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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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요약
2.1. 2011년
2.2. 2012년
2.2.1. 지진에서 원전 폭발까지
2.2.2. 그 이후
2.3. 2013년
2.3.1. 미국의 우울
2.3.2. 사건사고 요약
2.3.4. 현재 상황
2.3.5. 그리고 미래는?
2.4. 2014년
2.5. 2015년
2.6. 2016년
2.7. 2017년
2.8. 2018년
2.9. 2019년
2.10. 2020년
2.11. 2021년
2.12. 2022년
2.13. 2023년


1. 개요[편집]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경과를 모아둔 문서.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13년이 지난 현재진행형이며, 특정비밀보호법안이 통과되기 전까지 사건일지가 빽빽하게 갱신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면 아래 '사건일지' 부분에 링크된 문서들을 전부 훑어볼 것. 법안 통과 이후로는 나오는 정보의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참고로 본 문서는 2011년 4월에 문서 분리로 삭제되었다가 2012년 8월에야 부활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전개 문서도 참고.


2. 사건 요약[편집]



2.1. 2011년[편집]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하자 후쿠시마 원전은 가동 중이던 원자로 1, 2, 3호기를 중지시켰다. 4, 5, 6호기는 점검을 위해 이미 가동 중지 상태였으며 6분 후에 HPIC이 가동된다.[1]

같은 날 3시 27분에 첫 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고 이때 수전선로가 파괴되어 외부전원이 차단되자 디젤발전기로 전원을 공급하여 냉각을 시작했다. 곧이어 3시 46분에 15m짜리 두 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한다. 5.7m의 쓰나미 방호벽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고 원전 지하실이 침수되어 변전기와 디젤발전기를 비롯한 각종 전력설비가 고장난다.[2] 사실은 2011년 3월 3일(지진 발생 8일 전)에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지진조사위원회가 "지금 당장 (거대 쓰나미가) 발생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했지만 보고서가 공개된 비공식 모임에 있던 위원들의 반대로 해당 문구는 삭제되었다. 물론 도쿄전력도 그 모임에 있었다.

전력설비가 침수되어 가동불능 상태가 되자, 이에 대비한 비상 배터리가 가동되었으나 이것은 8시간만 버틸 수 있는 용량이었다. 도쿄전력은 새로운 배터리를 공급하려고 했으나 도로사정으로 6시간후에 운반을 했고 설치하는데 쓰나미영향으로 상황이 좋지않아 결국 배터리가 방전되어 연료봉 냉각시스템이 꺼져버리자 연료봉은 방사성 붕괴열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호기가 수소 폭발을 일으켰으며 2호기는 내부 격납용기 파손, 3호기와 4호기까지 폭발하면서 멀쩡한 곳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폭발은 모두 수소 폭발이라고 발표되었다.[3]

3호기에 사용된 원자로는 우리나라에 많이 설치된 가압경수로와 달리 원자로 주변만을 둘러싸는 격납용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진을 보면 원자력 발전소 하면 떠오르는 커다란 돔형 구조물이 없는 것이다. 직육면체 건물은 원자로 주변의 장치에 지붕을 씌워놓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원자로는 물론 펌프와 증기발생기, 연료 교환 체계까지 전부 철근콘크리트로 덮어버리는 가압경수로와 달리, 후쿠시마의 비등경수로에 사용된 전구형 격납용기는 원자로만 들어있기 때문에 연료 교체를 위해서 격납용기의 뚜껑을 열어야한다. 후쿠시마 발전소는 이 부분을 볼트 체결로 밀폐했는데... 원자로가 사고로 달아오르면서 격납용기를 밀폐한 볼트가 늘어났고, 방사능 물질은 누출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틈으로 수소가 새어버렸다. 새어나간 수소는 대책없이 격납용기를 둘러싼 구조물의 상부에 쌓였고, 그게 폭발한 것이다. 그럼 대체 이걸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의문일텐데, 사실 볼트로 격납용기의 뚜껑을 밀폐하는 방법은 미 원자력 규제 위원회(NRC)의 규제상 문제가 없다...만, 이건 그냥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NRC에서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엔지니어들이 문제가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보완해둔 상태라 굳이 규제를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규제에 없으니 설계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써 버린 것이다(...) 4호기는 3호기와 격납용기 겉의 구조물이 연결되어 있는데 하필 여기의 밸브가 열린 상태여서 3호기에서 샌 수소가 4호기의 구조물로도 들어왔고, 또 그게 터져서 엉뚱하게 뚜껑이 날아가버렸다.

자세한 사항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조사 검증위원회가 만든 중간보고서 요약을 참고하자.

사실 원자로를 빨리 포기하고 처음부터 해수를 팍팍 부었다면 수습이 가능했다. 원자로가 아깝다고 도쿄전력이 30여 시간을 망설인 결과가 이거다. 수조원 짜리 원전을 폐기하는 것은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사기업' 인 도쿄전력 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 만큼 결정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30시간 동안이나 아무 짓도 안하고 있었다는 건 확실히 에러.[4] 그러나 2012년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진실은 이보다 더 나빴다.

이후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었으며 UN 산하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그 양이 체르노빌과 맞먹는다고 한다. 불행히도 이 의견은 10월 27일에 나온 것이어서 2011년 12월 31일 시점에서는 체르노빌보다 더 많이 누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태평양으로 뿌려졌지만 그래도 많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땅을 오염시켰으며, 이에 IAEA는 "원전 주변 40km 이내의 주민들을 대피시키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원전 주변 20km 이내의 주민들만 대피시킴으로써 국제 사회의 비난을 자초했고, "2012년 봄까지는 제염을 통해 해당 지역의 방사능 오염을 최대한 제거한 후, 상당수의 주민들을 고향에 돌려보낸다"는 계획까지 짜고 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사고 수습 로드맵은 여기를 참조하자.

사고가 터지자 세계 각국에서 도움의 손길이 밀려들었지만 일본 정부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를 외치며 도움을 거부하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태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원자력 전문가를 보내겠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끝끝내 거부했고, 이 와중에 도쿄전력은 주변국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버렸으며, 도호쿠 대지진으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던 주변국들은 일제히 일본에 비난을 퍼부었다.

사고가 터진 이후 도쿄전력은 원전에서 철수하려고 했지만 "도망가면 (도쿄전력을) 없애버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협박에 굴복해서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직원들이 철수했으며, 후쿠시마 50인이라 불리는 결사대만이 그 자리에 남아 열악한 조건하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이후 작업 인원은 점차 불어났으나 인력을 고용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속출하고 있다.

이후 일본 정부는 12월 16일에 사태 수습을 선언했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아니다" 를 외치고 있으며 일본 여론도 매우 나쁘다. 이는 방사능 물질의 누출이 아직 멈춘 게 아니기 때문이며, 심지어 현재 원자로 내부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추측에 따르면 1, 2, 3호기의 압력용기가 뚫렸고 콘크리트 격납용기도 상당 부분 녹았다고 하지만 방사능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

2011년 말을 기준으로 일본 정부도쿄전력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으며, 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들이 죄다 나중 가면 틀려먹는 데다가, 시간이 갈수록 발표 내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초기에는 노심용융조차 인정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노심용융을 인정하더니, 11월 말에는 압력용기가 뚫리고 격납용기도 손상되었다고 하는 판국이다. 도쿄전력이 고의로 사고를 축소 은폐했다는 증거도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규슈전력은 원자력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여론 조작을 하다가 걸렸다. 이때문에 주변국의 일반인들은 시민단체나 미국의 발표를 더 신뢰하는 상황이다.

