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필

최근 편집일시 :

황현필
파일:황현필프로필.jpg
본관
장수 황씨(長水)[1]
출생
1973년 (50~51세)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가족
자녀 2명
학력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 / 석사)[2]
현직
유튜버 '황현필 한국사'
역바연 소장
경력
메가CST 경찰공무원 한국사 강사
인문계 고등학교 7년 재직 (1급 정교사)[3]
아모르이그잼 경찰공무원 한국사 강사
아모르이그잼 공무원 한국사 강사
모두의 공무원 공무원 한국사 강사
모두의 경찰 경찰공무원 한국사 강사
EBS 국사 수능특강 대표강사
스카이에듀 사회탐구영역 강사
비타에듀 사회탐구영역 강사
이투스 수능 한국사 강사
저서
황현필 한국사 기본이론서
황현필 한국사 필기노트
황현필 한국사 기출문제집
태백광노한국사 전설이 될 동형 100회
이순신의 바다
2023 황현필의 한국사 일력
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4]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5]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황현필 한국사 (구독자 94만명)[A]
파일:유튜브 아이콘.svg황현필 한능검 (구독자 3.5만명)[A]

1. 개요
2. 약력
3. 강의 활동
3.1. 교사 시절
3.2. 수능 강의
3.3. 공무원 및 경찰한국사 강의
3.4. 외부 강의
4. 유튜브 활동
4.1. 황현필 한국사
4.1.1. 재생목록별 영상
4.1.1.1. <반일 종족주의> 반박 콘텐츠
4.1.1.2. <임진왜란> 조선사 임진왜란 콘텐츠
4.1.1.3. '역바연' 콘텐츠 (회원 전용)
4.1.2. 정치 주제 콘텐츠
4.2. 황현필 한능검
5. 비판 및 논란
5.1. 김좌진 장군 행적 관련
5.3. 한나라 지도 인용 오류 및 시정 요구 불응 논란
5.4. 모두공 2023년 강의 미촬영, 미통보 논란
5.5. 역바연 회원 대응, 소통 논란과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
5.6. 유튜브 멤버십 혜택 불이행 및 혜택 변경 미통보 논란
5.7. 천안함 피격 사건 왜곡
5.8. 건국전쟁 비판과 왜곡 논란
5.8.1. 이승만 관련 CIA 문건 짜집기 조작 및 번역 왜곡
5.8.2. 이승만 관련 워싱턴 포스트 기사 짜집기 조작 및 번역 왜곡
5.8.3. 이승만의 특혜 및 횡령 등 주장
5.8.4. 미국 내 수사 내용 곡해
5.8.5. 장인환, 전명운 변호 거부 관련
5.8.5.1. 편향적인 자료 사용
5.8.6. 독립운동가 고발 관련
5.8.7. 헌법 내 4.19혁명 기재로 인한 반헌법적이란 주장
6. 사건 사고
6.1. 이우연, 김병헌, 주옥순의 고소
7.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한국사 강사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강의 이름에 "태백광노"라는 브랜드 네임을 붙인다. '태백광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한 박은식의 호를 본땄다고 한다.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채널과 강사의 교재에 설명되어 있다.

유튜브 채널은 채널명이 "황현필 한국사"인 만큼 한국사 관련 콘텐츠가 주를 이루지만, 정치 관련 콘텐츠도 다수 올라온다.


2. 약력[편집]


  •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7년간 재직
  • 비타에듀, 스카이에듀, 이투스에서 한국사 강의 경력
  • 2015년, 한국사랑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
  • 2015년, 아모르이그잼학원에서 공무원 시험 강의 시작
  • 2016년 10월, 이그잼경찰팀에서 경찰한국사 과목 담당
  • 2017년 3월, 메가CST 경찰공무원학원으로 이적하여 경찰한국사 전담
  • 2020년 1월, 모두의공무원/모두의경찰로 이적하여 공무원/경찰 한국사 강의
: 2022년부터 경찰공무원 채용시험 한국사 과목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되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로 바뀌었다.
  • 2021년 11월, 주식회사 역바연 설립
  • 2021년 12월 역사 교양서적 <이순신의 바다> 출간 #
  • 2022년 6월, 역바연 신문 창간 및 대표이사 역임
: 2022년 6월, 신문사 창간을 알렸고, 2022년 8월에는 역바연 신문 홈페이지를 개소하고 공식적인 개국을 선포했으나 2022년 9월부터 언론 활동을 중단했다. 2023년 1월, 신문사 홈페이지를 역바연 홈페이지로 용도를 변경하여 정기간행물 등록만 되어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신문사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 2023년 6월, 남해-이순신해 병행 표기 운동을 시작했다.

3. 강의 활동[편집]



3.1. 교사 시절[편집]


전남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역사 교육을 전공하고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역사 교육학 석사 과정을 지냈으나 졸업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강사가 되기 전 고등학교 교사로 7년간 재직했다. 본인은 재직했던 학교명을 밝히는 것을 꺼리며 보통 단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고만 언급한다라고 적혀있지만 공단기에서는 자신의 모교를 언급한다. 단 실적을 말할 때이다. 황현필이 실제 재직했던 학교는 광주광역시 살레시오고등학교였다. 주로 고3 담임을 맡았다고 한다. 재직하던 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 수능 때 국사를 선택했던 학생들 중 40%가 1등급을 찍었다고 한다. 사실 40%는 약간 과장이다. 고등학교 재직 당시 고3 국사 선택자들을 모아 수업했는데 그 학생들 중 정확하게 39%가 1등급을 맞았다고 한다. 09년도 졸업자들이 1학년 시절 "니들 2학년 되면 근현대사랑 국사는 형이 책임져 줄게"라고 했는데, 2학년이 되기 직전 스카이에듀로 옮겼다.

모교 교사가 된지 2년차에 학교에 사정이 생겨서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사가 아닌 한국지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역사를 전공한 입장에서 난생 처음 한국지리를 강의하게 된 셈. 거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지라 밤잠을 줄여가며 한국지리 공부에 매진하였다. 한 부분을 이해시키기 위해 문제집 10권 이상을 풀 정도로 열심히 준비한 결과, 모의고사 한국지리 점수가 전국 970여개 고등학교 중 특목고들을 제치고 1위를 하는 위엄을 보였다. 한국지리를 가르치기 전에 학생들이 한국지리를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려주실 거냐고 걱정해서 물어봤지만, "자신이 열심히 준비할테니 그대로 따라와라. 대신 뒤에 부분은 물어보지 마라 모른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가 외고, 과고, 특목고를 제치고 1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교사 시절 엄청난 체벌을 가했다고 한다. 황현필의 한국지리 수업시간 전 쉬는 시간에는 학생들이 전날 배운 부분을 복습하였고, 수업시간에는 임의로 부르는 번호에 해당하는 학생이 전에 배운 부분을 대답하지 못하면 체벌을 당했다고 한다. 그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이 틀려서 체벌을 당할 때가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이 그 학생을 보며 통쾌했다고(...) 어쨌거나 이러한 체벌 덕분에 그의 학생들은 한국지리 과목에서 특목고들을 제치고 전국 1등을 할 정도로 엄청난 성적을 냈다.

교사 시절 황현필의 체벌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들이 나고 있는데, 살레시오에서는 황현필보다 체벌로 유명한(?) 선생님이 더 있었다고 옹호하는 증언도 있고, 황현필은 자신이 학교를 그만 둔 마지막 날 1학년 담임이었는데 학생들이 울면서 선생님께 마지막 사랑의 매를 맞고 싶다고 이야기 하자 사랑의 매를 맞고 싶은 녀석들은 나와서 엎드리라고 했더니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나와서 엎드렸다는 일화를 말하며 사랑의 매였음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황현필의 체벌이 너무 심해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있을 정도로 그의 체벌이 매우 심했다는 증언도 있다. 어쨌거나 그를 옹호하는 측에서도 황현필의 체벌이 상당히 심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3.2. 수능 강의[편집]


살레시오고등학교 국사, 지리 성적이 잘 나오자 학원계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인강회사인 비타에듀에서 수능 한국사 강사로 데뷔하여 활동했다. 이후 2011년 스카이에듀로 이적했다. 그리고 2015년 이투스로 다시 이적했다.

인강 데뷔 후 초창기 시절에는 잘생긴 외모로 큰 주목을 받았었다. 기존의 강자들인 설민석, 강민성, 고종훈, 라영환 등을 위협하는 다크호스의 떠올랐다. 하지만 비타에듀에서 1타, 2타 설민석라영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2011년 강민성이 비타에듀로 이적해왔고, 49패스 출시로 2연타로 타격을 먹으면서 결국 2011년 이현 이외에 이렇다 할 인기 강사가 없던 스카이에듀로 이적하였다.

그런데 그가 비타에듀에서 스카이에듀로 이적한 직후 잘나가던 비타에듀가 망하고 스카이에듀가 갑자기 뜨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 비타에듀의 주력 강사였던 삽자루와 그의 소속사 강사들이 비타에듀와 계약 갈등을 빚고 이투스로 집단 이적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비타에듀가 순식간에 몰락했다. 같은 시기에 스카이에듀의 이지영이 뜨면서 돌풍을 일으켰고, 1년 후 이근갑이 영입되면서 스카이에듀의 성장세가 시작되었다. 이때 황현필은 고종훈(메가스터디), 설민석(비타에듀), 강민성(이투스/비타에듀)에 이어 '고강설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6] 하지만 초창기 훨칠한 외모로 주목받았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며 결국 쟁쟁한 경쟁자들의 벽을 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황현필이 전략과목인 근현대사가 2013년 수능(2012년 시행)을 끝으로 폐지되면서 그 기세가 꺾였다.

