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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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년 ~ 14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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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 1982년
인류세력
11989년
로마 숫자
MCMLXXXIX

1. 개요
2. 주요 화제
2.1. 공안정국, 1989년
2.2. 음력 설의 부활
2.3.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
3. 기후
4. 사건
4.1. 실제
4.1.1. 1월
4.1.2. 2월
4.1.3. 3월
4.1.4. 4월
4.1.5. 5월
4.1.6. 6월
4.1.7. 7월
4.1.8. 8월
4.1.9. 9월
4.1.10. 10월
4.1.11. 11월
4.1.12. 12월
4.2. 가상
5. 탄생
6. 사망
6.1. 실존 인물
6.1.1. 1월
6.1.2. 2월
6.1.3. 3월
6.1.4. 4월
6.1.5. 5월
6.1.6. 6월
6.1.7. 7월
6.1.8. 8월
6.1.9. 9월
6.1.10. 10월
6.1.11. 11월
6.1.12. 12월
6.1.13. 일자불명
6.2. 가상 인물
7. 데뷔
7.1. 배우
7.2. 가수
7.2.1. 한국
7.2.2. 해외
7.3. 예능인
7.4. 만화계
7.5. 스포츠
7.5.1. 야구
7.5.2. 축구
7.5.3. 미식축구
7.5.4. 농구
7.5.5. 씨름
8. 은퇴
8.1. 스포츠
9. 히트작
9.1. 드라마
9.1.1. 국산
9.1.2. 해외
9.1.3. 더빙
9.2. 영화
9.3. 가요
9.4. 개그 코너
9.5. 애니메이션
9.6. 베스트셀러
10. 출시 상품
10.1. 식음료
10.2. 생활용품
10.3. 자동차
10.4. 전자제품
11. 최초
11.1. 방송 프로그램
11.2. 창간
12. 유행어
13. 달력



1. 개요[편집]



KBS 영상실록 1989년편


1980년대의 마지막 해이자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989년은 동유럽 공산정권들이 도미노마냥 붕괴되면서 전세계 뉴스거리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며,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있던 모든 공산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였다. 대다수 동구권 국가들은 평화적으로 개혁/개방을 쟁취했으나 루마니아만 유혈사태를 겪어가며 뒤늦게 쟁취해냈고, 같은 이유로 꿈과 희망에 가득찼던 당시 중국 대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년전 이미 혁명이 일어났고, 당해에는 5.3 동의대학교 사태가 있었다.

역사적인 사건이 엄청나게 많았던 만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비롯한 악명높은 연쇄살인도 많았다.[1] 그 유명한 탈옥범 신창원도 1989년 3월에 강도살인에 가담했다. 이때문에 다음해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일본에서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 등 끔찍한 성범죄 살인이 연달아 일어났다.

한국의 경우는 전년도 12월부터 노태우가 '법질서 수호'를 시사하는 담화를 한 후 1월 풍산금속 안강공장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현장에선 언제나 경찰력이 투입됐고, 공안사건 수도 갈수록 늘어갔다. 동년 봄에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역사를 거꾸로 걷기도 했다. 하반기 들어 5공 청산 요구가 다시 대두하여 전두환을 국회로 불러내 증언케 했으나, 전두환 본인이 5.18 광주학살 등 신군부 때 죄과를 상당수 부인해 5공 청산은 실패로 돌아갔다. 교육계에선 진보적인 학교 교사들을 중심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하여 1961년 교원노조 해체 후 28년만에 교사 노동조합을 부활시켰으나, 이는 교육계와 일반 대중들 내부에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켜 정부의 탄압으로 이어졌다.

대전시충청남도에서 분리되어 직할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이웃 대덕군을 편입했다. 그리고 경기도에선 군포-의왕 2개 읍이 시흥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고, 시흥군 역시 시로 승격되었다. 또 미금읍 역시 남양주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되었다. 동부읍 등 일부 지역이 광주군에서 분리되어 하남시가 출범되기도 했으며 서산군이 서산시, 서산군, 태안군으로 분리되었다. 1989년도 대학 입학생부터 교련이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조선총독부의 명령으로 강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때부터 공식적으로 국가 공휴일로 부활하였고 북한에서도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그 동안 양력 설날(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음력 설날로 옮겨졌다. 1999년부터 신정 휴일이 단 하루로 축소됨에 따라, 이 때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신정의 고향길 행렬이 완전히 사라졌다.[2] 그리고 여권법 시행령 개정으로 관광 허용 연령기준이 철폐돼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에서는 쇼와 덴노의 사망으로 60여 년에 걸친 쇼와 시대가 끝나고 아들 아키히토가 황위에 오르면서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연호를 사용하는 일본 특성상 쇼와 64년인 1989년 1월 1일~7일에 태어난 사람들은 마지막 쇼와 시대 출생자들이 된다. 또한 만화계와 가요계에서 데즈카 오사무, 미소라 히바리라는 두 거물을 잃은 해였다. 그리고 일본의 거품경제가 절정으로 치달아 가고 있었다. 이미 주식시장에서는 버블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옴진리교TBS 비디오 문제,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제 노동운동권에서는 1889년 노동절 지정을 기준으로 '메이데이 100주년'이라 하여 크게 기념하는데, 한국의 전국투본은 4.30 세계노동절 기념대회를 앞두고 기존의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여 굴욕에 찬 지난날의 근로자 인생을 청산하고 한국전쟁 이후 단절되었던 5월 1일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해 메이데이 쟁취를 크게 알렸다.


2. 주요 화제[편집]



2.1. 공안정국, 1989년[편집]


1988년 여소야대 정국으로 유화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절인 1989년 3월 25일 문익환 목사의 방북 사실이 알려지고, 같은 달 27일에 열리려던 '남북작가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30일에 당시 108일째 계속되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에 정부가 공권력을 전격 투입하면서 공안정국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4월 3일에는 안기부와 검찰, 경찰, 보안사 합동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조성되면서 대대적인 공안몰이에 들어갔다. 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지도부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검거에 착수했으며[3] 이로 인해 시인 고은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재오[4] 구속되었다.

