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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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는 한국 장르 판타지 씬 내부에서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이뤄져온 논쟁, 장르 개념이다.
'한국적 판타지'는 2001년 하이텔에서 군사소설가 김경진과 안병도, 그리고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이우혁의 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을 통해 한국 장르 판타지씬의 주요 논쟁 거리로 부상한다. 이 논쟁은 소득없이 끝났으나, 이후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한국적인 게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이어지며 장르 판타지 씬의 기나긴 논쟁의 씨앗이 된다.
하이텔 논쟁 이후 한국적 판타지는 00년대의 한국형 XXX 유행과 맞물리며 한국형 판타지로 변형되었고, 동시기 블록버스터 무비로 성공한 영미권의 판타지 창작물, 국제적인 인지도를 가진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에픽적이고, 완성도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을 수 있는 한국형 판타지가 나올 수 있는가?라는 의미도 덧붙여진다.[1]
이러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 개념은 10년대 웹소설 시기 한국 그 자체를 반영한 웹소설 장르들과 웹소설 향유자들의 인식 변화로 어느정도 정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문서에서는 판타지 소설 장르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판타지 소설 이외의 한국적인 판타지 창작물을 총괄하는 문서가 아닌 점에 유의. 이에 대해선 가상 역사 판타지, 사극 판타지 항목 참고.
2. 역사[편집]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 개념은 시기별로 세가지로 나뉜다.
2.1. 이전: 해외 판타지 매체의 재현[편집]
90년대 말부터 00년대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한 한국 판타지 소설은 영미권과 일본을 위시한 외국 판타지의 카피작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 장르 판타지씬은 문학의 변두리이자 매니아적 서브컬처로 장르의 외연적, 내연적 확장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로부터 시작된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외국의 판타지 자료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 당시 장르 판타지는 미답지여서 절대적인 자료가 부족했으며, 때문에 외국 판타지 자료는 이를 번역하여 불법으로 가져올 수 있는 소위 얼리어답터, 어학능력, 개인 PC, 수도권 거주 등의 조건을 충족하는 소수에 의해 유통되었다.[3]
- 한편 한국 문학은 문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리얼리즘 문학이 중심이었으며, 군부 독재, 분단 체험 등의 현실을 중심으로 다뤘다. 이로 인해 판타지적, 환상적 예술은 비현실적이고 비판기능이 없는 사치행위라고 비판받았으며, 판타지에 관한 논의나 유통은 문학의 양지에서 쉽게 이뤄질 수 없었다.[ㅇ]
이처럼 당대 판타지 창작자들의 외연적, 내연적 확장은 현실적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초창기 한국 장르 판타지 씬에선 국내 장르 판타지의 개척과 한국형 판타지의 창출이라는 이념 하에 시대적 제한을 벗어나 해외 판타지 매체[4] 를 광적으로 수집하고,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로 재매개하여 재현하는. 즉 창작물로 재현하는 행위가 일상화된다.[ㅇ]
한편 한국 판타지 소설의 복제, 재현 대상이었던 서양의 하이 판타지, 소드 앤 소서리와 일본의 용사물은 나름대로의 정서나 전통적 소재, 이미지를 판타지 창작물에 넣거나 자신들만의 판타지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구축한 결과물이었다. 당시 판타지 향유자들이 해외 매체를 광적으로 수집하여 국내 장르 판타지를 개척하고, 한국형 판타지를 창출하려 했다는 점을 돌아보면 이같은 해외 매체의 양상이 이후의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과제, 나아가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시기의 한국형 판타지 창출 이념은 한국에서 불모지인 판타지 장르를 개척하고 완성도 있는 판타지 세계관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전통적 이미지나, 국수주의,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00년대의 한국형 판타지 담론과는 의미가 다르다.
2.2. 2000년대[편집]
2.2.1. 시장 성장과 한국적 니즈의 발달[편집]
90년대 중후반 PC통신에서 창작, 소비되기 시작한 한국 판타지 소설은 퇴마록, 드래곤 라자의 출판 붐을 통해 대중 시장에 급부상, 파란을 일으킨다. 이 때 판타지 소설은 대중들에게 관심있게 소비되면서도 비판받기도 했는데, 주된 비판점은 문학성의 부족[5] , 그리고 서양과 일본의 매체를 바탕으로 창작하는 관습에 대한 비판이었다.[6] 이러한 맥락에서 대중들의 반발, 문학계의 비판, 왜색과 서구적 모티브에 대한 민족주의적 비난 등이 나타나곤 했으며, 당시 군사소설가 김경진은 하이텔 게시판에서 이영도에게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며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한편 문학성, 독창성의 추구, 니즈는 한국 장르 판타지 씬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상술된 것처럼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으로 시작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완성도있고 성공적인 세계관 구축으로 평가받는)해외 매체를 한국 판타지 씬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한 해외 판타지 매체들은 타국의 장르와 자국 문화를 접합하거나(주로 일본), 자국 문화와 정서를 통해 판타지 장르를 새로이 정립하기도 했다.
이같은 목표, 니즈, 비판이 뒤섞인 결과, 한국 판타지 소설 장르를 개척하고 완성도 있는 판타지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니즈에 또다른 니즈가 추가된다. 해외 매체의 재현, 재매개를 통한 완성도 있는 한국의 판타지 창출에서 나아가, 한국 고유의 전통적 소재나 색, 세계관을 판타지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성도 있는 판타지를 창출하길 바라는 니즈, 즉 한국적 판타지에 대한 니즈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초창기엔 불모지였던 한국의 판타지를 해외 매체의 재현, 재매개를 통해 개척한다는 의미의 기존 한국적 판타지 관념은, 대중의 관심과 비판, 내적 성장이 더해진 이 시기를 거치며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 중심이던 판타지 씬의 장르 헤게모니를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더하게 된다.
