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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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아야
(ひら((あや | Aya Hirano


파일:히라노 아야 프로필.jpg

본명
타니구치 아야 (谷口(たにぐち(あや)[1]
출생
1987년 10월 8일 (36세)
아이치현 나고야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직업
성우, 배우, 가수
신체
157cm|O형
가족
어머니
배우자 타니구치 마사시
소속사
스페이스 크래프트(2001~2011)
Grick(2011~2022)
레이블
란티스(2006-2011.05)
UNIVERSAL SIGMA(현재)
활동 시기
배우|1998년 ~ 현재
성우|2001년 ~ 현재
가수|2006년 ~ 현재
취미
독서
학력
다마가와대학교 중퇴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Ameba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2.1. 성우 활동
2.2. 결혼
4. 음반
4.1. 싱글
4.2. 앨범
6. 여담
6.1. 안티팬



1. 개요[편집]


일본성우, 가수, 배우. 2000년대 중반, 대표 배역인 스즈미야 하루히로 일본 매체에서 차세대 성우계 스타로 주목받은 바 있으며 2012년 이후로는 주로 뮤지컬 및 스토프레작 무대 배우로서 활동 중이다.[2]

2. 생애[편집]




2.1. 성우 활동[편집]


극단 소속 연극배우로 시작하여 2001년 "천사의 꼬리"를 통해 성우로 데뷔. 2002~2003년에는 요시다 유우키, 이토 아야카와 함께 Springs라는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첫 주 성적이 오리콘 차트 79위였을 정도로 실패했고[3] 이후 한참 동안 무명으로 지내며[4] 간간이 작품에 출연했다.

2006년에 방영된 메가히트작《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에서 주인공스즈미야 하루히를 맡으며 갑자기 스타반열에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전 아이돌 그룹 출신인 만큼 비주얼이 받쳐주는 성우인 점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난 것이기도 하다.

히라노의 인기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얼굴이다. 힙한 느낌의 비주얼에 노래까지 잘불렀기 때문에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러키☆스타 TV 애니메이션판이즈미 코나타[5] 역으로 굳히기에 성공, 인기작이었던 데스노트의 주역인 아마네 미사로도 캐스팅되어 승승장구하면서 2007년 12월 19일엔 홍보차 방한한 적도 있다. 그리하여 한때는 오타쿠 아이돌이라 칭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자랑했다. 잘 나가는 오덕작품은 다 패러디하는 TMA가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이후로도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중 하나로 2007년에는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 제목이 히라노의 이름 첫 자의 이니셜을 그대로 따서 "H"라고 지은 덕에 일부에서는 "히라노 아야가 엣찌한 사진집을 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도 있다. 그런 것처럼 활동영역은 넓어서 영역을 딱히 가리지 않는다. 특히 모에가쿠라는 어린이용 어학(?) 프로그램에서 성우 및 뽀미 언니 정도의 역할을 맡으면서 중소 방송국에 진출했다.

또한 간간이 각종 쇼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게 히라노 아야의 원래 목소리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과거 무명시절의 생리대 광고나 아이돌 그룹 활동 당시의 모습을 보면 단순한 컨셉인 듯.

다만 급격히 뜬 반작용으로 안티도 많았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나 러키☆스타를 제외하면 다작을 하던 2006년부터 몇 년간의 연기[6]나 발매한 음반의 라이브 퀄리티가 대부분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상품의 질적저하를 느낀 다른 성우 팬층이나 작품의 팬들이 하나 둘씩 안티로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작을 그만둔 뒤에도 캐스팅된 시이나 타카시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절대가련 칠드런의 주요 캐릭터 아카시 카오루의 캐스팅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작 무렵의 형편 없는 연기 정도는 아니었던 평가로 문제없이 넘어갔지만 아직도 논란의 중심이 될 소지는 충분히 남아있다.

반대로 일부에서는 다작이 문제가 아니라 신인시절 쿄애니에서 연출한 하루히-코나타를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연기 퀄리티가 안좋았다가 2008년대쯤부터 오히려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력이 나아졌다는 반론의 주장도 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심이 시들해지고 성우 활동이 적어진 것도 있지만 초창기때는 몰라도 연기력으로 지적받는 일은 없어졌다.

