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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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韩民国
Republic of Korea
중화인민공화국
中华人民共和国
People's Republic of China

한국어
한중관계(韓中關係)
중국어
(간체자) 中韩关系 / (정체자) 中韓關係
영어
Sino-Korea relations, Korea-China relations
1. 개요
2. 현대 한국중국 단순 비교
3. 정치
3.1. 과거
3.2. 6.25 전쟁에 대한 만주 폭격 발언
3.3. 1999년 국방부 장관의 방중시 주한미군 철수 발언 논란
4. 민간 인식
4.1. 한국인중국 인식
4.2. 중국인한국 인식
5. 경제 교류
5.1. 경제규모
5.2. 1인당 경제력
5.3. 중국 자본의 한국 부동산 시장 위협
6. 사회문화 교류
7. 교통 교류
8. 외교적 갈등 이슈들
9. 미래
10. 대사관
11. 관련 기사
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한국중국의 관계를[1] 서술한 문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2년-2022년 역대 한중정상회담 파일:중국 국기.svg


파일:김영삼 장쩌민.jpg

파일:DJ 장쩌민.jpg

파일:노무현_후진타오.jpg

노태우-양상쿤 한중정상회담
김영삼-장쩌민 한중정상회담
김대중-장쩌민 한중정상회담
노무현-후진타오 한중정상회담
파일:이명박_후진타오.jpg

파일:시진핑 방한.jpg

파일:문재인-시진핑 2017년.jpg

파일:2022년 G20 윤석열 시진핑.jpg

이명박-후진타오 한중정상회담
박근혜-시진핑 한중정상회담
문재인-시진핑 한중정상회담
윤석열-시진핑 한중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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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대 한국중국 단순 비교[편집]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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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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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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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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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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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100,412km²
9,596,960km²
인구
51,683,025명
1,444,216,102명
수도
서울특별시
베이징시
언어
한국어
중국어
명목 GDP
$1조 5,868억 (10위)
$14조 8,608억 (2위)
1인당 GDP
$30,644 (26위)
$10,839 (59위)
국방비
$391억
$2,281억
IMF 분류
선진국
신흥공업국
정치
대통령중심제
일당제
국가원수
윤석열 대통령
시진핑 국가주석
정부수반
리창 국무원 총리[2]

3. 정치[편집]



3.1. 과거[편집]


휴 워커는 그의 '한중관계사' 라는 저서에서 외교방향을 중심으로 한중관계를 4단계로 나누었다.

당시의 한중관계를 휴 워커는 한국이 중국에 대항해 세력을 키우던 시기로 규정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고대 국가들이 한문화 및 불교문화를 받아들여 국가통치의 정신적 기초도 이루기도 하였지만 고구려와 중국의 대립과 십자외교 등 당시 중국은 한반도의 국가들과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중에서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당과 연합하였지만 공동의 목표를 이룬 후 곧이어 나당전쟁을 일으켜 676년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 이후 신라와 당은 반세기 가량 냉전과 같이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 신경전을 벌이며 대치하는 기간을 보내다 733년 성덕왕 때 당나라가 신라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하는 형식으로 화친해 항전기가 비로소 끝나고 이때부터 중원 왕조와의 전면전 없이 당의 문화를 흡수하며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그 사이에 성립한 발해는 요동에서 완전히 당을 몰아내고 차차 적대에서 교류로 관계를 바꿔가며 고구려와 당의 혼합된 문화를 만들어냈다.

  • 733~1392: 양면적 대응기
(나당관계 후반, 발해-당나라 관계, 고려-북송 관계, 여요관계, 고려-남송 관계)
이때에 이르러 한중관계는 중국식 조공제도 아래서 서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활발히 교류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독자성을 유지하게 된다. 광종의 중국식 과거제도 도입이나 중국의 연호 사용 등이 이것이다. 신라와 발해, 고려의 귀족들은 한문학을 받아들이고 중국에 적극적으로 유학을 장려하면서 교양 및 수양을 쌓았고 한국의 승려들도 당나라, 북송, 그리고 중국을 경유해 서역까지 활발히 유학을 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독자적인 제천의식을 지내는 등 자주성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몽골의 침략으로 인해 깨지게 된다.

  • 1392~1636: 전형적 순응기
(여몽관계, 조명관계)
몽골족이 세운 몽골 제국과 대립관계가 되고 결국에는 몽골 제국의 침략을 받아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고 40년간 적대관계를 맺어왔다가 나중에는 화친하고 몽골-원나라의 부마국이 되였다. 이때 맺은 부마관계와 압도적인 힘 차이의 경험으로 한국은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사대관계가 나타난다. 원이 망하고 명나라가 세워졌을 때는 고려와 명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관료들도 친원 및 친명으로 갈라졌다가 결국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왕조가 건국하면서 이때부터 명과의 관계가 유대관계로 바뀌게 되었다.[3]
조선은 명을 상국 및 우호국으로 받아들이고 매년 사신을 파견하고 공물을 보내는 등 명과 지극한 유대관계를 맺어갔다. 특히 숭유(崇儒) 사상이 짙고 한문화 및 중국 문화를 중시하는 조선 유림계의 보수적 성향과도 맞물려서 중국의 사대성향에 영향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는 명이 조선에 지원군을 파병하여 일본을 물리치는 역할도 하였고 조선도 사르후 전투 때 명에 지원군을 파견해주었다. 그러나 이때를 계기로 명의 국력도 약해져서 조선과 명의 유대관계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 1636~1895: 강제적 순응기
(조청관계)
이 시기는 이전의 전형적 순응기와 별 차이가 없어보일 수도 있는데, 둘 다 사대관계를 맺은 것은 맞지만 이 시기에는 중국에 대한 복수심이나 멸시 등 명 때와는 다른 감정이 나타났고 그래서 외교관계도 이전과 약간 달라졌었다.
명을 노리고 있는 만주족에 의해서 명이 완전히 멸망하고 청나라를 세우게 되면서 조선은 청을 상국을 멸망하게 한 배은망덕하고 패륜적인 망발을 한 오랑캐 나라라며 그들을 멸시하였다. 결국 청이 병자호란을 일으키게 되면서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때를 계기로 청과의 사대적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로 청은 문호개방 및 근대기까지 조선에 내정간섭을 하였으며 흥선 대원군을 납치하고 중국 관제의 실시 강요를 하고 청일전쟁 및 동학농민운동 때 청의 병력을 한반도에 주둔시키기도 하였다.[4]
그러나 청나라가 청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과의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한 후로는 유대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조선은 점차 러시아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1897년 진정한 독립국인 대한제국을 수립하게 되면서 청과의 사대적 유대는 끝난다.

다만 경술국치 이후로는 일제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하는 입장이 되면서 다시 가까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한국의 여러 독립투사 및 운동가들이 만주 및 중국 대륙으로 건너가 활동하였고 상하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중화민국은 한중 연합군 부대 창설을 통해 일제와 맞서 싸우는 등 임정과 한국광복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다. 이는 중국 공산당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독립군과 중국 공산당은 협력관계에 있었으며 항일투쟁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도 동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좌파 계열 독립군들과 관계를 맺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오쩌둥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나서는 남한이 아닌 북한을 승인하게 되면서 남한과는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 6.25 전쟁 때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한국군과 미군 등의 UN군이 북한을 물리치고 38선을 넘자 중국은 군대를 파병해, 북진통일을 막으면서[5] 이때부터 줄곧 양국은 공개적으로 적대하게 된다.

한편 중화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자 대만으로 망명하여 국가 자체의 소멸은 면했으며, 대한민국은 이 대만 섬의 중화민국 정부를 '자유중국'으로 인정한 채로 수교를 유지하게 된다. 정치상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로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여 왔으며 1953년 휴전 이후 북한, 소련과 함께 최대의 적대 국가로 규정하였다. 다만 사실상 관계가 없다시피 했던 소련과 달리 중국과는 어느 정도의 교류는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관계에 대해선 한국-대만 관계를 참고. 냉전 시기 한국은 서방의 제1세계 , 중국은 공산권 제2세계였다(단, 스스로는 제3세계라고 주장했다).

1971년 중국이 대만을 밀어내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 것은 한국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양국 모두 수교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북한대만 문제 때문에 진척되지 않은 채 미수교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983년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를 계기로 양국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정식 국호를 사용하여 외교적 접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북한과 소련 관계 긴밀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활용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모란' 구상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19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가 방중 때 후야오방 당시 공산당 총서기와의 정상회담에서 한 · 중 양국의 국교 정상화 중재했지만, 후야오방 당시 당 총서기가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는 외교문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6]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양국간의 관계는 점차 호전 관계로 바뀌어 갔다. 이후 한국이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중화민국과 단교함으로써 1992년 8월 24일에 수교하게 되었다.

파일:external/pds.skyedaily.com/1357554716HUr7rDuPHk.jpg
명동에 있는 중국 대사관. 대만 대사관 건물을 사용하다 2013년경 거대하게 리모델링했다. 명동 한복판에 있으나 높은 담 때문에 가까이서는 잘 안보이고 멀리서는 독특한 외관으로 존재감을 어필하는 절묘한 건축이다.

