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송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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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소속
현송월

Hyon Song wol | 玄松月


파일:현송월 사진.jpg

출생
1977년(46~47세)
평양시
국적
[[북한|

북한
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
]]

본관
연주 현씨
학력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직업
가수, 군인, 정치인
계급
조선인민군 대좌[1]
직책
모란봉악단 단장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경력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경음악단

1. 개요
2. 생애
2.1. 가수 활동
2.2. 조선일보의 처형 오보
2.3. 생존 확인과 음악외교
2.5. 김정은의 기술서기로
3. 김정은과의 연애설
3.1. 반론
4. 기타
5. 대표곡



1. 개요[편집]


북한의 가수, 정치인. 보천보전자악단 소속 가수이었으며, 모란봉악단 단장 및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다. 이후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직함으로 김정은을 밀접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서기실로 옮겨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편집]



2.1. 가수 활동[편집]


초기 이력은 불분명한데, 1972년생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국정원에서 밝히길 1977년생이라고 한다. # 1995년 왕재산경음악단 무대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명세는 없었고 인기가 전혀 없던 가수였다.

파일:Hsks.jpg
현송월의 솔로앨범[2][3]
보천보전자악단의 가수로 발표한 '준마처녀'라는 노래가 인기를 끌긴 했지만 현송월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가수였다. 9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가수는 염청이었다.

2.2. 조선일보의 처형 오보 [편집]


2013년,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과 함께 음란물을 찍은 혐의로 총살을 당했다는 보도가 전해졌고 한동안 공식 석상에도 나타나지 않아 총살설이 사실상 정설이었고, 조선일보는 은하수관현악단장 문경진도 가족들이 지켜보는 데에서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을 당했다고 보도를 했다. #[4] 음란물을 제작하고 성 녹화물을 시청했기 때문이라고. 심지어 김정은의 아내인 리설주도 결혼 전 은하수관현악단 시절에 이런 짓을 했다는 루머까지 있었다. 공개 처형 이유도 사망 날짜, 증인까지 다 나왔다고 주장. 하지만 조선일보가 국정원 소스를 받아 보도한 숙청설 중에서 상당수가 건재했음이 확인되었듯이[5] 이 건도 1년 만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같이 총살당했다던 여러 음악가들도 건재가 확인되었다. # 원래 북한 사회 특성상 정보의 불확실성이 커서 메이저 신문사나 정보기관도 속는 경우가 빈번하다.[6] 2018년 1월 30일 jtbc 소셜라이브에서 팩트체크 팀이 현송월 처형오보에 대해 다루었다. 요약 전체

다만 여러 소스를 통해서 북한에서 음악인들이 대거 처형당했다는 것은 계속 교차검증되고 있는데, 관련해선 리설주 포르노설은 자극적 구라에 불과하고 리설주의 퍼스트 레이디 이전 생활에 대해서 나불대다가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3. 생존 확인과 음악외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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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에 평양에서 열린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모란봉악단 단장 직함으로 대좌 군복을 입고 나와 연설을 하면서 부활 건재함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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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1일 베이징 민족(민쭈) 호텔에서 찍힌 현송월의 모습. 과거보단 상당히 살이 빠졌다.

2015년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베이징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중단하고 귀국했다. 중국이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대한 항의로 고위 인사들의 참석을 철회하고 김정은 찬양 노래 등을 부르지 말 것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하여 돌아온 것으로 추측된다. 2017년 10월 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2.4. 평창동계올림픽 방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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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 방남했을 때 KTX에서 찍힌 사진

2018년 1월 15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예술단파견을 위한 남북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로 참석하였다. 관련기사

