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B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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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BSC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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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구단
헤르타 BSC헤르타 BSC II헤르타 BSC 부비스
선수단
스쿼드스쿼드(간략)임대 명단
역사
역사
역사기록유니폼역대 엠블럼
최근 시즌
2019-202020-212021-222022-232023-24
우승 기록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1929-30, 1930-31
브란덴부르크 축구 선수권 대회
1905-06, 1914-15, 1916-17, 1917-18, 1924-25, 1925-26, 1926-27,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2-33
가우리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1934-35, 1936-37, 1943-44
오버리가 베를린
1956-57, 1960-61, 1962-63
2. 분데스리가
1989-90, 2010-11, 2012-13
DFB-리가포칼
2000-01, 2001-02
관련 인물
유명 선수세기의 팀역대 감독역대 최다 출장자역대 최다 득점자
관련 상식
더비 매치
베를린 더비
구단 시설
경기장
엑세르1892~1904
셰베라 슈포르트플라츠1904~1924
슈타디온 암 게준트부르넨1924~1963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1963~
훈련장
셴켄도르프플라츠
기타
연고지
베를린
스폰서
메인 스폰서 | 나이키킷 스폰서




파일:헤르타 BSC 로고.svg
헤르타 BSC
Hertha BSC
정식 명칭
Hertha, Berliner Sport-Club e. V.
별칭
Die alte Dame (노부인)
팬 애칭
Herthaner (헤르타너)
약칭
BSC
창단
1892년 7월 25일 (131주년)
창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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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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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린트너 (Fritz Lindner)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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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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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린트너 (Max Lind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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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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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로렌츠 (Otto Lorenz)
[[독일 제국|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독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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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로렌츠 (Willi Lorenz)
구단 형태
시민 구단
소속 리그
파일:2. 분데스리가 로고.svg 2. 분데스리가 (2. Bundesliga)
연고지
파일:베를린 주기.svg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빌메르스도르프구 베스트엔트 (Westend, Charlottenburg-Wilmersdorf, Berlin)
홈구장
파일: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로고.svg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Olympiastadion Berlin)
(74,475명 수용)
라이벌
1. FC 우니온 베를린 - 베를린 더비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 서베를린 더비
회장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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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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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베른슈타인 (Kay Bernstein)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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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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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드레셔 (Fabian Drescher)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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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브뤼게만 (Klaus Brüggemann)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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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쾨르버 (Scott Körber)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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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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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테 되머 (Renate Döh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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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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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스텐외른 클라인 박사 (Dr. Torsten-Jörn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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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슈미트 (Andreas Schmidt)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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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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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E. 헤를리히 (Thomas E. Herrlich)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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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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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베버 (Benjamin Weber)
기수[1]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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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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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베어 (Erich Beer)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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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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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르 키라이 (Gábor Király)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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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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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크루제 (Axel Kruse)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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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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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레머 (Marko Rehmer)
에이욜뷔르 스베리손 (Eyjólfur Sverrisson)
감독
팔 다르더이 (Pál Dárdai)
주장
토니 라이스트너 (Toni Leistner)
역대 한국인 선수
이동준 (2022)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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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

도이체 마이스터샤프트
(2회)
1929-30, 1930-31
브란덴부르크 마이스터샤프트
(1부)

(12회)
1905-06, 1914-15, 1916-17, 1917-18, 1924-25, 1925-26, 1926-27,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2-33
가우리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1부)

(3회)[A]
1934-35, 1936-37, 1943-44
오버리가 베를린
(1부)

(3회)[A]
1956-57, 1960-61, 1962-63
2. 분데스리가 (2부)
(3회)
1989-90, 2010-11, 2012-13
DFB-리가포칼
(2회)
2000-01, 2001-02
구단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뤼카 투자르 (Lucas Tousart)
(2020년, From 올랭피크 리옹, 2,40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마테우스 쿠냐 (Matheus Cunha)
(2021년, To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000만 €)
최다 출장
팔 다르더이 (Pál Dárdai) - 373경기 (1997~2011)
최다 득점
에리히 베어 (Erich Beer) - 112골 (1971~1979)
리그 득점왕
(1회)
미하엘 프레츠 (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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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 시즌 골송

