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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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숙아
鮑叔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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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姒)

(鮑)

숙아(叔牙)
아버지
포경숙(鲍敬叔)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723년 또는 716년 ~ 기원전 644년

1. 개요
2. 일생
2.1. 제환공을 옹립하다.
2.2. 관중을 천거하다
3. 죽음과 사후
4.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정치가. 춘추시대의 패자 제환공을 섬기던 신하이다. 그의 친구이자 제나라의 명재상인 관중과의 우정을 나타낸 고사성어 관포지교로 유명하다. '포숙아(鮑叔牙)'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2. 일생[편집]


어릴 적부터 관중과 깊이 교류하며 우정을 쌓아 왔는데 관중의 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포숙은 관중이 혼자 장사를 했다 망하자 운이 없는 거라 위로했고 관중이 관리가 되었다가 3번이나 쫓겨나자 마찬가지로 "자네는 운이 없는 것이지 자네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세."라며 위로했다. 또한 관중이 군인이 되겠다며 전쟁터에 나갔다가 3번이나 달아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맹비난 했는데 자신만은 관중이 노모를 모시고 있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감싸주었다.


2.1. 제환공을 옹립하다.[편집]


후에 커서 정치계로 나가 관중은 공자 규(糾)를 섬기고 자신은 공자 소백을 섬겼다. 그러다가 관중이 소백을 활로 쏘아 죽인 후 공자 규를 모셔와 군위에 앉히려 했으나 소백은 화살을 허리띠에 맞아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그 길로 도성으로 가서 공(公)으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제환공이다.


2.2. 관중을 천거하다[편집]


그 일로 관중은 감옥에 갇히고 제환공은 포숙을 재상에 임명하려 했다. 하지만 포숙은 제환공이 작은 나라를 다스리려면 자신을 재상으로 삼아도 충분하지만,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려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아야 한다며 관중을 천거했다. 이에 제환공이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포숙은 관중의 밑에 있길 꺼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포숙을 스승처럼 여기던 제환공은 어떻게든 포숙에게 실권 있는 높은 직위를 내리려 했는데, 이에 관중은 "포숙과 주공의 관계가 두텁다는 것은 제나라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포숙이 굳이 높은 자리에서 실권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관리들은 그의 눈치를 볼 것이고, 그는 주공을 곁에서 모시며 관리들을 감찰하면 될 것입니다."라며 제환공을 설득했고 당연히 포숙도 이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웠던 제환공은 전쟁에서 공이라도 세우라고 여러 번 포숙을 대장으로 삼아 내보냈으나, 그 때마다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친구인 관중의 출중한 재능에 가려서 그렇지 포숙도 뛰어난 인재이긴 한데, 다만 용병(用兵)의 재능은 딱히 없었던 듯 싶다.

관중의 정치에 힘입어 제나라는 강국이 되어 제환공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覇者)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관중은 "날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3. 죽음과 사후[편집]


관중이 제환공에게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못노닌다"며 포숙의 깐깐함을 염려하여 습붕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간신배를 멀리하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사망하였고 그의 유언대로 제환공이 습붕을 재상으로 임명하였으나, 습붕이 단명하면서 제환공은 포숙을 재상으로 임명하려고 한다. 포숙은 재상에 오르는 조건으로 제환공에게 수초, 역아, 개방 등의 간신배를 가까이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고 포숙의 의견을 따라 그들을 내쳤으나, 얼마 가지 않아 제환공은 그들을 다시금 가까이한다. 포숙은 간신배들을 내쫓으라며 여러 차례 간하다가 제환공이 계속 따르지 않자 관중의 예측대로 홧병으로 사망한다. 죽은 뒤에 그의 자손들이 대대손손 봉읍을 받고 고관을 지내, 후에 사람들이 "관중의 현명함은 몰라도 포숙의 지혜는 안다." 고 하는 등 그를 칭송한 것을 보면 죽은 후에도 많이 유명했고 존경을 받았던 듯 보인다.

