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고네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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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Τηλεγόνεια
[
Telegoneia
]

영어 Telegony

1. 개요
2. 줄거리
3. 평가
3.1. 작품성
3.2. 관련 오해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고대 그리스서사시. 《오디세이아》의 후속작이자 서사시환 최후의 작품이다.

저자는 에우가몬.[1] 본문은 오래 전에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지만 여러 학자들의 기록과 작품에서 언급된다.


2. 줄거리[편집]


2부작으로 구성된 《텔레고네이아》는 오디세우스의 테스트로피아 여정과 텔레고노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문이 오래 전에 분실돼서 《텔레고네이아》의 본문은 두 줄밖에 남지 않았지만 줄거리는 알려져 있다. 프로클로스의 기록에 의하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의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시작한다. 테스트로피아에 간 오디세우스는 칼리디케 여왕과 결혼해 아들 폴리포이테스를 낳고 테스트로피아에 눌러앉는다. 이후 테스트로피아에서 일어난 전쟁 중 칼리디케가 죽자 폴리포이테스가 왕위를 계승하고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귀환한다.

한편 아이아이에 섬에서 키르케는 자신이 오디세우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막내 아들 텔레고노스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아테나 여신은 키르케에게 아버지에 대해 텔레고노스에게 밝히라고 조언했고, 아버지가 트로이 전쟁의 영웅임을 알게 된 텔레고노스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헤파이스토스로부터 가오리 뼈 창을 받았다. 폭풍으로 자신이 어디인지 몰랐던 텔레고노스는 이타카를 약탈했고, 이를 막으러 온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죽이고 만다.

아버지의 시신을 아이아이에 섬으로 가져가는데 이 과정에서 페넬로페텔레마코스를 데려간다.[2]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닮은 텔레마코스에게 반해 그와 결혼한다. 텔레고노스는 페넬로페를 아내로 맞이하는데 여기에는 아테나가 둘을 짝지어 줬다는 전승과 키르케가 처음부터 텔레고노스와 페넬로페를 결혼시킬 계획이었다는 전승이 있다. 키르케는 텔레고노스와 페넬로페를 불로불사로 만들고, 둘은 엘리시온에서 평생을 행복하게 보낸다는 것으로 서사시가 끝난다.


3. 평가[편집]



3.1. 작품성[편집]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도 알아주는 막장 이야기이다.

남편을 20년이나 기다렸던 페넬로페는 남편이 다른 여자인 키르케에게서 얻은 아들이자 남편을 죽인 텔레고노스와 결혼함으로써 죽은 오디세우스의 며느리가 되어버렸고, 그녀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원수의 어머니인 키르케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시어머니의 시어머니가 되고 말았다.

페넬로페텔레고노스의 결혼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있다. 본문이 소실되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단 아테나가 둘을 짝 지어줬다는 전승도 있고, 처음부터 페넬로페텔레고노스에게 결혼시키는 것이 키르케의 계획이었다는 전승이 있다. 전자라면 아테나 여신이 자신이 아끼던 영웅을 죽인 놈에게 벌은 커녕 보상으로 페넬로페를 주는 식이 되고, 후자라면 《텔레고네이아》 내용 전체가 키르케의 계락이 되어버린다.

이 이야기를 졸작으로 만드는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막장 드라마인 점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 전반에 깔린 윤리적 개연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테베의 오이디푸스와 미케네의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리스 신화 내의 부모 살해는 그 이유를 불문하고 아주 엄중하게 다뤄진다.[3] 그런데 이 작품의 텔레고노스는 친부인 오디세우스를 살해하고 의붓어머니뻘인 페넬로페와 결혼해서는, 천벌은커녕 행복하게 잘 살다가 엘리시온까지 갔다고 서술되니, 상술한 다른 개연성들이 애교로 보일 정도의 심각한 오류가 생긴다.

히기누스는 이 이야기를 자신이 집필한 신화 모음집인 《이야기》에 기록했다. 또한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에도 이 이야기는 실려있다.

3.2. 관련 오해[편집]


호메로스의 작품에 비해서 부족한 작품성이나 현대 관점은 둘째치고 당대 그리스 관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적 관념으로 인해 흔히 《텔레고네이아》는 원작자 호메로스의 작품을 망친 수준으로 치부하고는 하는데, 작품성은 둘째치고 《텔레고네이아》를 단순한 2차 창작으로 구분하는 것은 틀린 시각이다. 당장 고대의 가장 권위있는 그리스 신화 자료집인 히기누스의 《이야기》와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Bibliothēkē에서도 이 이야기의 뼈대는 당당하게 실려있다. 또한 지금은 소실된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뒷세우스 아칸토플렉스》Ὀδυσσεὺς ἀκανθοπλήξ 역시도 텔레고네이아에 기반한 이야기였고, '텔레마코스-키르케' 및 '텔레고노스-페넬로페'의 결혼을 다룬다.

