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월

최근 편집일시 :

사기(史記)

[ 본기(本紀)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1권 「오제기(五帝紀)」 ||<-2><width=33%> 2권 「하본기(夏本紀)」 ||<-2><width=33%> 3권 「은본기(殷本紀)」 ||
||<-2><rowbgcolor=#fff,#191919> 공손헌원 · 전욱 · 제곡 · 방훈 · 중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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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권 「주본기(周本紀)」 ||<-2> 5권 「진본기(秦本紀)」 ||<-2> 6권 「진시황기(秦始皇紀)」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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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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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 · 진후 · 공백 · 진중
장공 · 양공 · 문공 · 헌공(憲公)
출자 · 무공 · 덕공 · 선공
성공 · 목공 · 강공 · 공공
환공 · 경공 · 애공 · 혜공
도공 · 여공공 · 조공 · 회공
영공 · 간공 · 후혜공 · 출공
헌공(獻公) · 효공 · 혜문왕 · 무왕
소양왕 · 효문왕 · 장양왕 }}} ||<-2> 시황제 · 이세황제 · [[영자영|{{{#000,#e5e5e5 진왕 자영
]] ||
||<-2> 7권 「항우기(項羽紀)」 ||<-2> 8권 「고조기(高祖紀)」 ||<-2> 9권 「여후기(呂后紀)」 ||
||<-2><rowbgcolor=#fff,#191919> 항우 ||<-2> 유방 ||<-2> 여치 ||
||<-2> 10권 「효문제기(孝文帝紀)」 ||<-2> 11권 「효경제기(孝景帝紀)」 ||<-2> 12권 「효무제기(孝武帝紀)」 ||
||<-2><rowbgcolor=#fff,#191919> 유항 ||<-2> 유계 ||<-2> 유철 ||
||<-6><width=1000> 보사기(補史記) 「삼황본기(三皇本紀)」 ||
||<-6><bgcolor=#fff,#191919> 복희 · 여와 · 신농 ||
※ 13권 ~ 22권은 表에 해당, 23권 ~ 30권은 書에 해당. 사기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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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display:inline-block"
[ 세가(世家) ]

||<-2><tablewidth=100%><tablebgcolor=#3D414D><width=33%> 31권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 ||<-2><width=33%> 32권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 ||<-2><width=33%> 33권 「노주공세가(魯周公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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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4권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2> 35권 「관채세가(管蔡世家)」 ||<-2> 36권 「진기세가(陳杞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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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7권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 ||<-2> 38권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2> 39권 「진세가(晉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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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위씨(姬姓 衛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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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숙 · 강백 · 고백 · 사백 · 첩백 · 정백
기백 · 경후 · 희후 · 공백 · 무공
장공 · 환공 · 주우 · 선공 · 혜공
검모 · 의공 · 대공 · 문공 · 성공(成公)
위군 하 · 목공 · 정공 · 헌공 · 상공
양공 · 영공 · 출공 · 후장공 · 반사
· 도공 · 경공 · 소공 · 희공
신공 · 성공(聲公) · 위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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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성 자남씨(姬姓 子南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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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후 · 사군 · 희군 · 원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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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권 「초세가(楚世家)」 ||<-2> 41권 「월왕구천세가(越王勾踐世家)」 ||<-2> 42권 「정세가(鄭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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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3권 「조세가(趙世家)」 ||<-2> 44권 「위세가(魏世家)」 ||<-2> 45권 「한세가(韓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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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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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 · 성자 · 선자 · 장자 · 문자
경자 · 간자 · 양자 · 환자 · 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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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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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후 · 무후 · 경후 · 성후 · 숙후
무령왕 · 혜문왕 · 효성왕 · 도양왕 · 유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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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라(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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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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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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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필만 · 위망계 · 무자 · 도자
장자 · 헌자 · 간자 · 양자 · 환자
^^
삼진 분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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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후 · 무후 · 혜왕 · 양왕
소왕 · 안희왕 · 경민왕 · 위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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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 분립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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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 · 구백 · 정백 · 자여
헌자 · 선자 · 정자 · 간자
장자 · 강자 · 무자
^^
삼진 분립 후
^^
경후 · 열후 · 문후 · 애후
의후 · 소후 · 선혜왕 · 양왕
희왕 · 환혜왕 · 한왕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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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6권 「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家)」 ||<-2> 47권 「공자세가(孔子世家)」 ||<-2> 48권 「진섭세가(陳涉世家)」 ||
||<-2><rowbgcolor=#fff,#19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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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전씨(嬀姓 田氏)

