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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Thomas Kuhn


파일:external/coraifeartaigh.files.wordpress.com/thomas_kuhn.jpg

본명
토머스 새뮤얼 쿤
Thomas Samuel Kuhn
출생
1922년 7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사망
1996년 6월 17일 (향년 73세)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모교
하버드 대학교 (물리학 / B.Sc. · M.Sc. · Ph.D.)
주요 경력
하버드 대학교 교수
관심 영역
과학철학, 과학사
배우자
캐서린 머스 (Kathryn Muhs)
예하네 바턴 번즈 (Jehane Barton Burns)

1. 개요
2. <과학 혁명의 구조>를 내기까지
3. <과학 혁명의 구조>
3.1. 과학의 흐름과 과학 혁명
3.2. “패러다임”이라는 용어
3.3. 공약 불가능성
4. 수용과 학문적 영향
5.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
6. 저서
6.1. 한국어 번역
6.2. 한국어로 나온 관련 서적
7. 관련 강의 영상
8. 여담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역사를 단순히 일화나 연대기를 쟁여놓은 것 그 이상으로 바라볼 때, (역사는) 우리가 사로잡힌 과학에 대한 상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과학혁명의 구조》 2판 1장의 첫 구절.


당신이 얻으려는 해답은 당신의 질문에 달려있다. (the answers you get depend upon the questions you ask.)


미국의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 쿤 자신은 본인을 "철학을 위해 역사를 연구한 물리학자"라고 표현했다.

옛날부터 서양 학생들을 괴롭혀 온 외국어 문법 암기사항을 가리킬 때 쓰이던 단어 “패러다임(Paradigm)에 새로운 뜻을 부여함으로써, 상황이나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뀔 때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만든 인물이다. 반증주의를 내세웠던 칼 포퍼와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평가된다. 과학철학에 있어 과학사적 연구를 중요시했다.

2. <과학 혁명의 구조>를 내기까지[편집]


쿤은 1922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1943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우등 졸업 summa cum laude으로 물리학 학사 학위를 얻었으며, 1946/1949년에 각각 물리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얻었다. 쿤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양자역학고체물리학에 대한 응용에 관한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후 1가 금속 이온의 응집 에너지 계산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촉망받는 순수과학도이던 쿤은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1947년 처음으로 과학사를 접했다. 당시 하버드대 총장이던 제임스 코넌트James Conant는 인문계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과학사 교육을 생각해냈다. 하버드대 학술회Society of Fellows에 뽑히는 등 촉망받는 인재이던 쿤은 젊은 나이에 이 과정의 강의를 맡게 되었다. 안중에도 없던 과학사 수업을 덜컥 맡게 된 쿤은 '음… 그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물리학부터 차근차근 가르쳐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Φυσικ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을 쿤은 그때 받은 당혹감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역학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역학에 무지할 뿐 아니라 끔찍할 정도로 나쁜 물리과학자로 보였다. 특히 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은 논리건 관찰이건 지독한 오류들로 가득한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은 너무나 이상했다. 어쨌건 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고전 논리학의 창시자로 칭송받았고 … 경이로울 정도로 꼼꼼한 자연을 관찰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 그런 특유의 재능이 운동학과 역학에 관해선 어째서 이다지도 체계적으로 그를 저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쿤은 '혹시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나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그 이후로도 끈덕지게 <자연학>을 두고 끙끙댔다. 그러던 어느 날 쿤은 다음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책상 위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쳐 놓고 손엔 4색 연필을 쥔 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 보았다 – 그때 내가 본 광경은 여전히 뇌리 속에 남아있다. 갑자기 머릿속의 파편들이 스스로 새롭게 짜맞추어지며 탁탁 들어맞기 시작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순간 아리스토텔레스가 대단한 물리학자로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내가 상상조차 못 했던 방식이었다. 그제서야 난 그가 말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그의 권위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했다. 이전엔 지독한 착오인 것 같았던 진술들이 이젠 아무리 나쁘게 본들 강력하고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전통하에서의 아까운 실수로 비추어졌다.[1]

[2]


이렇게 과학사에 흥미를 품게 된 쿤은 물리학 학위를 준비함과 동시에 과학사 및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3] 이후 1956년에 UC 버클리로 자리를 옮겨 과학사 강의를 하게 된 쿤은 1961년엔 UC 버클리의 전임교수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코페르니쿠스 혁명> (1957)은 쿤이 천문학에 대한 과학역사서이다.

