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홉스

덤프버전 :





토머스 홉스[1]
Thomas Hobbes

파일:1200px-Thomas_Hobbes_by_John_Michael_Wright.jpg

출생
1588년 4월 5일
잉글랜드 왕국 윌트셔 주 웨스트포트
사망
1679년 12월 4일 (향년 91세)
잉글랜드 왕국 하드윅[2]
국적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직업
철학자, 비서[3]
사상
고전적 자유주의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마들린 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 (1908년 학사)
종교
기독교
서명
1. 개요
2. 생애
3. 사상
3.1. 자연 상태 (자연권)
3.2. 자연법
3.3. 절대 주권과 군주정 옹호
4. 홉스 사상의 의의
5. 기독교에 대해
6. 주요 저서
7. 여담



1. 개요[편집]


영국의 정치철학자. 대표적인 저서로 『리바이어던』이 있다.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법이 없는 상태의 사람들에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므로, 이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 권리'를 주권자[4]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맺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계약으로 인해 사람들은 주권자의 명령인 '법'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를 가지게 되는데, 그런 복종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바로 국가다. 홉스는 이러한 논리를 통해, '주권자에 대한 복종 의무'와 '국가의 설립'을 정치철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근대 국가 체제의 사상적 시발점을 마련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5]

2. 생애[편집]


엘리자베스 1세 때, 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영국 상륙을 시도하려한 1588년에 출생했다. 당시 그의 모친은 임신 7개월 중이었는데 무적함대가 마을 근방까지 올지 모른다는 소문에 놀라 조산하고 말았다.[6] 이른바 칠삭둥이. 운좋게 목숨은 구했지만 불량 목사였던 아버지[7]가 주먹다짐 끝에 소속 전도구에서 쫓겨나게 되어 가족을 버렸고 편모가정으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부유한 삼촌[8]의 후원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옥스퍼드 대학교에 진학했다.[9] 이후 교장의 추천으로 캐번디시 가문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인생이 피게 된다. 거기서 평생 후원자인 윌리엄 캐번디시를 만났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장서와 여러 고위층 문객들을 직간접으로 접하면서 깊은 학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당시 대법관이었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비서로 일하게 된 것으로, 이때 경험론적 학풍에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살 차이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윌리엄 캐번디시와 유럽 여행을 갔으며, 윌리엄 캐번디시가 죽고 난 후에는 다시 그의 아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이 때 말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만나기도 했다.

한편 그 여행 와중에 르네 데카르트, 피에르 가상디 등의 인물들과도 만나 교류했다. 특히 데카르트와는 학문 접근 방식과 철학과 광학이론 등을 가지고 견해 차이를 보이며 논쟁을 벌였다. 데카르트의 저서 『성찰』에 홉스의 비평문이 같이 실렸을 정도다. 홉스는 데카르트를 "기하학만 했으면 위대한 수학자가 될 것을..."이라고 깠지만, 데카르트는 당시 무명에 불과했던 홉스를 그냥 무시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원적 문제를 증명했다면서 수학자 존 윌리스[10]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이후 20년 간을 수학적 문제를 가지고 감정적 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 당시 기록을 검토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홉스는 이 너비와 넓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 수학에는 영 재능이 없어보인다고 한다.

후원자 캐번디시 가문이나 스승 베이컨 그외 친한 지인들이 왕당파라서 홉스도 그런 성향이 있다 여겨졌고, 실제로 정치사상은 그렇게 평가되기도 했다.[11] 그래서 왕당파와 의회파의 싸움이 영국 내전으로 확대되고 왕당파들이 차례대로 체포되자, 홉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11년간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그곳에서 훗날 찰스 2세가 되는 웨일스 공을 가르치기도 하면서,[12]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리바이어던》도 이 시기의 산물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리바이어던》의 급진성[13]으로 인해 같이 망명한 왕당파들이 도리어 홉스에게 살해위협을 가했고, 홉스는 이를 피해 1652년에 다시 크롬웰의 의회파가 장악하고 있는 영국으로 되돌아왔다.

공화정 시기에 홉스는 정치 저술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연구하며 지냈다. 크롬웰이 죽고 1660년 찰스 2세의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군주정을 주장한 홉스는 재평가를 받아 찰스 2세와 다시 가까워졌다. 찰스 2세는 홉스에게 나름 좋은 대접을 해줬지만, 홉스는 이 때에도 정적의 비판에 시달려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기존 기독교 교리를 공격하면서 자신만의 유신론[14]을 펼친 바 있는데, 1666년 '무신론과 신성 모독 금지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자, 《리바이어던》에서 썼던 홉스의 논리가 무신론이라는 공격을 받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그 법의 조사 대상자 명단에 홉스의 이름이 올라오자, 홉스는 언제 처형 당할지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증명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비난하는 주교와 목사들에게 비판의 글을 엄청나게 써댔다.[15] 심지어 그러는 와중에도 홉스는 수학자와 과학자로서의 자신의 명성이 상실되는 것도 두려워해서, 런던 왕립학회의 수학자와 과학자들과 격렬한 다툼을 수십년간 이어나갔다. 홉스의 삶은 평온한 날이 없었으나, 그는 이러는 동시에 명성과 존경을 누렸으며, 70살 무렵에 이르러서는 그의 삶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규칙적인 생활로 삶을 즐기다가 1679년 12월 4일 화요일 뇌졸중으로 인하여 9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령임에도 이웃집 젊은 여성에게 연애감정을 느껴 시를 짓기도 했다고.[16] 그는 50살 이전까지 캐번디시 가문의 비서, 가정교사, 자문 역할을 수행하던 사람에 불과했으나, 50살 중반 《리바이어던》을 지은 이후부터 철학자로서 명성을 얻었고 또한 그 명성만큼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홉스의 사상에 조금이라도 호의적 경향을 비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호비스트'라고 낙인찍혔기 때문에 홉스는 일생을 자신을 변호하는 일에 바쳤다. 그러나 그 나머지 시간에 홉스는 무척 평화로웠다.[17]

3. 사상[편집]





3.1. 자연 상태 (자연권)[편집]