- 한편, 상술된 (판타지와 전통 문화를 접합하는 양상의)한국적 판타지 니즈 형성에는 해외, 그 중에서도 옆나라 일본의 문화 매체가 특히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일본은 판타지 매체에 음양사, 닌자, 일본도같은 일본의 전통적(동양적) 요소를 집어넣곤 했는데, 이러한 매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에 영향을 받아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동양적인)한국 전통 문화를 접합시키는 양상의 한국적 판타지 니즈가 생겨나거나,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
2.2.2. 하이텔 한국적 판타지 논쟁[편집]
한국적 판타지 니즈가 대중의 주목과 내적 성장하에 점차 생겨나기 시작한 가운데, 한국적 판타지를 본격적인 담론으로 끌어올린 사건은 2001년 1월 하이텔 시리얼 잡담란에서 군사소설가 김경진/안병도, 그리고 판타지소설가 이영도/이우혁의 한국적 판타지 논쟁으로 여겨진다.
제가 한국적 환타지라는 말을 쓰고 꺼낸 것은 바로 앞의 문제와 연관된 선상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언급하건대, 저는 한국적 환타지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환타지의 전부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이므로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절대 배제해야 될 위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한국적 환타지는 대단히 좋은 것이라 여깁니다. 우리가 그런 시스템을 못 만들면 할 수 없지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색깔을 붙여야만 된다는 국수주의 또한 대단히 위험한 것이겠지요. 한마디로, 환타지는 폭 넓은 것이며 한국적 환타지도 환타지의 한 갈래임에 불과합니다. 한국적 환타지를 만들어 독창적 가치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환타지의 주류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중세서양이 환타지의 정형이 아닌 것 처럼, 한국형 환타지도 환타지의 정형은 될 수 없는 겁니다. 환타지는 바로 그 제한 없음과 무한히 뻗을 수 있는 요소 때문에 환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우혁 - 하이텔에서 김경진, 안병도가 이영도를 비난하는 것을 보고
미국 작가가 어떻게 하이 팬터지를 쓰는가 등의 이야기는,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셨습니다. 미국은 유럽을 가져다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그래서 팬터지를 완성시켰습니다.
(중략)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말씀해주시지요. 쓰신 바대로 그걸 생각할 능력도 없고 생각도 없으셔서 다른 것들은 서양 오랑캐 것이라고 비웃어버리는 재미만을 탐닉하실 생각이십니까? 님께 그걸 생각할 능력도 있고 생각도 그렇게 많으시다면(연작물로 3회째니 그럴 의도는 충분하시다 판단됩니다.) 이제 제발 좀 써 주십시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는 식은 사실 지겹습니다. 밥이니 한식이니 질그릇이니 하는 모호한 상징어들로 빙빙 도는 것도 보기 좋지 않고요. 한국적 팬터지가 뭡니까?
이영도 -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고 본인을 비난한 김경진, 안병도에게 남긴 글
- 해당 논쟁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의 모 창세기전 팬카페의 2002년도 게시글(아카이브)에 일부가 남아있다.
00년대 당시는 1세대 판타지소설이 PC통신을 중심으로 등장하였고, 판타지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목받으며 태동하던 시기였다. 이 가운데 군사 소설가 안병도와 김경진은[7]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에게 《퇴마록》을 예로 들며 '한국적 판타지를 쓰지 않는다'는 비판을 가한다. 김경진은 중세 서양 배경의 검과 마법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판타지소설들은 독창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양인이 한국인이 쓴 중세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것 같지 않다. 드래곤 라자 같은 소설이 서양인의 책장에 꽂힐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장르와 배경 면에서 독창적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집필하는 군사소설 장르는 전투 상황 묘사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 배경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이어가기도 했다. 안병도 역시 김경진과 비슷한 입장에서 이영도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이영도는 며칠동안 김경진/안병도 두 사람과 논쟁을 이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적 판타지가 뭔지 모르겠다'고 반론하며, 《구운몽》을 예시로 들며 "한국인이 쓰면 한국적이다."라는 반박을 하였으며, 타국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만약 김경진과 안병도가 한국적 판타지를 쓸 수 있으면 부디 직접 집필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논쟁이 심화되자 당시 게시판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이우혁이 지인에게 해당 논쟁이 일고 있음을 듣고 직접 등장해서 '자신은 《퇴마록》을 한국적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관심 있는 분야인 건 사실이고, 왜란종결자로 관련 시도를 해 본 것'이라는 요지의 의견을 장문으로 개진하며, '한국적'이라는 강박관념 내지 색깔을 붙여야 한다는 국수주의를 경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우혁은 한국적 판타지의 정의가 온전하지도 않은데다 한국인이 한국적 판타지만을 쓰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말미에 이영도에 대한 인신공격을 멈출 것을 종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안병도와 김경진의 어조가 격해져 인신공격 수준으로 치달았고 이에 이영도가 논의를 그만두며 논쟁은 결론 없이 종결된다.
이러한 논쟁은 이후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쟁으로 이어지며, 웹소설 시기 이전까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주요 논쟁거리로 자리매김한다.
김경진이 이영도를 비난하면서 보인 격한 어조는 분명 문제가 되지만, '독창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어필할 것'이라는 그 논지 자체는 여전히 대중적으로 비슷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가령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예시로 들면 영국의 원작 판타지 소설을 재해석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일본 특유의 색채를 짙게 넣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평가가 세계적으로 훨씬 좋고, 해당 작품의 한국 개봉 시점에서도 국내 평단과 대중들 사이에서는 '왜 한국은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못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기도 했다. 하이텔에서 일어난 논쟁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한편 이영도는 논쟁 1년 후인 2002년 3월, 보란듯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써냈으며, 눈마새 시리즈는 이후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빠지지 않는 모범 사례로 꼽히게 된다.
