져버리고 목을 짓밟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전투가 끝난 뒤에도 앞장서서 포로들을 모조리 학살했고,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며 전쟁의 광기에 질려버린 진석은 또다시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참고로 진석이 살려준 포로는 만화판에서는 결국 달아나는데 성공하지만, 영화판에서는 달아나다가 다른 국군이 쏜 총에 맞아 죽는다.[43] 이때 붙잡은 포로는 용석이다.[44] 동생을 제대시킨다는 애초의 목적하고는 거리가 먼 행동. 이 무렵부터 순진한 청년이었던 그는 점차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변해 가기 시작한다.[45] 소설판에서는 진석이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이 진석이 아무리 포로들을 때려눕혀도 좀비처럼 계속 일어나서 진석에게 다가오는데, 진태는 이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묘사되었다.[내용] 전장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국군의 용맹과 희생으로 5개월 간의 짧고도 길었던 전쟁도 마침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북한 공산 괴뢰도당은 우리 용맹무쌍한 국군과의 모든 전투에서 패하고 속속 한-만 국경을 넘어 패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맥아더 원수께서는 유엔군 전 부대의 신속한 국경 이동을 명령하셨습니다. 국군 장병 여러분, 노고 많았습니다! 드디어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46] 정확히는 포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고 쓰러졌고 그 틈을 타 포로 한 명이 그의 권총을 탈취해 쏘는 바람에 전사했다.[47] 만화판에서는 용석을 쏘기 직전 눈물을 살짝 흘리다가 결국 쏘게 된다.[48] 진태가 받은 무공훈장은 태극무공훈장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나오는 훈장의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날의 모습이다. 즉, 오류다.[49] 실제 보도연맹은 대한민국 정부가 일제 말 사상전향자 시설 및 단체인 대화숙(야마토주쿠)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 단체였으나 실적과 할당량을 채우기 급급했던 공무원들 때문에 쌀, 고무신 등을 주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입을 강요했다는 것. 다음이 그 사례이다. 또한 보도연맹 중앙본부 최고지도위원이었던 선우종원(鮮于宗源)도 탈당성명서를 낸 좌익전향자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개중에는 공산당 골수분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어쩌다 잘못 판단하여 당원이 된 사람과 무지몽매한 탓으로 저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입당한 사람들, 심지어는 무슨 배급을 준다기에 멋도 모르고 도장이나 지장을 찍어준 게 알고 보니 공산당 입당원서였다는 웃지 못할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부지기수다."라고 밝혔다.(울산 국민보도연맹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영화 초반부에서 영신이 전쟁 발발 전 식량을 준다는 말에 보도연맹이 뭔지도 모르고 가입했으며 식량을 더 받을 수 있도록 어머니까지 가입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를 하는 장면이 있다.[50] 애들이 많이 보는 만화판에서는 영신이 인민군 간부 마누라라고 대사를 순화했다.[51] 상술했듯이 생계를 위해서 배급이 나오는 곳이면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다고 용석이 진석에게 말해준 바 있다.[52] 소설판에 따르면 여기저기서 양민들과 청년단원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고 묘사되었으며, 청년단원을 두들겨 패고 총을 빼앗은 양민이 다른 청년단원에게 총살당하고 그 청년단원은 다른 양민의 주먹에 머리가 깨져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혼란을 틈타서 청년단원들을 죽이거나 때려눕혀 무사히 빠져나간 사람들도 있었다.[53] 영화를 보면 이때 진석은 상당한 격투 실력을 보여주는데, 전쟁이 장기간 지속되고 진석도 참혹한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전투가 시작되면 발작과 호흡곤란을 일으키던 초반부 전선 투입 초기의 유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강해진 진석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54] 첫 발은 어깨에, 두 번째 발은 오른쪽 가슴에 맞아 쓰러진다.[55] 청년단장이 진석에게 맞아서 사망했는지 그냥 기절한 것인지는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내용 정황상 극도로 분노한 상황이었으니 실질적으로는 죽였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단 코믹스에선 살아있다.