민간인에 대한 배려도 엉망이다. 후쿠시마산 식료품을 500베크렐/kg만 넘지 않으면 시장에 내다 팔도록 허가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식료품 구입을 망설이고 있고 학교 급식을 포함한 이곳저곳의 식료품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어 폐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도쿄도 지역에 유통되는 모든 쇠고기에 대한 검사는 2012년 1월에야 시작된다. 피해자 집계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으며, 후쿠시마 현과 미야기현 일부는 백혈병 조사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이 와중에도 기형아 출산이 없는 이유가 "그런 아이는 낙태하니까 그렇다"는 주장까지도 나오는 판국이다.[5][6]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책 본부가 있던 오프사이드 센터의 높으신 분들은 재빨리 원전에서 60km 떨어진 후쿠시마시로 도망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오프사이드 센터를 원전에서 5km 거리에 세우는 바람에 사고가 터지자마자 방사능에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전역의 오프사이드 센터가 대부분 이렇다니 할 말이 없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스스로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있으며, 도쿄 한가운데의 방사선량이 높다고 신고함으로서 라듐을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시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이런 지경이니 캐나다의사협회에서 일본 지진으로 인한 대중보건붕괴라는 문서에서 "체르노빌 사고 당시의 소련 정부가 지금의 일본 정부보다 훨씬 책임감이 있다"는 평가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2.2. 2012년[편집]


2012년이 되면서 많은 정보가 나왔기에 수소 폭발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의 진행 과정을 보다 상세히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은 위에 기록된 것보다 더 나쁘다.


2.2.1. 지진에서 원전 폭발까지[편집]


일본 정부와 민간, 국회, 그리고 도쿄전력이 각각 구성한 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원인이 무엇이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의 화상회의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으므로 대략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요약에 있는 내용은 화상회의 동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아사히신문의 기사(현재 폐쇄) 01, 02, 03,04, 05, 06, 07, 08, 09, 10과 EBS 다큐멘터리 <후쿠시마 제 1원전 9일간의 기록>, 그리고 도쿄전력이 모자이크와 편집을 거쳐 공개한 동영상을 참조했다.

2011년 3월 11일 지진발생 직전 1,2,3호기만 운전중인 모습을 확인하였고, 지진발생 직전 2분전 1,2,3호기 아무런 이상없이 순조롭게 가동하게 되었다. 잠시후 오후 2시 46분 도호쿠 대지진이 발생했고, 1~3호기는 원자로 자동정지를 위해서 제어봉이 삽입이 되었다. 그런데 제1원전에 외부전원 공급망인 송전탑이 엿가랏처럼 휘어졌다. 1호기 운전원 이도가와 류타 씨는 수화기를 들고 "지진발생, 심한 흔들림이 느껴졌습니다."라고 방송했다. 이를 수차례 들은 직원들은 위로 대피를 하게 되었다. 이후 2시 52분 지하실에 있는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고, 원자로건물 안에 비상냉각장치(이소콘3A밸브)가 자동으로 가동되었으나, 쓰나미가 오기 전에 RO 냉각온도 감시와 이소콘을 반복적으로 열었다 닫으면서 사태는 악화되었다.

3시 27분에 첫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고 10분 후인 3시 37분 1호기가 정전되며 DG트립이 발생했다. 이후 3시 41분, 2호기 냉각수 순환시스템(RCIC)가 열린 순간에 1호기와 마찬가지로 정전과 DG트립이 발생했다.

3시 46분에 15m짜리 2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한다. 5.7m의 쓰나미 방호벽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고 원전 지하실의 발전기를 비롯한 각종 설비가 고장난다. 한편 1명은 작업복에 흠뻑 적고 중앙제어실로 오면서 "위험해! 바닷물이 넘쳐!"라고 말하고서 쓰러졌다. 이미 쓰나미가 오면서 직감을 하게 되었다. 곧바로 노심의 수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오후 4시 36분에는 긴급노심냉각장치가 고장났다.

오후 4시 44분, 비상대책본부 인원 중 1명이 원자로 건물로 가는 도중 1호기 건물 외부 비상냉각탱크(이소콘)에서 소량에 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았으나 의심만 하고 말았다. 일부 냉각시스템은 아직도 가동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한편 1호기 운전원이 원자로 수위 확인중에 원자로 조작 패널에 기록상으로 -90cm로 낮아지고 있었지만 비상냉각장치(이소콘)가 움직이 않는 경우에는 -250cm가 수위저하로 핵연료가 증발이 되어 버린다.

한편 비상대책본부가 1호기 원자로 수위가 보였다가, 다시 수위가 안보인다고 연락이 왔다.

저녁 7시 20분에 비상냉각장치(이소콘)2A,3A밸브 램프가 복구가 되었지만 정전 이후에 램프가 멈춰있었다, 잠시후 저녁 7시 29분, 1호기에서 멜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노심이 녹아내려 냉각수와 접촉해 수소와 방사능이 발생하였다. 저녁 8시 30분, 도쿄전력 본사가 전원복구차량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극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도착이 지연되었다. 밤 9시 51분에 1호기 중앙제어실 직원 2명이 원자로 건물 입구 이중문 통과 시 높은 방사능수치를 확인하고 바로 현장에서 철수하였다. 요시다 소장은 1호기 건물에 대한 출입금지를 명령했다.

밤 11시 50분 전원이 연결되고 1호기 운전원을 통해 원전 상태를 확인했을 때의 격납용기 압력은 600킬피로파스칼로, 매우 위험한 상황임이 드러났다.[7] 원전 직원들은 원전 설비의 재가동을 위해 전기를 필요로 했지만, 예비 배터리가 하나도 없어서 자신들의 승용차와 협력업체의 버스에 달려있던 배터리를 떼어와서 시스템 일부를 회복시켰다. 노심의 수위가 내려가고 압력이 높아져서 냉각수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임이 파악되자, 이대로라면 폭발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3월 12일 새벽 0시에 1호기 원자로 격납용기의 압력이 높아지자 새벽 0시 6분에 요시다 소장은 벤트 준비 지시를 했다.

12일 새벽 1시 20분 GO 사인이 나오면 벤트를 직접 하러 가겠다고 당직장은 자원을 한다. 다른 소원들도 벤트 투입에 지원을 했으나 '나이가 어린 소원들은 남아주었으면 한다'는 당직장의 요청과, '당직장은 남아서 지휘감독을 해야한다'는 소원들의 요청으로 결국 남은 소원들 중 사람을 추려 2인 3조로 벤투 투입 조를 편성하게 된다.

이어 새벽 2시에 전원복구반과 외부업체가 도착했으나, 복구에 착수하려는 찰나 여진과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어 더 높은 곳으로 대피하였다.

12일 새벽 4시, 비상대책본부에서 도쿄전력 본사와의 화상회의중에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이에 본사는 요시다 소장에게 '현장 상황이 심각함을 알지만, 본사 간부들이 대관업무(총리를 맞을 준비)를 부탁하라는 지시를 한다'고 전한다. 요시다 소장은 전면마스크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도 "여기 상황을 알긴 하는 건가?"라며 본사 간부들이 자신들을 놀려먹을려고 한 짓이라 치부해 버린다.

12일 오전 6시 11분, 총리가 자위대 헬기를 타고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 출발하였고 오전 7시 11분, 후쿠시마 제1원전에 도착을 한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압력용기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방사능 공기 배출을 허가하지만 전력이 없어서 밸브를 돌릴 수가 없었고, 이 사실은 총리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결국 간 나오토는 자신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현지 상황을 직접 보기 위해 후쿠시마 원전을 방문했고, "밸브를 냉큼 돌려!!"라고 호통을 친다. 원전 주변 주민들의 대피가 끝난 후에 결사대가 투입되었고 원자로 건물 안의 수동밸브를 손으로 돌릴 수 있었지만, 높은 방사선량 때문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이다.

