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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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
취소선은 부정적으로 언급된 인물이다.
[1] 실제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후대 인물 허균이 창작한 의적 홍길동을 언급한 건지 논란이 있지만 간접적인 언급으로 소설 홍길동전에서 대중화된 의적 이미지를 노래 가사로 사용했으므로 저자 허균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홍경래
洪景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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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화
출생
1780년[1] (정조 4)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
사망
1812년(순조 12) 5월 29일 (향년 32세)
본관
남양 홍씨
복무
조선 농민군
1811년 ~ 1812년
신장
140cm[2]
부인
최씨 부인
자녀
슬하 1남
후손
홍기조

1. 개요
2. 생애
3. 여담
4. 대중매체에서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조선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의 주도자.

출신 지역은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 아버지를 포함한 가계를 알 수 없으며 아들만 4형제인 집안의 셋째로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었다.


2. 생애[편집]


외숙부에게 학문을 배워 평양 향시를 통과한 이후 1798년 사마시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가 덜했던 김조순 대에 일어난 것까지 감안하여 세도 정치보다는 당시 서북 지방에 대한 지역 차별을 등에 업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조 이후 문과급제자 통계를 내보니 평안도 출신이 16%나 되는 등 한양을 제외한 지역 순위 1위였지만 집안 출신을 강조했던 조선 후기 사정상 평안도 출신은 고위직은커녕 임관도 되기 어려웠다. 집안이 좋으면 과거 급제를 못해도 벼슬을 하는데 집안이 안 좋으면 문과 급제를 해도 관직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돌았던 시절이었다. 평안도는 청나라 무역의 주요 관문으로서 경제적으로 성장한 반면 푸대접은 여전했다.

그는 유교적 교양은 물론 병서, 제반 술서, 특히 정감록 등에 통달했다고 한다. 홍경래의 신분은 대개 몰락 양반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평민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전답이나 노비를 지니지 못한 빈궁한 처지에 있었다.

결국 홍경래는 과거에 실패한 뒤 출세를 포기하고 집을 나와 풍수로서 각지를 전전하며 빈한한 생활을 하였는데 이때 당시 과거 제도의 부패상,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체험하면서 사회의 모순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홍경래는 당시 세도가들의 폭정과 민중 탄압을 비판하고 민중의 희망을 반영하여 초인이 나타나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정진인설'을 봉기의 가장 중요한 이념으로 제시하였다. 신라 말기에 미륵이 나타난다며 봉기했던 궁예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뛰어난 무술 실력을 지니고 있어 직접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기도 하였으며 병법에도 밝아 다양한 전술로 관군과 대항하였다고 전한다. 차별 받던 서북민들을 규합해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했고 최후의 전투인 정주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3. 여담[편집]



  • 성장 과정과 과거 응시 등에 대해서는 19세기 후반 작자 미상의 한문 단편 소설인 <홍경래전>으로 인해 전래되고 있기는 하나 <홍경래전>에 기술된 모든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 북한에서는 남한에서보다 더 높게 평가한다. 이는 홍경래가 평안도 출신이라는 점 및 반봉건적인 성향을 보인 인물이라 그런 듯하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맹꽁이 서당>에서는 여러모로 비범한 인물로 나오는데 <맹꽁이 서당>은 야사가 실리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홍경래의 경우에도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나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경우가 많다. 홍경래가 어렸을 때 역수 장사가 대낮에 황제의 머리를 날려버린다는 내용의 를 쓰지를 않나, 축지법을 쓰지를 않나, 거구의 장사 홍총각을 반란군으로 포섭할 때 홍총각을 가볍게 개박살내고 심지어는 팔씨름 대결에서 정면으로 이겨버리는 아주 센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

  • 2001년 MBC 드라마 <상도>에서는 배우 박찬환이 연기했으며 처음에는 홍대수라는 이름으로 임상옥을 찾아가 장사를 배우고 싶다고 말해 만상 본관 서기까지 가는 등 유능한 인재로서의 모습을 보였으나 임상옥의 인품을 보고 자신의 거사의 동참하게 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그게 통하지 않자 만상의 금고에서 자금을 훔쳐서 달아난다. 그외에도 다른 신분으로 다녕한테서 반란 자금을 얻어내는 바람에 훗날 임상옥과 박다녕이 반란 자금 지원 혐의로 관아에 끌려가게 만드는 등 홍경래의 이 행동은 본의 아니게 상도 후반부 대부분을 임상옥과 박다녕을 괴롭히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역사대로 홍경래의 난을 일으켜 반란을 일으켰으나 관군에게 진압되어 죽게 되고 상도 마지막회에서 임상옥이 홍경래와 반군들의 시신을 묻은 장소를 찾아가고 그 곳에서 역시 홍경래 때문에 인생이 망한 김삿갓과 임상옥이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상도의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 웹툰 <버프소녀 오오라>에서는 외계인 선생님 중 1명의 이름이 홍경래이다. 약칭 H로 불린다. 이름만 따왔을 뿐 실제 인물과의 관계는 없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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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71년 생이라는 설도 있다.[2] 키가 4척 5촌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조선에서 1척이 31.1cm인 것을 보아 31.1*4.5=140cm라는 신장이 나온다. 이는 161cm가량으로 추정되는 당시 조선 남성 평균키보다 확연히 작은 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