힘이나 기지나 혹은 그 둘 모두에서 약자라 하더라도 (..중략..) 강자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데에는 그다지 큰 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토마스 홉스 《법의 원리 (The Elements of Law)》 14.2

홉스는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 "자연 상태(원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가정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한 자연 상태에서는 법이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는 행동의 자유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어떤 행동도 불사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18]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자연 상태에서 한 인간은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를 자연권이라고 한다.[19]

그런데 홉스에 따르면, 그러한 "자연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20] 왜냐하면 힘이 쎈 사람이라 할지라도 잠을 잘 때는 힘이 약한 사람한테 죽임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힘쎈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잠은 자야 한다. 잠잘 때 습격을 받으면 대책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취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자유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누구라도 상대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는' 평등이 존재한다.[21]

이런 조건에 놓여 있는 인간의 삶이란 비참하기 그지없다.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며, 짧다."[22]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인간은 같은 대상을 놓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상대방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먼저 없애려고 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까닭에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자 한다.[23] 즉, 이러한 자연적 평등은 도처에서 폭력과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를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부른다.

3.2. 자연법[편집]


이러한 자연 상태는 견딜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이를 벗어나고자 '자신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24]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모든 것에 대한 권리=자연권)를 다 함께 포기하자[25]는 법을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자연법이라고 한다. 자연법에 따라 사람들은 주권자,[26] 즉 "불확실한 모든 경우에서 우리의 사적 판단을 일임한 신의 대리인(군주)"에게 권리를 '양도(transfer)'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27] 그리고 권리를 양도받은 주권자는 사람들의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과 권리로 사람들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다.[28] [29]

이 계약은 보통의 계약이 아니라 내가 일단 약속을 지키고 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계약으로 조건지어지기 때문에, 홉스는 이를 '신의 계약[30](covenant, 믿음의 계약)'이라고 한다. 그냥 '계약(contract)'은 쌍방이 주고 받는 관계가 되면 즉시 성립하고 쌍방이 주고 받는 관계가 끝나면 계약이 해지되지만, '신의 계약'은 주고 받는 관계없이 다른 사람들도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계약이 미래에까지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31] 홉스에 따르면 이런 '신의 계약'을 통해서만 정치공동체(커먼웰스; 국가)가 탄생할 수 있으므로, 계약의 당사자는 '주권자에게 복종'함으로서 이 계약을 미래에까지 준수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32]

나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권리를 포기하고, 이 사람 혹은 이 합의체에 권리를 완전히 양도할 것을 승인한다. 단, 그대도 그대의 권리를 양도하여 그의 활동을 승인한다는 조건에서. 이것이 실행되어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인격으로 그렇게 통합되었을 때 그것을 커먼웰스[33]

(Commonwealth),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한다. 이리하여 리바이어던(Leviathan)이 탄생한다. 아니, 좀 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불멸의 하느님(immortal God)'의 가호 아래, 우리의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mortal God)'이 탄생하는 것이다.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34]

이렇게 해서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가 탄생한다. 그것은 개인들이 가진 권리의 총합을 주권자가 행사하는 것이다. 누구나 복종해야할 절대 권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국가는 괴물 '리바이어던(Leviathan)'과 같다. 홉스에 의하면 그것은 일종의 신(God)이다.[35]

정리하면 자연법은 이렇게 된다. 우리는 자연 상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으므로, 자연법의 제1법칙은 "평화를 추구하라"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다 함께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제2법칙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만물에 대한 권리'란, 자연상태에서 누구든지 마음대로 빼앗고 죽일 수 있는 평등의 권리를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포기한 권리를 양도받은 주권자(군주)에게 그들의 판단을 맡긴다. 사람들은 주권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 따라서 제3법칙은 "계약을 준수하라"이다.[36] 이 계약을 준수함으로서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3.3. 절대 주권과 군주정 옹호[편집]


자연법에 따라 모든 백성은 주권자에 대해 저항할 권리를 포기하며, 백성은 이제 그들에게서 주권을 넘겨 받은 주권자(군주)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명령은 곧 법을 의미하므로, 이제 주권자가 만든 법에 모든 백성은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권자가 만든 법을 시민법이라고 한다.[37] 모든 백성이 이 시민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권자는 절대 주권을 가진다. 홉스에 따르면 절대 주권의 구성 요소는 두 가지이다. '정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힘'을 주권자가 모두 보유할 권한과 백성들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 그 '백성들의 모든 외적 생활'을 지배할 권한이다.[38] 그렇다면 백성들에게는 어떤 자유가 남아 있을까? 백성들은 주권자가 금지하지 않은 영역, 즉 법으로 제한하지 않은 영역에 대해서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39]

재산권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연 상태에서 사유 재산이 발생할 수 없으며 사유 재산은 시민 국가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재산권의 문제는 시민법으로 다뤄져야 한다. 홉스에 따르면, 시민법에서의 모든 권리는 주권자에게 양도되었으므로, 개인의 사유재산 역시 주권자가 처분할 수 있게 된다.[40]

한번 사회계약에 동의했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불평을 말할 권리조차 갖지 못한다고 홉스는 주장한다.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권리는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자기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뿐이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개인적인 권리가 곧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이 말의 의미는, 정부가 법을 어긴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그 누군가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개인적인 저항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저항과 상관없이 통치 권력을 가진 자는 그 사람을 붙잡기만 한다면 그를 죽일 수 있고 또한 죽일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통치 권력자의 권리 안에 완전히 속하기 때문이다.[41]

결국 홉스의 주장은 군주정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42] 물론 군주정에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귀족정으로 가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격돌하기 때문이다. 또한 군주정은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귀족정은 더 많이 든다. 귀족은 각각 군주처럼 돈을 쓰기 때문이다. 더나아가 민주정은 최악이다. 모든 사람이 국부를 낭비하기 때문이다.[43] 물론 이러한 홉스의 주장은 다소 과격한 면이 있고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44] 하지만 홉스는 이어서 무엇보다도 군주정이 '진짜 필요한 이유'를 제시한다. 홉스는 내란이야말로 정치 공동체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했는데, 군주정은 다른 정치체제에 비해 "내란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장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다수가 다스린다면 필연적으로 서로 다투게 되겠지만, 한명이 다스린다면 그런 문제는 결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홉스의 정치철학에서 군주는 내란과 학살을 방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45]