한편 냉각수 주입은 여의치 않았다. 도쿄전력 본사 간부들은 '해수를 주입하면 원자로를 못 쓰게 된다'는 점이 탐탁치 않았고, 원전에 있는 소방차는 해저 10m 아래에 있는 바닷물을 끌어올릴 능력이 없었다. 일단 쓰나미 때문에 생긴 원전 주변의 웅덩이에서 물을 퍼서 원자로에 주입하지만, 그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상황으로 보아, 이 상황에서도 해수가 아닌 여과수를 쓴 것 같다. 게다가 도쿄전력 본사는 일본 정부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지 않고 요시다 발전소장에게 떠넘겼고, 일본 정부는 온갖 잡무에 대한 사항까지 질문하느라 바빴다.

한편 오전 9시에 1호기 원자로 건물에 벤트 작업을 시작하였다. 제1반은 원자로건물 2층에 있는 수동밸브를 열어 절반의 성공을 거둔 반면, 제2반은 원자로 건물 지하 격납용기 있는 벤트조작밸브로 가는 도중에 높은 방사선량을 만나 긴급 철수하였다. 제2반은 무사히 돌아왔으나 밸브를 열 수 없었다며 망연자실했다.

오후 1시 20분 2호기 직원들이 젊은 사람이 남아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며 부장(?)은 대피 지시를 내린다. 발전소 및 주변 지역을 버리지 않고 부장 본인이 남아있겠다고 하자 다른 직원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오후 1시 50분, 원자로 건물 내부 방사선량이 높아서 원전 외부에서 원격으로 공기를 배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오후 2시 01분 원자로 내부 공기배출에 성공해 증기가 방출되었지만, 1호기 원자로 건물 내부 위에 있는 댐퍼가 닫혀있었고 수소가스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후 3시 20분 전원복구반이 복구준비를 모두 마쳐 1호기 원전의 전원복구작업에 착수한다.

오후 3시 36분,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원전에 공급할 냉각수를 갖고 후쿠시마 원전에 접근하던 자위대는 이 폭발을 보고 급히 철수했다. 방사능으로 인한 자위대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불명이다. 그러나 1호기 원자로 건물 안 격납용기의 압력이 낮은 덕분에 대규모 폭발은 피했다. 이후 1호기 수소폭발 이후 냉각수단 찾아 상황을 막았보자는가...

12일 저녁,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에 바닷물을 주입하기로 결정한 후 "준비작업에 2시간이 걸린다"는 보고를 받은 간 나오토 총리가 “그 사이에 재임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해주지 않겠는가?”라고 묻자 도쿄전력 펠로우 다케쿠로 이치로가 후쿠시마 원전에 전화를 걸어서 “바닷물을 넣으면 재임계의 우려가 있다고 총리 측에서 우려를 표했다. 바닷물을 넣지 마라.”고 사기를 쳤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개 기업의 직원 주제에 정부 수반 및 국가 최고지도자의 명령을 멋대로 왜곡한 것이다.[8]

12일 저녁, 도쿄전력은 긴급히 배터리를 발주하였으나 고속도로 사용허가 문제로 후쿠시마 원전에 배터리를 보내주지 못한다. 원전 직원들은 자신들의 차량에서 25개의 배터리를 꺼냈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랐고, 자신들의 쌈짓돈까지 긁어모아 이와키시로 가서 배터리 구입을 시도하지만 역시 모자랐다. 직원들의 호주머니 돈까지 긁어모은 이유는 회사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며, 이것은 원전 장비 가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일자를 넘겨 13일 오전 2시 42분, 3호기의 압력용기에 물을 공급하는 고압주수장치(MPCI)가 정지했다. 보고 지연과 작업 지연, 그리고 작업 난이도 때문에 내부 증기를 빼내고 소방차로 냉각수를 주입한 것은 오전 9시 20분 이후였다. 이 시간 지연에는 일본 총리 관저도 한 몫 했다고 알려졌는데, 바닷물을 주입하려고 준비하는 원전 소장에게 "바닷물은 너무 이른 게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진 사실이 알려졌다. 물론 상기했다시피 도쿄전력 펠로우 다케쿠로 이치로가 멋대로 총리의 명령을 왜곡하였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여과수 주입을 준비하느라 시간을 또 낭비했다. 다행히도 요시다 발전소장은 다케쿠로 이치로의 "바닷물을 넣지 마라"는 말을 무시하고 바닷물 주입을 계속했고, 간 나오토는 "바닷물 주입과 재임계와는 관계가 없잖아"라며 다케쿠로 이치로의 행동에 황당해했다. 게다가 총리가 질문을 했다면 도쿄전력 본사가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까지 현장의 요시다 소장에게 다 떠넘겼기에 소장의 업무만 가중되었다.

오전 7시 30분에는 난메이흥산의 소방차 조작인원들을 모으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소방차를 제대로 다루기 힘든 발전소 직원들에게 있어 이는 분명히 나쁜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 조작인원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을 알고 난 후 방사능을 두려워하여 출동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오전 10시 10분에는 후쿠시마 원전에 필요한 휘발유를 실은 트럭이[9] 원전에서 60km 떨어진 오나하마 콜센터로 운반된다. 그러나 방사능을 두려워한 트럭 운전사들이 운전을 거부했기에 이 휘발유는 14일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하지 못한다.

13일 오후 2시 31분, 3호기 원자로 건물 입구의 이중문 통과 도중 3호기도 1호기처럼 방사선이 높아서 철수하였다. 3호기의 내부 수소가스 배출을 위해 온갖 논의가 이어졌고 심지어 "자위대의 중화기로 패널을 날려버리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 와중에도 3호기의 압력은 계속 올라갔고, 이 때문에 냉각수 주입이 어려워지자 밸브 개방을 통해 압력을 낮추려고 했지만, 아무리 열어도 곧바로 닫혔기에 소용이 없었다. 한편 요시다 소장은 방사선이 높아지자 외부 작업 중지를 지시를 내렸다.

14일 오전 1시 10분, 쓰나미로 생긴 물웅덩이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원자로 냉각용 냉각수의 공급도 중단되었다. 오전 3시 1분에는 도쿄전력 본사로부터 "후쿠시마 원전(이 문서의 주인공인 제 1원전)에 보낸 소방차들이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어두워서 길을 못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전 3시 36분, 요시다 소장와 무토 사카에 도쿄전력 부사장과 화상회의중에

결국 14일 오전 7시 20분, 요시다 소장이 외부 작업 재개를 요청을 하였지만, 결국 수도권에서 파견된 소방차들이 9시 5분에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하여 주수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오전 11시 1분, 3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3호기에 물을 주입하기 위해 접근하던 자위대 차량은 폭발로 날아온 콘크리트 덩어리에 깔려서 박살났고, 자위대원 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자위대 지휘관은 자신의 화생방 방호복 안으로 방사능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방사선량계를 통해 확인하고 경악했다. 다행히도 그들은 죽기 전에 안전지대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반면 비상대책본부는 본사와 보고를 했는데 아수라장이 되버렸다. 14일 오후 12시 30분 2호기는 RCIC 연속작동을 한지 3일 버티고 있는데, 그 후 사용이 불능이 다가왔다. 2호기 원자로 수위가 조끔식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오후 1시 25분에 2호기 냉각장치가 기능이 상실 되버렸는데 오후 6시 2분 2호기 배터리로 SR밸브로 조작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를 하였지만. 수위가 올라가지도 않아 내려가고 있다.

