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갤로퍼 (r2016103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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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출시된 초기형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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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출시된 뉴 갤로퍼.
파일:attachment/현대 갤로퍼/hmc_galloper3.jpg
1997년 출시된 갤로퍼2.
역시 세월이 지나도 사파리 잘달리게 생긴 자동차
1. 개요
2. 탄생
3. 모델구분
3.1. 갤로퍼
3.2. 갤로퍼2
4. 특징
5. 갤로퍼 대장정
5.1. 고구려 대장정
6. 파생형
7. 몰락
8. 부활(?)
9. 둘러보기

HYUNDAI GALLOPER

1. 개요


품격과 기능이 조화된 다목적 승용차.

현대정공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10월부터 2004년 1월까지 생산했던 프레임 타입 4WD SUV 차량. 쌍용의 초기 코란도와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오프로드의 명장.[1] 갤로퍼의 어원인 갤럽(gallop)은 말 따위의 동물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

2. 탄생


제5공화국 시절에 내려졌던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7년에 해제되면서 당시 항공기, 철도차량, 공작기계 등 기계산업 분야 주력하던 현대정공에서 기계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자동차 제작 사업에도 진출을 시작 하여 종합 기계 메이커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당시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영향으로 3저 호황[2]을 누리며 국민 삶의 질도 향상되어 레저 붐이 일어나던 시기로, 4WD SUV 차량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어 4WD 모델을 중심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계획했는데, 당시에 마침 같은 계열사인 현대자동차가 4WD 모델 제작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없어 계열사 간의 사업 영역 충돌도 없던 덕에, 왕회장이 현대정공의 4륜구동 사업 진출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근데 현대자동차 한 곳에 자동차 제작 사업을 집중하는게 절차상으로도 훨씬 간단하고 그룹 차원에서도 효율성이 더 좋을텐데, 왕회장이 굳이 현대정공에 자동차 제작 사업 일부를 별도로 신규 지원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198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현대자동차가 지금의 정몽구 회장 체제가 아닌 왕회장의 동생이자 현대자동차의 초기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정세영 회장 체제가 굳건하던 시기였고,[3] 정몽구정세영 일가와의 현대자동차 후계구도에 대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4]
현대그룹의 창업주이자 당시 그룹 총수였던 왕회장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상 장남[5]인 정몽구의 그룹 주요 사업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동안 고생해서 현대자동차의 창립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한 친동생 정세영[6]을 의리없이 단칼에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대자동차와 비슷한 계통으로 항공[7], 철도차량[8], 공작기계[9], 자동차 부품[10]등의 사업분야를 가진 기계산업 부문 종합 메이커였던 현대정공을 아들 정몽구에게 맡기고 있었고, 때마침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해제된 덕분에 현대자동차가 아직 진출하지 않았던 4WD 및 SUV 자동차 제작사업을 일부러 현대정공 쪽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하여 친동생 정세영과의 직접적인 충돌이 없는 선에서 나름 현명하게 아들 정몽구에게 현대자동차 후계 구도의 기회를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왕회장의 뜻에 힘입은 현대정공 사장 정몽구는 1989년 7월 4WD 고유모델 개발 추진을 결정한다. 프로젝트명은 "M-CAR"몽구카. 마북리 연구소를 건립하고 현대자동차의 엔진과 국산화 부품을 활용해 고유모델 개발에 힘을 쏟아 4WD 모델 시제품을 개발하였고, 미국 업체의 도움으로 미국 시장에서 성능테스트를 해 보았지만 결과는 대 실패였다. 일반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가 복잡하고 높은 강성과 품질이 요구되는 특성을 지녀 설계가 까다로웠고, 미국 시장의 소비자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데다 이미 지프 등의 기라성 같은 메이커들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몽구 사장은 고유모델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에 신뢰성 있는 메이커 업체의 4WD 모델을 라이센스 생산하는 전략으로 급선회 한다. 고유모델 개발만 고집하다가 시장에 제대로 진출 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라이센스 모델 생산으로 완성차 시장 진출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고 신기술을 빨리 습득하여 배우면서 실력을 쌓자는 의미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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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차종의 검토를 거친 후에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유명 4WD 모델1세대 파제로[11]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파제로가 4WD 모델로서는 상당히 명성이 큰 것도 있었지만, 제작사인 미쓰비시 자동차가 이미 현대자동차와 다양한 분야에서 제휴를 맺어온 파트너였기에 협업도 쉬울 것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 되었다. 게다가 당시 1세대 파제로는 일본의 경제력향상에 따른 SUV붐을 타고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2세대 모델 개발에 착수하며 거듭나던 시점이었기에, 미쓰비시 자동차 입장에서 구형이 된 1세대 파제로의 기술을 현대정공에 넘겨도 해가 될 일은 아니었다. 1989년 10월에 양사는 사업 추진 의향서를 교환하고, 1990년 3월에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한다.
1991년 9월 16일 갤로퍼 1호 차량을 생산하고 그 다음주인 25일에 외부에 최초로 공개하여 10월부터 출고가 시작되었다. 디젤 롱바디를 먼저 선보이고, 11월에는 자동변속기 모델, 12월에는 터보 디젤엔진 롱바디 모델이 출시되었다.[12]
출시 당시 광고. 참고로 성우는 격동 50년으로 유명한 김종성씨. 당시 홍보 영상(2분 45초)
갤로퍼 프로모션 영상 브금 정보에 대해 순서대로 추가바람
출시 당해인 1991년에 약 3개월 동안만 무려 3000 여 대 가까이 판매를 기록하며 쌍용자동차아시아자동차만 생산하던 4WD 시장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총 2만 4천 여 대가 판매되면서 국내 4WD 시장의 52%를 차지하며 순식간에 장악을 해 버렸다. 사실 당시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는 자잘한 고장[13]과 크기/성능 등의 문제로 판매가 많지 않았고, 쌍용자동차의 코란도(당시 구형 코란도코란도 훼미리) 역시 성능이 많이 떨어졌고 프랑스/일제/미제 엔진[14]과 변속기들을 섞어쓰던 막장상황이라 온갖 문제점을 노출하던 시절인데 비해, 갤로퍼의 경우 미쓰비시 자동차의 세계시장 최대 히트작인 파제로를 거의 재조립해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차량의 성능이나 신뢰성 면에서 이미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15]
당시 4WD 차량과 대형 상용차[16]만 제작하던 쌍용자동차는 한 때 회사가 존폐 위기까지 처하기도 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17] 하지만 독일의 고급 메이커인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FJ 프로젝트[18]를 통해 2년 뒤인 1993년에 93 이노베이션[19]이라는 이름으로 4WD 신모델인 무쏘를 출시하여 회심의 일격을 제대로 날리며 그 동안의 4WD 모델 전문 제작사로서의 명성을 되찾아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20]

