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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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업 관련 정보
파일:닛폰햄 로고.svg 닛폰햄
일본시리즈 우승
★★★
1962 · 2006 · 2016
리그 우승
(7회)

1962 · 1981 · 2006 · 2007 · 2009 · 2012 · 2016
퍼시픽리그 전·후기 우승
(2회)

1981후기 · 1982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1 · 2012 · 2014 · 2015 · 2016 · 2018
시즌별 요약
2023
현역 선수 경력
키요미야 코타로/선수 경력
경기장
1군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군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과거 고라쿠엔 구장 · 메이지진구 야구장 · 도쿄 돔 · 삿포로 돔
지방 구장 스타루힌 구장(아사히카와) · 오비히로노모리 야구장(오비히로) · 쿠시로 시민구장(쿠시로) · 오션 스타디움(하코다테)
홈 중계 채널
파일:가오라스포츠 로고.png
주요 인물
감독 신조 츠요시 · 선수회장 마츠모토 고 · 주장 공석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틀 문서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1라운드 지명 선수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svg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유색배경).sv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
Hokkaido Nippon-Ham Fighters
北海道(ほっかいどう日本(にっぽんハムファイターズ
구단 법인명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株式会社北海道日本ハムファイターズ)[2]
창단
1945년 11월 6일(78주년)
연고지
홋카이도 키타히로시마시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도 (1946~2003)
홋카이도 (2004~)
구단명 변천
세네터스 (1946)
도큐 플라이어즈 (1947, 1949~1953)
큐에이 플라이어즈 (1948)
토에이 플라이어즈 (1954~1972)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973)
닛폰햄 파이터즈 (1974~200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04~)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48~1953, 1964~1987)
코마자와 구장 (1953~1961)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2~1963)
도쿄 돔 (1988~)[3]
삿포로 돔 (2004~2022)[4]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023~)
2군 구장
카마가야 파이터즈 스타디움 (1997~)
모기업
닛폰햄
감독
1 신조 츠요시 (新庄剛志)
킷 스폰서
미즈노
워드마크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워드마크.svg
마스코트[5]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마스코트.svg
브리스키 더 베어[6] & 프렙 더 폭스 & 폴리 폴라리스 & 커비 더 베어
구단기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구단기.svg
구단 슬로건
ファンは宝物(팬은 보물)
FANS ARE OUR TREASURE
역대
한국인 선수

장훈[7] (1959~1975)
백인천 (1962~1974)
주동식[8] (1972~1981)
정문언[9] (1981~1990)
김실[10] (1986~1993)
역대
한국계 선수

카네다 토메히로(김말홍)[11] (1969~1973)
카네이시 아키히토(김소인)[12] (1992~1997)
이와모토 츠토무[13] (1990~2005)
모리모토 히초리(이희철)[14] (1999~2010)
터멜 슬레지[15] (2008~2009, 2012)
역대
한국인 코치

장훈 (1973)[16]
홈 경기 중계 채널
(CS)

파일:가오라스포츠 로고.pn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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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62, 2006, 2016
퍼시픽리그 우승 (7회)
1962, 1981, 2006, 2007, 2009, 2012, 2016
전, 후기 리그 우승 (2회)
1981 후기, 1982 후기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4회)
2007, 2009, 2012, 2016
플레이오프 우승 (2회)
1981, 2006
교류전 우승 (1회)
2007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6
포스트시즌 진출 (13회)


1. 개요
6. 관중수 추이
7. 팀 컬러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
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
8. 이야깃거리
8.1. 라이벌리
11. 역대 감독
12. 영구 결번
13. 역대 성적
13.1. 단일리그 시대
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1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홋카이도. 모기업은 일본의 식품회사인 닛폰햄이다.

팀 명칭인 파이터즈는 싸움꾼이란 뜻으로 1974년 닛폰햄이 구단을 매입할 당시 팬 공모로 새롭게 개칭한 이름이며, 팀을 줄여서 부를 때는 보통 ハム[17] 혹은 日ハム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닛폰일본을 강조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로 니혼햄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영문표기(Nipponham)나 실제 발음(닛폰하무)에서 보다시피 잘못된 명칭이다.


2. 구단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홈구장 -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편집]


2003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삿포로 돔을 제 1홈구장으로 사용했다가 2023년 신구장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로 이전했다. 건설 비용은 무려 600억엔.[18]

기존에 사용하던 홈구장인 삿포로 돔이 시 소유이기에 연간 26억엔을 삿포로시에 지불해야 했고, 경기 종료 때마다 트레이닝 기구를 일일이 치워야 하는 불편함까지 있었다. 게다가 인조잔디[19] 등 주요 시설 보수에 제약이 걸리는 까닭에 닛폰햄은 2016년부터 신구장 이전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를 성공적으로 살려낸 사업총괄본부장 마에자와 켄이 주도했고, 닛폰햄과 기타 프로야구 팀 팬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17년 10월 시점에서는 삿포로시키타히로시마시 두 곳으로 후보지가 좁혀졌으며, 두 시 모두 신구장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이후 키타히로시마시새 구장 건설을 공식 발표하였으며, 2020년에 착공, 2023년에 완공하였다. 공식PV 건설 도중에 온천이 터져서 온천시설을 같이 둘 계획이며, JR 홋카이도에서는 2027년에야 신구장 앞에 역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기사

2023년에는 신구장으로 옮기면서 신구장 이외의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20] 원래 도쿄 돔과 홋카이도 지역 곳곳에서 지방구장 경기를 치렀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다.


홋카이도 지방경기의 경우 주로 평일에 개최하며 2013년 조명탑을 설치한 아사히카와시에 있는 스타루힌 구장 이외의 곳은 야간경기가 불가능하다.[22] 한편 스타루힌 구장은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야간경기 개최 구장으로 기록되었다.

