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이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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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이에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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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47대



클럽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안도니 수비사레타
(1993~1998)

페르난도 이에로
(1998~2002)


라울 곤살레스
(2002~2006)


레알 마드리드 CF 주장

마놀로 산치스
(1998~2001)

페르난도 이에로
(2001~2003)


라울 곤살레스
(2003~2010)


페르난도 이에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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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

1996-97 · 1997-98
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CD 과달라하라
Club Deportivo Guadalajara S.A. de C.V.

이름
페르난도 이에로
Fernando Hierro
본명
페르난도 루이스 이에로
Fernando Ruiz Hierro
출생
1968년 3월 23일 (56세)
스페인국 안달루시아지방 말라가주 벨레스말라가시
국적
[[스페인|

스페인
display: none; display: 스페인"
행정구
]]

신체
187cm / 체중 90kg[1]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선수
벨레스 말라가 (1980~1984 / 유스)
말라가 CF (1984 / 유스)
벨레스 말라가 (1985~1987 / 유스)
레알 바야돌리드 CF (1987~1989)
레알 마드리드 CF (1989~2003)
알 라이얀 SC (2003~2004)
볼턴 원더러스 FC (2004~2005)
감독
레알 마드리드 CF (2014~2015 / 수석 코치)
레알 오비에도 (2016~2017)
스페인 대표팀 (2018)
행정가
말라가 CF (2011~2014 / 단장)
CD 과달라하라 (2022~ / 스포팅 디렉터)
국가대표
89경기 29골[2] (스페인 / 198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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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행정가 경력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스페인축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UCL 3회 우승을 비롯해 수많은 우승을 이끌었다. 흔히 말하는 90년대 세계 4대 센터백과 레알 마드리드의 위대한 주장 중 한 명이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벨레스 말라가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축구를 시작한 이에로는 1987년 레알 바야돌리드로 이적하여 본격적인 1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9년까지 2시즌 동안 꾸준히 출전하며 주전으로 성장하였다.


2.1.1.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파일:이에로/레알.jpg
2002년 5월 15일, 주장으로서 빅이어를 들어올리는 이에로
1989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2003년까지 약 14년 동안 레알에서 활약하면서 전성기가 왔을 때에는 빈틈 없는 수비를 보여 주었고, 그의 패스는 막힘이 없었다. 게다가 수비수임에도 프리킥, 페널티킥을 도맡을 정도로 킥력과 득점력이 뛰어났다. 이 뛰어난 능력이 이에로를 세계 최고의 스타들 중 하나로 만들었다. 레알에서 활약하던 동안 이에로는 라리가 우승 5번, 코파 델 레이 우승 1번,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4번,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3번, UEFA 슈퍼컵 우승 1번,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2번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마놀로 산치스의 뒤를 이어 주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2002-03 시즌에는 전성기 때보다 체력이 떨어져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 여파로 시즌이 끝나고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이 해임되면서 같이 방출됐다.


2.1.2. 이후[편집]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후 1년간 중동의 알 라얀을 거쳐 2004-05 시즌 샘 알라다이스 감독이 지휘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한다. 이에로의 볼턴행은 레알 시절 동료인 스티브 맥마나만, 이반 캄포의 추천이 있었다. 이곳에서 1시즌 활약한 뒤 2005년 5월 10일,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2.2. 국가대표[편집]


파일:페르난도 이에로/국가대표2.jpg

1989년 9월 20일 폴란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로 데뷔한 이에로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발탁되었고, 1994년 미국 월드컵 16강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멋진 중거리 포를 터트리며 스페인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3]

UEFA 유로 1996 16개국 본선 때 이에로는 폴 개스코인이 버티는 잉글랜드와 혈투 끝에 승부차기까지 이어갔으나,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로 나선 그가 실축하면서 팀의 탈락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4]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이에로는 32강 조별리그 1차전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1골 1어시스트를 올리는 활약을 펼치나 팀의 3:2 역전패를 막지 못하였고, 2차전에선 칠라베르트가 버티는 파라과이와 무승부에 그친다. 3차전 불가리아전에서 이에로는 PK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6:1 대승을 이끌지만 팀은 결국 32강 조별리그 탈락하여 17등으로 16강 실패 고배를 마신다.

UEFA 유로 2000에서 이에로는 노르웨이전에 나섰다가 부상을 당해 이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고, 팀이 지네딘 지단프랑스에 탈락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5]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에로는 32강 조별리그에서 슬로베니아파라과이를 상대로 1골씩 기록하며 팀의 16강행을 이끌었고, 16강에서 아일랜드를 승부차기에서 잡아 8강에 진출하여 한국을 상대했다. 다만 스페인이 1:0으로 앞선 후반 종료 직전, 아일랜드 공격수 나이얼 퀸의 유니폼을 손으로 붙잡는 파울을 범해 페널티킥이 선언되었고 이를 로비 킨이 성공시켜 연장전까지 갔다. 만약 연장전에서 아일랜드가 골든 골로 역전승했거나, 승부차기에서 자칫 스페인이 삐끗했더라면 역적이 될 뻔했는데, 이 경우 대한민국은 8강전에서 스페인 대신 아일랜드와 만날 수도 있었다. 8강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통해 팀이 경기를 주도하는 데 일조하였으나, 안정환에게 폭력반칙을 일으키고도 경고조차 받지 않았다.