3. 모델구분



3.1. 갤로퍼


마초적이지만 우직하고 성실해 보이는 생김새가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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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전기형. 외형만 보면 파제로 모델에서 미쯔비시 글자를 현대로 바꾼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초기부터 인기몰이를 했다.
93년에 인터쿨러모델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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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후기형(판매 당시의 정식 명칭은 뉴 갤로퍼). 헤드램프와 그릴, 사이드미러 등을 깔끔하게 정돈했는데, 이 덕에 기존 파제로와 차별화도 했고 전기형보다도 훨씬 단정해진다. 롱바디 모델에 후석 암레스트 등의 몇가지 편의장비가 추가되었다.

3.2. 갤로퍼2


기존 갤로퍼보다 곡선이 군데군데 들어가서 비교적으로 날렵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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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2 전기형. 이때 현대정공을 뜻하는 찌그러진 H자가 쓰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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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2 후기형. 이제는 아예 현대자동차 로고를 대놓고 장착한다. 운전석 에어백이 선택사양으로 추가되었고, 그 외에도 몇몇 편의 옵션이 추가되었다.

4.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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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는 출시되자마자 현대 브랜드를 앞세우는 마케팅으로 국내 4WD 시장에 정면 승부했다. 분명 현대정공에서 제작한 모델이지만 이니셜도 HYUNDAI라고 표기한 덕에 소비자의 눈에는 현대자동차의 모델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21][22] 그나마 갤로퍼 2에서도 현대정공을 의미하는 찌그러진 형태의 ‘H’엠블럼이 유일한 차이였을 뿐일 정도였다. 덕분에 자동차 제작 신생 업체 이미지를 상당부를 가리는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명성을 등에 업고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인지 갤로퍼의 초창기 CF를 보면 현대정공이라는 제작사 이름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대신에 현대라는 두리뭉실한 명칭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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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초기형 모델의 계기판 및 센터페시아.
차량의 외관이나 엔진은 파제로를 그대로 들여왔는데, 이는 당시 경쟁 모델에 비해 디자인이나 엔진 성능면에서 차별화 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케팅도 적극적이었기에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23]. 사실 갤로퍼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엔 SUV 차량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출시 당시의 엔진은 형식명 4D56디젤 4기통 2,476cc에 73마력으로 당시로서는 굉장한 것이었다. 이후 터보차저를 얹어 출력을 81마력으로 올리기도 했으며, 터보차저에다가 인터쿨러를 얹어 101마력까지 끌어올렸다. 또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각그랜저의 V6 3000 모델에 탑재되던 형식명 6G72SOHC V형 6기통 2,972cc의 가솔린 모델도 있었는데 당시 신차 가격이 2,000만원을 육박했다.