잠시 후 오후 7시 20분에, 원전주변에 수소폭발로 인해 소방차가 연료가 부족하는 바람에 펌프가 멈춰버렸다, 이 폭발로 2호기의 냉각수 주수가 끊어졌고 오후 7시 45분에 바닷물을 주입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오후 9시 9분에 "2호기가 노심용융을 일으킬 것이고 10시 22분에는 압력용기가 녹기 시작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다카하시 아키오 고문은 가쓰마타 쓰네히사 회장에게 "이젠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으며, 14일 밤에 후쿠시마 원전 직원과 근로자들은 모두 후쿠시마 제 2원전으로 대피했다. 이 사실이 총리 관저에 보고되었다는 증거는 화상회의 영상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 시점에서 후쿠시마 원전에 남은 사람은 요시다 소장을 포함해서 약 70명 뿐이었다.

14일 밤 8시 이후에 도쿄전력이 수배한 배터리 1,000개 중 320개가 후쿠시마 원전에 도착했다. 다 박살난 뒤였지만...

14일 밤 10시에 미나미소마시에 자위대가 와서 "원전이 폭발할 것입니다. 원전에서 적어도 100km 떨어진 곳까지 대피하십시오!"[10]라고 소리쳤다는 증언이 동영상에 나오니 참조하자. 이대로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을 포기하고 철수했다면 일본침몰이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11] 근로자들이 모두 철수하면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3기와 사용후핵연료 냉각수조들 안에 있는 핵연료가 녹아내렸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본은 멸망하기 때문이다.[12]

14일 밤 11시 36분에 2호기 원자로 격납용기에서 수소가스가 발생하자 도쿄전력이 최종수단인 DRYWELL BENT를 검토하였지만. 그러나 DRYWELL BENT가 하지않았어.... 한편 2호기에서는 DRYWELL 내부 선량수치가 24sv/hr 나왔다.

3월 15일 새벽 3시 30분, 근로자들의 철수 소식을 들은 일본 총리 간 나오토는 도쿄전력으로 쳐들어가서 "전면 철수는 절대로 안 된다"고 일갈했다. 여기서 나온 발언이 "철수는 있을 수 없다. 철수하면 도쿄전력은 반드시 무너진다."이고, 이 발언에 겁먹은 도쿄전력이 철수를 포기했다는 게 당시 일본 정부를 맡았던 정치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자신들이 전면철수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부정한다.

15일 오전 6시 14분, 2호기 원자로 건물 지하에서 격납용기가 폭발을 했다. 그 결과로 서브챈 압력이 제로가 되었다. 한편 비상대책본부에서는 각 그룹만 대피를 시키고, 최소한 인원을 남겼다. 오전 7시 기준으로 2호기에도 방사선량이 많이 퍼졌다.

17~18일 1~4호기 폭발한 원자로건물는 자위대와 소방대원이 대량에 방사능 막는 작업중이다.

2.2.2. 그 이후[편집]


도쿄도 소방관들과 자위대를 긁어모은 일본 정부는 결사적으로 후쿠시마 원전을 냉각시키려고 애썼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열심히 일본을 지원했으며 그 노력이 효과를 봐서 일본침몰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의 현 상황은 별로 좋지 않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있으나 원자로 1, 2, 3호기의 내부 상황은 완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녹아버린 핵연료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는 매우 취약하며, 만약 지진으로 붕괴될 경우 체르노빌의 10배 이상이나 되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와있다.

16세 소년이 나이를 속이고 원전에서 일해도 파악하지 못하고, 17세의 미성년자를 사고 현장에서 일하게 하고, 후쿠시마몰래 팔리고,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방사선량계에 납으로 커버를 씌울 것을 강요하는 자가 있었기에, 그 결과로 도쿄전력 시설은 분노한 국민들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 그 외에도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고를 친 도쿄전력의 악행은 정경유착으로 유명한 일본 정부마저 분노하게 만들었고, 결국 일본 정부는 6월 27일, 도쿄전력의 국유화를 결정했다.[13] 그 후 기존 경영진은 모조리 해임되고 새로운 경영진이 도쿄전력을 맡아 사고 수습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칭찬받을 구석은 별로 없다. 탈원전 시위대에게 압박을 가하고, 원자력 손해 배상에 대한 보충배상협약(CSC)에 가입하지 않아 일본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의 재판을 통해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내게 생겼으며,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도호쿠 지방에 거대 쓰나미가 올 가능성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지금 당장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는 경고문구를 삭제하는 등 요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된 도쿄전력 간부와 정부 관계자 등 100여명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 사고를 일으킨 악의 무리들이 심판을 받을 수 있을지 지켜보자.


2.3. 2013년[편집]




2.3.1. 미국의 우울[편집]


미국도 고생하고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도호쿠 대지진이 나고 이틀 후인 2011년 3월 13일에 미군이 지원을 위해 달려왔지만 일본 측의 반응은 "지원은 질서정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금만 기다려달라."였고, 겨우 손발이 맞게 된 것은 지진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서였다(...).

14일 밤, 미국의 멀린 합참의장이 "일본은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일본 정부를 다그쳤으며, 백악관은 일본의 사고 수습을 보고 "원전사고 처리에 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일본에는 가망이 없다" 를 외치며 일본을 단념하려고 했다.

18일에는 미국이 원전사고 수습을 위해 만든 수십 개의 지원 가능 항목이 담긴 목록이 일본에 전달되었지만 19일에 미국 관계자를 만난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심의관은 담당이 아니어서 모르겠다며 일체 협조하지 않았다. 이 상황은 22일에 이르러서야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을 돕다가 미 해군 병사 150명 이상이 피폭당했으며, 그 중 70여 명의 장병들이 10억 달러 가량의 소송을 냈다.


2.3.2. 사건사고 요약[편집]


1월 5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오염된 지역을 청소하면서 생긴 방사능 쓰레기를 강에 몰래 버리는 장면이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포착되어 기사화되었으며 문제의 근로자들은 “위에서 시킨 대로 했습니다. 강을 오염시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환경성은 2012년 12월 25일 이후에 관련 정보를 입수했으나 그냥 방치했고,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나온 후에야 일본 정부는 사실임을 확인했다. 제염 작업을 진행하던 근로자들은 엉터리로 작업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거의 없었다고 한다.

2월 7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진상을 조사하던 국회사고조사단에게 허위보고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현장이 어두워서 위험하다"고 보고함으로서 현장조사를 단념하게 했는데, 막상 그 현장은 햇빛이 쨍쨍 비치고 있었으며 수은등까지 켜져 있었다.

3월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의 나카 히로노부 대외정책조정실장이 일본 농수산물의 안전을 주장하면서 일본 농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국가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WTO에 제소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는 발언을 했다.

3월 18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나서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했다가 20일에 모두 복구했다.

4월 6일, 후쿠시마 원전 지하 저수조의 방사능 오염수가 새어나갔다. 지하저수조 No.2와 No.3에서 물이 새자 도쿄전력은 No.1로 오염수를 이송했으나 No.1에서도 누수가 발생하자 지하 저수조의 사용을 중지하고 지상 물탱크로 오염수를 옮겼다. 지하 저수조에 저장되었던 오염수가 23,600톤에서 23,000톤으로 줄어들자 도쿄전력은 계측기기의 오차범위 이내라고 대답했다.

