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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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토
隼人(はやと

파일:하야토 구마소.png
기원전 7세기 이전? ~ 721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조몬 시대
일본
율령국가

위치
규슈
주요 근거지
아타(阿多, 사츠마 반도 일대)
정치체제
부족사회
종족
하야토인
언어
하야토어?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종교
하야토 신화
주요사건
720년: 하야토의 반란 발발
721년: 일본[1]에 정복됨
800년: 반전수수법(班田収授法) 적용으로 공동제 해체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오늘날에는 사라진 일본의 옛 소수민족으로 사쓰마, 오스미(현재의 가고시마현 일대) 등지에 살았으며 하야비토(はやびと), 하이토(はいと) 등으로도 불렸다. 하야토라는 이름은 "발빠른 자" 혹은 "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2. 역사[편집]


규슈 남부 지역은 야마토가 세를 확보했을 무렵에도 독자적으로 부족 공동체를 형성했었다.[2] 일본 측의 기록으로는 8세기 초에 야마토의 후신인 일본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있다. 현재는 일본인동화되어 사라졌다. 고고학적인 발굴이나 인골조사를 통해 볼 때는 내륙부는 조몬인들이 다수였지만 해안가 일대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야요이인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3] 기록을 볼 때 언어도 야마토와는 상당히 달랐다. 또한 머리를 납작하게 누르는 편두 관습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문화는 일본에 복속된 이후로 한 동안 간사이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던것으로 보이는데, 하야토무가 그 흔적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열 언어를 쓰는 민족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전학적인 검사 결과나 현재 가고시마현 주민들의 체모가 타 규슈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것을 생각하면,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조몬인야요이인들 계통의 부족이 결합되어 생겨난 민족으로 추정되며, 다만 하야토인들은 그 중에서도 조몬인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고고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야요이인이라 해도 대만 원주민이나 중국 남부에 살던 월계 종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파일:日向族-隼人族-大和族.jpg
왼쪽부터 하야토 족, 야마토 족, 히무카 족.

사쓰마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사쓰마하야토라 부르며 지역감정이 센 편이다.[4] 그렇지만 동화된 지도 오래일뿐더러, 사쓰마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번벌을 형성할 정도로 잘나갔고, 현재 일본 국회의 원내에 진출해있는 많은 전현직 정치가 가문의 뿌리가 되는 등 자부심이 강하다. 단, 사쓰마 방언은 현재도 다른 간사이 방언들과 현격한 억양, 발음 차이를 보여 아직 옛 하야토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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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마토라는 국호는 701년 다이호 율령으로 이미 폐지된 상태였다.[2] 일본이 꽤 길쭉한 나라이기 때문에 야마토 정권이 있던 긴키 지방에서 가고시마현 사이의 거리가 한국으로 치면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두만강 사이의 거리에 육박한다.[3] 사실 야마토 정권이 지방에까지 손을 댈 만큼 중앙집권화 된 6세기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수십여 개에 달하는 군장국가들이나 지방세력들이 나름대로의 이합집산을 거쳤고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조몬인야요이인이라는 종족명은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지, 당시에는 야요이인이나 조몬인이나 하나의 정체성을 지녔던 집단이 아니고 각 부족별로 정체성이 다 달랐는데 그 때는 유목민족과 수렵민족뿐만 아니라 농경민족도 부족이 다르면 다른 민족이 되는 시대였다.[4] 간토, 도호쿠 지방의 주민들은 중앙인 긴키 지역 주민들에게 '아즈마에비스'로 불렸다. 에비스는 하야토와 마찬가지로 일본 열도의 옛 소수민족의 하나였던 에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