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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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스커 재단
[[래스커상|

파일:래스커상_배경.png
]]
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
1959년
<white,#003da9>
1960년
<white,#003da9>
1961년
앨버트 쿤스
줄스 T. 프로이트


[ 프랜시스 크릭 外 6명 ]
모리스 윌킨스
제임스 듀이 왓슨
제임스 V. 닐
라이오넬 펜로즈[1]
에른스트 루스카
제임스 힐리어
수상자 없음




OM FRS
프랜시스 크릭
Francis Crick


파일:640px-Francis_Crick.png

본명
프랜시스 해리 콤프턴 크릭
Francis Harry Compton Crick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출생
1916년 6월 8일
영국 잉글랜드 노샘프턴셔 웨스턴 파벨
사망
2004년 7월 29일 (향년 88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직업
생물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분야
생물물리학
유전학
분자생물학
물리학
서명
파일:프랜시스 크릭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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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물리학 / B.Sc.) (193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곤빌 앤 키즈 컬리지
(생물학 / Ph.D.) (1954년)[1]
소속
케임브리지 대학교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캐번디시 연구소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
솔크 생물학 연구소
지도 교수
막스 페루츠 (Max Ferdinand Perutz)
수상
앨버트 래스커 기초 의학 연구상 (1960)
캐나다 가드너 국제상 (1962)
노벨 생리의학상 (1962)
EMBO 멤버십 (1964)
NAS 준회원 (1969)
로열 메달 (1972)
코플리 메달 (1975)
핸스 크레브스 경 메달 (1977)
알버트 메달 (1987)
아카데미 오브 어치브먼트 골든 플레이트 상 (1987)
종교
무종교(불가지론)


1. 개요
2. 생애
3. 망언 및 기행



1. 개요[편집]


센트럴 도그마를 제창하였으며, 코돈을 밝혀낸 분자생물학의 초거두. 1962년 DNA 구조를 함께 밝혀낸 J.D.왓슨, 모리스 윌킨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영국 출신.


2. 생애[편집]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박사 학위는 아직 취득하지 못한 채 물의 점성 연구 같은 것을 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크릭은 군에서 레이더 및 어뢰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전쟁 중 하필이면 크릭의 연구실 천장으로 폭탄이 떨어져 연구실은 박살이 났고 그에 따라 전후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 군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의 영향으로 관심사를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돌렸다.

전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캐번디시 연구소(Cavendish Laboratory)에서 생물물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고, 바로 이곳에서 왓슨을 만난다. 참고로 크릭의 사후에 나온 기사에선 빨고 이중나선 구조를 생각해냈다고 한다. 훗날 1993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받은 캐리 멀리스라는 양반도 크릭이 한 것과 똑같은 약을 하고, 순간 유레카급 깨달음을 얻어서 그 유명한 PCR 기법을 발명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951년에서 1953년까지의 3년간의 크릭과 왓슨의 공동 연구 이후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크릭은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와 SALK 생물학 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나간다. 솔크 연구소는 연구소 자체의 높은 수준으로도 유명하지만, 더욱 유명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이다. 위대한 건축가 루이스 칸의 작품으로 중앙 정원에서 라호야 바다를 마주하는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DNA의 구조 발견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 후에도, 무시무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현대 분자생물학의 최강자로 군림하였다. 예를 들어 어댑터 가설을 제창하여 RNA에서 아미노산을 운반해 올 어댑터가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던진다. 어댑터는 후에 tRNA로 밝혀진다.김성호 교수 관련 기사 그리고 단백질 합성의 아이디어를 내고 유전 암호를 생각해낸다. 이는 '아미노산은 스무 개 가량이고, 염기 서열이 암호일 거 같은데 스무 개의 코드를 만들려면 염기는 4개니까 4*4*4=64니까 3개의 염기 정도면 될 거 같은데? 겹치는 거 몇 개 있을 거고 시작하고 끝내는 거 있겠지 뭐.'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뚝딱 나온 아이디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조. 클릭

크릭의 이러한 '저지르고 증명은 다음 세대로 미루기'는 DNA 구조 발견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DNA의 반보존적 복제라던가, RNA 세계 가설 등이 크릭이 한참 전에 찍어놓은 것들이었고 결국 맞는 것으로 증명된 것이 많다.

범종설 중에 외계인에 인해 생명체 탄생했다는 정향 범종설 혹은 의도적 범종설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제외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 부호가 같다는걸 알아내면서 혹시나 외계인에 인해 탄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주장하는건데, 이를 들은 학자들은 전반적으로 SF적이지 않냐고 비판한적 있었다. 크릭도 역시 자신의 주장중에 SF적인 주장이 있다고 직설적으로 인정하기는 하나, 때론 그럴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고 그저 자기 추측했을뿐이라는 뉘앙스 의견을 조심스레 남겼었다고 한다.

3. 망언 및 기행[편집]


아직까지 살아있는 제임스 왓슨에 많이 가려졌지만, 이 사람도 우생학 옹호론자로 수많은 망언을 남겼다. '유전자적으로 나쁜 부모는 아이를 하나만 낳아야 한다' 등등 그외에도 여러 종류의 망언과 험담으로 악명이 높다.

분자 생물학자 낸시 홉킨스가 밝히길, 학부 시절 크릭의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가슴에 손 대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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