홉스의 군주정에서 오직 주권자(군주)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를 지니고, 그 자유는 절대적이고 무제한적이다.[46] 오직 주권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재산을 지닐 수 있고, 그가 통제하는 모든 것이 그의 재산이 된다.[47]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군주정은 견제받지 않는 '절대 군주정'이 된다. 하지만 홉스는 이러한 주권자에게도 부담은 있다고 말한다. 첫째, 주권자는 "백성들의 일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둘째, 주권자는 자신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위협받는다. 그는 그 국가의 수장이므로 "항상 적의 공격 대상"이 된다. 반면 백성들은 "통치하는 수고"를 치르지 않아도 되며, "적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주권자인 "군주는 동정을 받아야 되고, 백성들의 끝없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홉스는 주장한다.[48]

4. 홉스 사상의 의의[편집]


홉스는 통치자의 권리와 백성의 의무에 관한 질문[49]을 통해 정치철학사에 중요한 전환을 가지고 왔다. 그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개인의 정치적 평등을 주장한다. 사람들은 신체적 지적 능력 차이가 있지만, 홉스에게 있어서 이 차이는 정치적으로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든 약자든 여자든 소수자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 그리고 홉스가 주장하고 있는 국가는 이런 평등함 위에 세워진 국가이다. 따라서 홉스는 근대 평등사상을 앞서서 제시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또한 우리가 사회나 국가를 상상할 때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홉스의 공헌이다. 그의 논리는 개인의 욕망과 안전 추구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사회와 정부의 구성에 있어서 이런 정치적 개인을 발견한 첫 철학자 중 한명이 바로 홉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근대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사상적 시발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홉스는 군주정을 옹호한 사상가이지만, 국가 형성에 있어서 '정치적 개인'의 발견과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평등'을 적시함으로써 근대 사회계약론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왕권신수설 등 군주의 권력이 천부적인 것처럼 묘사하던 기존 정치 이론을 뒤집고 그 권력이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개인'들로부터의 계약을 통해 성립된 것이라는 주장은 새로운 정치 사상의 경지를 여는데 시금석이 될만한 것이었다.

다만 홉스는 개인의 권리를 군주에게 '완전히 양도'하는 것이고 이러한 양도는 국가가 내란과 학살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없을 때 비로소 무효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면, 로크의 경우는 개인의 권리를 정부에 잠시 맡기는 것, 즉 '위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권리가 개인의 동의없이 정부에 의해 침해를 받기만 하더라도 그 정부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데이비드 고티에는 특히 주권자에 대한 절대적 권한위임(authorization)[50]이라는 개념이 『리바이어던』에서 새롭게 제시되었다고 본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백성이 주권자의 행위를 자기 자신의 행위로 여기고 주권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의무를 지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에서 제시된 주권자에 대한 ‘복종 의무’와 주권자에 대한 ‘절대적 권한위임’이야말로 정치사상에 대한 홉스의 독창적인 공헌이라는 것이 고티에의 주장이다.[51]

5. 기독교에 대해[편집]


1688년에 출간된 《리바이어던》 라틴어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책에는 A와 B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록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존 월리스는 홉스의 다른 대화록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두고 토머스와 홉스가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대화록의 등장인물도 토머스와 홉스이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홉스는 하느님이 물체라고 주장한다. (Affirmat quidem Deum esse corpus.)" 또한 브럼홀 주교의 《리바이어던 잡기》에 대한 반론에서 홉스는 이렇게 썼다. "내 주장은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하느님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단순한 유형(有形)의 영이라는 것이다."

홉스의 비판자들은 유형의 하느님이라는 관념이 무신론적이라고 주장했다. 홉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물체만이 실체이다. 실체만이 진정으로 존재한다. 하느님은 진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물체다. 따라서 홉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하느님이 무형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43

홉스는 스스로 신을 믿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홉스는 당시의 교회 가르침에는 강력하게 동의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다. 예를 들어, 그는 무형의 실체가 없으며, 인간의 생각을 포함하여 모든 것, 심지어 신, 천국, 지옥까지도 형체를 가지며 움직이는 물질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그는 "성경은 영(spirit)을 인정하지만 어디에도 영이 형체가 없다고, 즉 차원과 양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52] 신과 영이 비물질적 실체나 무형적 실체라고 주장하는 비판자들에 대해, 홉스는 '운동은 유형적 물체에나 있는 일'인데 '성경에서는 신과 영이 움직인다'고 적혀있으므로 신과 영은 물질이라고 반박했다.[53] [54] (다만 이런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이는 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말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종교적 언어로써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55] [56])

즉, 홉스는 유물론에 기반한 유신론[57]을 주장한 것이었고, 이러한 홉스의 신 인식은 기존 정통 기독교 교리를 공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교회의 주교와 목사들은 홉스를 무신론자라고 비난했다.[58] 이로 인해 많은 논쟁이 벌어졌으나, 이러한 논쟁은 도리어 공론화 과정을 겪으면서 홉스의 사상이 유럽 대륙에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당시 계몽주의 사상가들[59]이 홉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를 통해 유럽에서 이신론, 범신론, 유물론 등이 광범위하게 유행하게 된다.[60]

또한 홉스는 『법의 기초』와 『시민론』에서는 '성경에 대한 해석의 권한'이 주권자가 아니라 교회에 있다고 말했었지만,[61] 《리바이어던》에서는 성경에 대한 유일한 해석의 권한은 교회가 아니라 정치적 주권자에 있다고 말한다. 홉스에 따르면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부수적으로 성직자가 어떤 교리들을 가르쳐야 하는지와 관련된 문제는 오직 전적으로 주권자의 명령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62] 뿐만 아니라 《리바이어던》에는 기존 기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적혀져 있다.[63] 홉스는 여러 시대에 걸친 성직자들의 사악한 음모와, 성직자들이 거짓된 철학자들과 맺은 동맹이 야기한 치명적인 결과를 비꼬면서 맹렬하게 폭로하기도 했다.[64] 게다가 교회가 사람들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사례로 홉스는 가장 충격적인 근대의 사건인 갈릴레이에 대한 재판을 언급하기도 했다.[65]