[24] 연비는 6.9k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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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의 장점은 제원상 겨우 101마력의 출력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힘이 좋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것. 게다가 넓은 휠하우스는 개조 없이도 31인치 타이어까지 무난하게 장착할 수 있으며, 최저 지상고도 높아 비포장길의 주파성이 우수하였다. 특히 출시 초창기 당시에 갤로퍼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정공 측에서 7만km 가량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 이벤트[25]를 두 번 씩이나 펼치는 등 갤로퍼의 내구성에 대한 마케팅적 노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엔진의 실제 내구성은 그다지 좋지 못하였다. 엔진 자체가 미쓰비시에서 도입한 것이기에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오리지널인 미쓰비시 파제로의 경우 주력은 디젤이 아니라 휘발유 엔진이었고 디젤엔진 역시 배기량과 설계를 바꿔가며 계속 수정해 나갔었는데(갤로퍼 출시 당시인 2세대 파제로 출시 즈음엔 다른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는 알뜰하다고 해야 하나? 이 초창기 도입한 2500cc 엔진을 배기량 한번 바꾸지 않고 주구장창 수 십 년 동안 사용했다. 포터와도 장기간 공유... 그나마도 포터와 그레이스는 중간에 배기량을 올리는 등 소소한 개량을 거쳤으나 갤로퍼는 그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나중엔 쏘렌토와 후속모델인 테라칸에까지 얹는 그 엔진으로 테라칸에 쓰인 엔진은 렉스턴에 처절하게 밟히는 바람에 결국 기아의 2900cc J9엔진으로 바꿨지만... 그래서인지 중저속에서의 가속력은 좋았으나 시속 140km로 4~5시간 달리는 건 매우 큰 부담이었으며, 괜히 엔진 출력 올려보겠다고 튜닝을 했다가는 엔진이 버티질 못하였다....[26] 경쟁 모델인 무쏘가 88만km를 무보링 상태로 달리는 기염[27]을 토한 반면 갤로퍼의 엔진은 대략 20만km 정도면 엔진 보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실제 갤로퍼 매니아들도 엔진을 튜닝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파제로가 일본의 좌측 통행 기준으로 설계 및 디자인 된 차량이라, 갤로퍼 역시 이 파제로의 설계를 그대로 적용하여 후방 트렁크 문 역시 좌측에서 열도록 되는 바람에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여간 불편하고 위험한 게 아니었다.[28] 다만 이는 갤로퍼만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모델인 미쓰비시 파제로의 우측 통행 국가 전용 수출 모델에도 똑같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29]이기에, 현대 측에서 성의가 없어 수정을 안 한 게 아니라 원래 모델 제조사이자 당시 현대의 자동차 기술의 근간이자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경영에도 참여했던 미쓰비시의 입김 때문에[30] 국내 사정에 맞게 설계 수정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 보는 게 맞다.오죽하면 갤로퍼 2에서 까지 그 문짝이 그대로 나왔을까(...) 나중에 미쓰비시 자동차의 입김이 줄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후속 라인업 테라칸에는 현대자동차가 아예 뒷문을 해치 게이트로 변경해 버렸으니까(...) 결국 이 트렁크 문짝 설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쓰비시의 파제로 후미 디자인에 대한 고집에서 비롯된 것이며,[31] 갤로퍼 개발 당시 현대는 자동차 분야에서 미쓰비시의 손에 놀아나던 상황이었기에 미쓰비시의 요구에 그대로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미쓰비시는 그때의 횡포에 대한 인과응보로 무너져 버리고...[32]
여담으로 왕회장의 갤로퍼 사랑이 각별해서 왕회장이 운영하는 충남 서산 농장에서 갤로퍼를 개인 차량으로 공수해 와서 직접 운전하고 다녔을 정도다.[33] 왕회장의 서산 농장 자가용은 갤로퍼의 초기 모델은 아니고 1994년에 페이스리프트 된 뉴 갤로퍼 모델로, 서산 농장 숙소에는 왕회장이 타고 다니던 갤로퍼 차량이 아직까지 있다고 한다. 왕회장 서산 숙소 광경
또한 북한군이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갤로퍼를 군용 지프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5. 갤로퍼 대장정