1. 개요
2. 역사
2.1. 요약
2.2. 역대 팀 엠블럼
3. 최근 성적
3.1. 2011-12 시즌
3.2. 2012-13 시즌
3.3. 2013-14 시즌
3.4. 2014-15 시즌
3.5. 2015-16 시즌
3.6. 2016-17 시즌
3.7. 2017-18 시즌
3.11. 2021-22 시즌
3.12. 2022-23 시즌
3.13. 2023-24 시즌
5. 응원가
5.1. Nur nach Hause
5.2. Nur nach Hause 독일어 가사
6. 레전드
7. 선수 명단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HA HO HE HERTHA BSC

헤르타 BSC독일수도 베를린을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단이다. 소속 리그는 2. 분데스리가, 홈 구장은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이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순수 축구단이며, 1900년 라이프치히에서 창설된 독일 축구 연맹의 창립 회원이자 1963년 출범한 분데스리가의 원년 멤버이다. 또한 2023년 11월 8일 기준 약 50,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의 15대 스포츠 구단 중 하나이자 베를린을 대표하는 구단 중 하나이다.

헤르타는 1892년 7월 25일 4명의 베를리너 소년들[2]에 의해 BFC 헤르타 92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1923년 8월 베를리너 SC와의 합병을 거쳐 구단명을 헤르타 BSC로 변경하였고, 1930년 두 구단이 다시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 헤르타 BSC라는 팀명을 유지하였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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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BSC가 창단된 장소로 알려져 있는 아르코나플라츠의 벤치, 베를린 미테에 위치해 있다.

1892년 7월 25일, 프리츠 린트너 & 막스 린트너 형제와 오토 로렌츠 & 빌리 로렌츠 형제는 베를린의 아르코나플라츠의 벤치에서 축구단을 구성하기로 하였다. 4명의 소년들이 구단명에 대해 고민하던 중, 프리츠 린트너는 얼마 전 자신의 아버지와 하벨 강에서 함께 한 증기선 여행을 기억하였다. 그 증기선의 이름은 헤르타였고, 색은 파란색과 하얀색이었다. 증기선에 영감을 받은 두 형제는 구단명과 상징색을 결정한 뒤 프리츠 린트너의 삼촌 에른스트 비쉬의 도움을 받아 몰켄마르크트의 경찰청에서 구단명을 베를리너 푸스발 클럽 헤르타로 등록하였고, 그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베를린의 명문 구단, 헤르타 BSC가 이날 창단되었다.

헤르타는 초기에 몇몇 구단들과 친선 경기를 주최하였으나, 구단 운영의 주 목적은 회원들의 친목이였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보였고, 실제로 회원 수가 4명까지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시기에 당시 베를린의 강팀이었던 알레마니아 90이 분열되어 일부 회원들이 구단에 합류하였고 결과적으로 회원 수는 증가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헤르타는 등록된 구단이었기 때문에 베를린의 공공 경기장 '엑세르'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공과 유니폼은 선수들이 직접 가져와야 했고, 선수들은 인근 식당을 탈의실로 이용하였다.

1894년 2월 13일, 헤르타는 '토어 & 축구협회 베를린'[3]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으나 같은 해 11월 27일 '독일 축구 & 크리켓 협회'[4]를 거쳐 1900년 10월 27일 '독일 구기구단 협회'[5]에 가입하였다.

1905년, 헤르타는 미테구 게준트부르넨에 위치한 셰베라 광장[6]으로 홈 구장을 이전하면서 안정적인 팬 기반을 확보하였고, 다음 해인 1906년 베를린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1907년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헤르타는 디펜딩 챔피언 VfB 라이프치히를 준결승에서 만나 패배하였다.

1910년, 헤르타는 잉글랜드의 세미프로 축구단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와의 친선전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 세미프로 축구단을 꺾은 최초의 대륙 축구단이 되었다.

