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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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옥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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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
팀 창단

허규옥
(1982)


장효조
(1983~198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결번

허규옥
(1983)


박영진
(198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1번
결번

허규옥
(1984)


홍순호
(198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손상득
(1982~1983)

허규옥
(1985~1988)


최해명
(1989~1992.5.6.)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번
홍문종
(1984~1988)

허규옥
(1989~1990)


강경진
(199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강영수
(1989~1990)

허규옥
(1991~1992)


김실
(1994~1995)



파일:허규옥.jpg

허규옥
許奎沃 | Heo Kyu-Ok

출생
1956년 8월 8일 (67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건고 - 한양대
포지션
외야수(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롯데 자이언트 (1980~1981)
삼성 라이온즈 (1982~1988)
롯데 자이언츠 (1989~1990)
삼성 라이온즈 (1991~1992)
지도자
경일대학교 야구부 감독 (2019~2020)
본관
하양 허씨[1]
1. 개요
2. 생애 및 선수 경력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외야수.


2. 생애 및 선수 경력[편집]


1956년 8월 8일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 태어나 대구 달성군 용계초등학교 졸업했다. 부친 허택렬(許宅烈, 1927. 12. 10 ~ )과 모친 평산 신씨 신덕휴(申德休)의 딸 사이의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첫째 작은아버지 허부열(許富烈, 1929. 8. 19 ~ )에 입양되었다. 허부열은 중소기업협동조합 대구경북지부장을 역임했다.

대구 대건고 시절부터 공수주를 갖췄으나 팀이 창단한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아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3학년 때 황금사자기봉황대기에서의 활약으로 뒤늦게 각광을 받고 한양대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나서 2학년 때는 실업·대학야구 올스타에 뽑혔을 정도로 대학에서도 뛰어났다.

대학 졸업 후 1980년 실업야구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했다. 1981년 3월 18일에 1981 시즌 첫 만루홈런을 쳤고 타율 0.389로 그해 타율 1위를 하는 등, 타격에서 위력적인 면모를 보여 "무서운 왼손잡이"(…)란 별명이 붙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연고팀인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주로 2번타자, 중견수로 기용되었다.

타격에서는 일부러 밀어치지 않았음에도 타격 타이밍이 늦어 나오는 좌전안타가 꽤 있어 "공을 치면 다른 타자들과 달리 타구가 전혀 엉뚱하게 날아간다"라는 말과 함께 '개구리\', '럭비공\'으로 불렸다. 특히 허규옥의 타구는 해태 김정수의 투구와 더불어 당시 야구계의 2대 불가사의로 통했다. 각각 어디로 갈지 모르는 타구와 투구로 상대 선수들을 괴롭혔기 때문. 출루하면 빠른 발로 상대 수비를 흐트리는 데 능했고, 수비에서는 장태수와 짝을 이뤄 라인드라이브 안타를 거의 허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날렵하고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했다. 단. 나무배트를 쓰는 프로야구에서는 이전 같은 장타력을 뽐내지는 못했다. 체구도 그리 큰 편이 아니었다.

1989년 김시진최동원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롯데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 1989년 올스타전에서 동군 올스타로 뽑혀 7회말에 서군의 네 번째 투수였던 해태 조계현을 상대로 결승 솔로홈런을 쳐 MVP를 수상했다. 참고로 이 홈런은 1:0으로 끝난 그날 올스타전에서 나온 유일한 득점이었다.

1990 시즌 후 부상으로 은퇴하려 했으나, 구단의 권유로 은퇴하지 않았고 대신 이듬해 1991년 1월 현금 트레이드로 다시 삼성라이온즈에 복귀했다. 그러나 부상과 노쇠화로 예전만큼 활약하지 못하며 1992년 은퇴했다.

은퇴 후 현재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원래는 은퇴한 후 코치를 하려고 생각했었으나 김시진최동원 트레이드 때문에 야구에서 마음이 떠났다고.

2007년 부산에서 열린 올스타전에는 김용희, 김민호, 김응국, 박정태 등 역대 롯데 출신 올스타전 MVP들과 함께 시구했다.

은퇴 후에는 개인사업을 했으나 실패 후 건축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2013년 기준으로 다시 개인사업을 준비중이라 한다.

2019년 경일대학교 야구부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권영호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여담으로, 삼성의 레전드 장효조, 양준혁이 사용했던, 지금은 양준혁의 영구결번으로 남아있는 등번호 10번을 삼성 라이온즈 역사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선수이다.


3.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66
206
.291
60
11
2
3
22
41
27
33
.408
.389
1983
63
112
.223
25
5
0
1
8
7
3
4
.295
.250
1984
52
139
.237
33
4
1
0
13
13
1
3
.281
.254
1985
103
307
.329
(4위)
101
14
7
(1위)
3
22
64
(4위)
26
(5위)
29
.450
.387
1986
99
376
.293
110
(5위)
17
5
(3위)
4
33
60
(4위)
26
(4위)
31
.396
.344
1987
94
319
.326
104
17
7
(2위)
3
39
52
24
(4위)
23
.451
.369
1988
65
192
.292
56
6
3
2
24
29
10
11
.385
.328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9
롯데
96
330
.282
93
13
4
3
28
34
14
36
.373
.351
1990
56
142
.246
35
3
1
0
19
19
4
18
.282
.33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삼성
102
304
.234
71
5
7
2
25
46
19
39
.316
.320
1992
37
80
.213
17
2
0
0
1
10
2
8
.238
.284
KBO 통산
(11시즌)
833
2507
.281
705
97
37
21
225
375
156
235
.375
.341


4. 관련 문서[편집]



[1] 문경공파(文敬公派) 23세 규(圭) 항렬. 하양 허씨 34세. 족보명은 허규옥(許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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