6. 주요 저서[편집]


제목
발간 연도
법의 원리[66]
Elements of Law, Natural and Politic
1640년[67]
시민론[68]
De Cive[69]
1642년[70]
반화이트론[71]
De Motu, Loco et Tempore
1643년
리바이어던
Leviathan[72]
1651년
물체론
De Corpore
1655년
인간론
De Homine
1658년
자연철학의 10가지 대화
Ten Dialogues of Natural Philosophy
1678년
비히모스[73]
Behemoth
1679년[74]
이 밖에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리스어 원본을 영어로 최초 번역했으며, 말년에는 《오디세이》와 《일리아스》를 번역해서 출간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대표작은 단연 《리바이어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법의 원리》와 《시민론》에서도 《리바이어던》에서 말한 내용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도 《리바이어던》은 '근대인의 경전'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자신의 그 어떤 저작보다도, 혹은 당대의 그 어떤 저작보다도 근대인의 정신을 강력하게, 웅변적으로, 포괄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근대 국가의 원리를 최초로 정립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책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정치철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

7. 여담[편집]


  • 홉스는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와 함께 3대 사회계약론자로 불린다. 셋 다 자연 상태의 정치적 개인들이 서로 계약을 맺어 정부(권력)를 세운다는 사회계약론을 펼치지만 인간 본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강조하는 부분이 많이 다르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에 루소는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 상태는 평화로웠으나 문명 상태가 되면서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했다고 예상했다. 로크는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이타적인 것도 아닌 '백지(tabula rasa)' 상태라고 생각했고 다만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서로 싸우는 것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 사회를 질서 잡을 절대 권력으로서의 국가를 제시했고, 루소는 문명 상태의 불평등이 원래 이타적인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므로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 개인의 평등한 권리(투표권)를 강조하게 되었으며, 로크는 각각의 개인이 단지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동의'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을 뿐이라서 각 개인의 목적인 '개인의 생명과 자유(특히 사유재산의 자유)'를 지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자연권과 자연법과 시민법을 많은 사람들이 종종 헷갈리곤 하는데,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자연권은 '생존하기 위해 어떤 나쁜 짓도 할 수 있는 무제한적 자유'를 가르키고, 자연법은 그러한 자연권을 특정 주권자에게 완전히 양도하고 이제부터 '주권자가 정하는 규칙과 명령'을 따르겠다는 약속 그 자체를 말한다.[75] 여기서 '주권자가 정하는 규칙과 명령'이 바로 시민법이다. 이 시민법은 주권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인데 자연법에 의거하여 사람들은 이 시민법에 절대 복종해야 하므로, 이를 '절대 주권'이라고 부른다.

  • 홉스는 키는 6피트(180cm) 이상의 장신이었다.[76]

  • 형 에드먼드가 80세까지 살았고, 아버지 토머스가 83세까지 산 것으로 보이고, 홉스도 어린 시절에는 병약하긴 했지만 91세까지 살았으니 장수는 집안 내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77]

  • 홉스는 수학과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재능은 없어서 많은 학자들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술을 집필하였다.

  • 번역에 소질이 있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잘해서 말년에 《오디세이》와 《일리아스》를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하기도 했다.

  • 건강에 좋다며 평소에 유행가를 불렀다고 한다. 밤이면 자리에 누워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문을 단단히 닫고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그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폐에도 좋고, 장수에도 좋다고 생각했다.[78]