한편 비타에듀로 인강에 데뷔한 같은 시기에 EBS에도 진출했었다. 하지만 당시 EBS에서 한국사 1,2타였던 차석찬, 최태성 등에 밀려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12년에 EBS에서 잘렸다고 한다. 그만둔 게 아니라 잘린 거라고 본인이 강조했다. 명성황후에 대한 강의 중 을미사변에 관련한 내용이 편향적이라고 EBS에서 강의 수정을 요구했으나 본인이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현필은 명성황후 민씨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는 듯하다. ## 황현필 개인 선정 한국사 최악의 5인중 1인으로 꼽았을 정도.[7] 본인은 자를 거 자르고 편집해서 내보내라고 했는데 EBS는 똑같은 옷 입고 다시 찍으라고 요구했고, 그렇게는 못 하겠다니 자르더라고.

2014년말 스카이에듀의 오너 이현이 사이트를 단기학교로 유명한 에스티유니타스(대표 윤성혁)에 매각하였다. 에스티유니타스 인수 직후 스카이에듀는 프리패스 도입과 삽자루 등 1타 강사들을 줄줄이 영입하며 인강 시장을 뒤흔들며 급부상했지만, 이때 황현필은 스카이에듀와 계약 연장이 불발되어 2014년말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스카이에듀를 떠나야만 했다.

스카이에듀를 떠난 황현필은 이투스, 한국사랑, 아모르이그잼학원 등 세 곳으로 동시에 이적했다. 이투스에서는 수능 강의를, 한국사랑에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를, 아모르이그잼학원에서 공무원 시험 강의를 맡았다. 하지만 이투스에는 이미 황현필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은 설민석, 강민성이 있었다. 게다가 2016년에는 EBS 1타였던 최태성이 EBS를 그만두고 이투스로 이적하면서 사이트 4타로 밀려났다.

황현필은 이투스 이적 이후 수능 강의에서 거의 손을 놓고 경찰 공무원 강의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몇년후 소리소문없이 이투스에서 사라지며 수능 강의에서 조용히 은퇴했다.


3.3. 공무원 및 경찰한국사 강의[편집]


2015년부터 아모르이그잼학원에서 공무원 한국사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공무원 한국사 시장에는 이미 전한길, 강민성, 문동균, 신영식, 고종훈 등이 즐비했고, 황현필은 이 벽을 넘지 못했다.

결국 2016년 하반기에 공무원 한국사에서 경찰한국사로 종목을 바꾸었다. 신광은팀의 윌비스 이적 사건 후, 2016년 10월 이그잼에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신규 런칭한 이그잼경찰팀에서 경찰한국사를 맡게되었다. 이후 아모르이그잼에서 1타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미 아모르이그잼의 대표적인 강사들인 신광은, 이선재, 신영식, 배미진, 이리라, 김중규, 이명훈, 최진우 등 이그잼의 대표적 1타 강사들이 타 학원으로 전부 이적한 상태였고 이그잼은 이미 몰락한 상황이었다.

2017년 3월 메가스터디가 새롭게 진출한 메가CST 경찰공무원학원으로 이적해 경찰한국사를 전담했다. 메가로 이적한 후 한국사 1타가 되었고 2018년 경찰 한국사 수험서 중에서 최초로 동형 100회를 냈다. 그러나 2018년말 메가스터디가 경찰공무원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고, 해커스가 이를 인수하여 해커스경찰로 개편되었다.

2020년 1월 신생 사이트인 모두의 공무원/모두의 경찰로 이적했다. 여기는 온라인만 있고, 오프라인 학원은 없기 때문에 현강 없이 인강만 진행하고 있다.

2022년부터 경찰 공무원 시험 한국사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전환되면서 경찰한국사 위주로 강의했던 황현필 역시 타격을 입게 되었다. 2022년 현재 모두경에서 한국사 강의가 내려가고 한능검 강좌로 대체되었다.

2022년 이후 사실상 강의를 접은 상황에서 유튜브에 주력하고 있다.

3.4. 외부 강의[편집]


  • 광주광역시에서 3번[8][9][10][11] 강연했다.
  •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1번[12] 강연했다.


4. 유튜브 활동[편집]



4.1. 황현필 한국사[편집]


채널 바로가기

역사를 가장 역사답게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황현[13]

필입니다.

- 오프닝 멘트


2019년 6월 10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채널 이름은 "황현필 한국사". 한국사 시험과목 수험생이 아닌 보통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사를 강연한다. 수험용 한국사 강의가 아니므로 가끔씩 강사의 주관적 해석에 따라 자신의 시각을 제시하곤 한다.

주된 강의 외에도 시사와 관련된 역사를 주제로 영상을 특별히 업로드하는 경우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아베 피살 사건 관련, 한산: 용의 출현 개봉 특집 영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시대별 10분 끝내기, 우리나라의 강, 역사라이벌전 등 다양한 테마를 정해 강연하는 경우도 있다.

  • 2019년 9월 16일에 구독자 10만 명을 달성했다.
  • 2019년 10월 중순에 15만 명을 달성했고, 2019년 12월 16일에 구독자 20만 명 달성 영상을 올렸다.
  • 2020년 2월 15일 구독자 25만 명을 달성했고, 5월 5일에는 30만 명을 달성했다.
  • 2021년 봄 경에 구독자 50만을 달성했다. 이 시점에 역사왜곡바로잡기 연구회 구상을 밝혔고, 그 해 11월, 주식회사 역바연을 설립했다.
  • 2022년 말, 구독자 80만 명을 달성했다.
  • 2024년 2월 기준, 구독자 96만 명이다.

4.1.1. 재생목록별 영상[편집]


하나의 시대를 주된 주제로 삼아 시리즈 영상을 업로드하며, '완강'한 경우에만 별도로 재생목록을 개설해둔다. 그래서 최신 영상은 별도 재생목록에 분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테마 영상 역시 완성된 경우에만 별도 재생목록으로 두는 것으로 보인다.


4.1.1.1. <반일 종족주의> 반박 콘텐츠[편집]

친일과 반일의 역사전쟁... 그리고 반일종족주의
[반일종족주의 반박 1편] 토지조사사업이 수탈이 아니라고??
[반일종족주의 반박 2편] 독도가 우리땅이 아니라고?
[반일종족주의 반박 2-2편] 이승만의 독도 활약과 일본측 자료
[반일종족주의 반박 3편] 한국인은 거짓말하는 국민?
[반일종족주의 반박 4편] 위안부가 강제연행이 아니었다고?

2019년 8월 24일 "친일과 반일의 역사전쟁... 그리고 반일종족주의" 라는 영상을 시작으로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영훈 등 학자들이 발간한 문제적 도서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반박 영상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반일 종족주의>는 확증편향적 통계 왜곡 해석과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라는 등 혐한적 내용, 일본 극우의 지원을 받아 집필되었다는 의혹 등으로 출간부터 논란이 있었고 이에 대응하는 <반일 종족주의> 반박 영상으로 인해 구독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반일 종족주의> 반박 영상이 최초로 업로드 된 8월 24일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1,000명대였던 구독자 수가 한 주만에 50,000명이 늘어났다.# 영상들은 약 2달 만에 총합 5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반박 영상은 <반일 종족주의>의 원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 내용이 어떤 점에서 잘못된 서술인지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황현필은 1편 영상에서 해당 서적상 '(토지조사사업 당시의 분쟁은) 전국 487만 헥타르 가운데 12만 헥타르에 불과한 국유지를 둘러싼 분쟁이었습니다'라는 서술을 비판하면서 이 '12만 헥타르'라는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를 열심히 찾아보았다며 두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첫째 가설은 동양척식회사가 1930년에 가지고 있었던 토지가 약 12만 헥타르라서 여기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 하지만 국립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휘보 1918년 11월호에 토지조사사업 결과에 대한 통계에서 12만 헥타르라는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둘째 가설은 '일본인 학자 스기모토 씨'의 책을 인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이었다.


4.1.1.2. <임진왜란> 조선사 임진왜란 콘텐츠[편집]

2020년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조선사를 강의하던 중 임진왜란을 다룰 차례가 다가오자 평균 러닝타임 20분, 총 65편의 동영상으로 엄청난 분량의 강의 콘텐츠를 완성하였다. 이는 수능교과 사회탐구 과목의 총 강의수의 러닝타임과 비슷한 분량이다. 조회수는 삼천만 뷰 이상으로 집계되며 옥포해전이나 한산대첩은 단일 영상 기준 백만뷰를 훌쩍 넘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전투와 장수들에도 주목한 특징이 있다. 이순신과 원균뿐 아니라 정문부와 황진같은 새로운 영웅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임진왜란 시리즈가 끝나자 강의 내용을 담은 '이순신의 바다'를 출간하여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였다.

2022년 초에도 '임진왜란 번외편'을 계속해서 업로드 중이다.


4.1.1.3. '역바연' 콘텐츠 (회원 전용)[편집]

2021년 3월,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 구상을 밝히며 시작되었고, 이후 별도 재생목록이 만들어졌다. 중국의 동북공정(feat. 서길수박사), 일본역사왜곡(feat. 호사카유지), 현대사왜곡(feat.정찬주 작가), 인물왜곡(feat.다양한 전문가)을 바로 잡는 활동이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21년 11월에 주식회사 역바연을 설립하게 되는데 당초 구상과 달리 역사바로잡기연구소로 운영되고 있다. 역바연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역사바로잡기연구소라고 적혀있다.

역바연 콘텐츠는 역바연 회원 전용 영상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나뉘는데 회원 전용 영상은 이 달의 독립운동가, 이 달의 역사 등을 주로 다루는데 몇몇 영상은 전체 공개하는 경우가 있다. 실시간 스트리밍은 날짜나 시간이 불규칙적인 편으로, 1시간에서 2시간가량 진행하는 편이다. 실시간 스트리밍에서는 회원들과의 소통, 역사 관련 질문에 관한 답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4.1.2. 정치 주제 콘텐츠[편집]


  • 조국 사태 당시인 2019년 9월 13일, 검찰 개혁 문제를 놓고 대한민국과 조선을 비교하며 법무부형조에, 검찰사헌부에 비유하고, 공수처의금부에 해당하는 셈이라고 주장하며 공수처 설치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다만 이게 정말 옳은 방법인지 등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해볼 문제라고 하며 열어두었다. 그리고 중종 당시 반정공신들과 대립하며 개혁을 추진하다 죽은 조광조를 이야기하며 조국과 윤석열 중 누가 조광조가 될지 지켜보자는 내용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둘 중 누가 낙마할지, 그리고 후대에 문재인 정부와 검찰 중 어느 쪽이 기득권으로 기록될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하며,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해석해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 취지라고 한다.