이외에도 홈이 치바현에 있는 2군도 종종 홋카이도에서 2군 경기를 치른다. 보통 1군이 사용하는 구장은 가지 않고 몬베츠, 시베츠, 토마코마이, 네무로 등 1군 경기가 치러지기는 어려운 구장에서 경기를 한다.


4. 유니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응원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응원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관중수 추이[편집]


연도
총 관중
일일 평균
삿포로 돔
2009년
1,992,172명
27,699명
2010년
1,945,944명
27,027명
2011년
1,990,338명
27,644명
2012년
1,858,524명
25,813명
2013년
1,855,655명
25,773명
2014년
1,897,789명
26,358명
2015년
1,959,943명
27,221명
2016년
2,078,981명
29,281명
2017년
2,086,410명
28,978명
2018년
1,968,916명
27,731명
2019년
1,970,516명
27,368명
2020년
276,471명
4,608명
2021년
544,818명
7,673명
2022년
1,291,495명
17,937명
에스콘 필드 홋카이도
2023년
1,882,046명
26,508명


7. 팀 컬러[편집]


현재는 투타 모두 부진한 암흑기에 빠진 팀이지만, 과거는 시기에 따라 팀컬러가 나뉜다.

고라쿠엔, 진구, 도쿄 돔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시절에는 좁은 구장을 사용했기에 이 구장 조건에 맞게 전반적으로 타격이 강점인 팀이었다. 오오스기 카츠오, 장훈, 토미 크루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나이젤 윌슨, 다무라 후지오 등등 수많은 강타자들이 이 팀의 역사를 수놓았다.

이랬던 팀 컬러는 2004년 홋카이도로 이전하며 투수 중심의 팀컬러로 바뀌게 되는데, 새로 옮긴 삿포로 돔이 홈런 테라스 설치 이전의 후쿠오카 돔이나 나고야 돔에 비견되는 넓은 외야와 높은 펜스를 가진데다가, 다목적 구장이라는 점 때문에 파울지역 또한 광활한 전형적인 투수 구장이었기 때문. 특히 넓은 외야 때문에 닛폰햄은 신조 츠요시, 모리모토 히초리, 이나바 아츠노리, 이토이 요시오, 양다이강 등 발이 빠르고 수비력이 좋은 외야수를 위주로 타선을 꾸렸고, 슈퍼 에이스 다르빗슈 유를 중심으로 다케다 마사루, 야기 토모야 등이 뒤를 받쳐주고 다케다 히사시, 마이클 나카무라, 마스이 히로토시 등의 불펜진이 걸어잠그는 단단한 투수진을 갖추어 기동력 좋은 중거리포들의 연속 안타와 도루로 점수를 뽑고 강력한 투수진과 철벽수비로 점수를 내주지 않는 야구를 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에는 타격 또한 좋아지며 10년 가까이 퍼시픽 리그의 강팀으로 군림했다. 2000년대 후반에는 단연코 독보적인 퍼시픽 리그 최강팀이었으며, 2010년대에는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치고 올라왔음에도 파이터즈 역시 호크스와 항상 리그 우승을 놓고 다퉜다. 이 기간 동안에는 세대교체도 잘 되어 다르빗슈가 가니 오타니 쇼헤이가 오고 이나바가 가니 나카타 쇼가 오는 식으로 오랜 시간 강팀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2016년 오타니가 이끈 우승을 마지막 불꽃으로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잇따른 드래프트 1픽의 실패와 팜의 황폐화, 메이저 리그로 진출한 오타니와 아리하라, FA로 떠난 양다이강이나 레어드, 불미스러운 일로 방출된 나카타와 니시카와 등 유출되는 전력에 비해 세대 교체가 진행되지 않았고, 이 참에 리셋버튼 한번 누르자는 팀의 리빌딩 기조로 인해 노쇠화가 온 베테랑들을 대거 방출하며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삿포로 이전 이후로는 넓은 투수구장 탓에 장타자 육성에 어려움을 겪는 팀이었으나, 2023년 상대적으로 좁은 편인 에스콘 필드로 이전 후 타자들이 단체로 잠재력이 만개하기 시작해 기존의 이토 히로미를 필두로 수준급의 투수진에 더해 만나미 츄세이, 노무라 유키, 키요미야 코타로 등 젊은 타자들이 잠재력을 뽐내고 있어 다시금 비상할 희망이 보이고 있다.

7.1. 드래프트 지명 방식 : 상남자 스타일[편집]


연고지 이전 이후에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은 1라운더들이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다. 다르빗슈 유, 나카타 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아리하라 코헤이 등이 드래프트 1라운더들이다.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추파를 받았을 정도로 2012 시즌 일본 고교야구의 핫이슈였던 오타니 쇼헤이 역시 이 팀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이처럼 1라운더들이 다른 팀에 비해 대박을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그해 아마야구 최고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를 무조건 지명하기 때문이다. 대졸 최대어가 고졸 최대어보다 평가가 좋은 경우에는 대졸을 지명하기도 한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프로야구의 신인 드래프트 1차지명 방식 때문인데, 해당 선수가 2팀 이상의 지명을 받았을 경우 제비뽑기로 팀을 선정하지만 딱 한 팀만 그 선수를 지명했을 경우 무조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선수를 제비뽑기를 통해 뽑았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일본에서는 특급선수들이 보통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선호하기에[23] 다른 구단에서 A선수를 지목했을때 해당 선수가 "x까 나 요미우리 아니면 안가!"를 선언하고 사회인야구로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요미우리에 가고 싶어서 2번이나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거부한 초노 히사요시.[24] 이렇게 되면 구단들은 1픽을 그냥 날려버리기 때문에 선수가 드래프트 전에 선호하는 팀을 선언하면 다른 팀들은 해당 선수 지명을 피한다. 그러나 파이터즈는 그런거 다 필요없고 잘하면 무조건 "너 내꺼될 준비해!"라며 지명했다.[25]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명한 선수들이 못 하더라도 중박은 쳐주는 편이다.