진완 · 전맹이 · 전맹장 · 전문자
전환자 · 전희자 · 전성자 · 전양자
전장자 · 전도자 · 태공 · 제후섬
환공 · 위왕 · 선왕 · 민왕
양왕 · 제왕 건}}} ||<-2> 공자 ||<-2> 진승 · [[오광(초한쟁패기)|{{{#black,#e5e5e5 오광
]] ||
||<-2> 46권 「외척세가(外戚世家)」 ||<-2> 50권 「초원왕세가(楚元王世家)」 ||<-2> 51권 「형연세가(荊燕世家)」 ||
||<-2><rowbgcolor=#fff,#191919> 박태후 · 두태후 · 왕태후 · 위황후 · 구익부인 ||<-2> 유교 · 유수 ||<-2> 유고 · 유택 ||
||<-2> 52권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 ||<-2> 53권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2> 54권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유비(劉肥) ||<-2> 소하 ||<-2> 조참 ||
||<-2> 55권 「유후세가(留侯世家)」 ||<-2> 56권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 ||<-2> 57권 「강후주발세가(絳侯周勃世家)」 ||
||<-2><rowbgcolor=#fff,#191919> 장량 ||<-2> 진평 · 왕릉 · 심이기 ||<-2> 주발 ||
||<-6><width=1000> 58권 「양효왕세가(梁孝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무 ||
||<-6> 59권 「오종세가(五宗世家)」 ||
||<-6><bgcolor=#fff,#191919> 유덕 · 유알우 · 유영 · 유여 · 유비(劉非) · 유단(劉端) · 유팽조 · 유승(劉勝) · 유발 · 유기 · 유월 · 유승(劉乘) · 유순 ||
||<-6> 60권 「삼왕세가(三王世家)」 ||
||<-6><bgcolor=#fff,#191919> 유굉 · 유단(劉旦) ·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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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1권 「백이전(伯夷傳)」
62권 「관안전(管晏傳)」
63권 「노자한비전(老子韓非傳)」
백이 · 숙제
관중 · 안영
노자 · 장자 · 신불해 · 한비
64권 「사마양저전(司馬穰苴傳)」
65권 「손자오기전(孫子吳起傳)」
66권 「오자서전(伍子胥傳)」
사마양저
손무 · 손빈 · 오기
오자서
67권 「중니제자전(仲尼弟子傳)」
안회 · 민손 · 염경 · 염옹 · 염구 · 중유 · 언언 · 복상 · 전손사 · 증삼 · 담대멸명 · 복부제 · 원헌 · 공야장 · 남궁괄 · 공석애 · 증점 · 안무요 · 상구 · 고시 · 칠조개 · 공백료 · 사마경 · 번수 · 자유 · 칠조개 · 공서적 · 양전 · 안행 · 염유 · 조휼 · 백건 · 공손룡
68권 「상군전(商君傳)」
69권 「소진전(蘇秦傳)」
70권 「장의전(張儀傳)」
상앙
소진
장의
71권 「저리자감무전(樗里子甘茂傳)」
72권 「양후전(穰侯傳)」
73권 「백기왕전전(白起王翦傳)」
저리질 · 감무
위염
백기 · 왕전
74권 「맹자순경전(孟子荀卿傳)」
75권 「맹상군전(孟嘗君傳)」
76권 「평원군우경전(平原君虞卿傳)」
맹가 · 순경
전문
조승 · 우경
77권 「위공자전(魏公子傳)」
78권 「춘신군전(春申君傳)」
79권 「범수채택전(范睢蔡澤傳)」
위무기
황헐
범수 · 채택
80권 「악의전(樂毅傳)」
81권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82권 「전단전(田單傳)」
악의
염파 · 인상여
전단
83권 「노중련추양전(魯仲連鄒陽傳)」
84권 「굴원가생전(屈原賈生傳)」
85권 「여불위전(呂不韋傳)」
노중련 · 추양
굴원 · 가의
여불위
86권 「자객전(刺客傳)」
87권 「이사전(李斯傳)」
88권 「몽염전(蒙恬傳)」
조말 · 전저 · 예양 · 섭정 · 형가
이사
몽염
89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90권 「위표팽월전(魏豹彭越傳)」
91권 「경포전(鯨布傳)」
장이 · 진여
위표 · 팽월
영포
92권 「회음후전(淮陰侯傳)」
93권 「한신노관전(韓信盧綰傳)」
94권 「전담전(田儋傳)」
한신
한신 · 노관 · 진희
전담
95권 「번역등관전(樊酈滕灌傳)」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96권 「장승상전(張丞相傳)」
장창 · 주창 · 임오 · 왕릉 · 신도가 · 위현 · 병길 · 전문 · 황패 · 위현성 · 광형
97권 「역생육가전(酈生陸賈傳)」
98권 「부근굉사전(傅靳蒯成傳)」
99권 「유경숙손통전(劉敬叔孫通傳)」
역이기 · 육가 · 주건
부관 · 근흡 · 주설
유경 · 숙손통
100권 「계포난포전(季布欒布傳)」
101권 「원앙조조전(袁盎鼂錯傳)」
102권 「장석지풍당전(張釋之馮唐傳)」
계포 · 난포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103권 「만석장숙전(萬石張叔傳)」
104권 「전숙전(田叔傳)」
105권 「편작창공전(扁鵲倉公傳)」
석분 · 장숙
전숙
진월인 · 순우의
106권 「오왕비전(吳王濞傳)」
107권 「위기무안후전(魏其武安侯傳)」
108권 「한장유전(韓長孺傳)」
유비(劉濞)
두영 · 전분
한안국
109권 「이장군전(李將軍傳)」
이광
110권 「흉노전(匈奴傳)」
흉노
111권 「위장군표기전(衛將軍驃騎傳)」
112권 「평진후주부전(平津侯主父傳)」
위청 · 곽거병
공손홍 · 주보언
113권 「남월전(南越傳)」
114권 「동월전(東越傳)」
115권 「조선전(朝鮮傳)」
조타
추무제 · 추요
위만
116권 「서남이전(西南夷傳)」
야랑 · 전국 · 공도 · 백마국
11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
118권 「회남형산전(淮南衡山傳)」
119권 「순리전(循吏傳)」
120권 「급정전(汲鄭傳)」
유장 · 유안 · 유사
손숙오 · 자산 · 공의휴 · 석사 · 이리
급암 · 정당시
121권 「유림전(儒林傳)」
신공 · 원고생 · 한생 · 복생 · 동중서 · 호무생
122권 「혹리전(酷吏傳)」
질도 · 후봉 · 영성 · 주양유 · 조우 · 장탕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두주
123권 「대완전(大宛傳)」
대완 · 강거 · 오손 · 엄채 · 대월씨 · 대하 · 조지 · 안식국
124권 「유협전(遊俠傳)」
125권 「영행전(佞幸傳)」
곽해 · 주가 · 극맹 · 전중
등통 · 한언 · 이연년
126권 「골계전(滑稽傳)」
순우곤 · 우맹 · 우전 · 동방삭 · 서문표 · 동곽선생 · 왕선생 · 곽사인
127권 「일자전(日者傳)」
128권 「귀책전(龜策傳)」
129권 「화식전(貨殖傳)」
사마계주
점복
범려 · 자공 · 백규 · 의돈 · 정정 · 도한
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사마천