5월 28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겨난 경계구역이 완전히 사라졌다. 출입이 금지되는 귀환곤란구역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으므로 멋대로 들어가도 처벌하지 못하게 되었다.

6월 28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오염된 지역을 청소했지만 "방사선량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참고로 일본 정부는 "한 번 제염한 지역은 방사선량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다시 제염하지 않는다"는 비공식적인 방침을 세웠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결국 한 번 제염했는데도 오염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지역도 다시 제염하기로 했다.

7월 9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당시 발전소장이었던 요시다 마사오 소장[14] 식도암으로 사망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문이 아니라고 발표했으며 그의 공식 피폭량은 70mSv이다. 그리고 11일에는 일본국토개발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제염 과정에서 생긴 방사능 오염수를 몰래 농업용수용 강에 버리다가 발각되었다.

8월 19일, 후쿠시마 원전의 지상 물탱크에서 300톤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새어나갔다. 이 사고는 레벨 3의 원자력 사고로 평가되었으며, 사고를 일으킨 물탱크는 용접이 아닌 고무패킹과 볼트로 접합된 플랜지형 탱크다. 그리고 이 유형의 탱크는 후쿠시마 원전에 350개나 있으며, 이후에도 오염수가 새는 사고가 계속 발생한다. 덤으로 플랜지형 탱크의 수명은 5년이니 5년 내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350개가 전부 샐 지도 모른다.

9월 6일, 한국 정부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농수산물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기 바란다" 는 성명을 발표하며 한국의 결정을 성토했다.

9월 7일, 2020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다. 아베 신조가 "후쿠시마 원전 문제가 도쿄에 영향을 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이라는 거짓말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으며 방사능 오염의 영향이 후쿠시마 원전 항만 내부의 0.3평방킬로미터 안에서 완벽하게 차단되고 있다는 그의 발언에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개최는 취소되지 않고 있다. 참고로 아베는 19일에 후쿠시마 원전을 시찰하면서 "0.3평방킬로미터가 어디야?" 라고 질문했다.

10월 9일, 후쿠시마 원전의 담수화장치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어 6명의 근로자가 피폭당했다. 사고 원인은 '작업원이 실수로 배관을 떼어내서'라고 한다. 이런 사고의 원인은 근로자들이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10월 3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실상을 알리는 편지를 아키히토 천황에게 전하는 죄(?)를 범한 야마모토 다로 의원이 여야의 사임압력에 시달리다가 사죄했다.

11월 18일, 후쿠시마 원전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서 핵연료를 회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1월 20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5, 6호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2011년 뉴스가 아니라 2013년 뉴스라는 게 포인트다.

12월 13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3호기의 핵연료는 거의 다 녹았다고 발표했다. 이걸 막으려고 소방차가 물을 주입했지만 그 물은 원자로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12월 27일, 도쿄전력이 2030년대 초반에 탈국유화를 할 예정임이 밝혀졌다.

2.3.3. 양심? 그런 거 없다[편집]


파일:attachment/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경과/haha.jpg
양심 없는 일본의 행각 중 일부를 아래에 서술한다.

후쿠시마 원전에 붙은 포스터에는 "이것은 끝이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핵시대의 시작이다" 라는 글귀가 써져있다.

3월 19일, 일본 정부방사성 세슘 검사 대상이 되는 농수산물의 종류를 줄였다.

4월 24일, 일본 법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물질 피해를 막기 위해 아이들을 대피시켜 달라"며 부모들이 고리야마시를 상대로 낸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학생들을 대피시킬 의무가 없으며, 당사자들이 원한다면 스스로 피난하면 된다"고 한다.이러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5월 11일,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 다치바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6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샌오노프래 원자로 2, 3호기의 폐쇄가 결정되었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엉터리 증기발생장치를 납품하는 바람에 2012년 1월에 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납품은 원전 사고 이전에 했을 수도 있겠지만, 원전 사고 이후 엉터리를 납품했다는 것을 자백하지 않았다는 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일본 기업들이 반성을 전혀 안 한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6월 17일, 일본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정조회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고 발언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았고, 원전 사고 때문에 죽은 이의 유족들은 크게 분노했다. 결국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자신의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했다.

9월 9일, 일본 검찰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계자 전원을 불기소처분했다. 기사. 이것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처벌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9월 22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오염된 지역을 청소하는 근로자들의 특수근로수당 1만 엔 중 5,500엔이 갈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일당을 2만 엔으로 인상하기로 했으나 근로자의 말을 빌리면 "회사가 떼어가는 몫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는 게 현실이다.

10월 14일, 일본이 원전 부품의 안전성 확인을 생략하고 타국에 수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피해자 중에는 한국도 있으며, 이런 식이면 후쿠시마 원전의 부품도 안전성 확인을 생략하는 게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오죽했으면 22일에 독일 언론이 "한쪽(한국)은 똑똑해지는데 다른 한쪽(일본)은 멍청하게 있다"는 기사로 원전 권력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할 정도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대우도 엉망이다. 기준치를 초과해 피폭한 근로자들은 버려지고, 다단계 하청으로 불법하청업체가 난립하며, 근로자들의 월급도 떼어먹히는 등,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손을 놓고 있다. 이러니 사고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11월 8일, 다나카 슌이치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은 "(피폭선량이) 연간 20mSv 이하면 전체 리스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전세계의 일반적인 사고방식" 이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연간 20mSv는 원자력 산업 관계자의 연간 피폭허용치이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이주대상은 평생 350mSv였다.

11월 26일, 일본 중의원에서 특정비밀보호법이 통과되었고 이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비밀로 지정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언론보도가 많아졌지만 아베 신조는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는 일은 없다" 고 강변했고 결국 12월 6일 참의원에서도 특정비밀보호법이 가결되고 말았다. 이것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정보도 비밀로 지정되어 숨겨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사건일지도 2013년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 부총리 아소 다로는 "(나치가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한)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느냐" 고 발언했고 특정비밀보호법은 나치 독일의 전권위임법(수권법)에 비유되고 있다.

12월 31일, "후쿠시마현IAEA비밀유지를 위한 합의를 했다"고 도쿄신문이 보도했다. 한쪽이 비밀로 지정한 정보는 다른 쪽에서도 비밀로 한다고 하며 아직까지 이 협의에 따라 비밀로 지정된 정보는 없으나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2.3.4. 현재 상황[편집]


2013년 12월 31일의 시점에서 본 상황은 아래와 같다.

  • 원자로 1호기 : 노심용융. 핵연료 관련 정보 없음.
  • 원자로 2호기 : 노심용융. 핵연료 관련 정보 없음.
  • 원자로 3호기 : 노심용융. 내부 조사 불가. 핵연료 관련 정보 없음. 3호기 건물 5층 중앙부에서 '수증기로 추정되는 무언가' 가 자주 관측되고 있음.
  • 원자로 4, 5, 6호기 : 내부에 핵연료 없음.
  • 1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냉각수 공급중.
  • 2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냉각수 공급중.
  • 3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냉각수 공급중.
  • 4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 냉각수 공급중. 11월 18일부터 핵연료 회수를 시작함. 지진 발생시 붕괴 위험 있음.
  • 현재 지속적으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고 있음.
  • 일본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하루에 300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되는 중이나 정확한 양은 알 수 없음.
  • 원전 사고 발생 직후 지하 30m 깊이의 점토층까지 파서 후쿠시마 원전을 둘러싸는 사각 욕조 모양의 차수벽을 세워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려고 했지만 도쿄전력이 "1,000억 엔이 부담스럽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음. 그리고 2013년 12월 21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 땅속 25m 지점까지 방사능 물질에 오염되었음을 확인. 방사능 물질이 2번째 투수층에 도달한 것이 확인됨으로써 첫 번째 투수층과 불투수층의 오염이 확인되었으며 지하수의 오염 가능성도 매우 커짐.
  • 멜트다운을 일으킨 핵연료의 위치는 현재 파악할 수 없음. [15]
  • 노심융용 뒤 잔재물인 '데브리스'의 온도가 아직도 너무 높아서, 냉각수가 끓고있다고 한다.