1920년대초 재정적 위기로 인해 베를린의 다른 클럽인 베를린 SC와 잠시 합병하며 팀명을 현재의 이름인 헤르타 BSC로 바꾸었다. 합병하며 재정적 위기가 해소되자 20년대말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 리그 챔피언들이 모여 벌이는 독일 전국 챔피언십 결승전에 1926년부터 6년 연속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내리 4년을 준우승하다가 1930년에 첫 우승하면서 비로소 콩라인에서 탈출했다. 이 우승으로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다시 베를린 SC와 분리되고 포상금을 지불한뒤 다음시즌인 1931년 다시 한번 우승을 거둔다. 하지만 이 기세를 이어갈 찰나에 나치가 집권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나치는 졌고, 베를린연합국에 의해 두 동강이 나면서 이 팀의 침체기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베를린의 대표 클럽이라서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낄 수 있었다. 문제는 1965년 정해진 급료 체계[7]를 넘어서 선수들에게 급료를 준 사실이 드러나 강제로 강등된 것. 다만, 이건 헤르타 입장에서 정말 억울한데, 이는 동독 한 복판에 낀 서베를린으로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임금을 높게 지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1년 분데스리가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한 것은 두고두고 까일 일. 다만, 그들이 주범은 아니라서 큰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때의 강등을 딛고 바로 승격해서 1970년대에는 준우승도 한 차례 기록하는 등, 제법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서베를린에 고립된 클럽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는 계속 팀의 운영에 악영향을 미쳤다. 고립된 섬으로 선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급료 지출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돈을 계획적으로 쓰기보다 더 함부로 쓰는 등, 경영이 완전히 막장이었고, 급기야 부실 경영으로 인해 팀이 흔들리면서 강등, 1980년대1990년대까지 17년을 하부리그에서 보내는 수모를 경험한다.

팀 경영진이 얼마나 막장인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동서 분단 당시 동베를린의 헤르타 팬들의 비밀 모임이 있었다. 헤르타 구단 측도 이를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를 구단 홍보 문구에 그대로 삽입한 것. 당연히 동독슈타지가 알아챘고, 결국 동베를린의 헤르타 팬들은 그대로 코렁탕 크리... 동네에서 나온 1980년대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인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는 그냥 가만히 넋놓고 있다가 FC 쾰른에 뺐겼다.

다행히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로는 이런 급료 체계의 필연적인 한계를 넘어서 도약할 수 있었고, 동베를린 지역의 팬들까지 흡수하면서 베를린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팀으로 도약했으며 그동안 2.분데스리가에서 머물던 팀은 1996년에 부임한 위르겐 뢰버 감독의 지휘 하에 1996/97 시즌에 3위로 1부에 승격했다.. 하지만 이미 부실화된 경영으로는 뭘 해 볼 도리가 없어서 1998/99 시즌에 한번 챔스에 나간 것을 빼고는 대체로 중위권 정도를 전전했다.


2.1. 요약[편집]


  • 1부/분데스리가: 1963-1965, 1968-1980, 1982-1983, 1990-1991, 1997-2010, 2011-2012, 2013-2023 (40시즌)


2.2. 역대 팀 엠블럼[편집]





3. 최근 성적[편집]


2008-09 시즌에는 보로닌 등 임대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후반기 한때 선두를 차지하고 4위까지 차지하지만, 그들이 원 소속팀으로 돌아간 이후에는 바로 리그 최하위로 강등당했다. 그래서 2010-2011 시즌에는 2부리그에서 뛰었다. 3월까지 선두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다시 승격할 것으로 여겨졌고, 결국 32라운드에서 승격을 확정지었다.