사실 안티는 많아도 그만큼 관심도는 높아서 그 사례로 한번은 지인과 찍은 사진에서 왼손 약지에 반지를 낀 것이 발견되어 결혼설이 나도는 등 사소한 루머 하나로도 가십거리가 될 정도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지나친 관심 때문에 부담이 되는지 가끔식 극도의 신경쇠약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 예정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소문에서부터, 심지어는 성우계를 은퇴한다는 소문까지 돌아서 수많은 오덕들의 간을 졸였다. 이는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심화되는 중이다. 2010년부터 사무실로부터 애니메이션 출연 금지령이 내려져있는 상태라고 한다. 다만 금지령이 떨어지기 전부터 참가했던 작품에는 나올 수 있다는 모양. 성흔의 퀘이사라든가 페어리 테일은 교체없이 나오고 있다.

2011년 5월 란티스와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가수 활동도 접을 예정이라고 한다. 2011년 8월 20일로 소속사와의 전속 계약 종료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히라노 아야의 팬클럽 히라노쥬쿠도 활동을 접었고, 연회비는 남은 날짜에 비례해서 10월부터 환불하였다. 결국 스페이스크래프트를 퇴사하고 Grick으로 소속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바닝 계열이다.

2012년 1분기로 발표된 니세모노가타리부터는 오시노 시노부 역할이 사카모토 마아야로 변경되었다. 결국 한창 잘나갈 때인 2007년 언저리와 비교해서 2012년부터는 성우 쪽 일거리는 눈에 띄게 줄었다. 다작으로 형편없는 연기력을 피로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박 배역을 남길 정도로 재능이 있었으니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 해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점은 있다.

여성 성우치곤 목소리 변화폭은 좁으나 카랑카랑하고 목소리가 예쁘며 발성이 좋은 편. 대표 배역인 스즈미야 하루히는 물론 특히 루시 하트필리아는 이구동성으로 그녀의 연기력이 극찬받는 배역이다. 절친한 동료성우 쿠기미야 리에도 그녀의 루시 연기력을 칭찬했을 정도. 어찌보면 다작으로 형편없는 연기력을 선보였더라도 지속적인 푸쉬를 받았기에 연기력이 상승할 기회와 인기 성우로 자리잡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아래 후술할 성우 개인이 벌인 논란거리들 덕에 입지를 잃어버린 게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입장에서 아쉬울 뿐이다.

그 현상은 2020년 현재도 여전하며 요 근래 히라노 아야가 비중있게 나온 작품은 기생수오른쪽이은혼이마이 노부메 정도다. 그 외에는 비중이 적은 조연 아님 단역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전성기 시절이였던 2000년대 중후반에 비하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는 2000년대에 애니를 파던 성덕들에게는 알려져 있지만. 2010년대에 애니메이션 성덕이 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거론되는 경우가 드물다시피 하니...[7]

대신 연극 및 뮤지컬 배우로는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중. 블로그나 트위터를 보면 동료 성우들이 관람 와서 같이 찍은 사진을 가끔 볼 수 있다.

경력도 나름 오래 되었고, 아래의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은 그녀이지만, 프로필에 나와있듯이 나이는 여전히 젊은 축에 속한다. 당장 2010년대 들어서야 상당한 푸쉬와 인기를 과시하고 있는 카야노 아이가 그녀와 동갑, 히카사 요코가 그녀보다 두 살 더 많고, 스자키 아야가 그녀보다 한 살 더 많고, 코마츠 미카코가 그녀보다 한 살 더 어리니...[8]

2019년 6월 23일 란티스 마츠리 2019에 스즈미야 하루히로 등장하였다. SOS단이 전부 모인 것은 대략 12년 만이다.


