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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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사라진 일본의 옛 소수민족으로 사쓰마, 오스미(현재의 가고시마현 일대) 등지에 살았으며 하야비토(はやびと), 하이토(はいと) 등으로도 불렸다. 하야토라는 이름은 "발빠른 자" 혹은 "매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규슈 남부 지역은 야마토가 세를 확보했을 무렵에도 독자적으로 부족 공동체를 형성했었다.[2] 일본 측의 기록으로는 8세기 초에 야마토의 후신인 일본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있다. 현재는 일본인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고고학적인 발굴이나 인골조사를 통해 볼 때는 내륙부는 조몬인들이 다수였지만 해안가 일대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야요이인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3] 기록을 볼 때 언어도 야마토와는 상당히 달랐다. 또한 머리를 납작하게 누르는 편두 관습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문화는 일본에 복속된 이후로 한 동안 간사이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던것으로 보이는데, 하야토무가 그 흔적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열 언어를 쓰는 민족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전학적인 검사 결과나 현재 가고시마현 주민들의 체모가 타 규슈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것을 생각하면,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조몬인과 야요이인들 계통의 부족이 결합되어 생겨난 민족으로 추정되며, 다만 하야토인들은 그 중에서도 조몬인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고고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야요이인이라 해도 대만 원주민이나 중국 남부에 살던 월계 종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왼쪽부터 하야토 족, 야마토 족, 히무카 족.
사쓰마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사쓰마하야토라 부르며 지역감정이 센 편이다.[4] 그렇지만 동화된 지도 오래일뿐더러, 사쓰마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번벌을 형성할 정도로 잘나갔고, 현재 일본 국회의 원내에 진출해있는 많은 전현직 정치가 가문의 뿌리가 되는 등 자부심이 강하다. 단, 사쓰마 방언은 현재도 다른 간사이 방언들과 현격한 억양, 발음 차이를 보여 아직 옛 하야토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 개요[편집]
오늘날에는 사라진 일본의 옛 소수민족으로 사쓰마, 오스미(현재의 가고시마현 일대) 등지에 살았으며 하야비토(はやびと), 하이토(はいと) 등으로도 불렸다. 하야토라는 이름은 "발빠른 자" 혹은 "매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2. 역사[편집]
규슈 남부 지역은 야마토가 세를 확보했을 무렵에도 독자적으로 부족 공동체를 형성했었다.[2] 일본 측의 기록으로는 8세기 초에 야마토의 후신인 일본에 복속된 것으로 나와있다. 현재는 일본인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고고학적인 발굴이나 인골조사를 통해 볼 때는 내륙부는 조몬인들이 다수였지만 해안가 일대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야요이인들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3] 기록을 볼 때 언어도 야마토와는 상당히 달랐다. 또한 머리를 납작하게 누르는 편두 관습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문화는 일본에 복속된 이후로 한 동안 간사이 일대에서 인기를 끌었던것으로 보이는데, 하야토무가 그 흔적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계열 언어를 쓰는 민족이라는 얘기도 있다. 유전학적인 검사 결과나 현재 가고시마현 주민들의 체모가 타 규슈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다는것을 생각하면, 야마토와 마찬가지로 조몬인과 야요이인들 계통의 부족이 결합되어 생겨난 민족으로 추정되며, 다만 하야토인들은 그 중에서도 조몬인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생각된다. 다만 고고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하면 야요이인이라 해도 대만 원주민이나 중국 남부에 살던 월계 종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왼쪽부터 하야토 족, 야마토 족, 히무카 족.
사쓰마의 주민들은 스스로를 사쓰마하야토라 부르며 지역감정이 센 편이다.[4] 그렇지만 동화된 지도 오래일뿐더러, 사쓰마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번벌을 형성할 정도로 잘나갔고, 현재 일본 국회의 원내에 진출해있는 많은 전현직 정치가 가문의 뿌리가 되는 등 자부심이 강하다. 단, 사쓰마 방언은 현재도 다른 간사이 방언들과 현격한 억양, 발음 차이를 보여 아직 옛 하야토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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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마토라는 국호는 701년 다이호 율령으로 이미 폐지된 상태였다.[2] 일본이 꽤 길쭉한 나라이기 때문에 야마토 정권이 있던 긴키 지방에서 가고시마현 사이의 거리가 한국으로 치면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두만강 사이의 거리에 육박한다.[3] 사실 야마토 정권이 지방에까지 손을 댈 만큼 중앙집권화 된 6세기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수십여 개에 달하는 군장국가들이나 지방세력들이 나름대로의 이합집산을 거쳤고 혼혈도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조몬인과 야요이인이라는 종족명은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지, 당시에는 야요이인이나 조몬인이나 하나의 정체성을 지녔던 집단이 아니고 각 부족별로 정체성이 다 달랐는데 그 때는 유목민족과 수렵민족뿐만 아니라 농경민족도 부족이 다르면 다른 민족이 되는 시대였다.[4] 간토, 도호쿠 지방의 주민들은 중앙인 긴키 지역 주민들에게 '아즈마에비스'로 불렸다. 에비스는 하야토와 마찬가지로 일본 열도의 옛 소수민족의 하나였던 에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