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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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ttle of Hamburger Hill
(Battle of Hill 937)
Trận Đồi Thịt Băm
햄버거 힐 전투}}}
파일:hill937-1.jpg
베트남 전쟁 아파치 스노우 작전의 일부
날짜
1969년 5월 10일 ~ 1969년 5월 20일
장소
베트남 공화국 아 사우 계곡, 압비아 산
교전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베트남 공화국 국기.svg 베트남 공화국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민주 공화국
지휘관
파일:미국 국기.svg 사단장 멜빈 자이스
파일:미국 국기.svg 대대장 웰던 허니컷
파일:베트남 국기.svg 마 빈 란
결과
미군의 전술적 승리
영향
미국의 전쟁 여론 악화
병력
1,800명
800명
피해규모
미군: 79명 전사 및 실종, 372명 부상
남베트남군: 31명 전사
일부 헬리콥터 격추됨.
미군 추측 630명 전사
포로 3명
소화기 152정, 공용화기 25개 미군에게 노획됨[1]


1. 개요
2. 진행
3. 전투 후
4. 대중 매체에서


1. 개요[편집]


파일:hill937-2.jpg
1969년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3여단이 실시한 아파치 스노우 작전[2] 당시 미군남베트남군북베트남군을 상대로 치뤘던 고지전.

작전 참가 부대는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3여단의 3개 대대(187보병 3대대, 501보병 2대대, 506보병 1대대)와 3여단에 임시 예속된 월남 육군 제1보병사단의 2개 대대(1연대 2대대와 1연대 4대대), 미 해병대 제9해병연대, 미 육군 제1기병사단 5기병 3대대, 월남 육군 제3보병연대이다.

기본적으로 이 전투는 위력수색 작전의 일환으로 벌어졌다. 기본적인 작전계획은 미 해병대 9연대와 미 육군 5기병 3대대가 작전지역 외곽에서 라오스 국경 방향으로 위력수색을 하고, 월남육군 3연대가 작전지역으로 연결된 도로를 차단하면, 101공수사단 3여단의 5개 대대가 작전지역에 헬기 투입되는 전투 공중강습 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2. 진행[편집]


이 고지가 위치한 압비아 산은 울창한 숲의 캐노피로 덮인 산이었다. 문제는 이 때문에 미군은 항공정찰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인근에서 북베트남군의 활동징후는 노골적이었기에 작전을 개시한다면 분명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 예측되었으나, 정작 북베트남군의 정확한 규모와 배치, 장비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쨌건 사단의 지휘지침에 따라 미군은 북베트남군 수색 섬멸을 해야 했으므로 공격작전을 실시했다.

파일:hill937-3.jpg
1969년 5월 10일부터 937고지 및 인접한 900, 916고지에 대한 미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투 초입부터 미군은 대단히 고전해야 했는데 북베트남군이 산의 사방에 땅굴을 설치해둔 데다가 울창한 정글은 미군의 화력지원을 크게 방해하였다. 여러 차례 고지로 밀고 올라가다가 포기하고 내려오면서 화력 지원을 호출했지만 그런 식으로는 어차피 북베트남군이 폭격이나 포격이 떨어지면 부리나케 땅굴에 숨어버리는 관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산 전체에 개미집마냥 땅굴을 파뒀고 땅굴이 생각보다 튼튼했기에 어지간한 폭격 정도로는 파괴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보병들이 소화기와 수류탄을 가지고 보병전을 하면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미군의 자랑인 항공세력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울창한 삼림과 지형덕에 항공정찰의 효율은 바닥이었고, 이런 지형을 이용하여 북베트남군은 미군 헬리콥터들의 관측을 피하면서 일방적으로 미군 헬리콥터들에 대한 로켓과 대공포 사격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군 공격 헬레콥터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근접항공지원을 실시하였으나 울창한 삼림으로 인해 시계가 제한되고 아군과 적군이 지나치게 인접한 상황에서 공격을 하다가 미군을 팀킬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오사로 7명이 전사하고 53명이 부상을 입었다. 항공기의 폭격 역시 효율이 대단히 떨어졌다. 심지어 1km 넘게 빗나간 폭격도 있었다.