물론 《눈물을 마시는 새》시리즈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플롯이나 주제의식 등의 문학적 소양과 서구형 세계를 탈피한 독창적인 환상세계의 결합에 있는 것이고 '세계관이 한국적이라서'는 아니었다. 눈마새에 도깨비나 온돌, 솟대 같은 한국적인 요소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제의식과 직접 연결된 소재가 아니라 오로지 장치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러한 입장은 이영도 본인에게서도 여러번 밝혀진 바 있는데,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는 새》가 한국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으며, 《피를 마시는 새》 출간 이후 인터뷰에서도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중략) 민족이 국가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볼 때 민족 판타지라는 말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키지 않는다. 내 판타지 속에 도깨비 같은 캐릭터를 쓰는 것은 유리한 측면은 있다. 독자와 작가가 같은 언어와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어필할 것이다."라며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8]
그럼에도 한국적 판타지의 기준점이 될 만한 작품들을 언급할 때 눈마새 시리즈는 항상 언급되며, 세계관이 한국적인 대표적 한국형 판타지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지만 이영도라는 한국인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가진 한국적 판타지라는 점에는 부정하는 여론이 크게 존재하지 않는다.
2.2.3. 주된 장르적 시도 양상[편집]
이처럼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 니즈가 장르 판타지 씬 내외로 축적되고 나아가 하이텔에서 유명 작가들 사이에 한국적 판타지 논쟁이란 사건까지 나타난 결과, 이에 부응한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들이 판타지 씬에 투고되기 시작한다. 이 때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창작 양상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곤 했다.
- 설정과 용어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판타지: 등장 소재, 명칭만 한국의 것을 쓰고, 스토리, 세계관은 영미권의 소드 앤 소서리와 하이 판타지, 혹은 일본 용사물 장르의 방식을 따라가는 양상.
- 엘프, 드워프를 한국식으로 개조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며, 한국적이거나 전통적인 소재를 판타지 세계관의 핵심 설정으로 사용한다든지. 혹은 서구의 에픽 판타지 전개를 그대로 도입하면서 설정과 용어를 한국적으로 치환하는 것도 자주 쓰였다.
- 세계관, 서사 전체를 한국적으로 쌓아올린 판타지: 세계관 및 이야기 전개요소 자체를 한국적인 소재로 완전히 쌓아올리는 방식. 앞의 양상이 용어와 일부 설정을 변형시킨다면 아예 전체적인 세계관, 서사까지 한국적으로 짜올리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한국적 환상문학 작품군이 있다.
이 시기엔 보통 첫번째 방법이 많이 쓰였다. 두번째 방법은 전통 문화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력, 필력, 스토리 작성 능력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중국풍의 오리엔탈 세계관만을 양산한다든지[9][10] , 이미 성공적인 동양풍 판타지 사례인 무협 비스무리한 작품이 되기 십상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의도적으로 이것을 배제하려고 했던 작가조차 무공이나 내공 같은 것을 써 버린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11]
- 번외로, 실제 조선시대 판타지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군담, 신이(神異) 소설류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상당수가 중국을 배경으로 쓰거나, 중국을 모델로 한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쓰여졌기 때문. 이처럼 고전 소설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굉장히 컸는데, 중국의 영웅 소설인 《설인귀전》이 한국 영웅 소설에 끼친 영향만 살펴봐도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2.2.4. 당시 한국적 판타지 개념의 한계[편집]
그러나 위의 시도는 곧 한계를 맞이한다. 정작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라는 개념 자체가 정의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00년대 당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니즈는 분명 존재했으나, 장르 판타지 향유자들이 인식하는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정의는 개개인마다 달랐고 합의조차 되지 못한 상태였다. 즉 실체가 불분명한, 논쟁적인 장르였다.
이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장르 판타지 씬 전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은 당연히 나오기가 매우 어려웠고, 때문에 당시 출판시장, 그리고 인터넷 연재로 쏟아져나오던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창작물들은 대부분 단발적으로 그치고 만다.
물론 개별 한국적 판타지 작품 중 상업성,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는 건 아니었다. 눈물을 마시는 새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개별 작품의 성취로 그친다.
즉 한국적인 판타지 작품은 줄곧 나왔지만, 해외 매체의 복제와 재현 중심이었던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장르 헤게모니까지 한국적으로 변화시킨, 한국형 판타지 논쟁을 종결시킨 작품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 개념이 가진 한계, 정의가 합의 되지 못했다는 약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한계로 인해 한국적/한국형 판타지는 00년대 내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는 한계를 맞이한다. 이러한 한계를 반영한 사건, 상황으로는 아래의 사례들이 꼽힌다.