하지만 비록 수교를 하고 있다고는 해도 그렇게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태생부터 다른 체제로 출발했고,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그것도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였을 뿐이고, 정치는 공산당 일당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안보적으로도 한국이 그토록 경계하는 북한의 혈맹이고, 미국제1세계 국가로 대표되는 한국의 최대 동맹국들의 가상 적국이며, 역사적으로도 6.25 전쟁 당시 북한을 지원하면서 남한의 통일을 무산시킨데다, 이후에도 북한의 경제 제재 문제와 같은 이슈에서 미지근한 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안보 면에서 한국으로서는 경계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한편 중국은 북한과는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은 후 지금까지도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황해한국 영해까지도 불법 조업 문제가 벌어지고 있고,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주의 정책에 대한 반발심리, THAAD 국내 도입 논란에서의 경제적인 갈등,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이어진 동북공정 등의 문제가 곁들여져 한국 입장에서는 아무리 중국이 강대국이며 경제 발전의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냥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상황이다.

2000년 10월 16일, 외교통상부는 18일에 한중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3.2. 6.25 전쟁에 대한 만주 폭격 발언[편집]


1996년 6월 24일 전방부대를 시찰한 자리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은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동족인 우리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6.25 당시에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7]고 발언하여 여야간 극한 언쟁이 오갔다. 당시 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은 "국가이익을 현저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해 탄핵소추도 가능한 발언이라고 본다"는 논평을 냈고 집권당인 신한국당의 김 철 대변인은 "어느 쪽의 안보를 지키려는 정당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회의는 북한에 대해 그렇게 미안하고 조심스러운지 묻고 싶다"는 논평을 냈다. [8]

당시 공방의 발단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난 24일 중부전선 시찰 당시 발언으로 김영삼대통령은 심각한 북한 상황과 한국전쟁의 참상을 회고하고 당시 맥아더 장군이 주장했던 만주폭격이 가능했더라면 이미 통일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철저한 안보태세를 당부했다. 그러자 국민회의측은 어제와 오늘 잇따라 비난공세에 나섰고 신한국당측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양쪽 공방은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이 과연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줬다. 국민회의 정동영대변인은 만주북폭 지지발언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발언이라고 규정을 했다. 그러자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과거의 통일의 기회를 아쉬워하면서 젊은세대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같은 회상을 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논평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비호했다.

또 이번 발언이 지금은 우호국(?)이 되었다는 중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논란이 됐다. 정동영 대변인은 한중 우호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간접적으로 외환을 불러올 수도 있는 중대한 발언이라는 것이라고 논평했고 신한국당의 김철 대변인은 반세기전의 전쟁 상황을 기준한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해서 현재의 한중, 한러 관계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김영삼 대통령이 전국민 한테 이 발언을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신한국당은 당시 공산당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이 맥아더의 주장을 지지했으며 지금도 대다수 국민들이 그대로 했다면 통일이 됐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국민회의가 6.25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결여돼있을 뿐 아니라 어느쪽 안보를 지키려는 정당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반박했다. [9][10][11]


3.3. 1999년 국방부 장관의 방중시 주한미군 철수 발언 논란[편집]


1999년 8월, 중국을 방문중인 당시 조성태 국방장관은 25일 중국군 장교들과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남북통일이 되면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는 외국군 없는데 주한미군 어떻게 처리하나는 중국장교의 질문에 조 장관은 남북간 진정한 평화 공존이 이루어지면 주한미군 주둔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면서, 통일 이후에는 미군 철수 등 주한미군 문제를 중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와 논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 장관은 이와 함께 한국군은 중국군과의 군사관계를 미국과 일본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또 군 당국이 중국과 한국이 교류협력을 확대할 경우 21세기 초에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언했다.[12][13][14][15][16]

그 후 조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본의 아니게 논란을 초래해 유감스럽다"는 짤막한 해명을 남겼다.[17] 조 장관은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통일 후 주한미군 문제가 주변국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어야한다"는 발언은 주변국들도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한국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외교적으로 답변한 것이 오해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 같다며 해명했다.[18]

통일시의 불안, 미군을 포함해서 그릇된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 동북아 지역에 같이 얼굴을, 어깨를 맞대고 살고 있는 국가들끼리 모여서 같이 상의해서 같이 만장일치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19]

[20]

1999년 8월 25일, 조성태 국방장관 25일 중국 국방대학에서 강연을 한 뒤 중국 주요 지휘관급 장교들과 일문일답


3.4. 2010년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중관계/2010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5. 202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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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간 인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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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한국인중국 인식[편집]


파일:9F74F.jpg
2021년 6월 국민일보 의뢰 글로벌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매우 싫어한다. 물론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긍정적인 인식은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기는 한다. 중화권 배우나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나, 중국 고전, 이를테면 유교 경전이나 삼국지연의와 같은 중국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부류가 한국 내에도 존재하기는 한다. 현대의 창작물로는 무협 장르는 항상 한국에서 일정부분 향유되고 있었고, 특히 전성기 홍콩 영화가 한창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을때는 꽤 대중적이었다.[21] 한국 배우들이 중국에서 광고나 드라마, 영화를 찍는 경우도 많아서 중국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간혹 보는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중국인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중국인하면 낙후된 생활 수준, 중화사상과 패권주의, 공산당 1당 독재와 언론탄압, 티벳/위구르 강점과 독립운동 탄압, 처참한 시민의식, 비위생적인 생활환경, 짝퉁과 기술 스파이, 인신매매와 인육, 목소리가 크고 시끄러움, 우스운 기행 등을 떠올린다. 이 고정관념은 일부 중국인의 생활습관과 관광지에서의 민폐 등 여러 목격담에 기반하여 강화되어 왔다. 사실 중국인은 비위생적이다라는 한국인의 시각은 역사가 제법 길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쓴 책 <선화봉사고려도경>[22]에는 고려인들은 씻는 것을 좋아하여 남녀 구분 없이 같이 어울려 계곡에서 목욕을 하며 중국인들이 때가 많고 더럽다며 멸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최소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적어도 위생적으로는 중국인을 더럽다고 멸시했다는 뜻. 실제로 중국인 가수 페이가 한국인들에게 "샤워 일주일에 한 번 하냐?"는 편견에 기반한 질문을 듣고 발끈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다만 중국인들이 같은 동아시아권의 한국, 일본, 대만보다 목욕을 잘 안 하는 문화인 것은 사실이다. 중국, 특히 북중국 같은 경우는 전통적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이 많기 때문에 사실 목욕문화가 전통적으로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이는 자연환경에 따른 것으로 온천, 목욕탕, 깨끗한 강이나 개울 등이 널려 있어서 일주일에 여러 번 목욕하고, 집에서 간단히 샤워하기 힘들던 시절부터 목욕탕 등에서 씻어온 일본, 한국인들과는 대조적인 점이다. 또한 '중국인은 더럽고 막나가는 행위를 저지른다'는 인식은 한국뿐 아니라 서구권같은 비동양권에도 널리 퍼져있어서, 중국인과 그외의 한국, 일본을 비롯한 비중국권 출신 동양인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중국인으로 오해하여 타깃을 잡아 차별하거나 조롱하는 행위들도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로 인한 감정도 좋지 않은 편이다.

사실 2002년 월드컵 이전만 해도 당시에 강성하던 반미감정, 반일감정에 묻혔었고, 20세기 초반 혹은 중반까지 양쪽 다 일본 제국주의에 고통 받았다는 동병상련 때문에 중국에 대한 인식은 최소한 나쁘지는 않았다.[23]

반공사상도 공산권 붕괴와 한중수교 이후에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살던 북한에 집중되었지, 이 시절에는 조선족도 꼬박꼬박 '중국 동포'라 부르며 한민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민족주의, 혈통주의적 경향도 매우 강했다. 그러다가 2002년 월드컵 당시 중국과 대만의 혐한 왜곡보도와 일부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인을 사칭하며 벌이는 추태#가 다음 카페 등에 퍼진 것은 물론 비슷한 시기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사이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역사날조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무려 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며 뒷통수를 치긴 했어도 이때 당시의 중국은 그나마 이성이 남아있었고 차이나머니가 발동되지 않았던 터라 한국 안에서도 관심을 받지 못 한 채 사라졌다. 오히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취임한 박근혜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박근혜 대통령도 문재인 정부처럼 "경제는 중국으로부터 과실을 따먹고 미국과는 관계를 유지하자"라는 기조의 외교를 보여줬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취임한 중국의 현 독재자인 시진핑은 친중 성향의 진보진영에게도 좋은 이미지였고 보수도 박근혜 대통령을 따라 좋은 이미지를 지녔었으며 중국과의 FTA가 성립되면서 중국과의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2015년부터 주한미군의 사드배치까지는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좋았으며 이 시기동안 한국에서는 영어 다음으로 중요한 언어를 중국어를 꼽으면서 중국어 공부 열풍이 불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핵을 감싸는 중국의 태도에 실망한 박근혜 정부가 친서방으로 확 전환하고 성주기지에 사드배치를 진행하자 한한령이 발동 된 2010년대 후반 이후부터 싸늘해지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이때부터 한국 길들이기에 나섰고 이와 동시에 조선족을 하나의 중국인으로 포섭하기 위한 동북공정이 훨씬 노골적이 되어 일부 조선족들의 "한국은 대중화의 속국이다"하는 식의 발언[24], 남중국해로 시작된 중국의 본격적인 패권주의 행보 시동,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들을 기술력과 노하우만 빼먹고 토사구팽을 반복하는 행태, 산업 스파이, 매년 엄청난 미세먼지로 인한 한국의 피해, 짝퉁 식품과 제품으로 인한 피해, 예능과 아이돌 등 방송연예 분야에서 멋대로 한류를 사칭하며 팔아대기, 보이스피싱 사기피해, 서해에서 불법조업, 코로나19, 게임에서 핵 프로그램 사용 등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추락했다.

