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러시아 총선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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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부정선거
4. 해외 반응
5. 미완의 결집
6. 기타
7. 둘러보기



통합 러시아의 선거 참여 홍보 광고. 광고부터 꽤 수상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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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방송 DLP 화면과 그걸 보고 당황한 표정의 앵커.[2] 위 득표율들을 모두 더한 총합은 146.47%.
그리고 맨 위에 58.99%로 자리잡은 Единая Россия (통합 러시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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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목소리를 되돌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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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에 분노하여 시위를 벌이는 러시아인들. 간판의 러시아어는 "나라를 되찾자!"와 "결과가 너무 우스꽝스럽지 않느냐!"이다.

Акции российской оппозиции
Протестное движение в России (2011 –2013)


1. 개요[편집]


2011년 12월 4일 벌어진 국가두마(러시아 의회 하원) 총선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와 그와 연계된 일련의 사건들.

정작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선 146%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텔레비전 방송사고인 셈.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이런 실수가 러시아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도발이라고 주장하였다.# 정정된 자료에서는 총 득표율이 60.21%로 나왔다. 의도적인 부정선거라고 보기엔 너무나 기획이 허술했다.

2011년 12월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서 2013년까지 이어진 적이 있었는데 시위자들은 하얀 리본이나 하얀 간판을 들면서 반 독재운동 및 푸틴 타도를 외쳤다. 유독 하얀색이 강조어서 '하얀색 혁명(«Болотная революции» White Ribbon Revolution)' 혹은 '눈꽃 혁명(«Снежная революции» the Snow Revolution)'이라고도 불렸다.


2. 배경[편집]


2011년 당시 전직 재선 러시아 대통령이자 당시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강인한 지도자라는 인상을 내세우면서 러시아에서 상당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이후 다시 그가 대선에 나서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4]

하지만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전세계 경제가 출렁이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경제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경제 발전 및 강인한 지도자를 내세우던 푸틴의 지지도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친푸틴 보도를 내놓던 언론의 위력이 약해지고 인터넷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반 푸틴 세력은 급속도로 커졌다.

결국 2011년 하원 총선에서 푸틴의 통합 러시아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론이 악화되었고 다시 대통령이 될 야욕에 불탄 푸틴과 통합 러시아는 이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3. 부정선거[편집]


총선 당일이었던 12월 4일 야당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사이트와 언론 사이트들이 DDoS 공격을 당했다. #

이것도 모자라서 선거 당일 대리투표 등의 부정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

동원된 것으로 밝혀진 부정선거 수법으로는
등이 있다.

선거 결과는 여당의 승리로 끝나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 수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과거의 영광을 거의 잃고 간신히 과반수를 확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부정선거 관련 증거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하면서 분노한 러시아 국민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선관위 내부에서 선거 조작에 대한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는데 통합 러시아의 득표율은 50%에 그쳤고 그나마 이것도 조작한 표로 얻은 거라 실제로는 25~30%(정확히는 21.9%)정도밖에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 수치도 통합 러시아가 주문한 거에 비하면 약과였다. 아예 65~70%의 득표를 했다고 조작하라고 한 것. 저렇게 조작한 것도 그나마 원래 주문한 것에서 엄청나게 깎은 거다. 게다가 너무 티나게 조작하다 보니 총 득표율을 계산한 결과 140%(!!)가 나오는 해괴한 상황이 발생했다. 엄밀히는 위 DLP 화면에선 거의 60%대로 수정했고 총 득표율은 146.47%가 된다.

단순히 이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총 득표값이 100%가 넘는다는 사실은 개별 항목이 부풀려졌단 뜻인데 만약 저 수치가 제일 단순한 방식인 다른 야당의 %값은 그대로 두고 통합 러시아의 % 수치만 끌어올린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면 통합 러시아의 실제 득표율은 46.5%를 뺀 12.52%밖에 안 됐을 수도 있다는 뜻. 차라리 러시아의 애국자들 같은 국가두마 진입 장벽에 턱없이 못미치는 군소정당에 표를 더 주고 통합 러시아가 간신히 이겼다고 우기는 게 더 현명했을 지도 모르는 일.