2.3.5. 그리고 미래는?[편집]


후쿠시마 원전 1, 2, 3호기의 원자로는 현재 냉각되어 있으나 핵연료의 위치는 어디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내부는 현재 조사중이다. 다행히도 4, 5, 6호기의 원자로는 사고 발생 당시 핵연료가 없었으므로 현재는 안전한 상태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는 지진으로 타격을 입었으며, 2013년 12월 31일 시점에서는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서 핵연료가 회수되는 중이다. 회수작업이 끝나면 1~3호기의 저장수조에 있는 핵연료도 회수할 예정이지만 그때까지 건물이 무사히 버텨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만약 무너지면 재앙이 다시 시작된다.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 시스템은 임시로 설치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들을 빨리 영구적인 시설로 교체해야 하지만 이 작업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저장능력은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대로라면 조만간 방사능 오염수에서 최대한 오염물질을 정화한 후 정화된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할 가능성이 높다. (2023년 8월 24일부로 방류 시작) 현재의 기술로는 트리튬을 정화할 수 없으므로, 오염수를 최대한 희석해서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후쿠시마현의 어민들의 반대가 극심하므로 이들을 설득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만약 설득이 늦어진다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저장하는 플랜지형 탱크 350개에서 오염수가 새어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하 저수조는 이미 파손되었으므로 지상 물탱크에 모든 오염수를 수용해야 하는데, 물탱크를 추가로 설치할 부지가 거의 바닥났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방사능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으며, 주변의 지하수가 후쿠시마 원전에 유입되면서 오염수의 양이 불어나고 있다. 이 오염수 중 수백 톤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지하에 있는 오염수를 막기 위해 설치한 벽 위로 오염수가 흘러넘치는 게 현실이므로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태풍이나 폭우로 외부의 물이 대량으로 유입될 경우 방사능 오염수가 그만큼 불어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지하로 스며드는 것을 막는 방벽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냉동 차수벽을 쌓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차수벽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후쿠시마 원전 항만의 방사능 오염수는 천으로 된 실트펜스 2겹으로 막혀있지만, 이 펜스는 자주 손상되고 있으며 천으로 바닷물을 모두 막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박봉과 열악한 대우에 시달리고 있고,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태이다. 게다가 방사선에 기준치 이상으로 피폭되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으므로 근로자의 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 위험이 크다.

후쿠시마 원전 부근에서는 계속 지진이 일어나고 있으며, 만약 시설들이 이 충격에 견디지 못하면 대재앙이 시작된다. 다행히도 2013년 12월 31일까지는 지진의 규모가 작아서 그럭저럭 견디고 있다.

그리고 특정비밀보호법으로 인해 관련 정보가 비밀로 지정될 가능성도 크다.


2.4. 2014년[편집]


일본 중의원에서 특정비밀보호법이 통과된 이후, 공개되는 정보의 양이 확 줄어들어서 나무위키의 경과 목록이 폭삭 줄어들었다. 여전히 먹어서 응원하자! 캠페인이 진행중이다.

도쿄전력이 직원들에게 지급한 배상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이 발표되거나 원전 항만 해저를 시멘트로 덮는 작업을 시작하는 등 희망적인 내용이 간간히 나오고 있지만, 절망의 반감기가 너무 긴 탓에 희망은 방사능 폐기물에 덮여버렸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방사능 폐기물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는 상황. 동토차수벽[16]을 세우겠다는 계획이 나왔으나 결국에는 취소되었다. 손 쓸 수 없이 지하수의 유입이 계속되는 중. 게다가 오염수를 정화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마저 가동 중지.

게다가 일본 정부는 피해 지역으로의 주민 복귀작업을 착실히 진행해 나가고 있다. 물론 피난을 간 사람도 해당 지역의 복구와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면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현재 그게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

오염수가 정화되지도 않고, 통제되지도 않는 탓에 방사능 오염 물질 검출 결과는 항상 최고치를 찍어 나가는 중. 게다가 후쿠시마에서 발견된 소아 갑상선암의 빈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방사능 유출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UNSCEAR(유엔과학위원회)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후 발생하고 있는 암 발생에 대한 성명에서 “일반인에 대한 (방사선) 선량 추정치는 감소했거나 이전 추정치와 비슷하다”며 “위원회는 방사선 노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향후 건강에 대한 영향을 식별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10월 경, 드디어 후쿠시마 제 1원전의 뚜껑을 열어 원자로 폐로에 대한 진행 절차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방사능 먼지가 비산된다는 우려가 있어 중단. 뚜껑을 열지 않으면 그 어떠한 폐로처리 시도도 할 수 없고, 뚜껑을 열면 방사능이 누출된다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막혀 있다.

11월에는 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추출이 완료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
아직 사건의 처리가 끝나지도 않은 와중에, 일본은 다른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는 중.


2.5. 2015년[편집]


해당 정보는 2015년 12월 31일 이후 게재될 예정... 이었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다.

2.6. 2016년[편집]


1월 14일 방송한 NHK의 다큐프로그램 《NEXT 미래를 위해 [사원들의 원전 사고/도쿄전력 부흥본사]》에 의하면 2016년 현재 나라하마치의 피난지시는 해제된 모양이다. 하지만 돌아온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 도쿄전력은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에 부흥본사 사무실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역주민들에게 집을 정리해주는 등의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고에 대한 사죄의 말은 잊지 않는다고 한다.

1월 23일 방송한 NHK 스페셜도 나라하마치를 다루었다. 관공서가 업무를 재개했지만 상점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여전히 주민들이 귀환하질 않아서[17] 앞으로 어떻게 마을을 재건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한다.

2월 26일 뉴스에 따르면 도쿄전력에서 실제로 멜트 다운이 일어났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기준에 따르면 원전의 손상률이 5%를 넘으면 멜트 다운으로 판별하는데 당시 당국은 "멜트다운이 일어났는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라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18]

3월 31일 미나미소마시 오다카구에 대한 제염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듬에 따라 4월 중에 피난지시를 해제할 계획이라고 NHK 뉴스 <오하요 일본>이 보도했다.

4월 20일 후쿠시마에서 5.6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자세한 피해규모는 불명이다.

6월 12일 가쓰라오무라의 피난지시가 해제되었다고 NHK 뉴스 7이 보도했다. 단, 귀택곤란구역인 일부 지역은 아직 설정되어있다.

11월 22일 후쿠시마 인근에서 7.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후쿠시마 지진에서 확인.

2.7. 2017년[편집]


2월 2일 2호기 원자로의 격납용기 내부에서 멜트 쓰루가 발생, 시간당 최대 530 시버트의 방사능이 측정됐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19]

7월 21일에 도쿄전력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3호기 원자로 내부에서 실시한 로봇 조사에서 사고 때 멜트다운된 핵연료일 가능성이 높은 물체의 촬영에 성공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기사

도쿄전력은 7월 22일 밤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3호기[20]의 원자로 내부에서 19~22일 로봇 조사를 실시한 결과 격납 용기의 바닥에 노심 용융(멜트다운·meltdown)한 핵연료로 보이는 물질이 광범위하게 산재해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기사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고 후 6년이 지났어도 녹아내린 핵연료에서는 사람이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방사선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폐로 작업에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의 폐로에 40년 가량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8. 2018년[편집]


세슘이 유리와 결합된 매우 작은 크기의 세슘볼[21]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고 하는 보도가 최근 나왔으나 해당 보도는 얼마 안 가 ‘뒷북’ 논란에 휩싸였다. 세슘볼의 존재는 지난해 이미 알려졌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중인 상황에 느닷없는 보도로 불안감만 조성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럼에도 수용성 물질인 일반 '세슘'과는 성질이 전혀 다른 체내 축적이 가능한 ‘변종 세슘’이 등장한 것 자체는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다.