한서(漢書)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 본기(本紀) ]
1권 「고제기(高帝紀)」
2권 「혜제기(惠帝紀)」
3권 「고후기(高后紀)」
유방
유영
여치
4권 「문제기(文帝紀)」
5권 「경제기(景帝紀)」
6권 「무제기(武帝紀)」
유항
유계
유철
7권 「소제기(昭帝紀)」
8권 「선제기(宣帝紀)」
9권 「원제기(元帝紀)」
유불릉
유순
유석
10권 「성제기(成帝紀)」
11권 「애제기(哀帝紀)」
12권 「평제기(平帝紀)」
유오
유흔
유간
※ 13권 ~ 20권은 表에 해당. 21권~30권은 志에 해당. 한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31권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32권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33권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진승 · 항적
장이 · 진여
위표 · 전담 · 한신
34권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35권 「형연오전(荊燕吳傳)」
36권 「초원왕전(楚元王傳)」
한신 · 팽월 · 경포 · 노관 · 오예
유고 · 유택 · 유비
초원왕
37권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38권 「고오왕전(高五王傳)」
39권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계포 · 난포 · 전숙
제왕 · 조왕 · 조왕 · 조왕 · 연왕
소하 · 조참
40권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41권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42권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량 · 진평 · 왕릉 · 주발
번쾌 · 역상 · 하후영 · 관영
부관 · 근흡 · 주설
장창 · 주창 · 조요 · 임오 · 신도가
43권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44권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45권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역이기 · 육고 · 주건 · 유경 · 숙손통
유장 · 유사 · 유발
괴통 · 오피 · 강충 · 식부궁
46권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47권 「문삼왕전(文三王傳)」
48권 「가의전(賈誼傳)」
석분 · 위관 · 직불의 · 주인 · 장구
양왕 · 대왕 · 양왕
가의
49권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50권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51권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원앙 · 조조
장석지 · 풍당 · 급암 · 정당시
가산 · 추양 · 매승 · 노온서
52권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53권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54권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두영 · 전분 · 관부 · 한안국
임강민왕 · 하간왕 · 임강애왕 · 노왕 · 강도왕
우왕 · 조왕 · 중산정왕 · 장사왕 · 광천왕
교동왕 · 청하왕 · 상산왕
이광 · 소건
55권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56권 「동중서전(董仲舒傳)」
57권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위청 · 곽거병
동중서
사마상여
58권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59권 「장탕전(張湯傳)」
60권 「두주전(杜周傳)」
공손홍 · 복식 · 예관
장탕
두주
61권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62권 「사마천전(司馬遷傳)」
63권 「무오자전(武五子傳)」
장건 · 이광리
사마천
여태자 · 제왕 · 연왕 · 광릉왕 · 창읍왕
64권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 · 주매신 · 오구수왕 · 주보언 · 서악 · 엄안 · 종군 · 왕포 · 가연지
65권 「동방삭전(東方朔傳)」
66권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동방삭
공손하 · 유굴리 · 전천추 · 왕흔 · 양창 · 채의 · 진만년 · 정홍
67권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68권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69권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양왕손 · 호건 · 주운 · 매복 · 운창
곽광 · 김일제
조충국 · 신경기
70권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71권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부개자 · 상혜 · 정길 · 감연수 · 진탕 · 단회종
준불의 · 소광 · 우정국 · 설광덕 · 평당 · 팽선
72권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73권 「위현전(韋賢傳)」
74권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왕길 · 공우 · 공승 · 공사 · 포선
위현
위상 · 병길
75권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76권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수홍 · 하후시창 · 하후승 · 경방 · 익봉 · 이심
조광한 · 윤옹귀 · 한연수 · 장창 · 왕존 · 왕장
77권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78권 「소망지전(蕭望之傳)」
갑관요 · 제갈풍 · 유보 · 정숭 · 손보 · 무장륭 · 하병
소망지
79권 「풍봉세전(馮奉世傳)」
80권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풍봉세
회양왕 · 초효왕 · 동평왕 · 중산왕 · 정도왕 · 중산왕
81권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82권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83권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광형 · 장우 · 공광 · 마궁
왕상 · 사단 · 부희
설선 · 주박
84권 「적방진전(翟方進傳)」
85권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적방진
곡영 · 두업
86권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87권 「양웅전(揚雄傳)」
하무 · 왕가 · 사단
양웅
88권 「유림전(儒林傳)」
정관 · 시수 · 맹희 · 양구하 · 비직 · 복생 · 구양생 · 임존 · 주감 · 장산부 · 왕식 · 후창 · 호모생 · 엄팽조 · 안안락
89권 「순리전(循吏傳)」
90권 「혹리전(酷吏傳)」
문옹 · 오성 · 황패 · 주읍 · 공수 · 소신신
질도 · 영성 · 조우 · 의종 · 왕온서 · 윤제 · 양복 · 감선 · 전광명 · 전연년 · 엄연년 · 윤상
91권 「화식전(貨殖傳)」
92권 「유협전(游俠傳)」
백규 · 정정
주가 · 전중 · 극맹 · 곽해 · 우장 · 누호 · 진준 · 원섭
94권 「흉노전(匈奴傳)」
95권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흉노
· 남월 · 민월 · 동해국 · 조선
96권 「서역전(西域傳)」
선선국 · 저말국 · 소완국 · 정절국 · 융로국 · 서미국 · 거륵국 · 우전국 · 피산국 · 아타국 · 서야국 · 포리국 · 의내국 · 무뢰국 · 난두국 · 계빈국
아익산리국 · 대월지국 · 강거국 · 대완국 · 동저미국 · 도괴국 · 효순국 · 언독국 · 사거국 · 소륵국 · 울두국 · 오손국 · 고묵국 · 온숙국 · 구자국
울리국 · 위수국 · 언기국 · 아탐자리국 · 비륙국 · 비륙후국 · 욱립사국 · 선환국 · 포류국 · 포류후국 · 서저미국 · 동저미국 · 겁국 · 호호국 · 산국
차사전국 · 차사후국 · 차사도위국 · 차사후성장국
97권 「외척전(外戚傳)」
효혜황후 · 효문태후 · 두의방 · 효경황후 · 왕지 · 진아교 · 무사황후 · 효소태후 · 효소황후 · 사양제 · 왕부인 · 허평군 · 곽성군 · 효선황후 · 효성황후
반염 · 조비연 · 효원소의 · 정도정희 · 효애황후 · 효원소의 · 중산위희 · 효평황후
98권 「원후전(元皇傳)」
99권 「왕망전(王莽傳)」
왕정군
왕망



