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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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및 시신 처리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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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자연장
(수목장 · 잔디장 · 화초장)
수장
수분해장@
해양장(바다장)
빙장×
퇴비장×
천장(天葬)×
(조장× · 풍장×)
○ 법률상 허용, × 불허
※원칙적 불허하나 예외 있음, △ 유권해석상 허용, @ 동물만 허용








1. 개요[편집]


2. "화장"이란 시신이나 유골에 태워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화장()은 시신을 에 태우는 장례 방법을 말한다. 영어로는 cremation이라고 한다.


2. 과정[편집]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화장은 사망 또는 사산 시각을 기준으로 24시간 이후부터 가능하며[1] 주검을 고열의 풀무에서 완전히 태우는 방법으로 행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낙차형 화장 과정

화장은 크게 화장장 안에 주요 설비가 화장로 내에 있는 일체형과 그 위에 분리되어 있는 분리형이 있다. 분리형 중에는 대차라는 내화성이 있는 운송 장비 위에 운구를 올리고 화장한 후 남은 뼈를 모으는 대차식과 대부분 위아래로 나오는 불로 태우고 밑으로 떨어진 뼈를 긁어모으는 낙차식이 있다. 효율은 대차식이 훨씬 안 좋지만[2] 유교 사상으로 인해 시신의 훼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동북아시아의 경우는 대차식을 사용한다.

대차식은 메인 버너와 보조 버너로 나누어지며 연소실도 1차 연소실[3]과 2차 연소실로 나누어지는데 1차 연소실은 메인 버너를 사용해 관과 시신을 소각하며 셋팅 온도는 약 700~750℃ 정도로 되어 있고 2차 연소실은 1차 연소실 위에 있어서 보조 버너를 사용해 불완전 연소된 가스들을 다시 태워낸다. 대차 하부에서 들어오는 공기로 인해 연소제어가 어려워 잘 안 되기 때문. 참고로 주 버너는 보통 안쪽 상부 모서리에 장착되어 있으며 가스 화장로의 경우 40~50kg/h의 연료를 사용해 화장이 진행된다.

여담으로 관과 부장품, 시신의 살을 태울 때 들어가는 연료는 그리 많이 들지 않고 남은 뼈를 가루로 만들고 보관할 수 있도록 바싹 태우는 데 드는 연료가 더 많다고 한다. 이것도 제어 시 프로그램이 있는데, 살이 거의 다 탄 이후부터 설정온도가 화장로마다 다르지만 900~1,000℃로 올라간다.

화장장 외부에는 굴뚝이 있는데 가스를 이용해 시신을 화장하면 수증기와 불완전 연소된 가스 등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기 화장로가 많아져서 친환경적인 처리가 가능해져 굴뚝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관내에 화장터가 없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유족이 타 지자체에 있는 화장터에 무려 100만원 가량을 지불하여 재정에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4] 이는 외지인의 화장시설 이용을 억제하려는 측면이 크며 님비에 대한 일종의 페널티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화장시설이 없는 지자체는, 관내 거주자가 사망하여 화장한 경우 화장지원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시체를 태우면 하얀 뼈가 남는데, 이걸 갈아 그 가루로 만들며, 보통 '봉안당'에 모시는 경우가 많고 매장문화와 결합하여 봉안묘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각종 매체에서 화장된 뼛가루를 강가에 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국에선 오염 문제로 인해 불법이다. 역시 산이나 공중에서 흩뿌리는 것도 불법이며, 허가받은 장소[5]에서만 뿌릴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바다에 뿌리는 건 정부에서 문제가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뼈도 2차 가공을 해서 사리 비슷하게 만드는 보존기술이나 고온·고압을 가해서 다이아몬드화(化)시키는 기술도 개발된 적이 있으며, 반려동물의 화장에는 이미 대한민국에서도 널리 사용 중이다.

【화장이 끝나고 분골하기 전의 유골(사람에 따라 혐오감이 들수 있음)】
파일:Srome.jpg


'수화장', '바이오 화장'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장례법도 등장했는데 2000년대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시신을 불로 태우는 것은 아니고 아니 그럼 '화'장이 아니잖아 물에 담가 알칼리 분해를 시키는 것이지만 뼈만 남긴다는 것은 맞기 때문인지 아예 표현 자체를 'water cremation', 'bio cremation' 이라고 명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시신을 강알칼리성 용해액에 넣고 고온으로 가열해 수시간에 걸쳐 뼈만 남기고 용해시키는 방식. 완료된 후에는 보통의 화장처럼 뼈를 분골하여 유족에게 인도하게 된다.


3. 종교별 인식[편집]



3.1. 불교[편집]


원래 불교에서 유래한 장례법인 만큼 불교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정화하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장례문화로 들어와 고려시대까지 화장을 했다. 불교에서 화장은 다비식이라고 부른다.


3.2. 힌두교[편집]


불교에 영향을 준 힌두교도 화장을 한다. 민족과 문화가 매우 다양한 만큼 많은 장례식이 있지만 보통은 힌두교 성직자와 임산부 그리고 뱀에 물린 사람과 15세 이하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화장을 하며 갠지스 강에 유골을 뿌린다.


3.3. 유교[편집]


중국의 역대 왕조들과[6]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들어 국가 이데올로기가 유교로 바뀌면서 매장이 더 일반화되었다. 유교문화에서는 사람의 신체는 그 부모가 물려준 자산이니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으로 죽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불교식 장례법인 화장을 금지하고 단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1474년 성종시대의 실록에는 예조에서 "요즈음 우민들이 혹은 요승들에게 유혹을 당하고, 혹은 장사(葬事) 비용을 아껴서 어버이의 시체를 불로 태우며, 심한 자는 자신의 질병을 가지고 죽은 자의 빌미 때문이라 하여 심지어는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태워버리는 자까지 있으니, 풍속과 교화가 이렇게 퇴폐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엄격하게 금지시키게 하소서."라고 아뢰자 국왕이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이때도 승려의 다비식 화장은 불법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려신분으로 매장된 승려가 있었으니 영규대사 참조.


3.4. 기독교[편집]


기독교에서도 신체를 매우 중시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기독교 종파들은(특히 서방 교회는) 육체와 영혼의 극단적 이원론을 배격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반한 영혼관을 고백하며 인간의 신체는 페르소나(인격)를 이루는 한 요소임을 믿는다. '신체발부수지부모'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신체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도 의외로 화장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남아 있다. 이는 사실 그리스도교가 발원한 이스라엘 지방은 매장이 대세인 데 반해서 다신교를 믿는 그리스-로마는 화장이 대세였고[7] 이렇기 때문에 화장은 "이교도의 장례법"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여기에 초기에는 영지주의 이단에서 '육체는 인간의 혼을 붙잡아두는 감옥이며, 죽음은 육체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였기에, 이단의 장례 풍습을 거부하는 의미에서 터부시 하였다. 또 유럽에서 영지주의 등 이단을 박멸한 뒤 중세에 들어서도 과거 교육수준이 낮았던 일반 신자들이 '시체가 훼손되면 부활 못 하는거 아닌가?'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고 죽은 다음에 불에 탄다는 것이 지옥을 연상시키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하느님이 사람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믿음도 있다 보니 마땅히 사람이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인식도 있었다.

이러한 거부감 때문에 한때 가톨릭에서는 화장을 금하기도 했고 몇몇 유럽인들은 부활 신앙에 대한 정면 도전의 한 수단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8] 결국 이러한 거부감이 그대로 이어져 중세 유럽에서는 잊힌 장례 풍습이 되었고 전염병이 돌아 어쩔 수 없이 시체를 소각하거나 근세에 들어 종교재판 때 이단자를 화형하는 데나 쓰이는 것이라는 인식이 결정적으로 박혀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장례 방식이 되었다.


3.4.1. 가톨릭[편집]


오늘날 가톨릭에서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과 화장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 즉, 부활 때에는 생전의 육신의 향방에 구애받지 않고 천주의 전능한 힘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육신을 가지고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여전히 매장을 권장하지만, 부활신앙을 부정하거나 훼손할 목적이 아니라는 조건하에 화장도 허용된다고 본다. 이에 교회법 제1176조 제3항은 "교회는 죽은 이들의 몸을 땅에 묻는 경건한 관습을 보존하기를 간곡히 권장한다. 그러나 화장을 금지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반대하는 이유들 때문에 선택하였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대에 들어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터부시하던 문화가 빠르게 옅어졌고, 한국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은 타 종교인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현실적으로 국토가 비좁다보니 매장에 따르는 어려움도 크고, 국가에 따라 법률상의 제약이 많은 경우도 있다는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심지어 교회 묘지에 납골당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16년 8월 15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는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을 발표하여 매장과 화장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첫째, 교회는 죽은 이의 육신을 매장할 것을 권유하되, 둘째,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나는 이유들로 화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화장을 금하지는 않으나, 셋째, 유골은 거룩한 장소에 보존되어야 하며 거주지에 보관하거나, 뿌리거나, 기념물 등에 넣어 보관하는 방식은 금지된다는 것이다. 전문 보러가기

즉,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회·경제·위생상의 이유로 화장하는 경우라도 유골함을 성당이나 묘지가 아닌 자신의 집에 두거나[9] 강, 바다, 산 등에 뿌리는 산골(散骨) 행위[10], 고인의 유골을 가공하여 산 이를 위한 목걸이 등 액세서리로 만드는 행위 등은 교회의 가르침에 반한다. 유골에 대한 존중을 해치거나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는 범신론, 자연주의, 허무주의와 연결될 수 있다.