1992년 갤로퍼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방영하였던 광고로, 세계 여행가로 유명한 故 김찬삼 세종대 명예교수가 실제로 갤로퍼 자동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그 당시 김찬삼 교수는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88일간의 대장정을 완수했으며, 그 여정에 따라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
1편~2편~3편 보러가기 / 4편~5편 보러가기

5.1. 고구려 대장정


1994년 유라시아 대장정에 이어 방영되었던 갤로퍼 2번째 대장정 광고. 이번에는 고구려를 소재로 하여서 중국 북부 고구려 지대 지역을 질주하는 형식의 광고였다. 총 5편으로 나뉘어 방영하였다. 부제는 가자! 고구려이며 나레이션 성우는 김종성.
1,2,3,4,5편 전체 보러가기
  • 1편 : 인(人)(광개토대왕 편)
  • 2편 : 야(野)(고구려 지대 편)
  • 3편 : 강(江)
  • 4편 : 산(山)
  • 5편 : 성(城)(완결)


6. 파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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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바디 모델. 어떻게 꾸며도 짜리몽땅하다. 오프로드계의 큐티짜응(?)
과거에 포르쉐를 발라버리는 연출을 했던 어느 소형차 광고 이후 촬영된 대담한 광고다. 4발 제트기인 BAe 146을 앞질러버리는 내용.
물론 활주로에서만 앞질렀을 뿐이었다(...) 원래부터 람보르기니 레벤톤이나 닷지 바이퍼 수준이 아니고선 자동차는 비행기 앞지르기가 어렵다.
갤로퍼는 기존 4WD 차량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된 이미지를 통해 기존 SUV 차량의 총 판매량을 늘리는데 기여하지만 곧이어 강력한 경쟁자인 1993년 7월 기아자동차에서 스포티지를 출시하고 같은 해 8월 쌍용자동차에서는 무쏘를 출시하며 위기를 맞는다. 이에 방어 전략을 취하고자 현대정공에서는 1994년 페이스 리프트를 통해 뉴 갤로퍼 및 인터쿨러 모델을 출시하고 1997년에는 갤로퍼 2를 출시한다. 방어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어가, 무려 9년동안이나 4륜구동 R/V 판매량 1위를 유지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전성기 시절의 갤로퍼의 라인업은 무려 40개 가까이 되는데, 이는 무쏘와 스포티지, 레토나와 코란도의 라인업을 전부 합쳐도 갤로퍼가 더 많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현대정공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4륜 구동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을 현대자동차에 넘겨 주게 되고, 철도 차량 제작 사업 부문은 로템으로 이관시켜 자동차 전장 부품 전문 기업체인 오늘날의 현대모비스로 탈바꿈하게 되며, 1999년부터는 갤로퍼 라인업 제작을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갤로퍼 2 시기부터는 세제 혜택의 변동[34]에 따라 승합차로 분류되기 위해 7인승, 9인승, 밴(화물차) 등 다양한 라인업이 등장했으며, 쇼트보디 모델인 갤로퍼2 이노베이션 모델도 출시된다. 가솔린 모델은 사라지고 대신 같은 D11BA 엔진에 연료만 LPG를 사용하는 모델도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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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퍼 시리즈가 인기를 끌다 보니, 갤로퍼 2 중에선 "이노베이션" 이라는 이름으로 숏바디 스페셜 모델도 출시되었었다.
허나 사실 이건 미쓰비시에서 나온 파제로 스페셜 모델인 파제로 에볼루션과 판박이[35].. 그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엔진/미션/서스펜션을 모두 파제로와 별개일 정도로 특별하게 꾸민 파제로 에볼루션과는 달리 갤로퍼 이노베이션은 외부디자인을 제외한 내부는 기존 갤로퍼 2와 다를 것이 없었다. 게다가 튼튼해 보이면서 귀여운 외형과는 달리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찌그러지는 깡통이었으니...

