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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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해군의 역사
2.1. 고대의 해군
2.2. 중세의 해군
2.3. 근대의 해군
2.4. 현대의 해군
3. 해군의 특성
3.1. 영국식 VS 미국
4. 국가별 해군
5. 각종 창작물에서
6. 언어별 명칭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확실한 것은 결정적인 해군전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전력이 갖춰지면 모든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일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Existimat enim qui mare teneat eum necesse <esse> rerum potiri.)

테미스토클레스[출처]

인류과거부터 바다에 나가서 를 타고 싸움을 시작한 이래 생겨난 군종. 동아시아에서는 수군이라 하여 강가나 호수, 연안 정도만 다루는 육군의 연장선 성격의 조직이 있었으나 일본이 개항 후 해군이라는 개념을 만든 이후부터 서양과 같은 개념의 해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해군의 정의는 '제해권을 장악하는 군대'를 의미한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선 해전하면 떠오르는 함대결전 형태의 고전적인 전투만이 아닌 공중전, 상륙전, 기뢰전 등등의 다양한 전투를 수행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해군은 점차 군함만이 아닌 다른 전력이 필요해졌고 결국에는 육군이 아님에도 지상부대인 해병대를, 공군이 아님에도 공중부대인 해군 항공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따라서 굳이 배를 타지 않고 싸워도 해전을 치를 수 있게 되었고, 배를 타지 않아도 이들을 해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해군은 영어로 'Navy' 혹은 'Marine'이라 부르며 어원은 각각 배를 뜻하는 고전 그리스어 'Ναῦς'와 바다를 뜻하는 라틴어 'Mare'에서 파생되었다. 전자는 영미권과 그 영향을 받은 국가의 해군이, 후자는 타 서구권과 그 영향을 받은 국가의 해군이 사용하고 있다. 다만 배는 바다 위에 떠있는 것이므로, 배에서 파생된 Navy보다는 바다에서 파생된 Marine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폭이 더 넓다.

2. 해군의 역사[편집]



2.1. 고대의 해군[편집]


파일:attachment/trireme.jpg

해적의 역사는 바다와 함께 시작되었으니, 해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보통의 배들 역시 자위용으로 무장을 갖추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해군의 시초가 되었다. 이때까지는 해군과 민간인을 구분할 방도가 없었다. 그냥 평소에는 민간인이고, 싸움 붙으면 해군이 되었다. 물론, 그 해군이 해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알렉산드로스 시대 말기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당시 이집트에는, 시대를 앞선 거대함선 '포티'가 존재했다. 현대의 구축함만하다.

서양에서 그나마 해군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한 것은 그리스페르시아간의 전쟁이었다. 고대 바다 민족의 뒤를 이어 해군을 건설한 양측은 군함이라고 부를 만한 배들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바람에 좌우되는 범선과 달리 자유로운 기동을 위해 돛과 함께 노를 사용하였다.

해상 전투는 거의 근접전이 좌우했는데, 당시로서는 을 제외하곤 원거리 병기가 없었던 탓에 충분한 타격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이때 이용된 것이 함수(艦首)를 탄탄하게 만듦으로써 함수로 상대 측 전함의 측면을 들이받아 부숴버리는 충각(衝角)이었다. 로마는 이를 역이용해 빈약한 해군력을 보완하고자 아예 해전을 육상전처럼 바꾸는 가교를 배에 달아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 해군을 무참히 박살내는 기발한 전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군의 무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상에서 사용되던 노포(弩砲)와 투석기가 도입되면서 원거리 화력도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중률과 연사속도의 문제로 견제용을 벗어나진 못했고 여전히 적함을 직접 격침하려면 충각에 의지해야 했다.

해군의 중요성은 이미 고대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전황을 바꿨다 평가되는 살라미스 해전이나 포에니 전쟁에서 벌어졌던 카르타고와 로마와의 해전 등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그리스의 경우 보병은 중갑과 무기를 마련할 재력이 있는 자들의 병과이고 그럴 돈이 없는 가난뱅이들이나 해군에서 노 젓고 다닌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서 살라미스 해전 당시에만 해도 해군력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자들도 꽤 많았다.

배가 파괴되면 떼죽음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선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기피하는 병종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시체조차 건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기피하는 병종이었다.

동양의 해군력은 서양에 비해 발전이 늦었는데, 지중해 때문에 해상에서의 무력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과 달리 동아시아의 대부분은 육로로 전부 연결되어 있어서 해상 전력은 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신라 수군은 문무왕 때 선부(船府)를 설치해 독립하기 전까지는 오랜 기간 병부(兵部)가 같이 맡았을 정도로 육군의 부속 전력으로 취급되었고, 해상 원정으로 유명한 이사부도 기록을 종합해 보면 엄연히 본업은 육군 지휘관이었다.

게다가 보통 용골을 설치하지 않는 선박의 제조 방식 문제 때문에 금속제 충각을 설치한 전투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술은 활과 투창 등의 개인 투사 무기로 견제하다가 접현하여 상대 함선에 올라타 백병전을 벌이는 원시적인 단계에 머물렀다.

한국사에서 해군이 본격적으로 활약한 사건은 삼국시대부터이다. 고구려와 백제는 전쟁 때마다 수군을 동원하였다. 백제의 해양기지였던 관미성을 점령한 광개토대왕이 한성을 공격할 때 수군을 동원했다는 기록, 아신왕이 왜와 함께 대방(帶方: 황해도) 연안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이를 증거한다.[1] 특히 고구려는 광개토-장수왕 시기 강력한 해상통제력으로 백제는 물론 백제 우방국인 야마토에게도 영향력을 끼쳤다. 백제가 동성왕 때에 북위를 누선으로 격파하고[2] 바다 건너 탐라를 직접 정벌할 계획까지 있었다는 기록을 보아 이 때 어느정도 수군력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시대 말기 백제는 당나라의 13만 대군이 황해를 건너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상황에서[3] 육상의 신라군, 당나라 해군의 협공으로 고작 몇 주만에 수백 년 왕조가 단숨에 무너졌고 백제부흥운동 역시 일본과 연합한 4만이 넘는 수군이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패배하면서 좌절되었다.

신라는 국가 초기에는 신라 수군이 약하다고 스스로 인정했을 정도로 수군력이 미약했다. 실제로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례이사금 12년(295년)조에 신라군이 수전에 미숙하다는 언급이 있다. 그리고 수도 서라벌이 동해 바다와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의 해상 침입을 자주 받기도 했다. 그러던 신라가 해군을 혁신하기 시작한 건 지증왕 때부터였다. 지증왕은 505년 선박 이용에 관한 법을 제정해 기본적 체계를 세웠고, 512년 동해 바다를 건너 그 유명한 우산국 정벌을 실시했다. 지증왕 즉위 후부터 이전까지 자주 있었던 왜군의 소규모 침공 자체가 전무해질 정도로 해상 방위의 기틀이 세워졌다.

660년 백제 침공 당시 기록을 토대로 당항성에 소속된 신라 황해 함대가 100척에 6,500여명 규모일 것으로 이상훈 교수는 추산했다. 이들은 병선(兵船), 대선(大舩), 거함(巨艦)으로 표현되고 있어 당시 동아시아 기준으로도 규모가 큰 전투함으로 볼 수 있으며,[4] 황산벌 전투에 참여한 신라 육군과 별개로 당나라 수군과 오늘날의 경기도 앞바다에서 합류해서 서해안을 따라 남하해 금강 하구에서 백제 수비군을 물리친 후 백제 수도 사비성을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라에서도 시기별로 수군의 규모나 편제가 달랐을테고, 신라 국토 구조를 보면 신라 수군의 주력은 남해동해에 배치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 황해 함대 기록만으로 신라 수군을 완전히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당나라와 맞붙은 나당전쟁에서도 신라 수군은 대활약해,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게 되어 당이 한반도에 대한 미련을 접고 철수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신라 초기에는 오늘날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兵部)가 선박에 관한 일을 맡았는데 문무왕 18년(678) 선박 업무를 전담하는 선부(船府)를 설치해 육군과 독립되었다.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해상 안보의 중요성을 잘 파악했던 왕이었다.