3. <과학 혁명의 구조>[편집]


쿤은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 동료 교수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는 1962년에 국제 통일과학 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Unified Science 연작 중 하나로 <과학 혁명의 구조>를 출판한다. <과학 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판은 1962년에, 2판은 1970년에 출판되었다. 특히 2판은 1판 출판 이후 빗발친 여러 문제 제기에 대한 쿤의 대답인 후서Postscript를 담고 있으므로 정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2년 출판본은 출간 50주년을 기념하여 재판된 4판이며, 저명한 과학철학자 중 하나인 이언 해킹 Ian Hacking이 머리말을 썼다.

한국에서도 1999년부터 김명자 교수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2013년에 4판이 김명자/홍성욱 공동 번역으로 새로이 출판되었다. 4판 번역본에 관해선 호평이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다. 김명자 교수와 공동 번역의 차이는 아래의 인용구와 위키인용집에 있는 인용구를 비교해보면 된다.

자유전공학부 장대익 교수의 오디오 강의

3.1. 과학의 흐름과 과학 혁명[편집]


<과학 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과학은 다음과 같은 단계들을 밟으며 발전해나간다:

  • 전(前) 과학prescience: 학문 공동체가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패러다임이 출현하지 않은 시기, 즉 아직 미성숙한 단계의 과학이다. 공통된 패러다임이 출현함에 따라 정상과학으로 발전한다.
  • 정상 과학normal science: 패러다임이 확립됨에 따라 공통된 이론적 기반/방법론이 받아들여지는 시기. 이 시기 과학적 탐구는 '퍼즐-풀이' 같은 성격을 지니며, 그 탐구의 성과는 차곡차곡 쌓인다.[4]
    • 예. 실험을 통한 물리상수 값의 정밀한 계측
  • 위기crisis: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 현상anomaly이 점점 많이 보고됨에 따라 정상 과학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는 단계.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질 여지를 제공한다.
  •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위기 끝에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되는 단계. 이는 기존 정상과학 단계에서 쌓인 성과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상과학을 낳는다.

이러한 설명은 흔히 다음과 같은 함축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 과학 활동은 계속 지식을 쌓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 혁명은 기존의 정상과학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패러다임에선 설명할 수 있었던 현상 전부가 그 다음 패러다임에서도 쉽사리 설명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듯 기존엔 멀쩡히 설명할 수 있던게 오히려 패러다임의 교체 이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논지는 많은 논란을 낳았으며, 이는 흔히 Kuhn-loss 문제라고 불린다.
  • 과학 활동을 어떤 객관적인 진리에 접근해가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는 생물체의 진화가 어떤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 점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쿤은 새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보다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으며, 곧 과학적 진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3.2. “패러다임”이라는 용어[편집]


고대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paradeigma)에서 유래한 영단어 “Paradigm”은 본래 외국어 문법을 학습할 때 동사의 변화 패턴을 외우는 데 쓰는 범례를 가리킨다. 라틴어 1형 동사 'amo-amas-amat …' 같은 것. 쿤은 재판관이 관습법상의 판례에 준거해 판결을 내리는 것을 과학 활동과 견주어 연상하고는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차용했다.

“절망스러울 정도로 남용되고”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쿤 자신이 고백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뿌리 깊게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러다임' 개념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매우 애매하게 사용되며 1판 출판 당시에 많은 비판을 받게끔 하는 요인이었다. 철학자 마가렛 마스터맨(Margaret Masterman)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어휘 “패러다임”이 최소한 21개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쿤은 이런 비판을 인정하고 2판의 '후서'에서 “패러다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의를 시도한다.