7. 몰락


1991년부터 1999년까지 갤로퍼는 4WD 차량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효자 상품이었으나,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고급화되는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는데 한계가 생긴다. 사실 갤로퍼가 4WD 차량을 고급화 시킨 선두주자임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기는 하지만, 10년 넘게 비슷한 차종들로만 구성된 SUV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염증을 느낄때 즈음에, 참신하고 세련된 차세대 차종인, 테라칸과, 렉스턴, 쏘렌토등의 신모델 출시와 더불어, 2000년대 들어서는 이제 소비자들도 4WD 차량을 더 이상 특수 차량으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빈약한 편의 시설, 조잡한 오디오 등으로 갤로퍼는 더 이상 '고급'의 이미지를 갖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2000년부터 점차 환경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어 구형의 디젤 엔진은 환경부의 규제를 충족할 수 없게 된다. 비슷한 시기 동안 생산되던 무쏘가 아직까지 잘 굴러다니고 매연도 안 나오는 걸 보면 슬픈 상황. 벤츠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좋은 엔진을 도입했다면... 또한 점차 기술의 발전에 따른 CRDI 엔진의 보급이라는 치명타를 맞게 됨으로써 갤로퍼는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2003년을 마지막으로 갤로퍼는 단종되고 그 뒤는 테라칸이 잇게 된다. 이후 후속작인 베라크루즈가 나왔지만 갤로퍼 테라칸 보다 못한 SUV 성능으로 오히려 더 외면받고 쌍용자동차의 렉스턴과 기아자동차의 쏘렌토에 밀리고 말더니, 결국 10년 가까이 팔다가2015년에 단종되었다.
그나마 테라칸의 대체모델인 베라크루즈가 나름 선방하고 있는 형편인데 오프로드쪽에서는 주파력이나 가격 등의 이유로 무쏘와 함께 아직도 현역이다. 모하비는 오프로드 뛰기에는 비싸고 수동변속기 모델이 없어서..

8. 부활(?)