2.2.4.1. 민족주의적 반감의 영향과 한계[편집]
00년대의 한국적 판타지 논쟁은 개별 작품의 성취외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일부 시도와 성공적인 사례는 있을지언정, 논쟁자들이 바라던 장르내외와 국내외를 넘나들며 인정받은 한국적인 세계관 창작물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형 판타지의 한계는 대부분의 한국적 문화 창작물 논란이 가진 한계의 연장선상에 있다. 즉 해당 시도와 논쟁은 장르와 시장 자체적으로 완숙되어 일어났다기 보단, 서구, 일본 등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당시 한국형 판타지와 관련된 비난 레파토리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당대 장르 판타지 향유층들은 "한국 판타지 씬이 한국적인 작품을 향유하지 않는다"는 맥락으로 비난받곤 했다. 즉 서구/일본 판타지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1, 2세대의 한국산 판타지 향유층들은 덜 판타지 적이거나 장르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타지 씬이 향유하는 판타지가 한국적이지 않기 때문에 비난받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민족주의적 비판들도 그렇다면 한국적인 판타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마땅히 답변할 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비판에 자극 받아 창작된 한국형 판타지들도 상당했으나, 이들도 마땅한 결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당대 한국적 판타지는 한국적 요소에 대한 인식과 정의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적 환상문학에 대한 진지한 사유나 고찰이 아닌 민족주의적 반감, 위기의식에 의해 반발적으로 시도되는 경우가 많았고 때문에 문학적, 장르적으로 피상적인 결과물만 낼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한국형 판타지 시도, 논쟁이 맞닥뜨린 대표적인 한계가 바로 서양 판타지에 한국형 소재만 넣어서 똑같이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한국형에 대한 마땅한 고찰이 없다보니, 이미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서양 판타지 작품의 성과에 빗대어 한국적으로 만든 판타지가 서양 판타지처럼 성공한다면 그것이 한국형 판타지일 것이라는 결론이 암암리에 나버린 것이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가 아닌, 노벨상 콤플렉스에 가까운 결론이었다.
노벨상 콤플렉스에서 간과되던 해외의 탄탄한 기초학문처럼, 당시 글로벌한 인기를 얻었던 서양 판타지 장르는 서구권의 옛 역사와 전설, 신화 등을 융합하고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들이 수 세기에 걸쳐 누적된 결과였다. 즉 개념을 형성하기 위한 뼈대, 독자적인 흐름, 시장의 규모, 역사가 충분한 상태에서 진행되며 여러 성공적인 사례[12] 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허나 00년대의 한국 판타지 씬은 시작된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으며, 시장도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수준이었다.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기대하는 성공적인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이 자연적으로 탄생하기 극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 따라서 (민족주의에 영향을 받은)한국형 판타지 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그나마 본받을만한)성공적인 외국의 사례를 카피하는 모순으로 이어진다. 이런 모순들은 대체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으며, 성공하더라도 개별 작품의 독특한 성취 정도로 남을 뿐 장르 판타지 씬의 헤게모니 전체를 바꾸진 못했다.
2.2.4.2. 외면받은 한국적 환상문학[편집]
헌데 정말 한국형 판타지가 정말 없었을까? 한국형 판타지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기존에 없던 게 아니었다. 김진의 《바람의 나라》 , 김혜린의 《불의 검》, 이두호의 《머털도사》, 김삼의 작품군에서부터 《바람과 구름과 비》나 이우혁의 《퇴마록》, 《치우천왕기》, 윤현승의 《흑호》, 심형래의 영화들 까지. 이미 한국형 환상 문학이라고 할 만한 스타일은 존재하고 있었고 계속 생산되었다.
하지만 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논란에선 위와 같은 작품군이 핵심적인 모델로 제시되지 못했고 받아들여지지도 못했다. 당시 핵심모델로 제시되었던 반지의 제왕 등, 기존 성공을 거둔 서양 판타지들과 비교하면 너무 형태가 달랐기 때문이다.[13]
즉 위의 작품군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결론은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말하던 이들이 진짜로 바랐던 것은 결국 한국형 판타지라기보단, 서양 판타지의 논리와 재미를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한국형 소재를 잘 버무려낸 판타지 소설이란 것을 재확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앞서 설명되었듯 그런 건 존재할 수 없다. 서구의 판타지는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담습하면서도 한국적으로 적용하려면 오류가 쌓일수밖에 없다.[14][15] 이러한 소설은 일정한 재미는 보장할 수 있어도, 깊이있고 누가 봐도 한국적인 세계관이다! 라고 하기 힘들었고,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기도 힘들었다. 그에 반해 나름의 스타일을 갖고 쌓아올려진 한국형 환상 문학은 외려 그 때문에 논란에서 배제되거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16]
2.2.4.3. 간과된 한국 판타지 소설의 변화[편집]
한편 한국형 판타지 개념이 장르 헤게모니의 화두가 되면서, 정작 한국 판타지 소설의 점진적인 변화가 간과되기도 한다. 한국적인 색채를 띤 완성되고 에픽적인, 장르 헤게모니로서의 한국형 판타지 창작물이란 개념, 논쟁에 집중한 결과, 실제 한국 판타지 소설의 독자적인 변화, 즉 한국적인 변화를 간과한 것이다. 이는 향유층 사이에서도 양판소, 이고깽 등으로 비하되며 간과되어온 문제기도 하다.
예를 들어 초창기 한국 판타지 소설은 영미권의 소드 앤 소서리와 일본의 용사물의 재현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이러한 재현 과정에서부터 이미 원전인 영미권, 일본의 서양 판타지와 상당히 다른 형태를 띤다. 서로 다른 세계관, 정서를 지닌 영미, 일본의 판타지 클리셰들이 융합됐기 때문이었다.[17] 여기에 WRPG, JRPG, 국산 MMORPG를 위시한 다양한 게임 장르의 향유까지 반영된 결과, 이미 한국의 판타지 소설은 원전을 복제, 재현하면서도 그와 함께 변형된 판타지 세계관과 정서를 구현하게 되었다. 즉 한국인에 의해(한국적으로) 변형된 판타지란 초석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묵향 이후로는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아 무공과 유사한 형태의 무술, 깨달음, 소드마스터 등의 무협풍 설정이 판타지 세계관에 도입되었으며, 이후 현대 한국인의 이세계 이동을 주제로 하는 퓨전 판타지 붐, 00년대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과 당시 청년 세대의 니즈에 영향을 받은 게임 판타지 붐을 겪으며 한국인의 니즈를 판타지 세계관 하에서 적극적으로 투영하는 문화도 자리잡는다.