팽월
彭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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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양왕(梁王)

(彭)

(越)
고향
탕군(碭郡) 창읍(昌邑)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196년

1. 개요
2. 생애
2.1. 거야의 수적으로 일어나다
2.2. 초나라 급습
2.3. 왕이 되다
2.4. 몰락
3. 평가
4.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말~ 초의 군웅. 창읍 사람으로 는 중(仲)이다. 초한전쟁에서 유방을 도와 한왕조를 세우는데 기여한 개국공신이다. 능력과 공적을 보면 누구도 부정 못 할 노익장이지만, 말년에 한신, 영포와 함께 토사구팽당한 비운의 명장이다.[1]


2. 생애[편집]



2.1. 거야의 수적으로 일어나다[편집]


거야 지역에서 물고기를 잡으면서 무리를 이끌고 도둑질을 하고 있었다. 시황제 사후 진승난을 일으켜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그를 따르던 무리 중 일부가 팽월에게 우리도 들고 일어나자고 궐기할 것을 권했으나 팽월은 "지금은 두 이 싸우고 있으니[2] 때를 기다리자"며 궐기하지 않았다.

1년 정도 지난 후 팽월의 근거지 주변의 사람 백여 명 정도가 팽월에게 다시 찾아가 수령이 될 것을 청했는데, 팽월은 이를 사양하다가 억지로 권하자 겨우 허락했다. 이들에게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약속 시간에 늦는 자는 참수하기로 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십여 명이 지각했는데 가장 늦은 자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도착했다. 그러자 팽월은 "난 나이도 많은데도 너희들이 나를 억지로 대장으로 삼아 놓았고 약속까지 했는데 늦게 온 사람이 왜 이리 많나? 늦은 사람이 많아 다 죽일 수는 없고 가장 늦게 온 사람을 죽이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가장 늦은 사람이 속한 무리의 두령에게 명을 내려 그를 죽이라고 말했다. 모인 사람들은 "뭘 그렇게까지..."하는 반응이었다. 그러자 팽월은 지각한 그 사람을 끌어내어 직접 목을 쳐 제사를 지냈고 이후 팽월이 모인 자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팽월을 두려워하며 명령을 따랐다고 한다. 군령의 엄격함을 설명해주는 일화로, 손무에 대한 일화중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즉 팽월은 용병의 기본을 알았다.

이렇게 세력을 규합한 후 각지를 전전하며 땅을 공략하다가 제후들로부터 떨어진 병사들을 모아 1천명을 모았다. 한편, 당시 패공이었던 유방초회왕의 명을 받고 서진하던 중에 창읍을 공격할 때 팽월이 유방을 도우면서 유방과 대면했다. 하지만 창읍이 함락되지 않자 유방은 그대로 서진했고 팽월 역시 거야에 머물면서 위나라의 흩어진 병사들을 모았다.


2.2. 초나라 급습[편집]


항우가 진의 수도 함양을 점령하고 제후왕들에게 분봉을 시행하였으나, 팽월은 임지를 받지 못하였다. 항우는 일개 수적으로 거병한 팽월의 활약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팽월은 항우에게 반감을 품게 된다. 이 일은 초의제, 범증, 한신, 진평과 함께 항우 인생 최악의 인사 실책 중 하나가 되었다.

진나라 멸망 이후 팽월은 일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제나라에게 의지한다. 제나라 왕 전영 역시 제나라 땅을 3조각으로 갈라버린 항우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팽월을 시켜 제나라의 땅을 정벌하고 예전 제나라의 영토를 회복한다. 항우는 자신의 분봉을 따르지 않았다며 제나라를 공격한다. 이때 유방은 팽월과 연락하여 장군에 봉하도록 했고, 팽월을 부추겨 초나라의 후방을 공격했다.

팽월은 항우의 본대가 제나라 땅을 공략하는 동안 초나라의 후방 깊숙한 곳으로 치고 들어가 보급품을 약탈한 다음 빠져나오는 전술을 반복했다. 그 기동성은 항우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따를 자가 없어 초나라는 번번히 당할 수 밖에 없었고, 항우 측에서 소공 각을 보내 팽월을 토벌하려 했으나 오히려 역으로 당했다.