후삼국시대에도 왕건 본인부터가 태봉 수군을 적재적소에 기동해 후백제의 후방인 나주에서 크게 활약했고(나주 공방전) 후백제 역시 상귀, 상애가 이끄는 수군으로 고려를 공략했다.

중국 삼국지에도 수군의 활약이 다방면에서 등장하는데 오나라가 수군을 상당히 잘 다뤘다. 특히 손견, 주유, 육손, 감녕이 수군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는데 육손은 수군의 대규모 부대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났고 감녕은 수군 기동전의 달인이었다. 삼국지에서의 가장 대표적인 수군 전투가 바로 적벽대전이릉대전이다. 그 위나라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원소, 유표, 마초 등을 전부 쳐잡고 다니던 그 조조조차 오직 손권에게만은 꽤나 고전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손권이 강성한 수군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또한 골목대장 시절부터 전투 지휘를 익혀온 유비조차 수군전에서는 육손에게는 엄청나게 엿먹고 또 그게 원인이 되어 화병으로 사망했다. 주유 역시 발군의 수군지휘능력으로 적벽대전에서 그 조조를 엿먹였으며 육손 역시 이릉대전에서 유비를 엿먹이고 유비를 사망까지 갈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게 만들었다. 하다 못해 반장조차 조진하후상을 수군으로 엿먹였다.[5] 비록 조조와 밀약을 맺은 손권의 뒷치기로 형주를 잃고 전사한 관우도 형주 공방전에서는 숫자에서는 밀렸을지언정 수군을 능숙하게 다루며 형주의 위군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도만 보면 강 한줄기 몰래 훌쩍 건너는게 뭐가 그리 어렵나 싶지만 오나라를 둘러싼 장강은 상류부터 하류까지 전부 폭이 어마무시하게 넓다. 기술이 훨씬 발달한 태평천국의 난 시대에도 태평천국군은 수군이 몰살당하자 장강 양안을 모두 점령했는데도 불구하고 관군이 강을 통해 보급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조조에겐 없던 대포도 있었는데 말이다.


2.2. 중세의 해군[편집]


서구의 경우 서로마 제국의 멸망 뒤 사실상 바다는 버려졌다. 지중해는 사실상 이슬람 세력의 독무대로 넘어갔고, 북해바이킹의 것이었다. 서구 국가들은 자기들 땅에서 복작대느라 바쁘고,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은터라 해군을 키울 여력이 없었다. 오직 동로마 제국만이 동지중해에서의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해군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사막 출신의 이슬람인들에게는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스의 불을 장착한 제국 함대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단하여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슬람으로부터 지켜낸 일등공신이었다. 이후에도 제국 해군은 이슬람 세력을 견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으나, 국내외의 혼란으로 점차적으로 제국 해군이 축소되어가는데에 반해 아바스 왕조 이후의 이슬람 왕조들은 해군을 육성하여 동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이는 동로마 제국의 마케도니아 황조가 들어선 이후 어느 정도 재역전 되기는 하였으나 13세기 4차 십자군으로 제국이 일시적으로 멸망함에 따라 크게 쇠락하였고, 제국 재건 이후에도 복구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은 베네치아는 쇠퇴하던 동로마의 해군 노릇을 하는 대가로 많은 특권을 챙겨왔으므로 강대한 해양 세력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해군은 미약하나마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충각과 병력으로 승부하던 고대와 달리 갤리선의 크기가 커지면서 투사병기의 탑재량이 늘어나 원거리 화력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머스킷컬버린 등 초보적인 야포들이 등장하자 이들을 함수포로 활용한 갤리어스가 등장했다.

파일:attachment/lepanto.jpg

1571년 레판토 해전은 변화의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오스트리아 앞마당까지 밀려온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결성된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의 결전에서 신성 동맹이 큰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 해전이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세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총포로 무장해서 이긴 것도 아니었다. 레판토 해전 당시 함포와 머스킷이 동원된 건 사실이지만 승패를 결정지은 건 함포와 머스킷이 아니다. 당시 숙련된 포수들이 사격을 해도 명중을 기대할 만한 거리는 100~200m, 숙련된 베네치아 포수조차 400m가 고작이었고, 갤리선의 구조상 탑재 가능한 함포는 정면에 1문에서 최대 5문 정도가 고작이다. 더구나 한두 발로는 침몰하지도 않았기에 스페인 해군은 배를 바짝 붙이고 쏘는 걸 선호했다.[6] 결국 이 해전에서 양측은 함상 백병전으로 전투를 진행했고 동맹측 좌익 차석 지휘관 마르코 퀴리니가 오스만의 우측을 고립시키며 중앙을 고립시키는 효과를 유발하여 백병전에 밀린 오스만측 기함이 점령당하면서 신성 동맹이 승리했다. 실질적으로 원거리 포격전으로 전환하게 된 건 전열함 등이 등장하면서 탑재 가능한 함포수의 증가, 대포의 제조기술 발달 등으로 포격전에 유리해진 뒤이다.

파일:attachment/Hansando.jpg

동양의 해군은 중세에 이르러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는 화약을 발명한 곳이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원-고려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이미 해상에서 폭발성 화약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원명교체기-고려말에 이르면 화포가 함선에 설치되기 시작한다. 동양의 함선은 대체로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화포의 한계가 명확했던 이 시기에 벌써 포격전으로 적함을 격침시키는 사례가 흔히 나타나게 된다. 다만 이 시기의 포격전은 근대 해군의 원거리 포격전과는 달라서 서로 접현 직전에 이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났으며, 포격을 피하려는 적함을 갈고리로 붙잡아놓고(...) 쏴대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정크선 항목 참조.


2.3. 근대의 해군[편집]


파일:attachment/naval_battle.jpg

무적함대가 박살난 이후, 함대전은 원거리 포격전이 대세가 되었다고 많이 알고 있지만, 해병대에 의한 백병전은 섬멸전에서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었다. 사실 무적함대가 영국의 포격으로 잃은 배는 크게 잡아도 6척 이하이다. 당시 조선기술에 화포 반동을 감당할 수 있는 설계가 적용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배들은 과학적인 설계라기 보다는 각국에 전수된 경험으로 건조되었다. 배에 거치된 화포에 육지에서 하듯이 화약을 붓고 일제히 쏘았다가는 배를 통제할 수 없거나 뒤집히는 위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구경에 맞는 철환형 포탄을 쏘는 경우 지상보다 화약이 적어서 사거리도 짧았다. 그렇기에 교전하던 전투함들은 서로 접근하면서 석궁 또는 활 그리고 화승총을 쏘다가 사거리가 되었다 싶으면 거치된 화포를 갈기는 것이 해전의 방식이었다. 또한 당대에는 범선에 의한 포격보다 갤리선에 의한 포격이 더 위협적이었는데 선고가 낮은 갤리선이 범선의 흘수선 근처에 포격을 실시하여 적중하는 경우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는 전술로 갤리선 자체가 아닌 갑판위의 승조원에 대한 살상을 목표로 하는 전술도 생겨났다. 전반적으로 유럽 해군이 원양해군화되면서 갤리선은 도태된다.

어차피 잘 안맞는 함포[7]이다 보니 최대한 근접거리까지 들러붙어 서로의 배 옆구리에 함포를 쏴붙이다가 어느 시점에 해병대가 상대방 배로 올라타는 식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런 전술은 트라팔가르 해전까지도 유효한 전술이었다. 배가 점점 커져가면서 화력이 증가해도 고폭탄이 없었던 당시에는 단순히 포탄이 목재 선박을 관통할 뿐이었다. 흘수선에 직격된 것이 아니라면 숙련된 선원의 경우 직격된 부분도 금세 수리가 가능했다고 한다. 따라서 근대의 전열함들의 경우는 오히려 피격 부분을 강도는 높지만 질기지는 않은 목재를 사용하여 피격시에는 적의 포탄이 함을 관통해 반대편까지 뚫고 나아가는 경우가 흔했다. 게다가 배는 나무를 많이 쓰기 때문에 건조 비용이 비싸고[8], 나포하면 선원들이 포상금을 받을 수 있어서 때려부수는 것보다 나포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다.