공안정국이나 색깔논쟁 시 김대중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김영삼에게도 시련이 닥쳐오는데, 4월 14일에 강원 동해시 보궐선거 후보자 매수와 관련하여 서석재 의원이 구속되면서 야3당 공조체제가 와해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6월 27일에 서경원의 밀입북 사건이 밝혀지면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더 큰 피해자가 되었다. 7월 27일에 안기부에서 구인장을 발부하자 김대중은 전 평민당 부총재 문동환과 함께[5]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는 수모를 겪기까지 했다.

이러한 일들이 속속 터지자 민정당은 모처럼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안 약빨도 떨어지고 5공 청산 요구가 되살아나자 결국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해 3당 합당으로 공안통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2.2. 음력 설의 부활[편집]


을미개혁 이후 '구정', '민속의 날'로 불리며 전통 명절로서의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음력 설이 '설날'이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 받고 3일 연휴로 제정되었다.

덧붙여 그 동안 연휴로 지정된 신정은 1990년부터 새해 첫날과 그 다음날만 쉬게 되었고, 1999년부터는 하루만 쉬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 해는 1963년과 함께 주말[6]을 제외한 법정공휴일이 총 18일[7]로 역대 가장 많았던 해로 남아있다. 그 반대 사례는 주말을 제외한 법정공휴일이 겨우 6일[8]이었던 2009년.


2.3. 동유럽 국가들과의 수교[편집]


19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이 해는 대한민국이 그 동안 친북 및 공산주의 성향을 가진 동유럽 국가들과 잇따라 국교수립을 맺은 해였다. 이 해에는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와 수교를 맺었으며 이듬해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등과도 수교를 맺었고 드디어는 공산국가의 수장격인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유일하게 동독은 1990년 10월 3일 동서통일이 되면서 동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과 영구적으로 미수교 상태의 나라가 되었다.

1945년 해방 및 남북분단 당시에만 했어도 대한민국은 영국, 프랑스서유럽 국가와 단독 수교를 맺어왔으며 동유럽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였던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와도 수교하지 않았다. 대신 동유럽 국가들은 북한과 단독수교를 하였으며 이들은 대부분 친북 성향을 가지며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이전해인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참가하면서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동유럽과의 교류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해에 가서야 그 결실을 맺는다.

3. 기후[편집]


서울의 연극값과 연교차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이 변화한 해답게 기후도 온난화가 심해져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후로 변화했고 고온이 심해진 해이다. 게다가 한파일수도 없었다. 하지만 7월 일부, 10월 일부는 저온도 있었다.
연 최저기온
연 최고기온
연교차
-11.2 °C(0128)
35.3 °C(0805)
46.5 °C

4. 사건[편집]



4.1. 실제[편집]



4.1.1. 1월[편집]