3.4.2.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편집]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화장을 권장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금지는 아니다. 대신 화장을 하는 자에게는 성전복을 입혀서 화장시킨다.


3.4.3. 정교회[편집]


정교회에서도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신은 인간의 근본성의 일부이며 성령의 성전임을 확인하고 부활 신앙이 있기 때문에 매장을 통한 육신의 자연 부패 진행을 합당한 행위로 가르치는 반면 화장은 하느님이 창조하여 우리에게 부여한 것을 파괴하는 불경한 행위로 본다. 정교회에서는 화장을 결정하면 성당에서의 장례식은 물론 가정집이나 기타 장소에서의 장례식을 금하고 있다. 더욱이 가톨릭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추도식마저도 허용이 안 되며 그 이유는 제사 때 사용되는 제밥에서의 “한 알의 밀”과 임의로 파괴된 “육신”의 관계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나 다른 기독교 교파에 속한 사람들의 화장에 대해서는 반대하지도 않으며 반대할 권한도 없다는 것이 정교회의 입장이다.

한국인 신자들은 이 때문에 매우 곤혹을 치르는 경우가 많은데 매장하기 실질적으로 어렵거나 무엇보다 가족 전체가 정교를 믿지 않는 경우 이런 게 더욱 심해질 수 있다.


3.4.4. 개신교[편집]


개신교의 경우 주로 화장을 시작할 때 화장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고 근래 들어 화장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개신교는 가톨릭이나 정교회 같이 교회 교도권에 따라 교리를 해석, 적용하는 체제가 아니다 보니 여전히 화장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목사도 소수나마 없지 않다. 온수순복음교회 이복순 목사는 “자신의 몸을 화장해 놓고 주님 앞에 가서 항의하고 원망해야 소용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화장을 해도 주님의 재림으로 부활이 가능하다면 화장한 육신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도 가능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3.4.5. 성공회[편집]


성공회 역시 화장예식을 특별히 거부하지 않는다. 성공회 기도서상장예식 부분에 매장예식과 더불어 화장 예식에 사용하는 기도문을 실어놓고 있으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도 '안식의 집'이라는 이름의 봉안당이 성당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3.5. 이슬람[편집]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뿌리를 지닌 이슬람에서도 최후의 심판은 인정하기 때문에 화장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입장이지만 다소 엄격하다. 개별 신도가 화장하는 것을 막는 짓까지는 하지 않으나 쿠란에 의하면 (살아있든 죽어있든) 육신을 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알라만이 가진 권능이라고 하기에 화장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매장을 채택하고 대안책으로 수장을 선호한다. 각각 힌두교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선호되는 인도, 네팔/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스리랑카조차도 소수의 무슬림들은 매장을 고수한다.


4. 국가별 인식[편집]


도시화 비율이 높거나 인구밀도가 높거나 불교힌두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일수록 화장 비율이 높고 도시화 비율이 낮거나 인구밀도가 낮거나 기독교이슬람교의 영향력이 강한 국가일수록 화장 비율이 낮다.


4.1. 대한민국[편집]


과거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1990년대만 해도 청소년, 청년 연령대의 사고사, 자살과 같은 악상(惡喪)의 경우에만 화장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현재는 좁은 국토로 인해 매장 가능 토지가 부족해지고, 묘지로 쓸 토지 가격도 매우 고가이며, 핵가족이촌향도 현상으로, 묘지를 매년 관리하기도 힘들다는 인식[11]이 퍼지면서 화장의 비율이 급속히 높아졌다. 화장이 대세가 된 후에는 선산이 있어 매장할 만한 공간이 있는 경우에도 그냥 화장한 후 유골함을 묘지에 매장하는게 보편적이다.

장례식매장하더라도 이런 저런 이유[12]로 수 십년에서 50년~70년 후에 개장해서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따지고 보면 왕릉이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명인의 매장 묘지 등의 경우를 제외하면 결국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화장된다고 봐야 한다.

연도별 화장률
연도
화장률(%)
연도
화장률(%)
1993
19.1
2011
71.1
1994
20.5
2012
74.0
2001
38.5
2013
76.9
2002
42.6
2014
79.2
2003
46.4
2015
80.8
2004
49.2
2016
82.7
2005
52.6
2017
84.6
2006
56.5
2018
86.8
2007
58.9
2019
88.4
2008
61.9
2020
89.9
2009
65.0
2021
90.8
2010
67.5
2022
91.6[13]

한국에서는 2022년 기준 전국 화장률 91.6%를 차지하여 가장 보편적인 장례법이다.한국장례문화진흥원 원래 매장20세기까지만 해도 대세였지만 좁은 국토로 묘지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전통적 유교적 관념의 약화와 국가적 홍보로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사실 조선 이전 고려, 통일신라 때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이 대세였다.[14]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또 경주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처럼 매장이 대세였고... 결국 매장(고대) → 화장(중세) → 매장(조선~20세기) → 화장(21세기)으로 돌고 돈 셈이다.[15] 물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영향으로 화장을 하는 경우도 생겨나긴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본격적으로 화장이 보편화된 건 21세기 들어서로,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는다.[16]

도시 규모가 클수록 화장률이 높은 경향이 있다. 부산, 인천, 울산은 96%를 넘고 광역시 이상은 모두 90%를 넘는 데 반해 가장 낮은 제주는 83%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후달리는 관계로 화장마저 지방에서 치르고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 고생을 겪기도 한다.

연령대별로 보면 어린이, 청소년, 청년, 장년층은 대부분 화장을 많이 선호하는 추세다. 반대로 노년층은 매장을 선호하는 비율이 좀 되며 고위층들 역시 아직까지는 매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권재진 전 법무부장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 백선엽 전 교통부장관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전직 총리 및 장차관, 전직 청와대 수석 및 비서관, 전직 국회의장 및 다선 국회의원, 기업 CEO, 군 장성 출신, 고위경찰 출신,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장 이상급 검찰간부를 역임한 사람들, 전직 대법원장 및 대법관들 중에서도 2000년대 후반~2020년대에 매장한 경우가 꽤 많다.[17] 그리고 이슬람교, 정교회 등 화장이 금지된 당사자들도 매장으로 장례를 치룬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매장을 한 경우 분묘의 설치 기간은 30년이고, 이후 1회에 한하여 설치 기간을 30년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최장 60년이 경과하면 어차피 묘지를 철거하고 화장한 뒤 봉안 또는 납골을 하여야 한다(다만 국립묘지나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지정한 보존 묘지 등은 제외). 그런데 분묘의 설치 기간이 지나고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 묘지의 관리인이 임의로 발굴해 화장을 할 수는 있지만, 설치 기간 후 철거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제재규정은 없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토지에 조상의 분묘를 60년 이상 보존하는 것은 자유이고 제재할 근거도 없다. 즉 분묘의 설치기간 제한 규정은 현실적으로 공동 묘지로서의 공설·사설묘지에만 의미가 있다.

집안이 매우 풍족한 부자 집안이거나 혹은 매장을 강력히 선호하는 공무원 가문 집안이라도 본인이 매장을 싫어 할 경우에는 대부분 화장을 한다. 대표적 사례는 후술. 다만 선출직 공무원의 경우는 출신이 출신인데다 역임했던 자리에 따라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되는 경우가 있어 일반 공무원들보다는 화장 비율이 좀 더 높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화장된 사례 또한 이에 기인한다.[18]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경우 매장을 선호하는 집안이라도 대부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매장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IATA 규정에 의해 서양식 엠버밍을 해야 하고 목관이 아닌 철제, 구리 혹은 알루미늄 관을 사용해야 하는데다 시신 운송료도 미국&중국 등 외국 → 한국 기준으로 1천 만원이 넘기 때문에 대부분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유명인사라도 대부분 시신이 화장되어 유골이 운구되는 경우가 많다. 시신이 온전히 보존된 채로 엠버밍되어 운구된 경우는 이승만대통령, 정일권국무총리, 송요찬내각수반, 조병옥내무부장관, 최순주국회부의장,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삼성그룹 前 회장인 이건희의 막내딸인 이윤형미국에서,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중국에서, 김태동보건사회부장관, 김녹영 前 국회부의장은 일본에서,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순직한 17명의 고위공무원들은 미얀마에서 시신이 운구되었기에 예외다.

