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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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4년
조선
태조 원년

1. 개요
2. 사건
2.1. 실제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기타



1. 개요[편집]


한국사의 500년을 거슬러 온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해인 동시에, 고려멸망한 해이기도 하다.


2. 사건[편집]



2.1. 실제[편집]


  • - 3년간의 내전에 지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 브와디스와프 2세 요가일라가 사촌이자 반란을 일으킨 비타우타스에게 대공 작위를 대가로 평화를 제의하였다.
  • 4월 26일 : 정몽주선죽교에서 살해당함. 정몽주의 굳건한 정신을 담은 시 '단심가'가 쓰인 날이기도한다.[1]
  • 8월 2일 -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간의 오스트루프 평화 협정이 체결되며 리투아니아 내전이 종식되었다. [2]
  • 8월 13일 : 음력 7월 17일, 태조송경 수창궁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고려의 임금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서 고려가 34대 475년만에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했다.
  • 9월 3일 : 음력 8월 8일, 태조정안군을 자신의 고조부인 목조가 묻힌 동북면 지역에 파견해 태조의 4대조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고, 각 무덤마다 능호를 붙였다.[3]
  • 음력 10월 19일 : 일본 축주 태수 장충가가 승려 장주·종순 등을 파견해, 사로잡혀 있던 조선인들을 돌려보내고 친선 도모를 청함.
  • 음력 10월 28일 : 덕릉 주위의 민가 몇 호와 권무 2명을 수릉호(守陵戶)로 두어 능지기 역할을 맡게끔 함과 동시에, 그 옆에 재궁(齋宮=재실)을 함께 마련했다.
  • 10월 15일 : 일본 남조의 마지막 덴노인 고카메야마 덴노가 화친파의 주장에 따라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평화를 요청한다. 이후 교토로 돌아와 당시 북조의 덴노였던 고코마츠 덴노에게 3종신기를 건네며 양위하였다. 이로써 56년에 걸친 남북조시대가 막을 내린다.[4]
  • 12월 1일 : 조선에서 인재의 천거 등과 같은 시무책을 정한다.
  • 음력 11월 29일 : 예문관 학사 한상질명나라 금릉에 보내, 조선화령 중 어느 것을 국호로 고칠지 결정을 청하였다.[5]
  • 음력 11월 : 조선이 승려 각추를 무로마치 막부에 파견해, 왜구 소탕, 포로 귀환, 친선 도모를 요청했다. 당시 쇼군이였던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사신과 함께 포로 100명을 송환하여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말와 술탄국이 독립하였다.
  • 지도자와 그의 사촌 간 집안싸움 격이었던 리투아니아 2차 내전이 종결되다.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능주향교가 지어졌다.[6] 또한 면천향교[7], 김산향교, 문경향교, 함안향교, 광주향교, 동래향교, 구호서원 등의 교육 기관이 전국적으로 지어지게 된다.[8]
  • 고려 성리학의 대가 이색의 아들 이종학이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손흥종과 김여지에 의해 암살당함.
  • 호조 소속[9]의 관서 내부시[10]가 설립된다.[11]
  • 정도전요동 정벌을 계획하기 시작함.[12]
  • 베네치아 공화국알바니아 왕국의 항구 도시 두러스를 수중에 넣었다.
  • 도교 관련 관청이었던 복원궁 신격전, 정사색, 소전색, 태일전, 구요당, 청계배성소 등을 대청관과 소격전에 통합한다.[13][14]
  • 고려 때 있었던 광흥창의 예를 그대로 이어받아 다시 짓는다.[15]
  • 왕이 탈 말, 수레, 마구와 목축을 관장하는 사복시를 설치한다.
  • 실레시아 (슐레지엔)의 귀족 블라디슬라브 오폴치크가 신성 로마 제국, 튜튼 기사단, 실레시아, 헝가리에 의한 폴란드 분할을 제기하였으나 거절되었다.
  • 무함마드 7세가 나스르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 의회가 '교황존신죄법'을 제정한다.[16]
  • 토머스 우드스톡 제1대 글로스터 공작이 아일랜드 주 지사 작위를 수여받으나, 그와 동시에 그곳으로의 여행을 금지당한다.
  • 루이 드 발루아가 초대 오를레앙 공작이 되었다.
  • 독일의 에어푸르트 대학이 세워졌다.