  • 언론 개혁 관련
  • 직접적인 언론 개혁까지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2021년 6월에 있던 2021년 G7 콘월 정상회의에 대해 언론이 침묵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을 때 대대적으로 언론에 조명되었던 상황과 대조하면서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다. 언론사가 국민들의 생각을 자신들의 의지로 바꿔나갈 수도 있다라고 하며 언론인의 자세를 망각한 것이라고, 국민을 개돼지로 본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이 제대로 언론의 자리를 지킬 때 나라가 바로설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 영상을 촬영했다고 한다. 오늘날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는 조선의 기관은 삼사, 산림의 역할을 하는 것은 포털사이트라고 언급했다.

  •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주 전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이재명 후보와 만났을 때의 인상을 소개하고, 이재명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현재의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질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자질을 역설하였다. 특히 세종대왕, 정조대왕, 이순신 장군, 김구 선생 등 이재명 후보가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꼽은 4인의 공통적 역할을 이야기하며 이재명 후보가 지향하는 바가 권력을 국민들을 위해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한편 경쟁자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 대해서는 친일, 반민족, 친독재, 친재벌, 검찰공화국, 기득권을 사수하는데 권력을 쓸 것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능력없이 자리만 탐하다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원균에 빗대며 윤석열 후보의 '유사시 자위대 한반도 상륙 허용' 발언 논란을 들어 비난하였다. 66만 한국사 유튜버 "이재명은 이순신, 윤석열은 원균"

  • 진보 보수 이데올로기 관련
현재 영상이 비공개 처리되어 시청할 수 없다.
  • 2019년 11월 4일과 5일에 "당신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라는 주제의 동영상을 2편 업로드하면서 역사적 관점에서의 진보주의, 보수주의에 대해 다뤘다. 한국에서는 친일파들에게 "보수, 우파", 민족주의자들에게 "진보, 좌파"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했다.
    • '보수주의자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이익을 추구하며 일본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한국을 비난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들은 보수가 아니며 극우, 꼴통이다.' 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 그리고 "미국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경쟁을 거쳐 정당하게 부를 쌓아서, 부룰 축적한 만큼 사회에 환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서 미국은 부자들이 존경을 받는다", "부자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영웅이 되는 미국을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황현필 강사는 한가지 물음을 던지는데, "그런데 왜 대한민국은 부자들이 미움의 대상이 됐을까?"라면서 한국의 고질적인 친일파, 재벌 문제를 비판했다. "친일파들이 귀속 재산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를 이루게 되고, 그들이 정권과 결탁해서 재벌로 성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 황현필 강사는 스스로는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하며, 왜 본인이 경제적으로 보수인지에 대해 "귀족 노조에 대한 상당한 비판의식이 있다"고 언급하며, "노조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심하게 노조운동 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도 전교조를 비판하는 영상이 있다. # 이것은 보수 성향에 가깝다고 했다. 한편, 본인은 "북한을 주적이라고만 바라봐야 하는 현실은 싫다"라고 언급하면서 "이것은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생각에 가깝다"고 했다.
  • 또 "우파들은 북한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게 들릴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핏대를 세워가며 종북이라고 매도하는데, 정작 그들은 일본에 대해서는 굴종을 넘어서, 거의 숭배를 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세력들이 "보수"라는 프레임을 붙들려는 상황에서, 본인은 역사학도로서 그들을 주로 비판하다 보니 진보주의자, 좌파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 보통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수가 되는데, 현재는 젊은 사람이 보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것은 징그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남해 이순신해 병행 표기 특별 법안 관련
  •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남해의 이순신해 병행 표기에 대해 제안하고 발의가 진행되는 과정, 병행 표기의 필요성을 나열하는 한편, 국민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4.2. 황현필 한능검[편집]


채널 바로가기

오프닝 멘트는 황현필 한국사 채널과 같다.

2020년 12월 1일 한능검 강의만을 목적으로 하는 황현필 한능검 채널을 개설했다. 역사 강의를 한능검 시험대비 전용으로 수준을 맞춰 1강당 10~20분 내외로 총 100강으로 이루어졌다. 전근대사 60강, 근현대사 40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의 구성과 같이 100가지 주제로 정리된 초단기한능검 교재(기본서와 기출문제집)를 별도 판매한다.

한 강의에 25분 미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말이 굉장히 빠른 편이고 출제가능성 높은 부분을 중심으로 골라서 강의하기 때문에 황현필 특유의 스토리텔링 강의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적합하지 않다. 공무원시험에나 나올 지엽적인 내용에 대해, "한능검에는 필요 없는 내용입니다"라며 넘어가려다가도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안 알려주고는 성격상 못 배기는 듯하다.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라는 말을 자주 덧붙인다.

52회 한능검 시험이 있었던 주 목요일, 금요일인 4월 8, 9일 저녁에 '찍기특강' 라이브를 진행했으며, 4월 8일분 라이브는 '작두특강 1'이라는 이름으로 업로드되어 아직 확인이 가능하다. 53회부터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라이브 강의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5. 비판 및 논란[편집]



5.1. 김좌진 장군 행적 관련[편집]


EBS 인물사 특강에서는 북한사학계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일제와 내통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며 우리나라와 달리 별로 인정을 못받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의 독립운동은 '유일사상체계'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안중근의사도 '테러나 개인영웅주의로는 독립을 할수 없다'라고 실패한 독립운동가로 평한다. 그리고 황현필이 빨아대는 김구를 북한에서는 상해임시정부에서 파벌싸움이나 하고 조선사람들에게 독립자금이나 갈취하고 테러나 자행하던 나쁜 사람으로 그린다. 그러다가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해서 김일성을 만나고 변화되어서 김일성에게 '상해임시정부 인장(印章)'을 상납하고, 통일대업'을 위해서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여운형의 호인 '몽양'을 갖고 '해빛이 그리워'라는 영화를 만들고 "여운형이 '해빛'인 김일성을 꿈에도 사모했다."는 식으로 설명했고, 독립운동 조차도 '지도자없는 부질없는 행위'정도로 폄하한다.

EBS강의 스크립트 중 일부는 이렇다.

"여기 신민부를 만들었다가 나중에 사회주의자에게 총을 맞고 죽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한에서는 아무래도 김좌진 장군 같은 사람들 죽이는 사회주의자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고 김좌진 장군을 높여주기 쉬웠겠죠.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좌진 장군을 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김좌진 장군이 실제로 일제랑 내통했던 역사적 자료를 제시하고 그래요, 그래서 남한사학계와 북한사학계가 우리 근현대사 공부하면서 인물들에 대한 언급을 할 때 굉장히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김좌진 장군이 분명히 청산리 대첩의 영웅임에도 틀림이 없고요. 우리가 박수 쳐드려야 됩니다. 맞죠? 하여간 김좌진 장군은 그 정도만 잡으면 됩니다."


그러나 김좌진 장군이 그러한 행적이 실제로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현재로서는 김좌진의 비서가 밀정이었다는 설이 대두되어 그것이 주류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북한이 김좌진 장군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엔 그를 암살한 사람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김좌진 행적에 관한 구체적인 논란은 김좌진 항목 참조.


5.2. "6.25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편집]


파일:황현필625왜곡발언.jpg
파일:황현필 6.25전쟁 남침유도설 주장 캡처.jpg
기사
영상
황현필을 저격하는 이 영상이 먼저 올라왔고 그게 나중에 기사화되었다.

황현필이 2009년에 강의를 통해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이 2020년에 발굴되어 11년만에 논란이 되었다.

"6·25 전쟁은 미국이 연출, 각본, 시나리오를 다 썼던 전쟁"

"6·25 전쟁은 미국이 일으켰다"

"미군이 피난행렬이 있으면 포가 얼마나 잘 떨어지나 확인을 위해 포를 떨어트렸다"

"미국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남한이 일방적으로 밀리게 한 뒤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인천상륙작전을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우리가 현대사를 배우는 이유는 성숙한 반미감정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웃긴건 진짜로 한국인들을 인간 취급 안한 건 소련군정이다

위 발언은 한국전쟁사를 크게 왜곡한 발언이며,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묘사하기 위해 날조된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의외로 이 발언들은 발언 당시에는 큰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역TV에서 '응답하라 황현필'이라는 영상을 올리면서 문제 제기가 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서 일어났다는건 노태우 정부 때 소련과 수교를 하면서 소련이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을 통해서 전달하였던 기밀문서를 통해 모두 드러났다. 즉 북한의 배후였던 소련이 직접 증명해줬고 이로써 남침유도설은 학계에서 사장되었다.

그런데도 황현필은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는 허무맹랑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하고, 심지어 피난행렬에 폭탄이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보려고 폭격을 했다는 근거없는 비난까지 한 것이다. #. 황현필은 '포'라고 언급하여 '폭격'과 '포격'의 개념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폭격은 크게 항공기로 폭탄이나 미사일, 로켓 등을 투하/발사하는 것을 의미하고 포격은 야포나 함포로 포탄을 사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포가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보려고 폭격을 했다는 말은 그 문장 자체로도 성립이 불가능한 말이다. 항공기가 폭탄이 잘 떨어지나 보려고 했다 하면 모를까 포(?)의 탄착군을 확인하려고 폭격을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격의 탄착군을 관측할 수 있는 정찰기나 전선통제기에는 폭탄 무장이 없다.