아직까지 (불교 신자가 아닌 한) 유교 사상이 제법 남아 있는 고령층들은 매장을 선호하며 매장하지 않고 화장해도 유골은 땅에 묻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당장 국립제주호국원 건설시 납골탑 내지 납골당 형태만의 안치만을 허용하겠다고 하자, 제주의 보훈단체들은 "숭고한 희생정신을 깎아내리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나셨다.제주일보 결과적으로 제주호국원은 예외적으로 안장을 허용해 주었다.[19] 화장 문화의 완전한 정착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도 과천시, 광명시, 김포시,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 남양주시, 하남시경상남도 양산시 등은 자체적인 화장시설이 아직도 설치되지 않아서 서울추모공원이나 인천가족공원이나 수원 연화장이나 함백산 추모공원 혹은 부산영락공원 내지 울산하늘공원으로 가야 되는데 관외지역으로 100만 원을 내야 한다. 법적으로 화장시설이 시마다 있어야 하지만 시민들의 반대가 하늘을 찌르기에 무산되었다. 다만 현재 화성함백산추모공원이 건립되어 광명시, 부천시, 시흥시, 안산시, 안양시, 화성시의 경우 관내와 동일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관내 혜택이 없는 경우에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5조에 의해 문제가 되지만 지원금을 안내하고 근처 화장장에 협의를 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어느 나라들이 그렇지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가난한 집안에서나 불로 태우는 화장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1998년 SK그룹 前 회장인 최종현이 유언으로 화장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제로 최종현의 시신은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유골은 선산 봉안묘에 안장됐고 그렇게 상류층에서도 화장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LG그룹 前 회장인 구본무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했는데 유골은 선산인 화담숲(경기도 광주시)에 안장됐다. 이후 구자경 前 명예회장도 화장 된 뒤 범LG가 선영에 유골이 안장되었다.[20] 또한 정계 거물이던 김종필 前 국무총리[21]와 노동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던 정의당노회찬 前 국회의원,[22] 정미홍대한애국당 사무총장, 새누리당정두언 前 국회의원과 자유한국당서용교 前 국회의원[23] 또한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또한 4.19세대의 상징이자 민주화운동의 거물이던 이기택 前 민주당 총재도 화장 후에 4.19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으며[24] 김정렴 前 대통령 비서실장도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25] 이한동 前 국무총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으나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했다.[26] 이완구 前 국무총리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후 충남 청양에 있는 선영에 유골이 안장되었다. 김홍일 前 전 국회의원, DJ장남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하고 광주에 5, 18국립묘지에 안장되어있다. 박원순 前 서울특별시장도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되어 경상남도 창녕군 선산 봉안묘에 안장됐으며 안상영 前 부산광역시장도 부산영락공원에서 화장되어 부산영락공원 봉안당에 안장되었다.[27] 임택근 前 아나운서도 사망 후 화장하고 봉안당에 안치되었다. 이어령 前 문화부 장관, 염보현 前 서울특별시장, 최병렬 前 한나라당 대표도 별세한 뒤에 화장을 하였다.[28]

그리고 베트남 전쟁의 영웅이던 채명신 前 육군 중장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전우들의 곁에 묻히고 싶다며 국립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에 국립서울현충원의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 안장된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역임한 적이 있는 영화배우 최무룡도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한국인 최초의 WHO 사무총장인 이종욱도 미국에서 화장된 후에 국내로 운구되어서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29] 그리고 공안통 검사였던 변창훈 前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역시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매장 자격이 충분했던 군 장성들도 추후로는 화장 될 비율이 늘어나게 된다. 대전현충원의 장군묘역이 모두 차면서, 장성들도 화장 후 장병.장군 통합묘역에 안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군 최홍선 준장부터 시작해서 점차 장군들도 화장 후 안장되도록 법안이 바뀐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과 문신들과 민족반역자들 중에도 죽은 뒤에 매장되었다가 후손들에 의해 파묘되고 화장된 사람들이 몇몇 있다. 임진왜란일본군에 의해 묘가 파헤쳐져 강제로 화장된 조선 성종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김좌근, 김병기, 김병국, 김병학 등 안동김씨 실권자들과 조선 고종의 종친들 몇몇이[30]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완용, 송병준 또한 대표적인 사례다. 추가로 명성황후 또한 화장되었지만 조선 성종처럼 의도치 않게 을미사변으로 일본 낭인들에 의해서 강제 화장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참수형이나 능지처참에 처해진 경우도 화장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31]

정재계 뿐만 아니라 최진실, 신해철, 장자연, 김주혁, 종현, 구하라, 권리세, 고은비, 설리, 박용하 등 요절한 인기 유명 연예인들의 장례와 신성일, 김흥기, 박용식, 김영애, 김상순, 조경환, 송해 등 원로 연예인들의 장례도 화장으로 보편화되었다. 다만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는 사상은 남아있어 부유층이 화장을 할 경우 대부분 선산에 있는 가족묘로 직행, 거기에 유골을 봉안하거나 안장하며,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서울추모공원과 같이 시설이 좋은 화장터를 찾는 경우 또한 있다.


4.1.1. 국가원수의 경우[편집]


2009년 노무현 전(前) 대한민국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수원시연화장에서 화장되었고 봉하마을에 안장되었다. 본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 매장될 예정이었지만 고인의 유언을 따라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높으신 분들은 매장을 하고 묘지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노무현의 화장[32]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화장 문화가 보편화된 이후에 서거한 첫 번째 대통령이기도 했다.

뒤이어 2021년에는 노태우 전(前) 대한민국 대통령도 본인의 유언에 따라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밟은 후에 골분이 파주 동화경모공원의 평장묘[33]에 안치되었다. [34]

노태우에 이어 한 달여 뒤에 사망한 절친인 전두환 전(前) 대한민국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 사상 3번째로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35]

향후 대통령들도 자격상 국립묘지에 매장될 수는 있으나 위와 같은 선례를 보았을 때 앞으로도 화장 장례를 치르는 대통령이 많아질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 묘지에 안장되더라도 시신을 그대로 에 넣어 매장하는 과거 방식이 아니라 화장한 뒤에 골분을 국립 묘지에 안치하는 형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2. 북한[편집]


북한에서는 아예 장례법 제5조에 "사람이 사망하면 화장한다. 그러나 부득이한 경우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아 지정된 장소에 묘를 쓸 수 있다."고 화장을 법으로 정해 못박아 두었다.

하지만 화장에 필요한 연료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36] 북한에서는 화장하는 비용이 매우 비싸서 일반 주민들은 화장은 엄두도 못 내며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매장을 할 수 있는 땅은 돈이 거의 없어 구할 수도 없다. 때문에 부모님이나 친척이 사망하면 시신을 그대로 야산이나 뒷산에 몰래 묻는 경우나 아무데서나 시신에 불 붙여서 화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가난한 집안에서나 불로 태우는 화장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남한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심지어는 화염방사기를 이용해서 화장하기도 한다고.

탈북자들 중 북한에서 부모님이 사망한 경우 부모님을 그대로 뒷산이나 야산에 묻어놓고 온 것이 매우 슬프고 죄송하다고 아직도 그게 너무 마음에 걸린다고 방송에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37]

실제로 구글 어스로 북한 각 지방의 작은 마을들을 보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을 뒤에 공동묘지가 수십 기씩 있는 게 보인다. 그런데 공동묘지가 확인되는 걸로 보아서는 매장도 합법적으로 가능한 모양이다.

북한은 1999년에 세워진 평양시 낙랑구역에 위치한 오봉산봉사사업소만이 유일한 화장터이다. 북한에서 화장장을 사용하려면 몇 가지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소련블라디미르 레닌처럼 보존처리되어 현재 금수산태양궁전에 전시되고 있다.[38]


4.3. 중화권[편집]



4.3.1. 중국 본토[편집]


중국은 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국토에 비해 인구는 세계 2위 13억 명 이상이며 묘지로 쓰이는 토지가 너무 많아 살 사람이 쓸 땅이 부족해지고[39] 도시화로 인해 자손들이 관리하기도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화장의 비율이 높아졌다.

1956년에 마오쩌둥이 장묘문화혁명을 주도하여 모든 인민들은 사망한 뒤 화장을 의무화할 것을 발표하였고 이를 헌법으로 제정했다. 아직 유교적인 영향이 남아 있는 인민들은 화장을 굉장히 싫어했지만 공산당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한 끝에 화장하는 것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일부는 매장을 허용해도 미국처럼 관을 세워서 묻는 직립매장 형태만 허용하기도 한다.

일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전통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매장을 허락한다. 대표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후이족. 이에 "한족들의 전통은 전통이 아니냐?"며 반발하는 중국인도 있는 듯.#

중국의 역대 고위층들은 대체로 매장으로 장사를 지내왔다. 특히 진시황릉은 전 세계에서 1등으로 무덤 규모가 크고 화려하니 말 다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위층들도 화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우언라이덩샤오핑도 장례 간소화를 위해 화장하여 저우언라이는 중국 전국에, 덩샤오핑은 남중국해에 유해가 뿌려졌다.[40]

여담으로 중국의 최고 비만 남성이 사망했는데, 300kg이라는 거대한 몸무게로 인해서 시신이 화장장 소각로에 못 들어가는 바람에 아예 화장이 불가능해지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매장을 특별 허가한 희귀한 사례가 있다. 대신 일정 기간만 매장을 하게 되며 이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개장을 해서 다시 화장을 해야 한다.

또 관 대신 현대 쏘나타에 탑승시켜 묻어달라는 자동차 애호가[41]도 있었는데, 이런 기이한 사례에 중국 정부에서 특별 허가를 해 줬다고 한다.

홍콩마카오의 경우 대한민국 수도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수준의 인구밀도와 좁은 땅덩어리 때문에 법적으로 죽은 이를 6년 이상 매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며, 매장한다 하더라도 6년 이후에는 파묘하여 다시 화장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매장에 드는 돈이 저렴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 한화로 약 1,500만 원 이상 드는 현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장을 선택하는 편이다. 화장 후 바다에 산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공동묘지는 납골당을 겸하여 납골당 빌딩이 같이 들어서 있다.


