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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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철도나 제3지선 철도, 일부 노선들은 관련 정보 부족으로 인해 누락이 있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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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해선
Thohae Line
土海線


노선 정보
분류
폐선
기점
개풍역
종점
해주역
역 수
18개
운영자
파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로고.svg
사용차량
노선 제원
노선연장
궤간
협궤, 표준궤
선로구성
단선
사용전류
비전화로 추정
표정속도



土海線

1. 개요
2. 상세
3. 만약에: 토해선의 존속?
4. 여담
5. 통일 이후
6. 역 목록


1. 개요[편집]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 성역(土城驛, 1952년 개풍역으로 변경)과 황해도(북한 행정구역상 황해남도) 해주시 주역(海州驛)을 잇던 철도. 1932년 9월 1일 전 구간이 개통된 이래, 경기도 북서부와 황해도 남동부를 잇던 철도다.


2. 상세[편집]


황해도의 곡창지대 연백평야를 가로지르며 부설된 노선이니 척 보면 답이 나온다. 조선총독부뜯은 셔틀용(…). 비슷한 시기 경기도에 부설된 수인선수려선과 성격을 공유한다. 게다가 또 다른 공통점을 들라 하면 이 노선도 762mm 협궤로 깔린 철도다.

토성역에서 경의선과 환승되고, 해주역에서 황해선(북한 철도체계상 황해청년선)에 접속되어 있었다. 해주역에서는 옹진군 방면으로 향하는 해옹선(해주-옹진간)과 이어진다. 황해선, 해옹선은 같은 회사가 지은 사철에 같은 궤간의 협궤였지만, 표준궤경의선과는 직접 연결은 불가능하고, 토성역에서 환승만 가능했다.

본 노선을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8.15 광복 직후 삼팔선을 기준으로 한 남북분단으로 한반도의 철도체계가 남북으로 단절되던 상황에서, 그나마 대부분의 구간이라 할 토성역 - 청단역 58.7km 구간이 38선 이남에 놓여있어 6.25 전쟁 직전까지 대한민국 철도체계의 일부로서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1949년에 이 노선을 타고 연안역까지 다녀온 신문기사를 보면 "고깐차로만 연결된 장난감 같은 황해선 열차"라고 묘사하였다.#[1]

불행하게도 6.25 전쟁 이후 해당 노선은 전부 북한 지배영역으로 넘어간 뒤, 토성역(개풍역) - 예성강역 - 성호역(배천역 동쪽) 구간은 사라졌으며, 이 때문에 북한 철도체계상 평부선과는 연결되지 않게 되었고, 성호역은 위치가 북쪽으로 이설된 다음 은빛역으로 개칭되었으며 그나마 나머지 은빛 - 해주 구간은 배천선으로 개칭되어 북한 철도체계의 일부를 이룬다.

이렇게 일부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선로의 일부를 끊어놓은 것은 6.25 전쟁 당시 벌어진 한 전투 때문이다. 국군에서는 '금천 전투'라고 부르는 전투인데, 1950년 10월 9일 유엔군이 서부전선에서 북진을 시작할 당시, 개성금천 일대에 주둔한 북한군 19사단, 27사단이 개성 북쪽의 험준한 산지와 38선 일대에 미리 건설해놓은 진지를 바탕으로 하여 유엔군이 평양으로 진격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미 제1기병사단의 제7기병연대가 토해선의 예성강철교가 폭파되지 않은 채 멀쩡한 것을 보고 예성강을 도하하여 예성강 서안을 방어 중이던 북한군 43사단과 격전 끝에 배천을 점령해 교두보를 확보한 뒤,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예성강을 따라 진격해 경의선이 예성강을 건너는 지점인 한포리를 점령해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했고 덕분에 북한군이 유엔군의 포위망에 걸려버렸다. 문제는 이 2개 사단이 북한군의 잔여병력중 장비가 충실하고 조직적으로 훈련된 마지막 정예병력이었는데 이 병력이 유엔군 포위망에 걸리는 바람에 T-34 전차같은 중장비를 몽땅 버리고 맨몸뚱이로 간신히 원산시 방면의 산악지대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더 이상 북한군은 조직적으로 UN군을 막을 수 없었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전혀 예상치 못한 다리 하나 때문에 방어 계획이 완전히 망한 셈이며, 지금도 휴전선에서 해당 철교가 상당히 가까운 관계로 철교를 복구시 재수없으면 북한의 입장에서 앞서 말한 참극이 충분히 재현될 수 있으므로 일부러 복구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 이전에 지금의 열악한 북한군 군사력으로는 철교가 끊어졌든 이어졌든 전황에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국군과 미군은 그깟 철교 없어도 도하하거나 무인 폭격, 항공 강습 등 다른 대체 수단이 널리고 널려서 신경 쥐뿔도 안쓴다는건 함정 끊으려면 한국전쟁 당시 진작 했었어야지 그래서 2017년 현재도 예성강철교는 경간이 일부 끊어져 있어서 통행이 불가능하다. 다만 교각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NLL 대화록 논란와중에 공개된 2007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철교를 조금만 손보면 복구가 가능하며, 예성강철교와 토해선을 이용해서 해주항개성공단의 물자 수송에 쓸수 있다고 밝혔다.


3. 만약에: 토해선의 존속?[편집]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6.25 전쟁이 발발하지 않고 군사분계선 대신 삼팔선이 남북한의 경계선으로 고착되었더라면, 혹은 개성시, 연백군을 지켜내었거나 후에 탈환하였더라면 이 노선은 비록 종착역인 해주역까지 갈순 없지만 대한민국 철도체계의 일부로 한국 국민들이 이용할수 있었을 것이며, 이에 더해서 한국전쟁전에 관광명소로 이름 높았던 예성강철교와 더불어 국내에 얼마 남지 않은 협궤 노선이라는 특징도 있어 철도 동호회원들의 주요 답사 대상이 될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로 존속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 762mm 협궤 차량의 운송능력 한계와 최전방 지역이라는 사정상, 군사적 목적이 아닌 한 교통수요 증가에 도움을 줄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

  • 단선이라 평상시 수송능력 저하 및 비상시 수송능력 한계를 빨리 맞이한다는 점.

