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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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심
黃琴心 | Hwang Keumsim


파일:가수 황금심.jpg

본명
황금동 (黃金童)
출생
1921년 12월 10일[1]
경상남도 동래군
(現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망
2001년 7월 30일 (향년 79세)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학력
경성덕수소학교 (졸업)
가족
남편 고복수, 7녀 중 막내, 슬하 3남 3녀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리아)
데뷔
1936년 "지는 석양 어이하리오"

1. 개요
2. 생애
3. 가족
4. 노래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가수이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1960년대까지 활동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가요무대 등에서 2000년대까지 간간이 출연하였다.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등으로 유명한 이난영, '울어라 은방울'로 유명한 장세정 등과 함께 해방 전후 가요계를 풍미했던 1세대 여가수다.


2. 생애[편집]



파일:가수황금심.jpg

말년의 모습.

1921년 경상남도 동래군에서 무남 7녀 중 막내로 출생했고, 출생 직후 경성부 청진동으로 이주해 성장하였다.

이주와 동시에 가족들은 여관을 운영했는데, 이 곳에 당시 연예인들의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연예인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당대 최고의 여가수였던 '화류춘몽'으로 인기를 끈 이화자 (1917 ~ 1949) 도 그들 중 한 사람이었는데, 여관집의 막내딸에게 노래를 가르치다가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노래 훈련을 시키게 된다.

이 후 1936년에 '오케레코드 전속가수 선발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나 오케레코드에는 이난영, 장세정 등 유명 가수가 이미 음반 출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터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작사가 박노홍의 스카우트 제의로 '빅터레코드'로 소속사를 옮겼고, 그 소속사에서 작곡가 전수린을 만나 '알뜰한 당신'을 발표하고 당대 히트곡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1941년 가수 고복수와 최초의 연예인 부부로 결혼하였지만, 고복수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한국전쟁 당시 남편 고복수와 명동성당에 감금되고 납치와 탈출을 통해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을 하였고 1972년 고혈압으로 고복수가 별세하게 되고 30년 간 홀로 자녀들을 키웠다.

1960년대를 전후해 점차 가요계에서 자취를 줄였고, 이후 가요무대 등의 고전 가요를 중심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에 간간이 출연하다가 1992년 옥관문화훈장을 수여받고 1996년부터 파킨슨병 투병 중 2001년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황금심 노래 모음



3. 가족[편집]


  • 배우자 : 고복수
  • 슬하 3남 3녀
    • 장남 : 고영준 - 1958년 생. 역시 가수이다. '정에 약한 남자'라는 히트곡이 있다. 동생 고영민과 함께 일출봉으로도 활동.
    • 차남 : 고영민 - 80년대 중후반에 형인 고영준 그리고 작곡가 장세용과 함께 '일출봉'이라는 그룹사운드로 활동했다. 현재는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부르고 있다.
    • 삼남 : 고병준 - (1962년 ~ 2005년 1월 1일). 본명은 고흥선. 음악감독으로 있었으며, 2005년 1월 1일 태국에서 온 쓰나미로 사망했다. 향년 43세.

4. 노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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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9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