4.3.2. 본토 외 중화권[편집]


타이완 역시 빠른 도시화와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화장 비율이 급속히 높아졌으며 현재 96.8%의 높은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도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여서 공동묘지로 쓸 지역이 초아추캉 지역밖에 없는 실정이나, 국민들 상당수가 중국계라서 화장을 기피하는 현상이 나왔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1998년에 장묘법을 개정해 매장 기간을 15년으로 제한하고 그 뒤로는 개장해서 화장 처리를 하도록 했다.[42] 2019년 기준 80.6%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4.4. 일본[편집]


불교 전통에 따라 화장이 정착해 있는 일본에서는 99.97%의 확률로 화장한다고 하며, 세계 제일의 화장율을 보인다.[43][44] 기독교를 믿는 극소수의 일본인들도 절대다수가 화장을 한다. 이것은 에도 시대에 법령에 따라 지역 주민들이 지정된 이나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45]에서 장례절차를 밟게 됨으로써 굳게 뿌리내렸으며, 일본 주택가에서는 화장 시설이나 묘지 팻말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불교 문화의 영향이 강하다 보니 화장 자체를 다비(荼毘)로 부른다.

덕분에 일본에서 화장 시설은 혐오시설로 취급받지는 않지만[46] 인식이 아주 좋은 것만은 아니라서 도시에 있는 화장 시설의 경우엔 의무적으로 수증기까지 나오지 않게 하는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일반적인 먼지, 매연 정화 장치는 수증기까지 걸러내지는 않는데, 이 수증기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것조차도 유해한 공기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황족들은 대체로 매장으로 장사를 지내왔다. 법적으로 황족 외에는 매장이 불법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로 일부 지역을 매장 금지 지역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와전된 것이다.

도호쿠 대지진 당시에는 화장장까지 모두 파괴되고 희생자가 너무 많은 상황 탓에 시신을 가매장해야만 했다고 한다.[47]


4.5. 몽골[편집]


전통적으로 사람 시신을 짊어진 이 지쳐서 멈춘 곳을 장지로 삼아 그곳에 해당 시신을 묻는 몽골식 매장 풍습을 유지하였으나, 원나라청나라 때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했다. 다만 몽골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것도 숲과 나무가 있는 곳 위주로 이루어졌으며, 초원이나 사막에서는 그냥 평범하게 앞서 말한 몽골식 매장을 하였다.

근현대 이후로는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포함한 도시를 중심으로는 화장 시설이 늘어남에 따라 화장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지만 화장 비율은 7%대로 낮은 편이다.

카자흐족, 위구르족 등 무슬림 소수민족들은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매장을 선호하며, 몽골 내 소수의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또한 무신론자들을 제외하면 정교회의 영향으로 매장을 선호한다.


4.6. 인도[편집]


전통적으로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화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만 카스트 제도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서 그런지 브라만, 크샤트리아의 경우 문제없이 화장을 하지만, 바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의 경우 화장의 비용조차 비싸서 쉽게 못하고 몰래 야산에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임산부나 어린이들이 사망한 경우 시신에 돌을 매달아 갠지스강에 흘려보낸다. 물론 카스트를 따지는 문화가 거의 사라진 도시에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구든 화장을 할 수 있다. 인도에서 화장은 상급 카스트나 엘리트의 상징인 셈이다. 부유한 집안에서는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가난한 집안에서나 불로 태우는 화장을 한다는 인식이 있는 대부분의 전 세계 국가들의 경우와는 정반대다.[48]

다만 무슬림·기독교인·유대인들은 매장을 선호하며, 인도 북부 지역의 티베트계 소수민족들[49]이나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파르시조장을 하기도 한다.

인도의 고위층 중에는 모한다스 간디가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4.7. 미국[편집]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장을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6년에 화장 비율이 50.1%를 기록하면서 매장 비율을 넘어섰고, 2021년 기준으로 57.5%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매장이나 화장을 할 때도 정장을 입고 매장이나 화장되는 경우가 많다.

파일:미국 화장률.png

지역별로는 진보적인 북동부와 남서부의 화장 비율이 높고 보수적인 남부의 화장 비율이 낮다.

공설 화장장을 운영하는 보통 국가들과 달리 사설 화장장의 이용률이 높다. 장의사들이 화장로를 갖추고 있기도 하고, 시신 공시소에는 무연고 시신을 화장하기 위한 화장로를 갖추고 있어 빠르게 많은 시신들을 처리한다.

미국의 고위층들(특히 대통령) 중에는 화장을 한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고 모두 국립묘지나 사립묘지에 매장을 하였다. 다만 닐 암스트롱은 본인의 뜻에 따라 예외적으로 화장을 하여 대서양 바다에 유해가 뿌려졌다. 굳이 따진다면 추후에 버락 오바마가 사망하면 미국 역대 대통령들 중 최초로 화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유명인 중에서는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창시자인 스티븐 힐렌버그가 본인의 뜻으로 화장 후 캘리포니아 해안에 뿌려졌고,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명예 회장인 스탠 리도 본인의 뜻에 따라 화장하였다.


4.8. 영국[편집]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매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대영제국 시절에는 대부분 국민들이 본토나 식민지에 매장을 하였다. 그러나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전부 독립하면서 영국의 영토가 줄어들었다. 영국은 섬나라인데다가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꽤나 높은 편에 속하고, 여기에 비좁은 영국 국토에 매장으로 장례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산 사람이 사용하는 땅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관리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화장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여 점점 보편화되었다.[50] 2020년 기준 80.9%의 영국인이 죽은 뒤 화장을 하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영국의 경우도 한국과 달리 화장이나 매장을 할 때 고인에게 정장을 입힌다.

영국은 인도를 자국에 합병한 이래로 인도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힌두교도들의 화장 문화였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 화장 문화가 처음 들어온 것 자체는 대영제국 때였지만 식민지 개척으로 자국 영토가 넓어져서 화장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가 인도를 포함한 영국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여 영국인들이 시신을 매장할 땅이 부족해지면서 본격적으로 화장이 보편화된 듯하다. 사실 대영제국 시절 많은 인도인들이 영국의 다른 식민지나 영국 본토로 이주했는데, 인도가 독립한 뒤에도 인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영국에 남아 인도계 영국인으로 살아간 인도인들(그 중에서도 힌두교도들)이 토착 영국인들에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영국 왕족 중에서는 최초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동생인 마거릿 로즈가 유언에 따라 최초로 화장되어 안치되었다.

영국의 고위층 중에는 영국 총리 중 최초로 앤드루 보너 로가 화장 되었으며[51] 스티븐 호킹이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다만 일부 인도계 영국인, 파키스탄계 영국인, 말레이계 영국인 등 무슬림들은 여전히 매장을 선호한다. 그리고 영국의 고위층들은 대다수가 여전히 매장을 선호한다.


4.9. 프랑스[편집]


가톨릭의 영향으로 2020년 기준 화장 비율이 39%에 머무르고 있으며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화장 비율이 낮은 편이다. 무기징역수들 등 흉악 범죄자 정도만 화장을 하고 그 외의 경우는 어지간하면 전부 매장을 한다. 부유층이건 빈곤층이건 동등하게 매장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다만 프랑스 역시 화장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는 사형이 폐지되었지만 사형을 집행하던 시절에는 사형수도 화장되었다.


4.10. 중부유럽[편집]


독일의 경우 과거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매장을 선호했으나 21세기 들어 화장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2020년 기준 72%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독일의 고위층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 前 총통이 사망 후에 화장되었다.

스위스 역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했으나 묘지 관리가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21세기 들어 화장 비율이 급속히 높아졌으며[52], 2020년 기준 90%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처럼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현대에도 죽은 뒤 매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많으며, 화장 비율이 40%대에 머무르고 있다. 다만 오스트리아 역시 화장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체코는 공산주의 정권의 영향을 받아 20세기에도 화장이 대세였으며 2020년 기준으로 84%의 체코 국민들이 죽은 뒤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헝가리는 공산주의 정권 시절에도 매장이 대세였으나 21세기 들어 수도인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화장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2020년 기준으로 69%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4.11. 북유럽[편집]


북게르만어권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덴마크바이킹 시절 시신을 실은 선박을 불태우는 독특한 화장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바이킹 전통 장례 문화는 기독교 공인을 기점으로 쇠퇴하였으며, 현재는 바이킹 전통 화장이 부활하지 않고 현대식 화장을 하게 되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화장 비율이 80%를 상회할 정도로 높으나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는 40%대로 비교적 낮다.

핀란드의 경우 전근대에는 스웨덴과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기독교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매장이 대세였으나, 냉전 시절 중립국인 것과 별개로 소련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면서 소련으로부터 화장 문화가 들어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기준 57.3%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화장을 하는 핀란드 국민들은 대부분 루터교회 신자나 무신론자이며, 핀란드 정교회 신자들은 핀란드와 소련의 대립에 따른 영향으로 정교회 문화가 더더욱 보수화되면서 현재까지도 매장을 선호하게 되었다.[53]

발트 3국의 경우 리투아니아라트비아는 보수적인 기독교 문화가 발달하여 매장을 선호하지만 에스토니아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문화가 이민족 지배자 위주로만 발달하고 토착 에스토니아인들은 제대로 된 기독교화가 덜 되다 보니 소련 시절에 생겨난 무신론의 영향이 더더욱 강해져서 화장이 많은 편이다. 물론 에스토니아에서도 소수의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은 정교회의 영향으로 소련 시절과 달리 매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빛의 신인 발두르가 아내인 난나와 같이 바이킹 전통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스웨덴에서는 세계 최초로 빙장을 개발했으나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았다.