닛폰햄의 경우 일본 최북부의 홋카이도라는 연고지 위치[26]도 그렇고, 강팀이라는 이미지가 약해서 물을 먹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소신있는 지명 방식 및 체계적인 육성시스템 덕에 1라운더 대박이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로또 전쟁: 일본의 신인지명 이야기라는 글을 참조.

2017년에 또 그렇게 지명했는데 무려 7구단이나 지명을 한 키요미야 코타로를 제비뽑기에 성공하면서 당당하게 데려왔다! 쿠리야마 감독이 추첨픽을 할 때마다 삽질을 해서 GM 보좌인 키다 마사오가 왼손으로[27] 뽑았는데 결과는 대성공.

그리고 2018년 드래프트에서도 당초 내야수 최대어인 네오 아키라를 뽑으려고 추첨에 지원했으나 네오는 추첨에서 승리한 주니치 드래곤즈로 갔는데, 어부지리로 고시엔 준우승팀 가나아시 농고의 에이스인 요시다 코세이를 데려왔다.[28]

드래프트 뿐만 아니라 선수 선방, 트레이드 면에서도 사건 사고를 일으키거나 워크에씩 면에서 평판이 나빴던 선수들을 과감히 데려와서 갱생시키는 사례가 많아[29] 아바시리 형무소 <북쪽의 갱생시설>로 불린다. 니오카 토모히로, 하쿠무라 아키히로[30]가 그 좋은 사례다. 그 덕에 선수가 사회면에 나오는 일이 별로 없고[31] 사이토 유키는 오히려 교통사고를 당한 시민의 목숨을 구해내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날려먹은 사례
    • 스가노 도모유키는 대학야구를 씹어먹고 2011년 드래프트에 참가, 당대 최고 선수로 많은 구단들이 탐을 냈었다. 그러나 스가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었던 하라 타츠노리의 외조카였기에 "나 요미우리 갈꺼다."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1픽으로 뽑더라도 계약을 거부할 확률이 99%였기 때문에 다른 구단들은 눈치를 보며 빠졌지만, 상남자의 닛폰햄은 "우린 너다!"라며 지명.[32] 제비뽑기에서 승리하며 지명권을 따냈지만 스가노는 당연히 지명 거절을 하며 재수를 선언했다.[33] 닛폰햄은 멀쩡한 1픽만 날려버린 셈이다. 그리고 스가노는 포스팅 시스템 인정하지 않는 요미우리 방침[34]과 부실한 선발투수 사정이 합쳐져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재밌게도 닛폰햄이 그 다음 픽으로 뽑은 선수가 2022년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수위타자 타이틀을 수상한 마츠모토 고와 요미우리를 거쳐 치바 롯데의 외야수로 있는[35] 이시카와 신고, 2020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 3회 수상을 거두면서 소프트뱅크로 FA 대박을 친 콘도 켄스케, 올스타 2회 수상한 팀 선발자원 우와사와 나오유키. 정작 그 해 요미우리 드래프트는 좌완 선발 이마무라 노부타카, 히로시마로 간 이치오카 류지 이외에는 모두 망했으며, 2012년 드래프트에서 스가노를 뽑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실패하는 등 큰 대가를 치렀다.

  • 2013년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소신 픽을 했지만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첫 제비뽑기 3연패를 달성하며 1라운드 꼴찌 픽을 하게 된다. 이는 전년도 꼴지팀이 1라운드 꼴찌 픽을 한 사례이기도 하다. 결국 닛폰햄은 울면서 와타나베 료를 지명했다.[36][37] 와타나베 료는 18시즌 까지는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19시즌엔 공갈포로, 20시즌부터는 4번 나카타 쇼를 이은 5번 타자로서 쏠쏠히 활약해주었다. 허나 22시즌엔 전혀 활약하지 못했고, 2:2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으로 이적했다.

  • 본인들 스타일대로 갔다가 대박을 친 사례
    • 다르빗슈 유는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투수중 한명이었지만, 자기관리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다.[38] 그러나 닛폰햄은 신경 안 쓴다며 당당하게 소신픽 했고, 단독 1픽을 뽑아내며 입단에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다르빗슈는 프로에 와서 금연을 하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20세의 어린 나이부터 일본프로야구를 폭격하고 거액의 포스팅비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건너갔다.

