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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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방어 효과
3. 공략법
4. 문제점
5. 오늘날
6.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파일:attachment/Xian_castle_moat.png

중국 시안성의 해자

, / Moat / 호리 (堀)[1]

적의 접근, 진격을 막기 위하여 일부러 의 둘레 같은 곳에 땅을 파놓고 을 채워 놓은 것. 굴강(), 외호(), 성호()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비슷하지만 물을 채워넣지 않고 구덩이만 파놓은 것은 공호라고 불렀으며, 구덩이지만 적의 접근을 막는 용도가 아니라 그 안에 병사무기가 들어가있는 것은 참호라고 부른다.

인위적으로 땅을 파고 물을 채워넣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아예 건축 단계에서부터 원래부터 자연적으로 흐르고 있는 강이나 하천을 끼고 성을 지어서 이것들이 천연 해자의 기능을 하도록 만든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진주성. 진주 남강이 해자의 역할을 하는 구조로 건축되었다. 경주 월성의 경우 성 남쪽은 남천 강물이 자연 해자 역할을 하고 성 동, 서, 북쪽에만 인공 해자를 지어서 공사비용을 절감하기도 했다.

기본 용도는 방어시설이지만 도시에 있는 해자 같은 경우 기왕 만드는 거 아름답게 조경해서 미관까지 고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종의 정원, 공원, 그리고 배 띄워서 노는 유람시설 역할을 겸한 셈이다. 반면 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도시라면 경우에 따라 온갖 오물이 해자로 모여들어 도시의 쓰레기장이자 기피시설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해자 물이 더러우면 적이 달려드는 데 거부감을 갖게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릴 수 있었다. 다만 비위생적인 해자는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만큼 단점도 있었다.


2. 방어 효과[편집]


성의 방어 효과를 극대화시켜주는데, 요약하자면 아래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 성벽의 높이를 해자의 깊이 + 성벽의 높이로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고대, 중세의 건축기술의 한계 때문에 성벽을 높이는 것은 어렵고 너무 높이 쌓으면 내구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해서 구덩이는 인력만 있으면 충분히 팔 수 있으므로 해자를 파서 성벽의 높이를 보강할 수 있었다. 실제 공성전이 벌어졌을때 공격군의 입장에서는 성벽 밑에 섰을 때 해자가 있으면 해자의 깊이 + 성벽의 높이가 되므로 매우 암담해진다.

  • 성벽 근처로의 병력의 접근을 물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물을 채우지 않은 공호라고 해도 당장 군대의 질서정연한 전진이 불가능해지는데다, 이나 폴암 같은 장병기를 든 병력들은 급격하게 불편해지고 크게 깊지 않아도 군대의 전진 속도가 매우 느려지기 때문에 이때 이나 투석기 같은 투사 무기로 요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하면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성추나 운제같은 공성병기의 전진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에 수성측의 입장에서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 해자 아래에 말뚝과 같은 함정 도구들이 있으면 효과는 금상첨화.
물이 채워진 해자 같은 경우는 앞서 제시한 장점 이외에도 부가 효과가 더해진다. 물의 저항 때문에 보병의 전진 속도가 매우 느려지고, 심리적으로도 거부감을 느낀다. 정말로 깊은 해자 속에는 함부로 들어갔다가 빠져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위력이 탁월했다. 많은 경우에 공성전에 나서는 병력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기 때문에 물에 빠지는 데는 취약했다.[2] 설령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아도 진격 속도가 늦춰져서 방어측에게 쉽게 요격당하게 된다.