보병들이 전투를 하며 올라가다가 저항에 막혀 후퇴하고 다시 네이팜탄을 비롯한 폭격과 포격을 쏟아붓는 패턴이 반복되자 나중엔 937고지의 울창했던 삼림은 죄다 아작나서 민둥산이 되버렸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전선도 일정하지 않아 미군과 북베트남군이 뒤섞인 채 아수라장 벌어졌다. 북베트남도 완전히 가만 앉아서 방어만 하던 게 아니라 소규모 보병부대를 기동시켜 미군의 보급선이나 지휘소에 대한 기습작전을 최소 4회 이상 실시하는 등 후방에 기습을 가해오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파일:hill937-4.jpg
미군의 손실이 늘어나고 작전이 장기화되자 언론에서 이 전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여론과 언론의 압박에 미군은 공격을 중단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공격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허니컷 중령이 지휘하던 3대대는 그동안의 격전으로 손실율이 엄청났기에 도저히 지원 없이는 추가적 작전이 불가능하여 사단장 명령하에 3개 대대의 증원을 더 들이부어서 점령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937고지 전투가 사실상 거의 사단급 작전으로 전환된 후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화력을 퍼부어서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한 후 공격에 착수한 결과 인근의 916고지는 5월 15일에 점령에 성공하였고 5월 19일엔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900고지도 점령하였다. 5월 20일에 미군 3개 대대, 남베트남군 1개 대대와 추가로 증원된 2개 중대가 937고지를 4방향에서 포위한 후 937고지의 공격에 재차 투입되었고 화력지원을 퍼부어가며 마침내 12시경에 937고지를 점령했다.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미군 포병대대에서 총 19,213발의 포탄을 발사했고 미 공군은 272소티의 전투임무를 수행하며 고폭탄 폭격 890톤 및 네이팜탄 폭격 115톤을 가했다.

패퇴한 북베트남군 일부는 라오스 국경 방향으로 탈출하였다.


3. 전투 후[편집]


어쨌든 미군이 이기긴 했다. 전사자는 미군 79명, 남베트남군 31명, 미군 발표로는 북베트남 측은 630명이 전사했다. 전투 후 2주가 지난 6월 5일, 미군은 고지에서 철수했다.

햄버거 고지는 원래 목표가 북베트남군 섬멸이었고 고지는 전략적 요충지는커녕 쓸모없는 곳이었다. 목표는 고지위에 있던 적들의 섬멸이었지 고지점령이 아니었으므로 목표물이 제거된 후 이동하는건 당연한 것이 었다. 오히려 반전 단체에서 사상자의 숫자만 보고 "쓸모 없는 전투"라고 부르다가 "햄버거 고지"라는 이름이 나오고 붙은 것.

그리고 대대장이 사단본부에서 북베트남군 섬멸 명령을 받았는데 그 목표물인 북베트남군이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데 공격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현장 지휘관인 허니컷 중령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부하들도 알고 있었다고 햄버거 힐 참전용사들이 많이 증언했다. 참고로 다시 강조하자면 목표물은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북베트남군이지 고지가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937고지를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물러서는 통에 이유야 어찌됐건 무의미한 전투로 보이기에는 충분했던 것. 본국의 시민들이 보기엔 '애들 갈아먹어서 고지 간신히 점령해놓고 스스로 바로 후퇴?' 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케산 전투에서도 그랬듯이 기껏 희생 치루며 북베트남군을 몰아냈는데, 미군이 철수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북베트남군이 937고지에 기어들어와서 또 여기를 점령해버렸다.

미국에서 의회에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큰 논란이 되었다. '이럴거면 뭐하러 전투를 하느냐! 쓸데없는 전쟁놀음인지 아느냐!' 라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5월 25일에 바로 그 '햄버거 힐' '다진 고기'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였고 라이프 매거진은 6월 27일자 발매 호에서 베트남에서 1주일 동안 사망한 241명의 미군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3] 각종 언론들의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구정 공세 이후 안 그래도 바닥을 뚫고 내려가던 미국인들의 전쟁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고, 이러한 여론의 압박에 베트남 주둔 미군은 또 이런 일이 벌어질라 눈치 보느라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여론과 의회의 불같은 반응을 접한 백악관도 화들짝 놀라긴 마찬가지였으며 이는 리처드 닉슨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슬슬 발을 빼려 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베트남측에서는 이 전투의 북베트남군이 사실 베트콩 민병대였다고 주장하는데, 베트남이 이렇게 '너님들이 싸운 건 고작 최약체 베트콩에 불과하다!' 라고 주장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라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덧붙여서 베트남측은 이 전투에서 미군에게 1,500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안겨줬다고 주장하는데 베트남측의 전과 과장 중에서도 좀 손꼽힐 정도로 뻥튀기가 심하다.


4. 대중 매체에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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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획장비를 보면 실제 전사자는 630명보다 적다고 볼 수 있으나 한편 땅굴에 매몰된 시신이나 장비들은 회수하지 못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2] 아 사우 계곡 인근 평정을 목적으로 실시되었던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합동 작전이다.[3] 다만 이 241명의 미군 중 실제 전투로 사망한 전사자는 5명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