[56] 만화책에선 사랑한다는 말이 삭제되었다.[57] 코믹스판과 소설판에서는 단원 8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나온다.[58] 단순히 앞뒤 꽉 막힌 인간이라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끝없는 중공군의 공세로 경황이 없던 데다 그전에 진태가 청년단원들과 싸움을 일으켰던 터라 제대로 찍혀있던 상황이기도 했다.[59] 아무리 적군들이라지만 물건도 아니고 갇힌 사람들을 장작처럼 태워버리는 매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명령이었다.[60] 작중 포탄보다는 총탄에 맞은 것처럼 묘사되었다.[61] 이때 양 주사가 창고로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62] 이 때 나오는 중국어인 빨리빨리(快乐)에 놀란 한국인이 꽤 많다.[63]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두개골이 훤히 다 보인다. 물론, 붉은 피가 많이 나 있어서 모를 수도 있겠지만 생사가 불명확한 청년단장과 달리 이쪽은 확실히 사망한 듯. 책에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렸다고 더 강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융통성도 없이 꼰대질을 하여 형제의 비극을 가중시킨 죄악과 업보를 생각하면 슬픈 장면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작중에서 가장 사이다인 장면이기도 하다.[64] 방첩대원에게 총격을 가한 진석이 처벌받거나 수감되지 않고 무사한 것을 보면 연합에 의해 보도연맹 대학살이 중단됨과 동시에 1.4 후퇴의 혼란 속에서 진석이 벌인 행동에 대한 기록도 누락된 듯 하다. 양 주사 말에 의하면 그때 날아온 총탄이 급소 가까이에 박혀서 하마터면 죽을뻔 했다고 언급된다.[65] 사실 상관 살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이상, 어쩌어찌 탈출해 돌아온다 해도 나중에 군법재판에 회부돼 총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반면 병력난에 시달리는 북한군 입장에선 반역자로 찍힌 무공훈장 수훈자를 공화국 영웅으로 추대하여 선전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선전감이 된다.[66] 물론, 영신이 누나를 죽여버린 형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67] 다만 동생을 위해 일찍 학업을 포기했다는 설정답게 맞춤법이 대부분 틀려 있다. 걸어서>거러서, 험해도>험애도, 보고싶어요>보고시퍼요, 잘있으니까>잘잇쓰니까 등이 있다.[68] 이 때 임 하사의 모습은 과거 공산당 손에 처자식을 잃고 월남해 입대한 뒤 빨간 건 다 싫어한다며 증오에 가득 차 있던 초중반부의 언행과 대조된다. 아마 외팔이가 되고 반년간 전선에서 떨어져 있으면서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진 것과, 자신이 그랬듯 진태 역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반대 진영에 투신한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69] 참고로 대대장을 맡은 배우가 타짜, 화려한 휴가, 범죄와의 전쟁으로 유명한 권태원이다.[70] 이 때 진태의 모습은 북한군 복장에 어깨에는 소좌 견장, 양 팔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고 얼굴은 긴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얼굴에 진 흉터로 마치 폐인처럼 되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붉은 깃발이 묶인 총검은 덤이다. 소설판에서는 이 때 깃발부대장으로서의 진태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 교통호 바닥으로 가차없이 국군의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르는 인민군, 그의 총검 끝에 묶인 피, 흥건한 인공기 총검 뽑으며 휙 돌아서는 인민군, 얼굴에 진 흉터, 초점없이 매서운 눈.[71] 고급장교인 소좌(국군의 소령에 해당) 계급인데 직접 총검돌격을 하는 것을 보면, 이미 눈이 돌아가 부대 지휘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나 아니면 인민군에서도 바지사장 취급을 했을 수도 있다. 사실 태극무공훈장 수훈자가 인민군으로 전향한 건 인민군 입장에서는 좋은 선전감이긴 하나, 그와는 별개로 고등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진태가 소좌 계급에 걸맞는 군사 지휘 능력을 가졌을 리도 없다. 그래서 선전용 돌격대장으로 써먹다가 죽으면 그만이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8월 종파사건 시기에 있었던 일처럼 남조선 괴뢰 부역자(국군) 경력을 트집잡아서 숙청해 버리면 그만일 것이다.[72] 소설판에서 이 때 진태는 영신과 진석의 이름을 부르짖고, 이에 진석은 자신이 한 때 부정한 형의 본심을 비로소 깨닫고 참담한 심정이 된다. 