2.2. 결혼[편집]


2024년 1월 3일, 배우 타니구치 마사시와의 결혼을 발표했다. 두사람은 체인소 맨 무대판에서 마키마와 키시베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히라노 아야의 대표 배역과 타니구치의 성씨소속사를 상기해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3. 출연작[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히라노 아야/출연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음반[편집]



4.1. 싱글[편집]


  • Breakthrough
  • 모험이지, 그렇지? (冒険でしょでしょ?)
  • 내일의 프리즘 (明日のプリズム)
  • LOVE★GUN
  • NEOPHILIA
  • MonStAR
  • Unnamed world
  • 나미다 Namida 나미다 (涙 NAMIDA ナミダ)
  • Set me free/Sing a Song!
  • Super Driver
  • Hysteric Barbie 10. 6.23


4.2. 앨범[편집]


  • RIOT GIRL
  • 스피드☆스타(スピード☆スター)
  • AYA MUSEUM
  • FRAGMENTS
  • vivid



5.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히라노 아야/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여담[편집]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5afe727c.jpg

  • 헬싱의 작가 히라노 코우타가 왜 아야와 결혼할 수 없냐고, 성이 같지 않냐고 떼를 쓰는 만화를 그렸다.

  • TEKKEN CRASH에서는 히라노 아야의 이름을 딴 닉네임의 알리사 보스코노비치 선수가 있는데, 닉네임과 알리사의 사기성과 수비 + 기본기 위주의 소금 플레이 등으로 인하여 오늘도 히라노 아야는 까이고 있다. 거기다가 이 유저가 히라노 아야라는 닉네임을 택한 이유에 히라노 아야라는 가수의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이고 또 까였다. 히라노 아야는 성우이거늘. 어째서 가수냐는 여론과 자기가 오덕이 아니라고 변명을 대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다. 자세한 얘기는 히라노 정헌 참고.

  • 주변의 친한 남자 성우로는 카키하라 테츠야, 나카무라 유이치, 나미카와 다이스케, 카미야 히로시가 있다. 특히, 나미카와 다이스케랑 상당히 친하다. 2007~2008년 중후반쯤 이후부터 상대역을 많이 맡게되면서 사적으로도 친분이 좋아졌다. 블로그에서도 서로 이웃이 되어있다. 같이 찍은 사진도 많고, 죽이 잘맞는다. 서로 연락처도 가지고 있어 연락하면서 친분을 나눈다. 이때의 모습은 큰오빠, 여동생(또는 삼촌, 조카) 뻘이 되는 모습이다.



  • 만화《너의 빛깔에 포커스》에서는 히라노 아야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히라노 아야코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 2012년 2월에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 애니플러스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음과 모음 그리고 맞춤법을 익히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고도 말했다.

  • 2012년 5월 12일, 서코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트위터에 떴다. 참고로 그에 따라 한국어 트윗도 했다. 2012년 4월 마침내 코믹월드측에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히라노 아야의 방한 및 2012년 5월 서울 코믹월드 공식 초청을 밝히게 되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방송사인 애니플러스와도 인터뷰를 하였으며 서코 이벤트에도 임했는데 당시 서코의 열기가.. 하지만 그 뒤 코엑스 애반레코드에서 열린 팬 사인회는 100명을 겨우 채웠다. 5월 2일부터 애반레코드에서 베스트 앨범을 사면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받는데 5월 12일 당일이 되어서야 100개가 모두 팔린 것이다. 같은 해 1월에 정식발매되어 살 사람은 모두 샀기에 이 기간의 판매량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는 반박도 있지만 5월까지 200장도 팔리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서코에 온 인원과 비교하면.. 한국 방문 후 리슨 5월 14일자 라디오 첫 부분부터 한동안 한국어로 말하긴 했는데 이걸 들은 사람들은 혼선이 일어난 걸로 보인다고 하지만 딱히 언급하자면 한국어 발음이 좀...[9]

  • 2012년 들어 한국 드라마 더빙, 특히 황정음이 맡았던 역할의 더빙이 늘어나고 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냉면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애니플러스 인터뷰 내용)[10] 애니플러스에서 인터뷰 영상이 공개되기도 하였는데 한국어로 첫 인사를 하였다.
그런 히라노 아야가 내한 콘서트를 가졌다. 일시는 2012년 6월 30일. 다음 팬카페 스탭의 말에 따르면 약 500명을 동원하였다.
파일:attachment/히라노 아야/aa.jpg
참고로 대한민국 성우 이용신도 이 콘서트에 관객으로 왔고 히라노 아야와 사진까지 찍었다. #

  • 여담으로 농담이겠지만 뜬금없이 한국에서도 성우하고 싶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 음반판매량은 갈수록 추락하여 결국 2013년 10월 9일 발매된 싱글 Promise는 첫 주 1471장, 누계 2154장 팔리면서 하루히로 뜨기 전 수준의 판매량으로 돌아갔다. 앨범의 경우 2014년 2월 19일에 발매된 정규앨범 vivid가 첫주 31위 2355장 팔렸다. 일각에서는 버닝프로덕션 사장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팍팍 밀어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실제로 잡힌 tv 프로모션은 없었다.