당시의 전함들은 동판을 하부에 둘러서 배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해양생물이 점착하는 것을 막기도 하였으나 기술적으로 철선을 건조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철선에 따개비를 막기 위한 구리판을 덧대면 오히려 부식을 가속시켰고 전통적인 목제 범선 제조법은 철선 제작에 어울리지 않았다. 수많은 기술적인 혁신 끝에 구리판은 선체의 철과 단절된 에폭시 도료 위에 적갈색 구리산화물 페인트를 덧칠하도록 바뀌었으며, 19세기 영국의 전설적인 토목전문가 브루넬이 건축물을 지을 때의 뼈대구조를 배에 그대로 도입하여 현대적인 철선이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 전투에 투입된 최초 철재 함선은 19세기가 저물어가는 시기에야 등장한 모니터함이다.

이후 강력한 위력을 가진 어뢰를 소수 탑재하고 빠른 속도를 활용해 가격 면에서 상대가 안 되는 주력함을 위협할 수 있는 어뢰정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골치 아픈 어뢰정을 주력함 근처에서 치워버리기 위한 어뢰정 파괴함, 즉 구축함이 새로운 함종으로 등장하게 된다.

철재 함선 시대에는 대구경의 무거운 함포를 회전 가능한 포탑화하여 소수 탑재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원래 이는 의도된 것이 아니었는데 최초에는 증기선과 전함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증기선은 외륜을 측면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면 측면에 포문을 설치할 수가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갑판 위에 회전식 포탑을 설치하였고 부족한 포문 수을 만회하기 위하여 강력한 위력을 갖춘 주포의 개념이 탄생했다. 영국 해군은 증기선이 범선과 달리 연료보급이 필요하다는 점. 측면에 충분한 포를 설치할 수 없다는 점. 또 그로 인하여 새로운 전술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증기선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프로펠러 추진으로 전환된 뒤에도 회전식 주포 개념은 계승되었다.

전함의 발전단계에 혁명을 일으킨 것이 드레드노트급 1번함인 드레드노트였다. 드레드노트를 기점으로 해군은 초거대 함포를 갖춘 전함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러한 거함거포주의1차 세계대전 당시 절정에 치달아, 전무후무한 전함간의 대규모 함대결전인 유틀란트 해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어뢰는 무시무시한 화력 덕분에 지속적으로 이용되면서 어뢰정은 끈덕지게 살아남았고, 잠수함이 실용화되면서 전함과는 또다른 발전이 시작된다.

반면, 동아시아의 해군은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국가간의 경쟁을 억누를 정도로 규모가 큰 중국이라는 거구가 버티고 있던 동아시아는 특별히 해군이 발달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또한 각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양을 건너가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행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최근 연구에선 오히려 중국과 지속적으로 대치하던 베트남의 해군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18세기의 응우옌반후에 왕이 태국과 전쟁하는데 사용한 대효선은 가장 큰 게 화포가 66문, 탑승정원이 700명인 어마어마한 배였다고. 목선 선체의 제작방식 항목 참조.

이후 개화기가 도래하며 근대화가 되어가던 일본은 서양에서 기술을 배워 시대를 따라갔다. 초기의 서양식 일본군함들은 거의 영국제 군함이였고 소수의 프랑스제 군함도 보였다. 중국의 청나라 역시 아편전쟁 이후 서양 해군의 위험성과 화력을 깨닫게 되면서 서양식 무기들을 도입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해군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였고 1890년에 이르면 그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서양식 함대인 북양함대를 신설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건조 과정에 방산비리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서양식 함대인 연합함대에게 격파당하고 이후 일본에서는 국력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자력으로 건조한 건함으로 2차 대전 즈음에는 세계 3위급의 해군을 만들게 된다.


2.4. 현대의 해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DVM_10_Bild-23-61-83%2C_Linienschiff_%22SMS_Kaiser%22.jpg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해전에서 고전적 포격전은 퇴출되었고, 항공모함이 전장의 주체가 되었다. 스틱스 쇼크와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 미사일의 무시무시한 위력이 세계 각국을 경악시켰다. 이에 따라 미사일과 적 항공기를 막기 위한 대공방어력이 중시되어 이지스와 같은 방어 시스템이 등장하게 되었다.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인하여 함재기의 중요성 또한 부각되었고 그래서 이 시기 이후부터 해군은 전투기 조종까지 병행하게 된다. 함재기를 조종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함대전에 있어서 함재기의 전투기 싸움이 굉장히 중요하게 되었다.

항공모함이 등장했음에도 군함은 여전히 대형화가 필요했는데 항공모함은 크기가 클수록 함재기를 더 많이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함포의 사정거리와 함선의 맷집 때문에 대형화를 해야 했지만 현재는 함선의 순항거리와 함재기 및 필요한 물자 탑재량, 즉 캐리어로서의 용도로 대형화는 필연적이 되었다. 또한 구축함은 기존의 순양함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순항거리를 늘리고 이지스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탑재해서 항공모함을 보호하기 위해 역시 대형화되어서 현대의 구축함들은 웬만한 2차 세계대전의 순양함과 배수량이 비슷해졌다.

파일:germanuboat.jpg
U보트
한편, 잠수함은 뛰어난 위력을 선보였고, 단점이었던 수중항행 능력을 개선하고 어뢰를 개량하여 장시간 잠수가 가능한 현대적인 잠수함들이 등장하였다.

2차대전 전까지는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곧 세계 최강국이었으며, 따라서 항공기가 없었던 시대에는 30,000 ~ 50,000톤 급 이상의 전함이 오늘날의 핵무기와 같은 전략무기로 인정되었고 전함을 몇 척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국력이 평가되었다.

파일:attachment/singens.jpg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함을 보유한 국가들은 항공모함핵무기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고 2차대전까지 전략무기로 분류되었고 어지간한 항공모함 못지않게 많은 유지비가 드는 전함은 새로운 전략무기들이 등장하면서 대부분 퇴역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함의 몰락 이후 세계 각국은 새로운 함선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들어서는 10,000톤 급 순양함과 구축함에 대함 미사일을 장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항공모함을 별로 굴리지 못했던 소련은 함재기를 대체할 함대함 미사일 위주로 연구했고, 돈이 많아 항공모함을 충분히 운용했던 NATO를 비롯한 서방측에서는 소련의 함대함 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방공 시스템/함대공 미사일을 주로 연구 및 배치하였다.

이런 와중 60년대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스라엘의 에일라트함이 소련제 대함 미사일에 피격되어 침몰한 것이다. 에일라트 쇼크라 불리는 이 사건은 서방측의 무기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일부 국가에서 미사일 고속정의 붐을 일으켰으며 작은 함선도 거대한 함선을 침몰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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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서방세계에서는 엑조세하푼 같은 중장거리 대함미사일들이 개발 및 배치되었다. 서방측에서 가장 먼저 대함미사일을 실전 배치한 이스라엘은 단거리 소형 대함미사일을 개발해 고속정에 탑재했으며 중동전쟁에서 적국의 고속정들을 상당수 격침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본격적으로 100Km 이상의 대함미사일이 대량 배치된건 하푼, 엑조세 개량형[9], 토마호크 대함 순항미사일과 같은 무기들이 나온 이후로, 집약된 기술은 군함의 소형화를 가져왔으며 그것은 미사일 등의 출현과 함께 임무별 체급과 배수량의 동일시를 어느정도 무너뜨렸다. 포클랜드 전쟁을 계기로 미사일 고속정에 함상 헬기로 대응 가능함이 밝혀지면서 함상 헬기 운용이 힘든 고속정 붐은 꺼지지만, 순양함이나 구축함같이 소형화된 군함들은 과거 전함이 가지고 있던 임무를 맡게 되었고, 다기능, 고성능화되었다.