  • 성벽 아래로 땅굴을 파는 전략을 사용하기 어렵게 한다.
해자 없이 성벽만 있는 경우, 땅굴을 파 성으로 침략하기 위해서는 딱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의 개구멍만 파도 된다. 하지만 해자가 있는 경우, 이런 얕은 구멍은 파봤자 해자 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유의미한 땅굴을 파려면 흙과 물의 무게까지 고려해 해자 깊이보다도 훨씬 깊게 파야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해자 안에 물이 있는 경우라면 깊이가 모자란 땅굴을 팔 시 그 땅굴 안으로 물이 들어차기 때문에 이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제대로 된 성의 둘레에는 항상 이 해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해자가 없는 성은 성이 아니라 단순한 판자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중세 성내 생활의 특성상 이 해자 물이라는 게 흐르는 자연 물길을 이용하도록 설계된 경우를 제외한 고인물이라면 대부분 상상도 못 할 똥물일 경우가 많아 빠지면 똥독이 올라 죽을 가능성도 높았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서는 성 안의 화장실에서 배설물을 벽을 통해 쓸어내서 그냥 해자에다가 흘려버렸으므로 진짜 똥물이 맞았다. 평화로운 시기엔 엄청 큰 변소 사실 해자 물을 더럽게 만드는 건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면이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시커멓게 오염된 물은 그 자체로도 공격자가 심리적으로 접근을 꺼리게 할 수 있으며 빠진 적병들에게 각종 질병을 유발시킴으로써 실질적인 전투력 저하는 물론 냄새와 시각적 효과(...)등으로 사기 저하까지도 노릴 수 있었다.[3] 전투가 계속되면 전사자의 시체까지 들어가서 (전투 상황에서 질병과 악취의 원인이 되는 시체를 성 안에 둘 여유, 이유가 없다. 간단히 버릴 데는 해자 뿐.) 시체 썩은 물로 업그레이드되기도 했다. 현대엔 항생제를 이용해 세균 감염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중세엔 상처 감염으로 인한 염증은 순식간에 사망으로 가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종기 항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염증은 귀족과 왕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망 요인이었다. 물속에 뾰족하게 깎은 나무를 박아 놓거나 마름쇠를 다량 뿌려 놓으면 적이 들어오다가 밟아 다치게 되고, 썩은 해자물은 바로 감염으로 이어진다. 전체가 거대한 생물학 병기인 셈. 깊이가 얕더라도 물을 채워놓으면 최소한 땅이 물러지므로 사다리차 등 공성무기의 접근을 방해하는 효과도 있었다.

화기가 발달한 뒤에도 해자는 한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벽은 성능 좋은 화포가 발달할수록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해자만은 무기의 발달로도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 특히 기존의 높은 성벽은 피탄 면적이 커서 공성포가 설치되기만 하면 시일이 문제일 뿐 반드시 무너졌고, 이에 대항해 성형 요새를 비롯하여 성벽이 낮고 두껍고 포탄의 입사각을 제한하는 기하학적 설계가 가미된 요새들이 등장했다. 성벽이 낮아진 대신 물을 채운 참호인 해자로 방어력을 보강했으므로 오히려 해자의 폭과 깊이, 너비가 크게 증가했다. 해자를 넓게 만들수록 적 화포, 공성무기의 사정거리를 줄이는 효과가 있으니. 이렇게 만들어진 요새고폭탄과 폭발하는 포탄, 본격적인 곡사 화포 등이 등장하는 19세기까지 군사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3. 공략법[편집]


결국 해자를 돌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다른 물길을 파서 고인 물을 빼버리고 흙이나 건초, 목재 등을 총동원해서 구덩이를 메꿔버리는 것이었다. 일단 구덩이를 메꿔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공격 측도 이 해자와 공호를 메우기 위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동원했는데, 전호차 같은 차량은 대형 차량에 참호를 메울 을 가득 탑재하고, 전방에 가죽으로 만든 투사 무기 방어벽을 설치한 다음, 참호에 도달하면 앞의 구멍으로 흙을 쓸어 넣어 안전하게 참호를 메우도록 만들어진 장비였다. 더불어 중세 독일소드마스터 한스 탈호퍼의 검술서에서는 보트에 바퀴를 달아 해자에 빠트려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도록 만든 차량도 등장한다. [4]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해자 건너편 성벽에서 쏟아지는 각종 공격을 받으면서 해자를 메꾸거나 해자를 건널 다리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더욱이 인공 구조물이 아니라 [5] 진주성이나 평양성처럼 자연적으로 흐르는 강[6]을 끼고 건축해서 이를 천연의 해자로 삼는 구조의 성일 경우 물을 빼봐야 계속 흐르기 때문에 그쪽 방면으로는 거의 공략이 불가능하다. [7] 이렇게 해자 공략은 인명 손실과 장비 손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시체와 장비들로 해자를 메꾸고 전진하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여러 이유로 해자가 있는 성이나 요새를 재래식 방법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과 물자, 시간이 소모되었다.