2000년대를 전후로 몰아치는 오토캠핑의 바람 속에서 의외로 갤로퍼 롱보디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우선 생산되었던 모델이 있으니 중고차 값이 싼 데다 3열 시트만 걷어 치우더라도 넓은 적재 공간이 나오며 남이섬 등 험한 지형을 주파하여 캠핑 사이트에 접근해야 하는 경우 프레임 보디와 4륜구동이 조합된 갤로퍼는 괜찮은 오프로드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수리 부속 역시 모비스를 통해 비교적 싼 값에 풍부히 공급되고 있으며 시골 카센터에서도 어렵지 않게 수리 가능할 정도로 많이 퍼진 차(=비교적 매커니즘이 복잡하지 않은 차)라는 점도 유지 보수에 있어서는 강점이다.
거기다 롱바디는 3열 바닥을 높이고 2열 시트를 앞으로 접은 후 매트를 깔면 성인 두명이 누워 잘 만한 공간을 제공하니 복잡하게 텐트 펴고 하지 않아도 차내에서 간단히 캠핑이 가능한 셈. 여기에 포인트를 둔 특정 인물이 갤로퍼를 세미 오프로드 및 캠핑용으로 개조하는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단종 되어가던 갤로퍼 관련 오프로드 아이템[36]이 다시 재생산될 정도로 갤로퍼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으며, 상태 좋은 중고차량의 경우 중고시세가 다시 오르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2013년을 기준으로 리스토어 열풍이 불면서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차종이다. 당장 네이버에서 '리스토어'를 검색하면 상위 항목에 갤로퍼 내지 레토나가 나온다. 당시 생산됐던 국산 차량들 중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중고차가 많이 남은데다가, 오래된 차종 중 가장 부품을 수급하기에도 좋고, 지금 봐도 멋진 디자인이 인기 요인으로 보인다. 모노코크 타입보다 내구성이 좋고 복구하기도 유리한 프레임 차 종이라는 것도 한 몫 했다. 최근에는 모헤닉게라지스라는 법인회사가 주도적으로 리스토어를 하고 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산길을 올라가는 뉴 갤로퍼. 오래된 모델이라 좀 삐걱거리지만 아직 쌩쌩하다.
어느 산길을 올라가는 갤로퍼 2. 현대 베라크루즈, 쌍용 무쏘도 보인다.

9. 둘러보기


현대자동차의 차량(제네시스 브랜드 포함)
구분
승용, SUV, RV, 승합
버스
트럭
1960년대
코티나, 20M
R버스

1970년대
포니, 그라나다, HD1000(승합모델)
HD버스, RB버스
HD1000(트럭모델), 바이슨, 대형트럭
1980년대
프레스토, 포니엑셀, 엑셀, 스텔라, 쏘나타,
그랜저, 그레이스
코러스, FB버스, 에어로버스
포터, 마이티, 중형트럭
1990년대
아토스, 엑센트, 베르나, 엘란트라, 아반떼,
마르샤, 다이너스티, 에쿠스, 스쿠프, 티뷰론,
갤로퍼, 싼타모, 트라제 XG, 스타렉스
카운티, 에어로타운, 에어로시티
슈퍼트럭
2000년대
i10, 클릭, i20, i30, 링샹, 투스카니,
제네시스, 제네시스 쿠페, 라비타,
투싼, 싼타페, 테라칸, 베라크루즈, 앙투라지
그린시티, 슈퍼 에어로시티, 유니버스
리베로, 메가트럭, 파워트럭, 트라고
2010년대
이온, 블루온, HB20, Xcent, 웨둥,
아이오닉, i40, 미스트라, G70GENESIS, 아슬란,
G80GENESIS, EQ900GENESIS, 벨로스터, ix20, ix25,
맥스크루즈, 쏠라티
블루시티, 유니시티
엑시언트
갈색 글씨 - 단종차량 / GENESIS - 제네시스 브랜드 차량


