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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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만
海義滿, Hae Ui-Man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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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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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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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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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화전 이름
앨런 찰스 헤이먼 (Alan Charles Heyman)
본관
서울 해씨[2]
출생
1931년 3월 16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2014년 3월 1일 (향년 88세)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
학력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음악학 /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 석사)
가족
부인 최옥자
장남 해선주
차남 해성광
장녀 해람

1. 개요
2. 상세
3. 수상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미국계, 백인계 한국인 출신의 원로 국악인.


2. 상세[편집]


1931년 3월 16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1952년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음악학과를 졸업하고 1953년 한국전쟁의무병으로 참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강원도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태평소 소리에 매료되어 정전 협정이 체결된 뒤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고, 1959년 음악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60년부터 한국에 정착했다.

정착한 해에 개교한 한국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에 무작정 찾아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대신 자신에게 국악을 가르쳐달라 요구했고, 당시 초대 교장인 박헌봉은 흔쾌히 승락했다고 한다. 이후 홍원기, 박녹주, 지영희, 신쾌동에게 국악을 사사했고, 1995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서울 해씨'의 시조가 되었다.

1963년 미국인 최초로 '뉴욕 아시아학회'에서 한국전통음악에 대한 발표와 함께 바라춤을 직접 선보였다. 1964년에는 '한국삼천리가무단'을 인솔해 미국 27개 대학과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이끌었고, 1973년에는 국립국악원 연주단과 함께 이란, 프랑스, 서독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 및 강의를 통해 한국의 전통소리와 춤을 세계에 알렸다. 영국 에든버러대 민속음악 학자 존 레비가 1964년 한국에서 50일간 머물면서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을 비롯해 신쾌동, 한일섭, 김소희, 박초월, 이창배, 김옥심, 이정렬 등 국악 명인의 소리와 연주를 담은 '한국음악 컬렉션'을 제작하는 것을 주선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수십년간 모은 <서애악부>, <정축진찬의궤>, <설중회춘곡> 등을 비롯해 희귀악서와 고서, 1960년대 국악 연주 녹음자료 등 희귀 자료 60점을 국립국악원에 기증했다. 또한 한국외국어대와 국민대, 한세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영어와 전통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삼천리 나라의 무용>, <한국판소리해설>, <한국 민속음악과 무용> 등 5권이 있으며, <한국가면극>, <한국민속무용해설>, <한국전통악기> 등 수십권을 영문으로 번역했다.

2014년 3월 1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3. 수상[편집]


  • 1982년 한국국제문화협회 문화상
  • 1991년 한국유네스코위원회 문화상
  • 1995년 국악의 해 국무총리 표창
  • 2011년 은관문화훈장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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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5년 귀화.[2] 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