이후로도 몇 번의 현대전을 거치면서 함대전은 미사일전의 양상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적을 먼저 포착하고 적의 대함미사일이 접근하기 전에 요격할 수 있는 요격 체계를 개발했다. 이 결과 미국의 이지스 시스템을 사용한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이나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강력한 레이더를 기반으로 하는 대공방어 시스템을 탑재한 함선들을 개발했고, 대공방어 시스템의 단가를 낮추어 주력함뿐만 아니라 연안항행용 수준의 소형함에도 어느 정도 대공방어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3. 해군의 특성[편집]


세계적으로 해군은 서로 상반되는 순혈주의 기질과 코즈모폴리턴 기질, 일명 세계시민주의적 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는 함정 생활의 특수성 때문에 서로 공존 가능하다. 순혈주의적 기질은 폐쇄된 환경에서 장기간 생활하기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일체감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배경이 비슷한 인원들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경우, 20세기 중반까지 장교들은 백인 위주였고 미국해군사관학교가 첫 흑인 장교를 배출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뒤인 1949년에서였다. 반면에 미 육군쪽인 웨스트포인트남북전쟁이 끝나자마자 흑인 사관생도를 받아들여 임관시켰다.

하지만 실제 근무에 있어 흑백인 사병들의 유대감은 제도적 차별이 큰 해군이 육군보다 더 높았다. 해군은 인종별로 부대가 나뉘어 있던 육군과 달리 좁은 함내에서 서로 부대끼는데다, 해군에서 흑인들이 많이 배치되는 직별조리의 경우, 일 자체도 빡세고 승조원들의 사기를 책임지는 만큼 대우가 육군에 비해 좋았기 때문이다.[10] 남북전쟁 시기에 흑백인을 같은 부대에 배치하지도 않고, 배치하더라도 서로 쳐다도 안 보던 육군과 달리, 해군은 흑백인 수병들이 어깨동무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반면, 일본해군병학교일본육군사관학교가 조선인이나 대만인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본토의 일본인만을 받아들였고 1943년부터 해군병으로 조선인과 대만인을 뽑았지만 수상함이나 잠수함은 되도록 시키지 않고 육전대나 육상근무를 시켰다.[11]

또한 일체감을 중시한 탓에 여군의 진입장벽이 높았다. 사실 이건 해군만 그런 것은 아니고 근대 이전부터 뱃사람들은 선원으로 여성을 태우는 것 자체를 기피했다.

코즈모폴리턴적 기질은 항해를 나가 외국 항구에 입항할 일이 많고 해군 장교단간의 교류가 많은 탓에 나타나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역은 영어 교육을 금지했지만 일본해군병학교만은 무시하고 그냥 가르쳤다. 덕분에 GHQ 시절에 영어가 뛰어난 후생성 제2복원국 소속의 구 해군 출신들은 해상보안청이나 Y위원회를 통해 일본군 해군의 정체성을 건사하려고 했고 미국 해군의 인원들도 이를 묵인했다.[12] 그 사이 일본군 육군은 조직이 개박살나고 일본 경찰 출신들이 초기 주도권을 잡았다. 물론 구 육군 출신들도 나중에 입대하긴 했지만 해군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어받은 해상자위대와 달리 내무관료, 즉 경찰 출신들과 세력 갈등을 벌여야 했다. 거기다 일본 경찰까지 육상자위대를 견제했다. 또한, 전 세계의 모든 해군은 관습적으로 일단 적의 함선이 격침되고 전투가 종료되면 이들을 전부 구조해 주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육군, 공군이나 해병대 보다는 밥이 잘 나온다.[13] 이는 막장국가인 북한이라도 예외없다. 물론 수상함이나 잠수함 근무자들에게 한해서라지만. 또한, 도 엄청 마신다.[14]

부사관의 운용에서도 타군과 달리 고급부사관(CPO)을 구분하여 운용한다.

전투함명에 특정 위인의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해전으로 유명한 네임드가 부족한 관계로 많은 국가들이 해전과는 별 상관없는 위인의 이름을 전투함에 쓰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는 광개토대왕, 양만춘, 대조영등이 있으며, 독일의 경우는 비스마르크, 몰트케, 샤른호르스트 같은 인물들의 이름이 해전과는 상관없음에도 전함의 이름으로 쓰인다. 이 현상이 극도로 심한 케이스가 미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15] 해군과 해병대의 역사적 영웅이나 인물을 생각나는 대로 끌어와도 이름이 부족하다보니 육군 출신자들은 기본에 아예 전혀 상관없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까지 끌어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의 경력이 있다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름이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구축함을 찍어냈다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세계적으로 해전 네임드가 부족하더라도 여자 이름을 전투함에 붙이는 것은 드물다. 차라리 지명, 동물이나 엉뚱한 단어를 갖다 붙인다면 모를까... 물론 예외도 있기 마련이어서 영국 해군에선 자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이름을 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이 있고, 프랑스 해군에서는 잔 다르크급이라는 순양함들이 있었고, 미국 해군의 경우 알레이버크급은 FDR 부부를 기념한다고 루스벨트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고,[16]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그래머그레이스 호퍼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현재는 전반적으로 유명 인사들을 벗어나 사병 신분이라도 해군과 해병대, 해안 경비대 출신의 전공을 세운 이들의 이름을 붙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또한 2015년, 대한민국 해군214급 잠수함 6번함을 '유관순함' 으로 명명하여 여자 이름을 붙여줬다. 초도함 장보고를 제외하고는 독립운동가나 임진왜란 기간 중 수군 장수들의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듯. 또한 수송함이나 군수지원함, 정보수집함, 연구선 같은 경우엔 드물지만 전투함보다는 조금 높은 빈도로 여자 이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예로부터 뱃사람들은 배를 she 같은 호칭으로 부르곤 했다.[17] 그 외에도 유독 영국 해군[18] 형용사[19]를 선박명칭으로 지정하기도 한다.

해군력은 다른 병종과 비교해도 전력의 확장 및 유지에 특히 많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필요한 병종으로 꼽힌다. 주력함의 경우 계획을 세우고 설계, 건조해서 진수, 취역하는데 아무리 짧아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리고, 함선 및 함대 조직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각종 노하우를 얻으려면 더더욱 많은 시간이 걸린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해군의 경우 수십년 동안 프리깃, 초계함 위주의 연안해군에 머물다가 1981년 한국형 구축함(KDX, Korean Destroyer eXperimental) 기초연구를 시작으로 대형함 위주의 함대 현대화 사업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 계획이 그나마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받는 시점인 세종대왕급 구축함 1차선(Batch I)의 취역을 기준으로 해도 약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해군 함정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특성상 함장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장교단 내의 위계가 아주 강하다. 해군사관학교 출신들의 방산비리도 이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는 시선이 있다. 물론, 정반대인 육군도 장교단 내 위계질서가 큰데다 방산비리가 많은 것도 마찬가지라 어거지라는 주장도 있다.

다른 병종에 비해 국가 간 복식의 공통점이 많은 편이다. 일반 수병은 일명 '빵모'로 불리는 수병모와 세일러복을, 간부는 검은색 동계 정복/하얀색 하계 정복을 채택한 해군이 매우 많다. 이는 본래 영국 해군의 복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1차대전 당시 독일제국 해군 지휘부가 영국 해군에게 항복하는 장면을 그린 기록화가 있는데, 얼핏 보면 양측의 복장이 너무 비슷해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다.

계급 체계도 우리말로는 타군과 같지만 영어로 보면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captain은 육군에서는 대위이지만 해군에서는 대령이다.[20] 장관급 장교는 육군에서는 장군(general)이지만 해군은 제독(admiral)이라 한다.

그리고 해군만의 독특한 예절도 있다.