  • 하도 추락하는 일만 이어지다보니 한국에선 동정론이 올라가는 추세다. 까가 빠를 만든 듯.

  • 이름 탓에 별명이 티라노 아야다. 그래서 공룡이라고도 불린다.

  • 한국의 안티들에겐 한술 더 떠서 티라노 섹스[11]라는 멸칭으로 많이 불리는데 한국 안티 전용 별명이 있는 유일한 일본 성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녀가 딱히 혐한이나 극우 관련 적인 발언을 한 적도 없는데도, 한국에서도 안티 세력이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사정으로 인해서 잠시 미국의 뉴욕에서 살았었다고 한다. 영상 관련 제작사에 근무했다고 하며 일로 인해 해외에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히라노 아야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팬이며, 다카라젠느를 동경했다. 뮤지컬계에 가고 싶은 계기도 다카라즈카 공연을 보고나서 부터이다. 성우로 데뷔 전,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다카라즈카 주조의 톱스타인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를 동경해 열심히 그들의 공연을 볼 정도였다. 뮤지컬 배우로 나가겠다는 발언이후 2012년 레미제라블 뮤지컬에서 에포닌 역을 맡아 대형 뮤지컬 극장인 도쿄 제국극장에 데뷔했고, 2014년에 일본에서 초연할 실베스터 르베이[12]의 신작 레이디 베스[13]에서 전 다카 주조 여톱계의 레전드이기도 하는 하나후사 마리와 더블캐스트가 된다.[14] 이 사실을 알게 된 히라노 아야는 2014 레이디 베스 초연무대에서 자신이 하나후사 마리와 더블캐스트가 된 것을 알고, 너무 놀란 나머지 감격하여 연습시행 시작 당시 첫 대면하게 된 하나후사 마리 앞으로 다가가 "실례합니다. 저 사실은 팬입니다.(すみません、実はファンです)"라고 고백한 것은 히라노가 인터뷰에서 밝힐 정도로 꽤 유명한 일화로 히라노 아야 입장에선 일종의 성덕을 이룬 순간이기도 했다.

  • 2014년 레이디 베스를 공연하기 전에 한국판 모차르트 감상 및 배역 연구를 위해 한국에 내한을 와서 광화문 광장에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실베스터 르베이의 뮤지컬 레이디 베스는 히라노 아야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 뮤지컬작이다. 히라노 아야는 그 전엔 스즈미야 하루히같은 캐릭터만 연기하는 성우로만 인식되어왔고,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토호 인기 뮤지컬 레미제라블에포닌역을 맡았던 시절엔 "성우출신이 감히 뮤지컬계에 왔냐!!??"라는 식으로 성우시절때처럼 억지로 까임을 당했지만 레이디 베스 2014 초연을 통해 성우에서 뮤지컬 배우로서 전환하는데 성공한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2014 레이디 베스 초연땐 히라노 아야가 단순히 특정 극단출신[15]이 아닌 성우출신이란 이유와 다카라젠느들의 전문역인 왕족역을 맡았단 이유로 "소시민이 왕족을 맡는다니 상상할 수 없다!", "다카라즈카 출신자가 아닌 소시민 전문가가 왕족역을 맡는다는건 (일본) 연극의 퀄리티 저하를 불러일으킨다!"란 식으로 억지주장에 가까운 까임을 받기도 했다.[16] 그러나, 실베스터 르베이는 오디션때 히라노 아야가 모차르트!의 콘스단체의 넘버인 "나는 예술가의 아내"를 부를때부터 높이 평가했으며, 실베스터 르베이가 본격적으로 일본 비(非)다카라즈카 뮤지컬 여배우에게도 관심갖는 계기를 만든게 히라노 아야이다. 또하나의 의미는 히라노 아야가 일본 무대계 최초로 서양 왕족(王族)캐릭터를 연기한 비(非)다카라즈카 여배우이기에 그 동안 서양 왕족역할은 다카라즈카 출신자만이 가능하다는 일본 무대계의 인식을 깨는 기점이 되었으며, 히라노 아야를 기점으로 성우출신이 뮤지컬 배우가 되거나[17]뮤지컬 배우가 성우 활동에도 참여[18]하게 되는 다방면적인 길을 열기도 했다. 또, 실베스터 르베이는 레이디 베스 이후 토호판 모차르트! 2014년과 2018년 공연때 히라노 아야가 두번이나 콘스탄체역을 맡도록 토호에다 지시했고, 2018년 토호 레베카 공연에서 이히(나, Ich)역에 배정하기도 했다.