2.2. 가상[편집]




3. 탄생[편집]



3.1. 실제[편집]




3.2. 가상[편집]




4. 사망[편집]



4.1. 실제[편집]


  • 2월 2일 - 아그니스 합스부르크 :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 4월 26일 - 정몽주 : 고려의 문신, 유학자.
  • 율리우스력 8월 18일 : 조선의 중추원사 김인찬.김인찬 졸기.
  • 5월 17일 - 주표 : 명나라의 황태자, 홍무제의 장남
  • 9월 10일 - 이숭인 : 고려 말기의 시인, 대학자[17]
  • 12월 10일 - 배극렴 :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 문신, 정치가이자 조선의 개국공신
  • 일자불명
    • 이종학 : 고려 말기의 문신, 시인
    • 조리그투 칸[18] : 몽골 제국의 18대 대칸
    • 김진양 : 고려 말기의 문신[19]
    • 마쓰다이라 노부시게 :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영주[20]
    • 이반계 :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추증 영의정[21]
  • 논란
    • 목인길 : 고려의 무신이자 재상. 고려 대에 반역죄로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이후 풀려나 고향인 사천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 있는가 하면, 유배된 해인 1380년 유배지에서 죽었다는 도 있다.


4.2. 가상[편집]




5. 기타[편집]


무한도전 TV특강 특집에서 멤버들이 직접 역사 강의를 했을 때, 노홍철이 조선이 건국된 1392년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년도인 1492년,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을 묶어 1492±100년으로 조선의 굵직한 일을 설명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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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데, 일각에서는 이 시가 정몽주의 창작물이 아니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를 적절히 인용한 것이라고도 본다. 단심가 문서 참조.[2] 비타우타스가 리투이니아 대공으로, 스킬갈리아는 키예프 공작이 되었다.[3] 목조의 능에 '덕릉', 그 부인인 효공왕후의 능에 '안릉'이란 이름을 붙인다.[4] 당시 평화 조약의 조건으로 남북조 덴노들이 각각 왕좌를 교대로 계승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1412년 파기된다.[5] 근데 명나라 황제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했던 감이 없잖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명나라 황제가 '기자조선설(상나라 귀족인 기자가 고조선 지역을 책봉 받아 국가를 세웠다는 설)'에 의거해 조선이라는 국호를 고른 것이라 하기도 한다.[6] 원래는 능주 서쪽에 있었으나, 선조 33년(1600년)에 하응도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7] 정확한 건설년도는 불명확하나, 태조 원년에 지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8] 대부분의 향교태조 대에 지어졌는데, 이는 1392년 태조가 각도의 안찰사들에게 교육의 개혁을 명령하면서 비롯되었다.[9] 정확히는 1405년 육조 직무를 나눌 때 호조에 소속된다.[10] 태종 1년(1401년)에 내자시로 고쳐진다.[11] 왕실의 재물을 넣어두던 부고(府庫)의 출납, 궁궐 내 등불의 점멸(點滅)을 담당하였다. 훗날 태종 대에 들어서면서 의성고와 병합되어,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꽃 및 내연직조(內宴織造) 등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례(捲草禮)를 봉안하는 일도 도맡았다.[12] 명나라에게 보내는 경고였을 뿐이라는 해석이 강하다.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했다.[13]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친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었다.[14] 녹화사업국군기무사령부로 대표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15] 모든 관리들의 녹봉 수입, 지출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호조 소속이다.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했었는데, 그래서 이 부근에 생긴 지하철역에 광흥창역이란 이름을 붙인다.[16] 헨리 8세 시절인 1529년, 토머스 울지가 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실각한 것으로 유명한데, 곧 '교황을 국왕보다 높은 존재로 여기고 행동을 실행한 죄' 이다.[17] 고려육은(高麗六隱) 중에 한 사람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 허나 조선 건국 이후 장형을 받고 죽는다.[18] 묘호는 공종(恭宗).[19] 정몽주의 지시로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격당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20] 미카와 국 마쓰다이라 향.[21] 조선 개국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단식해 결국 7일만에 숨을 거뒀다. 이를 가상히 여긴 태종이 그의 절의를 기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