4.12. 남유럽[편집]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시절에는 화장이 보편적이었으나 로마 제국기독교 공인을 기점으로 화장 문화가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후에는 이슬람교의 영향이 더해지고 그리스 왕국으로 독립한 후에는 보수적인 정교회 문화가 강하게 자리잡으면서 현재 그리스에서 화장 문화는 사실상 완벽하게 씨가 마른 상태다. 그리스에서 절대다수의 정교회 신자들과 소수의 무슬림들이 공유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게 화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몇몇 무신론 성향 그리스인들은 화장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정교회 신자들과 무슬림들[54]에게 손가락질을 당한다. 다만 그리스 경제 위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화장을 선호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선산을 마련하는 비용이 어마무지하게 비싼데다가 묘지 관리도 만만치 않아서 금수저들이 아니면 매장을 할 수 없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런 듯. 다만 그리스에서 명백한 상류층인 재벌들과 공무원들은 여전히 매장을 선호한다.[55]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절에는 화장 문화가 존재했지만 이쪽 또한 그리스처럼 로마 제국기독교 공인을 기점으로 화장 문화가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근현대 이후로 가톨릭이 화장에 대해 관대해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화장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 전사자들(아킬레우스, 헥토르, 파트로클로스 등)을 포함해 반신인 헤라클레스살아 있는 채로 장작더미에 누운 채로 화장되었다.[56]

스페인과 포르투갈 역시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서 아직까지 화장 비율이 낮은 편. 다만 바르셀로나나 리스본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 지역은 화장 비율이 50%를 넘어서면서 매장 비율을 추월했다.

튀르키예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현지 기독교 종파들(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시리아 정교회) 모두 화장에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화장비율이 제로에 가깝다.[57] 외국인이 화장을 하려 해도 시설이 없어서 못할 정도다.


4.13. 폴란드, 아일랜드[편집]


가톨릭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으로 매장이 대세였으며 현대에도 화장 비율이 20%대로 낮은 국가들이다. 그나마 화장을 하는 경우는 폴란드에서는 무신론자가 대다수이고 아일랜드에서는 인도계 힌두교도들이 대다수다.


4.14. 러시아[편집]


정교회 문화 때문에 화장은 금기시되었고 땅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옛날부터 매장이 많았다. 소련 시절 인민에게 공짜 별장+180평이나 되는 땅을 뿌려줄 정도로 땅이 남아도는 나라고 화장의 이점도 없었기 때문. 소련으로 넘어오면서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 때문에 원한다면 화장도 허용되었다. 모스크바 한가운데 있는 크렘린 벽 묘지는 소련의 위인들을 안장한 곳인데 시내에 시신을 매장할 수 없어서 화장한 재를 안치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화장을 금지하는 정교회가 다시 득세함에 따라 도로 매장이 대세가 되었다. 칼미크인, 부랴트인, 투바인으로부터 전파된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을 선호하는 이들도 존재한다.[58]

소련의 초대 인민위원장 레닌은 죽은 뒤 방부처리되어 레닌 영묘에 안치되었다. 본인은 레닌그라드의 어머니 묘지 옆에 묻히기를 원했지만 스탈린이 수많은 조문객을 보고 체제선전을 위해 보존처리를 제안해 이의 없이 그대로 박제되었다. 스탈린도 죽은 뒤 레닌처럼 방부처리로 안치되었지만, 후임 서기장인 흐루쇼프[59]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면서 안치된 스탈린을 끄집어내 강제로 화장시켰다. 그 외에 스탈린의 정적인 레프 트로츠키 역시 망명지인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암살당한 후 화장되어 코요아칸의 본인 집 마당에 묻혔다. 다만 러시아는 중국&북한과는 달리 공산 정권이 진작에 무너진 관계로 레닌을 위인 중 한 명으로 볼 뿐 더 이상 신격화하진 않기 때문에 레닌의 시신을 화장시켜 가족 곁에 묻자는 여론과 논쟁이 존재한다.


4.15.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편집]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했으나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매장으로는 묘지 관리가 힘들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화장 비율이 높아졌다. 2019년 기준, 캐나다는 73%, 호주는 69%, 뉴질랜드는 75%의 화장 비율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인구밀도는 매우 낮으며 게다가 캐나다는 국토까지 넓지만 국토 대부분이 오지라서 땅을 파서 묻는 매장을 하기가 힘들다. 매장에 필요한 중장비들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한 오지들이 많다.[60] 다만 여전히 고위층들은 매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5. 장점[편집]


효율성이 압도적이다. 일단 시신을 완전히 뼛가루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매장에 비해서 차지하는 무덤 비율이 극도로 작아져 매장에 비해서 토지 절약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매장에 비해서 가격이 매우 싸다. 매장은 장례식 과정 자체의 비용이 굉장히 비싸며 토지 마련, 무덤 만들기, 비석 세우기 등으로 온갖 골머리를 앓게 된다. 거기다가 장례식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며 성묘 등 온갖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화장은 가족묘에 안치하는 경우의 성묘를 제외하면 이러한 사항이 일절 없다.[61]

감염병 등의 전파 가능성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화장 과정에서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세균이 사멸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일 경우 IATA의 규정에 의하면 서양식 엠버밍을 한 뒤 철제, 알루미늄 혹은 구리 관에 모셔야 하고, 시신 운송료도 미국&중국 등 → 한국 기준으로 800 ~ 1,300만원이나 하여 비용이 상당하다. ~전용기가 있는 회장님 조차 시신으로 들어올때는 행사용 LD6 컨테이너에 실려서 여객기 화물로 들어왔다~ 따라서 높으신 분들 내지 엄청난 유명 인사들이나 금수저 재벌들이 아닌 이상 현지에서 화장을 한 뒤 국내로 운구하며, 그 유명 인사들도 금수저 재벌이 아닌 경우 웬만하면 현지에서 화장하여 국내로 유골을 운구하는 방법으로 옮긴다. 심지어 일부 금수저들도 효율성을 따져서 화장으로 유해를 옮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따라서 해외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사망 즉시 유해 귀국을 해야 할 경우 아무리 매장을 선호하는 집안일지라도 대부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반대로 유골을 국내에서 해외로 운반하기에도 마찬가지로 상당히 간편하다. 이민 등으로 해외에 영구적으로 거주해야할 일이 생길시 유족 입장에서 유골을 비행기에 싣고 가기에 용이하다.

6. 단점[편집]


일산화탄소, 미세먼지 배출로 인한 환경 문제가 있고, 시신을 불로 태워 확인사살을 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과거 고대 시절에는 불교 승려 아니면 정말로 반란을 일으키거나 살인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만 화장을 했을 정도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전부 매장을 했었는데 유족이 범죄 같은 것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화형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어 화장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굳이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현대에도 마찬가지로 고인을 불로 태우는 것을 확인사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화장한 유골에서는 DNA 분석조차 불가능하므로, 고인의 특정성이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장례식장 등에서 시신이 바뀌는 경우가 가끔가다 생기는데[62], 화장해서 분골[63]한 이후에는 시신 바뀌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다. 봉안당에 안치된 골분을 누군가가 바꿔치기해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특히 천재지변도 조심해야하는데 홍수, 지진으로 서로 섞여서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납골당이 대부분 지상건물이라서 거의 발생하지는 않으나 예전에는 지하인 납골당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던 사고이다.

전술했듯이 부유층들은 매장을 하고 빈곤층들은 화장을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화장 문화가 정착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아서, 화장을 하는 집안이라도 부유층의 경우 납골당에 안치하지 않고 선영에 가족 납골묘를 만들어 그곳에 안치하려는 경향이 강하긴 하다. 물론 가족 전용 납골당을 만드는 게 그냥 매장하는 것보다 상당히 저렴하긴 하지만.[64]

또한 유전자마저도 소멸되기 때문에 고인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에는 상당히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나 부검을 시도하기 전에 유족 측에서 시신을 멋대로 화장한 탓에 진실을 영원히 밝혀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수두룩하다.[65] 이런 경우 매장처럼 시신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장례법이었다면 사건 해결이 가능했을 상황이 많다.

화장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모든 것을 목격해야만 하는 장례 절차도 문제다. 관이 가열로로 들어가면, 당연히 불길만으로 시신이 완전히 재가 되진 않기에 잔해가 재와 범벅이 되어 다시 나오는 것이 정서에 안 좋다.[66] 또한 유골 수습 시 빗자루와 쓰레받기 또는 그와 비슷한 물건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봐도 바닥의 쓰레기를 쓸어서 청소하는 것과 비주얼이 비슷해서 여러모로 뭣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달리 더 좋은 방법이 있지도 않은 게 문제.[67]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화장 전문 시설을 갖추고 화장을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나, 불교 승려의 다비식이나 후진국에서는 나무를 쌓고 시신을 화장하는 문화가 있는데 승려 다비식은 완전히 태우는 것이 가능하나 후진국에서의 화장은 당연히 시신을 완전하게 태우거나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장 과정에서 시신의 부산물이 많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들도 재와 함께 강가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수질오염으로 인한 질병의 주 원인이 된다. 하지만 워낙 생활에 밀접하게 자리잡은 문화라 제재도 불가능한 수준. 대표적인 예로 인도갠지스 강에는 심심찮게 반쯤 불탄 시신이 썩어서 떠다니기도 한다.