유방이 관중을 탈환한 후 동진하자 팽월은 3만의 군대를 이끌고 외황에서 유방을 만나 한나라를 따르기로 한다. 이 때 유방은 팽월을 위나라 상국으로 임명하고 군권을 주어 양나라 땅(수양 이북에서 곡성까지의 땅으로, 대략 오늘날의 하남성 동북부와 산동성 서부 지역)의 평정을 맡긴다.

팽성까지 쳐들어간 유방이 수수에서 항우에게 개박살이 나자 팽월도 군사를 이끌고 자신의 본거지인 외황 지역으로 후퇴한다. 한나라가 후퇴하여 형양과 성고에 방어선을 펼치자, 팽월은 황하 연안에서 슬금슬금 양나라 땅을 평정해간다. 여전히 항우는 팽월을 토벌할 수 없었다.

그 후로 유방이 무한방어를 펼치는 동안 초나라 북쪽 땅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초나라의 보급로를 끊고 용도(식량수송로)를 파괴한다. 이것은 항우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였고, 항우는 유방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그냥 보급로만 공격한 것도 아니고, 조금 여유가 생긴다 싶으면 바로 초나라의 수도인 팽성까지 급습하여 항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형양과 성고에서 유방이 무너졌을 때 팽월의 후방 급습으로 인해 항우가 유방을 추격하지 못하고 뒤로 후퇴했을 정도다. 항우는 유방과 싸우는 최전선 지역과 팽월이 파괴하고 다니는 후방 지역을 왔다갔다 하느라 막대한 군사적 소모를 겪어야만 했다. 한신이 초한 전쟁의 승패를 확정시키고 전란 종결을 한참 앞당긴 시대적 위업을 달성했다면, 팽월은 초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유방에게 직접적으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3]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된 항우는 직접 팽월을 추격하여, 외황 지역까지 도착한다. 외황이 팽월의 오랜 근거지였음을 아는 항우가 "'이 땅에 사는 열다섯 살 이상의 남자를 모두 죽여라'" 라는 충격과 공포의 명을 내리자, 당돌하게도 13살 남자 아이가 항우에게 "포악한 팽월이 외황의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힘없는 우리가 항복한 척 하고 대왕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백성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으라고 하십니다. 명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앞으로 백성들은 대왕을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직언하여, 항우가 명령을 취소하게 만든다. 이후 항우가 양나라 땅으로 진군하자, 팽월이 함락시켰던 여러 성읍이 저절로 성문을 열고 항우를 맞이했고, 마침내 항우는 13살 소년의 깊은 헤아림에 감탄했다고 한다. 달리 말하자면 항우는 13살 소년도 알던 이치를 그 나이가 되도록 깨닫고 있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어쨌든 이러는 동안 항우가 빠져있는 최전방 지역에서 다시 유방이 공격해들어온다. 결국 항우는 팽월을 잡지 못하고 다시 유방을 상대하러 진군할 수 밖에 없었다. 원래 항우는 대사마 조구에게 병력을 주고 무조건 성을 지키라고만 명하였으나, 유방의 도발에 넘어간 조구는 명을 어기고 먼저 공격하는 바람에 함정에 빠져 참패한다. 사마흔과 동예를 시켜 조구를 보좌하게 했지만, 조구는 사마흔과 동예가 배신자라는 점을 이유로 그들의 진언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항우가 떠났음을 알게 된 팽월은 다시금 양나라 땅을 정벌하기 시작했고, 점점 보급이 어려워진 초나라는 전쟁 수행 능력을 거의 상실한다. 이 즈음해서 한신이 북방을 완전히 정벌하였고, 한나라가 초나라를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2.3. 왕이 되다[편집]


한편 남방에서는 영포가 구강 땅을 정벌하고 다니면서 항우를 더욱 고립시켰고, 사방에 자기 편이 하나도 없는 항우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 유방 측에서 항우의 사정을 간파하고 화평 조약을 제의하는데, 조건은 항우가 붙잡고 있는 유방 가족의 석방이었다. 항우는 이 조건에 승낙했으나, 문제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유방을 흔들 수 있는 마지막 패마저 스스로 내어준 꼴이 되었다.

물론 화평 조약 같은건 당연히 뻥이었고, 유방 측에서는 항우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항우가 군대를 해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유방은 한신과 팽월에게 사람을 보내 항우를 포위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신은 제나라의 반란을 진압해야 한다는 이유로, 팽월은 양나라 땅을 전부 평정할 때까지 군사를 나눌 수 없다는 이유로 협조하지 않는다. 그래서 유방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추격해 고릉에서 항우를 공격하지만, 역으로 항우에게 깨져서 피해만 입고 추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당시에 팽월은 유방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어서 유방과의 사이가 이전만 못했다. 한신이 제나라를 정벌하면서 쫓겨난 제나라 왕실의 후손이 팽월에게 도움을 청해 의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진나라 멸망 직후에 팽월이 영토를 받지 못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일 때 제나라에게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으니,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와 제나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유방 입장에서는 제나라 왕실의 후손을 보호해주는 팽월이 곱게 보였을 리가 없다. 그저 굳건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팽월을 섣불리 자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던 것이다.

유방은 장량을 불러 팽월을 어떻게 구슬리면 좋을지 방법을 묻는다. 장량은 "팽월은 왕이 되고 싶은데 대왕께서 아직 왕으로 임명해 주지 않아서 군사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양나라 땅을 팽월에게 주어 양왕으로 삼으신다면 앞으로는 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라고 진언한다.[4] 유방은 장량의 말을 따랐고 팽월은 감복하며 유방을 따르게 된다.