6월 14일 도쿄전력에서는 결국 후쿠시마 제2원전도 폐로하기로 결정하였다 연합뉴스 기사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한 뒤 바다에 방류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해 일본 내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 오염수 92만 톤 방류 추진"…日 어민들 '발칵'

그런 도중에 도쿄대학 명예교수인 하야노 류고(早野龍五) 교수가 주민들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담긴 데이터로 연구조사 후 영국에서 발표를 하였는데, 개인정보를 함부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더니 방사능 계산을 축소해서 발표했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이 조작된 논문을 근거로 후쿠시마가 안전하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심지어 2020 도쿄 올림픽 유치 당시 IOC 연설에서도 이 논문을 인용했다는 것이 추가로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2.9. 2019년[편집]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여 있는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 100만t 이상을 태평양에 방류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린피스가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19년 9월 19일, 도쿄지방재판소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가쓰마타 쓰네히사 전 회장,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 다케쿠로 이치로 전 부사장 등 도쿄전력 전직 경영진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3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도쿄전력의 수장이었던 전 회장, 원자로가 폭발할 판국인데 "웅얼웅얼웅얼"이라고 변명한 전 부사장, 원자로에 바닷물을 주입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은 전 부사장이 무죄라는 소식에 시민들은 경악하며 항의했다.

2019년 10월 13일 19호 태풍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염 폐기물 봉지 대부분이 강으로 유실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얼마나 유실된건지 모른다는것. 이로인해 일본 네티즌들에게도 비난을 받는 상황이다.https://www.nocutnews.co.kr/news/5226993

또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관에서 누설 경보가 울렸으며, 실제로 유실이 발생했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상 원전에서 오염수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에서는 태풍을 핑계로 일부러 방사능 폐기물들을 누출하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는 모양. https://www.ytn.co.kr/_ln/0104_201910122201496528

2019년 11월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국내 언론 최초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원전 사고 접근 제한구역을 탐사했는데 일본 정부가 안전하다고 내세운 기준치보다 평균 10배에서 100배, 일부 지점에선 400배 농도가 측정됐다. 이 방사능이 강을 타고 태평양까지 확산되는 등 안전 지역을 오염시키고 있다. #1 #2


2.10. 2020년[편집]


원전 사고로 후쿠시마현 등에서 후쿠오카현, 사가현규슈 4개 현으로 피난한 18가구 53명이 국가와 도쿄전력에 합계 약 3억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한 집단 소송의 판결에서 법원이 기각하였다.#

후쿠시마현에 사는 주민 등 3,600여 명이 삶의 터전이 손상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소송 재판에서 센다이고등법원이 2심에서 국가 책임 인정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복구· 폐로 작업 종사자의 산업재해 인정 건수가 269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의 12개 시정촌으로 이사하는 이들에게 가구당 최대 200만엔(약 2,098만원)을 지원하기로 방침이다.#

도쿄전력에서 12월 22일 사고후 3월 20일부터 24일까지 상공에서 찍은 사진 700여장을 공개했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로 발생한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해양 방출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으나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구상에 현지 주민들 반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 구상에 현지 주민들 반대

11월 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스가 총리가 지난 9월 26일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했을 당시 도쿄전력 관계자가 원전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물에 대해 “희석하면 마실 수도 있다”고 설명하자 “마셔도 되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결국 스가 총리는 당시 오염수를 실제로 마시진 않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설사 스가 총리가 마셨다고 해도 오염수에 대해 ‘안전하다’라거나 ‘그러므로 바다에 흘려보내도 괜찮다’라는 인식이 세간에 퍼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오염수, 희석하면 마셔도 된다” "마실 수 있다"는데 마시지 않은 日스가 총리

마이니치신문이 12월 대지진 당시 부모를 잃은 아동·청소년 42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월소득이 200만엔 미만인 가정은 대지진을 전후로 6%에서 45%로 7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반대로 월소득 400만엔 이상인 가정은 51%에서 18%로 3분의 1 가까이 급감했다. 재해 가정의 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지진 전 49%에서 지진 직후 44%를 거쳐 현재 34%로 해마다 줄고 있으며, 반면 비정규직 비율은 26%에서 현재 35%로 늘어났다고 한다. 무직 비율은 13%에서 20%로 늘었다. 재해 당시 집이 무사했던 가정은 32%에 그쳤으며 완전 파손 피해는 49%, 반파·일부 손괴 피해는 17%였다. [동일본대지진 10년]"부흥 정책? 살 곳도, 일할 곳도 없다"

2.11. 2021년[편집]


3월 7일 간 나오토일본 총리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2013년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할 때 ‘방사능 오염수를 언더 컨트롤(under control)하고 있다’고 한 것을 두고 ‘완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즉, 오염수는 지금도 바다로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단독]“아베, 거짓말로 올림픽 유치…원전 오염수 지금도 바다로”

3월 8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대지진 이후 이와테현·미야기현·후쿠시마현 등 피해 3개 현의 가설주택과 재해공영주택에서 혼자 살다 숨져 경찰에 신고된 경우만, 2011년부터 작년까지 614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68%였다고 한다. 또한 상당수가 아무도 모른채 숨진 고독사였다. 또 NHK 조사에 따르면, 원전사고로 피난한 주민 16만 명 중 4만 명이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지진재해 관련 사망’이라고 인정된 사람의 수는 2,316명(1월 8일 현재)에 달했고, 사망자 4명 중 1명은 살던 현 바깥에서 숨졌다고 한다. [최원석의 디코드] 동일본대지진 10년… ‘트리플 펀치’에 신음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지 13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현에는 귀환 곤란 구역이 아직도 7곳이나 남아있으며, 일본 정부는 오염 제거 등을 거쳐 이 중 일부 지역에 사람이 살도록 할 방침이지만 전체 면적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도쿄전력동일본 대지진 10주년인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의 원자로 건물 지하 1층 일각에 있는 ‘삼각코너’라고 불리는 공간의 수위가 지난 9일 전날까지 18㎝ 상승했다고 밝혔다고 NHK 방송이 보도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동일본대지진 10년, 후쿠시마 원전 3호기 수위 상승


주민 모두 피난 중인 원전 주변 후타바마치는 아직 전기와 수도 등 기본적인 생활 시설도 복구되지 않았으며, 여기에 불확실한 원전의 미래까지 더해져, 주민 62%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한다. #

아사히신문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福島)·미야기(宮城)·이와테(岩手) 등 3개현에서 재해를 입은 주민 46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조사 결과 응답자의 49%는 “부흥 정책 후 현지의 모습이 예상보다 나쁘다”고 답했으며, 특히 원전 피해가 발생한 후쿠시마현에서 부흥 정책에 부정적인 응답은 62%에 달했다고 한다. 3개 현에서 부흥 정책 후 지역의 모습이 좋다는 응답은 불과 35%에 그쳤다. [동일본대지진 10년]"부흥 정책? 살 곳도, 일할 곳도 없다"