특히 한한령을 비롯한 사드 보복이 한창이던 2017년 8월에 한국인들 83%가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비슷한 시기인 2017년 10월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의 왕샤오링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여론조사 통계에서는 중국의 군사력이 한국에게 위협이 된다는 반응이 80%에 달했고,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나라로 미국을 꼽은 비율이 41.2%인 데 반해 중국은 11.3%에 불과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충돌할 때 중국을 지지하겠다는 비율은 고작 1.1%로, 통계상의 오차를 고려하면 사실상 0이라고 봐도 될 정도이며 이에 충격을 받은 중국의 지식인들 역시 주변국가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칼럼을 쓸 정도였었다. 출처 기사

세대별로 사상을 일반화하기는 어렵긴 하겠지만, 일반적인 관점에서 10대 청소년들과 20대~30대의 청년층들을 중심으로 반중감정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게 보이며 #[25] 인터넷에서 중국인들만 보면 천안문, 착짱죽짱, 사기꾼 등으로 조롱, 욕설을 퍼붓는게 일상이 되었다. 또한 중국이 시진핑의 1인 독재 체제가 정비된 시점부터 완전히 대놓고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하여 아시아-태평양권에 대한 중화 패권의식을 더욱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반중, 혐중의식은 악화되어 갔다. 반면에 기성세대는 중국에 대하여 오히려 보통으로 생각하고 일본을 더 싫어하는 경향이 강했다.[26] 아무래도 일본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당했던 일제강점기 세대나 운동권의 영향 그리고 홍콩영화 같은 중국의 문화를 접한 탓이 강하고 중국인의 처참한 시민의식을 느끼기엔 부족한 면모가 강하기 때문이다.

2018년 이후 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중국 물품 관세정책으로 시작된 미국-중국 무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무역전쟁에 의한 한국 경제의 여파는 둘째치더라도[27] 일단 중국의 경제가 악영향을 받거나 강력한 규제를 받아 중국 기업들의 국제적인 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에 대해 대체적으로 옹호하는 분위기. 그 외에도 일부 비매너 중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피해나 몇몇 중국계 노동자에 의해 발생한 외국인 범죄, 외국인들과의 팀 플레이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온라인 게임에서 중국인들이 워낙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기에 정치 외교적 문제랑 별개로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으로 인해 중국인을 싫어하는 사람 역시 많아졌다. 중국 공산당에서 싫어할만한 파룬궁, 천안문, 홍콩 시위 관련 중국어 문구들을 복사해서 인터넷에서 널리 사용하는 것이 유행으로 번지고 있기도 하다.

2020년에 들어서면서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가 지구촌 곳곳으로 번졌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내의 반중감정이 공고해진 상태다. 특히 신천지의 영향으로 2월 중반경 전 세계 통틀어 확진자 수 2위에 달하게 된 한국에서 더욱이 분노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게 되었다. 게다가 전염병 유행 초기에 정부와 민간이 나서서 중국에게 마스크나 지원금을 줄 정도로 도왔고 국제적으로도 중국을 변호하는 입장을 취했던 한국이 중국 다음가는 확진자 수를 가지게 되자마자 마치 토사구팽하듯 중국의 정치, 언론계에서 한국에게 코로나 발생국이라는 누명까지 씌우며 때리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 역시, 한국인들 사이에서 '중국인은 믿을 수 없다.', '우린 배신을 당한거다'라는 괘씸죄에 가까운 인식으로 엄청 퍼져나간 상황이다. 중국언론이 어처구니없게도 "우한 바이러스는 한국에서 퍼진 것"이라며 한국에 누명을 씌우는 짓거리까지 하며 안 그래도 활활 타오르던 반중 감정에 기름까지 끼얹었다.

다행히 3월 초에 들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반응 신규확진자 수가 1백명~수십명 정도로 줄어들며 확진자수 세계 5위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이후 안정화되며 유럽과 북미 등이 폭증하는 동안 순위권에서 사실상 한참 벗어나긴 했지만, 대한민국과 달리 무증상 감염자는 확진자 수 집계에서 제외하거나 코로나는 미국에서 발원했다는 망언을 하는 등, 사태 은폐 의혹이나 발원지 오명 떠넘기기 시도를 하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행태 등으로 인해 코로나19의 시작을 알린 중국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2020년 10월 퓨 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중국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비율은 24%, 적대적인 사람들의 비율은 75%이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스웨덴, 호주 다음으로 중국에 적대적인 국가로 드러났으며, 특히 조사 대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젊은 층의 반중정서가 중년이나 노령층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때를 맞추어 중국 네티즌들이 이효리의 마오 발언, 방탄소년단의 6.25전쟁 참전용사 및 참전국가에 감사발언에 중국인을 무시했다는 태클, 블랙핑크의 판다 등등 등 한국의 유명 연예인들에게 엉터리 논리를 앞세워 '중국을 무시하고 있다'며 댓글로 비난하고, 한류의 영향으로 인기가 높아진 한복을 중국에서 넘어갔고 조선족의 전통의상이라고 주장하거나, 김치도 중국에서 넘어갔고 중국내 소수민족 조선족의 문화이니까 중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등, 이러한 문화공정을 비롯한 중국의 역사왜곡 행태를 다시금 대놓고 드러내면서 반중을 넘어서 혐중에 가까운 격한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 크게 자리잡은 채, 치안을 불안케하는 일부 조선족들의 행태가 반복되어 온것도 반중 감정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정례조사에서 2021년 1월에 조사한 보고서 #에는 미국중국이 갈등을 일으키면 대한민국이 어느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묻는 문항이 있다.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6.5%, 미국을 더 중시해야 한다 38.6%에 이어 중국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은 응답자 가운데 겨우 2.6%에 불과했다. 응답자 유형별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미국을 더 중시해야 한다의 사이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었다.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중은 정치성향(보수 2.0%, 중도 2.5%, 진보 1.5%), 세대(20대 1.5%, 40대 0.7%, 60대 이상 3.0%), 민주당 지지층(2.3%), 국민의힘 지지층(2.7%)을 가리지 않고 미미하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중국을 중시한다는 응답은 모든 유형에서 통계에 겨우 잡히는 수준이었다.[28]

결국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편파 판정 논란으로 인해 이제는 친중 성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혐중 성향이 강해졌으며, 상대적으로 반중 감정이 약했던 기성세대들 역시 반중 감정이 매우 강해져 이제는 모든 세대가 혐중 성향을 가졌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짱깨가 몇몇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조차 표준어 수준으로 자주 사용될 정도이니 말 다했다.

2022년 12월 24일 미 외교 전문매체 디플로맷에 따르면 올해 4월 11일부터 6월 23일 사이 한국 성인 남녀 1,364명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인식 등을 묻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중국을 '부정적', 또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답한 비율은 무려 81%에 달했다. 이는 조사 대상 56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2위인 스위스(72%)나 3위 일본(69%)과 비교하면 10%포인트가량 높아 다른 국가들과도 큰 차이를 기록했다. 2015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시행한 비슷한 조사에서 중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비율이 37%에 그치고 2020년 조사에서는 75%에 달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반중 정서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강해진 것이 확연히 보인다. 이 밖에 한국인들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중국의 기술'에도 부정적인 편이었으며 '중국인'에 대해서도 77%가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또한 한국인들이 중국 하면 떠올리는 단어는 '코로나19'가 가장 많았으며 '역사 왜곡', '더러움', '가짜', '오염'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주로 언급됐다. 연령별로는 20~30대의 반중 정서가 가장 강했다.