  • 오타니 쇼헤이는 고교야구 시절 최고의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투수로써도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많은 구단들도 관심을 가졌지만 오타니는 "나 메이저 갈꺼임 건들지 마셈"이라고 선언해 다들 눈치보고 빠질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상남자 닛폰햄 파이터즈는 또 다시 "어쩌라고."라며 패기있게 1픽으로 지명,[39] 결국 지명권을 따낸후 설득을 거쳐 오타니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40] 그리고 오타니는 투수와 타자에서 역대급 성적을 찍으며 201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고, 선배 다르빗슈를 따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했다. 다만 포스팅 비용에 관해서는 네임밸류와 성적에 비하면 좀 낮은 편인데, 이는 MLB와 NPB간의 협약에 의해 상한치를 20M으로 고정해버린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다르빗슈의 반도 안되는 금액으로 책정되었다. 물론 상한치가 20M이라 매우 큰 돈이긴 하므로 닛폰햄 입장에서 큰 이득이긴 하지만 오래오래 잘 써먹고 비싸게 판 다르빗슈에 비해서 몇년 못 쓰고 싸게 판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최근에는 키요미야 코타로, 요시다 코세이 등을 지명했는데 성장이 더디면서 드래프트 명가라는 명성의 빛이 바래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그 해 최고의 선수를 뽑는다는 전략으로 1순위 지명에서 네오 아키라[41], 사사키 로키 등을 지명하면서 다른 구단과 경합했다가 추첨에서 패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쓸만한 선수들도 타구단에 뺏기고, 원래 보강이 필요한 포지션이 아닌 다른 포지션의 2티어급 선수들을 1순위로 지명하면서 처음에 구상했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등 상남자 스타일 지명의 부정적인 측면이 두드러지는 중이다. FA 등 외부에서 전력을 보강할 생각이 없다면 아마추어 시절의 화제성만 쫓지 말고 히로시마처럼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쓸만한 선수들 단독으로 낚는 틈새전략을 취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결국 2020년 드래프트에서는 최대어인 하야카와 타카히사를 포기하고 연고지 출신이며 대졸 투수 중 2-3번째로 평가받던 이토 히로미 단독지명으로 선회했다. 그리고 이토는 첫 시즌부터 선발진에 합류하여 연이어 호투를 펼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고, 2020 도쿄 올림픽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차출되어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2023년 콘도 켄스케의 FA 보상 선수로 타나카 세이기를 데려오면서 졸지에 1순위 지명 선수를 데려오게 되었다. 당시 타나카를 놓치고 1순위로 데려온 선수가 2021년 퍼시픽 리그 최우수 중간 계투인 호리 미즈키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타나카에게 나름의 기대를 건 셈. 그리고 그 타나카는 마무리 투수로 47경기 25세이브를 기록하며 프로 첫 풀타임 시즌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7.2. 유쾌한 덕아웃 분위기[편집]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jpg
파일:attachment/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3.jpg

괴짜 야구선수로 유명한 신조 츠요시의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비범한 장난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 이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홋카이도로 막 이전한 미미한 구단이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팬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똘끼의 주범인 신조가 프로야구계에서 팬서비스를 유달리 강조한 선수이기도 했고. 파이터즈 프랜차이즈 역대 모기업 중에 특촬물 제작기업이던 토에이 산하의 야구단이었다 보니 위의 사진처럼 특촬물과 연관지어서 장난치기도 했다.[42]

이후 신조가 닛폰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고 난 후 모리모토 히초리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적했다. 모리모토 이후 묘한 정신 세계의 외야수 계보는 이토이 요시오가 이었지만, 이토이도 현재는 오릭스 버팔로즈를 찍고 한신 타이거스로 가버렸다.

2022년 신조가 감독으로 부임하며 팬들은 감독부터 선수까지 어떤 개그가 펼쳐질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워크에씩을 중요시하는 신조의 방침에 따라 심한 개그는 치지 않는 편. 대신 부임 첫 해에는 신조 스스로 <빅 보스>라고 칭하며 시즌을 진행했다. 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1년만에 포기하고 자신의 실명으로 돌아와 웃음을 자아내기도.

7.3. 골든 글러브[편집]


팀은 1993년부터 2020년까지 단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매년 최소 1명씩 골든글러브 수상자를 배출했었다. 이는 퍼시픽 리그 최장기록. 특히 오가사와라 미치히로(5회 수상)가 거쳐갔고 나카타 쇼가 지켰던 1루수 부문은 무려 수상 16회. 그러나 2021시즌, 아무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고,[43] 28년간의 전통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8. 이야깃거리[편집]




  • 구단 공식 응원가로 파이터즈 찬가가 있는데, 1977년에 제작된 곡으로 퍼시픽 리그 구단가 중 가장 오래된 응원가이기도 하다. 참고로 원판 가수는 애니송 가수로 유명한 사사키 이사오.

  • 2022 시즌부터 이닝 교대마다 키츠네 댄스(여우 댄스) 타임이 생겼다. The Fox를 차용해서 중독성있는 음악과 귀여운 춤동작으로 인기를 얻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2022년도에 일본에서 The Fox가 역주행까지 하였으며 유행에 편승해 Ylvis삿포로 돔에서 The Fox를 열창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22 홍백가합전에서 닛폰햄 파이터즈 치어리더들이 노기자카46와 이 곡으로 키츠네 댄스를 선보여서 간접적으로 출현하는 쾌거를 이뤘다.[44]


  • 닛폰햄의 야구 중계 시 닛폰햄 타자가 홈런을 치면 'It's going! It is Gone! See You Later! Good Bye!'라는 영어 멘트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콘도 유지(近藤祐司) 아나운서 특유의 홈런콜이다. 그의 홈런콜만 모은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2022년 시즌을 끝으로 닛폰햄 중계를 그만두었기에 아쉽게도 현재는 들을 수 없다.

  • 세레소 오사카와 모기업이 닛폰햄으로 같기에 양 구단 관계자들이 서로의 구장을 찾아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삿포로 돔에서 세레소 서포터들이 "닛폰햄 고맙습니다"라는 걸개를 걸어 놓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8.1. 라이벌리[편집]


  • 팀 자체가 그동안 뭔가 뚜렷한 팀 컬러를 보여주지 못해서 이렇다 할 라이벌이 없었다. 토에이 시절에는 도쿄 오리온즈 정도가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두 팀 다 바닥에서 헤매는 팀이라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빠서 라이벌까지 챙길 여력이 안 됐고, 오리온즈가 롯데에게 넘어가고 일본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고서는 그나마 그런 라이벌 의식도 희석되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가 사이타마로 이사오자 간토 지역의 팀이라는 배경으로 세이부를 라이벌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황금기 시절의 세이부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아서 두 팀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냥 혼자만의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또 같은 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다는 이유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도 엮이려고 했으나 일단 그 홈구장의 세입자 신세인데다가 리그 자체가 달라서 시범경기 때를 제외하면 붙을 일이 거의 없었고, 1981년 일본시리즈를 제외하면 일본시리즈에서도 맞붙지 못했다. 이후 홋카이도로 이전하게 되어 안 그래도 희미했던 라이벌 의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전 후 요미우리와의 일본시리즈를 두번 더 치렀지만 이미 그 때는 같은 홈구장을 쓰는 덕아웃 라이벌이 아닌 도쿄의 전국구 강팀 대 홋카이도를 연고로 하는 지역 팀의 대결구도가 돼서 딱히 라이벌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상태였다.