1월 21일 예술단이 사용할 시설들의 점검을 위한 점검단의 대표로 방남했다. 개성공단 도로를 이용해서 방남한 뒤 서울에서 KTX를 타고 강릉으로 이동하였다. 국내 언론은 현송월의 옷과 화장 머리스타일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과거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대표가 남한을 방문해서 뭘 먹었는지까지 속보로 보도하던 행태와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 있다. 방남 소감을 묻는 기자단의 질문에 미소만 지었으며, 이에 국정원 관계자가 막으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현송월의 방남에 반대하는 보수진영은 내내 현송월에 대한 경호를 반대하고 비판했다. 심지어 현송월에게 존댓말을 썼다는 점을 비판했다.##

현송월에게 대규모의 경호인원을 투입하고 국빈처럼 대접했다는 것에 대해 보수진영은 내내 불만을 표하며 경호에 대해서 반대하며 과잉 의전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황영조체육관[7]을 돌아보며 "왜 이렇게 객석수를 적게 만들었느냐. 우리 북한은 더 큰 규모와 많은 객석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거나 “이탈리아제 조명으로 바꿔달라". "음향기기를 바꿔달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국정원 직원이 우스개 소리로 "미리 연락을 줬다면 5만 석의 공연장을 만들어놨을 텐데 말입니다" 라고 하자 "그러게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편 만약 평창올림픽이 얼마 남은 이 시점에서 현송월이 달걀 한 개라도 맞으면 남북한 관계는 다시 끝장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편 조원진 의원과 대한애국당, 시민단체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인공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했다. 다만 이는 미신고 집회라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2018년 2월 6일 본인이 이끄는 삼지연관현악단과 만경봉 92호로 다시 방남하게 되었다. 이들의 숙소인 만경봉 92호는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묵호항에 정박할 예정이며, 서울과 강릉에서 한 번씩 예술공연을 할 것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리고 무대에 직접 올라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를 보고 문재인 대통령 옆에 앉아있던 김영남이 감명받았는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5. 김정은의 기술서기로[편집]


2019년 4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으며, 6월의 남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의 의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기자들에게 포착되었다. 본래 김여정이 하던 일이었는데 김여정이 승진하면서 그 역할을 현송월이 물려받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되었다.

2021년 들어 굉장히 서열이 높아졌는데, 2021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날인 소위 태양절에 김정은, 김여정, 리설주, 그리고 김정은의 최고심복 조용원과 함께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나란히 김일성 참배 행사에 참여하여 김정은의 신임을 드러냈다.# 최룡해, 박정천 등 다른 간부들도 함께 하지 못한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서열이 높아진 것. 2021년 6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제8기 제2차 확대회의에서는 군 간부들을 조리돌리는 역할도 담당하는 등 군기반장 역할도 하였다.

여러 행사에서 김정은을 보좌했고, 2022년 2월 26일 2차 초급당비서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많은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으며, 2023년 2월 8일 북한 열병식에도 김정은을 수행하였다. 사실상 김정은이 가는 모든 곳에 현송월이 나타나서 의전을 체크하고 김정은이 받는 꽃다발을 받아주며 의자도 빼주는 등 온갖 수발을 다 들고 있다.

2023년 9월 북러정상회담 때도 당연히 동행했다.

3. 김정은과의 연애설[편집]


김정은과 현송월과의 관계는 김정은의 10대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000년, 평양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사실 상 고향인 원산에서 어머니 고용희와 생활했는데 거의 유배 생활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산에 소재한 김정일의 한 별장에서 생활했으나, 별장 경내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더욱이 원산에는 김정은 정도의 고위층 자녀가 다닐 학교도 없어서, 김정일이 개인 교사를 붙여서 교육을 하던 터라 김정은이 이를 매우 지루해하고 못 마땅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은 1~2주일에 한 번씩 원산에 오면서 고용희와 그 자녀들을 돌봤는데, 이 과정에서 김정일과 그 가족의 시중을 들기 위한 조선로동당 5과 인원들도 함께 왔으며 여기에 현송월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정은과 현송월은 이 때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현송월은 자신보다 7살 어린 김정은을 특별히 측은히 여겨 잘 돌봐주었고, 김정은 역시 현송월을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누나로 여기고 잘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제대로 된 사랑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을 김정은에게 현송월의 친절은 그 의미가 매우 크게 다가왔을 수 있다. 김정은의 이러한 감정은 현송월에 대한 연모로 발전했고, 현송월도 이러한 김정은의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또한, 김정은의 첫 성경험 대상이 현송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정일이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극대노하며, 결국 폭발하여 김정은에게 손찌검을 하기에 이르렀고, 현송월도 조선로동당 5과에서 축출되어 다른 남성과 강제 결혼을 당하게 되었다. 이후 김정은은 김여정김일성종합대학의 특별 과정에 강제로 입학되어 학업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되어 김정일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김정은의 사생활까지 신경쓰지 못하게 되자, 김정은이 결국 현송월을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쯤되자 김정일도 이러한 관계에 대해 포기해 버렸는데, 그 사실은 은하수관현악단3·8 국제부녀절 기념행사에서 드러난다.