해당 발언들은 국가보훈처가 황현필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 강연을 위탁하고 이를 국가보훈처 SNS에 업로드하며 재조명되었다. 이 사태에 대해 언론에서는 6.25 왜곡 선동을 자행한 역사 강사가 국가보훈처의 강연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이 주제를 다룬 기사는 당일 네이버 뉴스 정치 세션 댓글 수 1위를 달성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비난이 거세지자 보훈처에서도 사실관계 확인 후 자문단 활동 배제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황현필 자신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랑스러운 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히 밝히겠습니다."# 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애치슨 라인을 언급하는 등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후 역TV가 황현필의 해명 영상에 재반박 영상을 올렸다.# 이를 11년만에 발굴한 역TV도 황현필이 2010년대부터는 그런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현필은 과거처럼 대놓고 하지 않을뿐 은근슬쩍 아직도 남침유도설을 껴놓고 있었고 역TV는 이를 비판했다. 실제로 황현필은 2020년 시점 해명 영상에서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망발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남침유도설은 학계의 정설은 커녕 구 소련의 기밀문서 공개로 부정되고 폐기된 설이다.

바로 앞 해명 영상에서 2020년에도 남침유도설은 학계의 정설이라고 말했던 망언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애치슨라인이 한국전쟁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공산권 기밀문서 공개로 1948년부터 이미 남침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지금 6.25는 미국이 일으켰고 모든 각본과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하며 아직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 말한 부분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즉 황현필의 발언이 남침유도설을 주장한 게 아니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본인이 남침유도설에 경도되어 있었다 말했고 그렇게 확증, 편향적인 강의를 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며 아직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말을 하는데 황현필이 가르친것이 남침유도설을 사실로 왜곡해 교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황현필은 미국은 남한이 일부러 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주도만 남기고 다 밀리면 그때부터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한다는 기밀문서가 있다고 왜곡 영상에서 주장했으나 역TV에서 요구한 이 문서에 대해 끝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고 급하게 스미스 대대와 사실상 알보병 부대인 24사단을 투입했으나 급하게 투입된 미군은 탱크 한대 없는 부대였고 인민군에게 24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가 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황현필이 주장한 극비문서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중요한것은 한국전쟁에 미국의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미국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각본과 시나리오를 짰다는 거짓을 사실 인것처럼 '남침유도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것이 바로 역사왜곡이며 문제다.

더더욱 큰 문제는 당시의 역사왜곡 강의가 이제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들을 위한 강의였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의 대응이 잘못되어 전쟁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남침유도설이라는것은 일부러 전쟁이 나도록 '유도'했다는 명백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영향이라는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줄 수 있지만 유도는 의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남침유도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황현필을 옹호하는 측은 이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있다. 황현필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역TV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미국의 대응이 한국전쟁에 영향을 준 사실이나 책임론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이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엄연히 사실이 아닌 부분을 사실이라 가르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인데 미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하는 말이 되지 않는 반론을 펴고 있다.

실제로 황현필은 자신이 직접 말한 기밀문서에 대해 제시하지 못했고(그런게 애당초 없기 때문에) 2020년 10월 17일 영상을 업로드 하면서 앞으로는 확증 편향된 강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말을 했다. 또한 황현필은 자신의 해명영상과 관련 커뮤니티 글을 모두 삭제하였다. 스스로 왜곡된 역사를 강의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23년 1월 12일, 유튜브 커뮤니티에 멤버십 회원들만 볼 수 있게 글을 작성하여 애치슨선언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을 물으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며 본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파일:황현필_애치슨선언.jpg

애치슨 선언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친미적 성향의 어린 친구들이 써놓은 나무위키 보고 생각을 정립하시지 마시구요.

미국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할 것을 미국이 알고 있었다는 논거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만 우리 미국이 그럴리 없다

돈과 이념에 역사를 파는 거지같은 학자들 때문에...

저는 언젠가는 꼭 목숨걸고(?) 한국전쟁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또한 이전에 본인이 저술한 황현필 한국사 일력에도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역바연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황현필의 한국사 일력 1월 12일, 애치슨라인이 발표됐습니다.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는 것에 대해 황현필에게 어떠한 책임을 지라고 할 수는 없다. 황현필이 한 역사왜곡이 범죄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당초 이 논란이 그나마 사그라든 것은 황현필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확증편향된 강의를 조심하겠다고 했으며 관련 영상과 글을 다 지워 추가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잘못을 인정한 척하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

국가보훈처는 알림-소식 사실은 이렇습니다 2020년 10월 5일자 공지에서 <해당 강사의 6.25전쟁 관련 영상은 보훈처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황현필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이후 보훈처와 황현필이 같이 협업하는 일은 없었다. 아래는 국가보훈처의 공지 전문이다.

해당 강사의 6·25전쟁 관련 영상은 보훈처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625는 미국이 일으켜" 이런 강사에게 강연 맡긴 보훈처(조선일보, 20.10.05.)

□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설명드립니다.

○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계승하기 위해 매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여 온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이달의 독립운동가 공적을 알리고 있습니다.

○ 올해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공무원 시험 한국사 인기 강사이면서 유튜브 구독자가 40만 명이 넘는 해당 강사의 재능기부로 2020년 8월 독립운동가(이석영 선생)의 홍보 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 이달의 독립운동가 영상은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서 문제가 없으나, 625전쟁 관련하여 문제가 되는 발언이 담긴 영상은 동 강사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달의 독립운동가 홍보 영상 제작 전에 강사의 발언을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 문제 영상은 동 강사가 2009~2010년경 수능 대비 인터넷 강의 자료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며, 보훈처는 이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보훈처는 625 전쟁이 적화통일 야욕에 따른 북한의 남침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으며, 해당 강사의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고 봅니다.

○ 동 강사는 20. 4월 우리 처 해당 부서 차원의 정책자문단 구성 시 민간위원(11명)으로 포함된 바 있으며, 이번 영상 논란과 관련된 사실관계 확인 후 자문단 활동 배제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황현필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도 전쟁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여전히 논의할만한 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련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 역시 한반도의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의 원인을 '단 한사람의 의지'에 국한시키는 건 오히려 협소한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황현필은 당시 미국의 전략이 김일성이 남침을 개시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황현필은 한국전쟁이 처음부터 미국이 연출, 각본, 시나리오를 다 짜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다시 말해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미국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시 미국의 전략이 전쟁 발발에 영향을 주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이다.

또한 황현필은 브루스 커밍스 등을 비롯한 학계 일각에서 미국의 영향을 지목하고 있음을 들어 한계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학설은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소련 측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이미 논파된지 오래이다.

한국 내에서 미국의 남침유도설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브루스 커밍스조차도 구소련 측 기밀문서가 공개된 이후에는,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고 있었고, 역사적 실재와 달랐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발발의 주된 행위자는 김일성과 마오쩌둥, 스탈린이었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데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사전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당시 미국의 일련의 행동들이 김일성이 남침을 1950년 6월 25일에 개시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근거는 될지 몰라도, 그것은 그냥 미국의 의도하지 않은 '바보짓'이 겹친 것이지 미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김일성이 남침을 마음먹도록 유도할 의도를 가지고 계획했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만약에 황현필식 논리대로라면, 일본의 진주만 공습도 미국이 유도했다는 논리가 되는데, 이는 오늘날 일본의 극우들조차도 개소리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극소수를 제외한 일본의 극우들조차 진주만 공습이 군부가 일으킨 개뻘짓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의 진주만공습 유도 음모론은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물론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과 같은 민간인 살상행위를 저질렀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당시 항공기의 폭격에 관한 증언이 있으며, 폭격을 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논쟁거리로 남아있음 또한 사실이다. 황현필의 주장대로 사건을 저지른 미군이 진지하지 않은 의도에서 폭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이유를 제시해 줄 자료가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여러 주장이나 상상이 난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살상행위나 그 밖의 범죄를 저질렀음을 의미하지, 미국이 한국전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했거나 미국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은 될 수 없다. 둘은 전혀 다른 얘기다.

덧붙여 '포격은 야포나 함포로 포탄을 사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니 항공기에서 '포'를 쐈다는 건 1950년부터 건쉽을 운용한 대황미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라는 지적은 대중적으로는 포격과 폭격을 엄격하게 구별해서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하면 비판받을 만한 핵심이 아니긴 하다. 다만 바로 그러한 생각으로 위안부 지원 시민단체가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하여 부름으로서(실제로는 그 둘은 일제에 강제 동원되었다는 점만 공통점으로 공유할 뿐 엄연히 다르다) 결국 훗날 일본 극우 세력에 한국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명분을 제공한 사례가 있음을 생각하면 아예 지적을 안 하고 넘기기는 힘들다.