이 같은 변화가 누적된 결과, 00년대 중반 한국 판타지 소설은 서양, 일본의 원전들에서 상당히 변형된 세계관과 클리셰를 갖추게 되었으며, 장르 씬을 지배하는 정서, 코드도 한국인의 니즈로 변형되기에 이른다. 즉 한국적 판타지 개념이 생겨나고, 논쟁이 무르익었던 시점에, 이미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담론이 원했던 한국인이 한국적인 니즈를 바탕으로 한국적으로 쓴 판타지 소설을 소비하고 있었고, 해외 매체의 복제, 재현 중심이었던 장르 헤게모니를 한국적인 코드로 변형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이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한국적인)변화는 오히려 한국형 판타지와 거리가 먼 행태로 여겨졌다. 즉 한국적이지 않은 해외 매체 복제, 재현의 연장선으로 인식되었으며, 양산형 판타지 소설 즉 양판소라는 비하적 용어로 불리며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장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같은 한국 판타지 소설의 내부 변화는 시간이 상당히 지난 뒤, 한국형 판타지에 대한 니즈가 사실상 소멸해버린 웹소설 시대에 이르러서야 웹소설식 한국형 장르 헤게모니를 완성하며 빛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해선 후술될 #2010년대 문단 참고.
2.2.5. 그 외 장르적 시도[편집]
한편 위의 시도 외에도, 다른 방법과 양상으로 한국적/한국형 판타지가 시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단발적으로 끝나거나, 장르적 문제를 겪으며 기피되고 만다.
- 한국형 정서의 시도
- 환단고기 혹은 민족사학과의 결합
다만 이러한 작품군들은 많은 반발을 얻게 된다. 환단고기나 한반도의 역사, 설화에서 비롯된 재창작된 신화 서사정도로만 해석됐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신화적 모티브를 통해 약소국 컴플렉스를 충족시키는 것과[18] , 소설을 넘어서 환단고기가 진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본디 이런 위서, 유사역사서에 근거한 판타지 소설은 각국에서 흔히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편이다. 브리타니아 열왕사, 아서 왕 전설, 리어왕이 그 예. 이러한 위서 기반 소설은 자국 국민의 역사적 컴플렉스의 해소를 목적으로 하거나, 일종의 가설을 재미있게 표현하거나, 때때로 정치적 효과를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본디 한국에서 환단고기를 모티브로 썼던 초기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 위서 소설의 스타일을 따랐다. 문제는 그것이 위서를 근거한 소설, 위서문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실제 알려지지 않은 역사처럼 홍보되고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물론 마케팅을 위해 그럴 듯 하게 이야기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진짜 역사라고 확신하고 그것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창작한 작가들도 더러 있었다.
결국 이러한 시도는 필연적으로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 즉 환빠를 불러모으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으며, 이들의 행패로 인해 환단고기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들 역시 위서, 역사왜곡이라는 대중들의 비판을 받게 될 수밖에 없었고, 잠시 열풍처럼 불어닥치던 환단고기 관련 창작물 열풍은 여러 학자들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대중들에게 일일이 해체되고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이후 환단고기를 비롯한 위서 관련, 민족사관적 판타지들은 일선 작가들에게 있어 모티브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평가와 과도한 적대감을 낳는 계륵이 되어 점차 기피되기 시작한다.[19]
이로 인해 실제 환단고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군들은 정교한 영웅 서사와 큰 스케일의 독자적, 민족적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음에도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 성과를 문학적인 관점에서 공유하기 어렵게 되어버리고 만다. 게다가 환단고기는 여러 지역 신화와 도교 서적에서 내용을 베껴다가 살을 조금 붙인 정도인지라 딱히 창작물로써도 독창적이거나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상술한 브리타니아 열왕사, 아서 왕 전설 등과 비교해 창작 소재로 이용할만한 가치도 결코 좋은 수준이 아니다.
그외에도 환단고기 혹은 그와 비슷한 민족사관적인 한국형 판타지의 구상은 또다른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역사의 접합과 문화적인 영향력, 세계관 구성을 중점으로 구상하다보니 정작 소설로서 재미가 없는 경우가 왕왕 생기기도 했다는 것. 이들의 경우 동시기 자극제가 된 외국의 판타지 영화, 소설에 대한 민족주의적 위기감, 해외의 문화 수출에 대응할 민족적 문화 원형의 구상같은 목적, 의도하에 소설 구상을 시작하다보니 정작 이야기적인 완성도, 재미를 챙기질 못하여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20]
2.2.6. 그 외 담론과 논쟁[편집]
이처럼 적지 않은 시도가 이루어지던 가운데 여러 담론이 오가기도 하였다.
- 사고방식
뿐만 아니라 \'판타지라고 하는 장르를 만들려면 옛 가치관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유해야 한다.\'라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유럽이나 미국의 판타지는 옛 유럽, 미국의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인가? 만일 위와 같이 현대 한국인은 사고방식이 서구식이라 옛 관점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정통 사극이나 〈전설의 고향〉 같은 것은 절대로 만들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타지는 얼마나 뚜렷한 2차 세계를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이영도와 전민희는 잘 짜인 2차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에 국내 최고의 판타지 소설가가 된 것이다.
- 일본 판타지는 서양식 이야기에 일본식 소재만 붙였다?
