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랑 말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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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랑 말루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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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 · 2005-06 · 2006-07



프랑스의 前 축구 선수


파일:5528.jpg

이름
플로랑 말루다
Florent Malouda

본명
플로랑 요안 말루다
Florent Yohan Malouda
출생
1980년 6월 13일 (43세) /
프랑스령 기아나 카옌
국적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파일:프랑스령 기아나 비공식 상징기.svg 프랑스령 기아나)
신체
181cm, 73kg
직업
축구 선수 (윙어 / 은퇴)
소속
선수
AJ 생조르주 (1990~1991 / 유스)
USL 몽졸리 (1991~1993 / 유스)
ASC 레미레 (1993~1995 / 유스)
LB 샤토루 (1995~1997 / 유스)
LB 샤토루 (1997~2000)
EA 갱강 (2000~2003)
올랭피크 리옹 (2003~2007)
첼시 FC (2007~2013)

트라브존스포르 (2013~2014)
FC 메스 (2014~2015)
델리 다이너모스 FC (2015~2016)
와디 데글라 SC (2016 / 임대)
FC 디페르당주 03 (2018)
국가대표
80경기 9골 (프랑스 / 2004~2012)
4경기 (프랑스령 기아나 / 2017)
가족
아들 아론 말루다

1. 개요
2. 클럽
2.4. 델리 다이너모스 FC
2.5. 와디 데글라 스포르팅 클럽
2.6. FC 디페르당주 03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프랑스령 기아나 태생인 프랑스의 축구 선수.[1] 포지션은 윙어로 빠른 스피드와 파괴적인 드리블, 그리고 정교한 크로스와 골결정력까지 갖춘 윙어였다.


2. 클럽[편집]


프랑스 1부, 2부 리그를 전전하던 샤토루를 시작으로 프로 리그에 입단한 말루다는 2000년 갱강으로 이적, 당시 갱강에서 뛰던 디디에 드록바와 호흡을 맞추며 한 시즌에 함께 27골을 만들어내는 맹활약을 선보인다. 이후 드록바는 마르세유로, 말루다는 리옹으로 이적한다.

리옹 시절의 말루다는 그야말로 말루다 할 수 없는[2]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현대 축구에서 왜 윙어가 중요한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윙어 하나로 팀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이, 수비력이 탄탄하다고 소문난 프랑스 리그에서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며 자신의 기량을 과시했다.


2.1. 첼시 FC[편집]


07-08 시즌에는 첼시 FC로 이적한다.[3] 팬들은 갱강 시절 드록바와 명콤비를 보여주며 골을 만들어낸 말루다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초기에는 리옹 시절의 폭발적인 드리블과 득점력이 잘 나오지 못해 팬들에게 비난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외신에서도 리옹의 스타플레이어가 첼시로 와서는 서서히 저물어간다고 표현했을 정도. 때문에 그를 영입한 주제 무리뉴가 경질된 후, 감독 대행이 된 아브람 그랜트는 말루다의 자리인 왼쪽 윙 자리를 스트라이커이자 영입생이던 니콜라 아넬카로 대체해 말루다는 첫 시즌을 부진한 성적으로 지내게 된다. 08-09 시즌 전반기에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 밑에서 다시 신임을 얻었고[4] 주전으로 뛰었다. 다만, 전반기에는 아넬카와 함께 경기력은 별로인데 스탯은 잘 쌓는다고 하여 스탯 사기꾼이라는 별명이 생겼었다.

그러다가 08-09시즌 후반에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 대행 체제에서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와 함께 폼이 급격하게 좋아지며 맹활약을 펼친다. 허나 리옹 시절의 포스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상당수 있다.[5]

그리하여 맞이하게 된 09-10 시즌, 말루다는 드록바, 아넬카와 함께 삼각편대를 구성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환상적인 경기력과 더불어 리그에서만 12골을 집어넣는 활약으로 첼시의 리그, FA컵 더블에 핵심적으로 공헌하며 자리를 굳히고는[6]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한다.

10-11시즌 전반기까지도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으며 리그 탑급 윙어의 모습을 보이며 공격진이 부진했던 첼시 내에서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는 모습으로 2010년까지 매우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10-11시즌 후반기인 2011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무슨 귀신이라도 들린 것인지, 이게 정말 과거의 그 말루다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어 이전부터 기복이 심해서 신뢰를 잃어가던 살로몬 칼루와 함께 이라는 멸칭이 생겨날 정도로 팬들이 뒷목을 잡게 만드는 한심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해당 시즌 리그에서 13골을 넣었으므로 팀 내 최고 득점자이긴 했지만 09-10 시즌의 활약이 너무 압도적이었던 데에 비해 해당 시즌부터는 숫자로 보이는 스탯에 비해 실제 경기력은 너무나도 쓰레기 같았기 때문이다. 첼시가 10-11시즌에서 끝끝내 무관에 그친 데에는 드록바의 말라리아 감염과, 램파드의 장기부상과 동급으로 말루다의 추락이 큰 악영향을 끼쳤다..