5.3. 한나라 지도 인용 오류 및 시정 요구 불응 논란[편집]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해당 영상에서 한나라의 지도를 잘못 인용하였다. 경상도가 한나라의 영토로 표기된 역사왜곡 지도를 영상에 띄운 것.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주제의 영상에서 동북공정 지도를 사용한 것이다. 지도 자료를 찾다가 필터링을 제대로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해당 지도는 구글에 han dynasty라고 검색했을 때 제일 상단에 뜨는 지도 중 하나이다. 영상 편집자의 실수일 수도 있으나, 황현필 역시 역사 강사이고 역사왜곡을 바로잡겠다고 역바연까지 만든 입장에서 관련 자료 체크를 꼼꼼히 하지 않은 건 비판의 여지가 충분한 부분이다. 이에 관해 2020년 8월 4일,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이렇게 관련 언론보도가 있었음에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지 영상의 조회수가 200만 이상이 되고, 글 작성으로 3년 이상 지난 2023년 현 시점에도 전혀 수정하지 않은 상태로 두고 있다. 그리고 해당 영상에 댓글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침묵, 무시로 일관하고 있고, 역사이다 채널에서 영상을 만들기도 했으나황현필 선생님 동북공정 지도 삭제요청드립니다 역시 반응은 없었다. 심지어 역바연 홈페이지 역사토론 게시판에도 재차 문제를 제기하고 글을 작성했음에도# 황현필은 물론 역바연 어떤 직원들도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역바연을 만들겠다고 할 때 역사왜곡에 대해 제일 먼저 언급한 사례가 중국의 동북공정 사례였음에도 수정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역사이다는 계속 침묵하지 말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영상에 대한 조치를 하거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해당 지도의 인용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밝히라고 재차 요구했고, 다른 회원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황현필 한국사 커뮤니티나 역바연 차원에서 어떤 공지도 없이 갑자기 동북공정 비판 영상에서 한반도 부분이 블러처리된 것이 확인되었다.
파일:황현필 동북공정 지도 사용 After.png
비로소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한 것으로 보이나,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블러처리하고 끝내버린 부분 역시 대응 면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5.4. 모두공 2023년 강의 미촬영, 미통보 논란[편집]


○ 2023 강의는 왜 안찍으시는 거예요?? 선생님 2023강의만 기다렸는데 .. 그래서 모두공패스 끊은거고요 ㅠㅠ 책도 새로 살 생각이고 그랬는데 앞으로도 안 찍으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번 시험 해설강의도 없고 유튜브만 올리시고 무슨 일 있으신가요.. 2022강의는 2번씩 들어서 새출발하고 싶었는데요 다른곳 패스 또 끊게 생겼네요


○ 올 해는 어떻게 진행되는건지 모두공에서 아예 나가시는건지 어떠한 상황에 계신지를 공지라도 해주셔야 수험생 입장에서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고 루트를 잡아 나가야하는 상황인데 유튜브는 계속 올라오지만 카페에서 어떠한 공지도 없고 조교님께서도 2023강의의 글에 대한 답도 전혀 안하시고.. 최대한 빨리 입장을 얘기해주시는게 저를 포함한 수험생분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선택 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2022년 6월, 황현필 한국사 네이버 카페 홈페이지에 2023년 강의는 없는 것이냐는 질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황현필이 2022년 강의 촬영이 없을 것이라 고지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황현필 강의만을 생각하고 모두공 패스를 끊은 회원들이 많았다. '해설 강의도 없는데 바쁜 것이냐' , '유튜브만 올리시고 속상하다.' , '2023년 계획이 무너졌다.' 와 같은 회원들의 하소연 글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모두공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봤다는 한 수험생은 '담당부서와의 논의를 통해 기존강좌 제공으로 신규강좌를 미업로드 예정이며, 모두공과의 계약해지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황현필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도 이런식의 소통이 문제였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링크[* 현재는 볼 수 없다.] 이전에도 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 문제로 카페에 지속적으로 논란이 있자, 황현필은 2022년 7월 11일, '고민을 하다가 부득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고 직접 공지했다. 회원들은 순순히 받아들였고, 논란은 여기서 종결되었다.


5.5. 역바연 회원 대응, 소통 논란과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편집]


2022년 6월, 황현필이 역바연 신문 홈페이지를 개소하고 태백광노들을 대상으로 시민기자를 모집했는데 모집 과정에서 시민기자에 지원한 한 회원이 기사 제보 등에 대해 역바연측의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고 역바연에서 약속한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소통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역바연에서는 일방적으로 회원의 글을 삭제해버렸다. 이에 해당 회원은 본인이 글을 지우지 않았다며 글을 재작성했고, 역바연 편집인이 문제를 제기한 회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소통 및 회원 대응, 홈페이지 관리 미흡 문제 등이 불거졌다.

황현필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다가 2022년 10월 3일,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유료 멤버십 회원들만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영상에서 역바연 신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서야 감회를 밝혔다. 시민기자로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신문을 비난하면서 직원들이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갑작스레 역바연 신문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황현필은 운영 중단을 결정함으로써 손해가 수 천만 원 발생했다고 언급했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론적으로는 소통으로 불거진 이 사건으로 신문 운영이 중단되고 수 천만 원의 피해까지 볼정도로 큰 사건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나도록 황현필은 역바연 신문 홈페이지나 유튜브 커뮤니티 등 어떤 공식적인 경로로도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에 대해 공지하지 않았다. 비멤버십 구독자들은 물론 유료 멤버십 회원중에서도 스트리밍 영상을 보지 못한 회원들은 신문사 운영 중단에 대해 알지 못했으니 다소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특히,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정기 유료 구독을 통해 역사바로잡기연구소 회원을 모집하고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활용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역바연이, 이를 자세하게 회원 전체에게 고지하지 않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지 않은 것.

실제로 역바연 신문은 9월 이후 기사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게시판이 통폐합되었으며, 2023년 1월에는 신문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역사바로잡기연구소 홈페이지로 용도를 변경해버렸다. 실질적으로 신문사 홈페이지 개소가 8월 15일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개소 한 달만에 신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두 달도 안되어 폐간이 된 셈. 해당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5.6. 유튜브 멤버십 혜택 불이행 및 혜택 변경 미통보 논란[편집]


황현필은 유튜브를 통해 기부후원 등은 요구하지 않는다. 이유는 후원을 받을만큼 스스로가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고, 신념과도 어긋나서라는 것. 실제로 실시간 스트리밍에서는 회원들이 슈퍼챗을 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그 역시 원치 않는다고 했다. 대신 역바연의 책을 구입하거나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멤버십을 유료 구독하는 것이 후원이라며 권유하고 있다. 이는 기부의 방식을 하지 않은 기부인 셈인데 유튜브 멤버십 가입은 어디까지나 황현필 개인 채널에 유료로 가입한 것이니 기부가 아니다. 책 구입 역시 출판사에 책을 산 것일뿐이므로 기부가 아니다. 그러므로 황현필이나 역바연 측은 모금액 및 사용 내역을 공개할 필요가 없다. 또한 기부금영수증 발행 대상도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2021년 3월 10일, 황현필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시작합니다. 영상을 업로드하고 본인이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를 만들어 역사왜곡을 바로잡아보겠다고 말하면서 유튜브 멤버십 회원이 되면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의 회원이 되는 것이라며 멤버십 가입을 호소했다. 멤버십 설명에도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의 회원이 된다고 적혀있으나 실제로는 역사바로잡기연구소이다. 멤버십 회원들은 박은식의 호인 태백광노라고 부르며 멤버십은 월 1,990원, 4,900원, 12,000원으로 나뉘어져있고 금액별로 혜택에 차이가 있었다. 내용과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1,990원(앱스토어에서는 2,500원) :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의 회원이 되십니다. 주기적으로 역사 왜곡에 관련된 영상과 각종 칼럼 및 연구성과, 소식들을 전달받으실 수 있습니다.

○4,900원(앱스토어에서는 6,500원) :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 외부 강연에 초청 받으실 수 있습니다.

○12,000원(앱스토어에서는 15,000원) : 역사왜곡바로잡기연구회의 출판 기념회 및 그 외 특별 모임에 초대 받으실 수 있습니다.

파일:황현필 유튜브 멤버십.png

이러한 설명이 되어있었으나 실제로는 멤버십 회원의 혜택이 제대로 제공된 적은 거의 없었다. 정확히는 역바연 전용 영상이라고 가끔 업로드되는 것이나 실시간 스트리밍 외에는 없다고 봐야 하는데 멤버십 가입 독려 이래 외부 강연이나 특별 모임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출판 기념회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가 2023년 2월 1일이 돼서야 역바연에서 출간하는 박만규의 도산 안창호의 민족혁명론, 대한민국 국부 도산 안창호 출판기념회가 처음 열리게 되었다.
파일:황현필 출판기념회.png

그런데 이마저도 제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황현필 한국사 멤버십 12,000원 가입자의 경우 혜택 설명에 역바연 출판기념회 및 특별 모임 초빙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으나 황현필은 출판기념회로부터 하루 전 날인 2023년 1월 31일 오후에서야 멤버십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출판기념회 사실을 알렸다.

이는 멤버십 회원 혜택과 맞지 않는다. 비록 본인의 출판기념회는 아니라지만 멤버십 혜택에 황현필 본인의 출판기념회가 아닌 역바연의 출판기념회에 초대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역바연에서 출간하고 역바연이 주최가 되어 진행하는 출판기념회는 당연히 사전에 고지하고 참여자를 모았어야 약속이 제대로 지켜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루 전이었으니 당연히 혜택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것. 설사 황현필이 조용히 다녀올까 하다가라고 알림 글을 시작하여 출판기념회 사실을 알릴 생각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하더라도 애초에 사실을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약속을 어기려고 한 것이다. 혜택 제공 내용을 생각하면 황현필 본인 의사와 관계 없이 출판기념회 사실을 알렸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멤버십 혜택과 별개로 멤버십 회원들에게 구두로 한 약속은 더더욱 지켜진 일이 없다. 실시간 스트리밍을 1달에 1회는 하겠다는 약속을 수 차례 하는동안 지켜진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2022년 기준 실시간 스트리밍은 단 3회 이루어졌다. 그리고 스트리밍에 역바연에서 책을 출간하는 작가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도 하였으나 약속 후 두 차례 스트리밍을 진행하면서 그 어떤 작가도 스트리밍에 함께한 일이 없었다.