  • 인류학계를 양분하는 홉스주의자와 루소주의자의 논쟁은 유명하다. 홉스주의자는 원시전쟁이 잔악무도하고 절멸전쟁이라는 논지를 펼치는 쪽이라면, 루소주의자는 진짜 잔악한 전쟁은 문명화되고 나서야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측.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호모 사피엔스의 인종청소가 홉스의 주장을 뒷받침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부분은 아직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정작, 홉스와 루소는 국가나 사회가 만들어지기 전 '자연 상태'의 인간을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을 참고로 하여 '하나의 모델'로서 사고실험한 것이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현대 인류학계의 홉스주의자와 루소주의자의 논쟁과는 그 결이 다르다는 것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1] Hobbes의 용인발음은 /hɒbz/에 가까우므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호브스'로 표기해야 함이 타당하다. 유성 파열음은 '으'를 붙여 적기도 하거니와 현행 표기 원칙에 준하는 외래어 용례의 표기 원칙 제6장: 표기의 원칙에 "어말의 -s[z\]는 ‘스'로 적는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관용적으로 '홉스'라는 표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규정 용례는 '*홉스, 토머스'이다.(규정용례에 쓰인 별표는 해당 표기가 관용 표기임을 뜻한다.)[2] 1679년 10월 중순에 심각한 소변 장애가 일어났고 11월 말경에 뇌졸중으로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했다. 홉스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12월 4일 하드윅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하드윅에서 약 2km 떨어진 올트 허크널 교구의 성 요한 침례교회에서 치뤄졌다.[3] 생애 대부분을 캐번디시 가문의 비서 겸 가정교사로 지냈다. 그가 철학자로서 유명해진 것도 50세가 넘어서부터였다.[4] 사람들의 주권을 양도받은 사람 또는 단체를 주권자라고 한다. 군주정에서는 군주가, 귀족정에서는 귀족이, 민주정에서는 인민(people)이 주권자가 된다. 주권자는 보통 '법 위에 있는 자'로 설명되는데, 바로 그가 법을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5] 홉스의 사상 그 자체를 두고 자유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사상은 '정치적 개인의 총합으로 국가를 설명했다'는 데서 근대 자유주의의 맹아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데, 홉스 전문가 리처드 턱은 도덕적 상대주의에서의 끊임없는 다툼에 피로함을 느낀 사람들이 질서와 안정을 찾아서 결국 권위주의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을 홉스가 잘 보여주었다고 지적한다. (권위주의↔자유주의)[6] 홉스는 이 얘기를 종종 하면서, 자신은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을 즐겼다.[7] 아버지 이름도 '토머스 홉스' 였다. 똑같은 이름을 차남(토머스 홉스)에게 물려준 것.[8] 삼촌 프랜시스는 성공한 장갑 상인이었다.[9] 학사 학위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 존스 컬리지에서 딴다.[10] 존 월리스는 뉴턴 직전 미적분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기호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11] 정확히는 《법의 원리》와 《시민론》에서는 왕당파를 지지했으나, 《리바이어던》에서는 왕당파를 비판한다. 그래서 《법의 원리》를 쓰고 왕당파로 몰려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리바이어던》을 쓰고 나서는 왕당파에게 공격당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바이어던》이 의회파를 지지하는 책이라고는 볼 수 없다. 홉스는 이 책에서 일관되게 군주정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2] 1646년 여름, 생제르맹에서 망명 중이던, 훗날 찰스 2세가 되는 웨일스 공의 수학 교사로 취직했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618)[13] 홉스는 프랑스 로마가톨릭 성직자들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홉스를 증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리바이어던 전편에 걸쳐 홉스는 로마가톨릭이 진정한 종교와 안정된 정부를 위협하는 두 가지 해악 중 하나라고 몰아붙였다. (또 하나는 장로파였다.) 따라서 홉스는 리바이어던이 출간된 후에는 가톨릭 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보다는 차라리 영국이 더 안전해 보였다. 왕당파의 적으로 찍힌 사람들에게 유럽 대륙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56)[14] 홉스는 '유물론에 기반한 유신론'을 펼쳤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과학이 밝혀낸 자연의 질서는 '모든 운동은 물질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물질만이 물질을 움직인다'는 사실인데, 성경에서 신(God)과 영(spirit)은 세계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신과 영도 마찬가지로 물질이라는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43~244 참조)[15] 그 중 가장 유명한 글은 브럼홀 주교를 비판한 《브럼홀 주교의 '리바이어던 잡기'에 대한 답변 (1668)》이다. 원래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나왔을 때 브럼홀 주교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쓴 책이 《리바이어던 잡기 (1657)》라는 책인데, 홉스는 자신이 무신론자로 몰리자, 11년 전에 나온 이 책을 다시 꺼내와 정성스럽게 재반박하는 글을 썼던 것이다.[16] 다만 짝사랑으로 보인다. 시에는 "나는 아직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사람도 있네...(...) 하지만 자랑할 것도 없고 그녀의 환심을 얻을 길도 없네", "아름다운 육체에 깃들어 있는 더 아름다운 정신을 사랑한 사람을.."이라고 쓰여져 있다.[17] 홉스의 일생 중 상당 기간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홉스의 가문은 중하류층이었고, 아버지는 홉스가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가정을 버렸다. 공포가 끊임없이 홉스를 따라 다녔다. 영국 내전이 발발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10년간 망명길을 떠났다. 망명지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인들과 망명한 영국 성직자들을 두려워했고, 분개한 왕당파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무신론 혐의를 받아 언제 처형될지 알 수 없었다. 크롬웰 공화국 시기에도 그랬고 왕정 복고 시기에도 그랬다. 홉스는 또한 수학자로서 명성을 상실할까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왕립학회의 실세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승산 없는 싸움이었지만.. 요컨대 홉스는 긴긴 세월을 전쟁의 공포 속에서 보냈다. 그 나머지 기간은 평화로웠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583~584)[18] 홉스는 다소 논쟁의 여지가 있는 방식을 선택한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기 보존의 욕망을 품고 있는데, 그 욕망을 충족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법이 없다면 모든 사람은 욕망 충족의 권리를 지닌다. 목적에 대한 권리가 있는 자는 수단에 대한 권리도 있다. 그러므로 자기 보존의 권리가 있는 자는 자기 보존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에 대한 권리도 있다. 그것이 타인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일이라 할지라도.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81)[19] 자연 상태에서는 누구나 자연권을 지닌다. 즉 모든 것에 대한 권리, 혹은 최소한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권리가 있다. '모든 것에 대한 권리'와 '생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권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홉스는 이 두 가지를 혼용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그 둘이 서로 포함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81~382)[20] 심지어, "자연적으로 혈통이 우수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지한 자"라고 칭한다. 이 주장은 귀족들의 심기를 건드려 그가 공격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21] 힘센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잠은 자야 한다. 잠잘 때 습격을 받으면 대책이 없다. 이것이 "이빨과 발톱에 피가 물든 자연"을 말하는 사람들의 논거이다. 자연적 평등은 도처에서 전쟁을 낳는다. 누구나 취약하다는 것은 누구나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48)[22] 원문 : "In such condition there is no place for industry, because the fruit thereof is uncertain, and consequently no culture of the earth, no navigation nor the use of commodities that may be imported by sea, no commodious building, no instruments of moving and removing such things as require much force, no knowledge of the face of the earth, no account of time, no arts, no letters, no society, and which is worst of all, continual fear and danger of violent death, and the life of man,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리바이어던』)[23] 자연 상태가 그토록 비참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 사람들은 같은 대상을 놓고 경쟁한다. 