후쿠시마 피난민 간사이 소송단 대표 모리마쓰 아키코에 따르면 "피난했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으며 ‘부흥’, ‘힘내자 도호쿠(東北)’, ‘일본은 하나’ 같은 구호로 전체주의를 강요한다"고 한다. 또한 피난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늘면서 ‘숨은 피난민’이라는 말도 생겨났으며, 경제적으로 곤궁한 사람,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트라우마를 말하려 해도 비난받을 것이 뻔하기에,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후쿠시마 피난 10년, 떠나도 지옥, 머물러도 지옥이죠"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피난민은 여전히 4만 1,241명에 이르는 상황이라고 한다. 동일본대지진 10년…지금도 4만명 넘게 피난생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과 인접한 나미에마치에서 생산된 벌꿀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됐다고 7월 23일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日 후쿠시마 원전 근처 생산 벌꿀서 기준치 초과 세슘 검출

제1원자력발전소로 지하수가 유입되는 것을 억제하는 동토벽(凍土壁)이 일부 녹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NHK가 보도했다.#

2.12. 2022년[편집]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인근 수산물에서는 여전히 다른 곳보다 방사성 물질이 4배 높게 검출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우럭과 송이버섯 등 일부 농수산물에선 기준치를 훌쩍 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는데 일본은 자국 식품에 문제없다고 홍보하며 내년 상반기에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원전 사고 11년 지났지만..."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방사성 물질 4배"

3월 2일, 7일 및 30일에는 손해배상청구 집단 소송 7건에 대해 도쿄전력의 상고 및 상고 수리 신청을 물리치는 결정을 내려 도쿄전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확정된 배상액은 약 14억엔이 책정되었다.

6월 17일에 최고재판소 제 2 소법정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자가 제기한 생업 소송, 군마 소송, 치바 소송, 에히메 소송에 대해 국가가 쓰나미에 의한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2012년 개정 전의 전기사업법 제 40조에 근거하는 규제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서 국가 배상법 제 1조 1항에 근거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이미 일본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하여 상당한 방재 노력을 하였으나 2011년의 지진 및 쓰나미는 정부와 도쿄전력이 합리적으로 예상한것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였기에 불가항력적이였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단 전원 일치가 아닌 3대 1로 내려진 판결로서 반대의견으로 미우라 마모루 판사가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책임을 전부 인정하였다. 3월의 결정과 6월 결정으로 인하여 책정된 배상액은 일본 정부가 아닌 도쿄전력이 전부 부담하게 되었다.

이후 12월 20일에 열린 원자력 손해배상 분쟁 심사회에서 제 5차 추가보상안이 내려졌다. 후타바마치기준 가혹한 피난 상황에 의한 정신적 손해는 사고 발생으로부터 6개월간의 손해액에 1인 30만엔, 피난 비용 및 일상생활 저해 위자료는 기존 기준 사고부터 2017년 5월 말까지(75개월)였던것을 2018년 3월 말 (85개월) 까지로 확대됨으로서 1인당 월 10만엔이 가산된다.

2.13. 2023년[편집]


8월 24일 오후 1시부터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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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PIC : high-pressure injection cooling system [2] SBO 선언, station blackout 시설 정전 [3] 3호기는 핵폭발이라는 루머도 나오고 있는 판이지만 사용후연료봉이 폭발을 일으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핵연료봉의 주성분인 우라늄-238이 중성자를 포획해서 우라늄-239가 된 후 붕괴에 의해 넵투늄-239가 되고 다시 붕괴해 플루토늄-239가 되며 이는 곧 사용후핵연료봉에는 플루토늄-239가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플루토늄-239는 자연 상태에서 알파 붕괴하며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이상 연쇄핵분열 반응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플루토늄-239를 터뜨리고 싶다면 추출하여 농축하는 재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농축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단지 폭발할 재료가 준비된 것일 뿐이다. 방사성 원소를 모아놓는다고 자연적으로 폭발을 한다면 이미 예전에 알 카에다ISIS 같은 애들이 핵폭탄을 뻥뻥 터뜨리고 다녔을 것이다. 사용전 연료봉이든 사용후연료봉이든 특별한 처리 과정과 조작 없이는 절대로 폭발하지 않는다. 단지 스스로 내는 엄청난 붕괴열로 인해 녹아내릴 뿐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설계 결함으로 격납용기에서 수소가 유출되어 일어난 수소폭발이다.[4] 당시 도쿄전력 수뇌부는 현장에서 '알아서' 대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도쿄전력 수뇌부가 아니라 현장책임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자살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서 그것만을 위해 고액연봉을 받아온 자들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은 결과가 세계급 방사능 재해가 되었다.[5]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는 달리, 방사선의 조사로 인해 기형아를 출산하는 것은 현실성이 극히 낮다. 이런 믿음이 널리 퍼져있는 것은 그저 무지의 소산일 뿐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방사선 관련 기형아나 변이 생명체 사진들을 죄다 허구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6]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스웨덴 등지에서는 10만 건에 가까운 낙태 사태가 벌어졌다.[7] 격납용기 설계압력치를 넘었다는 뜻이다.[8] 일본의 총리는 대한민국 총리와는 클래스가 다른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동급이긴 하나 한국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다르다.[9] 이 휘발유는 후쿠시마 원전에 있는 소방차를 위한 것이었다. 휘발유가 없으면 소방차 가동이 불가능하고 소방차에 달린 펌프도 멈춘다.[10] 현재는 영상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11] 정확히 하자면 일본침몰이 아닌 유령도시가 많이 늘어나는 상황이 된다. 멜트다운된 핵연료가 지하수층까지 뚫고 들어가 오염시키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12]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는 EBS 다큐멘터리 <후쿠시마 제 1원전 9일간의 기록>에서 "그렇게 되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방사선이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 고 증언했다. 일본이 망하기에 충분한 양이다.[13] 사고 수습을 위해 도쿄전력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다. 그 액수는 2013년 1월 기준으로 피해배상금만 10조 엔이 넘으며, 원자로의 폐로와 핵연료 회수, 제염 작업 등에 드는 비용을 합하면 그보다 더 많다. 도쿄전력이 아무리 부자라도 이 돈을 전부 자력으로 충당할 수는 없기에, 일본 정부는 국가에서 책임을 지기로 하고 그 대신 도쿄전력의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일단 1조 엔을 증자해서 최대주주가 되기로 한 것. 그러나 도쿄전력 경영진은 "돈은 받을지언정 경영권은 내주기 싫다"고 버티다가 국유화와 함께 전원 해임되었다.[14] 마지막까지 발전소에 남아있던 사람. 이 사람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선에서 끝났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15] 2017-03-18~24 일 동안 로봇을 이용해 1호기에 접근하였으니 배수관 등에 막혀 접근 실패[16] 땅을 얼려서 지하수의 투입을 막는 벽[17] 그래서 그런지 현재 귀환한 마을 내의 기업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라 한다. 매출의 대부분은 원전 작업원, 마을 내의 제염 작업원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18] 참고로 원전 1호기의 손상률은 55%, 2호기의 경우 35%, 3호기의 경우 30%라고 한다.[19] 한국 웹에서는 대체로 이 멜트쓰루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내는 시각이다. 다만 반론의 시각도 없지 않은데, 모항목 '이후' 문단 참조[20] 대파되었다.[21] 다만 이제 연구초기 단계이고, 아직 일본을 제외한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신으로부터는 소식이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 일단 차분하게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링크의 댓글 상태가 그닥 좋지않고, 카더라 같은 루머도 보이니 댓글은 거르고 본문을 보는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