또한, 2023년 한국사 일력 발매와 더불어 멤버십 회원들에게 매일 오전 8시에 오늘의 한국사를 설명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약속으로부터 4일만에 첫 지각을 한 것을 시작으로 주말까지 포함하여 한 달 평균 4회 가량 제시간에 업로드하지 않았다. 그러다 2023년 2월 12일, 주말에는 시간을 자유로이 하겠다고 고지한 후로부터 주말은 업로드 시간이 불규칙적이게 되었다.
파일:황현필 오늘의 한국사.png

출판기념회로부터 얼마 후, 멤버십 혜택에 출판기념회 초빙과 같은 내용들이 모두 삭제되었다. 금액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되던 멤버십 혜택을 어떤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변경해버린 것이다. 이전에 확인되던 혜택을 원하여 많은 비용을 부담한 사람에 대한 어떤 고려나 이행되지 않은 약속에 대한 환불 등의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


5.7. 천안함 피격 사건 왜곡[편집]


2018년에 촬영된 이투스 강의에서 강의 도중 천안함 피격 사건이명박 정부의 조작이고 만약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면 자신의 손을 자르겠다는 발언을 하며 천안함 음모론을 주장하는 등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사과하고 영상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황현필 강사의 이투스 서비스가 종료된 관계로 지금은 그 발언 내용을 볼 수가 없다.

역TV는 황현필의 과거 천안함이 이명박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발언으로 3편을 올리겠다고 했었지만 황현필이 사과하고 영상과 글을 지웠기 때문에 더 이상 공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5.8. 건국전쟁 비판과 왜곡 논란[편집]


해당 내용에 대한 제도권 언론 기사[14]
#2

이전에 황현필은 이승만이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이고 한국 독립운동에 공적이 있다는 점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으나# 건국전쟁 영화 리뷰에 대한 요청에 대해 올린 관련 영상은 이승만이 그의 독립운동 행적을 떠나서 일각의 주장처럼 무조건적으로 '국부'로까지 찬양받아서는 안 될 이유를 설명하였다고 주장했다.

2023년 2월 1일, 영화 건국전쟁이 개봉한 이후 이승만을 다뤄달라는 구독자들의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황현필은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을 뭐하러 다루느냐? 내 역겨움은 누가 담당하느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학문적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 라면서 딱 잘라 부정했다.[15] # 그 이후 영화에 대한 감상평 대신 '이승만을 까는 25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옛날에 제작한 영상을 올렸는데# 해당 영화를 다루어 달라는 일각의 요청에 대한 답변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디씨인사이드에서 전한길과 비교하며 비난하는 의견이 올라왔는데,#[16] 황현필 본인도 영화 길위에 김대중을 보고[17] 리뷰 영상을 남겼다는 점이 비판받았다.

황현필이 25가지 비판 영상을 올리자 유튜버 Ground C[18]는 황현필이 주장한 내용을 반박하며,# 황현필이 CIA의 공식 문건을 일부만 발췌하여 고의적으로 "이승만이 돈에 혈안이 되어 살았다"를 포함한 25가지의 내용을 고의적으로 왜곡 및 날조를 자행하여 영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침 간다효 역시 한국근현대사 시리즈를 이승만 편으로 시작하면서, 삼파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후 황현필은 영화를 보고 왔다는 글을 자기 채널에 남겼고, 이를 유아용 수준의 영화라고 비판하였으며 이후 "역겨운 리뷰"를 시작으로 이승만편 영상을 올리면서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이나 학살 사실을 영화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며 이에 대한 희생자들의 추모하였다. # # # # # 다만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승만을 친일파라 주장한 것을 "지독한 반일론자" 라고 말을 바꾼 것때문에 주장의 앞뒤가 안맞는다는 비판에 처하였다.# 그리고 야인시대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미디어 컨텐츠를 도입하여 감정에 호소하였으나 자신의 주장에 반박한 내용에 대한 사료와 해석이 그에 비해 빈약한 점과 공과 과를 모두 역사 공부를 차원에서 설명하는 전한길의 태도와 달리 무작정 비난만 한 것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후 공개토론을 하라는 댓글이 달리자 황현필은 공영방송이면 하겠지만, 역사전공 아닌 유튜버는 됐고, 김덕영 감독이나 뉴라이트라 칭하는 쪽의 사람들은 자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2vs2라면 자존심이 상하니 오면 3vs1 토론이라도 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황현필의 전공은 사범대학 소속 역사교육학인데다, 본인 역시 사회과학대학 소속 사학 전공이 아닌 유튜버이면서 유튜버를 사양한다는 명목으로 싸움을 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일자 슬쩍 댓글 내용을 바꾸었는데, 이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수정 전 수정 후 토론을 피하지 않겠다는 말과는 무색하게, 도리어 직접 토론을 요구하는 그라운드C나 윤서인 등의 주장을 무시한 채, 정작 영화평을 남기고 가만히 있는 전한길에게 도리어 토론하자고 도발하는 숏츠 영상# 을 올리는 속칭 방구석 여포같은 일을 하고 있어 신빙성을 잃고 있다.#

그 다음날, 차례로 그라운드 C와 간다효는 4.3사건, 여순반란 사건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과 미군정, 서북청년단, 대한민국 정부가 관련된 시대적 배경을 둘러싼 비극을 조명하였는데, 그라운드 C는 해당 영상에서, 황현필이 기존에 올린 영상에 대한 반박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여 정작 구독자들이 요구한 내용을 다루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는 점을 말하며 댓글에 남긴대로 자신과 토론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자신이 황현필 반박 영상을 3부까지만 올리기로 한대로 본래의 컨텐츠인 9시 뉴스로 돌아가 총선 이슈를 다루는 대신, 자신이 그간 촬영해 올린 영상 및 참고하면 좋은 타 채널 영상 리스트 제목을 띄우고는 이것을 보는 구독자가 판단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간다효 역시 4.19혁명을 끝으로 이승만 편을 마무리지으면서 "이승만에게는 오만과 독선이 있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인물임은 틀림없고, 한 면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5.8.1. 이승만 관련 CIA 문건 짜집기 조작 및 번역 왜곡[편집]



6개월 후를 내다 본 30만뷰 영상. 이승만은 이걸로 종결

영상(1분 50초~2분14초)에서 17페이지 분량의 "PROSPECT FOR SURVIVORS OF THE REPUBLIC OF KOREA"란 제목의 미국 중앙정보국 CIA 작성 공식 문건의 극히 일부인 9페이지의 한 문단을 캡춰해서 보여주면서 자신이 한 말이 아니고 CIA에서 한 말이라고 강조하며 이승만은 "사적인 목적인 가지고 독립운동을 했다' 등의 내용이 있다며 이승만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문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록 미국 입장에서는 미국 국무부 등과 여러가지 충돌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이승만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유능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전체적인 맥락을 삭제하고 캡춰해서 보여주는 문단 조차도 전체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 부합되는 문장만 해석하여 CIA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주장 하였다.

왜 역사왜곡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첨부된 유튜버 그라운드 C의 동영상과 역사 강사 황현필 주장 검증1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로 CIA 문건은 원문 전체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5.8.2. 이승만 관련 워싱턴 포스트 기사 짜집기 조작 및 번역 왜곡[편집]




6개월 후를 내다 본 30만뷰 영상. 이승만은 이걸로 종결 영상(3분 50초~4분 2초)에서 1912년 11월 18일자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인용하며 이승만이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근대화 되었다"는 발언을 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완벽하게 있습니다." 이러면서 이것은 식민 지배를 찬양한 것으로 독립운동가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 원문을 보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근대화 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으며, '3년 안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표현만 있으며 황현필이 잘라버리고 안 보여준 기사의 마지막 부분까지 포함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식민 지배가 아니라 YMCA의 선교 및 봉사 활동을 다룬 기사[19]로 일본의 치적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도 않는다.

5.8.3. 이승만의 특혜 및 횡령 등 주장[편집]


이승만이 부동산을 하와이에 사서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하고 부담을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떠넘겼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하와이의 부동산 거래내역 및 토지대장을 사료로 반박 할수 있다고 위의 유튜버[20]가 주장하였다.
그라운드C는 2400달러를 유용했다는 주장과는 달리 3000달러 규모였는데 그것은 이승만 명의가 아니었고, 그 돈의 사용새는 하와이에 남녀 기숙학교를 짓는데 쓴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승만은 그 땅과 건물을 1달러에 양도받은 뒤,[21] 그곳에서 숙식하며 무보수로 일하다가, 남녀공학으로 바꾼 이후 25달러의 월급을 받고 가계부를 꼼꼼히 적어가면서 영수증을 모아둔 것이 확인되었다. 심지어 토지에 딸려있던 빚까지 양도받은 상태에서 자신이 빚을 다 갚고 추가적인 대출없이 학교를 증축했다는 것. 즉, 한인들의 돈을 멋대로 유용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기는 커녕 스스로가 근검절약을 통해 한인사회의 빚을 갚고 크게 한인 교육사업을 확장한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1918년 일본국적표기에 관한것은 여객선 탑승이나 출입국서류 등 기타 문서에는 Korea 로 표기된 것 등으로 반박하였다.