더 나아가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친 《로도스도 전기》나 《슬레이어즈》 와 같이 기존의 서양 판타지를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작품도 나오게 되었다. 로도스도 전기의 디드리트가 비록 서양의 엘프에서 비롯된 캐릭터이기는 해도 서구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없고, 오히려 일본식 엘프와 그의 영향을 받은 한국식 엘프의 원류라는 것을 보면 될 것이다. 지금도 일본 작품은 배경이 판타지건 타국이건 일본풍 소재를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22] 이 점에 대해 일본의 자국 중심주의에서 기인한 국뽕 요소라고 보면서 이른바 '일본 대단해'의 일환이라 간주하여 비판하는 타국 독자도 꽤 있는데, 전후 맥락 없이 일본 대단해로 수렴되는 졸작들이야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창작의 역사에서 보면 자국의 색을 짙게 넣는 것 자체는 사실 비판을 받을 요소조차 아니다.
2.2.7. 결론[편집]
이렇듯 한국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스타일은 이미 확고한 형태로 존재했음에도, 2000년대 당시 판타지 소설을 쓰려던 이들 중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시도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서양 판타지가 갖고 있던 스타일에 한국형 소재를 억지로 끼워넣거나, 한국 고유의 세계관을 추구한다는 명분 아래 난해하고 매니악한 소설을 썼었기에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한국 판타지 시장이 아직 그러한 논란을 소화할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애초에 서양 판타지는 세계관을 참고할 자료나 모방할 작품이 넘쳐나고, 스타일 역시 정리하기 쉽게 기준들이 나와 있었으며, 그 시작은 서구권의 옛 역사와 전설, 신화 등을 융합하여 거기에 상상력을 가미한 형태였다.[23] 일본 역시 이미 수 십년동안 자국과 서양의 문화 요소를 이용한 창작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24] 이처럼 오랜기간 축적된 시장을, 90년대 말에서야 붐이 일어난 한국 판타지 소설계에선 작가 개인의 필력에 모든걸 의지한 채 뽑아내야 했으니 그런 작품들과 대등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기가 쉬울 리가 없었다.
정리하면, 00년대 당시 활동하던 대다수 한국 판타지 소설 작가들의 작품 스타일이 서양 판타지였다는 점, 시장 자체적으로도 성숙도가 높지 않았다는 점, 억지로 서양 판타지에 한국형 소재를 끼워 맞추려 한 점, 그리고 00년대의 국내 독자들 대다수가 서양 판타지의 요소를 원했다는 점, 한국형 판타지의 정의 조차 합의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00년대 당시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을 자리잡지 못하게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한국형 판타지 담론, 니즈는 퓨전 판타지와 게임 판타지를 거쳐 레이드물과 현대 판타지 등의 신생 판타지 작품군이 등장하며 점차 축소되고. 10년대엔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형 판타지 담론, 니즈에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형 판타지는 정통 담론과 함께 00년대 장르 판타지 씬의 상업화, 양산화를 비판하고 자성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2.3. 2010년대[편집]
2.3.1. 한국형 판타지 니즈의 축소[편집]
이처럼 00년대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주요 담론이었던 한국형 판타지는 장르문학 시장의 주 소비처였던 도서대여점이 몰락하고 시장이 축소되며 점차 중요성을 잃는다.
물론 이 시기에도 작품성과 문학성, 한국적 독창성을 요구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로 활동하던 판타지 소설 장르는 퓨전 판타지, 게임 판타지, 현대 갑질물의 유행을 거치며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었고,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형 판타지 담론을 주장할 독자들의 규모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의 변화 누적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적 판타지 담론은 작품성, 독창성과 한국적 이미지를 주요 코드로 삼았으나, 정작 실제 (도서 대여점 하)장르 판타지 씬의 코드는 상업성과 출판사의 출판 전략하에 적극적으로 클리셰를 전유하고, 독자들의 니즈 충족 즉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작품성, 독창성을 중시하던 판타지 향유층이 대거 이탈한 결과, 한국형 판타지 담론도 마찬가지로 축소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도서대여점의 몰락으로 인한 시장의 축소, 도서대여점 말기 등장한 현대 갑질물을 필두로 한 현대 판타지의 유행, 웹 상에서 로맨스 판타지, 미션물, 레이드물 유행이 이어지며 한국형 판타지 니즈는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그러나 10년대에 이르며 상황이 변한다. 도서대여점 사멸 이후 웹소설로 무대를 옮긴 한국 장르 판타지 씬은 향유층의 니즈와 대리만족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클리셰와 코드를 축적시켰는데, 이처럼 과거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배제되었던[25] 향유층의 니즈에만 집중한 결과 오히려 이전의 시도들보다 더욱 한국적인 판타지를 창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형 판타지 논쟁처럼 완성도있는 동양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목표로 하진 않았으며, 현대 한국인인 독자의 대리만족과 니즈 충족을 목표로 하였다. 이 결과 웹소설은 판타지에 현대 한국인의 정서, 인식을 반영하거나, 나아가 한국과 한국인 그 자체를 판타지화하기에 이른다.
2.3.2. 웹소설에서 정립된 한국적 판타지[편집]
이렇게 한국적/한국형 판타지 논란은 그대로 다른 한국적 서브컬처 논쟁과 비슷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흐지부지 되는가 했지만, 2012년에 이르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조아라 노블레스에 등장한 《나는 귀족이다》로부터 시작된 레이드물, 《MEMORIZE》부터 시작된 한국식 이세계물, 도서대여점 시대 말기에 등장한 현대 판타지와 같은 새로운 판타지 장르들이 주류로 발돋움하며 탁상공론에 불과했던 한국형 판타지가 마침내 그 실체를 얻게 된 것이다.