  • 히라노 아야가 맡고 싶어하는 뮤지컬 배역 중에 엘리자벳도 포함되어 있다고 팬들에게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이 레이디 베스와 모차르트의 콘스탄체와 함께 좋아하는 뮤지컬 배역이라고. 다만, 히라노 아야가 토호판 엘리자벳의 타이틀롤역은 맡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비엔나의 VBW쪽에서 전 세계 엘리자벳 프로덕션에다 규정한 타이틀롤역의 키 제한 때문이다. 비엔나에서는 172~175cm로 규정되어 있으며, 일본판은 다카라즈카판토호판 모두 163cm에서 170cm의 여배우가 맡아야하며, 헝가리판에서는 고증대로 172cm의 여배우만이 VBW에서 인정을 받아 씨씨를 연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히라노 아야의 키는 157cm로 일본여성의 평균신장이지만, 신장제한때문에 엘리자벳 타이틀롤에는 배정조차 될 수 없는 신장이란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이치로 마키, 세나 쥰, 하나후사 마리, 란노 하나를 위시한 다카라젠느 보다 히라노 아야가 가창에도 능숙하고 르베이가 의도하는 히로인 캐릭터 해석에 더 잘 부합할텐데 다카라젠느 묶음(宝塚縛り)캐스트와 신장묶음(身長縛り)이 나쁘다. 언제까지 다카라젠느들의 페이크 가창과 다카라즈카판 초연때부터 이어진 왜곡된 캐릭터 해석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받아야하나?"라는 말까지 나온다.[19]

  • 2014년 7월 11일, 뮤지컬 레이디 베스 오사카 우메다 극장 공연 도중 부친이 암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향년 56세.# 2013년 8월 25일, 할머니가 타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 탈모로 고생하고 있다는 근황을 밝히기도 했다.

  • 2016년 3월 19년, 며칠전에 외할아버지께서 타계하셨다고 발표했다.#

  • FNS 가요제 2017 제2야에서 야마모토 사야카마츠무라 사유리와 함께 ハレ晴レユカイ를 2절 끝까지 불렀다. 후지 테레비 방영 애니메이션 메들리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었지만, 이미 오와콘이라고 불리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의 노래가 나와서 지금 나와서 뭐하냐는 평이 많다.

  • 정신나간 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카고 신타로의 '하렘 엔드' 라는 작품에서 동시대 유명 성우들과 함께 등장하는데 골때리는 작가의 작품답게 절대로 좋은 모습으로 안 나온다.[20] 작가가 여러모로 성우(+애니업계) 안티인지 히라노를 비롯한 성우들의 작중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작중 히라노는 여러 스캔들과 사고로 망해 단역을 전전하다가 한 수상쩍은 신생 제작사의 스톱모션 애니라 주장하는 시타이(발음이 시체와 똑같다. 앞으로 생길 시궁창 전개의 복선.)아니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된다. 그들이 제시한 주인공 자리+고수익 보수에 혹해 찾아간 이 제작사는 실제 성우들을 시체로 만들어 앰버밍 후 마네킹화 시킨 뒤 애니 제작을 하는 정신나간 범죄자 집단이였고 결국 그녀는 진상을 깨닫고 도주를 시도하나 붙잡혀 그냥 시체로 전락한다. 이후 제작사가 그녀의 시체를 쓸데없이 고퀄리티로 보존처리하는 과정을 섬세히 보여주면서 출연 종료.


