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음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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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룬의 前 축구선수


이름
파트리크 음보마
Patrick M'Boma
출생
1970년 11월 15일 (53세)
카메룬 두알라
국적
[[카메룬|

카메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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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소속
선수
파리 생제르맹 FC (1992~1997)
LB 샤토루 (1992~1994 / 임대)
FC 메스 (1995~1996 / 임대)
감바 오사카 (1997~1998)
칼리아리 칼초 (1998~2000)
AC 파르마 (2000~2001)
선덜랜드 AFC (2002 / 임대)
알 이티하드 트리폴리 (2002~2003)
도쿄 베르디 (2003~2004)
비셀 고베 (2004~2005)
국가대표
파일: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7경기 33골 (카메룬 / 1995~2004)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2.3. 은퇴 이후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카메룬의 전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선수 시절 프랑스와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약했으며 중간에 일본 J리그에 건너가 그야말로 리그를 폭격했던 선수였다. 주로 프로 무대에서보다 카메룬 대표팀에서 더 빛났던 애국자 기질의 선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카메룬 대표팀의 황금기를 주도한 스타 플레이어 출신.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카메룬 두알라 출신으로, 유소년 시절 프랑스의 강자 파리 생제르맹 FC의 유소년 팀으로 스카웃되어 일찌감치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후 1992년 파리 생제르맹 1군팀에 콜업되어 자신의 첫 프로 경력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곧장 하부리그인 LB 샤토루 팀에 임대된다.

샤토루에서 그는 꽤나 재능을 발휘하는데 프로 초년인 1992년, 리그 두에서 19경기 5골로 괜찮은 활약을 펼쳤고, 팀이 강등된 후인 1993-94 시즌에도 샤토루로 재임대되어 3부리그 29경기 17골로 샤토루의 2부리그 재 승격에 결정적인 수훈을 올린다. 이 활약상에 원 소속팀 파리 생제르맹은 그를 1994-95 시즌부터 전격적으로 1군 선수로 합류시켰고 나름 출전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리그 8경기 1골에 그치고 FA컵, 유럽대항전 등 기타 출전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시즌 12경기 4골로 아직은 그가 파리에서 뛰기 벅찬 것만 확인해버렸다. 1995-96 시즌에는 리그 앙 FC 메스에 임대되었으나 17경기 4골로 애매했고, 1996-97 파리로 돌아왔지만 역시 11경기 2골에 그쳤다.

그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곳은 바로 신생 프로리그인 일본 J리그였다. 감바 오사카에 입단한 그는 28경기 25골로 리그를 정복해버리며 일본 축구팬들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득점왕은 물론 시즌 베스트 일레븐까지 꿰차는 활약이었다. 1998시즌 초반에도 그는 감바에 남아 6경기 4골을 넣으며 의리를 지켰지만, 월드컵을 다녀온 이후 높아진 그의 몸값은 감바가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그는 당시 세계 최고 리그였던 세리에 A칼리아리 칼초의 입단 제의를 받고 다시 유럽으로 컴백하게 된다.

칼리아리에서도 활약은 좋았다. 1998-99 시즌 중반 입단한 그는 13경기 7골로 경기당 0.5골의 높은 골결정력을 뽐냈고, 이듬해 1999-2000 시즌에도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27경기 8골로 중위권 팀에서 고군분투했다. 특히 이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선 4경기 6골을 넣으면서 대회 득점왕에도 올랐다. 당시 세리에 A 7공주 팀 중 하나였던 AC 파르마가 전격적으로 그를 영입했고, 스타 군단 파르마의 두터운 스쿼드 속에서도 2000-01 시즌 그는 20경기 5골로 꽤나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월드컵을 앞둔 2001-02 시즌 초반, 파르마에서 4경기 0골의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파르마는 그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로 임대보내지만 그 곳에서도 음보마는 9경기 1골로 폼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월드컵을 잘 치르고 난 뒤 그는 유럽을 떠나 변방 무대인 리비아 리그로 이적한다. 리비아 리그 알 이티하드 트리폴리에서 28경기 12골로 골 감각을 회복한 그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활약했던 일본 무대로 전격 복귀한다. 리그 중위권 팀 도쿄 베르디에 입단해서 2003시즌 23경기 13골로 노익장을 과시했고, 2004 시즌 도쿄 베르디에서 12경기 4골, 도중 이적한 빗셀 고베에서 6경기 2골로 도합 시즌 6골을 넣으며 슬슬 하락곡선을 타게 된다. 2005 시즌 고베에서 4경기 0골에 그치면서 그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5년 A매치에 데뷔한 이래 1997년부터 대표팀의 주축으로 거듭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에서 주포로 활약하며 팀의 본선진출을 견인했고, 본선 엔트리에도 올라 3경기를 모두 주전으로 소화하며 3차전 칠레 전에서 본인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을 넣었다.

월드컵 이후 그는 사무엘 에투와 함께 카메룬의 최전방을 책임지게 된다. 200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4골을, 200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해서는 3골을 기록하며 카메룬의 대회 2연패를 이끌었고 2000년 가을 열린 시드니 올림픽에도 와일드카드로 참가해 4골을 넣으며 카메룬의 충격적인 금메달 획득에 일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아일랜드와의 1차전에서 골을 기록하며 카메룬이 막판까지 16강 경쟁을 할 수 있게끔 분투했다. 특히 그가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일본에서 모든 경기가 열려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꽤나 많았다.

2003년 잠시 국가대표와 멀어졌다가 2004년 1월 전격적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대표팀에 복귀한 그는 조별리그 짐바브웨 전에서 해트트릭을 작렬하는 등 죽지 않은 골 결정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팀은 8강에서 탈락했고, 이것이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로 기록되었다.

선수 생활 통산 A매치 57경기 33골로 한동안 카메룬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기록을 보유했었다.[1]

2.3. 은퇴 이후[편집]


2011년 그가 사는 동네의 작은 클럽 FC 빌프뢰와 깜짝 선수 계약을 하며 잠시 축구선수로 복귀하기도 했던 그는, 주로 스포츠 에이전트와 행정가로 활동했다.

CAF를 대표하여 국제축구평의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프랑스에 거주하며 RMC 등 프랑스 여러 미디어에 스포츠 관련 컨설턴트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는 이슬람으로 개종해 압둘 잘릴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3. 기록[편집]



3.1. 대회 기록[편집]







3.2. 개인 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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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훗날 이 기록은 사무엘 에투에 의해 깨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