  • 1월 1일
    • 노태우는 신년사에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강조하였다.
    • 북한 지도자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 제의 및 김수환 추기경 등 남한 재야인사 평양 초청 의사를 밝혔다.
    • 여권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실시되었다.
    • 몬트리올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 공윤은 이날부로 무대공연물 각본/대본 사전심의를 폐지하였다.
    • 충남 대전시대덕군을 편입하여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충청남도에서 분리되었다.
    • 매일경제신문사가 《매경PC저널》을 창간하였다.
    • 대한민국의 마지막으로 도농분리가 이루어졌다.[9]
  • 1월 2일 - 풍산금속은 안강공장 폐쇄 후 경찰력 1,700여 명을 사업장 내에 투입토록 했다.
  • 1월 3일
  • 1월 4일
  • 1월 5일
    • 30사단 공병대대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가 군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 군인의 각성을 촉구토록 하는 '명예선언'을 발표하였다.
    • 민가협과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였다.
    •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이하 민주법연)가 발족되었다.
    • 문교부는 3월부터 고졸 이상의 젊은이들에게도 '해외유학자유화' 조치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 1월 6일
    • 민정당은 전두환 국회증언과 관련해 '선 서면질의 후 방문증언' 방침을 확정지었다.
    • 문교부는 고졸 젊은이들의 해외유학을 허용하도록 시달했다.
    • 부시 미국 대통령 지명자는 새 주한 미국대사에 도널드 그렉을 지명하였다.
  • 1월 7일
    • 정부는 LPG 엔진 허용을 1톤 미만 미니버스와 미니트럭에도 허용키로 한다고 밝혔다.
    • 검찰 5공비리특수부는 손제석 전 문교장관 소환 후 일해재단 설립경위 등에 대해 조사했다.
    • 쇼와 덴노(히로히토)가 사망하여 아들 아키히토가 황위를 승계하였다.
    • 오부치 게이조 일본 내각관방장관이 새 연호 '헤이세이'를 공개하였다.
    • 노태우쇼와 덴노를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
    • 외무부 관계자는 강영훈 국무총리를 조문사절로 파견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 '국제화학무기금지회담'이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되었다.
    • 동 회담이 '화학무기 금지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 <전남일보>가 창간되었다.
  • 1월 8일
  • 1월 9일
    • 국회 광주특위 정웅 의원 등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 주둔지였던 주남마을 현장 발굴 과정에서 변사체 1구를 발견했다.
    • 검찰 5공비리특수부는 사공일, 최순달 등을 소환해 대한선주 정리 등을 조사하였다.
  • 1월 10일
    • 울산경찰서는 현중 노동자 피습사건 관련자 한유동 현대엔진 전무와 재미 노조파괴전문가 제임스 리(이윤섭)을 구속하였다.
    • 재불화가 고암 이응노 화백이 세상을 떴다.
  • 1월 11일
    • 정부와 민정당은 '남북한교류특례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북한측은 럭키금성상사 홍콩 현지법인과의 상담을 통해 한국산 TV 5만대를 주문하였다.
    • 1980년 당시 해직된 언론인 770명의 숙정사유가 보안사 자료를 통해 공개되었다.
  • 1월 13일 - 소련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소 민간경협위원회' 발족을 제의하였다.
  • 1월 14일
    • 국민은행이 '마이카 부금제'를 실시하였다.
    • 북한측은 묘향산 일대를 자연보호구로 설정했다.
  • 1월 15일 - 방글라데시 통기 부근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해 110명 이상이 죽고 1천 명이 부상당했다.
  • 1월 16일
    • 5.18 당시 특전사 7공수 33대대 중사였던 최영신이 주남마을 양민학살에 대한 양심선언서를 발표하였다.
    • 미국 정부는 그해 9월부터 한국-일본-필리핀 등이 참가할 '육해공 통합 대규모 태평양군사훈련(PACEX)'을 실시한다고 발표하였다.
    • 연형묵 북한 총리는 강영훈 총리에게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위한 대표단 파견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했다.
    • 제4회 중앙과학기술축전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 1월 17일
    • 노태우는 연두 기자회견에서 중간평가 여야 의견으로 결정, 연내 지자체 실시, 남북정상회담 실현 등을 발표하였다.
    • 제445차 군사정전위 본회의가 휴전 36년만에 판문점에서 비공개로 개최되었다.
  • 1월 18일 - 전남대생 50여 명과 조선대생 2백여 명은 광주 미국문화원과 광주지검을 기습해 "노태우 처단"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 1월 19일
    • 삼성중공업 민주노조쟁취위 소속 노동자 6명 및 대학생 16명이 삼성그룹 본관 3층 테라스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민청련이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이하 전청대협)'로 새로 출범하였다.
    • '예술의전당 노동조합'이 발족되었다.
  • 1월 20일
  • 1월 21일
    • 민통련이 '전국민주민족운동연합(이하 전민련)'으로 새로 출범되었다.
    • 전민련 조통위는 북한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을 3월 1일 정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 1월 23일
    •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북한을 방문하였다.
    • 블라디미르 골라노프 소련 연방상공회의소 부의장이 방한 중에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찾아왔다.
    • 김유순 북한 조선올림픽위원장은 김종하 KOC 위원장의 남북체육대표 접촉 수락을 통보하였다.
    • 1989학년도 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치루어졌다.
  • 1월 24일 - 정부와 민정당은 구정연휴를 3일로 확정 후 명칭을 '설날'로 바꾼다고 밝혔다.
  • 1월 25일 - 부산지역 일간지 <항도일보>가 창간되었다.
  • 1월 26일
    • 국회 광주특위는 최규하, 전두환 두 전 대통령에게 동행명령장을 발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 북한 외교부는 핵무기 및 화학무기 철폐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 1월 27일 - 장세동 前 대통령경호실장[10]이 5공 비리와 관련되어 구속되었다.
  • 1월 28일
    • '전국시설관리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농수산물유통공사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월 29일 -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서울, 경기, 인천 노동자 5만여 명이 대학로에서 노동운동 탄압분쇄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1월 30일 - 북한의 김일성은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 용의가 있음을 발표하였다.
  • 1월 31일
    • 검찰은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장 등 47명을 구속하였다.
    • 동아건설 건설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4.1.2. 2월[편집]