'후서'에서 쿤은 “패러다임”이 넓은 의미에선 기호적 일반화 symbolic generalization (예: 역학에서의 F=ma), 모형models (예. 기체 운동론에서의 기체 운동 모형), 가치value (정확성, 단순성, 일관성 등), 범례exemplar로 구성된 전문분야 행렬disciplinary matrix을 뜻하며, 좁은 의미에선 오직 범례만을 뜻한다고 말한다.

이때 ‘범례’란 실제 해당 분야에서 해결한 모범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해답들을 가리킨다: 과학 공동체의 예비 구성원들은 이런 연습 문제들을 푸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과학 공동체에 속한) 전문가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체득하게 된다.

쿤은 이렇듯 과학 가운데 실질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구체적인 문제 풀이이며, 과학자들의 중요한 발견 역시 기존의 문제 풀이 방식을 본뜸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 예시로 쿤은 베르누이의 정리 발견이 유체를 하위헌스(호이겐스)의 진자를 빗대어보는 발상으로부터 유래했다고 말한다.

3.3. 공약 불가능성[편집]


본래 “공약 불가능하다incommensurable”, 즉 공통된(“com-”) 척도(“measure”)를 결여한다는 말은 직각이등변삼각형에서 빗변 길이를 다른 변 길이로 나눈 값이 유리수가 아니라는 성질을 가리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쿤은 패러다임들끼리의 경쟁이 증명 문제처럼 딱딱 풀리는 것이 아니며,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공약불가능하다”고 말한다.

  • 패러다임에 따라 해결해야 할 ‘과학적 문제들의 목록’에 관해 의견을 달리한다.
    • 예. 물질 입자들 사이 작용하는 인력 현상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와 데카르트 이론에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간주한 반면, 뉴턴 역학에서는 이를 있는 것으로 전제했다.[5][6]
  • 패러다임이 다르면 같은 용어조차도 의미가 달라진다
  • 각기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과학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활동하며 … 동일한 방향에서 같은 지점을 볼 때에도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쿤의 이러한 ‘공약 불가능성’ 개념은 <과학 혁명의 구조> 가운데서도 가장 격렬한 논란을 낳은 주제 중 하나이며, 과학철학의 중요한 문젯거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쿤은 자신이 단순한 상대주의자는 아니라고 한다.

이후의 과학 이론들은 그것들의 적용되는 흔히 상당한 차이가 나는 환경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데 이전의 것들보다 더 좋은 이론이 된다. 이는 상대주의자의 입장이 아니며, 그것은 내가 과학의 진보를 확신하는 신봉자라는 의미를 드러낸다.

⟪과학혁명의 구조⟫ 2판 후기(1969)에서


쿤은 또한 과학적 실재론에 대하여 이렇게 입장을 표명한다.

하나의 과학 이론이 보통 그 먼저 것들보다 우수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수수께끼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보다 나은 도구라는 것뿐만 아니라, 어느 방식으로든 자연이 참으로 어떤 것인가를 더 잘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자주 듣는 말로서, 연속되어 이어지는 이론들은 갈수록 진리에 더욱 근접하거나 또는 진리에 점점 더 가깝게 근사적으로 된다고 한다. 명백히 이와 같은 일반화는 수수께끼-풀이와 이론으로부터 유도된 구체적 예측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존재론(ontology)에 관한 것이고, 그 이론이 어떠한 실재 (entity)로 자연을 채우는가, 그리고 '참으로 거기에 (really there)' 무엇이 존재하는가 사이에서의 조화에 관한 것이다.