화장을 하는 화장시설은 대표적인 님비현상의 대상이라서 시설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7. 주의사항[편집]


만약 사망자의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거나 또는 사망한 이유가 범죄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 절대 정식 부검 절차 없이 시신을 함부로 화장해선 안 된다.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후 장례를 서두른다는 핑계로 피해자의 시신을 화장해 증거를 인멸한 사례가 존재하는데 이런 경우 법조계에서도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굉장히 힘들어한다. 화장을 해서 뼛가루만 남으면 DNA 검사마저 할 수 없게 되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이는 곧 가장 중요한 물증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파기환송까지 합쳐서 5심까지 간 적이 있었을 정도다.[68] 결국 최종적으로 유죄가 인정되긴 했지만 시신을 섣불리 화장해선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죽은 게 확실한지 확인하고 화장해야 한다.[69] 라자루스 증후군이라고 사망 판정 후에 다시 소생하는 경우가 실존한다. 만약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화장했다면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에 따라 살인 혹은 업무상 과실치사[70]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71]

방사선 피폭으로 죽은 시신은 절대로 화장하면 안 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같은 병원체는 고온에 취약해[72] 소각하면 소멸되므로 전염병 방지를 위해서라도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은 반드시 화장해야 하지만, 방사성 물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는 달리 소각해도 전혀 소멸되지 않으며 오히려 소각할 때 시신에 잔류하고 있던 방사성 물질이 고온에 의해 기화하면서 연기와 함께 대기 중으로 방출되므로 방사선을 곳곳에 뿌려주는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방사선 유출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73] 방사성 물질이 직접 체내로 유입된 것이 아니라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방사선 중 중성자선에 피폭당하게 되면 안정 동위 원소가 방사성 동위 원소로 바뀌기 때문에 시신 자체가 방사성 물질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실제로 120시버트라는 어마어마한 피폭을 당해 사망했던 세실 켈리의 경우 방사성 물질이 체내로 유입되어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몸 자체가 원자로 수준의 방사선을 내뿜었으며, 심지어 대소변에서조차 방사선이 시버트 단위로[74] 검출되었다.


8. 기타[편집]


  • 저승사자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예전에는 전통적 방법으로 사흘 정도 지나고 매장을 하다 보니 저승사자가 실수해도 부활할 여지라도 있었는데[75] 화장이 보편화되면서 부활도 못 하게 되었다는 식의 블랙유머도 있었다. 위에서 보듯 실제로 부활을 신앙 교리로 두고 있는 종교에서는 화장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 고인에 따라 사리, 인공관절, 생전에 몸에 박혔던 총알, 금니, 은니 등이 검출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76][77]

  • 생물학적인 위험으로 사망한 경우 해당 시신은 화장하도록 되어있다. 일례로 2020년 급속 확산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망자는 대부분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이럴 경우 다른 장례방식을 치룰 시신도 화장터로 모이게 되고 안그래도 상술한 님비 현상으로 인해 화장터도 부족한데 전염병 유행자체가 사망자수를 증가시켜서 결국 장례식장에소 시신을 관계자만 출입가능한 사무실에다가 방치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78]

  • 특정 인물에 대해 석연치 않은 죽음이 발생하면 급하게 화장 처리를 해서 해당 인물에 대한 죽음을 덮는다는 음모론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단 태울 장소를 찾는것도 쉽지 않고 태우더라도 완전히 소각시키는 것은 더욱 힘들다. 화장터의 화력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외진곳에서 내야하는데 애추에 그냥 외진곳에 묻는게 편하고 그 예시로 왠만한 대형 화재사고이더라도 시신은 대부분 무사히 수습된다.

  • 수의를 입힌 시신을 관에 넣을 때(입관), 유족들은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하여 수의에 지전이나 만원, 오만원 등 지폐를 꽂아준다.[79] 물론 그 지폐도 화장된다.[80] 또한 유골함에도 지폐를 넣는 사례가 있다.

  • 우리나라 등 선진국의 현대화된 시설에서는 운구와 시신 소각 등 대부분의 진행과정이 기계설비와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때문에 화장시설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장례 절차라기보단 물류창고나 공장의 프로세스에 가깝다고 느낄 수도 있다.[81] 이런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최근에 조성되는 시설들은 인테리어나 각종 시설물의 배색 등을 많이 신경쓰는 편.

  • 장례식의 화장(cremation)과 여성의 화장(make up)이 한국어에서 동음이의어임에 주목하여, 유머 글을 작성하는 사례가 있다.

  • 보통 장례식장 직원 또는 장례지도사가 주의를 주지만 절대 부장품으로 배터리가 들어간 물건을 관에 집어넣으면 안 된다. 800도가 넘는 고열을 배터리가 직격으로 맞고 터진다면...화로 설비가 그야말로 개작살이 난다.[82]


9. 매체에서의 화장[편집]


일반적인 장례의 형식으로 묘사되기도 하나 수위가 높은 영화나 드라마에선 사람을 산채로 화장로에 집어넣어 태워죽이는 장면도 드물지 않게 나온다.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들은 대부분 이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제다이 자체가 동양 문화에서 따온 것이 많기 때문. 최초로 화장 장면이 나온 인물은 그 유명한 다스 베이더이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미국에 미친 영향이 엄청난만큼 스타워즈 개봉 이후 제다이처럼 화장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약간 늘었다고 한다.

바싹 태운 뼈를 가루로 만든다는 것을 이용해 공포특급에서 괴담 하나를 올린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죽어 화장될 때마다 화장터에 들러 봉제인형을 부장품으로 넣고 가는 여자가 알고 보니 변심한 남자 애인을 죽여 그 시신을 토막내 인형 속에 넣었다는 내용이다.

데스 스트랜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8시간후 네크로화 돼서 BT라는 것으로 변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상이 사망한지 48시간내로 시체를 불에 태우는 것=화장밖에는 없다.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 에피소드 43 : 죽음속에서도 빛나는 마지막에 민족해방충에 감염되어 죽은 병사들을 화장처리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화장한 병사들 시체에서 나온 물질로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전장에 나갈 것을 선언한다.

림월드에서는 전기화장터를 지어서 화장을 할 수 있는데, 외부인의 시신은 화장해도 되지만 플레이어의 정착민을 화장하는 경우 동료의 시신을 불태워버렸다며 나머지 정착민들이 한동안 무드 패널티를 받는다. 맨 땅에 매장하면 무드 변화가 없고 관을 만들어 매장하면 제대로 장례를 치러 줬다며 잠시 무드 보너스를 받는다. 매장과 화장에 대한 서구권의 인식을 알 수 있는 부분. 사실 외부인의 시체라도 불태워서 없애버리기보다 도축해서 가죽은 소파로 만들어 팔고 고기는 가축 먹이로 쓰거나 식인 취향을 가진 정착민에게 먹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아예 안 짓는 플레이어도 많다.[83]

얼음과 불의 노래에 나오는 왕조 타르가르옌 가문도 불과 피라는 가언에 맞게 전통적으로 화장을 치룬다.

스타크래프트프로토스는 원래는 매장을 했던 것으로 보이나, 칼라가 소실된 이후 댈람에서는 시신을 원자 단위로 분해시켜 우주에 퍼뜨리는 일종의 화장을 한다. 제라툴아몬에 빙의된 아르타니스와 대결을 했지만 아몬으로부터 속박된 아르타니스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제라툴은 동귀어진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제라툴의 몸이 산산조각 나 버려 흔적조차 없어져 버린다.

워크래프트인간은 원래는 매장을 했지만, 언데드의 전염병으로 인해서 화장을 많이 하게 됐다.[84] 다만 그와 별개로 아서스에 의해 살해당한 테레나스 왕은 화장되었다. 오크는 드레노어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화장을 하였으나 만노로스의 피를 마신직후부터 2차 대전쟁까지 전통이 잊혀져 시신을 대충 묻거나 방치하였다가 신생 호드 결성직후부터 다시 화장이 보편적인 장례방법이 되었다. 트롤은 부족별로 장례방법이 다르나 보편적인 장례법은 미라화(엠버밍)아니면 화장이다. 대표적으로 볼진이 화장하였다. 타우렌은 보통 풍장을 많이 하지만 예외로 케른은 화장되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탈락자의 시체를 선물상자 모양 관에 넣은 다음 화장시켜서 처리하는데 총에 맞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용케 살아있는 탈락자가 있는 경우가 있지만 이때는 네일 건으로 못 나오게 못을 박아버린 다음 그대로 화장로에 집어 넣어서 산채로 태워죽인다.