  • 2월
    • '부천지역 임금인상 및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서울노동자문화예술활동위원회(이하 서노문위)'가 결성되었다.
  • 2월 1일
    • 통일교 계열 일간지인 세계일보가 창간되었다.
    • 국제신문이 언론통폐합 이후 폐간 9년만에 복간되었다.
    • 일본 사회당이 한국을 공식 인정하였다.
    • 전대협은 연세대학교 기자회견에서 정부 주도의 남북대학생교류회에 불참할 것을 선언하였다.
    • 한국-헝가리 양국이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이는 첫 공산권 국가와의 수교였다.
    • 법무부는 소련 등 14개 미수교국가에 대해 입국절차를 개선하였다.
  • 2월 2일
    • 문교부는 대학생의 과외 교습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여 과외 규제가 처음으로 완화되었다.
    • 전교협은 교원노조 결성을 선언하였다.
    • 완구업체인 (주)삼모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에 사측은 구사대를 풀어 폭력으로 노조 활동을 방해하였다.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귀국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측과 합의한 금강산 공동개발, 시베리아 개발 공동참가, 합자투자회사 설립 추진 등 3개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
    • 북한 외교부는 헝가리와의 관계를 대리 대사급으로 격하시켰다.
  • 2월 3일
    • 국내 최초로 5.18 민주화운동을 명확히 다룬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가 MBC에서 방송되었다.
    • 일월서각은 일본 구월서방과 남북한 간행물 상호 공급조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였다.
    • 서울지검은 1987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를 살인죄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였다.
    • 삼모 노조위원장 김혜련이 사측에 의해 강제 감금/해고당했다. 이후 그녀는 4월 19일에 구속되었다.
  • 2월 6일 - 일제에 의해서 강제로 폐지되었던 음력 설날이 이 해부터 다시 국가공휴일 및 연휴로 지정되어 부활하였다. 그 동안 양력설(신정)에 주로 귀성 및 귀경길 행렬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는 고향길 행렬이 한산하였다.
  • 2월 8일
    • 판문점에서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예비회담'이 건국 최초로 열렸다.
    • '전문대학총학생회연합'이 결성되었다.
    • 한국광고주협회가 설립되었다.
  • 2월 9일
    • 국무회의는 '화염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의결하였다.
    • 전국 35개대 총학대표는 서울대에서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공동 투쟁성명을 발표하였다.
    • 석남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0일
    • 정부는 임시국무회의에서 '남북교류협력법안'을 의결하였다.
    • '전국해직언론인 원상회복쟁취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2월 11일 - 서울지검은 '인천·부천지역민주노동자회(이하 인부노회) 사건’을 발표하여 6일 뒤에 관련자 5명을 구속하였다.
  • 2월 13일
    • 전국 90개군 농민 2만여 명이 '수세 폐지 및 고추 전량수매 쟁취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하였다.
    • 북한-모로코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2월 14일 - 토지공개념위원회는 '고소득자 5%가 임야 84.1% 소유' 등지의 각종 토지소유 실태를 발표하였다.
  • 2월 15일
  • 2월 16일
    • 대통령 직속 교육정책자문회의가 발족되었다.
    • 정부는 사회정화위를 폐지하고 반공연맹을 '자유총연맹'으로 개편하였다.
    • 전남대생 등 150여 명이 광주 미문화원을 기습하고 유인물을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 우경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 2월 18일
    • 전민련이 주최한 '서울시민 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되었다.
    • 일제의 강제 징용으로 소련 사할린에서 타향살이하던 우리 동포 9가족 17명이 40여년 만에 일시 귀국했다.
  • 2월 19일
    • 전교협은 대의원회의에서 교원노조 결성을 결의하였다.
    • WBA 밴텀급 챔피언 문성길이 일본의 고바야시 치아키를 KO로 꺾어 2차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스톡홀름 글로브 아레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구형 공연장으로 개장했다.[11]
  • 2월 20일
    • 대한변협은 정부의 남북교류특례법과 관련해 국보법 폐지 병행을 주장하였다.
    • '범민족평화문화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밤 10시 43분부터 3시간 44분 동안 전국 각지에 개기월식이 발생했다.
  • 2월 21일
    • '서울지역 민중교육운동 탄압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노조와 구사대 간 충돌 과정에서 노조원 2명이 식칼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현대중공업 노동자 식칼테러 사건).
  • 2월 22일
    • 호남대생 30여 명은 호화판 지방청와대로 악명이 높았던 전남도지사 공관에 기습해 방화하였다. 이로 인해 공관 1~2층이 전소되었다.
    • 서울시내 9개 재야 청년단체가 쇼와 덴노 조문사절 파견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여연은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히로히토 조문사절 파견 규탄대회'를 개최하였다.
    • (주)삼모 측은 노조 탄압을 위해 신림/가리봉동 일대 조폭 '짧은머리파'를 라인에 배치하였다.
  • 2월 23일
    • 강영훈 국무총리는 쇼와 덴노의 장례식에 참석키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 전대협은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공식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가 이날부로 상경하였다.
    • 당일자 주간조선에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 수행의원들 추태 만발: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 뒷얘기>라는 제목으로 평민당의 유럽순방 중 추태를 보도했다. 이는 '조평사태'의 발단이 되었다.
  • 2월 24일
    • 현대중공업 서울결사대는 평민당과 통민당 당사에서 점거농성을 벌였다.
    • 쇼와 덴노의 국장이 일본 도쿄에서 거행되었다.
    •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B747-122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동체 일부 파손이 발생해 급히 호놀룰루에 착륙했으나, 승객 337명 중 9명이 숨졌다.(유나이티드 항공 811편 사고)
  • 2월 25일
    • 전민련은 당일 '노태우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고 104명이 연행되었다.
    • 서울지검 공안부는 북한 원전 <근대조선역사> 등 3종에 대해 출판사와 서점을 압수수색하였다.
    • 일본 TV아사히에서 <고속전대 터보레인저>가 첫 전파를 탔다.
  • 2월 26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2월 27일
    •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방한 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노태우와 안보협력, 통상마찰, 북방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 전민련 회원 등 30여 명은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부시 방한 반대'를 외치며 주한미국대사관까지 행진하여 가두 시위를 벌였다.
    • 정부와 민정당은 삼청교육대, 광주항쟁, 해직공무원 등에 대한 보상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 민교협 등 4개 단체는 전국 76대 교수 3,643명의 연명으로 교육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2월 28일 - 체신부는 정권홍보 도구로 이용된 대통령 기념우표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4.1.3. 3월[편집]