  • 해주라는 대도시겸 종착역이 북한령이라 한국에 남은 토해선만으로는 존재 의미가 떨어진다는 점. 이는 북한의 강원선이나 금강산청년선만 봐도 충분하다.

  • 최전방이라 민간인 인구증가도, 산업시설 유치도 기대할수 없는 곳이라는 점.

  • 노선중 삼팔선에서 너무 가까운 지점도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전쟁시 개전 1시간만에 배천이 점령당하면서 철도가 끊어져서 연백군청단군에 있던 병력은 바다로 밀려가서 쪽배를 타고 강화도등 주변 섬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던 사태와 같이 유사시 군사용으로도 사용이 부적합함.

이런 이유 때문에 토해선은 같은 협궤철도였던 수인선이나 수려선보다 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후자의 경우라면 서울과도 훨씬 더 가깝고 교통수요 증가를 기대해 볼만한 수도권 노선이었는데도 푸대접받다가 폐선 크리를 당했는데.. 더욱이 철도 교통에 무관심한 높으신 분들의 행태를 감안한다면 더욱 더...

하지만 완전히 희망을 버릴수도 없는게, 남북이 통일되거나 개성, 연백을 되찾는다면, 최소한 긴장완화, 관계개선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수도권과 가까운 황해도 남부해안지대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토해선의 부활을 기대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표준궤개궤되어 있으므로 사라진 배천~개풍(토성) 구간을 복구하여 서울~개성~해주를 잇는 주요 교통체계로 재편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서해안 일대를 개발하려는 장기적 안목에서라면 해당 지역의 교통 인프라 구축은 필수 불가결한 기초 사업이 아닐수 없다.[2] 본 문서에 수록된 역 목록이 역사상 유물이 되어버린 과거의 그것에서 새로 단장된 목록으로 교체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4. 여담[편집]


황순원의 소설 이 바로 이 토해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천태, 청단)

이상(작가)도 지팡이 역사라는 단편소설에서 토해선을 지나가는 기관차에 대해 묘사했다. 출처


5. 통일 이후[편집]


수도권과 황해도 남부를 잇는 중요한 연락선이므로 토해선의 복구는 필수적이다.

일단 한국전쟁 이후 무너진 예성강철교를 복구하고, 개풍역(토성역)배천역을 다시 철로로 연결하기만 하면 토해선은 부활하게 되며, 서울에서 개성을 거쳐 해주로 가는 주 간선망이 만들어진다. 북한 치하에서 토해선의 후속작 격인 배천선은 이미 표준궤로 개궤되었지만, 한심한 북한의 철도 환경을 보면 다시 신설에 가까운 투자가 필요하다.


6. 역 목록[편집]


1940년 당시의 노선으로, 6.25 전쟁 후의 실태는 배천선 문서를 참조할 것.


역명
환승노선
해방전 행정구역
비고
0.0
토 성
土 城
경의선
경기도
개풍군
토성면
개풍역
6.9
예성강
禮成江

서면
한국전쟁 후 폐역, 폐선
12.2
성 호
星 湖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
은빛역(배천선의 시종착역)
17.2
배천온천
白川溫泉

배천역
21.0
홍 현
紅 峴

도촌면

24.6
무 구
無 仇

신월역
28.6
연안온천
延安溫泉

호동면
온정역
34.1
연 안
延 安

연안읍

39.8
봉 서
鳳 西

봉서면
오현역
45.5
풍 천
豊 川

해룡면

50.5
천 태
天 台

용도면

55.2
심 계
深 桂

월계역
58.7
청 단
靑 丹

벽성군
추화면

62.9
내 성
來 城

영천면
화산역
67.7
천 결
泉 決

갈산역
74.3
영 양
迎 陽
황해선
장방역(배천선의 시종착역)
79.2
동해주
東海州
해주항선
해주부

81.5
해 주
海 州
옹진선
해주청년역

현재의 황해청년선에 해당되는 노선과는 천결역 조금 서쪽에서 역 없이 합류하였다. # 그리고 해방 당시 운행 실적에 따르면 사리원-해주간 열차는 영양역을 통과한 것으로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자료 중 6.25 전쟁 중이던 1952년의 대한민국 정부 직원록 자료를 보면 토해선은 교통부 서울철도국이 관할하는 노선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해당 자료의 토해선 항목에 유일하게 등재되어 있는 연안역에 근무하는 것으로 기록된 1명이 정부기록에 존재한다.#

[1] 기사의 주 내용은 철도 기행문이 아니고 연안성당에서 운영하는 고아원 탐방기여서 철도에 대한 묘사는 이 부분이 전부다.[2] 현 개성과 평양사이의 구간중 토해선 + 황해청년선 연선의 개성 ~ 해주 ~ 사리원 ~ 평양 권역이 평부선의 개성 ~ 평산 ~ 평양 권역보다 더 발달해 있다. 그래서 될지 안될지 모르는 경의고속철도가 평부선과는 달리 해주경유로 계획 중이고, 통일 이후에는 토해선 + 황해청년선 구간이 경의본선으로, 평산방면의 경의선 본선이 지선으로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경의선 염주-남신의주 구간도 원래 현 백마선 구간이 본선이지만 북한에서는 양시선 구간을 평의선 본선으로 변경했으며 국내에서도 사실상 북한 측 평의선 구간을 경의선 본선으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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