3.1. 2011-12 시즌[편집]


1년만의 분데스리가 복귀. 초반에는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2:1로 이기는 대이변도 연출했지만(2011/12시즌 우승팀 도르트문트의 유일한 홈경기 패배) 2011-12 시즌 26라운드까지 6승 8무 13패,승점 26점. 17위, 또 강등 위기에 빠져있다. 그나마 13위와 승점 차가 2점 밖에 나지 않아서 아직 승격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후로 승점이 벌어지면서 15위 아우크스부르크와 5점차로 벌어졌다. 그나마 31차전 레버쿠젠 원정에서 3:3으로 겨우 비기는 선전을 벌였으나 이후로 2경기를 다 지면서 17위로 내려갔다. 이젠 2부리그 3위와 플레이오프를 벌이는 순위 16위인 1.FC 쾰른과 1점차라서 16위나마 희망에 걸어야 할 판국이다.

2012년 들어 전 그리스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유로 2004 우승을 거머쥐었던 오토 레하겔을 감독으로 영입해 재기를 노리고자 했다. 선수 시절 1963년에서 1965년까지 베를린에서 뛰기도 했던 레하겔이라 본인에게도 약간 의미있는 감독직이라고 한다. 문제는 강등 탈출에 전념을 다해야하는 점이지만. 그러나 시즌 도중에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리고 34차 마지막 리그 경기. 호펜하임과의 안방경기를 3:1로 이기면서 극적으로 1.FC 쾰른과 1점 차로 16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 3위인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잔류&승격 플레이오프 2경기를 5월 11일,16일에 치루게 됐다. 마지막 기회가 남은 셈. 하지만 5월 11일에 베를린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선 뒤셀도르프에게 1:2로 역전패당했다. 그리고 2차전 뒤셀도르프 원정에서 막판 85분 동점골을 넣으며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2:2로 경기를 끝내며 1무 1패로 강등당했다.


3.2. 2012-13 시즌[편집]


파일:2013 hertha berlin 2. bundesliga meister.jpg

레하겔의 후임으로 부임한 감독은 요스 뤼휘카이. 2012-13 시즌 2부리그에선 19차전까지 리그 2위를 지키고 있다. 1위인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랑 2점차이며 3위인 카이저슬라우테른과 10점 차까지 벌어졌다. 결국 브라운슈바이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서며 31차전까지 20승 9무 2패로 남은 3경기랑 상관없이 1시즌만에 다시 분데스리가로 승격했다.


3.3. 2013-14 시즌[편집]


2013-14 시즌에선 초반부에 상당히 선전을 벌이며 9차전까지 리그 4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7위까지 승점 차가 겨우 2점 뿐이라 언제라도 뒤집어질지 모른다. 3위인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과 승점 차는 7점이며 골득실도 크게 벌어져서 그 이상 추격은 힘든 상황이지만 강등과 승격을 치루고 올라온 팀으로선 엄청난 선전인 셈이다. 물론 그 이후로 순위가 팍 떨어져 23차전까지 리그 7위를 지키고 있다. 그래도 6위 묀헨글라트바흐랑 비슷한 승점차를 유지하고 있기에 유로파리그 진출권 정도를 따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데 FA컵인 DFB컵에선 32강에서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게 1-3으로 패하며 탈락했기에 리그에 전념해야한다. 그러나 리그에서도 최종순위 11위로 마감하면서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다.


3.4. 2014-15 시즌[편집]


2014-15 시즌은 고전하다가 9승 8무 17패로 가까스로 15위을 기록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강등당한 17위 프라이부르크와 승점차는 불과 1점이었기에 그야말로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이에 책임을 물어 요스 뤼휘카이감독은 경질되었다. DFB-포칼2. 분데스리가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게 패해 32강에서 탈락했다.


3.5. 2015-16 시즌[편집]


2015-16 시즌, 팔 다르더이감독을 새로 선임했다. 시즌이 시작되자 강등권에서 헤맸던 그 팀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돌풍을 일으키며 3위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기세가 사그라져 순위가 하락해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최종전 결과에 따라 유로파리그 진출은 가능한 상황. 그리고 34라운드 최종전 1.FSV 마인츠05 원정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면서 최종순위 7위로 마감. 유로파리그 3차예선에 진출했다.