이 행사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참석했는데, 현송월은 사회자의 즉석 제안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실 북한의 공식적인 행사와 방송은 절대로 즉흥적인 진행이 없다. 즉, 사전에 거의 초 단위로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진행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날 행사는 김정은이 와서 직접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는 1호 행사였다. 보통 이러한 1호 행사는 사전 리허설까지 하는 마당에 즉흥적으로 누구를 불러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단 한 명인 김정은이 현송월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사회자에게 명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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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삭의 몸이라 제의를 거절했지만 사회자는 거듭 그녀를 무대로 이끌었다. 흰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 한복을 입은 현송월은 몸이 무거워 보였지만 왕년의 스타다운 노래 실력을 뽐냈다. 현송월은 “아들을 원하는데 산원에 가서 보니 딸이었다”고 말해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김정은도 관람했으며, 즐겁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3.1. 반론[편집]


그러나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설은 부정하는 견해가 다수이다. 무엇보다도 현송월이 김정은보다 7살 연상이며 국정원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전에는 72년생으로 알려졌다. 즉 애인설이 나돌던 시기의 김정은과의 나이차는 무려 12살 차이였다.

애인설의 에피소드로 나온, 김정은 앞에서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른 사건만 봐도, 오히려 애인이었던 적이 전혀 없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다. 임신한 아이가 김정은 아이라면 감히 귀하디 귀한 백두혈통을 가진 몸으로 무대에 올라가긴커녕 사람들 많은 곳으로 외출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들의 사생아를 밴 여자를 김정일이 곱게 보고 있었을 리도 없다. 현송월 남편의 아이라면 전에 사귀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고 임신한 몸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며 박수치고 좋아할 리도 없을 것이다. 즉, 위의 사건만 봐도, 연애한 적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설은 바로 현송월 처형설을 작성한 2013년 국정원 문서에서 비롯되는데 이걸 그대로 받아쓴 게 조선일보 보도이고 이 내용은 가짜뉴스임이 드러났다. 따라서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것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김정일이 현송월의 노래 실력을 높이 평가해서 자주 불러 노래를 들었고 차츰 가까워져서 거의 친딸처럼 아꼈으며, 자연히 김정은과도 누나 동생하면서 의남매격으로 친하게 지냈다는 추론이 좀 더 설득력 있다.

주목할 건 현송월이 아니라 현송월의 남편이다. 남편은 김정은이 2000년대 중반에 포병부대에 근무 시[8] 군생활이 힘들 때 김정은을 다독이고 보살펴준 군관이었는데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된 후 그를 불러들여 자신의 최측근으로 삼았다. 지금은 호위사령부에 근무하는 걸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집에는 김정은과의 직통전화가 개설될 정도로 김정은의 신임이 대단하다고 한다. 현송월과 그 군관과의 결혼도 김정은이 중매한 것이라고 한다. 현송월이 김정은의 애인이라는 소문도 이런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리는 추측이 강하다.