CXXV 오디세이아 中

Deioneus fathered Cephalus, who fathered Arcesius, who fathered Laertes, who fathered Ulysses. Ulysses fathered Telegonus by Circe, and Telemachus by Penelope. Telegonus fathered Italus by Penelope, Ulysses’ wife; he named Italy after himself. From Telemachus was born LAtinus, who named language after his own name.

데이오네우스에게서 케팔로스가 태어나고, 케팔로스에게서 알케시오스가 태어나고, 알케시오스에게서 라에르테스가 태어나고, 라에르테스에게서 오디세우스가 태어났다. 율리시스와 키르케의 사이에서 텔레고노스가 태어났고, 아내 페넬로페와의 사이에서 텔레마코스가 태어났다. 텔레고노스와 율리시스의 아내 페넬로페와의 사이에서 이탈리아의 어원이 되는 이탈로스가 태어났다. 텔레마코스에게서는 라틴어의 어원이 되는 라티누스가 태어났다.

CXXVII 텔레고노스 中

When he learned whom he had killed, Telegonus on Minerva's orders, returned to his home on the island of Aeaea along with Telemachus and Penelope. They returned Ulysses' dead body to Circe and there laid him to rest. Again on Minerva's orders, Telegonus took Penelope and Telemachus took Circe in marriage. From Circe and Telemachus was born Latinus, who gave his name to the Latin language; from Penelope and Telegonus was born Italus, who gave his name to Italy.

자신이 죽인 이의 정체를 알게 된 후, 텔레고노스는 미네르바의 명령에 따라 텔레마코스, 페넬로페와 함께 고향 아이아이에 귀환했다. 그들은 율리시스의 시신을 키르케에게 맡겨 장례를 치렀다. 미네르바의 명령에 의해, 텔레고노스는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는 키르케와 결혼했다. 키르케와 텔레마코스의 사이에서 라틴어의 어원이 되는 라티누스가 태어났고 페넬로페와 텔레고노스의 사이에서 이탈리아의 어원이 되는 이탈로스가 태어났다.

파불라


36. 그런데 텔레고노스는 키르케에게서 자신이 오뒷세우스의 아들임을 알고서, 그를 찾아 배를 띄운다. 그리고 이타케 섬에 닿아 가축 떼 중 일부를 몰아가려 했다. 그래서 오뒷세우스가 지원하러 온 것을 텔레고노스가 <가오리> 가시 날을 가진 창을 손에 들고 있다가 부상을 입혀서, 오뒷세우스가 죽는다.

37. 텔레고노스는 그를 알아보고 매우 애통해하다가, 그 시신을 페넬로페와 함께 키르케에게로 가져간다. 그리고 거기서 페넬로페와 결혼한다. 키르케는 그들 둘을 행복한 자들의 섬으로 보낸다.

『그리스 신화』, 강대진 번역, 민음사, 2022 (아폴로도로스, 『비블리오테케』 3,7,36-37)


더군다나 텔레고네이아는 모순되는 다른 고대 전승이 있는 것[4]도 아니기에 '이런 이설도 있다' 수준을 넘어서 엄연히 고대에 전통 신화로 널리 수용된 이야기로 봄이 마땅하다. 즉 이와 모순되는 다른 고대 전승이 없는 한, 텔레고네이아를 전통 신화로 받아들인 고대인들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이미 고대인들도 이를 오뒷세우스 이야기의 결말로 수용했는데, 현대인이 무슨 자격으로 취향따라 이야기를 첨삭한단 말인가?

게다가 "왜 굳이 해피엔딩 맞은 오뒷세우스를 죽이냐?"는 반론은 오뒷세이아 본문 그 자체와도 충돌하는 얼토당토 않은 반론이다. 오뒷세우스는 바다 건너에서 온 존재에게 죽어야 한다고 오뒷세이아에는 친절하게 명시되어있다.