3.6. 2016-17 시즌[편집]


2016-17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던 알렉산더 에스바인 영입을 제외하고 특별한 전력보강 없이 시즌을 치르며 최종순위를 6위로 마감, 또 한 번 유로파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최종승점 49점 중 후반기에 얻은 승점이 고작 19점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면 전반기에 착실히 쌓은 승점이 팀을 살린 셈.


3.7. 2017-18 시즌[편집]


2017-18 시즌은 10승 13무 11패로 리그 10위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DFB 포칼은 2라운드에서 FC 쾰른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3.8. 2018-19 시즌[편집]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3.9. 2019-20 시즌[편집]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라르스 빈트호르스트라는 투자자가 헤르타 베를린의 지분 37.5%를 사들이며 거금을 투자했다. 투자받은 돈은 125M. 이중 40M은 부채 상환에 쓰이고 나머지는 다 이적시장에 쓴다고 한다. 이번 시즌 헤르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3.10. 2020-21 시즌[편집]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2021년까지 예정되어 있던 TEDi와의 메인스폰서 계약을 조기 종료하며 새로운 메인스폰서를 찾게 되었다. 유력한 후보는 테슬라, 아마존닷컴. 그런데 이 둘을 구단이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 메인스폰서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3.11. 2021-22 시즌[편집]


마테우스 쿠냐가 30m의 이적료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떠났다. 그리고 존 코르도바FC 크라스노다르로 20m의 이적료로 떠났다.

FC 샬케 04에서 8m의 이적료로 수아트 세르다르, FC 아우크스부르크에서 7.1m으로 마르코 리히터, AFC 아약스에서 3m으로 위르헌 에켈렌캄프를, DGC 니스에서 미지안 마올리다를 4m으로, AS 모나코 FC에서 스테반 요베티치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

이번 시즌 초반 흐름이 좋지 않다.

2022년 1월 28일, 대한민국울산 현대 소속 윙어인 이동준과 링크가 떴다. 이동준이 울산으로 이적할 당시 유럽 리그 이적 시 바이아웃 조항을 삽입했고, 해당 금액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출국한 다음날 영입 오피셜이 떴다. #

그러나 계속해서 성적부진이 이어지며 강등권으로 추락하자 타이푼 코르쿠트 감독이 경질되고 펠릭스 마가트가 2022년 3월 17일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마가트 부임후 3승2패를 거두며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특히 31라운드에서 강등권 경쟁팀 VfB 슈투트가르트를 홈에서 2-0으로 꺾었고, 3경기 남은 상황에서 16위 슈투트가르트에 승점 4점이 앞서있다. 그러나, 마지막 34라운드에서 패하면서 최종순위는 16위로 2. 분데스리가 3위 함부르크 SV와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뤼도빗 레이스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며, 강등 위기에 처했으나, 원정에서 열린 2차전에서 데드리크 보야타마르빈 플라텐하르트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하며 1부 리가 잔류에 성공했다.


3.12. 2022-23 시즌[편집]


자유계약으로 필리프 우레모비치, 존조 케니를 영입했다.

33라운드 보훔과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기면서 잔여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2. 분데스리가 강등이 확정되었다. 2012-13 시즌 승격 이후 10년 만의 강등이다[8].


3.13. 2023-24 시즌[편집]



4. 라이벌[편집]


파일:berlin derby.jpg
과거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과의 더비가 유명했으나 이후 보루시아 베를린이 몰락하며 현재는 보기 힘들다.