  • 현재 라이벌로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팀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본래 2000년대엔 닛폰햄이 파리그 최강팀이었으나, 호크스도 항상 닛폰햄의 자리를 위협하는 2인자 그룹에 있었고 2010년대 강팀으로 성장한 호크스가 급격히 치고 올라와 최강팀이 되며 2010년대 초중반에는 파이터즈와 파리그 우승을 두고 항상 다투는 사이가 되었기에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주 맞붙어서 볼만한 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게다가 NPB의 최북단 팀과 최남단 팀이자 각각 도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팀이라는 관계가 작용해서 실력적인 측면에서는 닛폰햄 팬들은 소프트뱅크를 라이벌시 한다. 이건 소프트뱅크 팬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전통의 라이벌인 세이부 다음으로 라이벌시하는 중이다.

  • 또 하나의 라이벌은 오릭스 버팔로스가 있는데, 악연보다는 7회 초 오릭스의 럭키 세븐 타임에 나오는 개그 멘트 때문. 이에 장난식 라이벌리로 치부되기도 한다.


9. 선수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역대 선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역대 선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홋카이도 시대에 이 팀을 대표했던 선수는 다름아닌 다르빗슈 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하여 텍사스 레인저스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현재는 김하성과 함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다.

또 한 명을 꼽자면 역시 10년만에 우승을 가져다 준 오타니 쇼헤이.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어마어마한 구속과 함께 한국 대표팀을 완벽하게 틀어막아 한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해 투타겸업을 완벽히 해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야구팬 뿐만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지도가 생겼다.

이외에 공수겸장 2루수 타나카 켄스케[45],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이적해온 강타자 이나바 아츠노리, 한국계 카네코 마코토모리모토 히초리, 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한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이 이 팀을 빛냈다.


11. 역대 감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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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초대
요코자와
파일:일본 국기.svg
(1946)
2대
가리타
파일:일본 국기.svg
(1947~1948)
3대
이노카와
파일:일본 국기.svg
(1949~1950)
4대
안도
파일:일본 국기.svg
(1951)
5대
이노카와
파일:일본 국기.svg
(1952~1954)
6대
야스이
파일:일본 국기.svg
(1955)
7대
이와모토
파일:일본 국기.svg
(1956~1960)
8대
미즈하라
파일:일본 국기.svg
(1961~1967)

9대
오시타
파일:일본 국기.svg
(1968)
10대
마츠키
파일:일본 국기.svg
(1969~1970)
11대
다미야
파일:일본 국기.svg
(1971~1973)
12대
도바시
파일:일본 국기.svg
(1973)
13대
나카니시
파일:일본 국기.svg
(1974~1975)
14대
오사와
파일:일본 국기.svg
(1976~1983)

15대
우에무라
파일:일본 국기.svg
(1984)
16대
다카다
파일:일본 국기.svg
(1985~1988)
17대
곤도
파일:일본 국기.svg
(1989~1991)
18대
도바시
파일:일본 국기.svg
(1992)
19대
오사와
파일:일본 국기.svg
(1993~1994)
20대
우에다
파일:일본 국기.svg
(1995~1999)
21대
오시마
파일:일본 국기.svg
(2000~2002)
22대
힐만
파일:미국 국기.svg
(2003~2007)

23대
나시다
파일:일본 국기.svg
(2008~2011)

24대
쿠리야마
파일:일본 국기.svg
(2012~2021)

25대
신조
파일:일본 국기.svg
(2022~ )




  • 미즈하라 시게루 :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레전드로 196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에서 물러난 후, 1961년 토에이 플라이어스로 부임. 그 뒤 사임하는 1967년까지 계속 A클래스(리그 1~3위권)를 찍었고 1962년엔 팀의 최초의 퍼시픽리그-일본시리즈 우승을 가져다준 명장이다.
  • 오시타 히로시 : 팀 초창기의 레전드 강타자였으나, 감독으로서는 '사인 없는 야구'를 표방하다 폭망했다.
  • 오사와 케이지 : 선수생활은 난카이 호크스, 도쿄 오리온즈에서 했지만 닛폰햄 감독으로서 유명해졌다. 별명은 '오야붕'. 장훈과 함께 방송에 나와 어린 선수들에게 고견을 전하는 어르신으로 자주 출연했다. 1981년 퍼시픽리그 2번째 우승을 가져다 준 감독.
  • 우에다 토시하루 : 한큐 브레이브스의 명감독. 90년대 중후반에 감독을 맡았다. 그닥 특출난 성적은 내지 못했다.
  • 트레이 힐만 : 도쿄 시대 마지막 감독이자 홋카이도 시대 최초의 감독으로써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팀을 맡아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과 2007년 퍼시픽리그 우승을[46] 이끈 미국인 감독.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감독과 코치로 지내다가 SK 와이번스의 제6대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팀의 우승을 이끌어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한일 양대리그 우승감독. 또한 2023년 구단 어드바이저로 다시 닛폰햄에 돌아왔고, 개막전 시포도 맡았다.[47]
  • 나시다 마사타카 : 선수로서는 긴테쓰 버팔로즈의 명포수였고 긴테쓰의 마지막 감독이기도 했다. 트레이 힐만 다음으로 감독직을 맡아 2009년 퍼시픽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 쿠리야마 히데키 : 나시다 다음으로 감독직을 맡아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팀을 맡으며 2012년에 퍼시픽 리그 우승, 2016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영전하여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을 이끌었다.