이후 항우와의 최후 결전인 해하 전투에 5만 군사를 이끌고 참전하였으며, 마침내 초나라를 격파하고 항우를 토벌한다.

이렇게 천하가 평정된 후 유방은 황제가 되어 한나라를 열었고 팽월은 양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 정도에 도읍을 세웠다. 거야 연못에서 일어난 일개 수적집단의 우두머리에서 시작하여, 드디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된 것이다.


2.4. 몰락[편집]


그러나 한나라 개국공신 제후왕들이 대부분 그렇듯, 팽월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몇년 뒤 대나라 왕 진희가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친히 반란 진압에 나서면서 팽월에게도 진압할 병사를 징발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때 팽월은 병을 핑계로 직접 가지 않고 수하 장수를 보냈던 것이다. 빡친 유방이 사자를 보내 당장 직접 오라고 갈구자 쫄아버린 팽월은 직접 유방에게 가서 사죄하려고 했는데 부하 호첩이 "처음에 안 가셨다가 꾸지람을 듣고 가시는데, 지금 가시면 분명히 황제에게 잡히게 됩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반란을 일으키십시오."라고 진언했다. 팽월은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직접 가면 잡힌다는 호첩의 말은 맞는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으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유방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이 무렵 팽월은 태복[5]에게 화가 나 있어서 끝끝내 죽이려고 했는데[6] 태복은 수도로 도망쳐서 유방에게 "팽월과 호첩이 모반을 꾀합니다."라고 고변했다. 그러자 유방은 군대를 보내 팽월을 급습하여 체포한 후 낙양의 감옥에 가두었다. 이후 그를 심문한 관리가 심문을 해 보니 반란죄가 인정되어 팽월을 법대로 처벌하기를 청했다. 유방은 보고를 받았으나 팽월을 죽이지는 않고 서민으로 강등시켜 촉으로 귀양보냈다. 그렇게 촉으로 귀양가던 중 장안에서 오던 여후와 만났는데 팽월이 여후에게 울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고향 창읍에 살게 해달라고 청하자 여후는 이를 허락하고 팽월을 낙양으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이것은 여후의 페이크였다! 초나라의 포로가 되어 항우의 곁에 있으면서 팽월의 유격전이 거둔 효과를 유방보다도 더 확실히 체감해온 여후는 팽월을 절대 살려둬선 안 될 위험분자로 여겼던 것이다.

여후는 부탁을 들어주는 척해서 다시 팽월을 유방에게 데려가서는 곧바로 태도를 뒤집으며 "팽월을 살려두는 것은 후환을 남기는 것이니 이 기회에 죽이는 게 나아요. 그래서 제가 팽월을 데리고 왔지요."라고 아뢰었고 팽월의 부하였던 사람으로 하여금 팽월이 다시 모반을 꾀했다고 말하게 했다. 정위[7] 왕염개가 팽월과 그 가족을 반역죄로 멸족시킬 것을 청하자 유방은 이를 받아들여 결국 팽월은 가족들과 함께 처형된다. 양나라 왕은 유방의 아들인 유회[8]에게 넘어갔다. 유방과 여후는 팽월의 시체를 소금에 절이고 그 살덩이를 각지의 제후들에게 보냈다. 즉 "팽월처럼 반란 일으키면 너네도 인간젓갈 되어버리는거야, 알지? 처신 잘 하라고."라는 의미. 하지만 의도와 달리 이로 인해 공포에 질린 노관영포가 진짜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토벌키 위해 친정한 유방이 전투 도중에 다쳐 유방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졌으니[9] 역효과만 난 조치였다.[10] 다만 팽월의 머리 부분만은 시장에 내걸렸는데, 팽월의 옛 친구이자 신하인 난포가[11] 죽음을 무릅쓰고 거두어 무사할 수 있었다.[12]

이때 난포가 한 말이 틀린게 없어 고제도 제대로 대꾸를 못했다고 하는데 이때 한 말은 대충 다음과 같다.

"지난날 폐하께서 팽성에서 대패하고 성고와 형양에서도 패했을 때 그 지랄맞은 항우가 더이상 진격하지 못한건 우리 양왕께서 항우의 후방을 교란하고 급습하여 보급품을 약탈했기 때문인데 그 상황에서 양왕이 배신했거나 폐하의 편을 안들고 가만 있었다면 멸망하는건 초나라가 한나라였을 것이며 양왕이 해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항우를 죽이지 못했을 것이고 또한 양왕께서는 받은 봉토에 만족했을뿐 반란을 꾀했다는 증거조차 없는데 남의 말만 듣고 양왕을 잡아다가 일족을 멸하시니 이게 맞는겁니까? 폐하께서 말하신 약법삼장은 어디로 가고 형벌이 이렇게 가혹한 겁니까? 양왕이 죽어 저도 살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죽여주십시오."

이에 그를 가상하게 여긴 고제가 도위로 임명했다고 한다.