칭기즈 칸의 몽골군의 경우, 항복을 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 도시의 전쟁포로들로 다음 공략도시의 해자를 메웠다는 기록도 다수 존재한다.


4. 문제점[편집]


일단 걸어서 지나가지 말라고 파는 구덩이다 보니 관리가 매우 불편하고, 교통에도 불편을 초래한다. 특히 주기적으로 바닥을 파내고 내부를 강화하는 공사를 시행해야만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바닥에 온갖 생활쓰레기 등이 쌓여서[8]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메꿔져서 너무 얕아 해자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성벽 기반을 파고들어가서 성벽이 붕괴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에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최종적으로 함락될 때도 성벽 바깥에 너비가 20m에 이르는 해자가 이미 파여 있는 상태였지만 오랜 기간 관리가 안 된 탓에 깊이가 1m도 안 되는 수준이라서 침공하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그냥 쉽게 메워버리는 바람에 방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물을 채우면 그것이 자연하천에 저절로 흐르는 설계가 되어있지 않은 이상 고여있는 썩은 물 스포닝풀 그 자체라 상당히 비위생적이며 온갖 병균이 가득했고 모기 장구벌레들이 살아가기에도 좋아 여름이면 해자 있는 성은 모기들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군다나 모기는 말라리아 등을 옮기는 매개체이므로 이럴 경우 전염병이 창궐해서 주민이 전멸, 도시가 혼자서 결딴나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위생상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흐르는 물을 이용하기 위해 하중도에 성을 건설하여 자연적인 하천 그 자체를 해자로 사용하거나, 혹은 성의 한쪽 면이라도 자연하천을 끼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물길이나 운하를 유사시 해자 대신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많았다. 만일 이 방법을 사용하기 어려우면 평시에는 물을 넣지 않고 공호 상태로 놓아두었다가 전시에 인근 강이나 호수의 물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주변에 강이나 호수가 없는 경우에는 인력(...)으로 물을 집어넣어야 하므로 전시라도 충분한 대비 시간이 없으면 물이 매우 적게 들어가서 수심이 얕아서 제대로 된 방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정말 운이 좋은 경우는 고대 로마의 수도교를 이용해 물을 끌어올 수 있었던 경우로 이 때는 해자에 흘러들어올 깨끗한 물을 식수로 이용할 수도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근데 해자 물이 너무 깨끗하면 적군이 스스럼없이 뛰어들 수 있어 방어효과가 좀 줄어든다는 역효과도 있긴 했지만.


5. 오늘날[편집]


위의 이야기는 전부 다 옛날 이야기고, 요즘 시대에 해자를 둘러싸 파고 그 안에서 농성하다가는 발달된 곡사화기와 항공 폭격으로 요새째 평탄화 된다.(...) 유탄발사기박격포같은 무기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까삼 로켓 같은 현대 무기로 쳐주기도 민망한 수준의 급조품에도 별 대응을 못 할 수준이 되어버렸다.

사실상 공군이 해자의 하드카운터로, 제공권을 잡지 못하는 이상 해자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짓이 되고 만 셈이다.