만인을 만인의 적으로 만드는 둘째 요인은 더 흥미롭다. 모든 사람이 타인이 자기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최선의 방어는 예방 공격이다. 즉 최고의 생존 전략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의심의 결과는 "경계함", 즉 만인에 대한 만인의 불신이다. 불신이 만연하면 공격적 성향이 없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공격자가 된다. 모든 사람이 나를 불신하면 나 역시 모든 사람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셋째 요인은 일부 사람들이 지닌 공명심이다. 이로 인해 만인은 만인에 대해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 홉스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존경받기를 원한다. "최소한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는 정도만큼은 평가해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자기를 경멸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기미가 보이면 자기를 경멸한 사람을 공격하여 평가 수정을 강요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더욱 높아질 것을 기대한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79~380)[24] 권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은 무엇을 할 수 없는 규칙을 말한다. 홉스에 따르면 자유는 방종(전쟁 상태)을 불러오기에 사람들은 그 자유를 규제하는 규칙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25] 이는 내가 포기할테니까 너도 포기하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후술할 '신의 계약' 참조) 그리고 홉스에 따르면 '주권을 포기'함은, 곧 양도(transfer)를 말하는데, 이는 특정인이 그 권리를 행사하도록 넘기는 형태로 자신의 권리를 버리는 것이다. 포기하는 방법이 바로 '양도'인 것.[26] 홉스는 군주정을 지지하므로 권력을 양도받은 주권자는 군주를 말하는 것이다. 다만 그의 정치 이론은 군주정 뿐만이 아니라 귀족정, 민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귀족정에서 주권은 소수의 귀족에게 있고, 이들이 법을 만드는 주체다. 민주정에서 주권은 다수의 인민들에게 있고, 따라서 인민들에 의해 법이 만들어진다. 물론 군주정에서는 1명의 군주에게 주권이 있고 그 군주가 마음대로 법을 만들 수 있다.[27] 사람들은 모두 단일한 의견의 원천을 찾아야 하고, 불확실하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경우 그들 각각의 위험에 대해 그 원천의 견해를 받아들일 것이다. 이 단일한 원천이 지닌 힘은 시민들을 보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원천은 동일한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조율할 수 있을 것이고, 시민들에 의해 새롭게 수립된 '코먼웰스'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나 타국에 대해 공동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동의 판관은 그 정의상 코먼웰스를 지배하는 주권자(sovereign)라고 할 수 있다. 주권자는 반드시 한 사람일 필요가 없지만, 어떤 유형의 회의체적 결정이라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의지만이 필요하다. 홉스는 정치에 관한 저작 세 권 모두에서 다른 종류의 정부 형태보다 군주정을 선호하긴 했지만, 그의 정치 이론은 공화정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정부 형태에 차별 없이 적용될 수 있다. 홉스의 이론은 『리바이어던』 37장에 가장 깔끔하게 요약되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주권자를 "불확실한 모든 경우에서 우리의 사적 판단을 일임한 신의 대리인" (2권)으로 묘사했다.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유서가, p.134~135)[28] 그렇기 때문에 주권자가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지 못했다면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사람들의 야망, 탐욕, 분노 및 다른 정념들은 말로 하는 약속만으로는 억제할 수 없으며,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힘에 대한 공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29] 계약자 쌍방이 상호 신뢰는 하고 있지만 계약의 내용을 현재 이행하고 있지 않는 사이에, 만일 한 신약(신의 계약)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인 자연상태에서 체결되었다면, 이 계약은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무효이다. 그러나 그들 쌍방에 대하여 약속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와 힘을 가진 공통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그 계약은 무효가 아니다. 먼저 신약을 이행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뒤이어 이행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강제적인 힘에 대한 공포가 없으면 말로 하는 약속은 너무나 약해서 사람들의 야망, 탐욕, 분노 및 다른 정념들을 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기가 품은 공포심이 정당한지에 대한 판단도 자기가 해야 하는 그런 자연상태에서는 강제적인 힘을 기대할 수 없다. (Michael Oakeshott, Thomas Hobbes, Leviathan (New York: Simon&Schuster, Touchstone edition, 1997) p.105)[30] '신'의 계약이 아니다. '신의(信義)' 계약이다. 즉 믿음을 전제로 하는 계약이다. 그냥 계약(contract)은 쌍방이 합의를 하기만 한다면 즉시 성립이 되는 계약이지만, '신의(信義)' 계약(covenant)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일단 믿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31]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다른 사람들과 신의 계약을 맺는 주권자, 즉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홉스는 이 합의가 계약(contract)이 아니라 신의 계약(covenant)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계약은 물건을 팔 때처럼 쌍방이 각자의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상호 양도하는 것이다. 어느 편이든 나중에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신의 계약에서는 어느 한쪽이 미래에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것이 계약과 다른 점이다. 주권자를 세우는 신의 계약에서 미래에 발생하는 의무는 정부에 대한 변함없는 복종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56~257)[32] 다만, 계약을 할 때 주권자는 아직 없는 상태이며 계약을 하고 나서 권리가 양도되어야 주권자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므로, 주권자는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계약의 당사자인 백성들은 계약을 준수해야만 하지만,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주권자는 계약과 무관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것이 홉스의 논리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431 참조)[33] 여기서는 '국가' 또는 '정부'를 의미한다.[34] "I Authorize and give up my Right of Governing my selfe, to this Man, or to his Assembly of men, on this condition, that thou that give up thy Right to him, and Authorise all his Actionsin like manner." This done, the Multitude so united in one Person, is called a COMMON-WEALTH, in latine CIVITAS. This is the Generation of that LEVIATHAN, or rather (to speake more reverently) of that Mortall God, to which we owe under the Immortal God, our peace and defence. (17.13)[35] '서설'에는 일부 독자들이 불쾌하게 여길 만한 주장이 또 있다. 시민 정부가 하느님의 세계 창졸르 모방하여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있으라." 하니 사람이 있었고, 인간이 "정부가 있으라." 하니 정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하느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으므로 사람에게도 신을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편〉 82장에서도 왕들을 신이라 말하고, 예수도 〈요한복음〉에서 같은 말을 했으며, 1660년에 《인간은 신이다(Men are Gods)》라는 제목을 단 훌륭한 책이 두 권이나 출간되었다. 홉스의 주장에서 불쾌감을 주는 내용은 신의 창조 활동을 정치 영역에서는 백성들이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통치와 신의 통치 사이의 유사성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주권자가 일종의 신이라는 주장에 한하여 그렇게 한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정부가 "(영원불멸의 하느님의 가호 아래) 인간에게 평화와 방위를 보장하는 지상의 신"이라고 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말도 아니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76~378)[36] "평화를 추구하라"는 것이 자연법의 제1법칙이고, 이로부터 나머지 법칙들이 연역된다. 