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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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여담


1924년 2월 29일~2018년 5월 8일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이자 군인.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2. 생애[편집]


192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났다.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상업학교를 다니면서 목공예를 배웠다. 중일전쟁 당시 학병에 징병되어 장사에 있는 40사단 공병중대에 복무하였다. 징병되기 전 선배로 부터 탈출해 임시정부를 찾아가라는 귀띔을 받았고, 장사에서 탈출해 중국 중앙군을 만나 대 일본군 심리전에 참여하다 충칭 임시정부에 도착하였다. 이후 광복군에 입대해 총사령부 경위대에서 근무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해방 후 대동청년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고향에서 목공예 일을 하다가 육군사관학교 특별 7기로 들어가 임관하였다. 영월군에 있는 육군본부 독립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육군보병학교 교관으로 부임하였고,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에서 교육을 받던 중 6.25 전쟁을 맞이해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따라 조치원, 대전으로 내려갔고, 전주에서 민기식 휘하 7사단에 들어갔다.

이후 포항 전투에 참전하였고, 사단장 민기식이 국방부 군사검열단장이 됨에 따라 보병학교 기술학 실장으로 부임하다가 8사단에 들어가 공비토벌에 참여하였다. 휴전 직후 미국 보병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육군대학에서 후반기 교육을 수료하였다. 그 후 2군 군수처 차장, 논산훈련소 군수처장 등을 지냈고, 5.16 군사정변 후 대령으로 예편해 농협에 들어가 전라북도 지부장, 특수영농부장, 전라남도 지부장, 개발부장, 경기도 지부장, 부산 가축사료공장장 등 부장급 간부로 오래 근무하다가 퇴직하였다.

노년에는 광복군동지회장을 역임하는 등 독립유공자들을 기리는 사업에 힘쓰다가 2018년 5월 8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3. 여담[편집]



  • 현대한국구술사료관에서의 증언에 따르면 광복군 출신들과의 교류는 없었으며, 출신으로 인한 차별은 없었다고 한다. 다만 특 7기, 8기의 경우 다른 기수와 똑같이 보직을 받아 주변의 견제가 있었다고 한다.[1]

  • 미국 보병학교 수료 후 이준식 장군의 요청으로 제주 제1훈련소 연대장으로 복무하였다. 당시 연대장으로 같이 복무한 동료 중에 광복군 출신 김국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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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 7기, 8기의 경우 대동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 등 청년단체 출신들이 많았는데 족청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견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