  • 3월 1일
    • 노태우3.1절 기념식에서 '민주체제 전복세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 '전국농민운동연합(이하 전농련)'이 결성되었다.
    • 판문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 종래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표준어 규정이 폐지되고, 새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이 전면 시행되었다.[12]
  • 3월 2일
    • '남북 고위당국자회담을 위한 제2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 문공부는 불교방송과 평화방송 설립을 인가하였다.
    • PLO 대사관이 북한 평양에 개설되었다.
  • 3월 3일
    • 평민당은 주간조선의 평민당 유럽순방 추태 관련기사에 대해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해당 기사가 '허위/왜곡'이라고 주장하며 공개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 이상수 평민당 대변인은 '그동안 그들 당에 적대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온 조선일보를 끝까지 규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기아산업이 준중형급 승용차 '캐피탈'을 출시하였다.
  • 3월 4일
    • 야당 3당이 총재회담을 열어 중간평가 조기실시 강행 시 불신임 연계투쟁을 할 것을 합의하였다.
    • 작가회의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에 '남북작가예비회담'을 제의했다.
    • '실향민중앙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3월 5일
    •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이 실종 4개월만에 경기 양주군 송추유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프로권투 선수 김용강이 일본의 레오파드 타마쿠마를 상대로 WBC 플라이급 타이틀 2차 방어에 성공했다.
    •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광노협)'가 결성되었다.
  • 3월 6일
    • 국회 법률 개폐특별위원회는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한과 벌칙의 완화 등을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안을 의결시켰다.
    •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과의 합의각서 이행을 요구하며 무임승차를 실시하였다.
    • 경기도 화성군 8개 마을 주민 7백여 명은 매향리 공군 사격장에서 사격장 이전 등을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 홍범도 장군의 초상화가 소련령 카자흐 공화국에서 발굴되었다.
  • 3월 7일
    • 평민당은 김대중 총재 유럽순방 기사와 관련하여 조선일보 방우영 사장과 주간조선 기자 부지영 등 5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였다.
    • 이란측은 살만 루시디가 쓴 <악마의 시>에 대한 영국 정부의 출판금지 거부에 반발해 영국과의 단교를 선언하였다.
  • 3월 8일
    • 국회 보사위는 '의료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전대협은 '노태우 퇴진투쟁 기간'을 선포하였다.
    • 경찰은 현대그룹 사옥 앞 노동자들의 텐트 농성을 강제 해산하여 노동자 262명을 연행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가 KBS1에서 방송되었다.
    • KBO는 구단주 회의에서 프로야구 제 8구단 창설에 합의하였다.
    • 갑을그룹이 영남일보를 인수하였다.
  • 3월 9일
    •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단일 대표팀 단가로 아리랑을 쓰기로 합의하였다.
    • 국회 본회의는 사회보호법, 집시법, 지자체법, 노동조합법 등 4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폴란드 정부와 자유노조는 자유선거에 의한 양원제국회 및 대통령제 채택에 합의하였다.
  • 3월 10일 - 노태우김대중 평민당 총재와의 회담에서 '신임 불연계 중간평가 국민투표안'을 시사하였다.
  • 3월 11일
    • 평민-공화 양당은 회담에서 '단순 정책평가' 양해에 동의했으나 민주당은 반대하였다.
    • 전민련은 사회안전법 폐지 후 보호관찰법 제정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전대협은 서강대 메리홀에서 '평양축전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 3월 12일
    • 쇼트트랙 선수 김기훈이 소피아 동계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에서 3관왕을 차지하였다.
    • 전국투본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1만여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현대재벌 폭력테러 규탄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 3월 13일
    • 남북대학생 교류추진위원회는 대학생들의 평축 참가 문제로 '남북 대학생 교류회담'을 제의하였다.
    • '평민당 조선일보허위보도 대책위'는 주간조선 평민당 유럽순방 기사와 관련하여 조선일보에 87억 2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 중앙기상대는 '자동응답예보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실시하였다.
  • 3월 14일
    • 팀 스피릿 '89 훈련이 개시되었다.
    • 전민련 등 8개 재야민주단체가 주축이 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본부'가 결성되었다.
    • KBS1에서 <남북의 창>이 첫 전파를 탔다.
  • 3월 15일
    • 내무부는 인구 50만명 이상의 시에 구청제 실시를 골자로 한 '지방행정구역 개편안'을 확정하였다.
    •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 좌경세력과의 강경 대응을 주장하며 돌연 사퇴했다.
  • 3월 16일
    • 서울지하철노조가 전면 파업을 전개하였다.
    •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기지에서 3천여 명의 노조원이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1,344명이 연행되었다.
  • 3월 19일 - 민가협 양심수후원회가 발족되었다.
  • 3월 20일
    • 노태우는 중간평가를 사실상 취소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 소설가 황석영이 방북했다.
    • 한국기독교사회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 3월 21일 - 여야 대표들은 노태우에 대한 중간평가 유보 대신 5공 청산과 광주문제 및 지방자치제 해결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 3월 22일
    • 노태우는 공안장관회의에서 공공시설을 습격할 시 총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 한국피코 노조원 2백여 명이 주한미국상공회의소를 점거하여 임금 체불 후 도주한 미국인 사장을 규탄하였다.
    • 직경 1km 소행성이 지구가 6시간전에 통과한 곳을 지나갔다. 이 소행성이 날아올때 어떠한 방법이 없어서 NASA는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고.
  • 3월 24일
    • 노태우는 지자체법, 의보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 KNCC는 "경찰에 M16 소총을 지급하고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것은 국민에 대한 위협"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3월 25일
    • 문익환 목사, 정경모, 유원호 일행이 방북 후에 '통일을 논의하러 왔다'는 도착성명을 발표하였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이하 한철연)가 설립되었다.
  • 3월 27일
    • 문익환 목사 일행과 황석영이 김일성과 회담을 열었다.
    • 판문점 남북작가회담 예비회담이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고 고은 등 문인 20명이 연행되었다.
  • 3월 28일 - '베이징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2차 남북체육회담'이 개최되었다.
  • 3월 29일 - 일본 도쿄도 고토쿠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의 콘크리트 드럼통 속에서 후루타 준코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3월 30일
    • 경찰은 108일째 파업 중이던 현대중공업에 전의경 70개 중대 9천여 명을 투입해 농성을 강제 해산시켰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는 회견에서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비판하였다.
    • 다케시타 일본 총리는 북한측에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유감 의사를 표명하고 공식문서에 '북한' 국명을 쓰겠다고 밝혔다.
  • 3월 31일
    • 전민련 등 40개 재야대표 2백여 명이 '문익환 환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 노동문학사가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창간하였다.


4.1.4. 4월[편집]


