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탑

덤프버전 :



{{{#!wiki style="color:black,white;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8px"
[ 펼치기 · 접기 ]
체제선전시설
평양시
중구역
김일성광장 (대주석단) · 당창건사적관 · 조선혁명박물관 · 천리마동상
대동강구역
당창건기념탑 · 옥류전시관
대성구역
금수산태양궁전 · 대성산혁명렬사릉
만경대구역
국가선물관 · 만경대고향집 · 청년운동사적관 · 칠골혁명사적관
모란봉구역
개선문 · 조중우의탑 · 해방탑
보통강구역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 푸에블로호) · 중앙계급교양관
서성구역
3대혁명전시관 ·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기타
애국렬사릉 (형제산구역) · 재북인사릉 (룡성구역) ·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락랑구역) · 주체사상탑 (동대원구역)
량강도
전체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정일봉) ·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자강도
전체
국제친선전람관
함경북도
전체
회령고향집
황해남도
전체
신천박물관
전국
전체
구호나무 · 김일성김정일동상 · 명제비 · 영생탑
일반 박물관
평양시
중구역
조선미술박물관 · 조선민속박물관 · 조선우표박물관 · 조선중앙력사박물관
대성구역
자연박물관 · 조선중앙동물원 · 조선중앙식물원
락랑구역
과학기술전당 · 락랑박물관
기타
지하철도건설박물관 (모란봉구역) · 평양문화전시관 (대동강구역)
개성시
전체
개성고려박물관
강원도
전체
원산력사박물관
자강도
전체
강계력사박물관
량강도
전체
혜산력사박물관
평안남도
전체
평성력사박물관
평안북도
전체
신의주력사박물관 · 향산력사박물관
함경남도
전체
함흥력사박물관
함경북도
전체
청진력사박물관
황해남도
전체
해주력사박물관
황해북도
전체
사리원력사박물관

상위 둘러보기 틀로 이동하기



파일:북한 국기.svg 평양시체제선전시설

파일:북한 국장_White.svg
해방탑
解放塔

Liberation Monument

}}} ||

파일:external/static.news.zumst.com/PYH2015050904020001300_P2.jpg

▲ 해방탑의 모습
다른 이름
[ 펼치기 · 접기 ]
러시아어: Монумент Освобождение

준공
1947년
규격
높이 30m
주소


해방탑}}}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1. 개요
2. 특징
3. 남북통일 이후에는?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북한기념탑.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소련군북한 지역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이다. 신의주 같은 곳에도 해방탑이 있으나 평양 해방탑이 가장 유명하다. # 그래서 '해방탑' 하면 보통 북한 평양의 해방탑을 말한다. 평양 해방탑 주변에는 당시 북한에 주둔하다가 사망한 소련군 묘지도 같이 있다.

광복 당시 미군이 발행한 지도를 보면 해방탑 자리에는 관우를 모신 관제묘(關帝廟)[1]가 있었으나 철거하고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여러모로 중국과의 우호친선관계를 상징하는 조중우의탑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근처에 칠성문, 모란봉극장, 천리마동상, 평양시청년공원야외극장, 조선혁명박물관 등이 있다.


2. 특징[편집]


파일:Liberation_Monument.jpg

Великий советский народ разгромил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свободил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Кровью, пролитой советскими воинами при освобождении Кореи, еще больше укрепились узы дружбы между корейским и советским народами. В знак всенародной благодарности воздвигнут этот памятник. 15 августа 1945 года.

위대한 쏘련인민은 일본 제국주의를 쳐부시고 조선인민을 해방하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흘린 피로 조선인민과 쏘련인민의 친선은 더욱 굳게 맺어졌나니. 여기에 탑을 세워 전체 인민의 감사를 표하노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전면 비문 ##


Вечная слава великой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освободившей корейский народ от ига японских империалистов и открывшей ему путь к свободе и независимости! 15 августа 1945 г.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점으로부터 조선인민을 해방하고 자유와 독립의 길을 열어준 위대한 쏘련군대에 영광이 있으라! 1945년 8월 15일.