5.8.4. 미국 내 수사 내용 곡해[편집]


그라운드C는 미국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이자 조달청의 전신인 외자구매처 제5대 처장을 역임한 손노듸(또는 김노디, 아명 김또라) 지사와 이승만을 만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며 불륜으로 몰아간 백년전쟁의 날조 자료를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말했다고 주장하였다. 실상은 백년전쟁 다큐와 달랐는데, 손 지사는 이승만이 개교한 한인기독학원의 학생이자 이승만의 수양딸로 확인되었다. 실제로 친부모인 김윤종- 김윤덕 부부가 조선으로 돌아갈 때, 이승만에게 남긴 입양문서가 사료로 남아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미주 내 독립운동 활동 중 우연히 만나 회포를 풀던 두 사람에게 만법 위반 의혹에 대한 수사기록상 기소조차 되지 않았음이 확인되었다.# ##

한 술 더 떠 두 사람이 불륜으로 기소되었다며 제시한 머그샷은 결국 악의적으로 합성 및 조작된 사진으로 확인되었다. 사진에 나온 여성은 신마실라(본명 신마숙, 1892~1965)로, 이화학당 1회 졸업생으로 이승만의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일찍이 백년전쟁에서 신마실라 사진을 이승만 사진과 합성해 범죄자 사진처럼 꾸며놓은 것을 황현필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사학자이자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 중인 박종인 기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연세대 오영섭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반박하였다. # 즉 황현필은 오로지 이승만을 악마화하기 위하여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날조한 것도 모자라 독립운동가 2명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5.8.5. 장인환, 전명운 변호 거부 관련[편집]


더럼 스티븐스를 암살한 장인환전명운의 변호를 이승만이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사실상 변호를 거부했고 한인 사회의 원망을 샀다고 주장했지만, 이것도 거짓 주장이다. 한인들이 이승만에게 요구한 역할은 변호가 아니라 통역인데, 애초에 이 사건 당시에 이승만은 변호사 자격증이 없는 상태였다. 거액을 요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아예 없다. 이승만은 외교독립론, 실력양성론을 신뢰했으며, 이 사건으로 미국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여론이 나빠져[22] 통역을 해주기 쉽지 않았다. 여기에 재판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와는 완전히 반대쪽 끝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개인적 사정이 있어 이승만은 신뢰하는 동지인 신흥우에게 통역을 맡겼다. 스티븐스 암살을 주도한 단체인 대동보국회는 1910년 이승만의 저작인 독립정신을 출판하여 이승만을 전혀 원망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5.8.5.1. 편향적인 자료 사용[편집]

황현필은 이 주장의 근거로 재미교포인 헨리 쿠 킴[23]의 자서전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런데 황현필의 자료화면에는 출처가 'The Writings of Henry Cu Killl'이라고 적혀 있는데, pdf 화면을 잘못 복사했을 때 나오는 오류이다. 애초에 자서전이기에 편향성과 오류를 감수해야 하는데, 역시 책을 편집한 서대숙 교수는 서문에서 '이승만은 저자의 적이기 때문에, 이승만에 관한 서술은 극도로 왜곡되었다[24]'며 자서전의 편향성을 매우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황현필은 이 책을 인용해 '이승만이 하와이 갱스터(...)'라고도 주장했는데 이 부분 역시 교차 검증이 전혀 되지 않는 김현구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김현구의 자서전을 제대로 읽었다면 애초부터 사료의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책인데, 책을 읽지 않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몇몇 내용을 뽑아 발간한 자료집만 읽은 결과라고 추론할 수 있다.


5.8.6. 독립운동가 고발 관련[편집]


박용만과 금전 문제로 법정소송을 벌이던 중 박용만이 호놀룰루에 일본 군함 이즈모가 정박했을 때 이를 폭파시키고자 한 사실이 있다며 과격하게 발언한 것을 '박용만을 일본 군함 폭파 음모 혐의로 법원에 고발했다'며 왜곡하였다.


5.8.7. 헌법 내 4.19혁명 기재로 인한 반헌법적이란 주장[편집]


건국전쟁 키워드는 거짓말과 감추기라면서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1962년 11월 5일 헌법 개헌을 통해 4.19 정신을 언급하였으니 이승만을 기리는 행위는 반헌법적이며, 보수우파들이 존경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과 모순된다면서 결국 이승만 추앙은 반 대한민국적이라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처한 정치적 상황상 구 권력자들을 견제하고 신군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재편을 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무시한 내용이다. 황현필이 언급한 "우리 민족의 나갈 길(박정희, 남종옥)" 은 5.16 군사정변 이듬해인 1962년에 나온 책이고, 실제로 이 책에서 박정희가 이승만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박정희는 4.19 혁명 발발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승만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이 증거가 바로 1965년 7월 27일에 이승만의 유해를 모실 때 친히 지었던 조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박정희는 이 추도사를 짓고 이승만의 장례식에서 국무총리 정일권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낭독하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이승만 대통령 조사(弔詞) 전문 펼치기(클릭)

박정희 대통령의 이승만 대통령 조사(弔詞)

조국독립운동의 원훈이요, 초대 건국대통령이신 고 우남 이승만박사 영전에 정성껏 분향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삼가 조의를 드립니다. 돌아보건대 한마디로 끈어 '파란만장의 기구한 일생'이였습니다.

과연 역사를 헤치고 나타나, 자기 몸소 역사를 짓고 또 역사위에 숱한 교훈을 남기고 가신, 조국 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로서 박사께서는 이제 모든 영욕의 진세인연을 끈어버리고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생전의 일동일정이 범인용부와 같지 아니하여, 실로 조국의 명암과 민족의 안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던 세기적 인물이었으므로, 박사의 최후조차 우리들에게 주는 충격이 이같이 심대한 것임을 외면할 길이 없습니다.

일찍이 대한제국의 국운이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용감히 뛰쳐나서 조국의 개화와 반제국주의 투쟁을 감행하던 날, 몸을 철쇄로 묶고 발길을 형극으로 가로막던 것은, 오히려 선구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특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에 쫒겨 해외의 망명생활 30여 성상에, 문자 그대로 혹은 바람을 씹고 이슬위에 잠자면서 동분서주로 쉴날이 없었고, 또 혹은 섶위에 누워 쓸개를 씹으면서 조국광복을 맹세하고 원하던 것도, 그 또한 혁명아만이 맛볼수있는 명예로운 향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70노구로 광복된 조국에 돌아와 그나마 분단된 국토위에서 안으론 사상의 혼란과 밖으로는 국제의 알력속에서도 만난을 헤치고 새나라를 세워, 민족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여 민주한국독립사에 제1장을 장식한 것이야말로, 오직 건국인만이 기록할 수 있는 불후의 금문자였던 것입니다.  

이같이 박사께서는 선구자로, 혁명아로, 건국인으로 다만 조국의 개화, 조국의 독립, 또 조국의 발전만을 위하여 온갖 노역을 즐거움으로 여겼고, 또 헌신의 성과를 스스로 거두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평생 견지하신 민족정기에 입각하여 항일반공의 뚜렷한 정치노선을 신조로 부동자세를 취해왔거니와,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사의 국가적 경륜이였고, 또 그중에서도 평화선의 설정, 반공포로의 석방등은 세계를 놀라게 한 정치적 과단력의 역사적 발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집권 12년의 종말에 이르러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이른바 정치적 과오로 인하여 살아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던 쓰라린 기록이야말로 박사의 현명을 어지럽게한 간신배들의 가증한 소치였을망정 구경에는 박사의 일생에 씻지못할 오점이 되였던 것을 통탄해 마지 못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다시한번 헤아려보면, 그것이 결코 박사의 민족을 위한 생애중에 어느 일부분일 망정 전체가 아닌것이요, 또 외부적인 실정 책임으로서 박사의 내면적인 애국정신을 말살하지는 못할것이라 생각하며,  또 일찍히 말씀하신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귀국일성은  오늘도 이 나라 국민들에게 들려주시는 최후의 유언과 같이 받아들여, 민족사활의 잠언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어쨌던 박사께서는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세기적 비극의 주인공이였던 것을 헤아리면, 충심으로 뜨거운 눈물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만,  그보다는 조국의 헌정사에 최후의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어린양의 존재가 되심으로써,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위인이란 거룩한 명예를 되살리고, 민족적으로는 다시 이땅에 4.19나 5.16 같은 역사적 고민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살피시어, 자주독립정신과 반공투쟁을 위한 선구자로서 길이 길잡이가 되여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박사로 하여금 그토록 오매불망하시던 고국땅에서 임종하실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고 이역의 쓸쓸한 해변에서 고독하게 최후를 마치게 한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박사에 대한 영원한 경의로, 그 유택을 국립묘지에서 가장 길지를 택하여 유해를 안장해 드리고자 합니다.  생전에 손수 창군하시고 또 그들로서 공산침략을 격파하여 세계에 이름을 날렸던 바로 그 국군장병들의 영령들과 함께,  길이 이 나라의 수호신되셔서, 민족의 다난한 앞길을 열어주시는 힘이 되실 것을 믿고, 삼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동시에 유가족 위에 신의 가호가 같이 하시길 바라는 바입니다.」



박정희가 1962년 11월 5일 헌법을 고쳐 4.19 정신을 넣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이승만 실각의 결정적인 사건이 된 3.15 부정선거가 간신배로 대표되는 이기붕의 폭주에 의한 일이었고, 그 결과 4.19 혁명이 발발했음을 분명히 추도사에 언급하고 있다.

즉 헌법에 명시된 4.19 정신에서 말하는 불의는 이승만 정권 그 자체가 아닌, 3.15 부정선거 등의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악의이며, 4.19 정신은 그러한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사회적인 상황을 무시한 채 단순히 "헌법에 적혔으니 반헌법적" 이란 말은 개헌 당시의 주체와 정치사회적 상황을 무시한 말이며, 그저 갈라치기하려는 얕은 발언이라 볼 수 있다.

비록 박정희가 이승만 생전에 자신이 이승만의 입국을 막고 헌법에 4.19를 넣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과 권력을 확보했을지언정, 개헌 3년 이후에 추도문에 나온 내용은 항일반공의 뚜렷한 정치노선을 신조로 건국 및 발전을 위해 살았고, 12년의 정권 막바지에 측근들을 통제하지 못한 정치적 과오로 인하여 살아서 역사의 심판을 받은 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지만, 결코 이승만의 일생 전체가 과오는 아니었고, 내면적인 애국정신은 진심이었다면서 이승만의 공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4.19로 실각한 이승만을 국립 현충원에 모시면서 조국의 수호신이 되어 나라를 보살펴 4.19의 고민이 역사에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빌고 있으니, 박정희는 결코 헌법적인 이유로도 이승만의 존재와 공을 부정하지 않았다.[25]

6. 사건 사고[편집]



6.1. 이우연, 김병헌, 주옥순의 고소[편집]


황현필이 2022.06.27, 독일 베를린에 가서 위안부는 사기라며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시위하는 대한민국 엄마 부대 대표인 주옥순 등의 시위에 대해 비판하는 영상을 업로드했다.시위를 멈추라, 독일 현지 상황

이 영상에서 황현필은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주옥순과 더불어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우연, 국사교과연구소 소장 김병헌을 지칭하여 '이 X끼들이'와 같은 표현을 쓰며 이들의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저들이 이 영상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지 이우연, 김병헌이 위안부 사기 청산 연대단체의 이름으로 황현필을 고소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주옥순이 개인적으로 따로 고소했다. 고소장이 공개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당시에는 황현필이 어떤 죄목으로 고소당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으나, 후술할 역바연 신문 기사에서 모욕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황현필은 2022년 9월 5일, 자랑스럽게(?) 고소당했습니다.라는 영상을 업로드하여 자신이 고소를 당한 사실, 그리고 자신의 비판은 정당했으며, 저들에게 고소를 당했다는 것은 훈장을 받은 일이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황현필이 창간한 역바연 신문에도 기사가 게재되었다.
'엄마부대' 주옥순에게 고소당한 황현필, 강경대응 예고.