해외에서는 당연히 푸틴을 까는 소재로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반 푸틴 진영의 열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자유유럽방송에서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 24 방송국의 카메라맨을 했던 레오니드 크리벤코프의 인터뷰에 따르면 146%라는 투표율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방송에 앞서 크렘린은 여당인 통합 러시아의 득표율을 지정해 주고 그 숫자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편집장이 다른 정당들의 투표율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받은 투표율만큼 내보내라고 대답하였고 이 지시에 곧이곧대로 따르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나와 버린 것이다. #


4. 해외 반응[편집]


유럽권에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를 표했으며 미국에서는 강경한 태도로 러시아에서 일어난 부정선거 사태를 비난했다. 푸틴은 "시위대는 미국에게 선동되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하면서 비난 발언을 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 인터넷에서는 '140%'라는 총 득표율을 가지고 놀리는 온갖 유머를 쏟아냈다. #, #


5. 미완의 결집[편집]


선거 다음 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서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에서는 친 푸틴 세력과 반 푸틴 시위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러시아 군경이 반 푸틴 시위대만 체포하는 바람에 오히려 러시아 국민들의 반 푸틴 성향이 더욱 강해지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10일에는 휴일을 맞이하여 소련 붕괴 이래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는 크렘린이 허가하였기에[5] 언론들도 보도할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야권은 푸틴을 정치적으로 끝장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음에도 푸틴의 숨통을 끊을 수 없었다. 이 분위기를 끌어갈 만한 인물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6] 올리가르히(신흥 재벌)[7] 출신 후보들은 신분상 시위대의 목소리를 대변할 인물이 되지 못했고 공산당이나 극우 정당도 푸틴을 대체할 만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8] 러시아를 뒤흔들었던 시위대의 열기는 2012년 대선까지 이어지지 못한 채 블라디미르 푸틴이 3선에 성공하는 결과로 막을 내렸는데 이 선거에서도 체첸에서 득표율 107%인 지역이 나왔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벌어졌다. 그런데 2014 우크라이나 조기 대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한 투표율이 약 60%인 1천 8백만여 명 수준인데 문제는 최종 투표자 수가 2천 5백만여 명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약 140%에 달하게만든 7백만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결국 이런 부정투표 의혹은 유로마이단 혁명크림 반도 위기로 이어졌다.

6. 기타[편집]


이 부정선거에서 유래된 140%라는 표현은 나무위키에서 종종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강조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100%, 아니 140% 추천.'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200%책과 함께 200% 즐겨요와 같이 강조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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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표도 하고 여친도 만들라는 '참 좋은 의미'로 만들었겠지만 애초에 투표 부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조용히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표를 행사해야 하는 곳이다. 둘이 같이 들어가 이러쿵저러쿵 투표하는 장면을 촬영함으로써 CF를 만들 때부터 이미 여당이 비밀선거의 원칙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도 대한민국도 3.15 부정선거 때 3인조, 5인조 선거를 실시한 적 있다.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4.19 혁명.[2] 참고로 이 앵커는 11년 후 2022년 대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해 러시아 증시가 폭락하자 경제 전문가 알렉스 부트마노프가 방송 중에 '러시아 증시는 죽었다.'며 대놓고 탄산수를 꺼내 마시는 것을 보고 한 번 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앵커는 푸틴 때문에 방송 중에 당황한 일을 두 번이나 겪은 셈.[3] 두번째의 КПРФ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 세번째 당(ЛДПР)은 러시아 자유민주당. 그 뒤로는 공정 러시아, 야블로코당, 러시아의 애국자들, 올바른 원인 순이다.[4]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2013년에 다시 돌아온 푸틴 신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총리로 임명했는데 그는 2020년까지 재임하게 되었다.[5] 관제 시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6] 그런 사람들은 한국으로 치면 양김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정치에서 대표성이 중요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괜히 바지사장이라도 내놓는 것이 아니다.[7]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혼란 속에서 국영기업과 각종 부동산 등을 거의 헐값에 불하받아 급격하게 성장한 신흥 재벌들. 이들은 공산주의 체제 시절 인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경제 권력을 장악해서 러시아의 상위 1%로 부상했다. 당연히 러시아의 보통 사람들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고 집권 초창기 푸틴의 절대적인 인기는 이 올리가르히들의 횡포를 강력한 국가 권력으로 찍어누르면서 시작되었다.[8] 러시아가 옛 소련의 중심지라고 해서 현재도 공산당 등의 좌익 정당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러시아의 경제가 악화되고 있으나 최소한 생필품 걱정은 없었던 전성기 소련의 향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고 특히 반푸틴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2~30대는 오히려 소련의 붕괴로 인한 개판 5분 전인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공산당과 사회주의에 강한 염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더불어 옛 소련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장년층도 이땐 최소한 먹고살 걱정은 덜했지라는 감정을 느낄 뿐이지 절대 소련이 부활해야 한다는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리고 러시아 연방 공산당과 소련 공산당과의 연계점을 찾기도 어렵기도 하고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삽질도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