제2법칙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1법칙으로부터의 연역이다.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제1법칙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제3법칙은 "계약을 준수하라"는 것인데, 이 법칙은 제2법칙과 '자연은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옛 격언에서 연역된다.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더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권리 포기가 무의미해지고, 자연은 무의미한 일, 즉 쓸모없는 일은 하지 않으므로 약속을 준수하는 것이 자연법이라는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51)[37] 이 시민법이 적용되는 국가를 홉스는 코먼웰스(commonwealth)라고 불렀다. 「시민법 체제 아래의 상태는 이후 저자들에 의해서 '시민사회'라는 표준적인 용어로 명명되었지만, 홉스는 (비록 자신이 이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보다 일반적으로는 '코먼웰스(commonwealth)'로 부르거나,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 '도시', 또는 '국가')라고 썼다.」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우서가, 2020, p.120)[38] 홉스에 따르면 절대 주권의 구성 요소는 두 가지이다. 정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적 힘을 주권자가 모두 보유할 것과 (백성들의 삶의 보존을 위해) 생활의 모든 외적 측면을 지배할 권한이다. 여기에서 정치적 힘은 전쟁의 선포와 강화, 법률의 제정과 폐기, 형사 피의자 재판, 그밖에 정부의 행정 사무에 관한 권한을 말한다. 지배권으로 말하자면 주권자는 백성에게 부모를 죽이라고 명령할 권한도 있다. 절대 주권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양도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59)[39] 그렇다면 백성들에게는 어떤 자유가 남아 있을까? 백성들은 주권자가 금지하지 않은 문제들에 관해서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유는 잔반(殘飯, 먹고 남긴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59)[40] 홉스의 변함 없는 입장은 자연 상태에서는 사유 재산이 없다는 것이다. 만인이 만물에 대해 권리를 지니고 있다면, 그 누구도 무언가를 소유할 수 없다. 재산은 시민 국가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주권자에게 속한다. 모든 권리가 주권자에게 양도되었으므로 주권자가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61~262)[41] 한번 사회계약에 동의했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불평을 말할 권리조차 갖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권리는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자기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뿐이다. 홉스의 견해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자기 보호에 관한 이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이는 생존본능을 상징하며,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사회계약을 맺는 온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생명의 위협에 맞서서 싸울 수 있는 개인적인 권리가 곧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권리와 같은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이 말의 의미는, 정부를 포함해서 어느 누가 당신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능적으로 당신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생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잘된 일이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다면, 통치 권력을 가진 자는 당신을 붙잡아 죽일 수 있고 또 죽일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통치 권력자의 권리 안에 완전히 속해 있기 때문이다. (L.M. 존스 백비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의 초대』 김용환 옮김, 서광사, 2013, p.28)[42] 홉스는 군주정을 최선의 정부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스에 있던 홉스는 1652년 의회파 올리버 크롬웰가 장악한 영국(코먼웰스)으로 돌아간다.(코먼웰스는 정치공동체, 즉 국가를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홉스가 철학적으로 의회파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홉스는 크롬웰이 장악한 시기를 '내란의 시기'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군주정에 대한 이러한 홉스의 지지는 1660년 왕정복고 때 찰스 2세에게 상(연금 해택)을 받음으로써 보상 받는다.[43] 홉스에 따르면 군주정에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모든 인간에게 있는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귀족정으로 가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여러 사람들의 감정이 격돌하기 때문이다. "불 붙은 석탄 덩어리도 흩어놓으면 따스하지만, 모아놓으면 활활 타오르게 된다." 군주정은 유지비가 많이 든다고 하는데, 귀족정은 더 많이 든다. 귀족은 각각 군주처럼 돈을 쓰기 때문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69)[44] 돈으로 논리를 펼쳐나간다면, 돈이 여유가 있는 시기에서는 이런 논의들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감정의 문제라고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 여러 사람의 감정보다 더 낫다는 어떠한 '논리적'인 근거도 우리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45] (앞선) 홉스의 군주정 옹호론은 맞지 않는 비유와 그릇된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별로 강력하지 않다. 홉스가 군주정을 옹호한 진정한 이유는 "내란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홉스는 내란이야말로 정치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했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69)[46] 백성들은 주권자가 법으로 금지하지 않은 문제들에 관해서만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혹자는 홉스가 외적 측면(사회 활동)과 내적 측면(사생활)으로 나누어, 마치 백성의 외적 측면만 법으로 통제하는 듯이 말하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홉스는 주권자가 백성의 내적 측면을 통제하는 것을 막아 두지 않았다. 홉스의 정의에 따르면 주권자는 백성을 통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어낼 수 있다.[47] 코먼웰스에서는 오직 주권자만이 자유를 지니고, 그 자유는 절대적이다. 오직 주권자만이 권위를 지니고, 그 권위는 무제한적이다. 오직 주권자만이 재산을 지닐 수 있고, 그가 통제하는 모든 것이 그의 재산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90)[48] 하지만 홉스는 주권자는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고 있어서 동정을 받아야 하고, 백성들의 끝없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주권자는 "다른 사람들, 즉 백성들의 일을 지속적으로 돌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주권자의 생명도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는다. 그는 코먼웰스의 수장이므로 "항상 적의 공격 대상"이 된다. 주권자는 다른 주권자들과의 관계에서 자연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언제든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백성들은 "통치하는 수고"를 치르지 않아도 된다.(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90)[49] 홉스는 이 시기에 그의 조국이 "통치자의 권리와 백성의 의무에 관한 질문들로 불타올랐으며 이것으로 전쟁이 시작될 전조가 있었기 때문에" (『시민론』서문 19절) 당시 자신의 정치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후일 이야기했다.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우서가, 2020, p.57~58)[50] 사실 위임이라기보다는 '양도'하는 것이지만..[51] 데이비드 고티에 『리바이어던의 논리』 박완규 옮김, 아카넷, 2013[52] Hobbes did take positions that strongly disagreed with church teachings of his time. For example, he argued repeatedly that there are no incorporeal substances, and that all things, including human thoughts, and even God, heaven, and hell are corporeal, matter in motion. He argued that "though Scripture acknowledge spirits, yet doth it nowhere say, that they are incorporeal, meaning thereby without dimensions and quantity." (Thomas Hobbes 『Human Nature: or The fundamental Elements of Policie (1650)』 I.XI.5.)