  • 4월 중 - 헝가리 측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철조망을 철거했다.
  • 4월 1일
    •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1,000 포인트를 돌파했다.
    • 반공연맹이 '한국자유총연맹'으로 출범하였다.
    • 대처 영국 총리가 인두세 도입을 시사하여 주민들의 반발을 받기 시작했다.
    • 현대자동차가 소형차 '엑셀(X-3)'을 출시하였다.
    •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대구면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재탄생했다.
  • 4월 2일 - 문익환 목사가 허담 북한 조평통위원장과 함께 '자주적 평화통일' 9개항에 공동 서명하였다.
  • 4월 3일 - 검/경/안기부 합동기구 '공안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되었다.
  • 4월 4일
    • 허형구 법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보법 개정안을 수정하는 대신, 현행 법률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 경찰은 현대중공업 노조가 농성 중이던 오좌불 숙소에 전의경 2천명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다.
  • 4월 5일 - 베트남 정부는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의 무조건 철수를 결정하였다.
  • 4월 6일 - '한국방송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4월 8일
    • 정부는 1989~1991년까지 농축산물 수입자유화 예시계획 및 보완대책을 발표하였다.
    • 원로 연극인 이해랑이 세상을 떠났다.
  • 4월 9일
    • 유남규-현정화 조가 제40회 도르트문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쇼트트랙 선수 김기훈이 1989 세계 남녀 실내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남자 1,000m 결승에서 우승하였다.
    • 한국서예협회가 설립되었다.
  • 4월 10일
    • 공안합수부는 북한 원전 등 이념서적을 출판/판매한 출판사 11개와 서점 296개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 민주시인 김남주의 시선집 <사랑의 무기>가 출간되었다.
  • 4월 11일
    • 금성사노조 창원1지부 및 금성산전 노조가 전면파업에 돌입하였다.
    • 한출협은 공권력의 북한 관련 서적 압수수색에 대해 출판탄압 중지와 출판인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2일
    • 이부영, 이창복, 지선 스님, 조성우 등 전민련 간부들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북한은 이날로 예정된 제3차 남북총리회담 예비회담의 연기를 통보하였다.
  • 4월 13일
    • 문익환 목사와 유원호가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하자마자 공안합수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전민련은 문익환 목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4월 14일
    • 호청련 자유민주수호결사대가 전민련 사무실에 난입해 30여분간 무단 점거했다(전민련 피습사건).
    • 서노협 단병호 의장이 서울지하철 파업과 관련해 '제3자 개입금지' 위반 혐의로 고발되어 연행되었다.
    • 한겨레 논설고문 리영희 교수와 임재경 부사장이 방북 취재를 계획하다 공안합수부에 의해 '잠입 탈출죄'로 연행되었다.
    • 북한 평양 능라도에 15만명 수용규모를 지닌 '릉라도5월1일경기장'이 완공되었다.
  • 4월 15일
    • 후야오방 전 중국 총서기가 사망했다.
    • 영국 요크셔 주 셰필드 힐즈브러 구장에서 열린 리버풀-노팅엄 간 FA컵 준결승전 도중 관중 대량난입으로 94명이 죽고 766명이 다쳤다.(힐스버러 참사)
  • 4월 16일
    • 프로 권투선수 김봉준이 WBA 미니멈급 챔피언결정전에서 콜롬비아의 아구스틴 가르시아를 꺾어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 서노협 단병호 의장이 구속되었다.
  • 4월 18일
    • 김승훈 마티아 신부, 백기완 등 12명은 재야 민주인사 89명이 서명한 <현 시국에 대한 89인 선언>을 발표하였다.
    • 북한의 김일성은 새 부총리직에 강희원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임명했다.
  • 4월 19일
    • 영남일보가 폐간 9년만에 복간되었다.
    • 국제신문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 4월 20일
    •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족되었다.
    • 전국투본과 서노협은 단병호 의장의 석방을 외치며 하루 동맹파업을 벌였다.
    • 중국 천안문 광장에 10만여 명의 군중들이 운집했고, 민주화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천안문 사태)
    • 중국 정부는 베이징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 4월 21일
  • 4월 22일
    • 1달러 당 665.90원의 원화 시세를 기록했다. 이 달에만 6원이 하락하였다.
    • 드라마 <사랑의 굴레>가 KBS2에서 첫 전파를 탔다.
    • 제주지역 일간지 <한라일보>가 창간되었다.
  • 4월 23일
    • 방북 중이던 황석영 작가는 북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과 <남북의 문화예술을 통일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였다.
    • 전국건설일용노동조합(이하 전일노련)이 결성되었다.
  • 4월 24일
    • 주일미군사령부는 일본에 있던 미 공군 일부 병력과 정찰기를 대구시로 이전한다고 발표하였다.
    • 이찬진, 김택진 등 4명의 컴퓨터학도들이 <한글 1.0>을 세상에 내놓았다.
    • 자오쯔양 중국 총서기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4월 26일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결성되었다.
    • 일본 후지TV에서 《드래곤볼 Z》가 첫 전파를 탔다.
  • 4월 28일 - 마산 및 창원지역 노동자 1만여 명이 5일째 구속자 석방과 고문 경찰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었다.
  • 4월 30일
    • '베트남참전전우회'가 발족되었다.
    •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가 세상을 떴다.
    •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노동절 100주년 기념대회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4.1.5. 5월[편집]


  • 5월 1일
    • 전국 노동자 5천여 명이 연세대 신촌캠에서 '세계 노동절 100주년 기념 전국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 '성남지구노동조합총연합(이하 성남노련)'이 결성되었다.
    • 공안합수부는 문 목사 방북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소환하였다.
    • 어린이드라마 <댕기동자>가 MBC에서 첫 전파를 탔다.
    • 고려대 문과대 교수 64명은 이준범 총장 사퇴요구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대럴 윈필드가 말보로 맨에서 은퇴했다.
  • 5월 2일
    • 국방부는 용산의 주한 미8군 골프장을 다음해까지 서울 교외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3일
    • 부산 동의대 도서관에서 피랍경찰 구출작전 도중 화재가 발생해 경찰 7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당했다(5.3 동의대 사태).
    • 전국대학원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원협)가 결성되었다.
  • 5월 4일 - 현기영, 천승세 등 문인 505명은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5월 6일
    • 임종석 전대협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5.3 동의대 사태를 계기로 비폭력 평화시위 원칙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 코리아세븐이 서울 방이동에 세븐일레븐 한국 1호점을 오픈하였다.
  • 5월 10일 - 광주 청옥동 수원지에서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장 이철규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이철규 의문사 사건).
  • 5월 11일
    • 야 3당은 이철규 변사사건의 진상을 조속히 규명할 것을 요구하며 국회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교과교육을 위한 교사모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 5월 14일
    • 전교협은 서울 등 전국 10개 지역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발기인 대회'를 강행하였다.
    • 경동산업 임금인상대책위원 출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 '디딤돌'이 결성되었다.
  • 5월 15일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 '전국기관차분회장협의회(이하 전기협)'가 결성되었다.
    • <경상일보>가 창간되었다.
  • 5월 16일
    • 여야 중진회의가 처음으로 가동되었다.
    • '서울지역민주주의학생연맹(이하 서민학련)'이 결성되었다.
  • 5월 17일
    • 이날 열린 제3차 한미 통상실무회담에서 양국은 외국인 투자제한 철폐 및 서비스시장 개방에 합의하였다.
    • 중-소 양국은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군사, 경제, 사회분야 상호협력을 위한 18개항에 서명하였다.
  • 5월 18일
    • 광주시민 15만 명은 항쟁 9주기를 기념하며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 및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집회/시위를 벌였다.
    • 광주/전남지역 7개대 교수 854명은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5월 19일 - 방북 일정을 급히 마친 자오쯔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단식농성 중이던 학생들에게 단식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자오쯔양이 사실상 이들을 지지하자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 5월 20일 - 중국 정부베이징계엄령을 선포했다.
  • 5월 23일 - 소련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주둔 소련군 철수를 개시하였다.
  • 5월 24일 - 일본 정부는 대북한 학술 교류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 5월 26일 - 전대협 소속 학생대표 470명이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28일
    • 종전의 전교협을 대신하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는 1961년 이후 28년만의 교원노조의 부활이었다.
    • 전교조 결성대회 주도교사 26명은 통민당사에서 교원노조 탄압 중지와 연행교사 석방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5월 30일 - 경제기획원과 한국은행은 5월 중 물가동향에서 물가가 전년도에 비해 6%나 올라갔다고 발표하였다.