[1] 파리-다카르 랠리를 휩쓸어버린 오리지널 미쓰비시 파제로가 원본이니 그럴 수 밖에...참고로 미쓰비시 파제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렉서스 LS, 혼다 NSX와 더불어 10년 넘게 일본의 3대 명차였다.[2]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를 뜻한다.[3] 게다가 정세영은 80년대 후반부터 5공 비리의 정치적 타격을 받고서 정치권에 뜻을 가지고 회장직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왕회장을 대신하여, 현대그룹의 회장자리에 까지 올라서 있던 현대그룹의 막후 실세였다. 반면에 정몽구는 당시 나이가 40대 후반에 지나지 않았고, 현대자동차 초창기부터 일등공신으로 활약한 정세영에 비하면 자동차 관련 사업 경력이 한참 밑이기에 현대자동차 후계구도에 진입하기에 무리라는 인식이 많았다.[4] 이들의 경쟁구도는 199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 인수 전후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 및 갈등하게 되었지만 결국 왕회장의 교통정리로 정몽구에게 후계구도가 가게 되었고, 정세영 일가는 대신에 현대산업개발 그룹을 계열분리로 승계 받게 된다. 사실 현대자동차는 1990년대 후반 당시 현대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주력계열사여서 왕회장 입장에서도 절대 양보 못하던 것이었던데다, 아무리 정세영이 창업 일등공신이라 해도 따지고 보면 창업주인 왕회장의 친족관계인 덕분에 그런 중책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던 셈이니 결과적으로 왕회장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려웠다.[5] 실제 맏아들이자 정몽구의 형인 인천제철 사장 정몽필은 안타깝게도 1982년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였고, 이후 차남이었던 정몽구가 사실상 왕회장의 장남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6]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현대자동차 설립 당시 해외에서의 전문 인력을 스카웃하고 포드와의 기술제휴를 따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으며, 현대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개발을 주도하면서 별칭으로 포니 정으로 불리기도 했다.[7]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사업조정으로 대우중공업 및 삼성항공의 항공사업 부문과 함께 지금의 KAI로 통합되었다.[8] 외환위기 이후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의 철도차량 제작 사업부가 정부주도로 통합되어 현재의 로템이 되었다.[9] 기아자동차 인수 후 계열사였던 기아중공업과 통합후 현대 위아가 되었다.[10] 이 사업부문만 외환위기에도 그대로 현대정공 소속으로 남아 오늘날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인 현대모비스로 이어지게 된다.[11] 사실 미쓰비시의 파제로도 따지고 보면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의 지프 메이커인 윌리스(Willeys)의 민수용 지프, '모델 CJ3A'를 라이센스 생산하며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파생형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파제로의 계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Jeep와 혈연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2] 이 당시 미쓰비시는 파제로의 새로운 모델(2세대)을 출시하였다.[13] 당시 군용 차량은 아시아자동차가 독점 생산하고 있었고 군용 지프형 차량을 디자인만 약간 바꿔서 민수용으로 내 놓은 것이 록스타. 그러다 보니 조립유격이 커서 민수용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차량인데 군대에선 수송병이 매일같이 정비하니 제대로 굴러가지만 민간에서는 툭 하면 고장날 수밖에.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이후 이를 크게 개선한 업그레이드 모델이 나왔지만 역시 큰 반향이 없는데다 아시아자동차의 모기업이였던 기아자동차스포티지가 같은 시기 크게 히트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단종되었다.[14] 당시 동원된 엔진이 푸조제, 이스즈제, 크라이슬러에 인수된 미국 AMC 엔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동원된 미국 AMC제 엔진은 무려 4200cc급 가솔린 엔진으로 주로 수출사양에 탑재되었지만.[15] 거기에 당시에는 일본산 공산품을 국산품보다 절대 우위로 쳐주던 시기였기에,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된 일제 모델을 다시 조립하여 국산차로 파는 갤로퍼가 당연히 유리했다.[16] 쌍용 에어로버스쌍용 DA트럭도 판매량이 크게 부진했다. 특히 대형버스는 아시아자동차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차량결함과 경쟁력 상실 등의 문제로 폭망하고 말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17] 원래 쌍용자동차 자체가 그리 규모가 크질 않았다. 