6.1. 안티팬[편집]


시이나 헤키루 이후로 성우계에서 굴지의 안티를 가진 성우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래와 같다.

  • 갑작스러운 대박 뒤 음반 활동과 사진집 발매 등 부업에 치중했고, 정작 성우 본업은 다작발연기로 혹평 받았다. 지금은 성우가 연기 외의 다른 분야로도 활동하는 게 당연하지만, 당시는 상술한 시이나 헤키루처럼 금기시되고 배신감을 느끼는 일이었다.


  • 본인 스스로도 자주 돌출 발언이나 묘한 행동을 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 단순히 이뿐이라면 솔직하고 입이 가벼운 성우 정도로 끝났겠지만, 위의 문제들과 섞여 잠잠해지려고만 하면 어디선가 장작이 굴러와 다시 불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일본 위키백과의 히라노 아야 기사死ね(죽어)로 도배되기도 했다. 덕분에 심심하면 수정 제한이 걸려 있었다. 안티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항목. 다행히 2012년 들어서는 수정 제한이 걸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2014년 전후부터는 오른쪽이 등으로 연기력이 재평가 받았고, 인기가 사그라들자 냉정한 시선이 늘어 과한 성캐일치 등의 성덕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표면화되면서, SNS에서의 입방정 말고는 사실 그정도로 까일만큼 잘못은 없지 않았나 하는 재평가 여론도 생겼다.

2022년 12월 16일, 트위터에서 애니 관련 활동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애니 일을 하면 아직도 살해 예고를 당해서"라고 밝혔다. 최근에도 경찰까지 불렀다는듯.