12. 영구 결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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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No. 100
오코소 요시노리



  • No. 100 : 오코소 요시노리(大社 義規) - 닛폰햄 초대 구단주.


13. 역대 성적[편집]


­
리그 우승[48]
­
2위
­
3위

B클래스


13.1. 단일리그 시대[편집]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46
5위/8팀
5위
세네터스
105
47
58
0
.448
1947
6위/8팀
6위
도큐 플라이어즈
119
51
65
3
.440
1948
5위/8팀
5위
큐에이 플라이어즈
140
59
70
11
.457
1949
7위/8팀
7위
도큐 플라이어즈
138
64
73
1
.467

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편집]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6위/7팀
6위
도큐 플라이어즈
120
51
69
0
.425

1951
6위/7팀
6위
102
38
56
8
.420

1952
6위/7팀
6위
108
49
59
0
.454

1953
6위/7팀
6위
120
50
67
3
.427

1954
7위/8팀
7위
토에이 플라이어즈
140
52
86
2
.377

1955
7위/8팀
7위
143
51
89
3
.364

1956
6위/8팀
6위
154
58
92
4
.390

1957
5위/7팀
5위
132
56
73
3
.436

1958
5위/6팀
5위
130
57
70
3
.450

1959
3위/6팀
3위
135
67
63
5
.515

1960
5위/6팀
5위
132
52
78
2
.400

1961
2위/6팀
2위
140
83
52
5
.611

1962
1위/6팀
우승
133
78
52
3
.600
일본시리즈 (4-1-2 vs 한신)
1963
3위/6팀
3위
150
76
71
3
.517

1964
3위/6팀
3위
150
78
68
4
.534

1965
2위/6팀
2위
140
76
61
3
.555

1966
3위/6팀
3위
136
70
60
6
.539

1967
3위/6팀
3위
134
65
65
4
.500

1968
6위/6팀
6위
135
51
79
5
.392

1969
4위/6팀
4위
130
57
70
3
.449

1970
5위/6팀
5위
130
54
70
6
.436

1971
5위/6팀
5위
130
44
74
12
373

1972
4위/6팀
4위
130
63
61
6
.508

1973
전기 5위/6팀
후기 3위/6팀
5위
닛타쿠홈 플라이어즈
130
55
69
6
.444

1974
전기 6위/6팀
후기 6위/6팀
6위
닛폰햄 파이터즈
130
49
75
6
.395

1975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6위
130
55
63
12
.466

1976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5위
130
52
67
11
.437

1977
전기 4위/6팀
후기 4위/6팀
5위
130
58
61
11
.487

1978
전기 3위/6팀
후기 4위/6팀
3위
130
55
63
12
.466

1979
전기 3위/6팀
후기 4위/6팀
3위
130
63
60
7
.512

1980
전기 2위/6팀
후기 2위/6팀
3위
130
66
53
11
.555

1981
전기 4위/6팀
후기 1위/6팀
우승
130
68
54
8
.557
플레이오프 (3-1-1 vs 롯데)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1982
전기 4위/6팀
후기 1위/6팀
2위
130
67
52
11
.563
플레이오프 (1-3 vs 세이부)
1983
3위/6팀
3위
130
64
59
7
.520

1984
6위/6팀
6위
130
44
73
13
.376

1985
5위/6팀
5위
130
53
65
12
.449

1986
5위/6팀
5위
130
57
65
8
.467

1987
3위/6팀
3위
130
63
60
7
.512

1988
3위/6팀
3위
130
62
65
3
.488

1989
5위/6팀
5위
130
54
73
3
.425

1990
4위/6팀
4위
130
66
63
1
.512

1991
4위/6팀
4위
130
53
72
5
.424

1992
5위/6팀
5위
130
54
73
3
.425

1993
2위/6팀
2위
130
71
52
7
.577

1994
6위/6팀
6위
130
46
79
5
.368

1995
4위/6팀
4위
130
59
68
3
.465

1996
2위/6팀
2위
130
68
58
4
.540

1997
4위/6팀
4위
135
63
71
1
.470

1998
2위/6팀
2위
135
67
65
3
.508

1999
5위/6팀
5위
135
60
73
2
.451

2000
3위/6팀
3위
135
69
65
1
.515

2001
6위/6팀
6위
140
53
84
3
.387

2002
5위/6팀
5위
140
61
76
3
.445

2003
5위/6팀
5위
140
62
74
4
.456

2004
3위/6팀
3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33
66
65
2
.504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세이부)
2005
5위/6팀
5위
136
62
71
3
.466

2006
1위/6팀
우승
136
82
54
0
.603
세컨드 스테이지 (3-0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1 vs 주니치)
2007
1위/6팀
우승
144
79
60
5
.568
세컨드 스테이지 (3-2 vs 롯데)
일본시리즈 (1-4 vs 주니치)
2008
3위/6팀
3위
144
73
69
2
.514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오릭스)
세컨드 스테이지 (2-4 vs 세이부)
2009
1위/6팀
우승
144
82
60
2
.578
세컨드 스테이지 (4-1 vs 라쿠텐)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2010
4위/6팀
4위
144
74
67
3
.525

