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호(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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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육군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끝으로 소장 계급으로 예편했다.
강원사대부고(7회)졸업 1979년 육군사관학교 39기 입학
1983년에 육군사관학교(39기)를(컴퓨터공학사) 졸업하고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 학력
-육군사관학교 컴퓨터공학사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 석사
-목원대학교 정책학박사
2. 경력
-육군 소장 전역
-육군 제5군단 부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합참 군사지원본부 전력기획부장
-육군 제1사단장
-육군본부군수조직개편차장
-제35보병사단 연대장
-육군사관학교 부생도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담당관
-제2군사령부 감찰부 검열과장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육군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끝으로 소장 계급으로 예편했다.
2. 생애[편집]
강원사대부고(7회)졸업 1979년 육군사관학교 39기 입학
1983년에 육군사관학교(39기)를(컴퓨터공학사) 졸업하고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 학력
-육군사관학교 컴퓨터공학사
-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 석사
-목원대학교 정책학박사
2. 경력
-육군 소장 전역
-육군 제5군단 부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합참 군사지원본부 전력기획부장
-육군 제1사단장
-육군본부군수조직개편차장
-제35보병사단 연대장
-육군사관학교 부생도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담당관
-제2군사령부 감찰부 검열과장
3. 여담[편집]
- 대구가톨릭대학교 안보학 객원교수(정책학 박사) 로 활동했었다.
- 키가 굉장히 크다. 대략 185cm 정도 추정된다. 게다가 다리도 길고 어깨도 굉장히 넓어 직접 마주치면 굉장히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 별명이 몽키 D 가프였다.
- 1사단장 재임기에는 1사단의 위수지역을 상급부대인 1군단과 협의하여 넓힌 공로가 있다.
- 1사단장 시절에 휴가를 상당히 많이 뿌렸다고 한다. 그래서 후임 사단장인 장경수 소장이 휴가를 많이 줄였다.# 그렇다고 조건없이 휴가를 퍼주는건 아니였고 신상필벌이 확실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그 사례로 1사단 휘하 아무 부대를 기습적으로 방문 후 데프콘 상황을 발령해서 수행을 잘 하면 포상휴가를 뿌리고, 수행을 못할 경우는 해당 부대 부대장과 주임원사가 며칠 간 연병장에서 군장을 도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덕분에 하창호 소장이 취임 후 2달이 되지 않아 1사단 모든 부대가 데프콘 상황을 완벽하게 수행되었고 그만큼 포상휴가도 자주 뿌려졌다.
- 다른 사례로는 저녁에 사복차림으로 부대를 기습적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단장임을 알아보고 부대 문을 그냥 열어줄 경우 당연히 부대장과 주임원사가 군장을 돌았고[1] , 수하 실시 등 경계근무를 확실하게 한 경우에는 해당 초병들에게 포상휴가를 주었다.
- 휴가를 받고 집으로 가던 병사가 파주역에서 사복차림으로 다니던 사단장 부부를 알아보고 경례를 크게 외쳤는데[2] 이때도 당연히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휴가가서 휴가받아옴 - 그 외에도 우렁찬 경례를 한다거나 모범적인 자세를 취하면 그 자리에서 포상휴가를 주는 경우도 많았다.
- 또 한 사례는 어느 대대 방문하여 훈시도중 탈북자가 남파공작원일수도 있는데 이 경우 어떻게 할거냐 라는 질문에 "김정일이나 김정은 개새끼 해보라고 합니다!"라고 외친 병사가 포상휴가를 받는 사례도 있었다.
- 상당히 군인다운 자세나 군기를 중시했던 인물이다. 훈련과 부대관리도 빡세게 했던 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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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간 경계근무 중에는 아무리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이 방문했을지라도 수하는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2] 하창호 사단장 재임 당시 1사단은 단순하게 '전진!'이라고 경례하는게 아니라 '전진! 나는 할 수 있다! (주먹을 위로 들며) 아자 아자 아자!'라는 경례를 하였다.[3] 김완태 장군은 32사단장을 마치고 3군 참모장과 육본 군수참모부장을 역임했는데 군수직능이 이러한 요직을 거치면 중장 진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하창호 장군은 합참에서 진급에 유리하지 않은 자리를 거쳤기 때문에 진급에서 밀리게 된 것. 또한 김완태 장군은 1차 진급자이지만 하창호 장군은 2차 진급자였던 점과 작전 직능과 달리 인사, 군수 직능이 중장에 진급하는 것은 1기수당 1명 꼴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점도 한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