4.2. 중국인한국 인식[편집]


본토 중국인한국에 대해 일반적으로 좋게 보는 편은 아니다. 크게는 한복과 한식 등 한류 문화를 중국의 전통 문화라고 주장하며 한국을 남의 문화를 빼앗는 도둑국 취급하거나, 한국은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자신들의 속국에 불과한 소국이라는 인식 등이 있으며, 이웃나라일본이나 베트남에 대한 인식에 비하면 낫다지만 그 두 나라와 더불어 중국과 경쟁 중인 미국을 빼면 외국 중 한국을 가장 싫어한다고 봐도 될 정도다. 오히려 분청들의 발호로 인하여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일본이나 미국보다 대한민국을 더 싫어한다. 일본인들은 중일전쟁-난징대학살 때문에, 베트남인들은 역사적으로 대립보다 우호관계였던 적이 많았던 한중관계와 달리 역사적으로 대립한 적이 많았던 데다 중월전쟁이나 중국인의 선민의식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이 저변에 깔린 의식은 중화사상으로, 중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사기 고양을 위해 역사 왜곡까지 감수하며 지원한 결과 무분별한 문화적, 국가적 우월주의를 가진 사람이 중국인 인구수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들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어 접촉하기 쉬운 인터넷 등에서는 지속적이고 소모적인 감정싸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중화사상은 크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다" 내지 "속국이었다"로 요약 가능하며, 한국에 대한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있다. 한국과 우호적으로 지내기를 바라는 온건한 이들조차도 한중관계를 상호존중에 기반한 독립국 간의 관계로 보는 대신 대국에 한 수 접어주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금순공정에서 비롯한 역사 왜곡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한국의 요리, 한국의 전통 의복 등이 죄다 중국에서 파생됐다는 몰이해를 보이며, 더 말할 것도 없이 한국 입장에선 자체로 무례한 발언이다. 이게 한국을 잘 이해하고,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29]

다만 그렇다고 해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당장 김치를 중국음식으로 표기해 논란이 된 바이두마저 현재 김치가 어느나라의 음식인지 물어보면 한국의 음식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 이와 같은 결과는 특성상 중국 공산당의 영향을 짙게 받을 수밖에 없는 바이두 백과가 아닌 중국 네티즌의 의견을 띄운 것이므로 나올 수 있는 결과이다. 또한 실제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김치를 중국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하게도 중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에서 저런 답변을 내놓으면 수많은 항의를 받고 수정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시로 미국의 포털 사이트 구글에서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가 한국 네티즌들의 수많은 항의를 받고 내려간 사례가 있다. # 현재로썬 딱히 대부분의 중국인이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 생각한다는 근거나 설문 조사 결과도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중국의 20대들이 한국이라고 하면 김치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는 만큼 모든 중국인들이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경제 및 문화, 기술 등에서 한국의 성취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는 속설이 퍼져 있으나 거짓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상위권에 들어 있는 한국의 자체적인 기술을 중국이 유출시켜 훔쳐다 쓰는 건 생각도 안하고 중국의 기술을 베꼈다라고 주장하거나, 한국은 자신들의 속국이니 중국은 한국의 기술을 멋대로 훔쳐다 쓰더라도 당당하다는 상식선을 넘어선 비정상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근현대사에서는 일제에 피해를 받은 역사적 동질감이 있다. 더군다나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지금의 중국 둥베이 3성 지역으로 흘러든 조선인들 가운데는 한국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고, 항일투쟁이라는 노선에서 중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이들은 때로 중국과 합작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오성홍기를 가리켜 "이 붉은 색에는 조선인의 피도 녹아 들어 있다."라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다. 씁쓸하게도 이 점은 현재 북한이 중국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한국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를 주로 후원해준 정부는 공산당이 아니라 대만으로 쫒겨들어간 중화민국국민당이고, 한국이 예전에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중국이 항일운동 도와줬지' 라고 생각했으나 2010년대 이후로는 중국의 대일항전을 이끈 것도, 한국 독립운동을 도와준 것도 대부분 국민당이 한 것이지 현 중국정부인 공산당이 아니라는 진실이 널리 퍼진 상태다. 오히려 중국이 아니라 대만이 한국을 도와줬다고 말해야 옳고, 역사적 동질감 역시 중국이 아니라 대만으로부터 느껴야 이치에 맞다.[30]

정치적 사안에 따라 각국은 호불호의 변화를 보이기도 하는데, 지속적인 문제론 북한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가 있고[31] 세부적인 일례론 2016년 THAAD 배치 문제가 있다. 이 결정 후 중국의 일부 언론에서 "한국 정부가 생각없이 내린 가벼운 결정이 중한관계를 악화시켰다" 등의 반한 감정을 선동하기도 했다. 이에 국수주의 성향의 중국 네티즌들은 열심히 한국 까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다만 항저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드 배치엔 명백히 반대하면서도 과거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인들과의 인연, 나아가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저장성 옆에 있는 하이옌 시를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32] 우의’라는 글자를 남겼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점을 생각하면 여전히 중국 정부가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국이 중국 공산당이 아닌 중국 국민당 정부였을 시절 이야기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국민정부의 계승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던 일이다.[33]

그럼에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루어진 한미간 서해훈련을 두고 중국 외교당국자가 미국만 없었으면 한국은 진작에 손봤을 나라라는 발언을 하거나 시진핑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는 전례없는 망언, 천하이 중국 외교부 부국장의 소국(한국)이 대국(중국)에게 대항해서 되겠나 같은 선을 넘는 막말도 서슴치 않는게 보통 한국인이 느끼는 중국 정부의 모습이고, 대부분 사실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과 달리 중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최근 들어 한중관계가 중국의 문화적 침탈 및 여러 문제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탓에 일부 중국인들은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이라 여기며 정부의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한국인을 혐오하는 게 다반사다.


5. 경제 교류[편집]


대한민국/경제, 대한민국/무역, 중국/경제, 한중 FTA 참고.

대한민국 외교에 있어서 남북문제와 더불어 가장 큰 숙제이자 장벽이다. 20%를 넘는 엄청난 수출 의존도로 인해 중국에 무역량이 줄어들면 한국은 경제가 많이 어려워진다. 1990년대의 핀란드가 소련 붕괴 이후 닥쳐왔던 풍파의 상위호환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의 적성국이나 다름없어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진영에선 대중 전선에 참가를 요구받고 있고 한국 정부가 그동안 취해왔던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일명 "안미경중") 같은 투트랙 중립정책도 갈수록 흔들리고 있는 판국에 지난 10년간 신냉전 상황이 드리워졌음에도 뚜렷한 대비책을 세우지 못해서 오늘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 겨우 신남방정책이나 신북방정책, 남북 경협 등 중국의존도를 낮추려는 일렬의 노력을 취하고 있지만 갈 길은 멀다.

오늘날 한중 양국의 경제는 서로 상당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출, 수입은 중국이 모두 1위, 중국에게는 한국이 수입 1위,# 수출 3위에 해당한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중요한 수출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대중 수출은 한국 GDP의 10% 정도며, 한국 수출 전체의 25%에 육박하고 있다. 대미, 대일 수출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주장은 수출이라고 하면 무조건 장땡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75% 가량이 가공무역, 즉 한국인끼리 하거나 한국인이 다른 제3국인과 하는 거래로, 조금 심하게 말해서 중국 자체에 직접적으로 수출하는 비중. 즉 중국 내수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은 25% 정도로 그다지 큰 편이 아니다. 총 수출 비중도 부가가치 기준을 적용하여 봤을 때는 19%로 감소한다.

수출비중을 생각해 중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삼가야 한다는 신중론이 무색할 정도로, 소비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부진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한때 20%가 넘었던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시장 내 점유율은 22년 0%대로 내려앉았고, 16년 27%까지 치솟았던 한국 화장품의 점유율은 20년 18.9%까지 줄어들었고 한국 화장품 매장들도 빠르게 문을 닫고 있다. 2019년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20%대 후반에 달했던 삼성 TV의 점유율은 2021년 4분기 12%까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굳건히 지켜오던 중국 내 수입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2020년, 2021년 연속으로 대만에 내준 상황이다. 이런 급격한 점유율 하락에는 중국 국내 기업의 경쟁력 향상, 점점 더 고부가가치 제품을 원하는 높아진 중국 소비자의 눈높이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 시장이 빠르게 매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상황이다.

중국 또한 한국에게 중간재(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를 수입해 가공하여 수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된다. 이는 미국의 대중제재가 심화되며 더욱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그렇지만 한국 역시 중국의 저가 공산품, 농산품을 엄청나게 수입하고 있다. 중국에서 나온 1, 2차 산업의 생산물 덕에 한국의 수많은 산업들이 사양길을 걸었다. 이는 한국이 산업고도화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측면도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서 싼 노동력으로 제품을 만들거나, 중국의 엄청나게 싼 공산품 덕분에 저물가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대로 된 노동력+저임금이 모두 가능한 나라 자체가 중국을 포함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도 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민감한 분야인 농산물 문제 등으로 인해 난항이 있는 편. 공업 분야에서도 서로 경쟁관계인 산업이 많아 쉽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지나치게 가까워질 수 없는 점도 고려해야 할 점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상호 협력 비중을 줄이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한국은 대체자로 동남아 각국들을 찾았으며, 중국은 독일 등을 선호하는 듯. 결국 2014년 11월 10일 한중 FTA가 체결되었다. 추가적으로 위안화 직거리 시장까지 텄으나 한국의 중국경제의 영향력 편입성격이 강하여 한중 FTA나 이 문제나 좋은 문제가 아니다.

한편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는 기술에서 밀리고 중국에게는 거의 비슷한 기술과 싼 가격에 밀려서 양 쪽으로 압박당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도 공밀레 정당화를 위해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강하고 오히려 역샌드위치론이 새로 등장할 정도이다. 당장 첨단기술의 집약체로 불리는 스마트폰 산업이나 자동차 산업에서 한국의 선전만 보아도 그렇다. 일단 현재 많은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중인 것은 사실인 만큼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며 공밀레열정페이 등의 현존하는 나쁜 관습과 사회적 문제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전자산업 생산 세계 3위.