3. 평가[편집]


이렇듯 팽월은 노구의 몸을 이끌고 초한전쟁에서 화려한 게릴라전을 펼쳐 용맹을 떨친 끝에 개국 공신의 반열까지 올랐지만, 그 역시 토사구팽의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었다. 제거된 공신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례로, 한신은 초한전쟁 중에도 자립의 움직임을 보이고, 항우와 싸울 전력의 증진에 매진하지 않고 제나라를 쟁취하기 위해서 역이기를 죽게 만들었으며, 종리말을 숨기는 등 유방에게 책잡힐 일이 많았고, 장도는 실제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제거당한 것이고 영포는 한신과 팽월이 죽는걸 보고선 자신의 차례가 될까봐 두려워서, 노관은 유방은 몰라도 여후가 정권잡으면 이성왕들은 끝이라는 생각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반란 자체는 사실인 반면, 팽월은 실제로 반란을 일으킨 적도 없는데 필요 이상으로 끔찍하게 죽었다. 팽월의 목을 매장하며 곡하다가 체포당한 난포가 "반란죄라고 팽월의 삼족을 멸하더니만 아직도 변변찮은 증거 하나조차도 나온 게 없지 않느냐"며 항의하니 유방이 할 말이 없었을 정도. 거병할 때도 나이가 제법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 걸 보면 죽을 무렵에는 고령이었을 것이다. 유방은 한신과 소하도 이렇게 다짜고짜 죽이려 들지는 않았는데, 팽월에게만 왜 이리 가혹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초한쟁패기 당시 팽월이 항우를 끊임없이 괴롭힐 정도로 게릴라전에 능하다보니 그가 반역을 일으킨다면 진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위협이 되는 정적이고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핑계가 생긴 김에 바로 죽인 셈이라 할 수 있다.

허나 팽월 또한 스스로 유방의 심기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개국공신이기는 하나 황제의 명령을 뭉그적대며 무시한 것인데, 해하 전투 때도 가만히 있다가 고릉에서 유방이 대패한 후 포상을 약속받고 나서야 움직였고, 그 외에도 유방이 팽월에게 병사를 내놓으라고 재촉했다는 사서의 기록을 보아 팽월이 유방을 무시하며 수시로 그의 명령을 어겼던 것 같다. 이는 신생왕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황제의 권위를 땅바닥에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행위로, 가뜩이나 반란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유방으로서는 심히 불쾌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팽월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13] 유방의 명령에 거스르지만 않았다면 토사구팽을 당하더라도 죽지는 않고 가족들과 함께 그럭저럭 나름대로 평온하게 천수를 마무리했을지도 모른다. 한 마디로 제후로서 황제 눈치 보면서 현명하게 엎드려야 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 옛날 군웅 시절처럼 처신한 것이 황제에게 원한을 사 죽음을 부른 것이다.

사기에서는 위에서 언급되었듯 위표와 함께 열전이 실려 있는데, 사마천은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을 미천한 신분에서[14] 입신 출세하여 왕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반역의 마음을 품고 패망한 부류라고 적고 있으며 위표와 팽월 모두 나름대로 능력은 있었으면서[15] 자신의 몸을 보존하는 것만 걱정한 부류로 평가하고 있다.


4. 창작물에서[편집]


적룡왕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노인으로 등장. 거병할 때 지각한 사람의 목을 벤 일화도 나온다. 마지막에 항우를 함께 치자는 유방의 사자를 맞이하고 나서는 "후후훗, 유방놈! 드디어 천하를 잡으려 하는구나!"라는 대사를 날린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고대무장 중 한 명으로 등장. 한신, 영포 등과 비교하면 능력치가 살짝 후달리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무장으로는 쓸만한 능력치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87/무력81/지력72/정치40/매력70이고, 특기는 급습으로 급습전에 능했던 그에게 잘 어울린다. 병종적성은 병기C를 제외하면 모든 병종적성이 A이다. 아마도 지속적인 유격활동을 통해 초나라의 보급로와 후방을 초토화시키는 등 유격에 능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듯 하다. 거기에 더해 거야의 수적이었던 것을 반영한 것인지 수군마저 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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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희대의 명대사를 남겼다(...). 정작 본인은 촉 땅에 들어가기 싫어서 여후 앞에서 매달리다 처참하게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당혹스러운 대사.

그러나 삼국지 12에서 삭제되었다. 그것도 같이 삭제되었던 인상여, 장의가 나오는데...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는 인천 지역에 해상 물류를 주름잡는 조폭 두목으로 등장하였다. 배역은 자이언트에서 이범수의 조력자로 등장했던 송경철.

삼국지평화에서는 유비로 환생한다. 환생하기 전에 촉 땅은 협소해서 어찌 한신(조조)과 영포(손권)와 맞서냐고 걱정하자 부하를 얻게 되는데 바로 항우(관우)와 번쾌(장비), 괴철(제갈량), 허복(방통).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나오며, 병종은 산악기병. 그러나 같은 병종의 조운과 여포, 마초, 등애와 달리 쓸모없는 약체라 버림받는다. 지못미