  • 2019-20시즌부터 성사된 1. FC 우니온 베를린과의 베를린 더비가 가장 유명하다. 과거 분단시절에는 두 클럽 서포터즈들의 사이는 각별했다. 헤르타와 우니온은 한 국가 "Herta und Union – eine Nation"라는 슬로건이 있었을 정도. 헤르타가 동독이나 동구권 국가들 클럽과 경기할때 함께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의 1인자 클럽을 가리는 자존심 대결이 되었고, 양 팀 간의 경기에서 관중이나 장내 아나운서가 갈등에 빠지고 경영진이 그들에게 동조하는 등 여러 사건이 있은 후엔 후술된 것처럼 홍염을 쏘고[9] 폭죽 등 화약류의 연기 때문에 경기 시간이 지연되는 등 어지간한 라이벌매치보다 더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2019-20시즌 10라운드 분데스리가에서 치뤄지는 베를린 더비는 47분 관중들이 경기장에 홍염을 쏘며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으며 홈, 어웨이 서포터들끼리 서로 상대방 좌석에 홍염을 쏴 부상자도 나왔다. 경기는 1. FC 우니온 베를린의 1대0 승으로 끝났다.

  • 전통적으로 FC 샬케 04 울트라스와 사이가 좋지 않다.


5. 응원가[편집]



5.1. Nur nach Hause[편집]



헤르타 BSC 공식 응원가 Nur nach Hause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의 응원
파일:헤르타 BSC 로고.svg
Nur nach Hause


5.2. Nur nach Hause 독일어 가사[편집]



Freunde, was gibt es Schöneres,
Als hier im Stadion unserer Herthamannschaft die Däumchen zu drücken
Und sie von den Rängen zu unterstützen
Auf dem Weg nach oben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Alle warten voller Spannung
Auf das absolute Spiel
Denn die Jungens von der Hertha
Haben alle nur ein Ziel:
Heute wollen sie gewinnen
Für das blau-weiße Trikot Sowieso oh-oh oh-oh
Und sowieso oh-oh oh-oh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All die Fans brüllen sich den Hals aus
Und der Stürmer der stürmt vor
Alle jubeln, wenn der Ball rollt
Voll hinein ins Gegnertor
Und am Abend dann am Tresen
Werden wir zum Libreo
Sowieso oh-oh oh-oh
Und sowieso oh-oh oh-oh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Jetzt seid ihr dran
Nur nach Hause(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hey Leut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genau)
Nur nach Hause(Was soll'n wir denn zu Hause?),
Nur nach Hause (Bei dieser Schwiegermutter?),
Nur nach Hause(Bei diesen hohen Mieten)Also bleiben wir doch im Stadion!)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Und nochmal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Denn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Schwung


오래된 전통을 가진 HA HO HE라는 응원문구도 유명하다. 현재 골송에서도 음악이 끝난뒤

HA HO HE Hertha BSC!

하 호 헤 헤르타 BSC!

라고 외친다.


6. 레전드[편집]



6.1. 세기의 팀(Die Jahrhundertelf)[편집]


창단 111주년이 되는 2003년에 헤르타는 팬 투표를 통해 "헤르타 BSC 세기의 팀"를 선정하였다.


6.2. 기수(Fahnenträger)[편집]



7. 선수 명단[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Fahnenträger', 구단의 공식 앰버서더 개념의 직책이다.[A] A B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들과 맞붙는 방식이었다.[2] 프리츠 린트너 & 막스 린트너 형제, 오토 로렌츠 & 빌리 로렌츠 형제[3] Thor- und Fußballbund Berlin, 약칭 TuFB.[4] Der Deutsche Fußball- und Cricket Bund, 약칭 DFuCB.[5] Verband Deutscher Ballspielvereine, 약칭 VDB.[6] 현 노르덴 노르트베스트 광장(Norden-Nordwest-Platz), 약칭 NNW 광장(NNW Platz).[7] 당시 분데스리가는 일정 금액 이상 선수 임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한 임금상한선 규정이 있었다. 이 규정은 1971년 선수들이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건이 나오면서 폐지된다.[8] 한 술 더떠 해당 시즌 라이벌인 우니온 베를린이 챔스 진출에 성공하며, 이젠 헤르타는 우니온에게 오랫동안 지켜왔던 베를린의 맹주 자리를 사실상 내주었다.[9] 바로 아래 문단의 19-20시즌 더비에서는 아예 홍염이 선수단 벤치 앞에서 터지는 바람에 경기를 하다 말고 양 팀 선수단이 선수단 입장통로로 대피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