2016년 한국 상장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미국에서 중국이 되었다.자료

S&P에서 중국 성장률이 낮아질 경우 피해를 보는 국가들 예측에서 한국이 3번째로 큰 피해를 본다고 예측했다.자료 칠레, 대만 다음이었다.

블룸버그에서 한국은 GDP의 11%가 중국과 관련되어 있으며 아시아에서 4번째로 중국에 의존적인 나라로 평가했다.자료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다음이었다.

중국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22년 12월 26일, 한국 시장에서 중국 바이주의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중국의 제2 교역국으로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5.1. 경제규모[편집]


명목 GDP[34]
연도
한국
중국
한국:중국[35]
1960
20억
597억
0.03
1965
30억
704억
0.04
1970
89억
926억
0.10
1975
217억
1,634억
0.13
1980
649억
1,911억
0.34
1985
1,002억
3,094억
0.32
1990
2,793억
3,608억
0.77
1995
5,561억
7,345억
0.76
2000
5,616억
1조 2,113억
0.46
2005
8,981억
2조 2,860억
0.39
2010
1조 940억
6조 870억
0.18
2015
1조 3,830억
11조 160억
0.13
2020
1조 5,867억
14조 8,607억
0.11

한국과 중국은 모두 세계에서 유례없이 짧은기간에 고속으로 경제 성장을 겪은 국가이다. 다만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한 시기는 1960~1980년대이고, 중국은 1990~2010년대라는 시기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양국 모두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인 1960년, 양국의 경제규모 격차는 30배로써 당시의 한국-중국간 인구수 차이와 비슷했다.

그 이후 한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겪고, 유례없는 초 원고 환율과 호황기를 맞던 1994년의 한국 경제력은 당시 인구수 차이가 약 26.7배 가까이 났던 중국 전체 경제력의 82.1%에 달했고, 이 해가 한국과 중국의 GDP 격차가 역대 가장 적었던 해다. 세계은행의 자료를 기준으로 1994년 한국의 인구와 GDP는 4464만, 4636억 1700만 달러였고 중국의 인구와 GDP는 11억 9200만, 5643억 2500만 달러였다.

하지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고 난 후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의 경제가 무섭도록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규모 차이는 꾸준히 벌어지기 시작하여 2020년에는 한국의 총 경제규모는 중국 경제규모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도 5%대의 성장이 이어지는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0년대 들어 2~3% 수준으로 정체되어 있다. 따라서 양국의 경제규모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참고로 중국 이외의 한국 주변국의 경제규모 차이를 비교하자면, 일본은 한국보다 약 2.8배 크고, 북한은 한국의 1% 수준에 불과하고, 대만도 한국의 33%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을 모두 합쳐도 중국과의 격차인 8배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5.2. 1인당 경제력[편집]


1인당 GDP(명목)
연도
한국
중국
한국:중국[36]
1980
1,761$
309$
5.70
1985
2,538$
295$
8.60
1990
6,732$
348$
19.34
1995
12,742$
608$
20.96
2000
12,257$
958$
12.79
2005
19,402$
1,765$
10.99
2010
23,087$
4,524$
5.10
2011
25,096$
5,582$
4.50
2012
25,466$
6,329$
4.02
2013
27,182$
7,080$
3.84
2014
29,249$
7,701$
3.80
2015
28,732$
8,166$
3.52
2016
29,296$
8,115$
3.61
2017
31,577$
8,677$
3.64
2018
33,319$
9,580$
3.48

1인당 GDP(PPP)
연도
한국
중국
한국:중국[37]
1980
2,190$
309$
7.09
1985
4,131$
618$
6.68
1990
7,548$
978$
7.72
1995
12,134$
1,857$
6.53
2000
16,517$
2,915$
5.67
2005
23,468$
5,051$
4.65
2010
30,984$
9,249$
3.21
2011
32,546$
10,290$
3.35
2012
33,789$
11,260$
3.00
2013
35,309$
12,291$
2.87
2014
36,882$
13,362$
2.76
2015
38,111$
14,362$
2.65
2016
39,484$
15,397$
2.56
2017
41,330$
16,658$
2.48
2018
43,289$
18,116$
2.39
IMF 2019년 10월 자료

한국의 경제 호황 순성장기가 지속되고, 중국은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의 대참사와 이어지는 천안문 사건 등의 대형 악재를 겪던 1980~1990년에는 양 국간의 1인당 실질 경제력 차이가 6~7배까지 벌어졌고 특히 90년대 초중반 이른바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 불리던 시기에는 무려 20배로 벌어졌다.

하지만 한국이 외환 위기를 겪고 그 여파로 경기침체와 저성장이 이어지는 동안, 중국은 고속 성장이 진행되어 양국의 격차는 꾸준히 줄어들어갔다.

2018년에는 1인당 GDP기준 3.5배, PPP기준 약 2.4배 정도로 줄어들었다. 실질 경제성장률 흐름이 중국 6~7%대, 한국 2~3%대 정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5.3. 중국 자본의 한국 부동산 시장 위협[편집]


오늘날 대한민국 내에서도 한국인들의 중국 토지 구입은 불가능하고 건물 구입은 어려운데 비해 중국인들의 한국 부동산 구입은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 및 일대일로를 통해 상당수의 한국 부동산들이 중국인들 손에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국인이 소유한 국내 토지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국인의 국내 부동산 쇼핑이 큰 폭으로 늘었다. 20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외국인 토지 보유 현황에 따르면 교포, 법인을 제외한 순수 외국인 소유 토지 면적이 지난해 상반기 기준 2014만2000㎡로 나타났다. 이는 2016년(1199만8000㎡) 대비 약 67.9%(841만4000㎡) 증가한 수치다.

중국인 소유한 토지는 필지를 기준으로 2016년 2만4035건에서 지난해 상반기 5만4112건으로 3만77건(125.1%) 증가했다. 공시지가 기준으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중국인 소유 전체 토지의 공시지가는 2조841억원에서 2조7085억원으로 30%(6244억원) 상승했다. 미국인 4%(5600억원) 증가, 일본인 -4.5%(1200억원) 감소 대비 상승률이 높았다.

중국인의 토지 소유가 집중된 지역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이었다. 필지를 기준으로 서울의 경우 2016년과 비교해 89.5%(4377 → 8294건), 경기도는 181.3%(6179 → 17380건) 늘었다.

중국인 큰 손의 국내 부동산 쇼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세청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외국인이 사들인 아파트 2만3167채 중 중국인 취득 물건은 전체의 58.6%에 달하는 1만3573채(3조 1691억원)로 나타났다. 이어 미국인 4282채(2조 1906억원), 캐나다인 1504채(7987억원)와 큰 차이를 보였다.

현재 한국에서 외국인이 부동산을 매입할 때 허가대상, 외국환 거래법에 따른 신고 등을 제외하고 내국인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취득이 가능하다. 반대로 한국인은 중국에서 기한제 토지사용권과 건물소유권 등만 가질 수 있다.

한국 부동산 쓸어담는 중국인 큰 손...4년간 125% 증가#


내국인의 주택 취득은 국내 금융 규제로 인해 많은 제약이 있지만 외국인은 자국 금융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다. 실제로 중국인의 경우 주택 구입 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대출 규제 대상에 적용되지 않는다. 중국 내 금융회사에서 자금을 조달해 자유로운 매입이 가능한 것이다. 또 외국인의 자국 내 다주택 여부 확인이 어려워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중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착수한 외국인 투기성 부동산 거래 기획조사 대상에는 8살짜리 중국 어린이의 경기도 아파트 구매 사례가 포함됐다. 학생비자를 받고 온 중국인 여학생이 인천에 빌라 2채를 매입해 매달 월세를 90만원씩 받는 사례도 있었다.

중국인 집주인에 월세 90만원…외국인 임대차 계약 '역대 최다' #


작년 외국인 주택 매입 10채 중 7채는 중국인"…국내 주택 매입시 세금 규제 미적용 '내국인과 역차별' 결과 중국인 매입 급증
"한국뿐이랴?" 전세계 부동산 잠식하는 '차이나 머니'의 공습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 중국 본토로부터 투기 자본이 유입 되면서 특히 밴쿠버, 토론토, 퍼스, 멜버른, 시드니 등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주인 있는 빈집만 늘면서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는 중. 특히 퍼스멜버른, 시드니의 경우 과거에는 월급만으로도 교외에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현재는 월급만으로 자가주택을 마련하기 힘들어진 상황이라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 혐중감정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이 현상은 뉴질랜드, 영국 등 다른 영어권 혹은 영연방 국가들 대도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해당 국가들에서 중국계에 대한 시선이 많이 싸늘해졌다.########## 비교하자면 구한말 일본 상인들에 의한 입도선매(벼가 익기도 전에 조선 농부들에게 미리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를 수취하던 형태의 경제 침탈)와 비슷한 경우이다.

# 다만 한국 거주 외국인 중 중국인이 제일 많고 서울 내 중국인 부동산 구매는 강남 3구보다 조선족이 주로 거주하는 금천구, 영등포구, 구로구에 몰려있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서울 집값에 중국인 투기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반박하기도 한다.