7. 여담[편집]


  • 인터넷에서는 황현필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오간다. 유튜브에서 나온 본인의 말로는 "자신은 보수주의적 성향이 약간 더 강하나, 진보주의적인 성향도 있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변상욱쇼에서도 비슷한 논지의 주장을 하였다.)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우파진영, 그리고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대표되는 검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김원봉 서훈에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며, 외교적으로는 내셔널리즘, 민족주의, 국수주의 성향이라는 것이 보통의 인식이다.

  • 반면 시장경제를 옹호하며 김일성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을 잘 하기도 한다. 실제로 북한 2000만 인민이 모두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더라면 김씨 일가의 3대 세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2022년 1월에 올린 '우리 역사상 최악의 인물 5인'[26] 영상에서 김일성을 5인에 넣었다. '소위 진보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도 있고 과도 있는 박정희는 독재자라고 비판하면서 김일성은 왜 비판 못 하냐'면서 '대한민국에서 진짜 진보라면 김일성 개X끼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언급까지 하였다. 김일성과 이승만이 같이 최악의 5인에 선정되자 친이승만 성향 우익 유튜버들이 황현필을 비난하기도 했다.

  •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안산 단원 을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 김남국 후보가 살레시오고등학교에 재학 중일때 교사 일을 하며 사제지간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김남국 후보가 정치를 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동시에 보수 정치채널(정확히 안밝힘)의 패널들에게 똥이 묻었다고 비난했다. 이후 김남국 후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1.32%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되었다.
역사채널을 운영하면서 총선 개입은 자제하려 했습니다만, 한 후보 이야기만 해야겠습니다.
우연히 보수 정치채널에서 똥 묻은 보수 패널들이 재도 묻지 않은 김남국 후보를 저격하는것을 보고 참기 힘들어 이 게시글을 남깁니다.

사사로이 사제지간이고 고교 후배이기에 김남국 후보의 사람됨을 감히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남국이의 겸손함과 성실함, 정의로움은 안산 단원 을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고, 낮추어 섬기는 국회의원 김남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27]

참고로 진보라는 큰 울타리 안에 함께 있지만, 어떤 정치 사안에 대한 생각은 견해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김남국 같은 친구가 해야 한다는 저의 소신을 명확히 밝힙니다.

  • 실강중에 국정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국정원에서 조사를 다 마치고 나올 때 국정원 직원이 매점 같은 곳을 데려 갔다고 한다. 거기서 직원이 웃으면서 선생님 국정원 시계를 사세요. 라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직원이 사라고 하니까 안사면 안되나? 꼭 사야 하나? 도청 장치가 있나? 이런저런 생각 하면서 시계 한 개를 사서 나왔는데 나와서 보니까 안에서 산 가격의 2배는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고 그때 한 100개 사가지고 나와서 팔걸 그랬다고. 자기가 힘들게 강의하는 것보다 담 하나 넘어서 나오면 2배 치기가 가능했을 거라며 웃으면서 얘기했다.

  • 환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고 환단고기, 대륙설을 분명하게 유사역사학으로 분류하고 있다. 황현필은 역사가들이 바보가 아니라며 역사 메커니즘의 기본만 알아도 그런 주장은 할 수 없고,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이 유사역사학 주장을 하면 사기꾼으로 취급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빠들이 황현필을 비판하는 것은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가지고 (본인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가들을 바보취급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환빠들 역시 황현필을 이병도의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은 사학자로 비난한다. 황현필에 의하면 유튜브 댓글에서 본인을 가장 많이 비난하는 사람들이 유사역사학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 백선엽에 대해서 다룰 때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였음을 강조하며 민족반역자라고 비판했다. 간도특설대은 '조선 항일세력은 같은 조선인이 잡자는 친일파 조선인 부대. 관련 학술 논문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현재 학계의 연구 자체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반면에 김홍일 장군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

  • 윤서인을 매우 싫어한다. 윤서인을 '지옥에 가야 할 친일파 매국노'라고 칭하였다.

  • 아베 신조 피살 사건에 관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일본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 돌아갔다"고 한 표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

  • 국정원에서 좌편향 강의에 대한 조사까지 받았으며 실제로 조사해보니 학생 시절 운동권 활동을 하지도 않았고, 교사 시절 전교조 활동도 없었고 대담에서도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게 명백해서 밥 한 끼 잘 얻어먹고 풀려났다고 한다. 시장경제 체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점은 유튜브에서도 드러난다. "평등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심은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이 일화를 광고 및 실강중 썰 푸는데 쓰고 있다.

  • 역바연에서 공개 발언한 내용들중 지켜지지 못한것이 있다.
    • 한 달에 한 번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잘 지켜지지 안았다.
    • 실시간 스트리밍에 저명한 인사나 역바연에 책을 출판하는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으나 그러지 못했다.
    • 역바연 신문 시민기자 신청자들과 만남을 가지겠다고 하였으나 그후 약속을 취소했다.
    • 회원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던 역바연 신문을 정식 개국 1달만에 운영, 관리를 포기했다.
    • 멤버십 최고 회원들은 출판기념회에 초대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해당 혜택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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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튜브 채널 강의 중에서 황희 정승의 후손이라 밝혔다.[2] 조선일보 보도를 통해 학적 확인.#[3] 살레시오고등학교, 2000년 9월~2007년 11월[4] 모두공 홈페이지[5] 역바연 홈페이지[A] A B 2024년 1월 8일 기준[6] 아직 이다지가 인강으로 데뷔하기 전이었고, 최태성도 EBS에서 강의하며 사설 인강에 진출하기 전 시절이었다.[7] 나머지 4인은 연남생, 원균, 이승만, 김일성이다.[8] 광주김대중컨벤션센터[9] 2023 KBC 광주전남권 대학박람회 토크콘서트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_JnuyP1wTdM[10] 동구청(2023년 하반기 동구 인문대학2023년 9월 오후 7시[11] 서구청(2023년 10월 26일 오후 2시)[12] 남도소리울림터에서 '호남과 임진왜란'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13] 중간에 한 텀 쉰다.[14] 인터넷 강사의 비판 및 논란 규정 참조[15] 그러나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는 말은 "역사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하며 과거에 기록된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해석을 창작하는 과정"이라는 사학이라는 학문의 성격을 무시한, 이미 사료의 발견이나 사회문화상 변화에 따른 사관의 변화 등으로 인물 및 사건의 재평가가 이미 수없이 이뤄져갔고, 또 이루어져가는 연속선상에서 보먼 상당히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는 지적이 있다. 역사학 참조.[16] 다만 전한길에 대해서도 비판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한길은 영화 인증샷에 "특정 편향된 자칭 역사 전문가라는 편향된 논객들이 자기들이 모든 것을 아는 양, 독자나 국민들을 가르치려 들지 마라."라고 일갈했는데, 영화의 만듦새나 인물의 평가 여지가 있음에도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라든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은 원천봉쇄의 오류, 매듭 자르기의 오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한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을 다 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룬 길 위에 김대중도 볼 예정이라고 썼는데, 실제로 길위에 김대중을 보고 리뷰를 남겼다.#[17] 영상 자체를 보면 굳이 '개봉일'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전한길과는 달리 해당 영화를 직접 돈 내고 표를 사서 본 것은 아니고 본인도 시사회에 초청받아서 보게 된 것으로 보인다.[18] 우파 정치 및 국제 정세 유튜버[19] 지난 3년간의 한국의 발전에 YMCA와 기독교가 많은 기여를 했다는 의미[20] 그라운드C[21] 실제 '1달러'는 현재도 미국 법상 계약이 체결되는(권한 및 책임의 이양)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기 위한 상징적인 액수로 사용된다.[22] 당시 뉴욕타임스에는 '한국인은 잔인한 민족'이라는 논지의 기사가 실렸으며, 이승만과 같이 석사 과정을 밟는 학생들도 이승만을 피했다고 한다.[23] 한국 이름은 김현구. 이승만과는 금전 및 조직 문제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다.[24] Since Rhee was his adversary, Henry's account is extremely biased[25] 실제로 정치사에서 같은 진영에서도 견해 차이로 정적이 되거나 견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당대에는 힘을 견제할 필요가 있어 반대세력을 누르거나 전대의 업적을 가리는 일이 있지만, 후대의 평가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미국에서도 독립 선언서를 작성할 때 참여했던 사람들 중 연방주의자 존 애덤스와 공화주의자(반연방주의자) 토마스 제퍼슨의 사례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이 두 명은 각각 미국의 제2대 대통령과 제3대 대통령이었고, 각각의 재임 시기 때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이 둘의 살아 생전에 서로가 정적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정치 싸움을 벌였음에도 미국인들은 이 둘을 모두 건국의 아버지들로 인정하며, 이로 인해 탄생한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현재도 상호 대립 및 상호공존하는 미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사상의 결과물로 자리잡았다.[26] 낮은 순위부터 연남생, 원균, 민비, 김일성, 이승만 [27] 잘 알다시피 김남국 의원은 온갖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며 민주당을 탈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