대여점에서 웹소설로 개편된 판타지 소설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식 이세계물이나 헌터물, 전문가물 등의 장르는 현대 한국의 정서나 서사를 담고 있으며, 심지어는 한국 그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 현대 판타지
-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회귀나 상태창, 빙의 등 판타지적인 힘이나 현상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주로 그리는 장르. 보다 적극적인 대리만족과 현실감을 원하는 독자들의 욕구를 겨냥한다. 현대 한국인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각종 현실에서 유래된 문화, 정서, 욕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된다는 특징이 있다.[26]
- 한국식 이세계물
- 00년대 겜판소와 이고깽의 발전형에 가까운 장르. 과거 모험과 에픽적인 스토리 중심이었던 이세계물과 달리, 현실적인 갈등과 긴장을 중점으로 한다. 한편 겜판소의 상태창과 튜토리얼 개념을 도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 혹은 소수의 이세계 전이자들이 중심이 되는 기존 이세계물과는 다르게, 게임의 유저와 비슷한 현대인들이 수없이 이세계에 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들이 시스템을 통해 강해지며 겪는 갈등과 긴장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가 된다.
- 기존의 이고깽, 일본의 용사소환 클리셰와는 다른 현실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편이다. 현대인 천재론은 배척되는 편이며, 기존의 이고깽과도 전개나 클리셰가 판이하게 다르다. 주적또한 이세계의 인물이 아닌, 주인공과 같은 전이자들 즉 현대인이 되곤 하며 서로 경쟁하고 착취하는 불합리한 구도가 연출되곤 한다.[27]
- 헌터물
- 2010년대 이후 국내외 모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고유 판타지로 인지도가 높은 장르로,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장르다. 괴수들이 나타난 현대사회와 그를 사냥하는 초능력자 헌터의 이야기를 다루며, 현대 한국 자체를 판타지화시킴으로써 독자들의 몰입감과 공감을 끌어올린다.
- 겜판소, 이고깽등 기존 주류 장르의 테이스티에 한국의 현대를 접목하였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겜판소 등에서 사용되던 레벨 및 게임 시스템이 자주 차용된다. 또한 한국을 판타지화함으로써 기존 판타지와 무협계에서 원했던 거대하고 에픽적인 공동세계관과, 독창적이며 한국 고유의 성격을 지닌 세계관을 동시에 표현해낸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이러한 실체는 기존 담론에서 원했던 형태, 말하자면 서양 판타지와 한국 전통 문화의 융합과는 사뭇 다른 편이다. 그러나 전통적 소재를 차용해야지만 한국적인 건 아니며, 오히려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코드와 문화 요소, 현대 한국인의 욕구와 정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이 장르들은 그토록 찾아 해매던 한국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 과거 한국형 판타지와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상상력이 한국인의 니즈에 부응한 결과, 나름의 장르 문법을 쌓아올렸고 시장에서 실제 부응하기까지 했다는 점은, 기존 논쟁에서 염원해왔던 충분히 이상적인 한국적/한국형 판타지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 웹소설 한국형 판타지에 관한 비판
그러나 이같은 비판은 한국형 판타지의 전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 첫째로, 웹소설은 한국 장르 판타지씬과 마찬가지로 주제의식, 문학성을 추구하여 형성된 장르씬이 아니다. 그러한 문학성, 주제의식, 예술성의 추구는 이미 00년대부터 향유층의 외면을 받았으며, 도서대여점의 흥망성쇠를 통해 암묵적인 결론이 난 상태이다.
- 둘째로, 한국 장르 판타지씬에서 외면된 점진적 변화처럼, 웹소설의 점진적인 발달을 간과해선 안된다.
- 예를 들어, 10년대 중후반부터 웹소설 씬에선 향유층에 대한 메타적인 헌사 혹은 장르에 대한 메타적 헌사를 다루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중점으로 호응을 받고 있다.[29] 웹소설 씬의 방식으로 작품을 상업적으로 연재하였음에도 "웹소설의 웹소설"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 또한 "나 혼자 XX"류로 표현되던 주인공의 개인적, 신자본주의적 표현 즉 이기적인 성향도[30] , 점차 관리자의 서사라든지 주변에 대한 무작위적인 시혜적 돌봄 클리셰를 통해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주인공의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한국형 판타지 담론에서, 향유층 사이에서도 논외로 여겨지던 한국 판타지의 점진적인 발달이 마찬가지로 웹소설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전처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예술성과 문학적 깊이는 상업성과 나름의 세계관을 달성한 웹소설이 넘어서야 할 다음 계단이 아니라, 웹소설이 창출한 한국형 판타지 세계관처럼, 웹소설의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형성될 가치라는 것이다.
2.4. 2020년대[편집]
2.4.1.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종결[편집]
20년대 시점에선 '한국형 판타지'와 '비한국형 판타지'의 구분이 사실상 소멸했다.
웹소설 향유층은 한국인이 웹소설을 썼다면 로맨스 판타지, 일본식 이세계물, 캐빨물, 게임 빙의물, 정통 판타지, 정통 무협, 판타지 웹소설 등 어떤 장르라 하더라도 한국적인 한국의 장르 소설로 인식한다. 즉 20년대 시점에서 한국형 판타지 담론은 종결됐으며, 이영도가 하이텔 논쟁에서 밝혔던 것처럼, 한국인이 쓰면 한국형 판타지라는 인식이 20년이 지나서야 웹소설 전체에 뿌리내린 것이다.
2.4.2. 웹소설 장르 코드로서의 가능성[편집]
그러나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종결외에, 한국형 판타지라는 용어, 개념 자체는 소멸하지 않았다. 그 자체를 특징으로 내세운 작품들도 종종 나타나기 때문. 이런 작품들은 (한국형 판타지 담론처럼) 장르 헤게모니적 의미보다는, 특정한 장르 코드 의미로 언급된다.
이러한 변화는, 과거 판타지 소설을 비판하는 담론이던 정통 판타지가 웹소설 시대에 특정 장르 코드로 변형된 것과 비슷하다. 다만 WRPG에 영향을 받으며 구체화된 정통 판타지에 비해, 웹소설 장르 코드로서의 한국형 판타지는 아직 뚜렷한 실체와 장르적 유행을 이루진 못한 상태다.
