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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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일.jpg[1]

1. 개요
2. 역사
3. 역대 그룹 임원
4. 기업 정신
4.1. 1964~1993
4.2. 1993~1998
5. 사가
5.1. 한일합섬의 노래
5.2. 1991년 이후
6. 계열사
7. 산하 기관
8. 스포츠단
9.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과거 한일합섬을 모태로 했던 기업 집단이다.


2. 역사[편집]


1956년 수당 김한수 창업주가 대경직물을 세운 게 그룹 역사의 시초였다. 1959년 사명을 '경남모직'으로 바꾸고 1962년 중앙합성섬유를 세웠고, 1964년 부산 전포동에 '한일합성섬유공업'을 세웠는데, 그룹 측은 한일합섬 설립을 공식적인 시초로 본다.

1966년 경상남도 마산시로 사업 터전을 옮기고[2] 차차 성장하여 1970년 동서석유화학 일부 주식을 인수했고, 1974년 부국증권을 인수하고 1977년 한효건설도 세워 사세 확장을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섬유업 위주로 나가다가 1982년 김한수 회장 사후 김중원 사장이 가업을 이어 1986년에 국제상사 등 옛 국제그룹 계열사 5개를 인수해 변신을 시작했고[3] 1987년 복합비료 생산 공기업 진해화학, 1989년 동방호산개발 등을 각각 인수해 세를 불렸다. 그 외에 그룹명도 1987년부터 '한일합섬그룹' 대신 '한일그룹'을 쓰기 시작했고 기존 한일합섬 비서실을 '그룹 비서실'로 승격해 그룹 총괄체제를 갖추었다.

1987~1988년 노동운동 격화로 1990년대 초반 들어 그룹측은 제조업 공장의 해외 이전을 시도해 인도네시아에 5개 라인을 이전시키고, 국내엔 2개만 유지했다. 1991년 한효과학기술원을 세우고 1992년 신라투자금융을 인수했다가, 1995년에 부국증권, 한효개발, 한효건설, 경남모직 등 4개사를 분가시키고 연합물산, 한일투자금융 등을 매각해 7개 계열사로 줄여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그 외에 마산과 수원의 옛 공장 부지를 활용해 아파트 개발까지 했다. 그러나 주력사업 대체/심화 실패, 무리한 기업확장, 우성그룹 인수 실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이듬해에 부도나 법정관리를 거쳐 여러 회사에 매각되어 해체되었다.


3. 역대 그룹 임원[편집]



  • 부회장
    • 신상대 (1992~1994)
    • 김정재 (1994~1996)
    • 김종설 (1996~1997)

  • 회장 실장
    • 신상대 (1987~1989)
    • 장경태 (1989~1991)
    • 김정재 (1991~1993)


4. 기업 정신[편집]



4.1. 1964~1993[편집]


  • 사시

신용: 신용은 기업의 생명이다

성실: 성실은 자기완성의 정신이다

창의: 창의는 향상과 발전의 원동력이다



4.2. 1993~1998[편집]


  • 경영 이념

개성과 창의의 존중, 신뢰와 협력의 추구, 성장과 보람의 공유


  • 기업상

고객에게 만족과 기쁨을 주는 기업,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기업, 인류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


  • 사원 정신

미래를 내다보고, 새롭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5. 사가[편집]



5.1. 한일합섬의 노래[편집]


작사는 이은상, 작곡은 이흥렬이 맡았으며, 1991년까지 사용했다.

(1절)합포의 너른 들판 눈부신 일터 /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의 이름
땀 흘려 보람 찾는 산업전사들 / 나라의 힘이라 내 자랑이네
(후렴)조국과 같이 크는 한일합섬 / 겨레와 같이 웃는 한일합섬
(2절)성실과 사랑으로 한데 뭉쳐서 / 번영을 다짐하는 희망찬 대열
역사를 창조하는 억센 힘으로 / 문화의 새 나라를 이룩하리라


5.2. 1991년 이후[편집]


  • 한일가족의 노래(사가): 작사는 박두진,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
(1절)보아라 우리의 꿈 찬란하고 풍성하다 / 겨레와 인류 위한 끝없는 생활가치
슬기와 정성으로 창조한다 개척한다 / 새 시대의 새 세계의 내일을 열어간다
(후렴)아~ 아~ 한일가족 영원하다 한일가족 / 전진한다 우리 한일 온 세계에 떨친다
(2절)보아라 우리 의지 성실하고 굳세다 / 모두의 밝은 앞날 보람을 안겨 주는
사회 위해 공헌하고 나라 발전 앞장선다 / 새 나라의 새 세계의 영광 기리 드높인다

