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다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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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개요[편집]
1943년 3월 14일 도쿄부에서 참의원 의원을 역임한 아버지 후지이 헤이고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후현 사라카와정에서 자랐으며, 1965년 세이조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아라비아 석유에 입사해 1971년부터 2년간 카타르에서 복무했다. 귀국 후 아라비아 석유 사장의 비서를 맡았고 1977년 퇴사해 아버지의 의원 비서를 맡았다.
1980년 아버지 헤이고가 의원 임기 중 사망하여 다음 해에 치러진 참의원 보궐선거에 자유민주당 당적으로 출마해 첫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986년 재선하고 제3차 나카소네 내각에서 대장정무차관(현 재무정무차관)에 취임했다.
1989년에는 다음 해에 치러질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구 기후 2구에 출마하려 했었으나, 공천 경쟁에서 패배하여 단념하고 자민당 참의원 국회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1993년 참의원을 사직하고 제40회 중원선에 구 기후 2구에 출마해 중의원에 첫 당선되었다. 이후 제2차 하시모토 개조내각에서 제72대 운수대신(현 국토교통대신)에 취임하고, 중의원 운영위원장과 예산위원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했으나 3위로 낙선하고, 2005년 고이즈미 내각에 반하여 우정민영화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우정민영화가 핵심으로 떠오른 제44회 중원선에서 자민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 2위로 석패율제 구제도 못받고 낙선했다.
2007년 제21회 참원선에서 자민당의 추천을 받고 무소속으로 기후현 선거구에 출마하여, 참의원에 복귀했다. 이후 자민당에 복당하고, 참의원 징벌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당시 다니가키 사다카즈 총재를 만나 직접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고, 일어나라 일본 창당에 참여했다. 이후 당 참의원 의원회장에 취임하고, 참의원 징벌위원장직을 사임했다.
2012년 제46회 중원선에서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도카이 비례 블록에 출마해 중의원에 복귀했다. 이후 유신회 총무회장과 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2014년 유신회를 탈당하여 차세대당 창당에 참여했고, 제47회 중원선에서 도카이 비례 블록 1번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15년 자민당 기후현지부연합에 복당 신고서를 제출했고, 다음 해 3월에 복당이 승낙되었다. 이후 2017년 제48회 중원선에서 도카이 비례 블록 14번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선권에 들지 못해 낙선했다. 낙선 이후 향후 선거 출마를 거부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18년에 욱일대수장을 수여받았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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