2.4.3. 해외에서 향유되는 한국 판타지[편집]
한편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사실상 소멸한 10-20년대 웹소설 시기엔, 오히려 한국적 판타지 담론에서 원했던 또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00년대 서양 판타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소비 되진 못했더라도, 해외에서도 한국 판타지 장르가 향유되는 양상이 생겨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달빛 조각사를 위시한 웹소설 장르와 해외 웹소설 장르 LitRPG의 형성, 그리고 2020년대 웹소설 원작 웹툰의 해외 흥행과 애니메이션화가 있다.
- 남희성 작가의 게임 판타지 소설 달빛 조각사는 2010년 경 소드 아트 온라인과 함께 러시아 장르 커뮤니티에 팬번역되며 인기를 얻는다. 이후 이 둘을 모방한 게임 판타지, VRMMO 팬픽 창작이 활성화 되었고, 이들의 인기에 주목한 러시아 출판사에 의해 LitRPG로 명명된 출판 프로젝트가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출판된 LitRPG들은 2010년대 중반 즈음 영미권에 소개되며 인기를 얻었고, 그 결과 영미권 장르소설 팬덤에서도 게임 판타지, VRMMO처럼 가상현실게임을 하거나 나아가 게임 시스템을 사용하는 LitRPG 창작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 또한 나 혼자만 레벨업(웹툰)을 필두로 한 템빨(웹툰),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웹툰) 등의 웹소설 원작 웹툰이 웹툰의 해외 진출을 통해 해외에서 인기를 끌기도 하였고, 이러한 해외 인기를 등에 업고 나 혼자만 레벨업/애니메이션,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애니메이션 등의 장편 TVA 애니화까지 되는 등 한국 판타지 소설의 저변은 2020년대에 접어들며 더욱 넓어진 상황이다.
- 그외에도 웹소설 외에선, 00년대 대표적인 한국형 판타지로 여겨졌던 눈물을 마시는 새가 20년대 게임화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해외 번역의 가능성이 열렸으며, 2023년엔 한국 출판계에서 단일 국가 출판 저작물 수출 역사상 최고 금액으로 유럽 출판사와 계약하며 기대를 끌어모으고 있다. 자세한 것은 눈마새 문서의 해외 발매 문단 참고.
즉 00년대 한국적 판타지 담론이 원했던, 한국의 판타지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향유되길 바라던 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형 니즈가 소멸해가던 10년대-20년대에서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3. 분류[편집]
3.1. 2000년대[편집]
2000년대의 한국형 판타지 소설은 명확한 결론과 정의를 내리지 못했지만, 어느정도 '한국형 판타지'스럽거나 그에 근접하다고 여겨졌던 장르들은 아래와 같다.
- 동양풍 판타지: 한국적 환상문학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했다.
- 가상 역사 판타지: 주로 환단고기, 민족사학과 결합된 판타지가 해당한다. 치우천왕기가 대표적인 사례.
- 사극 판타지
- 한국적인 퓨전 판타지 요소: 퓨전 판타지의 한국인 클리셰와 함께, 한국형 판타지 담론의 영향을 받아 한국적인 요소가 묘사되기도 했다.
- 새 시리즈: 새 시리즈는 이영도의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터뷰 답변을 통해 한국형 판타지로 창작되지 않았다는 점이 시사되었으나, 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논쟁에선 상업성, 작품성, 세계관을 모두 달성한 모범례로 꼽히곤 했다.
3.2. 2010년대[편집]
2010년대 후반 이후의 한국형 판타지로 분류되는 장르들.
4. 유사 사례[편집]
4.1. 한국적 라이트 노벨[편집]
하이텔에서 작가들의 논쟁이 일어난지 6년이 지나고 시드노벨이 창간된 2007년부터 한국적 라이트 노벨 논란이 시작되었을 때 이 개념이 다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이텔의 '한국형 판타지 소설' 논란이 한국식 vs 서양식의 문제라면, '한국적 라이트 노벨' 논란은 한국식 vs 일본식의 문제. 한국에서 나오는 라이트 노벨은 일본에서 나오는 일본적 라이트 노벨과 차별화된 점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논란의 요지였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4.2. 한국형 사극[편집]
《대장금》의 흥행 성공 이후 대부분의 사극이 젊은 층을 노리게 되면서, 역사 고증과 스토리라인을 말아먹고 괴상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걸 비하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4.3. 기타[편집]
- 매체의 범위를 좀 더 넓게 보았을 때 웹툰 쪽으로는 좋은 시도를 한 작품이 몇 가지 있다. 네이버 웹툰의 《신과함께》나 《낮에 뜨는 달》, 《호랑이형님》, 《동토의 여명》등이 그 예. 사실 일본 만화 붐이 있기 이전에는 이쪽이 만화의 주류 장르 중 하나였고,[33]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로도 제법 여러가지가 시도되었다. 판타지 소설 붐이 일어날 시점에는 거의 만화에만 그런 류가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영화, 연극, 드라마 쪽에서도 재차 시도되는 중이다. 모든 작품이 치밀한 세계관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적인 색채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좋게 볼 일이다.
- 2021년 게임 도깨비의 티저영상이 공개된 후 한국 풍경과 문화가 잘 녹아든 장면들이 묘사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5. 관련 문서[편집]
- 한국적
- 한국형
- 한국적 라이트 노벨
- 판타지 소설
- 웹소설
- 정통 판타지 - 한국 장르소설 내에서 거론되는 실체 없는 논쟁적 장르란 점에서 과거 2000년대 한국형 판타지 논쟁과 유사하다.[34]
- 동양풍 판타지
- 서양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