6. 사회문화 교류[편집]


역사적, 지리적으로나 현재 상황으로나 일본과 함께, 한국과 가장 밀접한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나라가 중국이다. 특히 게임,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교류가 활발하며, 중국인들이 한국에게 가지는 관심도 높다.

중국에는 주중 한국대사관(베이징 소재)과 다수의 총영사관(상하이, 칭다오, 광저우, 선양, 청두, 시안, 우한, 홍콩, 다롄(출장소))이 설치되어 있고, 상하이와 산동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있으며 한국인들의 중국 관광도 한중수교 이후 활발해진 편이다. 2012년 7월에는 한국 제주도에 주한 중국 영사관이 설치되었다.[38] 제주특별자치도는 중국을 비롯한 한국과의 무비자 협정 미체결국들이 무비자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한국 영토이다. 최근 홍콩마카오 등지를 중심으로 한 K-POP한국 문화한류의 전래로 열광을 받고 있는 중이다.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이 거의 드물었던 것으로 알려졌고[39] 수교 이후에 가서야 한국인들의 방중(訪中)이 증가하게 되었으며 사회 지자체간의 상호교류도 활발한 편이다. 근래 들어서 명동이나 롯데월드 등을 중심으로 중국인 관광객 (요우커)이 매우 많아졌다.

방한하는 외국인 관광객국적 수 1위가 중국이라고 한다. 기사 헌데, 사실상 1위와 2위와의 수치가 커서 사실상 대한민국 관광업을 먹여살릴 밥줄이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것. 즉 중국으로부터의 의존도가 심한 편이다.

한한령 전후 기사에 의하면 외국인 관광객 중에 절반이 중국인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한국의 관광업의 밥줄 역할을 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한한령을 계기로 급감하면서 한국 관광업계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40]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중국 언론 및 축구팬들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왜곡 비방하는 보도와 함께#1#2 태극기를 침뱉고 짓밟는 퍼포먼스를 벌여 한국인 네티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주었다.#1#2 당시 중국은 월드컵 조편성 때 한국 땅에서 본선경기를 치뤘기 때문에 본선에서 열렸던 조 예선 3경기도 모두 한국에서 치렀다. 이 때 중국은 브라질, 튀르키예, 코스타리카와 함께 C조에 편성돼 한 골도 못 넣고 전패했다. 재미있게도 이 때 C조의 순위는 중국을 상대로 얼마나 많은 골을 넣었는지에 따라 순위가 갈렸다. 때문에 중국을 4:0으로 이긴 브라질과 중국을 3:0으로 이긴 튀르키예[41]가 16강에 가고 중국에 2:0으로 이긴 코스타리카가 탈락했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중국의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지 90년대 후반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중국어 학습이 성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와 중국 경제규모의 거대함이 드러나고 전반적으로 경제가 크게 약진하자 다시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으로 패권국의 면모를 드러내고 특히 최근 북한 제제관련 및 사드와 한반도에 대해 안하무인격인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은 경계와 불신감이 커졌다. 관련기사 한국에서 배우는 중국어는 표준중국어로, 중국 본토식 간체자로 배운다.

중국 불법 조업이 극심한 와중에 참다 못한 연평도 어민이 직접 나포하는 사건이나 박경조 경사 살해사건, 이청호 경장 살해사건에 이어 또 해경 고속함정을 고의 충돌하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한국 정부에서 함포 발포까지 하겠다고하자 중국에서는 발포를 하면 보복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JTBC 해적같은 중국 불법 어선 YTN 연합뉴스 EEZ 문제도 있다고 한다. 국민일보

국내 상주하는 외국인 국적도 중국이 가장 많다(통계청 자료. 15세 이상 대상). 한겨레 조선족 중국인이 42.5%고 그 외 중국인은 12%다. 과반을 넘는 수준이다.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 내에서 애국주의 열풍으로 반한 감정이 거세지고 있다. 연합뉴스 , KBS , SBS , YTN

한국으로 많이 오던 관광객들도 확 줄어든 것으로 보고됐다. 한겨레 중국에서 한국관광이 재개되었다. 조선비즈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맞이하여 2018년 3월말까지 한국 재방문. 평창올림픽 입장권 소지, 공무여권 소지자 대상으로 15일 무비자 허용해준다.

최근까지도 한국인들의 주요 취미 중 하나인 온라인 게임 매장에서 중국산 게임은 양산형 저질 게임이라는 인식이 대다수였다. 그러다 2017년 벽람항로 & 소녀전선, 2019년 명일방주를 시작으로 2020년대 들어 미호요에서 개발한 중국 게임인 원신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42] 사실 원신 출시 전에 가장 인기 게임이던 리그 오브 레전드도 개발사는 미국이나 그 소유주는 중국의 텐센트 그룹이다. 승리의 여신: 니케 역시 개발사는 국내 기업이나 배급사는 텐센트 산하 기업이 맡고 있다. 연예계에서도 배우 탕웨이. 판빙빙, 가수 주결경, 아이돌 성소차오루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연예계 인물들은 거의 다 여성이고, 남성 중에서는 마톈위 정도가 그나마 인지도가 있다.[43]

2021년 12월, 중국의 드라마 출연자 자막에 외국국적 표기가 의무화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으로부터 판다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1994년의 밍밍(明明)과 리리(莉莉)[44], 2016년의 러바오(乐宝)[45]아이바오(爱宝)[46]가 이들이다

6.1. 언어[편집]


한국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보기가 매우 쉽고, 표준중국어는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제2외국어 과목 중 하나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조선족들의 경우, 중국조선어를 사용하며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선 조선족 학교에서 중국조선어로 수업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TOPIK이 실시중이고 한국에선 HSK가 실시중이다. 중국의 수능 격 시험인 가오카오에는 한국어가 없으나[47]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중국어가 있다. 수능 중국어 응시자 수는 2023 수능 기준 7,182명이었다.

6.2. 비디오 게임[편집]


  • 국산 게임이 진출하여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국가이기도 한데, 몇몇 게임들이 이걸 가지고 "이 게임은 우수하다. 그래서 중국에서 성공했다" 식의 주장은 믿지 말자. 이는 인구수 비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같은 10%가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도 한국인 전체 국민의 10%가 즐기는 것과 중국인 전체 국민의 10%가 즐기는 것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어쨌든 표면적으로 많이 즐기는 것은 맞아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게임만 킹왕짱이다!" 식으로 언플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 때문인지 실제로도 누가 중국에 진출만 하면 주가가 요동치기도 한다.
여기에 몇몇 게임 업체들과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든 중국만 가면 성공한다"는 소위 '차이나 드림'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잘 팔린 게임들을 보면 진짜 잘 팔릴 수준이라 팔린 것이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해외 진출에 노하우가 쌓인 국내 대형 서비스 업체들은 중국 진출 시 자사의 전체 게임들을 막무가내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아닌 일부 게임만 추려내서 진출시킨다.
역으로 중국산 게임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기도 한다. 붕괴 시리즈라던가, 소녀전선, 강철의 왈츠 등의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특히 소녀전선의 경우 마이너한 함대 콜렉션 계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과금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는 구조 등으로 한때 플레이스토어 랭킹 3위에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한국 모바일 게임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 중국에서는 한국 게임을 표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유기. 한국 입장에서는 통탄할 노릇이다. 이젠 역으로 완미시공 같이 중국산 게임이 한국으로 진출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한국산 게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 그래서인지 한국에서도 꽤 먹히긴 한다만 아직까지는 발전성이 미적지근해보인다.

  •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의 게임업계가 비상하기 시작, 2015년도에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에서 인기있던 미국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를 인수하면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모회사는 중국회사가 되었고 2017년에 상륙한 소녀전선이 정가제 스킨과 확률형 스킨을 빼고는 캐릭터 수집에는 과금이 안 드는 시스템이 한국 모바일 게임은 BM모델 개발에만 몰두하고 퀄리티는 떨어지기 시작하다보니 게이머들로부터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끌기 시작으로 벽람항로, 명일방주, 호요버스의 붕괴3 등 양질의 중국산 모바일 게임이 많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2020년에 출시한 원신은 비록 표절논란이 끓이질 않으나 매력있는 캐릭터와 훌륭한 OST, 발전하는 연출, 벌어들인 돈을 다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퀄리티 업 덕분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를 강타하였고 중국은 2019년에 천장 시스템 의무화를 걸어놓은 것과 인권 캐릭터는 있어도 조합으로 어느정도 커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인기를 끌었다. 이렇다보니 반중을 외치면서 정작 중국회사가 운영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원신을 좋아하는 유저들을 통틀어서 조롱하는 멸칭마저 생겼다. 2023년에도 호요버스의 신작 붕괴: 스타레일이 인기를 끌고 있다.