4.1.6. 6월[편집]


  • 6월 1일
    • 내외경제가 복간되었다.
    • 광주지역 대학생과 시민 4천여 명은 검찰의 이철규 익사 발표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일본 NHK가 위성 TV채널 2개를 개국하였다.
  • 6월 2일
    •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21세기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김영삼 통민당 총재가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하였다.
    • 서총련 소속 34개대생 8백여 명은 고려대학교 안암캠에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가 준비위원회 발족식'을 열었다.
  • 6월 3일 -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6월 4일
  • 6월 5일
  • 6월 6일 - 북한 원산~금강산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 6월 8일 - 노태우는 한국일보 창간 기념 특별 회견에서 임기 중 중간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6월 9일
    • 윤영규 위원장 등 전교조 간부 5명이 구속되었다.
    • 서울대 등 서울시내 25개 대학 학생들은 '청년학생 6.10 1주년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을 열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전대협은 연세대 신촌캠에서 '명동성당 구국단식투쟁 계승 및 6.10 회담 성사 결의대회 및 평양축전 참가 대표단 1차 발족식 및 북한 대표단 방문 환영대회'를 열었다.
    • 대구/경북지역 6개대 교수 242명은 전교조 결성 지지성명을 발표하였다.
  • 6월 10일 - 전대협이 제의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예비회담'이 무산되었다.
  • 6월 12일 - 고르바초프 소련 총서기가 서독을 방문하였다.
  • 6월 13일
    •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기본지침을 발표하였다.
    • 서울 구로고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들에 대한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교내시위를 벌였다. 이때 동교 학생 유호철과 서윤석이 투신하여 중상을 입었다.
  • 6월 14일
    • 전국노점상연합회 회원 2천여 명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생계보장과 양연수 회장 석방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 서총련 소속 8개대생 67명은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평민당과 통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 6월 15일 - 전교조 서울지부가 결성되면서 전국 14개 지부로 확립되었다.
  • 6월 16일
    • 종전의 사회안전법이 보안관찰법으로 바뀌면서 보안감호제도가 폐지되었다.
    • 헝가리 혁명 당시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 개혁파 지도자 너지 임레의 정식 장례식이 31년만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다. 그동안 공산 정권 하에서 반동 폭동으로만 치부되던 헝가리 혁명이 민주화 운동으로 사실상 공식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 6월 17일 - '환경과 공해 연구회'가 발족되었다.
  • 6월 18일 - 버마 정부는 정식 국명을 '버마 연방 공화국'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수도명을 '랭군'에서 '양곤'으로 각각 바꾸었다.
  • 6월 19일 - 경제기획원 등 7개 경제부처 장관들이 합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하반기 경제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 6월 21일 - 영화감독 등 영화인 2백여 명은 미국 UIP 직배 반대를 요구하며 대학로에서 시위를 벌였다.
  • 6월 22일 - 동아엔지니어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6월 23일 - 전대협은 학생 1천여 명을 모아 통일선봉대를 조직하여 제주에서 서울까지 '평축홍보 통일대장정'에 돌입하였다.
  • 6월 24일
    • 광주 조선대생 4백여 명은 이철규 사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주지검을 습격하였다.
    • 중국 정부는 자오쯔양 대신 새 총서기에 장쩌민 정치국원을 선출해 당 지도부를 개편했다.
  • 6월 27일
    • 1988년에 방북한 서경원 평민당 의원이 안기부에 의해 전격 구속되었다.
    • EC는 대륙 내 금융 통합에 합의하였다.
  • 6월 28일 - 안기부는 평민당 서경원 의원의 방북 사실을 그가 방북한 지 1년 만에 '간첩활동'으로 발표했다.
  • 6월 29일
    • 토지공개념을 명시한 '주택소유 상한제 및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법률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이 법안은 7일 뒤에 공시되었다.
    • 한양대 서울캠에서 '평양축전 참가 출정식'이 개최되었다.
    • 전대협은 한국외대 여학생 임수경을 평축 남한대학생 대표로 평양에 파견했다고 밝혔다.
    • 대전 한국가톨릭농민회 습격사건이 발생했다.
    • <전남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
  • 6월 30일
    • 한국외대 용인캠 불어과생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평양축전을 앞두고 방북했다(임수경 방북 사건).
    • 전대협은 한양대에서 평축 참가를 위해 '판문점 돌파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 경찰은 임종석 전대협 의장 체포를 위해 한양대에 진입하여 학생 2천여명을 연행했다.