[53] 홉스의 비판자들은 유형의 하느님이라는 관념이 무신론적이라고 주장했다. 홉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물체만이 실체이다. 실체만이 진정으로 존재한다. 하느님은 진정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물체다. 따라서 홉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하느님이 무형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쪽은 전건긍정의 형식으로 말하고, 저쪽은 후건부정의 형식으로 말하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3의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홉스는 《성경》이 판단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한다.'고 했으니(물체만이 물체를 움직인다), 이것은 하느님이 물체라는 뜻이지 결코 비물질적 존재라는 주장도 아니요,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43~244)[54] 비물질적 실체, 무형적 실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이교도들에게서 온 말이 아니던가? 이들은 꿈에 보이는 두뇌 속의 희미한 거주자들을 무형의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이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유형적 물체나 있는 일이다. 당신은 그런 주장이 하느님에게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기독교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웠는가? (Thomas Hobbes, English Works, ed. William Molesworth, 4:427) /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508에서 재인용)[55] 하느님이 불가지한 존재라면, 신에 관해 어떤 관념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느님에 관한 담화는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신의 존재와 영원성과 전능함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대다수의 기독교도는 홉스의 논리적 결론에 분개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정교한 종교적 담화들은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인가? 홉스에 따르면 종교적 언어의 목적은 하느님을 숭배하거나 그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다. 종교적 언어는 오직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일 뿐 신에 관한 기술이 아니기에, 하느님의 속성은 그 어떤 것도 기술하면 안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운동 중에 있고' 모든 원인은 운동 중에 있지만,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운동 중에 있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신의 영광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로마가톨릭 신학도 이와 비슷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말'은 비록 사실이라 하더라도 금기였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40~242)[56] 홉스에 의하면 신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인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신을 영적인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을 눈에 보이는 물체로 정의하게 되면 속된 느낌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런 속된 느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로 부각시켜 신에게 명예를 부여하려는 경건한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물리적 실체 외에 다른 실체란 존재하지 않기에 신을 물질로부터 독립된 실체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태하 『근대 영국철학에서 종교의 문제』 북코리아, 2018, p.128~129)[57] 홉스 철학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는 홉스를 두고 "신을 믿는 유물론자"라고 평가했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목차 참조 ㅡ 4장. 신을 믿는 유물론자)[58] 브럼홀이 홉스가 무신론자라고 주장한 근거는 그의 원칙들이 무신론을 낳는다는 것이다. 홉스는 반론을 제기한다. 설혹 브럼홀의 주장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영향을 끼치는 무신론자(anatheist by consequence)"라는 결론이 나올 뿐이지, 고의적으로 무신론자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브럼홀은 위험한 주장을 했다. 홉스는 "이와 같은 '영향에 의한 무신론' 혐의는 누구에게나 씌울 수 있다. 매우 독실한 신자에게도 그런 혐의를 씌울 수 있다."고 말한다. 홉스에 따르면 브럼홀도 무신론자이다. 브럼홀은 하느님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어디에나 있다."고 했는데,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추론하면 온 세상이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온 세상 안에 있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범신론이고 범신론은 무신론이나 마찬가지다. 홉스는 오히려 하느님이 "가장 순수하고 단순하고 비가시적인 유형의 영"이라는 자신의 주장이 그보다는 더 낫다고 주장한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533)[59] 스피노자의 심신평행론과 범신론에서 홉스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듯이 당시 홉스의 유물론은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60] 분명한 사실은 홉스의 견해가 17~18세기 영국 이신론자들과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특히 18세기 영국 이신론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태하 『근대 영국철학에서 종교의 문제』 북코리아, 2018, p.126)[61]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유서가, p.168[62]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유서가, p.171[63] 그의 종교 교리 가운데 논란거리가 된 것은 ⑴ 종교의 본질 ⑵ 계시의 본질 ⑶ 예언자의 본질과 신뢰성 ⑷ 기적의 본질과 신빙성 ⑸ 그리스도의 직무 ⑹ 성경의 권위 ⑺ 성경의 구성 ⑻ 천국의 소재와 하느님의 왕국 ⑼ 지옥 ⑽ 로마가톨릭 교회의 위험성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391)[64]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유서가, p.172[65] 리처드 턱 『홉스』 조무원 옮김, 파주, 교유서가, p.174[66] 홉스는 《법의 원리》에서 절대 군주정을 주장하여 의회파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왕당파들의 체포를 보며 신변의 위협을 느낀 홉스는 급히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 이후 11년간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67] 1640년에 원고 형태로 사람들에게 퍼졌고, 1650년에는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돌아다녔다.[68] 《철학의 원리》 3부작으로 계획된 책 중 제일 처음으로 출간 되었다. 원래 계획에서 1부는 《물체론》, 2부는 《인간론》, 3부는 《시민론》이었지만 출간은 《시민론》이 제일 먼저 된 것.[69] 원 제목은 Elementorum Philosophiae Sectio Tertia de Cive 이다.[70] 1642년 4월에 초판을 출간했고, 1647년 1월에 2판을 출간했다. 홉스는 《시민론》 2판의 흥행에 성공하며 정치철학자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 책은 1654년 로마가톨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71] 토머스 화이트의 《세계론 대화록 3편》에 관한 비평이다.[72] 원 제목은 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l and Civil 이다.[73] 영국 내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비히모스》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주장한 정치 원리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정부에 어떤 나쁜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준 일종의 사례 연구라고 할 수 있다.[74] 1668년에 지어졌으나 찰스2세의 요청으로 출간이 반려되었다. 이후 1679년에 최초의 해적판이 돌아다녔고, 홉스가 죽고난 1681년에 정식 출간되었다.[75] 자연법의 제1법칙은 "평화를 추구하라" 제2법칙은 "만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라" 제3법칙은 "계약을 준수하라"이다. 즉 자연법은 권리를 주권자에게 양도하고 주권자의 명령(시민법)에 따르겠다는 약속(계약)까지를 말하는 것이다.[76] "형 에드먼드는 홉스만큼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180cm 정도는 되었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5)[77]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26[78]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진석용 옮김, 교양인, 2020, p.479~480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2 18:50:17에 나무위키 토머스 홉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