2011
2위/6팀
2위
144
72
65
7
.526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세이부)
2012
1위/6팀
우승
144
74
59
11
.556
파이널 스테이지 (4-0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2-4 vs 요미우리)
2013
6위/6팀
6위
144
64
78
2
.451

2014
3위/6팀
3위
144
73
68
3
.518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오릭스)
파이널 스테이지 (3-4 vs 소프트뱅크)
2015
2위/6팀
2위
143
79
62
2
.560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롯데)
2016
1위/6팀
우승
143
87
53
3
.621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소프트뱅크)
일본시리즈 (4-2 vs 히로시마)
2017
5위/6팀
5위
143
60
83
0
.420

2018
3위/6팀
3위
143
74
66
3
.529
퍼스트 스테이지(1-2 vs 소프트뱅크)
2019
5위/6팀
5위
143
65
73
5
.471

2020
5위/6팀
5위
120
53
62
5
.461

2021
5위/6팀
5위
143
55
68
20
.447

2022
6위/6팀
6위
143
59
81
3
.421

2023
6위/6팀
6위
143
60
82
1
.423

NPB 통산 78시즌
리그우승 7회

10457
4827
5247
383
.479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4. 둘러보기[편집]




닛폰햄 산하 스포츠단
파일:세레소 오사카 엠블럼.svg
세레소 오사카
(J리그)
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svg파일: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엠블럼(유색배경).svg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일본프로야구)