  • 함정에서 함미갑판과 사관실은 신성한 장소로 인식된다. 이 두 장소에서는 일단 복장을 단정하게 갖춰야 하고, 흡연과 정치/종교/여자 얘기는 금기시되며, 특별한 행사가 있는게 아닌 이상은 취식/음주/가무도 금기이다. 단, 사관실은 사관식당도 겸하기 때문이 음식물 취식은 괜찮으며, 흡연은 그 자체가 무조건 금기는 아니고 함장과 부서장들 성향에 따라 다르다.
  • 배에 탈 때는 현문을 통과하면서 함미갑판에 게양된 국기에 경례를 해야 한다. 이는 군함의 특수성과도 관련이 있다. 군함은 소속국가를 떠나서 타국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군함은 소속된 나라를 대표한다. 입항하는 국가에 소속 국가의 대사관이 없을경우 대사관의 역할도 겸하는것이다. 그러므로 배는 하나의 소속국가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다.[21]
  • 사관실과 조타실의 함장석은 함장 외에는 누구도 앉을 수 없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여기엔 함부로 앉을 수 없다. 이것도 함장의 허락이 있으면 앉을수 있는데, 함장이 강심장이 아닌 이상 더 높으신 분에게 허락을 안 할 수가 없으니 보통은 함장이 양보하는게 대부분이다. 물론 같은 해군끼리는 이런 예절을 잘 알기 때문에 총장이라도 자기가 먼저 함장석을 피해 앉지만, 외부인사의 경우 해군 출신이 아닌 이상 그런걸 알리가 없으니... 이는 함선 내의 함장의 권위와 위치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다.
  • 함장이 배에 타고 내릴 때, 그리고 함장급 이상 지휘관이나 기관장 등 높으신 분들이 배에 타고 내릴 때는 배 전체에 타종과 함께 "함장(xx부대장, xx청장 등) 승함(하함)"이라고 방송을 한다. 이때 함장이나 손님의 계급 또는 지위에 따라 타종의 횟수가 달라진다. 재밌는건 한 부두에 배가 여러 척이 계류해 있을 때, 제일 바깥쪽 배 함장이 육상에 상륙하기 위해 자신의 함정을 지나가면 "xx함장 통과"라는 방송을 한다.
    • 전역자나 전출자가 있을때 "이함" 방송도 한다. 전역자(전출자) 방송문을 낭독한 후 1회 타종을 2번 연속 실시 한후 `전역자(전출자) 이함` 구령을 한다. (이때는 계급을 따지지 않는다.) 이함은 비상시 배에서 탈출하거나, 전역이나 전출 등으로 배를 완전히 떠나는 것을 말한다.
    • 승하함 방송은 함정뿐 만 아니라 육상에서도 똑같이 한다. 건물을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함대사령관이 출근하면 타종 후 "사령관 승함"이라고 방송하는 식이다. 참고로 억양은 승(하)↗함↘이다. 들어보면 해군에선 경상도 사투리가 표준이라 액센트가 특이하다. 해군에선 액센트가 특이한 것이 많다. 사↘~~로→ 봐↗ 라던가
    • 타종에 관해서 상세히 써보자면 우선 함장(영관)은 2회 타종을 2번 연속 실시하고[22] 도선사(Pilot)가 승함할때도 동일하다. 제독의 경우 계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준장~중장은 2회 타종 3번, 대장은 2회 타종 4번이다. 민간인 손님이 오는 경우에도 타종을 한다. 타종 회수는 직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충 청장급 이상의 고위직(장/차관, 국회의원, 광역시 이상의 지방의회 의원, 광역시 이상의 지자체장, 대사, 국립대 총장 등)은 대장에 준한다.
  • 함상경례라는 것이 있는데, 일반적인 경례 자세에서 팔을 옆이 아닌 앞으로 45~60도정도 내밀어서 하는 경례이다. 실무에서는 이 경례가 표준이다. 이런게 생긴 이유는 배 안이 좁으니까...
  • 마찬가지로 배 안이 좁아서 생긴 것 중 "길차려" 라는게 있다. 벽에 딱 붙어서 길을 비켜주는 것을 말하는데, 서로 마주보며 오는 상황이면 하급자가 알아서 길차려. 같은 진행방향이면 뒤의 상급자가 "길비켜"라고 명령한다.
  • 대함 경례라는 것도 있다.[23] 이건 개인 간이 아니라 함정 간의 경례로, TV에서 보는 항해 중에 승조원들이 외부 갑판에 줄줄이 서서 한손으로 생명줄이나 배의 구조물을 잡고 하는 그 경례 맞다. 정박중에도 배 옆에 높으신 분이 지나가면 똑같이 한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경례를 하는가 하면, 대함경례를 해야할 경우 조타실(정박중에는 현문)에서 방송으로 피리 같은 것[24]을 불어 사람들을 준비시킨 후 경례 구호를 한다.
  • 대한민국 해군 한정으로 군가 중 해군가와 충무공의 노래는 항상 차렷 자세로 서서 불러야 한다. 회식자리에서도 다른 군가는 다 불러도 되지만 저 두 곡은 부르면 안된다. OCS의 경우에는 "영원한 OCS"도 해당된다.
  • 미신에서 비롯된 거지만 배에서 휘파람을 불면 안된다거나 여자가 타면 안된다거나 하는 것도 있다. 다만 이런 전통은 여군, 여경이 군함이나 경비함에 배치되기 시작하고[25] 민간의 경우 여성 상선사관들이 배출되면서 거의 사장되었다. 진수식에서 술병을 깨는건 여자가 해야 된다는 불문율도 있는데, 이건 아직도 그대로 한다.[26]

여담으로 다음과 같은 해군 식별법이 있다. 일부는 대한민국 해군 한정이다.