그리고 이후 스스로 형에게 미안하다는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 눈을 못 감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평생을 뿌리깊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73] 소설에서는 이때 중공군이 북한군 대신 등장한다.[74] 형제가 북한군으로 함께 투항하는 것은 당장의 생존 가능성은 있지만 우리나라 영화에서 그리기에 적절한 스토리도 아닐 뿐더러,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버리고 북한으로 넘어갈 리도 만무하다. 진석이 전투 전에 북한군에 투항하긴 했지만 북한 영주 의도가 아니라 진태를 설득하여 함께 탈북하는 것이 목적이다. 설사 형제가 탈북하지 못하고 북한에 남게 되었다 해도 전후에 출신지를 꼬투리 잡혀서 숙청당해버릴 위험이 크다.[75] 코믹스와 소설판에서는 기관총의 총알이 떨어지자마자 북한군과 중공군의 집단 사격을 당하는데, 소설판에선 "영신아....이젠 네 곁으로 갈게...."라는 독백 속에서 눈을 감는다.[76] 소설에선 진태의 유골을 보고 그 때 왜 중공군의 총격이 약해졌는지를 깨닫고, 더욱 처절하게 오열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진석의 손녀와 유해발굴단원들은 눈물을 흘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안쓰럽게 쳐다봤으며 이들 중 고개를 돌리던 사람들도 묘사됐다.[77] 여기서 영신의 동생들과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영신의 남동생이 "형은 학교 안 가?"라고 묻자, 진석은 "형도 이제 학교 가야지."라고 대답하며 페이드아웃되는데, 마치 전후 끔찍한 고난을 요람삼아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며 학교를 다녔던 재건 세대, 산업화 세대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대화라고 볼 수 있다.[78] 소설에서는 순서가 뒤바뀌어, 어머니와 동생을 먼저 만난 뒤 집에서 형이 숨겨둔 구두를 보고 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형이 약속을 지킬 차례라며,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 제발 돌아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 희망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염원이라는 걸 50여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걸 감안하면 더더욱 서글퍼질 수밖에 없는 장면.[79] 단, 무기등 소품만 담당했고, 스토리 측면에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80]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의 별칭이 잊힌 전쟁일 정도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지만, 참전 규모나 전사자 숫자로만 보면 베트남 전쟁과 비교해도 결코 적지 않다. 참전병력 48만 명 대 54만 명, 전사자 수 36,516명 대 58,209명, 더군다나 베트남전은 십수년을 끌었지만 한국전은 단 3년 만에 나온 전사자 수치다. 즉 규모에 비하면 관심이 적어서 잊혀진 전쟁이라 불리지만, 현실은 한국전 참전용사를 조상으로 둔 미국인들만 수백만 명, 그 중에 할아버지의 무용담을 듣다가 관심을 가지고 파보다가 한국전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밀/역덕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81] 일일이 수제작으로 만드는 것이라 상당히 비쌌다. 제작자는 모 공방을 운영하는 사장이었으나 사망하였다.[82] 일본 H사의 물건으로 발사 기능은 없고 클립 삽입과 배출, 그외 작동부 가동만 된다.[83] 김종오 사단장이 지휘하던 6사단은 6월 25일에도 끝까지 경계령을 유지하려 했지만 참모들과 예하부대 지휘관들이 "애들 목욕하고 이발할 시간은 줘야 합니다."라고 호소해서(...) 경계태세를 하향조정했을 정도다.[84] 참고로 이 당시 8연대는 7사단 소속으로 백석산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의 능선 전투를 돕기 위해 두밀령 고지(983고지) 인근 901고지, 554고지에서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으니 근거가 없지만은 않다.[85] 반대로 평양 탈환작전 당시 1사단 1개 대대가 얼떨결에 8연대에 배속된 적은 있다.[86] 아니면 '두밀령 고지가 파주에 있다'는 팜플렛 설정과 이곳에서 전투했던 국군 부대가 12연대라는 가정이 맞다면 8연대라 적힌 건 무시하고 불렀을 수도 있다.[87] 제작사 쇼박스 측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나리오 모티브가 된 "형제의 상"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한편,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분을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내기 시작했는데, 윤영엽의 사연은 이때에 밝혀진 듯하다.