현대전에서는 해자의 역할은 과거처럼 단순히 요새 주변에 두르는 게 아니라 대전차호와 도로대화구 등의 대전차방호벽이 계승한다 볼 수 있는데, 통상 교량전차로 가교를 가설하던지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폭이 넓은 경우) 도저 전차나 전투도저로 메우거나 진입로를 만든다. 미클릭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지뢰지대나 대전차 장애물보다는 진격을 저지하는 효과는 탁월하나 구축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부교와 자주 중문교 등이 존재하고 BMP-3같이 자체 도하능력이 있는 병기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데다가 가장 중요한 비용과 시간 문제 때문에 일부러 물을 채우는 경우는 없는 편. 아예 사장돼버린 성벽보다는 효과적이긴 하지만, 해자 역시 비용과 시간 대비 효과가 고속 기동화되는 현대전과 맞지 않기 때문에, 휴전선 같이 전선이 장기간 고착화되고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 만들어두는 것을 제외하면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성이 방어적 기능을 상실한 21세기의 상황에서는 성을 관광 및 유적으로 보존하더라도 위생 문제가 있어 해자까지 보존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해자를 보존하는 경우에는 특정 지역의 특정 부분에 한해 보존하며, 관리를 철저히 해서 수인성 전염병을 막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본 성은 이런 관리를 통해 해자를 많이 보존하고 있다. 국내에는 방이동 올림픽 공원 안의 몽촌토성 바깥쪽에 있는 음악 분수가 있는 호수가 과거 해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 성내천이나 한강의 물을 끌어들여 이용하였을 듯.


6. 창작물에서[편집]


  • 마왕성과 같이 악의 군주가 거주하는 성에는 보통 용암으로 된 해자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의 근거지인 바랏두르 성채.

  • 닌자들이 신발에 뭔가를 끼우고 물 위를 건너 해자를 통과하고 성으로 침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쓰는 도구의 이름은 마치 소금쟁이가 물 위에 걷는 모습이 연상되어 일본어로 소금쟁이를 뜻하는 수지구(水蜘蛛)라고 한다,다만 이는 과거에 에도 시대 등의 닌자 기록서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실제로 고리모양의 나무판 중앙에 나막신 마냥 신는 것이 아니라유아용 의자 마냥 가랑이 밑에 끼고 튜브처럼 타고 물에 빠지지 않게 헤엄치는 도구였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실제로 비슷한 컨셉의 도하장비가 2차대전 시기에도 쓰인 것을 보면 나름대로 타당한 주장.

  • 오래된 구덩이라는 특성상 유물이 꽤 많이 출토된다. 당시에는 쓰레기였을지 모르지만 현대에는 하나하나가 고고학자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는 귀중한 문화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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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성에서 부르는 용어[2] 금속 갑옷이라면 그나마 물이 금방 빠지겠지만 섬유 소재의 갑옷일 경우엔 물이 빠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3] 비슷한 이유로 수성용 무기 중에는 똥물을 끼얹는 물총도 있었다.[4] 현대 공병의 도하작전용 교량차량들도 이런 개념을 가진 차량들이 상당수 있다. 한국에서는 KM3 자주도하장비가 그 예.[5] 인공 구조물이더라도 장안성 같은 대규모의 해자면 답이 없다.[6] 다만 폭이 넓으면 아예 수군을 이용해서 함포 사격을 하고 도강해 버리면 된다. 또 여건만 되면 최대한 깊게 팔 수 있는 인공 해자와 달리 마냥 파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임진왜란 때 평양성 전투처럼 적이 얕은 여울로 건너오면 끝장이다. 그래서 바다나 강에 연결된 성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방어측도 이를 모르는 게 아니라서, 강 측 지형을 깎든가 해서 배를 쉽게 붙이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7]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의 승리(전술적 승리) 요인 중 하나가 성을 한강에 바짝 붙여 짓고 그 쪽에 배를 댈 수 없게 만들어 놓아 천연 해자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한강에서 배로 들어오려고 시도는 했으나, 한강을 거슬러 판옥선이 출격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순신의 수군 병력인가 하고 포기했다고 한다.[8] 예를 들어 경주 월성해자 출토 목간은 현대에는 신라 당대의 문화와 사회상을 알 수 있는 문화재지만, 원래는 경주 월성 해자 물에 버려진 생활 쓰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