  • captain을 대령, commander를 중령, lieutenant를 대위로 알아들으면 해군이다.[27]
  • 충무공 이순신을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이순신 제독"이라고 부르면 해군이다. 마찬가지로 윤광웅 장관이나 최윤희 의장을 "윤광웅 제독", "최윤희 제독"이라고 부르면 해군이다. 해군 장성은 장군(general)이 아니라 제독(admiral)이라고 한다.
  • Boatswain's pipe를 "보선스 파이프"라고 읽으면 해군이다.
  • ensign을 "엔슨"이라고 읽으면 해군이다. ensign의 원래 발음은 "엔사인"이지만, 해군 소위라는 뜻일 때는 "엔슨"이다.
  • 4-1을 "4 다시 1"이 아니라 "4 태크 1"이라고 읽으면 해군이다.
  • 1마일을 1.852km로 이해하면 해군일 가능성이 높다. 이건 해상마일(nautical mile)이며,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마일은 육상마일로 1.609km이다. '가능성이 높다'고 한 것은, 사실 해군뿐 아니라 뱃사람은 물론이고 공군을 포함하여 항공기 조종사와 관제사들도 다 마일이라 하면 해상마일로 알아듣기 때문.[28] 그리고 1nm라고 써놓고 1마일이라고 읽으면 (한국) 해군사관학교 출신이다. 해상마일은 대문자로 NM이라고 써야 하나, 실제로 해사에서 만든 교재를 보면 NM이라고 썼다가 nm이라고 썼다가 Nm이라고 썼다가 왔다갔다 한다. 해사에선 나노미터나 뉴턴미터를 쓸 일이 없으니 어떻게 써도 다 마일로 이해하는 듯.
  • 보급관을 장교로 이해하면 해군이다. 그리고 행정관을 장교로 이해하면 해군 중에서도 함정근무자이다. 해군은 행보관이 없고 행정관과 보급관이 따로 있는데, 보급관은 함정이든 육상이든 보급 병과 장교가 보임된다. 행정관은 육상부대에서는 육군처럼 상사 내지 원사가 보임되지만, 함정에는 행정관으로 보임되는 사람은 따로 없고 장교 중 만만한 소위 한명이 행정관을 겸임한다.
  • 소대장을 부사관으로 이해하면 십중팔구[29] 해군이다. 그리고 분대장을 장교로 이해하면 해군 중에서도 함정근무자다.[30]
  • 배의 upper deck를 주갑판 또는 main deck라고 부르면 해군이다.
  • 휴가나 외박을 "상륙"이라고 하면 해군이다.
  • "샘당", "빵모",[31]
  • "째리다"라는 말을 알면 해군 중에서도 함정근무 경험자다.[32]
  • 얼룩무늬 전투복을 작업복이라고 하면 해군 중에서도 함정근무자이다. 해군에서 얼룩무늬 전투복의 정식 명칭은 전투장 B형이지만(전투장 A형은 평상시 입는 근무복), 함정에서는 보통 깡깡이나 도장 같은 작업시에만 저걸 입기 때문에 함정근무자들은 그냥 작업복이라고 부른다. 육상부대에서는 전투장 A형은 근무복, 전투장 B형은 전투복이라 부르며, 함정과 달리 전투장 B형 입을 일도 꽤 있다.
  • NA와 OCS가 뭔지 알면 해군이다. NA는 해군사관학교(naval academy), OCS는 사관후보생(officer candidate school)[33]의 약자로, 장교의 출신을 구분할때 저런 식으로 줄여서 부른다. ROTC는? 그냥 RT... 우리말로 쓸 때는 학군이라고 한다.
  • "15분전 5분전"이 뭔지 알면 해군이다. 해군은 어떤 일정이든 15분전과 5분전에 방송을 해서 준비시킨다. 그래서 기상도 기상시간에 기상나팔을 트는게 아니라 기상시간 15분전과 5분전에 각각 "총기상 15분전", "총기상 5분전" 방송을 하며 "총원 기상" 방송이 나오는 시점에는 정렬이 끝나고 점호를 시작한다. 이건 출입항과 관련된 문화로, 출항 15분 전에는 함 총원 탑승이, 출항 5분전에는 출항 준비가 완료되어 있어야 하고[34] "출항" 방송이 나오는 시점에는 마지막 홋줄을 걷고 배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제 기상시간은 5시 45분이라는 말 재미있게도 이 시간개념은 육군제39보병사단도 쓰고 있는데, 오랫동안 창원에 주둔하면서 진해기지사령부의 후방부대 비슷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수리고속정은 15분전 같은 여유가 없고 5대기처럼 5분안에 출항해야 한다.
  • 함정들을 "XX급 XX함" 이런 식이 아닌 PCC, DDG, LST 등으로 칭한다면 해군일 가능성이 높다. 해군 내에서는 함정의 형태를 이런 식으로 축약해서 부르기 때문.
  • 중사를 선임하사라 부린다면 해군이다. 그중에서도 함정 근무자일 경우가 높다. 함정에서는 직별장이 아닌 중사는 직별+선임하사나 원/투+선임하사(직별內)라 부르는데, 육공군에서는 거진 사용되지 않는 말이고, 육상의 경우는 직책 또는 ~중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



3.1. 영국식 VS 미국[편집]


전 세계 해군 문화는 크게 영국식과 미국식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두 문화 간에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

먼저 영국식은 모든 유럽 국가들과 일본이 해당된다. 대표적으로는 크라운이 있는 모자[35]가 있는데, 영국 해군의 영향을 받은 국가의 해군은 크라운이 있는 모자를 쓰지만 미 해군의 영향을 받은 국가들은 챙이 없는, 일명 빵모를 착용한다. 대표적으로 미 해군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 해군은 빵모를 착용하며, 영국 해군의 영향을 받은 일본 해상자위대와 구 일본 제국 해군은 크라운이 있는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식 해군도 의장대 등에서 크라운이 있는 모자를 쓰며, 세일러복은 세계의 모든 해군이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영국식은 해군기를 함수기와 함미기로 따로 제정해 게양하는데 반해 미국식은 국기를 함미에 게양하고 해군기를 함수에 게양한다.

4. 국가별 해군[편집]




국력 투사나 군사 전략에서 해군의 비중이 높은(높았던) 국가로는 고대 아테네, 로마, 베네치아 공화국, 네덜란드, 영국, 미국, 일본 등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해군, 해병대는 지원제로 운영되고 지원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육군으로만 징집되지만, 대만군 같이 육해공 어디서 복무할지 대등하게 랜덤으로 돌리는 나라도 있다.#

특이하게 바하마군은 육군과 공군 없이 해군만 있다.
몽골도 해군이 있다.

5. 각종 창작물에서[편집]


육·공군에 비해서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가 뒤쳐지기 때문에 사실 창작물에서도 해군 관련 묘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보면 알겠지만 주인공들은 거의가 육지파 아니면 공중파(?)인 관계로 해군이 비중있게 다뤄지는 경우가 적다. 탑건 시리즈만 해도 소재는 미 해군이지만 해군 항공대라서 바다는 비중이 낮다. 이건 특히나 영상매체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하면 제작비가 수직으로 치솟아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다. 육군은 말할 것도 없고, 공군의 경우는 적절한 CG를 통해 스튜디오가 바로 하늘로 탈바꿈한다. 안병구 제독의 회고록에서는 지상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육, 공군과 달리 바다로 직접 찾아가야만 볼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해군이 대중에게 이미지가 각인되지 못한 것이라는 푸념 섞인 분석도 있다.

물론 해군 묘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경우는 보통 실제 역사상에서 해전으로 유명한 장수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예: 이순신)에서나 비중있게 묘사가 될 뿐이며, 그나마도 그 외의 해군의 활약상 묘사는 그냥 지나가듯이 언급만 되거나 다소 심심하게 묘사될 뿐이다. 애초에 해전의 특성상 멋지게 선보일 액션이란 게 거의 없다보니 그런 듯. 대부분이 좁은 격실로 이뤄진 수상함이나 잠수함이기 때문에 비주얼로 뭔가를 뽑아내기도 힘든 편이다.

승조원이 많은것도 한몫 한다. 보병은 말할 필요도 없고 전투기는 조종사 한명이 모는 기체 하나하나가 중요한 자산이다. 전차는 기종에 따라 승무원 3~5명으로 이야기를 진행할수 있고 한정된 시간 안에 적절한 숫자의 캐릭터로 이야기를 진행할수 있지만 군함은 승조원이 수백명이니 캐릭터를 구성하기 힘들다.

그래서 보통 해군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남자들의 야마토, 연평해전처럼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가상의 등장인물들이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루거나 붉은 10월같은 잠수함 영화나 배틀쉽처럼 함장이나 군 요직들의 두뇌 싸움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일본에는 해군을 메인으로 하는 영화가 많은 편이다. 다만 실제 역사나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의 특성상 정상적인 내용일지는 장담하긴 힘들다(...)

애니메이션이라면 판타지의 영역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그나마 "주인공이 배를 몰고 싸운다" 라는 제대로된 해전도 가끔 등장하고 배경이 판타지와 SF가 가미되어 정치적인 문제도 비교적 덜하다. 극한의 자동화로 승조원을 줄였다든가, 승무원이 인간이 아니라든가. 또는 아예 더 나아가서 해군의 군인들이 군함 그 자체인 경우도 있다.

다만 해군의 생활 모습이나 그들의 문화를 타 매체에 비해 비교적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특전 유보트마스터 앤드 커맨더가 그것. 특전 유보트의 경우 2차대전 당시 잠수함 승조원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한 영화이다. 반면에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범선 시대(정확히 말하자면 나폴레옹 시대)의 영국 해군 전투함 생활을 보여주는데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 고증을 최대한 충실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으므로[36] 만약 이 시대 해군에 관심이 많다면 꼭 봐야할 수작. 단순히 전투 장면 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나 복장, 전투 방식과 규율 등을 깨알같이 담아냈다. 물론 장르가 장르인지라 두 영화 모두 이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과거엔 남성만이 배에 탑승했고 좁은 배에 남자들이 득실댔기 때문에 육군에게 유독 게이 취급 당한 군종이기도 하다. 깔끔한 옷차림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고.