한편으로 히라노의 성우 활동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이후로는 사생활관련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성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2020년 이후로는 히라노 아야가 잘못한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최근 성우들이 일으킨 사건사고에 비하면 그 정도는 별 것도 아닌 것이 아니냐는 재평가도 생기고 있다. 심지어 최근 성우들은 히라노와는 달리 커리어에 타격도 별로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비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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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1월 3일 혼인으로 인한 입적으로 공문서 상의 본명이 바뀌었다.[2] 뮤지컬 배우로써 인지도를 높힌 계기는 엘리으로 유명한 실베스터 르베이의 일본 토호 제작 뮤지컬작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과 2014년 토호판 모차르트에서 콘스탄체를 맡을때부터 이다.[3] 모닝구 무스메 몰락과 함께 일본 여성 아이돌 자체가 몰락하던 시기라 망한 아이돌만 수두룩하고 흥한 아이돌은 단 한 팀도 없었다.[4] 샐러드 살 돈도 없어서 길거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휴지를 받아 간장에 찍어 먹으며 허기를 달랜 적도 있다고 한다.[5] 드라마CD와 게임에서는 히로하시 료.[6] 캐릭터 송 포함.[7] 또한 이상하니만큼 정상인 인물을 맡은 적이 드물어졌다. 단간론파 시리즈모나카라든가...[8] 다만 카야노 아이, 히카사 요코, 스자키 아야, 코마츠 미카코는 히라노 아야보다 늦게 데뷔했다.[9] 참고로 이 라디오의 게스트로 참석한 치하라 미노리는 5월 30일자 자신의 라디오에서 히라노의 한국말을 유창하다면서 칭찬하기도 했다.[10] 이 이야기는 콘서트에서도 했었는데 れいめん(냉면)이 한국어로 뭐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이 설렁탕이라고 한 걸 듣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참사(?)가 있었다. 어쩌면 히라노 아야는 자기가 먹은 냉면이 설렁탕인 줄 알고 있을지도.[11] 발음이 비슷한 히라노→티라노와 달리 발음이 전혀 다른데 어떻게 아야가 섹스로 전환됐냐면 당시 일애갤에서 히라노 아야까들이 낚시글에당시 애갤에서 티라노 암수가 교미를 하는 이 삽화를 올렸는데 이게 발굴이 돼서 티라노 섹스가 되었다,(왜 이런 삽화가 고퀄리티로 존재하냐면 고생물 학자들 사이에서 티라노의 유독 짧은 앞발의 용도 논쟁은 오랜 역사를 자랑했는데 그 중 유력한 설이 교미시 자세 고정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려졌다고) 참고로 4.10. 문단의 사진 유출(?) 사건은 11년도에 터졌는데 한참 이전에 00년도 애갤 당시부터 쓴 드립이라 아무 연관이 없다.#[12] 엘리자벳으로 유명한 그 르베이 맞다.[13]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 팩션작이다.[14] 단, 오디션으로 보고 합격해서 캐스트 된 것은 히라노 아야 뿐이었다. 하나후사 마리는 연출감독 코이케 슈이치로가 제극에 데려와 르베이와 쿤체에게 재소개하여 캐스트 된 것 이다. 거기다 하나후사 마리는 일본 황족의 분가에서 태어난 딸이라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캐스트 될 수 있는 위치였다. 히라노 아야는 오디션 당시 모차르트!의 콘스탄체의 넘버곡 '나는 예술가의 아내라(일: ダンスは止められない)'를 불러서 2014 모차르트의 콘스탄체로 먼저 캐스트 되었고, 그 다음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로 배역이 정해지게 된 것이다. 이유는 당시 레이디 베스의 넘버곡이 미완성이었기 때문이다.[15] 다카라즈카 가극단이나 극단 사계(시키, 四季)에 입단하고 거기서부터 활약해온 배우들을 말한다. 특히, 일본 뮤지컬이나 미디어계에서는 여성배우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면 대우가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며 오디션을 거치지 않고 특혜되듯이 캐스트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문에 토호 레미제라블의 팡틴이나 미스사이공의 킴이나 엘렌역 오디션을 보며 참여한 젠느출신자는 거의 없으며, 팡틴역에 참여한 젠느출신자는 굉장히 극소수이다.[16] 특히 극도의 다카라즈카 광신도들과 뮤지컬을 연극성이나 분위기로만 보는 극보수적인 이들에게 히라노 아야의 성우시절 필모를 빌미로 억지로 까는 경우가 상당했다. 주로 "소시민이 여왕이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비평이 있다던지.[17] 대표적인 예로 미야노 마모루, 박로미를 꼽을 수 있다. 이중 박로미는 2019년 토호 레미제라블 공연때 마담 테나르디에 역으로 출연했다.[18] 이노우에 요시오야마자키 이쿠사부로카토 카즈키 역시 성우일에 참여한게 2014년 이후이다.[19] 이 신장제한은 비엔나 정부와 VBW에게 권한이 있으며 정작 원작자인 르베이에겐 권한이 없다. 이유는 불명이나 르베이가 헝가리 출신이고, 현재에도 생존중인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란츠 요제프의 후손들의 눈치를 보고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실제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재도 오스트리아 정치계와 비엔나 예술계에 관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그 분가들도 다른 유럽국가에서 거주하고 있어서 영향력이 꽤 있는 편. 이런 엘리자벳을 포함한 여성캐스트의 지나친 제약을 주는 것 때문에 실베스터 르베이가 더이상 비엔나에서 뮤지컬을 작곡하지 않게 되었으며, 2006년 마리 앙투아네트 이후 일본 및 대한민국같은 아시아권에서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르베이는 비엔나와 한국보다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헝가리 출신 작곡가다.[20] 고소미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살짝 비틀었지만 첫 등장시 그녀가 회상하는 인생역정(하루히와 외모가 비슷한 캐릭터는 물론 남자친구와의 키스 사진 등이 나온다)을 살펴보면 히라노 아야 본인을 모델로 한 캐릭터가 맞다.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탄게 사쿠라, 유카나, 토마츠 하루카 등의 쟁쟁한 성우들도 이름을 살짝 바꿔 나오며 히라노 아야처럼 푸쉬를 받았고 보다 더 잘 풀린 성우로 꼽히는 하나자와 카나히카사 요코 역시 등장한다. 이중 하나자와는 쓰레기같은 애니메이터 카와모리(카와모리 쇼지?)와 놀아나 임신당하고 복수를 꾀하기 위해 고용한 복수대행조직(하렘 엔드)을 통해 복수에 성공하지만, 애니메이터가 사망한 것을 안 높으신 분들이 고용한 사이코 오타쿠 탐정에 의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버린다. 히카사 요코는 남편 오노 다이키(오노 다이스케?)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하는 불쌍한 여인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