  • 내 사랑 한일(이미지송): 작사는 백종석, 작곡은 김민식이 맡았다.
(1절)힘차게 두 손을 뻗어 태양을 움켜쥐고 / 내가 달린다 네가 달린다 우리가 달린다
자! 친구여 발을 굴러라 지구를 흔들어 보자 / 미래여 팔을 벌려라 도전의 파도가 간다
(후렴)내 사랑 한일(한일) 내 고향 한일(한일) / 나의 꿈이 영그는 풍요로운 대지여~ 워우워~
내 사랑 한일(한일) 내 고향 한일(한일) / 나의 손이 가꾸는 아름다운 낙원이여~ 낙원이여
(2절)뜨겁게 가슴을 열어 태산의 기상 안고 / 높이 더 높이 멀리 더 멀리 끝없이 뻗는다
자! 친구여 날개를 펴라 세계를 삼켜버리자 / 운명아 무릎 꿇어라 우리는 불가능 없다


6. 계열사[편집]


  • 한일합섬: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거쳐 2007년 동양메이저에 인수 합병됐으나 2016년 (주)동양이 유진그룹에 넘어간 후 2018년에 재분사됨. 현재는 유진한일합섬이라는 사명으로 존속하고 있다.
  • 경남모직: 1995년 독립 후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나 이듬해 법정 관리됐으나 2006년 SM그룹에 넘어간 후 2012년 고려GMB에 역합병됨.
  • 중앙합성섬유: 1968년 한일합성섬유공업에 합병됨.
  • 한영섬유: 1980년 대원봉제에 합병됨.
  • 대원봉제: 1981년 한효건설에 합병됨.
  • 국제상사 (現 LS네트웍스): 그룹 부도 후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6년에 LS그룹으로 인수됨. 산하 브랜드인 아티스는 분리독립했다.
  • 한효건설: 1995년 독립 시 경남모직에 합류했으나, 1997년 모기업의 부도로 법정관리를 받다가 2003년에 폐업됨.
  • 한효개발: 1995년 독립 시 경남모직에 합류했으나, 동일한 이유로 2004년에 폐업됨.
  • 연합물산: 1997년 성창F&D로 매각되어 '밀리오레'가 됐으나, 2006년 그 회사와 합병됨.
  • 동서석유화학: 1997년 그룹 부도 후 1998년에 지분 50%가 일본 아사히카세이에 매각됨.
  • 진해화학: 1997년 그룹 부도 후 이듬해 퇴출 수순을 밟아 2000년에 폐업됨.
  • 남주개발: 제주 하얏트호텔 운영 업체로 그룹 부도 후 2000년에 자산이 호텔서교(現 아주호텔앤리조트)로 매각됨.
  • 신남개발: 부산 해운대 하얏트호텔 운영업체로, 그룹 부도 후 1999년에 호텔이 '진산애셋H&M'으로 넘어갔고, 법인은 2001년 폐업됨.
  • 한일리조트 (現 동일리조트): 구 원효개발. 통도컨트리클럽 및 통도환타지아 운영업체로, 그룹 부도 후 2004년 동일건설에 인수됨.
  • 한일레저개발: 구 동방호산개발. 1996년 한일합섬에 합병됨.
  • 부국증권: 김중건 회장 몫으로, 1995년 독립함.
  • 한일투자금융: 1994년 신세계백화점으로 매각되어 '신세계종합금융'이 됐다가 1998년 퇴출됨.
  • 신라상호신용금고: 1994년 신세계백화점으로 매각되어 '신세계상호신용금고'가 됐다가 1999년 퇴출됨.
  • 학교법인 한효학원: 마산 및 김해 한일여자고등학교 운영법인.
  • 의료법인 안의의원


7. 산하 기관[편집]


  • 한효과학기술원


8. 스포츠단[편집]




9. 참고 자료[편집]


  • 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 해냄. 2011. p143~152.
  • 한일합섬 이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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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당 로고는 1992년부터 그룹 해체 전까지 사용되었다.[2] 한일합섬은 무학주조, 몽고식품과 더불어 마산을 대표하 3대 향토기업이기도 하다. 무학과 몽고식품은 현재도 경영되고 있다.[3] 당시 한일그룹을 비롯해 동국제강, 극동건설 등 국제보다 훨씬 덩치가 작은 기업들이 국제의 알짜 자산들을 거의 거저 받았는데 이는 당시 전두환 정부가 걷었던 각종 성금을 성실히 낸 대가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