그러나, 손자인 포국·포목 등 후손들은 포숙과 정반대로 나라 말아먹는 막장 간신배가 되고 만다! 포국은 높은 전공을 세운 사마양저를 모함하여 내쫓아 그를 잉여 상태에서 비참하게 죽게 만들었다. 이어 손자 포목은 다른 대가문인 전씨와 영합하여 다른 제나라의 대가문들과 내전을 벌인다. 덕분에 그 안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나라 꼴은 말도 안되게 돌아갔고, 이 내전에서 승리하긴 하였으나 나라는 망가지고 결과적으로 전상의 전씨가 제나라의 최대 권력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다시 견제하기 위해 포목은 전씨와 같이 세운 제도공을 죽이고 제나라 사람들과 함께 제간공을 옹립.. 하였으나 전상에게 다시 역공을 당하고 결국 전상이 제나라를 먹어치워 포씨 일족들은 전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해외로 도망치고, 포씨 가문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그야말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역으로 달성한 중국사 최악의 말종이 되어버려 중국사에서도 호부견자로 유명해지고 만다.[1]

4.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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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14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 고대무장으로 등장한다. 능력치는 지력, 정치력, 매력이 80대인 문관이다. 전체적으로 관이오보다 낮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통솔력과 무력이 낮아 전장에서 쓰긴 그렇지만 내정용으로는 쓸 만하다.

삼국지 10에서는 통솔력 64/무력 55/지력 85/정치력 87/매력 91의 능력치로 나온다. 능력치는 나름대로 쓸 만하고 특기는 농업, 상업, 진정, 고무, 은밀, 유인, 지리, 항변, 반론, 반박, 논파, 군사, 간첩이다. 무엇보다 군사 특기가 있는 게 메인 포인트. 그러나 명사가 없어서 도적한테 털리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8/무력 46/지력 82/정치력 87/매력 89으로 삼국지 10 때보다 크게 너프가 되었고, 특기는 보좌다. 포숙의 능력치가 낮지만, 통솔력이 높은 무장과 의형제를 맺고 같은 부대로 출진시키면 포숙의 단점인 통솔력을 보완할 수 있다. 당연히 친애무장은 관이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53/무력 46/지력 82/정치력 87에 병과는 기병, 전법은 진정이다. 친애 무장은 당연히 관중이다.

삼국지 13에서도 등장했지만 친구인 관중에 비하면 능력치가 정말 보잘 것 없다. 능력치는 삼국지 12 때와 같고 중신특성은 상업중시이며 특기는 상업 3, 문화 5, 인덕 4다. 최고까진 아니지만 나름 수준 있는 문관이며, 무엇보다 인덕이 4 달려 있어서 상성만 맞으면 장수도 잘 빼온다. 병과적성은 C/B/C 로 허약하고 전법도 위보라 전쟁 쪽에는 크게 도움이 못 되니 부장으로 쓰거나 내정이나 맡기자.

삼국지 14에서 13과 마찬가지로 통솔 63/ 무력 46/ 지력 83/ 정치 87/ 매력 89 로 후방 지원용 무장이라 할 수 있다. 갖고 있는 개성이나 전법 또한 내정용이라서 전장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1] 이와는 반대로 관중의 관씨 가문은 근근히 가문을 유지하다가 저 막장 사태 속에서 강씨가 멸망하는 그 날까지 강씨 편을 들다가 전씨에게 밉보여 가문이 망할 지경이 되자 노나라·초나라로 이주해 살았다. 이후 한나라 시절 관소경이 연령 벼슬을 받자 관중의 후손들은 주허현에 모여 살게 되며 관소경의 후손들은 대대로 절개와 명예를 중시했다고 한다. 정작 조상들은 정반대였음(포숙아는 원리원칙에 꼬장꼬장했고 관중은 반대로 제환공 수준으로 사치도 하고 여색도 즐기는 등 공자가 "관중이 예를 안다면 예를 모르는 이가 있냐?" 고 깔 정도였다)을 감안하면 서로 뒤바뀐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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