아마도 전체 이론에 적용되는 '진리'의 개념을 구하는 데 그 밖의 다른 방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방식은 그런 구실을 못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참으로 거기에'와 같은 어구를 재구성하는 방법으로서 이론과 무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느 이론의 존재론과 자연에서의 그 '실제(real)' 대응물 사이의 부합이라는 개념은, 이제 나에게는 원칙적으로 착각하기 쉬운 성격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과학사학자로서 나는 그 견해의 비개연성에 감명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나는 뉴턴의 역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보완하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수수께끼-풀이의 도구로서 뉴턴의 이론을 향상시킨 것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의 승계에서 존재론적 진전의 시종일관된 방향성을 볼 수가 없다. 그 반대로, 그렇다고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몇 가지 중요한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더 가까운데, 이는 아인슈타인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뉴턴이론에 근접한 것보다는 더 가깝다.

⟪과학혁명의 구조⟫ 2판 후기(1969)에서


4. 수용과 학문적 영향[편집]


<과학 혁명의 구조>는 흔히 20세기 중반 과학적 방법론 논쟁의 역사 속에서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진 칼 포퍼반증주의에 관한 막대한 위협을 가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는 21세기 현재까지도 과학적 실재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헌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구조>의 입장은 곧 논리 경험주의논리학적인 형식에 방점을 둔 전통적인 과학철학적 입장 혹은 과학적 실재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많은 반발을 낳았다. 예컨대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 서평에서 그 내용에 관해 부분적인 공감을 표하면서도 쿤의 과학적 반실재론에 대해선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7] 한편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과학자들도 있는데, 쿤의 책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로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라고 공감하는 경우이다.

<과학 혁명의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영은 ‘과학이 사회적인 요소로부터 독립적인 객관적 활동이다’라는 주장을 반대하는 진영이었으며, 이는 곧 과학에 대한 사회 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 그리고 과학기술사회학에서는 스트롱 프로그램Strong programme으로 대표되는 과학지식사회학(SSK)을 낳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이는 더 나아가서 자연과학계와 인문학계의 이른바 '과학전쟁'으로 발전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쿤 자신은 사회구성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울러 <과학 혁명의 구조>는 진영을 막론하고 과학철학에서 과학사 연구의 비중이 확대되는 데 기여하였다.

5.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편집]


<과학 혁명의 구조> 출판 이후 쿤은 프린스턴 대학교, MIT 등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그는 후기로 갈수록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보다 정교화하는 등 과학철학적 주제에 관해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1978) 등 과학사학자로서의 활동도 쉬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내내 쿤은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과 묶여 '합리주의적 과학관'에 반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쿤은 자신이 ‘비합리주의’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으며 상기한 사회 구성주의와 과학지식사회학 옹호자들과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쿤이 내놓은 여러 개념들은 계속해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면 과학사학자인 피터 갤리슨은 크리올어의 사례를 들어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비판했다. 분명 사용하는 단어와 제반 문화가 다름에도 언어가 피진어, 크리올어를 통해 소통가능하듯이 과학의 패러다임도 일종의 피진어 형성을 통해 공약 불가능성을 극복한다고 보았다. 특히 과학에서는 이론이 바뀌더라도 몇몇 사실(끓는점 등)이나 실험방법,실험기구 등이 따라 바뀌진 않기 때문에 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하다. 그리고 과학자를 이론/실험/기구 연구자로 나누고 실험, 기구 연구자들이 피진어의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여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6. 저서[편집]


  • 코페르니쿠스 혁명
  • 과학혁명의 구조
  •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 본질적 긴장(논문 모음집)
  • 구조 이후의 길(논문 모음집)

6.1. 한국어 번역[편집]


  • 코페르니쿠스 혁명, 정동욱 역, 지만지
  •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 홍성욱 역, 까치
  •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 조인래 편역,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쿤 본인 및 쿤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 선별 번역)
  • 현대과학철학 논쟁, 조승옥, 김동식 역, 아르케(학회에서 발표된 쿤 본인 및 쿤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논문들)

6.2. 한국어로 나온 관련 서적[편집]