10. 관련 문서[편집]


[1] 단,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7개월이 되지 않은 태아, 감염병으로 사망한 시신, 뇌사 판정 이후 장기 적출이 끝난 시신은 24시간 이내라도 화장이 가능하다.[2] 일체식 중에 떨어지는 뼈를 다시 태우는 낙하다단계연소식이 있는데 이건 한번에 4구의 시신을 화장할 수 있을 정도의 고효율을 보인다.[3] 대차가 들어오는 곳.[4] 사망자가 관내 출신이었다면 5~10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이것도 면제나 감경받는 경우가 있다. 한 예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래대로라면 비록 국립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된다 하더라도 창원시 천자봉공원이나 김해시 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추모의 공원에서 화장되어야 비용이 적게 든다. 다만 그의 유해가 수원시연화장에서 화장되었고 원래대로라면 100만 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면제받았다. 기초생활 수급자도 등급 및 거주기간에 따라 면제 또는 감면된다.[5] 본인 사유지 등. 사유지에서 뿌리는 것 까지 막진 않으니 말이다. 화장시설 내에도 뿌릴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여기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걸 잘 보면 뿌린다기보단 유골을 버린다에 가까워서 무연고 사망자나 묘소를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잘 이용하지 않는다.[6] 다만 불교를 숭상한 위진남북조 국가들, 수, 당, 송은 예외이다.[7] 대표적으로 트로이 전쟁의 전사자들이 대부분 화장됐다.[8]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어사전 사이트에서도 화장은 중요한 교리 문제 때문에 한때 가톨릭에서 금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9] 다만, 유골을 집에 안치하는 것이 그 사회 문화에 따른 중대한 이유가 있다면 교회의 허가를 얻어 가능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유족이 유골을 '나누어 가지는' 행위는 안 된다. 봉안묘는 허용된다.[10]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산골(散骨)에 관한 질의응답” 전문 보러가기[11] 대부분의 매장묘는 주거지에서 떨어진 시골의 야산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벌초 등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관리를 해줘야 한다. 또한 장지(葬地)로 쓸 토지도 부족해져서 사들이는 게 쉽지 않고 가격도 고가이며,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매장 공동 묘지도 거의 포화 상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묘지 관리를 위탁할 경우 그 수탁자에게 벌초비, 관리비도 줘야 한다. 오죽하면 서양식 콘크리트 묘지인조 잔디 묘지까지 등장할 정도.[12] 묘지를 관리해 줄 직계 자손(특히 아들)이 없거나, 묘지가 있는 토지가 개발 지역으로 지정되거나, 공동 묘지 사용 기한 종료(통상 60년) 등[13] 2022년 1월~12월 잠정치[14] 다만 통일신라나 고려도 신라왕릉고려왕릉이 남아 있듯 왕족이나 귀족은 화장 대신 매장을 많이 했다. 고려 귀족이 매장을 선호한 것은 고려 귀족들이 어느정도 유교적인 성향을 띄고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특히 문신들은 매장을 많이 선호했다.[15] 다만 옛날에 매장이 대세였을 때에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삼국, 고려, 조선 때는 고인의 시신 뿐만 아니라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품들도 땅속에 넣어놨다. 특히 삼국, 고려 때는 무덤에 화려한 물품들이 많이 들어갔고 이에 따라 도굴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벽화도가 그려진 석실에 매장되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까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는 화려한 물품을 비교적 멀리하였고 세조 이후에는 석실을 쓰지 않았지만 여전히 물품을 땅에 묻는 습관은 여전했고 회격을 썼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는 물품도 거의 넣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고 회격도 쓰지 않았다.[16] 다만 먼 미래를 가정해보면 장례 방식이 어찌 다시 변할 지는 알 수 없다. 매장 비율이 어느정도 다시 높아질지, 화장 비율도 계속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17] 이로 보면 화장이 주류가 되었지만 고위층들은 여전히 매장을 선호한 경우가 꽤 많은 것은 고려시대 때 화장이 주류였지만 귀족들은 매장을 선호한 경우와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8] 다만 선출직도 예전에는 매장을 많이 했었다. 최근 들어서서 화장 비율이 급증하는 중이고, 고위 공무원 중에서 화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도 선출직 출신이다.[19] 이점에 대해 조금 정확히 부연하자면 2006년 이후 신설되는 호국원과 기존 호국원에서 추가묘역은 모두 봉안탑 내지 봉안당에 형태로만 지어지고 있다. 다만 제주는 육지와 분리되어 있어 현충원 안장대상자들이 매장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20] 범 LG 가문은 구본무 회장 이후 모두 화장한다.[21] 김종필은 장군 또는 국가사회공헌자 자격으로 국립묘지 매장 자격이 되며 박영옥도 20년간 함께한 배우자이기에 합장이 가능했다.[22] 화장 후에 유골은 남양주 마석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다만 마석모란공원에는 매장으로 안장된 민주화운동 인사들(전태일 등)도 있다.[23] 화장 후에 성남 납골당에 안치되었다.[24] 본래 어느정도 매장 자격도 있었지만 4.19 국립묘지로 가면서 화장을 하였다.[25]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자이기 매장 자격이 있었지만 본인이 화장을 강력히 원한 듯 하다..[26] 본래 이한동 前 국무총리 역시 시신을 통째로 매장할 자격이 있었다.[27] 2004년 당시만 해도 매장비율이 과반을 넘던 마지막 시기이고, 특히 이 때만 해도 고위층들은 매장비율이 압도적이었으나 안상영 前 시장 본인이 생전에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불교식인 화장을 선호한 듯하다.[28]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나 염보현 전 서울특별시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어느정도 매장 자격이 있었으나 화장을 강력히 원한 듯 하다.[29] 본래 이종욱은 세계 의료계에서 영향력이 높은 만큼 엠버밍을 할 자격이 충분했고 매장을 할 자격도 충분했지만, 본인이 화장을 강력히 원했던 듯 하다. 그의 생전 행적 또한 검소하게 생활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금이 쓰여야 한다는 사상을 피력하여 화장을 강력히 원했을 듯 하다.[30] 남연군 가문의 법적 조상인 낙천군, 은신군을 비롯해 고종의 형인 흥친왕과 그의 법적 후손들이 화장 후 납골묘 형식으로 안장되었다.[31] 인조반정 이후 죽은 이이첨의 경우는 묘를 찾을 수 없으므로 화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32] 화장은 일반적으로 묘지의 영구 보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화장 후에 골분(뼛가루)을 봉안당 등에 안치하고 안치 기한은 30~50년 정도가 보통이다. 그 뒤에는 골분을 '산골'(골분을 뿌리는 행위)한다.[33] 봉분이 없는 평평한 묘[34] 이로서 역대 대통령 사상 노씨 성을 가진 두 대통령(노무현, 노태우)들 모두 화장 절차를 밟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35] 다만 전직 대통령 예우를 100% 온전히 받아 화장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노무현은 공통면제대상이 되어 수원시연화장에서 화장되었기 때문. 12대 전두환과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12.12와 5.18에 따른 사법처리로 인해 공통면제대상이 되지 못하여 전국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화장할 수 없었고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는 재임시의 공이 과오보다 큰 점과 추징금 납부 노력 등의 이유로, 공통면제대상에 따른 부분을 제외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온전히 받아 국가장으로 장례가 치뤄져 화장 비용을 국고로부터 지원받았다. 12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는 본인 유가족들의 사비로 장례를 치렀다.[36] 실제로 사람을 깔끔하게 화장하려면 생각보다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현대식 화장장에서는 고온으로 시신을 깔끔하게 태울 수 있지만 북한에 그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을 리 만무하며, 석탄/석유는 커녕 땔감조차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리고 아무 땔감이나 써서 야외에서 대충 태울 경우 시신을 완전히 태우는데 수 시간이 걸린다. 그럴바에야 암매장이 더 싸게 먹히는 것.[37] 화장을 했다면 부모님의 유골을 유골이 다 들어갈 만큼의 크기인 통에 담아 남한으로 가져온 후 유골함으로 부모님의 유골을 옮겨 묘지에 묻는 방법도 있겠지만, 애초에 맨몸으로도 무사히 넘어오기 힘든 탈북 과정에서 유골함까지 챙겨 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38] 사실 김일성은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고 싶어했으나 신격화와 권력 독점 정당화엔 눈이 먼 김정일이 아버지 유언을 어기고 엠버밍한 것이다. 김정일은 엠버밍을 자청했다.[39] 다만 중국 국토는 세계 4위라, 국토가 넓은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화장 비율이 높아졌다.[40] 그러나 정작 장묘문화혁명을 주도한 마오쩌둥은 본인이 화장을 희망했음에도 소련의 레닌의 보존법에 감명을 받은 공산당 지도부가 레닌처럼 보존해서 남기기로 결정해서 현재 미라가 되어 기념관에 안치 중이다. 호치민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베트남 공산당이 씹고 시신보존 처리 후 기념하고 있으며 김일성도 대성산혁명열사릉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김정일이 금수산기념궁전에 영구보존 처리 후 기념하고 있고, 김정일은 아예 유언으로 자기 시신을 영구보존 하라고 했다.[41] 베이징 출신에 베이징 시청에서 근무한 전직 공무원이었다고 한다.[42] 다만 국가유공자 같은 사회 주요 인사들은 영구적으로 매장을 허용했다.[43] 단 화장을 하는 인구수 자체는 중국이 많다.[44] 일본은 한국보다 국토가 넓고 땅도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화장이 주류인 것이다.[45] 유럽의 경우에는 거주지 내의 교회가 관혼상제를 주도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유아세례, 자라면 첫 영성체견진성사, 결혼할 때는 혼인성사, 병들거나 임종할 때는 병자성사, 죽으면 장례 미사 등. 