특히, 후반전 1분 19초에는 이에로가 안정환과 헤딩 경합하다 팔로 뒷통수를 가격했으나 경고는 커녕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으며,

파일:이에로 안정환 뒷통수 가격 2 .gif


그리고 연장 전반 3분 53초에 이에로가 안정환의 가슴에 쿵후킥을 날렸지만, 주심은 파울 선언으로 끝나며, 이에로는 카드 한장도 안받았다.



이후 승부차기에서도 1번 키커로 나와 킥을 성공했지만, 호아킨 산체스의 슈팅이 이운재에게 막히면서 탈락(5위)하였다.

이에로는 한일 월드컵 한국전을 끝으로 스페인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통산 A매치 89경기에 출장하여 29골을 넣었으며, 이 기록은 훗날 라울 곤살레스가 경신하기 전까지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에로 선수는 수비수이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 센터백으로 14년동안 600경기에 출전하며 5회의 라리가 우승과 3회의 UCL 우승을 거머쥔 클럽의 전설로, 이 모든 트로피를 가져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마놀로 산치스와의 수비 조합은 당대 최고로 꼽힌다. 현역 당시 이에로의 이미지는 오늘날의 세르히오 라모스와 비슷했는데, 높은 전술 이해도를 가진 골넣는 수비수라는 점과 주장으로 헌신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었으나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자주 출전했다. 수비 진영에서 큰 존재감을 뽐냈던 선수로 유명한데, 체격이 크고 점프력이 뛰어나 제공권 장악에 능했고 면밀한 위치선정, 악바리같은 성질과 정확한 타이밍에 날아들어오는 태클로 인해 살짝 아쉬운 스피드를 가졌음에도 뒷공간을 내주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에로의 수비 스타일은 끈덕진 볼 경합과 인정사정없이 날아들어오는 강한 태클로 크게 정의할 수 있는데, 오죽했으면 2007년 더 타임스지 선정 하드 태클러 순위 TOP 50에서 43위에 마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로의 최고의 장기는 흔치않은 공격형 수비수로서 그의 볼 전개 능력과 공격능력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프리킥과 페널티킥을 모두 담당할 정도로 탁월한 킥력을 지녔었는데, 바로 이 점이 이에로 최고의 장기인 패스 능력으로 이어진다. 오늘날의 샤비 알론소를 방불케 하는, 수비수라는 것이 의심될 정도로 질 좋은 롱패스를 경기장 어디에서나 정확하게 뿌리는 능력을 지녀 팀의 빌드업의 중추가 되었으며 또한 본인 자신의 공격적인 플레이에도 도움이 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커리어 통산 득점이 163골이라는 것이다. 수비수였음에도 웬만한 공격수들보다 많은 골을 넣었고, 특히 1991년에는 라리가 37경기에 출장해서 무려 21골을 넣었으며 2002년 레알 사라고사와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어지간한 A급 공격수도 20골 이상 넣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경이로운 수준으로, 시대만 잘 타고났으면 득점왕도 가능했었다. 페널티킥을 전담한 덕을 보긴 했으나 프리킥을 포함하여 공격력 자체가 최고 수준이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고문으로 활동하던 그는 말라가의 부름을 받아 단장직을 역임하며 이른바 말락티코를 주도해 이스코 알라르콘, 나초 몬레알, 산티아고 카소를라 등을 영입하여 팀의 전력을 강화했다.

2014년, 말라가의 단장직을 맡고 있던 그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부름을 받아 레알 마드리드의 수석 코치로서 활동하게 된다.

2016년, 그는 세군다 디비시온레알 오비에도의 감독을 맡게 된다.

2018년 6월 13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럽게 전격 경질훌렌 로페테기 감독의 후임으로 스페인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다. 데뷔전이 월드컵 본선 경기가 된 것. 현재 난리통인 자국 국대를 어떻게 수습할지가 관건이다. 데뷔전인 포르투갈전에서 극초반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페널티킥으로 골을 내주기는 했으나, 디에고 코스타의 멀티 골과 나초 페르난데스의 중거리 골이 들어갔다. 이후 호날두가 두 골을 넣으면서 해트트릭을 기록, 3:3 무승부로 끝났다. 이어진 이란과의 대결에서는 경기 내용은 좀 아니올시다였지만, 어쨌든 1:0으로 승리하면서 첫 승을 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그리고 2:2 무재배로 끝난 모로코전도 역시 경기력은 좀 아니올시다였지만, 어쨌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16강전에서 결국 그 의문의 경기력으로 패스 횟수만 1,000회를 넘겼을 뿐, 디에고 코스타가 침묵하였고, 교체 투입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가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며 유일하게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고르 아킨페프의 신들린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이후 움직임이 좋지 않았던 이아고 아스파스가 승부차기를 실축하며 패배. 이에로는 결국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개최국에 승부차기로 패배하여 탈락하는 굴욕적인 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또한 스페인이 월드컵 개최국을 이기지 못한다는 징크스이다.