해방탑 후면 비문 #

상부 사진은 소련에서 발행한 해방탑 기념 우표다. 평양시 중구역 모란봉에 위치해 있으며 탑 위에 오각성이 박혀 있다. 소련군이 북한을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탑이라서 사회주의공산주의적인 느낌이 강하며 탑 아래에는 아예 소련 국기가 금속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탑은 북한의 대외적 관점은 어느 정도 드려내고 있는데 바로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러시아에 대한 친밀감을 나타낸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소련군 전사자 위령탑이기에 주기적으로 이곳에 주북한 러시아대사관 직원들과 러시아 외무부의 직원들이 헌화를 하러 온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철저히 대외적인 모습으로, 대내적인 모습은 아주 다르다. 이 탑은 북한 정권의 겉과 속이 다른 가장 대표적인 행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까지 북한은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59년까지 북한은 광복절위대한 쏘베트 군대에 의한 8.15 조선 해방으로 불렀다. 당장 준공 이듬해인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건 당시 촬영된 해방탑 영상을 보면 소련 국기 장식만 있는 현재의 하단부와는 달리 태극기와 소련 국기를 배경으로 소련군의 악수를 북한 사람이 두 손으로 받는 장면을 그린 조각이 있었다.[2] 그러나 1960년 경부터 북한은 '위대한 쏘베트 군대에 의한'이라는 수식어를 점차 제거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조선인민혁명군[3]을 이끌고 한반도로 진공하여 일본을 몰아내고 한반도를 해방했다"는 역사 왜곡을 배우며 진실을 알면서도 왜곡된 역사를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게 되었다.

파일:해방탑_1948.jpg
1948년 2월 촬영된 해방탑 하단부의 조각

Flickr 사용자인 Kernbeisser라는 독일인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탑이 북한 전역의 도시에 있었으나 헐리거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일본군을 물리치고 북한을 해방시켰다는 역사 왜곡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현재 해방 과정에서 소련군의 참전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지만, 김일성 부대와 북한 주민들의 자체적인 항쟁의 역할이 더 컸고[4] 소련군은 도움을 줬다고만 주장한다. 1980년대 이후의 문헌 중 김일성이 조국해방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유일한 문헌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뿐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소련군의 역할은 축소되는 추세다. pdf 2005년 발간된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의 《항일무장투쟁사》 같은 전문 서적의 135페이지가 김일성이 웅기에 상륙하고 배후에서 반란이 일어나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내용이며, 소련군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밖에 없을 정도다.

이런 역사 왜곡은 학교에서 가르쳐서 그를 나라를 해방시킨 영웅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북한 사람들이 해방탑의 유래를 안다면 세뇌된 사람도 그 내용을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5] 북한에서 세뇌된 사람도 김일성일본군을 거의 독자적으로 물리쳐서 위대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평양 해방탑에는 소련군이 해방을 시켰다는 내용이 조선어 명문으로 새겨져 있다. # 물론 김정은은 2021년에도 화환을 보내고 러시아 대사관이 자신의 SNS에 해방탑을 북한 당국이 수리해주는 모습을 올리기도 하나 대러관계를 의식한 행보지[6] 대내적으로는 이런 것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로동신문은 이 탑에 대해 소련군이 해방에 도움을 준 것을 기념하는 내용까지만 보도할 뿐이다. 대외선전매체에서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린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한글을 아예 모자이크한 경우와 마찬가지다. 경향신문이 아예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유사하다. #

북한 내 여러 해방탑의 사진


3. 남북통일 이후에는?[편집]


동서독 통일 이후에도 구 서독동독 영토에 남아 있는 소련군 묘지와 기념탑은 철거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구 서베를린에 있었던 소련군 전승기념탑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야 전체 철거가 아닌 대포와 전차의 철거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통일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직접적인 전쟁이 터지거나 한러관계가 급변하지 않는 이상 일부 해방탑, 특히 소련군 묘지를 겸하는 해방탑은 이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일과 한국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된 역사적 맥락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부 해방탑은 철거되거나 한국어 문구, 특히 김씨 일가가 직접 쓴 문구를 다른 것으로 교체하여 유지될 수도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5 23:58:36에 나무위키 해방탑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1918년 일본인이 발행한 지도를 보면 일명 '서묘(西廟)'라고도 했다.[2] 당시는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인 북조선인민위원회 시절로, 북조선인민위원회도 태극기올드 랭 사인 음정의 애국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태극기의 존재 때문에 해당 장식은 1948년 9월 북한 정권 수립 직후 교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3] 존재하지도 않은 가공의 군대다.[4] 북한은 김일성의 부대가 소련군과 함께 북한으로 들어오면서 대일전에 참전했다고 주장하지만 김일성 부대가 소련군과 함께 대일전에 참전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만약 실제로 참전했다고 해도 불과 100여명 내외에 불과했던 김일성 부대보다는 소련군의 역할이 훨씬 더 컸을 수 밖에 없다.[5] 당장 해방탑이 있는 평양의 중구역은 조선로동당 간부들이 사는 북한 정치의 중심지인데, 조선로동당 간부를 위시한 북한 주민들이 해방탑의 진실을 알면 그동안 배워왔던 것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고 충격에 빠져 탈북할 것임은 안 봐도 뻔하니 북한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주민들이 해방탑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셈.[6]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아예 김일성 소속 부대인 "붉은군대원동전선군 제88독립련대"의 존재와 그 부대원에게 김정은이 러시아 대사관과 공동으로 수여한 메달까지 언급하고 있다. # 하지만 북한 사이트 검색이 가능한 구글에서 "88독립련대"는 러시아 사이트에서만 검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