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FIFA 월드컵 프랑스/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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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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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경기 전
2.2. 선발 명단
2.3. 경기 실황



1. 개요[편집]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의 결승전을 정리하는 페이지.


2. 이탈리아 4 vs 2 헝가리[편집]


경기장
스타드 올랭피크 드 콜롱브
파리 - 프랑스
경기일
1938년 6월 19일 17:00
(1938년 6월 20일 00:00)
심 판
조르주 캅데뷰 (스위스)
국 가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헝가리
파일:헝가리 왕국 국기(1915-1918, 1919-1946).svg
점 수
4
2
득 점
지노 콜라우시 (6', 35')
실비오 피올라 (16', 82')
티트코시 팔 (8')
샤로시 죄르지 (70')




2.1. 경기 전[편집]


이탈리아헝가리는 각기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팀이었던 터라 자존심 싸움이 대단했다. 하지만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번의 시합이 더 설득력이 있는 법. 1938년 월드컵의 결승은 프랑스의 당시 대통령까지 와서 관전했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관심 속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직전 대회에서의 우승이 그들의 실력 외에 다른 것이 섞여있다는 의혹을 약간이나마 씻어내려면 반드시 우승이 필요했다.

헝가리의 공격은 단연 젠겔레르 줄러주장 샤로시 죄르지가 이끌었다. 그들은 이전 3경기에서 무려 13골을 넣었는데 이들 두 명이 넣은 골만 젠겔레르의 5골과 샤로시의 4골을 합쳐 9골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는 헝가리만큼 골을 많이 넣지는 못했지만 쥘 리메의 고향이자 개최국인 프랑스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연파하고 올라온 터라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이탈리아는 3경기에서 5골을 합작한 피올라콜라우시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보았다.


2.2. 선발 명단[편집]




2.3. 경기 실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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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에 인사를 나누는 양팀 주장.
왼쪽이 이탈리아와 인터 밀란의 전설적인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이고, 오른쪽이 헝가리의 30년대를 주름잡았던 샤로시 죄르지이다.

전반 6분, 이탈리아가 포문을 열었다. 선제골의 주인공은 지노 콜라우시. 이탈리아의 빠른 역습 상황에서 비아바티가 헝가리 진영 왼쪽에서 날린 크로스는 헝가리 수비수들이 아무도 신경 쓸 수 없던 위치로 교묘하게 콜라우시에게 날아갔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콜라우시는 당연하게 왼발 발리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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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유니폼-실제로는 빨간색 유니폼이 헝가리 선수들. 오른쪽에서 조금 옅은 색 유니폼-실제로는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크로스를 날리는 비아바티이고 왼쪽에서 무주공산으로 서 있는 선수가 콜라우시이다.

하지만 헝가리도 그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2분 만에 티트코시 팔이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3연속 걷어내기 실수를 틈타 왼발슛으로 만회골을 뽑은 것이다. 대회 내내 계속된 선방으로 상대 공격수의 기를 죽이던 올리비에리도 어찌하지 못할 강력한 슈팅이었다.

이탈리아는 전반 16분, 피올라가 메아차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어 다시 도망가는데 성공했고, 피올라는 골키퍼가 막아낸 공을 재차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공은 아쉽게 크로스바를 때렸다. 그리고 35분, 콜라우시가 헝가리의 왼쪽 골문을 꿰뚫는 정확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기록, 스코어는 3대1로 벌어졌다. 이 추가골로 콜라우시는 FIFA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헝가리는 지난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결승 상대였던 체코슬로바키아처럼 기술을 포함, 전체적으로 좋은 선수들이 많았지만 이탈리아 선수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이탈리아가 계속해서 헝가리를 밀어붙이는 양상으로 전반전이 종료되었다.

후반 25분, 헝가리의 주장 샤로시 죄르지가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방어에서 잠깐 벗어난 틈을 타서 만회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3대2. 이제 헝가리가 추격의 불씨를 살려 턱 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탈리아는 분위기를 다시 자신들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 추가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때마다 헝가리의 서보 골키퍼의 선방과 골대의 수훈으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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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골키퍼의 사력을 다한 방어

하지만 후반 37분, 이탈리아의 피올라가 결국 서보 골키퍼와 수비수 비로 샨도르의 방어를 뚫고 쐐기골을 뽑아냈다. 비아바티의 슈팅이 헝가리 수비수를 맞고 흘러나온 것을 본 피올라는 논스톱 슈팅으로 원하던 결과를 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 2연패를 이룩해 낸 최초의 팀이 되었으며, 월드컵에서 개최국 이외의 다른 팀이 우승한 최초의 기록도 갖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쥘리메 컵 영구 소유에 한 발짝 더 다가섰으며, 당시 이탈리아를 이끌던 포초감독은 현재까지 유일한 월드컵 2연패를 이끌어낸 감독으로 남아있다.[1] 여담으로 두번째 우승 직후 축하 파티에서, 포초 감독은 얼마나 기뻤는지 코치가 장난으로 그의 발에다가 술을 붓는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mondialhistory.com/Champion_France_1938.jpg
위 사진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포초 감독이다.

[1] 브라질이 1958년1962년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하여 이탈리아의 기록을 재현해냈지만 감독이 각기 다른 사람이라 월드컵 2연패를 이끈 감독은 현재 포초 감독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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