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모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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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ns Mock.jpg
이름
요한 모크
(Johann Mock)
생년월일
1906년 12월 9일
사망년월일
1982년 5월 22일 (향년 75세)
국적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오스트리아
출신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포지션
하프백, 풀백
신체조건
176cm | 76kg
소속팀
FC 니콜슨 (?-1927)
FK 아우스트리아 빈 (1927-1942)
국가대표
12경기 (오스트리아 / 1929-1937)
5경기 (독일 / 1938-1942)



1. 개요
2. 생애[1]
2.1. 선수 생활
2.2.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1. 개요[편집]


오스트리아의 전 축구 선수.


2. 생애[2][편집]



2.1. 선수 생활[편집]



2.1.1. 클럽[편집]


1927년부터 FK 아우스트리아 빈에서 뛰었으며 클럽에서는 주로 센터 하프백으로 출전했다.


2.1.2. 국가대표[편집]



2.1.2.1. 오스트리아[편집]

모크의 오스트리아 대표팀 데뷔전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였다. 1929년 9월에 있었던 이 시합에서 오스트리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 2대1로 승리했다.

모크는 1931년 9월 13일, 오스트리아가 독일을 5대0으로 대파할 때를 포함, 오스트리아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다만, 모크는 대표팀에선 요제프 스미스티크 등에 밀려 클럽에서의 주포지션인 센터 하프백이 아닌 라이트 윙하프로 뛰어야 했다.


2.1.2.2. 독일[편집]

모크는 오스트리아에서 FIFA 월드컵과 전혀 인연이 없었다. 1934년1938년 모두 오스트리아 대표팀으론 지역 예선조차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1938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오스트리아 병합으로 나라가 사라져서 오스트리아 선수들은 독일 소속으로 월드컵에 나가야 했다. 모크도 그런 선수들 중 한 명이 되었고 모크의 독일 대표팀 데뷔전이 바로 1938년 월드컵 개막전 스위스전이었다. 모크는 독일의 기존 주장 프리츠 스체판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를 뛰었고 독일은 스위스와 연장전 끝에 1대1로 비겼다. 하지만 독일은 5일 후의 재경기에서 스위스에 2대4로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모크는 1939년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독일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가 1942년까지 독일 대표팀으로 5경기를 뛰었다.


2.2. 이후[편집]


모크는 선수 은퇴 이후 잠시 트레이너로 일하다가 축구에 완전히 손을 뗐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비엔나 시내에서 자신의 와인 선술집을 운영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우아하고 기술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던 하프백.


4. 뒷이야기[편집]


  • 모크는 축구 선수이면서 피아노를 매우 잘 쳤다고 한다. 독일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피아니스트라는 기록도 있다.
  • 모크는 1938년에 나치당에 가입했다는 증언이 있다.


5. 수상[편집]



5.1. 선수[편집]



5.1.1. 클럽[편집]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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