하지만 주성하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현송월의 남편은 박시철이라는 사람인데 북한군 체육단인 7.27 사단 정치위원으로 겨우 중좌 계급밖에 안되고 김정은과 별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4. 기타[편집]


  • 현송월과 리허설 및 공연을 한 윤상은 "다재다능하다"며 노래도 잘하지만 피아노연주도 수준급이며 아코디언 큰북 클래식 기타같은 악기도 잘 다룬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 영재교육을 받은 인재라고 한다.

  • 약간 깨는 일화가 있는데, 평양에서 벌어진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양측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사회자인 김형석이 "양측의 퍼스트레이디인 김정숙, 리설주가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자리를 만들자!"라고 사전에 협의된 뒤로 진행했으나 김정숙은 노래를 불렀지만, 김정은의 심기가 불편해서, 그 자리에서 리설주는 노래 부르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싸늘해진 분위기에 마술사 최현우가 다음 무대로 나서기로 했는데, 별안간에 현송월이 나서서 리설주 여사께서 노래를 안 하신다니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서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때 최현우가 우연찮게 김정은 옆자리에 앉았는데, 김정은이 한숨을 쉬면서 아~ 쟤가 또 취했구만.이라고 한 마디 하자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 2022년, 북한의 정권 수립을 기념하는 9.9절 기념식 자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미모와 남다른 대우를 받는 소녀가 김정은의 딸이 아니냐는 추측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는데, 한편으로는 현송월의 외모와 흡사해서 김정은 보다 현송월의 딸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후 김정은이 직접 친딸 김주애와 동반해 얼굴을 공개하면서 추측은 빗나갔고 소녀의 존재는 영상에서 편집되어 삭제되었다. 하지만 사진을 기록말살한 것은 아니라서 관영매체 홈페이지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후 발간한 잡지에도 사진을 싣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현송월의 딸이 맞다는 첩보를 전했으나 이런 첩보는 증명이 불가능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9]

  • 백지영이 현송월을 봤을 때의 후기를 밝힌 적이 있다. 백지영 보고 언니라고 부르고, 털털한 성격에 술도 잘 마셨다고. 마지막에 헤어질 때는 백지영이 떠나는 걸 아쉬어했다고 한다.

5. 대표곡[편집]


  • 장군님과 해병들(1995)
  • 축포(1995)
  • 해군들 군항으로 돌아온다(1998)
  • 준마처녀(1999)
  • 단숨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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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령 계급에 해당한다. 공산권에서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는 공연부대의 역할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군소속 예술가들이 장성 계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김정은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에 곧 장성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소련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의 창시자인 알렉산드로프도 소장계급을 받았고, 시진핑의 영부인인 펑리위안도 결혼전부터 군소속 가수였으며, 현역 소장계급을 가지고 있다. [2] 2000년에 발매된 보천보전자악단 제112집 현송월 독창곡집1[3] 보천보전자악단 시절 발매[4] 오보임이 확인된 후에도 계속 걸려있다.[5] 대표적인 경우가 리영길. 前총참모장, 김원홍 보위상. 물론 장성택같은 경우는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된 국정원의 숙청설이 적중한 바 있다.[6] 그래서 주성하기자는 교차검증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기전까지는 아무리 큰 특종이라도 보내지 않는다고하며, 덕분에 놓친 특종이 아주 많다고 한다.[7] 이곳은 체육관이지 공연장이 아니다.[8] 신분을 감추고 일반 사병으로 입대했다고 한다.[9] 이 아이는 북한 매체에서 집중 조명되었고, 김정은과 김여정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리설주는 직접 등을 토닥이며 챙겨주기까지 했다. 이 점을 봐서 현송월이던 누구던 김씨 일가와 친근하고 북한 사회에서 입지가 높은 인물(북한 사회 특성상 김씨 일가와 친하면 당연히 입지가 높다)이며, 기록이 남아있는 걸 봐서 현재도 유력 인사인 인물의 자식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현송월은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맞긴 하지만, 반대로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현송월밖에 없는 건 아니니 그녀의 딸로 확정짓기는 근거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