이 과정에서 작성된 서류가 중세사 연구의 큰 사료가 되기도 한다. 거주지 내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도 드물지 않다.[46] 근대 이전에는 많은 다른 문화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성직자인 승려를 제외하면 묘지기 등 장례 관련 업종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았고 차별도 이뤄졌다. 현대에는 국가적인 인식 개선 교육이 이뤄졌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은 일차적으로 병원 직원들이 시신을 확인 및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큰 규모의 전문적인 장례 업체들도 존재하는 등의 이유로 장례 관련 직종 종사자에 대한 개인적인 기피를 제외하면 사회적인 차원의 안 좋은 인식과 차별은 없다.[47] 주간조선 2011-06-13 《[일본] 학교급식 빵·우유로 대체 아이들 입만 열면 “배고프다》[48] 실제로 인도 영화 세 얼간이에서도 엄청난 재벌인 란초다스의 아버지의 시신은 화장되어 유골함에 담겼고, 세 얼간이들의 대학 친구이자 서민층인 조이 로보는 부모보다 요절했음에도 시신은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49] 정확히는 이들 중에서도 나무가 적은 산지에 사는 이들. 나무가 많은 평지에 사는 티베트계 주민들은 힌두교도들처럼 화장을 한다. 이는 윗동네인 네팔이나 중국의 티베트인들도 마찬가지.[50] 서양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이미 1960년대부터 화장 비율이 매장 비율을 넘어섰다.[51] 역대 영국 총리 중 화장으로 장례를 치룬 총리는 앤드루 보너 로, 램지 맥도널드, 네빌 체임벌린, 클레멘트 애틀리,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 마가렛 대처가 있다. [52] 가톨릭의 영향이 강한 칸톤에서도 화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53] 그러다 보니 보수적인 핀란드 정교회 신자들(특히 러시아계)은 현재의 러시아 연방조차 고깝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연방은 소련 시절과 달리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별개로 소련을 사실상 자신들의 전신으로 인정하는 반면 소련의 정교회 탄압을 피해 핀란드로 망명해온 러시아인의 후손들은 소련을 그저 조상들의 땅을 멋대로 다스렸던 압제자로만 여기기 때문이다.[54]트라키아, 도데카니사 제도 등 그리스 내에서 무슬림 인구가 많은 지역.[55] 그리스의 경우 똑같이 공무원 선호도가 높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을 따위로 만들 정도로 이보다 훨씬 장난 아니게 2022년 지금도 공무원 선호도가 매우 높다. 2022년 이후 공무원 선호도가 떨어진 대한민국과는 대조되는 현상.[56] 사실 이건 헤라클레스가 말년에 아내 몰래 바람을 피다가 아내의 간교로 인해 히드라의 독에 정통으로 걸렸고 그 때문에 너무나도 괴로워해서 본인이 스스로 주민들에게 자신을 화장하라고 명한 것이다. 주민들은 당연히 거부했지만 포이아스 혹은 그 아들인 필록테테스가 울면서 그러나 용기를 내어 헤라클레스의 몸에 불을 붙여 헤라클레스는 화장된 뒤 올림포스 신전으로 환생되어 신이 된다.[57]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튀르키예 서부 지역은 고대에는 그리스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화장 문화가 존재했다.[58] 티베트 불교도 원칙적으로는 나무를 쌓아 놓고 화장을 한다. 조장을 하는 것은 그 지역에선 화장을 할 만큼 충분한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티베트 불교라도 러시아의 타이가 지대에는 나무가 넘쳐난다.[59] 레닌은 말년에 스탈린과 편지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트로츠키와 손을 잡고서 스탈린 일당을 권력에서 배제할 방법을 연구할 정도로 격렬하게 대립하였다.[60] 대한민국의 묘지들이 산에 있는 것과 다르게 캐나다의 묘지들은 평지에 있다.[61] 납골당에 안치하는 화장일 경우 근처에 마련된 별도의 성묘 시설에서 성묘를 지낸 뒤 유골함이 있는 곳으로 가서 꽃을 교체하는 식으로 성묘가 이루어진다.[62] 그래서 보통은, 고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입관식 이후에 관에 고인명을 적고, 상주가 친필 서명을 하도록 해서, 시신이 바뀌는 경우를 막고자 한다.[63] 분골 이전에는 뼈 모양으로 대략적으로 추정은 가능.[64] 그게 아니면 거의 사망자 본인이 강력하게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산골로 간다.[65] 중국 명나라의 황제인 만력제NRG의 멤버 중 하나였던 김환성이 유명한 케이스. 만력제의 경우 홍위병들이 문화대혁명 때 묘지를 도굴해 멋대로 화장시킨 탓에 이후 만력제에 대한 연구거리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렸으며, 김환성의 경우 사인을 밝혀내기도 전에 이미 화장되어서 결국 급성 바이러스성 호흡기 증후군이라고만 하고 넘어갔다.[66] 시설마다 다르지만, 이 과정은 안 보여주고 유골 수습이 끝나면 대기실에 있던 유가족들에게 전광판이나 안내방송으로 유골을 찾으러 오라고만 알려주기도 한다.[67] 사찰의 다비식의 경우 한지를 접어 만든 종이컵과 젓가락으로 뼛조각을 하나하나 집어 수습하는데, 다비식은 1명만 화장하는 거니까 가능한 거고 여러 명을 동시에,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공설 시설에서 이런 방식은 꿈도 꿀 수 없다.[68] 살인죄의 성립에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시신의 존재 여부다. 이유는 당연히 무죄추정의 원칙.[69] 이렇게 죽지 않은 사람을 잘못 화장하는 끔찍한 일을 막기 위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사망 판정 후 최소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임신 7개월 미만의 사산아와 법정 전염병 감염자로 인한 사망자의 경우는 바로 화장이 가능하다. 실제로 코로나19 초기 사망자들은 사망 판정 받자마자 바로 화장장으로 이송됐다.[70] 화장로에 점검차 사람이 들어가 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화장로를 돌렸다던가 사고 또는 사건으로 인해 사람이 기절했는데 죽은 줄 알고 확인도 안 하고 화장해 버린다던가... 다만 불에 닿았을 때의 고통이 크기 때문에 피해자는 생존 본능상 비명을 지르고, 그 비명을 들은 주변 사람이 꺼내줄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화장로 불은 화력이 매우 강력하고 한 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빨리 눈치를 채서 꺼낸다 해도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사망하거나,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생을 보내야 한다.[71] 불에 닿았을 때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처벌도 꽤 무겁다. 참고로 예전에 2ch에서 화장터 괴담이라고 산 사람을 화장한 끔찍한 이야기가 올라온 적이 있다. 오히려 이쪽이 더 잔인하다.[72] 화산의 간헐천과 같은 고온의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일부의 호열성 세균조차도 화염 정도로 뜨거운 온도에서는 당연히 생존할 수 없다.[73] 브라질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사고 때 세슘-137에 피폭당해 사망한 시신들을 화장하지 않고 매장했는데, 그것도 나무관이 아닌 매우 무거운 납으로 된 관을 사용해 매우 깊은 곳에다가 매장한 것도 같은 이유다.[74] 참고로 일반인의 연간 피폭 허용량은 밀리시버트 단위이다.[75] 물론 그게 늦어져서 무덤 속에서 부활하는, 호러물에서 자주 보는 전개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매우 드문 확률로 무덤 속에서 진짜로 깨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망선고의 기준이 불명확했던 과거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오인하고 장례를 치른 뒤 매장했는데, 그 이후에 관 내부에서 깨어난 것. 이것을 일명 나사로(라자루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나사로는 사후 3일 만에 부활하였다는 성경 속 인물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혹시나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과, 멀쩡히 살아서도 공연히 억울하게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가지고 사람들이 만든 것이 바로 '안전관'이라는 물건이다. 관 속의 사람이 일어나면 밖으로 연결된 깃발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고 약간의 비상식량을 넣어둔 것. 그러나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안전관을 만들 여유가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물론 진짜로 사망한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76] 이런 부산물들은 유족들에게 가져갈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가져가지 않겠다 하면 폐기한다. 다만 금니나 은니같은 팔면 돈이 되는 부산물들은 화장시설 직원들이 유족에게 가져갈 의사를 묻지도 않고 본인들이 몰래 챙겨서 문제가 된 사례가 있다.[77] 공설이라면 금니, 은니 같은 것은 원할 시 유족 인도, 그게 아니라면 화장장이 속한 지방자치단체의 세외수입 처리.[78] 뉴스에서 익명의 관계자는 어쩔수 없다고 변명했으나 위법이며 자리가 없다면 애초에 받지 않는것이 욿다.[79] 비슷하게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양권에서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줘야 한다는 이유로 동전 두 닢을 망자의 입 속에 넣어 주는 경우가 있었다.[80] 다만 이를 알고 있는 화장장 직원들이 화장 직전에 슬쩍 돈을 훔쳐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물론 양심 있는 사람들은 관에서 지폐를 꺼내고 유골함에 꽂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처리하라는 식으로 설득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사실 유족들도 그러는 걸 다 알면서도 일종의 팁 격으로 꽂아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81] 운구 시 사용되는 전동카트를 보면 전동자키가 꼽혀 있는데, 창고나 공장에서 중량물을 옮길 때 쓰는 것과 같은 물건이다.[82] 페이스메이커를 착용한 사람이 사망하여 화장을 진행할 경우 본체를 몸에서 적출해야 한다.[83] 다만 이런 플레이는 정착민들의 멘탈을 터트리고 기지 가치도 폭등시키므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초보들은 따라하지 말고 그냥 묻든가 태워버리자.[84] 말가니스가 인간들을 좀비로 만들 때 아서스는 감염된 백성들이 더 이상 언데드의 노예가 되지 않게 다 죽여버리고 불로 깨끗이 소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연히 우서제이나가 강력히 반대하지만, 아서스는 우서와 제이나의 말을 그냥 씹어버리고 감염된 백성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화장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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