첼시가 별다른 영입을 하지 못했던 11-12 시즌에도 용케 내쳐지지 않고 스쿼드 내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으나 소년가장 후안 마타에 밀려 완전히 자리를 잃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간혹 시간 떼우기 용으로 어쩌다 나오는 경기에서도 공격 포인트를 양산한 적도 있긴 했지만 차마 눈 뜨고는 봐줄 수 없는 경기를 펼쳐 뭇 첼시 팬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심지어 뮌헨과의 챔스 결승전 후반에 교체로 들어가 무언가 베테랑으로서 활약을 해줄까 했으나, 지친 선수 대신 들어가서 한 발이라도 더 뛰라고 넣어준 건데도 마치 선발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마냥 건성건성 맥빠진 경기를 했다. 12-13 시즌에 들어와서는 첼시에서 한 경기도 출전 못하고, EPL 엔트리 등록 제외에 심지어 유소년 팀에서 같이 훈련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이에 대해 말루다 본인은 인터뷰에서 환상적인 '12개월의 프리시즌'이라는 자조적인 개드립을 날리고는 특별한 환송이나 작별행사도 없이 첼시를 떠나게 되었다...

2.2. 트라브존스포르[편집]


결국 12-13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으로 방출. 터키의 트라브존스포르와 계약했다.


2.3. FC 메스[편집]


2014년 9월 12일 FC 메스와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2.4. 델리 다이너모스 FC[편집]


FC 메스와 계약이 끝난 후 인도 리그에 있는 델리 다이너모스 FC에 입단했다.


2.5. 와디 데글라 스포르팅 클럽[편집]


2016년 이집트 리그의 와디 데글라 스포르팅 클럽으로 임대갔다.


2.6. FC 디페르당주 03[편집]


2018년 룩셈부르크 리그의 FC 디페르당주 03에 단기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3. 국가대표[편집]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주전 윙어로 뛰며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결승전에서 페널티 킥을 유도해냈다.[7] 또한 그 개막장이라던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팀 내 유일한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8] 특이한 일로는 2006 월드컵 조별리그 스위스전을 치질 수술 때문에 결장한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말년에 프랑스령 기아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도 뛴 경력이 있다. 2017 CONCACAF 골드컵 미국 본선에 오른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 최종명단에도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프랑스령 기아나가 FIFA 회원국이 아니어서, 프랑스령 기아나 협회가 말루다를 활용할 수 있겠다는 계산아래 이뤄진 결정이었다. 심지어 대회 본선에도 뛰었는데, 온두라스전 0-0 무승부에 크게 일조한다. 하지만 후에 FIFA가 유권해석을 내려 말루다를 '부적격 선수'로 규정했고, 해당 경기는 프랑스령 기아나의 0-3 몰수패로 선언되었다. 이후에는 프랑스령 기아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뛴 적이 없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어서 어디서든 주연급은 아니었지만 큰 경기에서 알짜배기 활약을 보여줬던 언성 히어로로, 2000년대 중반 첼시의 성공에 굉장히 큰 공헌을 한 선수였다. 조용하지만 중요한 팀 조력자로서 저평가되었다는 말이 아직도 나오는 맨유시절 박지성과 비슷한 면이 있다.

주 포지션은 윙어로, 준수한 드리블 능력과 전성기 기준 윙어로서 준수한 주력, 수준급의 수비참여를 동반한 좋은 활동량을 보여줬던 선수였다. 특출난 것은 없지만 수비진영에서도 많이 뛰는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감독 교체 등으로 팀에 전술 변화가 있을 때 많은 포지션 재배치를 경험했는데, 루드 굴리트처럼 육각형 덕목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일단 1인분 이상은 잘 해주었기 때문에 딱 첼시가 말루다 쉬프트로 그럭저럭 재미를 볼 정도는 해줬다. 단적인 예로 2009-10시즌 카를로 안첼로티의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에서 중앙 움직임을 동반한 측면 미드필더 역로 빛을 보았으며, 해당 시즌 우승에 좋은 기여를 하는가 하면 팀 비상시에는 윙백으로도 모습을 종종 비췄다. 그리고 주발인 왼발 킥도 꽤 정교한 편이라서 정발 윙어인 좌측 윙으로 나올 때에 위협적인 모습을 종종 보여주기도 하였고,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 잠깐 나오기도 하는 등 왼발 킥은 꽤 좋은 편이다.