  • 2010년대 후반부터 중국산 양산형 게임이 파도처럼 줄줄이 생겨 중국 게임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고 있다. 거기다가 유튜브에 저질스러운 중국산 양산형 게임 영상 광고까지 침투해 유저들의 강한 불만을 사는 것은 물론 타 게임의 지적재산권을 침해 및 표절한 짝퉁게임, 이른바 이미테이션 게임까지 출현해 중국의 게임 인식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 한편으론 의심의 여지가 없는 E스포츠 강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을 꺾고 최강의 자리를 차지한 워크래프트3를 필두로 리그 오브 레전드, 하스스톤 등 다양한 종목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다.[48]

  •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 현질이 퍼지자 중국 해커들이 한국 온라인 게임에서 돈을 벌고자 '작업'을 한다. 자기들끼리 퍼뜨린 한국인의 실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기 때문에 실명인증도 뚫어낸다. 한국인의 아이템을 빼내려고 해킹 시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몇몇 중국 해커의 해킹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온라인 게임 회사들이 보안을 끝장으로 신경쓰지 않아서 그런거다. 그래서 몇몇 중국인이 아예 한국인한테 실제로 돈을 빼내려고 법원, 경찰서, 카드 회사, 은행 등을 사칭해서 계좌 번호를 빼내는 일(보이스피싱)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들의 억양이 심하게 특이하기 때문에 쉽게 구별 가능하다. 그러자 탈북자와 한국인을 포섭하면서 확률을 높이려 하고 있다.


7. 교통 교류[편집]


냉전시절에는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 항로가 없었다. 한중수교 이후, 양국을 잇는 항공노선, 항로가 생겨났다. 한국과 중국을 잇는 항공노선이 생겨나면서 중국인들의 한국 입국이 늘어났다. 그리고 중국을 잇는 항공노선은 각 지방의 공항에도 생겨났다.

인천 등 항구도시에도 중국을 잇는 항로노선이 존재한다. 배를 이용한 교류도 활발하며 한중간 항로를 통해 경제 교류도 이뤄지고 있다.

한중간 무비자정책을 실시되지 않고 있지만, 제주특별자치도는 코로나19 이전에 중국인에 대한 무비자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인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많이 왔다.

2020년부터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퍼지자 한중간 노선들이 대거 중단됐다. 그리고 제주도에 적용된 무비자정책이 일시 중단됐다.

2022년 12월 12일, 12월 12일, 중국 정부가 제로코로나 정책을 풀면서 인천 - 베이징 노선비용이 크게 늘어났다.#

2023년 1월 10일, 중국 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단기 비자 중단 조치를 밝히며 보복조치에 나섰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단기비자발급을 중단한데 이어 한국인과 일본인의 중국 경유비자 발급까지 중단시켰다.#

중국으로 가는 항공노선이 대거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1#2


8. 외교적 갈등 이슈들[편집]




9. 미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미국-중국 패권 경쟁/전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현 시점에서 평균적인 중국인의 생활 수준이나 인권 의식, 정치 선진도가 여전히 한국의 1970~8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대륙의 역대 국가들처럼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의 주요 강대국임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역사는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의 전이, 그리고 구 패권과 신 패권의 헤게모니 다툼이 일어날 때 무력 충돌이 벌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경고한다. 패권을 추구하는 모든 강대국은 본토의 안정을 꾀하고 세계로 안정적인 영향력을 투사하기 위해 반드시 변경의 소국들을 자국 중심의 질서로 편입[49]시키려 하며, 여기에는 중국이라는 차기 패권국의 주변에 위치한 한반도 역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가진 초강대국 위치를 중국이 넘보려 한다면 경제적인 대립이든 군사 충돌이든 다툼은 필연적이며, 양대 맹주에게 모두 포기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를 점한데다 남북관계라는 화약고까지 보유한 한반도는 높은 확률로 그 단초를 제공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라면, 과거 패권을 다투던 열강들에 비해 현 시점의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당한 이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전에서 소모되는 첨단 무기의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고, 인명의 가치도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승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승전까지 소모되는 경제적 비용이 더 크다면, 전쟁은 설사 승리할 수 있더라도 비합리적인 선택지로 남는다. 게다가 근대의 영프관계나 19세기의 영프독관계, 20세기의 미소관계와 달리, 중국과 미국의 경제는 상호 의존적이다. 즉, 과거의 나치 독일이나 소련의 경우 서방 세계와 자유 무역으로 얽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종의 제로섬 게임 상황이었다면, 중국미국, 미 동맹국들은 무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보고 있는지라 그 상태를 깨트리는 것 자체가 추가적인 손해를 안겨준다.[50] [51] 이러한 이유로, 미중관계의 정치·군사적 대립은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대국굴기가 본격화되면서 오늘날 미중관계는 경제·군사·정치 등 전 범위에 걸쳐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금기시되어오던 대만 카드 역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고 있다. 중국 역시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활동을 본격화하는가 하면 한반도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등 주변국들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하여 이를 군사적으로 억제하는 전략을 펴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탈동조화(디커플링) 전략은 미국과 한국, 일본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이 대 중국 경제전선에서 같은 입장에 설 수 있게 하지만, 달리 말하면 양 진영이 공유하던 이해관계를 무너트림으로써 미중 간 대립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다.[52]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지역 강국이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들의 대결에서 혼자 힘으로 판도를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53] 따라서 한국의 선택은 실질적으로 미국이냐, 중국이냐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금세기동안 양대 패권국가의 세력 판도가 어떻게 뒤바뀌는지, 그리고 양국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떠한 세계 질서를 추구하는지[54]에 따라 갈리게 될 것이다.


9.1. 대한민국의 방안[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신냉전/대한민국의 방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대사관[편집]


대한민국은 베이징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을, 중국은 서울주한중국대사관을 두고 있다. 그리고 양국의 일부 도시에 영사관이 존재한다.


11. 관련 기사[편집]




12. 관련 문서[편집]