  • 웨슬리 샤록, 루퍼트 리드 저, 김해진 역,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
  • 조인래 저,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
  • 존 프레스턴 저, 박영태 역,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제
  • 지아우딘 사르자르 저, 김환석, 김명진 역,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
  • 장대익 저, 쿤 & 포퍼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7. 관련 강의 영상[편집]





8. 여담[편집]


  • 상당한 골초였는데 그와 과학철학적으로 정 반대의 견해를 가졌던 칼 포퍼는 담배라면 질색을 했었다. 쿤은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줄담배를 피워서 포퍼가 말도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 프린스턴에 있던 시기 자신의 과목에서 기말 페이퍼를 쓰지 않기 위해 청강만 하려는 유학생 한 명을 억지로 붙잡고 수강시켜서 페이퍼를 쓰게 한 일이 있다. 그 유학생이 서울대 화학부, 동양사학과,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를 지낸 김영식 교수.

  • 쿤의 은퇴를 기념하는 파티가 MIT에서 열린 적이 있는데, 자신이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참석자들 중 한명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쿤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질투감에 오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쿤은 과학철학에 있어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9. 관련 문서[편집]


[1] Thomas Kuhn, "What Are Scientific Revolutions?", The Probablistic Revolution, Volume I: Ideas in History, eds. Lorenz Kruger, Lorraine, J. Daston, and Michael Heidelberger (Cambridge, MA: MIT Press, 1987), excerpt from pp. 7-22: http://www.units.miamioh.edu/technologyandhumanities/kuhn.htm[2] 간단히 설명하면 현대의 기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오류로 가득하지만, 그의 과학적 방법론과 그가 만들어낸 과학의 체계는 향후 1500년간 세계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으로 작용했다. 현대와 같은 관측 장비가 없던 당시에 밤낮의 존재나 눈에 보이는 행성의 이동, 기후 변화, 자연의 여러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낼 과학적 이론을 체계화했던 것.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 아래의) 과학자들 눈에도 코페르니쿠스 혁명, 17세기 과학혁명,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혁명 등은 분명 뛰어난 과학사적 업적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 만큼은 아닐지도 모른다. 쿤은 여기에서 현대과학 역시 객관적이고 절대적 법칙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정치사상의 변화처럼 사람들의 믿음에 기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3] 한국에서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쓰기 전까지 쿤은 바슐라르의 작업을 거의 접하지 못했다. 다만 쿤은 알렉상드르 쿠아레의 저작을 탐독하고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또한 쿤과 바슐라르가 실제로 만난 적도 있는데, 이는 바슐라르가 쿤의 이론 중 몇몇 요소에 대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4] 아래에서도 설명하겠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이 정립되더라도 그것이 이전의 패러다임에서는 완벽하게 설명이 되었던 기존의 현상들을 곧바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한다. 토머스 쿤은 이러한 설명상의 어긋남을 패러다임이 던지는 '퍼즐'이라 상정하였으며 퍼즐을 풀면 풀수록 정상 과학은 더욱 공고해진다고 설명하였다.[5] '있는 것으로 전제한다'는 것은 그것이 왜 그러한지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지식으로부터 논리적으로 이끌어 내고 설명할 필요없이 '자연의 섭리'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학에 있는 공리와 비슷한 개념이다. 수학에서는 증명없이 받아들이는 명제가 있고, 이를 공리라고 한다.[6] 사실 이러한 인력 현상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자연철학 관점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최소 미분기하학이나 게이지 장, 양자장론같은 최첨단 현대물리학 이론들까지 손대야 한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뉴턴 시대 동역학은 당시 상상조차 못하는 개념을 파헤치고자 붙잡고 늘어지는 대신 그나마 현상론만이라도 건지는 식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었다.[7] Steven Weinberg (Oct. 8, 1998), "The Revolution That Didn’t Happen",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http://www.nybooks.com/articles/archives/1998/oct/08/the-revolution-that-didnt-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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