그대에게는 바다로부터 몹시 가녀린 죽음이 다가와
윤택한 노년을 보내며 쇠잔해진 그대를 죽일 것이며......
[5]

테이레시아스 (오뒷세이아 11,135-136, 이준석 번역)[6]


훗날 그는 구혼자들에게 보복라고 마침내 페넬로페를 만나게 된다. 20년간 기다려왔던 가장 벅찬 순간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들이 잃어버린 젊음을 말하고, 남편은 테이레시아스가 알려준 바 그대로 그에게 남은 죽음을 말한다. 이 행복의 순간에도 남편은 아내가 운명을 모르도록 놔두지 않고, 그녀 역시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해석가의 말대로, 가장 격렬한 싸움을 통해 얻은 승리 뒤에 곧바로 찾아오는 변화와 죽음에 대한 이 깊은 시선, 예외 없이 한계가 드리워진 모든 인간 운명에 대한 이 도저한 시선은 진정 호메로스다운 것이다. 이런 시선을 통해 시인은 동화나 민담의 해피 엔딩을 피하며 이 시에 깊이를 더한다. 마치 일리아스가 정의의 사도가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뒷세이아, 이준석 번역, 아카넷, 2023, p.630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과 히기누스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텔레고노스페넬로페의 결혼은 단순히 에우가몬의 창작이 아니라 수많은 오디세우스의 전승 중 하나로서 내려져왔고, 심지어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신들의 계보》에서도 텔레고노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을 소재로 에우가몬이 서사시를 집필했지만, 하필이면 졸작이었던 것 뿐이다. 게다가 텔레고네이아는 이미 오래 전에 실전(失傳)되었기 때문에 본작이 졸작이라는 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평으로 유추하는 것 뿐이고 실제 어땠는지는 현 시점에서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비평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보다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이건 《텔레고네이아》만이 아니라 《키프리아》, 《아이디오피스》, 《소 일리아스》, 《일리오스 낙성》, 《노스토이》에도 해당된다.[7]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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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작가로부터 작품을 훔쳤다는 이야기도 있다.[2] 프로클로스에 의하면 어머니 키르케의 명령으로 납치한 것이다.[3] 오이디푸스는 애초에 점지받은 운명에 휘둘려 친부가 친부인 줄 모르고 죽였고, 친모가 친모인 줄 모르고 결혼한 건데도, 진상이 밝혀진 뒤 스스로 자해하여 맹인이 된 채 여기저기 떠돌면서 저주받은 패륜아라고 욕만 먹다가 비참하고 외롭게 객사했다. 오레스테스는 친모가 친부를 죽여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신탁을 받았더니 친모라도 죽이라는 답을 들어서 그대로 행한 건데도, 그 일 이후 패륜을 벌하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미치도록 시달리며 온 그리스를 떠돌고 고생했다. 그나마 후일 아테나가 그를 변호하여 천벌이나마 면하게 해 준 거지, 아니었으면 계속 미쳐서 떠돌다 오이디푸스처럼 죽었을 수도 있고, 또 아테나도 모친 살해 그 자체를 정당화한 것은 아니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지 않은 죄 vs. 어머니를 살해한 죄"라는 양자택일을 강요 받은 상황에서 '덜 나쁜 죄'인 후자를 선택한 것 뿐이다. 비록 아가멤논이 고대인 기준으로도 인격자는 아니고 가부장적 논리도 작용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가 친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사령관으로서 자기 가족을 희생한 아가멤논보다는 '간통남을 왕위에 앉히려고' 남편을 살해한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더 나쁘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4] 가령 아프로디테의 출생에 대한 전승들처럼, 고대 전승끼리도 상호 모순되어서 선택해야 하는 경우[5] 참고: "바다 먼 곳에서 죽음이 / 부드럽게 그대를 찾아와 윤택한 노령에 지친 / 그대를 죽이게 되리라."(김기영 번역)[6] 여기서 말하는 '가녀린 죽음'은 수명을 다해서 고요하게 자연사한다는 말로 보기 어렵다. 이 예언을 전해들은 페넬로페는 이 죽음을 오뒷세우스가 맞이할 '재앙'이라 언급한다. "만일 신들께서 정말로 더 좋은 노년을 이루어주신다면 / 당신께도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있겠어요."(23,286-287, 이준석 번역); "신들께서 그대 위해 더 나은 노령을 허락해주신다면 / 재앙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지요."(23,286-287, 김기영 번역)[7] 이건 서사시환만이 아니라 그리스 비극, 서사시 등 그리스 로마 신화의 모든 작품을 통들어도,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품성에 근접한 작품은 찾기 힘들다. 그나마 꼽아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