의외로 큰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자주 보여줬는데, 20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리버풀전 멀티 어시스트나 같은 해 아스날전 골,2009년 FA 컵 결승 어시스트, 2009-10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득점 관여 등 자신이 직접 넣은 골은 없지만 첼시가 승리한 중요한 경기들에서는 말루다가 어떻게든 득점에 관여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플레이 스타일 자체가 이목을 많이 끄는 편은 아니어서 첼시에서도 디디에 드로그바프랭크 램파드 등에 비하면 주목도가 크게 밀리는 편이었고, 후에 부상으로 주력마저 크게 상실하며 이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급격하게 폼이 떨어져 입지를 잃게 된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리그 1 올해의 선수: 2006-07
  • 리그 1 이달의 선수: 2006년 11월
  • UNFP 리그 1 올해의 팀: 2004-05, 2005-06, 2006-07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10년 3월
  • 인도 슈퍼 리그 올해의 선수[9]: 2016


6. 여담[편집]



  • 치질이 있다. 현재는 치료가 완료된 상태다.

  • 동생 레슬리 말루다도 프랑스 1부리그 디종 FCO등에서 활약한 축구선수였다. 그 영향으로 2011년 말루다가 디종의 주식을 구입하여 소액주주가 되기도 했다.

  • 상기된 바와 같이 첼시 시절 전에도 갱강에서 디디에 드로그바와 한솥밥을 먹었다. 말루다는 당시 운전면허가 없던 드로그바와 차를 같이 타고 출근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는데, 훗날 말루다의 회고에 따르면 부진했던 갱강에 이적시장 막판에 급히 영입된, 갓 유망주 티를 벗은 신출내기였던 드로그바는 그때부터 이미 스타의 자질이 있어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으로 락커룸을 압도했다고 한다.

  • 2023-2024 시즌에 LOSC 릴 유스 출신에서 프로 계약을 체결한 아론 말루다가 플로랑의 아들이다. 포지션은 아버지와 비슷한 위치인 공격형 미드필더.

[1] 해외 자치령 출신의 선수로 조국이 FIFA 미가맹국이라 본토 대표팀에서 뛰었다는 점에서 그린란드 태생이지만 덴마크 국가대표로 뛰었던 예스페르 그룅키에르와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린란드 축구 국가대표팀FIFA와 대륙연맹에 모두 미가맹한 국가지만, 프랑스령 기아나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만 미가맹했지 대륙연맹에 가입된 국가란 차이점이 있다. 따라서 후술되었듯이 말루다는 선수 말년에 조국인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 소속으로 대륙컵인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다만 프랑스 대표팀 경력으로 부적격 선수로 분류되어 그가 뛴 경기는 몰수경기로 처리되었다.[2] 참고로 이 언어유희피파온라인 3에서 게임 중 말루다로 드리블을 할 때 상황에 따라 박문성해설위원이 하기도 했다.(이야~ 말루다, 말루다 할 수 없는 드리블능력 보여주네요!)[3] 첼시에는 최상급의 왼쪽 윙어 아르연 로번이 있었지만 그놈의 유리몸이 큰 걸림돌로 작용해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파다했다. 물론 적은 경기에도 로번의 활약은 매우 뛰어났고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네덜란드 커넥션을 계기로 로번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자 대체자로 말루다를 영입하게 된다.[4] 디디에 드록바가 잠시 흔들리던 시절이라 아넬카가 다시 스트라이커로 돌아갔고 자연스레 말루다가 주전 왼쪽 윙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5] 물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가 최상급의 리그인 만큼 말루다의 활약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이런 말이 나올 만큼 리옹 시절 그의 활약은 엄청났다.[6] 이 시즌의 말루다의 활약상은 정말 글자 그대로 호날두가 부럽지 않았다. 물론 호날두는 해당 시즌부터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가 되었지만..[7] 지네딘 지단이 마무리하여 앞서나갔지만 마르코 마테라치의 만회골로 맞불을 놓으며 연장까지 갔다. 연장전에서 이 두사람의 충돌로 지단이 퇴장당하고 프랑스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8] 당시 감독이었던 레몽 도메네크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다.[9] Hero of the Le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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