[1] 넓은 의미에선 수천년간 이어져 온 한반도와 중국대륙 사이의 관계도 해당되지만 몽골 만주처럼 중국이 아니었던 곳도 많으니 일단 이 항목은 근-현대의 중국 위주로 서술.[2] 사실상 모든 실권은 시진핑 주석이 가지고 있다.[3] 다만 태조 이성계 시대만 해도 조선과 명의 관계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제 3차 요동 정벌론이 나올 정도. 본격적으로 유대관계로 바뀐 건 태종 때부터다.[4] 특히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때는 아예 조선을 청나라의 속방이라고 명시하면서 기존의 형식적 종주관계를 실질적인 종주관계로 만들려고 하였다.[5] 당시 중국은 6.25 전쟁을 한반도 내에 일어난 내전이라고 하며 국군의 38선 이북 진격은 자신들이 관여하지 않겠지만 만약 미군을 포함해 UN군 병력이 38선을 넘는다면 이것은 중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자신들도 참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였다. 근데 이 말도 웃긴 것이 이미 중국은 10월 경에 북-중 국경지대에 병력을 대기시켜놓고 국군 단독으로 넘든 국군과 UN군이 같이 넘든 참전할 생각이었다. 특히 10월 1일 국군만이 단독으로 38선을 넘었음에도 중국은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고 북한을 지원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6] 참고로 차기 아시안 게임이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즉 개최지가 바로 중국 베이징이었다.[7]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에 맥아더가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 및 1.4 후퇴 등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 "만주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제3차 세계대전 일으킬 일 있냐"며 까이고 연합사령관이 릿지웨이로 교체되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가 "미국이 정말로 만주를 폭격했다면 우리는 한반도로 군대 안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는 카더라도 있고.[8] 여야, 김대통령의 6.25 만주 폭격 발언 놓고 치열한 성명전[9] 김영삼대통령의 6.25만주폭격주장 회고 관련 안보논쟁 가열 1996.6.26 kbs뉴스[10] 김영삼 대통령 만주폭격 발언 일파만파[11] 여야 만주폭격 공방[12] 9조성태 국방부장관, 평화공존 이루어질때 주한미군 철수밝혀 kbs뉴스[13] 방중 조성태 국방장관 통일후 주한미군 철수 논의 언급 mbc뉴스[14] 주한미군 문제를 타국과 논의? 동아일보[15] 주한미군 문제, 주변국 만장일치로 결정, 조장관 발언 파문 조선일보[16] 통일후 주한미군 장래 주변국과 합의 동아일보[17] 주한미군 발언의 진의, 매일경제[18] 안보분야 공감대 확인, 한중국방회담 결산 동아일보[19] 방중 조성태 국방장관 통일후 주한미군 철수 논의 언급 mbc뉴스[20] 조성태 국방부장관, 평화공존 이루어질때 주한미군 철수밝혀 kbs뉴스[21] 물론 상기의 사항들은 현대 중국 대륙(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나 사회상과는 상당히 유리()되어 있어 별개로 취급하는 편이다.[22] 우리나라에서도 사료가 부족한 고려사의 연구에 참고되는 책이다.[23] 다만 이 당시의 인식이 나쁘지 않았던 건 이 당시는 중국과 수교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면이든 긍정적인 면이든 알려진게 별로 없었던 점이 컸고, 또 그나마 중국을 긍정적으로 본 사람들도 중국의 엄청난 경제 성장 속도와 당시의 팽배했던 반미, 반일감정으로 인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로 중국을 긍정적으로 본 것에 가까웠다. 당연히 이때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황사, 중국인들의 형편없는 시민의식, 열악하고 불결한 생활환경 등의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기에 이러한 실상을 잘 아는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이 당시의 한국-중국의 관계와 상호 인식은 2020년대 현재의 한국-인도 관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민간적으로는 열등해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럭저럭 평범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이라면 반일, 반미가 반중으로 바뀐 것 정도. 또한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달리 인도는 한국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고 나름대로 민주주의가 잡혀 있어(예를 들면 군 문민통제의 경우 인도가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한국이 군부의 조직화된 쿠데타를 성공한 것만 2번이나 겪는 동안 인도는 종교, 언어, 민족, 카스트 등으로 온갖 사회 갈등을 겪으면서도 쿠데타 및 군부 독재만큼은 단 1번도 겪지 않고 인디라 간디가 잠깐 흉내낸 걸 제외하면 안정적인 민주정 체제를 유지중임을 생각하면 범상치 않은 수준.) 한한령같은 나쁜 쪽으로의 극적인 변화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것도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24] 일부 조선족 여행 가이드들의 무개념 발언들이 인터넷에 퍼지고 방송까지 타게 됐다. 다만 이 부분은 과거 조선족들이 겪었던 문화대혁명PTSD라는 해석도 있다. 문화대혁명/악영향조선족 항목 참조.[25] 사실 이전 세대는 냉전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의 중공군 정도를 제외하면 중국인을 직접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길거리의 조선족, 작업장이 운용되고 해킹이 남발되는 온라인 게임들, 몰상식한 유저들을 만나게되는 이나 배그 같은 게임, 2000년대 이후로 급격하게 늘어난 대학 유학생 등 다양한 형태로 마주치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가 보여준 몰상식한 행동이 머리에 남아 이렇게 인식이 매우 안좋아진 것이다.[26] 신냉전 시대에 접어들고 나서는 기성세대들도 과거에 비해 반중 성향이 강해졌다.[27] 이 부분은 중국과 겹치는 수출품목에서 반사이익으로 오히려 이득을 볼거라는 연구결과들도 있다.[28] 다만 한국에 반중, 혐중 정서가 널리 퍼져있는 것과 별개로, 해당 여론조사는 비교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한미동맹으로 맺어진 오랜 혈맹국가이고, 자유민주적 체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보편인권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들을 공유하는 국가이다. 즉, 현대 한국인이라면 대체로 미국에 우호적인 정서를 갖기 때문에, 중국에 특별히 악감정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미국중국보다 중시한다는 답변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또한 국제외교 문제에서 고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29] 한국인들 중에서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일본의 문화는 다 한국이 전수해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의 일본 인식/일본의 한국 인식보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게, 한국은 적어도 기모노가 한국 거라는 인식은 없으며, 역으로 아무리 일본이라도 한복이 일본 전통 의상이란 인식은 없다. 기무치야키니쿠 또한 오해가 있긴 하지만 일본의 전통문화라고 우기진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한복/기모노/김치를 전부 지네들 거라고 우긴다. 20년대 들어 극심해진 중국의 문화침탈은 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극에 달했다.[30] 오히려 당시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이 일본군을 몸빵으로 맞아가며 혈투를 벌이는 동안, 몇 번의 전투 이외엔 아예 후방을 돌며 세력 키우기에 바빴다. 오죽하면 마오쩌둥이 "중공은 일본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놓고 말한 적까지 있을 정도. 난징 대축제 발언이 비교적 욕을 먹는 이유 중 하나다.[31] 기본적으로 중공은 북한의 혈맹이다.[32] 飮水思源ㆍ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이다.[33] 단 유엔 한정이다. 중국 헌법 어디를 띁어봐도 본인들이 국민정부를 계승했다는 소리 단 한마디도 없다.[34] 세계은행 자료[35]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36]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37]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하였다.[38] 이로서 중국은 한국내에 가장 많은 외교공관을 설치한 국가가 되었다.(서울, 부산, 광주, 제주)[39] 한중수교 전까지의 많은 시간을 해외 출국 자체를 외교 등 공무수행을 위한 해외여행 자체만 허용되었을 정도로 해외여행 자체가 불가했고 또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수교 이전까지만해도 해외여행객 수 자체가 적었다[40] 2021년도 기준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관광업계 및 소매업 상권 등은 코로나와 별개로 2016년 당시 한한령으로 입은 피해에서 제대로 복구되지 못한 상황이다.[41] 이 때 중국에서 샤오자이가 퇴장을 당했다.[42] 다만 이는 중국 게임의 경쟁력 강화도 있지만, 한국산 게임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해외 게임으로 이동한 수요 자체가 많이 증가한 점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해당 중국산 게임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점과, 리니지, 메이플스토리와 같은 한국 메이저 IP의 운영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기 시작한 시점이 겹친다. [43] 아이돌의 경우,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등지의 멤버들을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 멤버 개개인이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와 같은 문화 자체로만 보면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중국에서 한국에 수출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중국에서 틱톡, 콰이 등으로 굉장히 활성화 된 숏폼 컨텐츠의 경우 배경음악으로 한국 음악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으며 넷플릭스 독점 한국 드라마들은 중국에 정식유통된 적이 없음에도 상당히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최신 문화가 들어오는 경우는 게임을 제외하면 아직까진 드물다. 쉬인의 옷 정도가 조금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였지만 비슷한 컨셉의 H&M, 유니클로에는 한참 못미친다. 위에화 엔터테인먼트나 틱톡의 경우 한국에서 안착했지만 이들은 실질적으로 중국 문화 자체로는 보기 어렵다.[44] 이 둘은 IMF 사태로 1998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밍밍은 처음에는 수컷으로 알려졌으나 중국 반환 이후 암컷으로 밝혀졌다.[45] 중국에서 살 때의 이름은 웬신(园欣).[46] 중국에서 살 때의 이름은 화니(华妮).[47] 이는 조선족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56개 소수민족 중 인구수 190만 명으로 14위에 해당되는 큰 소수민족이라 한국어가 추가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한국어를 추가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조선족들이 보는 시험에서는 중국조선어가 어문 과목에서 시행된다.[48] 그럼에도 RTS 장르로는 한국에 도전장을 내밀지 않는다. 이미 한물 가서 금전적으로는 득볼게 적은 탓도 있겠지만, 얻어터지고 싶다는 매우 강력한 의사 표명이 될 가능성도(...) 극히 높기 때문.[49]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역시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에 개입하며 자국의 앞마당을 지키려 하고, 미국도 현재의 지위를 갖기까지 캐나다, 멕시코, 스페인령 중남미 식민지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복속전쟁을 벌여왔다. 과거 일본 제국도 팽창의 첫 타겟으로 인접한 한반도, 만주를 점령했고, 독일 제국나치 독일은 각기 괴뢰국과 레벤스라움의 형태로 동유럽을 괴뢰화하여 자국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 했으며, 하다못해 현대 터키도 전통주의 노선으로의 회귀를 천명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북부의 쿠르드 독립세력을 몰아낸 것이다. 즉, 중국이 역사 속의 열강들보다 특별히 패권주의적이라기보다는, 하필 우리가 21세기 패권을 노리는 중국의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불운인 셈이다.[50] 쉽게 말해 일본 제국은 석유를 위해 동남아를 쳤지만, 중국은 돈을 주고 석유를 사 오면 된다.[51] 단, 경제적 상호 의존으로 열강간 전쟁이 발생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 1913년 해외 수출이 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5% 에 달했고 (현재 미국은 약 12%),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영국 최대의 수출 대상국은 독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당시 사람들도 열강간의 전쟁 발발 가능성에 회의적이었고, 전쟁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식한 각국 수뇌부는 대전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대전은 끝끝내 터졌고, 각국은 자국의 경제를 위해 신속히 평화협정을 맺기는 커녕 오히려 승리를 위해 경제를 파탄냈다. 현대에 열강간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상호 의존이 아니라 핵전쟁과 상호확증파괴의 가능성 때문이다.[52]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은 RCEP를 체결함으로써 중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는 미국의 손을 잡고 연대할지언정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탈동조화를 밀어붙이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53] 한반도가 통일된 뒤 국력이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더라도 기본 체급 차가 크기에 초강대국이나 그에 근접한 국가들과 대등하게 맞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54] 자유주의민주주의, 인권 등 인류 보편의 가치들을 공유하고 선도하는 미국과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은 여전히 후진적인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하며 인권탄압이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질서에 편입되는 것은 한국인들의 강력한 거부반응을 불러올 것이다. 반대로 중국이 민주화되고 동맹국을 존중하면 한국과 일본이 중국에 대해 가지는 가장 강력한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다. 다만 여전히 인접 국가로서 어쩔 수 없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역사적인 거부감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멀리 있는 미국보다는 가까이 있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훨씬 더 많은 마찰이 있었고, 2010년대 이후 본격화된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보는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미국이 고도로 패권주의화되고 중국이 탈패권주의화가 되지 않는 이상에야 한국이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할 가능성은 한 없이 희박하다.[55] 2010년대초에 바오젠기업이 제주도에 오면서 바오젠거리로 불렸던 곳이었기 때문에 논란을 빚다가 누웨마루거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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