또한 함정에선 커피가 맛없다는 클리셰가 자주 언급된다. 심한 경우에는 구정물 취급 받기도 한다. 커피믹스라면 오래 싣고 다녀도 맛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과거 해군에 보급하는 커피는 오래 놔두면 맛과 향이 날아가버리는 원두 상태였기 때문에 대부분 맛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저장 설비와 기술이 발달한 현대엔 고된 함상 근무로 육상보다 양과 질 모두 우월한 식료품이 지급되는 특성과 맞물려 도리어 육상 근무자들보다 맛있는 기호품을 풍족하게 즐기므로 옛날 얘기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제 자체가 해전이거나, 해전을 강제하는 환경이 아닌 이상 해군은 인기가 별로 없다. 임진록2만 해도 해전 환경을 나름대로 충실히 지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공중 유닛을 뽑아다 쓸 뿐이다. 동사의 비슷한 시스템의 천년의 신화의 경우 공중유닛이 없다보니 그나마 해군 유닛이 좀 뽑히는 편이지만 역시 주력은 아니다. 그나마 해군전력이 비중이 큰 게임은 RTS류. 레드얼럿시리즈나 워게임시리즈. 워게임 시리즈는 레드 드래곤에서 해군이 추가돼서 해협만 간단히 맵처럼 해상본부가 있는 맵에선 프리깃이나 구축함을 뽑아서 현대 해상전이나 지상군을 포격할수 있다. 다만 해상전 자체는 평가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지상전에서 전선이 고착되면 해군을 뽑아서 적 해상본부로 우회하거나 재해권을 잃은 쪽에서는 언제 헬리본이 날아올지 모르니 대공포로 방어선을 구축하는식으로 나름 게임의 일부가 되긴 했다.그리고 우회에 실패해서 적 해군에게 포인트를 헌납하면 팀 전체가 기운다 Command: Modern Air Naval Operations는 이름에 해군이 들어가고 공군도 사실상 해군항공대가 주류다. 토탈 워 시리즈에서도 처음 해전이 도입된 엠토나토는 호평을 받았지만 이후 시리즈에서는 해전이 지루하다, 귀찮다는 평을 줄곧 받았고 최근작은 햄탈워처럼 다시 해전을 생략하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해군을 출연시키면 밸런스 조절도 어려워진다. 물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의 문제 때문에 비슷한 값의 육군, 특히 공군보다 능력치가 우수해야 써먹을만한데, 이 부분을 맞춰가면서 밸런스를 조절하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정쩡하게 강해서는 공군에 묻혀서 쓰이지 않고, 지나치게 강해서는 밸런스 붕괴가 되기 십상이다. 전장이 육지와 바다로 갈린다는 점 때문에 맵 디자인을 잘 짜지 못하면 해군만 주구장창 나오는 지루한 게임이 될 수 있다. 해전 게임에서 필수적으로 나오는 수송선, 상륙전도 게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런저런 문제점 때문에, 배경 자체가 해전이 위주가 되는 몇몇 게임이 아니면 일부러 해전을 집어넣는 게임은 보기 힘들다.

다만 스페이스 오페라우주군우주 함대를 해군과 동일선상에서 본다면 SF 작품들에선 해군이 자주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매체에서 묘사되는 우주군의 묘사는 현대의 해군의 묘사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실제로 우주군을 해군이라고 자주 부른다. 아무래도 바다와 우주를 비슷하게 취급하는 면이 있고 우주을 쓰는 만큼.. 일례로 스타트렉스타플릿과 여타 외계인의 우주군은 해군식 조직과 계급체계를 따르고 있고, 스타 워즈은하 제국, Warhammer 40,000인류제국, EVE 온라인아마르 제국 등의 우주군은 아예 대놓고 이름이 '제국 해군'(Imperial Navy)이다. 헤일로 시리즈도 우주군이 아예 해군이라봐도 될정도고 계급도 해군이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서도 기본 테란 연합 및 차치령의 기본 보병을 해병이라고 부르며, 공군처럼 보이는 맷 호너도 테란 연합 해군 조종사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본업(?)인 항해가 아닌, 항공전이나 특수전, 정보전 등에 종사하는 해군 장교는 의외로 자주 쓰이는 설정이다. 업무 특성상 사복을 입어도 해군이 좀 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이미지 덕분에 미형(?) 캐릭터로 설정하기도 좋고, 가끔 군복 특히 정복 입을 기회가 생기면 육군과 공군보다 간지나는 옷을 입혀줄 수가 있으며, 무엇보다 흔한 육군보다 희소하고 좀 더 능력이 있어 보이는 점 등이 그 이유로 보인다. 게다가 3군 중 육해공을 유일하게 아우를 수 있는 군종이라는 이점도 있다. 본업인 해전뿐 아니라 육전에 차출되어도 대충 쓸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보병 훈련을 받은 인원들이 해군이고 정 필요하면 해군 육전대라는 형태로 육전 임무를 행할 수 있다. 규모가 제대로 된 해군 항공대가 있다면 공군의 일도 부분적으로는 잘 대체할 수 있다. 반면 육군과 공군은 서로 지상(공수부대, 특수전 부대 등)과 공중(육군 항공대 등)에서 뛸 여지는 있지만 바다에서는 제대로 된 해상 전투를 할 수는 없다. 특히 항공모함에서 이착함하고 정복이 공군보다 더 이쁘고 해상에서 공중전을 벌이는 해군 항공대 등은 공군과는 색다른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역시 제법 자주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비행기 타니까 공군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탑건 시리즈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해군 중령 신분의 제임스 본드(007)다. 장교들 뿐 아니라, 특수부대해군 육전대 등은 대개 육군의 특수부대나 보병 부대 보다도 좀 더 우월한 이들이라는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육상과 해상에 모두 통달해야 하는 점 등이 그 원인으로 여겨진다. 거칠고 우락부락한 싸움꾼들임에도, 정복을 자주 입고 외모 관리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갭 모에 요소도 있다.

또 영국의 남성 왕족들은 기본적으로 해군 장교들이기 때문에 영국 왕족이나 왕실 소재 작품들은 모두 해군 출신자가 주역으로 등장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6. 언어별 명칭[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해군()
중국어
海军(hǎijūn
일본어
海軍(かいぐん
ふないくさ[37]
베트남어
海軍(Hải quân
타갈로그어
Hukbong dagat
태국어
กองทัพเรือ
인도네시아어
Angkatan laut
영어
Navy
Naval Force
Maritime force
독일어
Marine
Flotte[함대]
스웨덴어
Örlogsflotta
핀란드어
Merivoimat
프랑스어
Marine
이탈리아어
Marina militare
스페인어
Armada[함대]
Marina de guerra
포르투갈어
Armada[함대]
Marinha de guerra
러시아어
Флот[함대]
Военно-морские силы
우크라이나어
Флот[함대]
Військово-морські сили
벨라루스어
Флот[함대]
Ваенна-марскія сілы
튀르키예어
Deniz kuvvetleri
아랍어
القوات البحرية
에스페란토
Mararmeo
라틴어
Classĭárĭi·Epíbăta
그리스어
Ναυτικός