여러 엔진/미션을 조합해가며 번갈아 쓴 것도 결국 여러 회사들과 제대로 협력이 되지 않았으므로. 물론 그 상황에서도 손쉬운 외국 모델 도입이 아닌 돈이 많이 드는 독자 모델로 나간 노력 만큼은 인정해 주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라면서 의욕만 앞선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외환위기 쌍용차의 몰락이다.[18] 무쏘의 개발코드가 FJ. 이미 1987년에 디자인 드로잉이 나온 상태였고 1991년에 디젤 엔진을 도입받았다.[19] 프리런칭 광고의 캐치프라이즈가 93 이노베이션이다. 즉 1993년에 큰 변화를 보여주겠다는 것을 의미.[20] 하지만 이게 쌍용자동차의 몰락 주 이유이다. 벤츠와 합작으로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지만 자체 기술력이 낮아 독일산 부품을 많이 채용하여 제작 단가가 높아 어느정도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지 못하면 적자만 커 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장은 갤로퍼가 장악하고 있으니.... 그래서 당시(1990년대) 쌍용차 직원들는 갤로퍼 및 현대를 엄청 깐다. 외국 모델 들여와서 이제 막 기술적 자립을 하려는 국내 4WD 업체를 전부 망하게 했다고.[21] 1991년 갤로퍼 출시 당시에 현대자동차의 앰블럼은 HD를 형상화한 구형 엠블럼을 버리고, 오늘날의 이탤릭체 H 마크 엠블럼으로 가려던 과도기 시점이라서, 당시 현대자동차 차량들에 회사 마크의 사용을 축소하고 그냥 영문으로 HYUNDAI라는 긴 글자 엠블럼을 훨씬 많이 썼기에 더더욱 그렇다.[22] 더구나 당시 광고에 따르면 서울 및 수도권은 판매원인 현대자동차써비스 전용 매장이 있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그냥 현대자동차 매장에서 팔았다. 이후 같은 현대정공에서 만든 싼타모를 판매할 때도 마찬가지 정책을 취하였다. #[23] 당시 SUV=오프로드라는 공식이 통하던 시절에 온로드쪽을 부각시켰다. 요즘에야 갤로퍼의 털털거리는 승차감과 소음을 생각하면 납득하기 힘들지만 당시 기준 갤로퍼는 구형 코란도나 코란도 훼미리에 비해 엄청 조용하고 승차감도 좋았다[24] 최근의 유사 모델과 비교해 보자면 베라크루즈모하비의 가솔린 모델 가격과 견줄 수 있겠다.[25] 이것을 공중파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송했다.[26] 원래의 엔진이 아무리 괜찮았다고 해도, 기본설계가 1970년대에 이루어진 엔진이다. 그걸 2000년대까지 개조하면서 사용하다니....[27] 물론 한국도로공사 차량이어서 기본적으로 주행거리가 길고 과부하 주행이 없었을 것이다.[28] 좌측 통행 도로에서 정차 시 트렁크 문을 좌측에서 개폐 하는 것이 편리한 것에서 비롯된 파제로의 설계를 라이선스 모델인 갤로퍼가 우측 통행인 국내의 도로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역으로 불편하고 위험한 것은 필연적이 된다(...)[29] 문제는 초기 1세대 한정이면 뭐 그렇다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미쓰비시는 현재 판매되는 파제로의 뒷세대 모델까지도 이 설계 컨셉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파제로 수출 모델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30] 당시 기술적 자립도가 없던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제 핵심 부품을 대거 수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 사정상 부품 대금을 모두 현찰로 지불 할 수 없다 보니, 주식으로 대신 지불하면서 미쓰비시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올라서서 경영 및 정책에도 간섭이 심했다.[31] 단순한 내수 시장용 모델도 아니고 해외에서 주력 수출 하는 모델에서 이런 소비자의 편의성도 무시하는 이런 고집스러운 행보는 오만함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된다.그러니까 지금 미쓰비시가 이 모양 이 꼴이지(...)[32] 이건 2005년도에서 재현(?)된다.GM에서 아태지역 차량을 좌측통행국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홀덴에서 개발하라고 했고 국내에 수입했는데 현지화가 덜된차를 팔아가지고...[33] 이 당시 현대그룹의 자동차 사업이 팽창하던 시기여서 왕회장이 무척이나 애착을 나타냈고, 서울 본사 출퇴근엔 당시 국내 중형차의 바람을 몰고 왔던 현대 쏘나타를 자가용으로 끌고 다녔다고 한다.[34] 이전의 4WD 차량은 세금이 지금처럼 배기량에 비례하지 않고 파격적으로 저렴했다. 이유는 전쟁시 징발하는 조건으로 차량을 구입했기 때문. 따라서 대략 97~98년도까지 나온 무쏘나 갤로퍼 중에는 등화 관제등이 달린 차량을 볼 수 있다.[35] 파제로의 경우 상당히 성공을 거두면서 수많이 파생모델이 출시되었다. 본격 오프로드용은 물론 당시 가격으로 5백 만 엔이 넘는 쇠가죽으로 단장한 모델까지.. 특히 파제로 에볼루션은 랜서 에볼루션처럼 기존 파제로와는 전혀 다른, 엔진부터 미션, 서스펜션까지 특별하게 꾸민 차종으로 파제로 에볼루션만의 매니아들이 존재할 정도이다[36] 락슬라이더, 금속제 언더 커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