라디오 드라마 와이파이 초한지에서의 성우는 남도형.[16] 진승·오광의 난 이후 거야택에서 수적생활을 하다 거병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이후 함양레이스를 하는 유방을 도우면서 다시 등장한다. 항우의 18제후왕 분봉 이후, 필리버스터에 동참하며, 삼진평정 이후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유방을 도와준다. 천하통일을 위해 장량이 구상한 독수리 삼형제 둘째에 해당한다.[17] 형양 · 성고 전역광무 대치 때 계속 등장해 항우의 후방을 급습하지만 광무 대치 전후 시점에서 유방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거절하고 왕위를 요구함으로써 토사구팽이 예약된다.[18] 해하 전투한신의 명령을 따르고 항우군을 공격하는 공적을 세운다. 한나라 건국 이후, 조금씩 노쇠한 모습을 보이며 한신과 함께 여태후의 독수리 삼형제 해제 멤버 중 두번째로 지목되어 파촉으로 압송되나 여태후와 조우해 형장에서 죽는 것으로 더 이상의 등장은 없다.[19]
[1] 다만 한신은 교만해져서 엉망인 처세술 덕에 이미 조정의 모든 대신들의 눈밖에 나서 대신들에게서 숙청하자는 의견이 강했으며 오히려 유방이 살려는 주자고 하는 상태였다. 영포 역시 정말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명백한 반역자라서 숙청된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억울하긴커녕 오히려 자업자득이다. 이 2명에 비하면 팽월은 단순 실수 정도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가장 억울한 경우이다.[2] 진승진나라의 싸움을 말한다.[3] 한신항우와는 해하 전투 이전까지 교전을 벌인 적이 없고, 성고가 뚫려서 유방이 도망쳐올 때까지 원군도 보내지 않아서 참다 못한 유방이 직접 찾아가 군사를 강탈하게 만드는 등 초한전과는 반쯤 동떨어진 별개의 세력에 가까웠다. 참고로 위의 성고가 뚫렸을 때도 사실 타이밍이 좀 늦었는데 팽월의 활약으로 수습할 수 있었다.[4] 이때 유방은 한신을 회유할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봤고, 장량은 제나라 땅을 아예 넘겨주고 통치권을 완전히 보장하면 된다고 답한다. 당시의 한신은 제나라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형식적인 왕위였고 완전히 분봉 받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5] 이 당시 수레나 말을 관리하던 관리. 유방의 심복 하후영이 이 직책에 있었다.[6] 다른 기록에 따르면 팽월의 친구였는데 팽월의 이름을 팔아 백성들에게 온갖 횡포를 부리다가 처벌받게 되자 팽월을 모함했다고 한다.[7] 전한에서 형벌을 관장하던 관리.[8] 시호는 조공왕. 유방의 아들들은 유방 사후 문제를 제외하면 다들 불행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조공왕도 마찬가지. 여태후가 동생 조유왕 유우를 감옥에 가두어 굶겨죽이고 조공왕을 양나라에서 조나라로 옮겼고 또 여씨의 여자를 왕후로 삼게 했는데, 조공왕이 어떤 여자를 사랑하자 이 여왕후가 그 여자를 죽였다. 조공왕은 상심이 커서 미쳐버리고 말아 자결했고, 여태후는 조공왕이 여자 때문에 죽었다며 조나라를 조공왕에게서 거두어 여씨 제후 왕국으로 삼았다.[9] 사실 이것은 유방이 초래한것도 있는데 장군들이 위험하다며 말렸음에도 듣지 않고 직접 무장한 다음 최전선에서 병사들과 같이 싸웠던것이다. 당연히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 반군을 격파했지만 문제는 위험한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반군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된것이다. 특히 이때 유방은 60이 넘은 고령이며 병까지 와서 건강도 좋지 않은데 무리하게 싸우다가 중상을 입으니 건강이 악화될수밖에 없었다.[10] 무엇보다 팽월이 진짜 반란분자였다면 모를까 사형당할 만큼의 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히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대우를 받았으니 가만히 있어도 곱게 가기는 글렀다는 공포심이 생겼을 것이다.[11] 연왕 장도 밑에서 일하다가 반란에 연루되어 죽을 뻔한 것을 팽월이 재물을 바쳐 구해준 은혜가 있었다고 한다.[12] 이 때의 난포의 목숨을 건 간언을 가상히 여긴 한고제는 난포를 살려준 후 도위로 임명하였다. 이후에도 난포는 봉국인 연나라에서 재상이 되어 흉노를 격퇴하는 등의 공로를 세우다 오초7국의 난에서 반란 진압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제후 자리까지 올라 한경제 재위시기까지 천수를 누린다. 다만 성격은 마냥 의협심만 넘친 것은 아니었는지, 반고한서에선 은혜와 원한을 철저히 갚았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난포는 팽월과 마찬가지로 생년일은 안 나와 있지만, 무지막지하게 장수했다. 젋은 시절에 팽월과 같이 술집 일을 했고, 기원전 202년에 팽월이 대부로 삼았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나이가 아무리 젊어도 30대였을텐데, 기원전 145년에 사망했다. 즉 오초칠국의 난에서 공을 세울 당시 70~80대였다는 의미가 되고, 사망 당시 나이는 심지어 90대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 고대 기준으로는 믿기지 않을 수준의 장수다.[13] 사실 팽월은 어부였다가 진나라의 폭정으로 도적이 되는 등, 원래 유방 못잖은 평민 출신이었던데다가, 항우와의 유격전을 시작할 때에 이미 50대의 나이였으며, 유방의 직속 부하였던 적도 별로 없다보니, 황제의 신하이자 제후라는 위치에 맞는 처신에 대해 잘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이미 한나라와 고제를 섬기는 제후이면서도 마음가짐은 여전히 초한전쟁 시절의 군웅이며 유격전을 펼치던 때와 마찬가지라는 것. 팽월이 꽤 나이가 들어서 거병을 했으니(처음 거병할 때 주위에서 그에게 두목 자리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본인 입으로 나이가 많다고 언급했다) 마음가짐이 변하진 않았을 것이다.[14] 그러나 성씨만 봐도 알 수 있듯, 위표는 위나라 왕족 출신으로 나라가 망하면서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케이스이지, 처음부터 미천한 신분은 아니었다.[15] 다만 팽월은 중국사 최강의 유격전 명수 중 1명이었다. 고작 나름대로라는 부사로 수식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수준이며 위표와 동급으로 비교될 바는 더욱더 아니다.[16] 항우도 맡아서, 항우와 만나 유격전을 할 때마다 수시로 자문자답한다.[17] 사기에서 장량이 진언한 천하통일을 도울 세 인물을 재창작> 독수리 삼형제가 된다.[18] 작중에서 해하 전투 이후 두번째로 제거된다. 첫번째는 한신.[19] 팽월의 음침한 톤은 후속작사마의에게 계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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