[1] 국립국어원 용례에서는 '닛폰 햄 파이터스'로 표기한다.[2] 현재의 구단 법인은 2003년 8월 설립되었고, 2004년 연초에 기존의 구단 법인인 닛폰햄구단㈜(日本ハム球団株式会社)으로부터 프로야구단 사업 일체를 넘겨받았다. 참고로 현재 구단 법인은 닛폰햄㈜이 필두주주로써 홋카이도 소재의 주요기업들이 출자한 상태이며, 이전의 구단 법인은 닛폰햄㈜이 100% 지분을 보유한 완전자회사 형태로 존재하였다가 프로야구단 사업 일체를 2004년 연초에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양도한 후 같은 해 6월에 특별청산 형태로 법인이 청산되었다.[3] 2004년 홋카이도로 연고이전 후 오리지널(그러니까 도쿄 시절의) 파이터즈 팬들을 위해 2004년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파이터즈 홈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다만 2023년의 경우 홈구장에서만 개최하기로 발표했다.[4] J리그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와 공용[5] 도쿄 연고 시절에는 야구배트를 든 기사 모양의 로고 마스코트#태양을 모티브로 한 교로탄, 익룡을 모티브로 한 파이티를 사용했으나 홋카이도 연고 이전 후 홋카이도 토착종인 곰과 다람쥐를 모티브로 새로 마스코트를 만들었다.[6] 본명보다 이니셜인 BB로 더 자주 불린다.[7] 일본식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 재일교포. NPB 역대 최다 기록인 3085안타 기록 보유자. 이외에도 여러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8] 일본식 이름은 우다 토쇼쿠(宇田東植). 재일교포.[9] 일본식 이름은 사토 후미히코(佐藤文彦). 재일교포.[10] 일본식 이름은 타나카 미노루(田中 実). 재일교포.[11] (金田留広).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 카네다 마사이치(김경홍)의 친동생.[12] (金石 昭人).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 카네다 마사이치(김경홍)의 조카.[13] (岩本 勉). 한국계 일본인.[14] (森本 稀哲).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계 일본인.[15] (Turrmel Sledge). 한국계 미국인.[16] 플레잉코치[17] 인터넷에서는 야민정음 식으로 으로 줄여부르기도 한다.[18] 과거 1988년 당시 도쿄돔 건설 비용이 350억엔이었다.[19] 특히 인조잔디의 경우 12구단 중 최악으로 다른 돔구장이 다 쓰는 필드터프가 구장구조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하다. 콘사도레는 천연잔디 쓰는데 미칠 노릇. 2016년에 선수회에서 삿포로돔 측에 직접 건의해서 잔디 좀 바꿔달라고 했다.[20] 비용 및 새 구장 적응 문제로 보인다. 2024년 이후에도 이럴지는 미정. 도쿄돔 경기를 매년 4-9경기씩 치러왔고, 홋카이도 도민들을 위해 지방경기를 많이 편성하기 때문에 원상복귀할 가능성이 높다.[21] 시즈오카시 인근에 닛폰햄 공장이 있어 직원 복지 차원에서 개최한다.[22] 덕분에 평일 1시에 경기가 치러지고, 일몰 콜드가 일어나기도 한다.[23] 그러나 2010년대 들어 OB 등의 간섭, 시스템상 문제로 유망주가 크지 못하는 요미우리 2, 3군 육성시스템의 악명이 높아지면서 전보다는 신인 선수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 오죽하면 오카모토 카즈마가 2018년 포텐이 폭발할 때 팬들도 놀랐다.[24] 그러나 초노는 2019년 1월 7일부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마루 요시히로의 FA 보상선수로 가게 되어서 오히려 닛폰햄을 비롯한 타팀 팬들이 당황하였다.[25] 롯데는 닛폰햄 전략을 따라하여 쵸노를 강행지명했다가 결국 바비 발렌타인이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단 롯데는 쵸노 전에도 오미네 유타처럼 타팀 입단을 희망했던 선수의 강행지명 사례가 있었고, 1991년 코이케 히데오 강행지명 사태 등으로 인해 가네다 마사이치 감독이 해임된 사건이 있었다.[26] 다만 선수육성을 위한 2군 구장은 나리타 국제공항 근처 치바현 카마가야시에 있으며, 2군 홈구장에도 대형 컬러 LED 전광판을 설치하는 등 볼파크화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 홋카이도는 가을부터 기후가 쌀쌀해지기 시작해 2군 구장을 세우기가 어려운 편이고, 메이저리그의 북부지구 팀들도 그래서 마이너리그 산하팀을 따뜻한 곳에 둔다.[27] 이 때 아카시야 산마가 왼손으로 뽑으라고 조언했다.[28] 요시다는 2018년 고시엔대회에서 지역예선부터 전국대회 준결승까지 10연속 완투승을 거뒀으나, 혹사의 여파로 결승전에서는 오사카 토인 고교를 맞아 5이닝 12실점 끝에 강판되었고, 원래부터 전국구로 주목받던 선수는 아녔기 때문에(혹사 때문에 지명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으나 전반적인 일본 현지의 평은 혹사랑 상관없이 고졸 최대어 수준의 선수는 아니라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좀 완고하고 거만한 일본 고교야구 팬들은 요시다가 혹사 때문에 지명받지 못했다고 하면 다짜고짜 야알못 취급할 정도다.) 아무도 먼저 지명하는 구단이 없었다. 드래프트 전 제 12회 U-18 BFA 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물빠따의 여파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된 김대한에게 쓰리런을 맞은 뒤 득점지원을 1점만 받은 채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었다.[29] 삿포로는 계획도시로 도시구조가 미국 대도시와 비슷해 의외로 삿포로역, 스스키노를 제외하면 유흥가도 없는 편이다.[30] 2013년 드래프트 6위 지명으로 입단한 투수. 입단 이전에는 명문 케이오 대학 야구부 주장으로, 실력은 있는데 잦은 규칙위반을 해 근신처분 받을 정도로 행실이 불량해서 팀 메이트 사이에서도 문제아 취급 받았지만 입단 이후로는 이전의 행실불량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5년을 빼면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고, 2019년 감독과 GM의 권고를 받아들여 외야수로 전향했지만 그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202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했다.[31] 그러나 전직 선수이자 2군 매니저였던 미야모토 켄이 2013년 강간치상혐의로 사회면에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2021년 나카타 쇼가 이구치 카즈토모를 폭행하면서 근신처분을 받고 쫓겨나듯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무상트레이드되는 일마저 터졌다.[32] 당시 교진의 스가노 지명이 8번째 순서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바로 뒷 순서인 닛폰햄에서 지명으로 스가노라는 이름이 나온 것. 교진 제외 11구단 팬들의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닛폰햄이 제비뽑기까지 승리하자 현장은 교진을 제외하고는 축제 분위기였다.[33] 정확히 말하면 1년 놀았다. 쉬는 동안 연습경기 2번 등판한 게 전부였다고 한다.[34] FA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FA가 되면 이미 전성기가 지난 32세다.[35] 이시카와는 요미우리의 외야 뎁스가 12구단 중 가장 두터워 오히려 트레이드가 독이 된 케이스였고, 결국 2023년 롯데로 갔다.[36]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전년도 우승팀인 라쿠텐은 제비뽑기에 성공해 최대어를 가져갔다. KBO로 말하자면 2007 신인 지명에서 2006 시즌 우승팀 삼성이 양현종을 지명하고, 꼴지팀 기아가 백정현을 지명하게 된 셈. 참고로 이때 라쿠텐이 데려간 최대어가 마츠이 유키.[37] 여담으로 2픽에서 요코하마에게 밀려 빼앗긴 카키타 유타는 1군 기록 없이 입단 4년만에 방출당하면서 최악의 망픽으로 전락했고, 3픽에서 빼앗긴 카지야 렌은 소프트뱅크에 입단하여 입단 4년차인 2018년에 중간계투로 31홀드를 거두며 터졌다.[38] 2004년 9월에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걸리는 바람에 일본고교야구연맹으로 부터 엄중경고를 받기도 했고, 도박(빠칭코)중독자이기도 했다.[39] 당시 닛폰햄의 지명자 발표는 마지막 순서였다. 바로 앞인 11번째 순서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였고, 이들이 2년 연속 스가노 도모유키를 부른 직후에 나온 오타니 지명이었다.[40] 이 때 닛폰햄이 협상과정에서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만든 보고서는 지금까지도 일본의 스포츠구단 운영 및 마케팅에서 모범적인 자료로 쓰이고 있다.[41] 다만, 네오 아키라는 포지션 변경이 너무 잦은 탓에 타츠나미 카즈요시와 주니치 프런트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42] 사실 따지고 보면 큰 연관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토에이가 마지막으로 팀을 운영했던 1972년은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시작한 지 1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고 슈퍼전대 시리즈메탈히어로 시리즈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재밌게도 위의 탈의 모티브인 비밀전대 고레인저의 최종보스인 흑십자총통을 맡았던 배우 야나 노부오 옹은 원래 그 야구단(토에이 플레이어즈 시절)의 투수 출신 배우다.[43] 사실 이 해에 팀 실책 1위를 찍을 정도로 수비 상태가 매우 부실했다.[44] 키츠네 댄스 그 후가 더 압권인데 The Fox가 엔카 가수 야마우치 게이스케의 곡인 恋する街角랑 리믹스 되어 당시 일부 한국 사람들이 충격 아닌 충격을 먹기도 했다(..)[4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텍사스 레인저스를 거쳐 2015년 닛폰햄 복귀.[46] 일본시리즈에선 작년에 4승1패로 박살낸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똑같은 전적으로 박살나면서 주니치의 53년 만의 일본시리즈 V2를 허용했다. 심지어 패배가 결정된 5차전은 합작 노히트 노런까지 당했다.[47] 원래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시포 예정인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에게 시구를 양보하고 본인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48]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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