영어권 국가에선 해군을 뜻할 때 네이비(Navy)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마린(Marines)은 해병대를 의미하지만, 영어 외 유럽 계통 언어를 사용하는 프랑스, 독일, 스페인, 중남미 등지에서는 'Marine' 계통의 어휘를 해군이란 뜻으로 사용하는 편이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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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pistulae ad Atticum, 10권 8.4 (BC 49) 5월, 쿠마에에서 -라틴어 -영어[1] 근데 비운의 아신왕은 광개토대왕에게 발렸다(...)[2] 이 부분은 많은 설들이 오가는데 자세한 건 요서경략설 참고[3] 사실 당시 기술력으로 13만이나 되는 병력을 빠르게 옮기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더군다나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가 언제 백제에 원군을 보낼지 모르니 속전속결로 백제를 무너뜨려야했으므로 느긋하게 왕복하며 나눠 수송할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4] 이 100척을 당 수군에 대한 보급선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삼국사기에서 비전투함은 조선(漕船, 수송선) 등으로 전투함과 구분해 기록했기 때문에 이상훈 교수는 전투함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5] 하지만 오나라의 육군은 촉과 위에 딸려서 합비에서는 10만 단위 군세로 몇 차례나 쳐들어가고서도 오히려 망신만 당하며 쫓겨나는 등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 조조가 오를 상대로 고전한 건 일생 대부분을 치른 육상전이 아니라 낯선 수상전이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조조는 적벽대전과 유수구 공방전을 빼면 수상전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이릉대전도 이기기는 했지만 촉군의 지휘관이 실질적으로 유비 한명이라 오가 집중해서 대응하기 쉬웠고, 그나마도 육상전에서 유비에게 밀리다가 막판뒤집기를 성공한 덕분이다.[6] 자세히 설명하자면 스페인군은 선상백병전을 상당히 중시하였고, 그에 따라 함포는 지원화기적인 측면으로서 활용 전투원이 돌입하기 직전에 이들의 활로를 열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었다.[7] 배 위이므로 흔들린다. 조준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대충 '이때다'하고 쏘는 식.[8] 영국의 경우 함선 건조로 인해 배에 쓸만한 나무는 씨가 말라서 아메리카 대륙의 풍부한 임산 자원에 의존했다. 비록 미국이 독립했지만 배에 쓸 침엽수가 풍부한 캐나다는 영연방으로 남았기 때문에 목재를 조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9] 초기형은 40~70Km정도[10] 힘든 항해생활에서 맛있는 식사의 힘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식사를 담당해주는 사람들이 조리병이기에 그들이 흑인이던 백인이던 문제가되지않았다. 더군다나 앞에 언급되었든 좁은 함내와 항해가 시작하는 순간 내릴 수 없이 부대끼는 생활은 이름이 붙은 움직이는 주둔지인 군함이라는 3박자는 같은 이름이 붙은 함에 타는 사람들끼리 일종의 강한 유대감이 생기기 쉬운구조였기때문에 더욱 그러했다.[11] 해군 복무 경력이 있는 군경력자가 드문 탓에 대한민국 해군상선사관들이 건군기에 군을 이끌었고 그나마 해군육전대나 육상근무를 한 병력들은 대한민국 해병대로 흘러갔다. 창설 멤버들 중 해군병학교 출신으로 일본 해군 중좌까지 진급한 이가 한 명 있는데, 일본인 집안에 입양되어 법적으로 내지인(식민지인이 아닌 순 일본인)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참고로 이 덕에 대한민국 해군(해병대 제외)은 삼군 중 가장 일본군의 악폐습이 덜 계승되었다.[12] 미 해군은 육군에 비해 친일적인 기질을 보인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알레이 버크.[13] 이것도 현대의 일로 과거에는 딱딱한 비스킷 등을 주식으로 삼았다. 전열함과 같은 목조 선박이 주력이던 시절에는 불을 쓰는 요리도 하기 어려웠다. 물론 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존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물 대신 럼주를 보급하기도 했다. 이런 가혹한 생활 때문에 이전엔 죄수에게 감옥에 갇히는 것과 해군 수병 생활을 하는 것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하는 것으로 인원을 충당하기도 했다.[14] 험한 해양 생활의 특성상 술은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예로 영국 해군은 1970년대까지 수병들에게 직접 술을 배급했다. 해상에서 깨끗한 물을 장기 보존하기는 힘들기에 술을 대신 싣고 다니던 근대의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진 것.[15] 해당 사례로 알레이 버크급을 들었지만 알레이 버크는 엄연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장교로서 전후 해군참모총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단,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의 경우 그 수가 60척에 이르기 때문에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의 함정에 해군과 무관한 이름들이 붙었다.[16] 물론 FDR은 이전에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2번함에 붙은 이력이 있다.[17] 바다가 남자고 배를 여자에 빗대는 서양 뱃사람들의 전통이다. 예외가 있다면 나치 독일비스마르크. 히틀러의 명령으로 남성으로 호칭했다 한다.[18] 예외적으로 소련 해군이 구축함급 함명 한정으로 형용사를 붙였다.[19] Implacable, Formidable, Dreadnought, Audacious 등[20] 그래서 해군 관련 영화에서 이와 관련된 오역이 가끔 나온다.[21] 물론 외부 손님이 오거나 공식행사, 의전 등에는 필수적으로 함미 국기에 경례를 하며 승하함을 하고 평소에는 배마다 다르다.[22] 정장(대위)은 1회 타종 2번이다.[23] 함(정)장을 기준으로 하급자가 지휘하는 함정에서 먼저 실시하고 상급자가 지휘하는 배가 답례를 한다.[24] Boatswain's pipe라고 한다.[25] 심지어 해경에서는 여경이 함장에 오른 사례도 있다.[26] 함선의 진수식에서는 뱃머리에 와인병을 던져서 깨는 전통이 있다. 요즘은 배가 커서 그런지 술병을 줄에 매달아서 고정해놓은 다음, 술병을 고정한 줄을 손도끼로 끊으면 술병이 날아가서 뱃머리에 부딪혀 깨지게 한다. 이때 줄 끊는걸 여자가 한다. 직접 배를 타는 뱃사람들뿐 아니라 조선소에서도 같다.예시1(군함)예시2(민간상선) [27] 육군과 미 공군에서 captain은 대위, lieutenant는 중/소위이고 commander라는 계급은 없다. 반대로 해군에는 major와 colonel이 없다. 이는 범선 시대의 전통 때문이다. 영국해군의 경우 대형함에는 정식함장(Captain)이 보임되었고, 6급함이나 등외함에는 준함장(Commander)이 보임되었다. 그리고 위관은 Lieutenant로 불렀으며, 임관 날짜에 따라 서열이 정해졌다. 해군 소장이 후위제독(rear admiral)인 이유도 범선 시대 함대에서 전열의 후위를 지휘하는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단, 영국 공군은 해군의 계급체계와 유사하게 대위가 flight lieutenant, 중령이 wing commander, 대령이 group captain이다.[28] 이는 항공 분야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이 해운업에서 전래되어 정착된 형태가 많기 때문이다.[29] 육군의 신병교육대육군훈련소의 소대장은 부사관이 맡기 때문에 소대장=부사관의 공식이 엄밀하게 해군에만 있지 않기 때문[30] 육군과 달리 해군은 함정에는 소대장이 없으며(조직 개념이 육군과는 완전히 다르다), 육상부대의 소대장은 무조건 부사관이다. 분대장은 함정에서는 장교지만 육상부대에서는 육군과 마찬가지로 병이다. 분대사도 존재하는데, 편제된 직책은 아니고 부서내 최선임 부사관을 분대사로 칭한다.[31] 수병의 근무복 상의를 '샘브레이', 하의를 '당가리'라고 하며 둘을 합해서 '샘당'이라고 부른다. 어원이 불명확한 일종의 속칭으로, 2000년대 중반 해본에서 전 부대에 공문을 보내 이 용어를 사용하지 말것을 지시했으나 이 옷을 입는 수병들은 물론 간부들도 다들 생깠다.(...) 빵모는 수병의 근무복/정복 모자의 속칭이다.[32] 배멀미가 난다는 뜻의 은어이다.[33] 줄여서 '사후'라고 한다. 해군에서는 학사장교라는 말은 잘 안쓴다.[34] 1~5홋줄과 현문사다리를 걷고 배가 안벽에서 떨어져있는 상태로, 출항 5분전 시점에 출근하면 배에 못탄다. 물론 어거지로 태워주긴 하겠지만 대신 함장, 부장, 부서장, 분대장, 직별장 순으로 개갈굼 먹는건 각오해야지[35] 해군에서 흔히 부르는 빵모와는 다른, 도날드 덕이 쓰는 크라운이 있는 모자를 뜻한다.[36] 심지어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마음가짐으로 찍었다고 한다.[37] ふね(배)의 피복형 ふないくさ(전쟁, 군대)의 합성어 [함대] A B C D E F 함대라는 뜻으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