[88] 개전 당일 조선인민군 공군의 서울 공습과 두밀령 전투 직전의 화력 지원[89] 실제론 자원입대하는 것으로 묘사해도 역사적 사실과 전혀 문제가 없으나, 감독은 강제 입대 설정을 고집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게 고증에 맞는 이유는 독전대까지 동원하면서 강제로 끌고 갔던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제징병 설정은 현실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당시 징병뿐만 아니라 지원병들도 매우 많았다는 점에서 제작진과 국방부 측이 타협할 수 있는 여지는 존재했다. 사실 영화에서도 징병되어 끌려가는 진태, 진석과는 다른 칸에서 자원입대한 학도병들이 환성을 지르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다음도 당시 학생이었으나 피난 도중 자원입대한 참전용사의 인터뷰[90] 이 스푼의 앞부분에 반찬을 찍을 수 있도록 2개의 작은 홈을 따내는 가공을 한 것이 지금도 젓가락을 휴대하기가 곤란한 야외에서 군 장병들, 등산객, 캠핑객들에 의해 널리 쓰이고 있는 그 유명한 '포크스푼' [91] 참고로 오리온 초코파이는 이로부터 2년 전 영화 집으로...에서 PPL 요청이 왔을 때 거절했다가 영화가 크게 흥행하고 해외에서 상도 받자 크게 후회했다는 후일담이 있다.[92] BB화 스타일의 전투화는 70년대까지도 예비군 제식 군장이었다.[93] 광고에 따라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일부를 낭송한다.[94] 국내판은 상술한 BGM이 흐른다.[95] 의외로 노래방에는 오래 전부터 등록되어있다.[96] 이건 외국인들 사이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얼마나 호평을 얻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엄청난 거다. 외국인에게 소개할 만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97] 미군들이 영화 내에서 보병 등으로 직접적인 출연을 한건 아니지만 한국전쟁 초반기의 전투기와 전차들은 거의 대부분이 미군 부대에서 한국군 보병부대에게 지원한 것이므로 간접적으로나마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98] 3위가 웰컴 투 동막골이 거둔 801만 관객이다. 1,108만 관객을 동원한 실미도가 있긴 하지만 실미도는 휴전 후 남북 간의 대치가 배경이지 전쟁 상황이 아니다.[99] [공식] CGV,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 등 韓명작 재상영..강제규 감독 GV 진행 참고[100] 극중의 이진태와 동년생이다.[101] 김영신의 여동생.[102] 동명이인으로 링크가 잘못 되어 있는데 본인이 맞다.[103] 작중에서는 대좌라고 언급된다.[104] 여기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만화로는 악마의 바이러스라는 만화를 그린 적 있다.[105] 머리말에 따르면 감독인 강제규가 처음에는 15세 이용가의 전쟁 영화를 애들이 보는 만화책으로 출판하는게 맞는걸까? 라며 만화책 출판을 고민했다고 한다.[106] 6.25 전쟁당시 국군에는 '상병'이란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하사' 계급이 현재 상병 계급에 대응된다.[107] 김수로는 진태의 약혼자이자 진태 일가와 가족처럼 지내던 영신을 죽였고 그 직후 진석에게 죽임 당하는 철천지 원수 역할이었다. 그리고 훗날 진태 역의 장동건과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찍는데 여기선 20년지기 절친이자 건축사무소 동업자로 나온다. 신사의 품격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김광규가 영화 '친구'랑 엮어서 장동건과 배우개그를 하는데 반해 김수로와 장동건의 배우개그는 나오지 않는데, 영화에서의 김수로의 역할이 작아서이거나 또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반드시 배우개그가 나와야 할 이유도 없다.[108] 원빈은 당시 탤런트 이미지가 강했던 편이라서 영화 배우로서 검증된 상태는 아니었다.[109] 재미있게도 같은 한국전을 그려 함께 자주 거론되는 전쟁영화인 고지전의 주인공도 동시대의 역대급 미남으로 유명한 고수이다.[110] 배우가 예쁜게 뭐가 이질적이냐 할 수도 있지만, 조윤희가 등장하는 장면은 액자식 구성의 액자 바깥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조윤희 이외에는 외모 면에서는 평범한 배우들이 등장했다. 조윤희도 저 당시는 무명이었다.[111] 이 때문인지 태극기 휘날리며에 노면전차잠깐 나오는데, 그것이 2003년 야인시대 64회에서 심영이 김두한 패거리들로부터 중앙극장을 빠져나와 도망치다가, 상하이 조의 총을 맞는 순간 지나가며 심영을 도망치게 한 그 노면전차 소품을 그대로 갖고 왔다. 해당 전차는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가 폐쇄되면서 한국만화박물관 앞으로 옮겨져 휴게 공간으로 개조되었다.[112] 한국팬들에게 하는 립서비스가 아닌, 전세계 팬들과 트위터로 QnA를 하는 행사에서 그렇게 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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