감독 취임으로부터 26일 만인 7월 8일에 감독직을 사임했으며,[6] 단장직도 사양했다. 기사 후임은 루이스 엔리케.

초보 감독 이에로에게는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감독이 경질되어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월드컵 본선까지 치러내도록 하는 임무는 너무나도 큰 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32강 조 편성도 그다지 만만치 않았다. 세계 최고의 골게터 호날두가 이끄는 이웃 라이벌 포르투갈,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하는 아시아의 다크 호스 이란, 그리고 이번 대회 아프리카 팀 중 최강이라 평가받은 모로코까지. 그 와중에 모로코에게 무승부로 승점 1점을 헌납하는 등 스페인의 논란있는 플레이가 있었으나,

파일:주심 스페인한테 코너킥 왼쪽에서 차라고 했으나 오른쪽으로 차고 득점.jpg[7]

자세한 내용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B조 참고

1위로 32강 본선 조별리그를 승점 5점 1승 2무 힘겹게 통과하고, 러시아한테 승부차기로 탈락하여 16강 10위로 마쳤고, 비록 8강은 못 갔지만 감독 첫 데뷔전 무대치고는 큰 메이저 대회인데다가 팀 명성에 걸맞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적지않은 압박감이 있음에도 굉장히 짧은 시간동안 팀의 장점과 색깔을 지키면서 최종적으로 무패 기록을 달성한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성과 외적으로 떠나 급박한 상황의 무너지기 직전인 팀을 수습할 감독은 찾기 어려웠으며 이 상황에 감독 경험이 없던 이에로가 스스로 총대메고 팀을 안정화 시킨 자체로도 박수받을 부분이다. 참고로 2018년 월드컵에서 무패탈락을 달성한 팀은 무패 우승한 프랑스, 무패 탈락한 스페인, 덴마크 이렇게 3팀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다들 훌렌 로페테기에게 책임을 묻지 로페테기가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운 이에로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월드컵 개막 하루 전 감독으로 선임이 되었는데 그 악재 속에서도 무패를 달성한 것으로 그의 감독 역량은 확인된 셈.

월드컵 이후 지도자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밝혀 사실상 은퇴 상태이다. 한편 신태용이 물러난 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오퍼가 없었던 걸로 확인되었다.


5. 행정가 경력[편집]


2022년 10월 17일, CD 과달라하라 디렉터로 선임되었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2002
  • FIFA 클럽 월드컵 올스타팀: 2000
  • UEFA 올해의 수비수: 1997-98
  • FIFA XI: 1996, 1997, 1998
  • ESM 올해의 팀: 1996-97, 1997-98
  • 레알 마드리드 명예의 전당: 2005
  • 마르카 레알 마드리드 올타임 베스트 XI: 2017
  • IFFHS 스페인 올타임 드림팀: 2022


7. 여담[편집]




  • 홍명보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 유난히 겹치는 이미지가 많다. 일단 나이가 비슷한데, 홍명보는 빠른 1969년 생이기 때문에 1968년 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으므로 한국식으로 치면 이에로와 동기이다. 그리고 둘 다 수비수 출신이다. 또한 1994년 미국 월드컵 24강 조별리그에서 같은 조에서 첫 경기를 치렀고[8], 나란히 중거리 슛으로 골을 터뜨렸다. 이에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스위스와의 16강전에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고 홍명보는 독일과의 24강 조별리그 3차전에서 중거리 슛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자국 축구 대표팀의 캡틴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32강 본선에 출전하여 둘 다 주장 완장을 차고 8강전에서 맞붙었고, 경기에서 둘 다 승부차기를 성공했다. 그 대회 베스트 11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월드컵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출전했다는 경력까지도 비슷하다.

파일:GOAL_Defender.jpg
  •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수비수들 중 5위에 이름을 올렸다.

  • 이름이 이름인 탓에 한국인들에게는 삐에로라고 잘못 불리기도 한다.

  • 과거 위닝 일레븐 시리즈가 선수 라이센스 없이 발표되던 시절 이에로는 미에로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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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성기 84~86 kg[2] 대표팀 역대 득점 6위.[3] 94월드컵 스페인 8강 최종 8위[4] 유로96 스페인 8강 최종 6위[5] 유로2000 스페인 8강 최종 5위[6] 공교롭게도 이에로는 선수 시절에도 월드컵 개막 팀인 한국과의 경기에서 승부차기로 패배한 것을 끝으로 국가대표를 은퇴했다.[7] 모로코가 스페인을 2:1로 앞서가던 중에 스페인의 코너킥상황에 주심은 왼쪽으로 차라고 지시 했으나 스페인이 무단으로 오른쪽코너에서 패스하고 차서 2:2동점골을 넣자 주심이(VAR판독 오프사이드 분석결과) 골로 인정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모로코의 노르딘 암라바트 선수가 오죽했으면 "VAR은 쓰레기야" 할 정도로 스페인은 유리한 판정을 받았다.[8]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24강 본선에서도 둘 다 신인으로 출전하였으나 스페인전에서 홍명보가 풀 타임 출전을 한 반면 이에로는 벤치에만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