4.1.7. 7월[편집]


  • 7월 1일
    • 대검은 전대협 평축준비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소속 간부 20여 명에 대해 검거령을 내렸다.
    • 치안본부는 여익구 민불련 의장 등 핵심간부 5명을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문교부는 전교조에 단순 가담한 교사도 일괄 해임시키도록 전국 시/도 교육위원회에 지시했다.
    •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북한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개최 과정에서 생긴 지나친 비용 증대로 인해 북한의 80년대 3대 실정 중 하나로 꼽힌다.
  • 7월 2일 - 안기부는 서경원 방북 사건에 대한 불고지죄 혐의로 한겨레 기자 윤재걸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 7월 3일 - 고속도로관리공단 노동조합이 발족되었다.
  • 7월 4일
    • 전노련 소속 노점상 1천 5백여 명은 명동성당에서 정부의 대책없는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 일본 자민당이 도쿄 도의원 선거에서 참패하였다.
  • 7월 5일
    • 양궁선수 김수녕이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3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경인지역 14개대 교수 90명은 민교협 사무실에서 전교조 가입 성명을 발표하였다.
    • 북한-잠비아 양국 당정대표단이 평양에서 회담을 열었다.
  • 7월 7일
    • 전대협 대표 임수경은 북한 평양에서 조선학생위원장 김창룡과 함께 '남북청년학생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소련 모스크바에서 사상 최초로 '한국주간' 행사가 개최되었다.
    • 화성에서 초등학생이 실종되는 사건 및 경찰이 축소, 은폐까지 주도한 최악의 미제 살인사건이 발생하였다. 30년뒤 이춘재아동 성폭행강간살인한 사실을 자백한 것이 알려졌다.
  • 7월 8일
    • 김수녕-왕희경-김경욱 조가 로잔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 윌리엄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환태평양 경제협력을 위한 새 기구 구성을 제안하였다.
    • KAIST 김명환 교수팀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슈퍼컴퓨터를 개발하였다.
  • 7월 9일
    • 한국-이라크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전교조 측은 서울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부당징계 철회 및 전교조 합법성 쟁취대회'를 열었다.
    • 부시 미국 대통령폴란드를 방문하였다.
  • 7월 11일
    • 검찰은 한겨레 기자 윤재걸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적용해 안기부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한겨레 측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다.
    •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헝가리 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 7월 12일
    • 안기부는 수사요원 및 경찰 8백여명을 동원해 한겨레 편집국을 압수수색했다.
    •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개장하였다. 개장 당시 어트랙션은 18개.
  • 7월 13일
    • 전교조는 소속 교사들의 단식수업이 194개 학교로 확산되었다고 발표했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족되었다.
    • 환기재단이 발족되었다.
  • 7월 14일 - 헌법재판소는 구 사회보호법 5조 1항 '필요적 보호감호' 부분을 위헌으로 판결하였다.
  • 7월 15일
    • 서방 G7 국가 정상들은 중국에 민주화운동 탄압 종식을 강력히 촉구하고 동서관계/테러방지 및 인권문제 등 4개 주요의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 중국-몽골 양국이 30년 만에 정상적으로 관계를 회복하였다.
  • 7월 17일
    • 정부는 국가보안법 및 안기부법의 개정 방침을 철회하였다.
    • 제21차 한미 연례협의회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증액 등에 동의하였다.
  • 7월 18일
    • 서울형사지법은 장세동 전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대통령경호실법 및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징역 10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하였다.
    • 영화배우 강수연임권택 감독 작품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 7월 19일
    • 진관 스님 등 30여 명은 '불교탄압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지선 스님 등 구속 불자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DC-10기가 수시티 공항 착륙 도중 유압계통 결함으로 비상착륙 후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탑승객 296명 중 111명이 사망했다.(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 7월 20일
    • 전노련이 동국대에서 '1백만 노점상 생존권 완전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광주시내 고교생 1만 5천여 명은 전남대광주대동고에서 '교원노조 지지 및 징계철회 요구 연합집회'를 개최하였다.
  • 7월 22일
    • '부천지역노동조합협의회(이하 부노협)'가 결성되었다.
    • 전국투본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탄압 규탄 및 구속자 석방 촉구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 7월 23일
    • 남북체육회담 북측대표단은 김상협 한적 총재에게 제2차 고향방문단/예술단 방문에 대한 한국측의 실무제의 요구를 수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 서노문위가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이하 서노문협)'로 새로 창설되었다.
  • 7월 24일 - (사)한국종이접기협회가 설립되었다.
  • 7월 26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명동 가톨릭회관 기자회견에서 문규현 신부의 방북파견 및 임수경 방북 방어를 발표하였다.
    • 서울시교육위는 전교조에 가입한 공립 초/중/고 교사 485명을 8월 1일부로 직위 해제시킨다고 밝혔다.
    • 전교조 소속 교사 450여 명은 명동성당 내 성모동산 앞에서 '부당징계 철회 및 전교조 사수를 위한 단식농성 결단식'을 열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 영덕행 울릉도 관광 헬리콥터가 울릉도 인근 해상에 추락해 탑승인원 20명 중 14명이 사망했다.
    •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광고협)'가 결성되었다. 광고협은 결성 즉시 전교조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27일
    • 임수경문규현 신부가 판문점 통과를 요구하며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20명이 판문점으로 향하려다 연행되었다.
    • 서울발 KAL 803편 DC-10-30 여객기가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 착륙 도중 악천후로 인해 추락해 탑승인원 199명 중 80명이 사망/실종되고 나머지 119명이 부상을 입었다.(대한항공 803편 추락 사고)
    • 안기부는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문동환 전 부총재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하였다.
  • 7월 28일 - 당일 상경한 부산, 광주지역 노점상 5백여 명은 서울지역 노점상들과 연대해 노점상 철거 중지를 요구하며 야3당 당사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7월 29일 -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등 16개 천주교 단체들은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7월 31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비상총회에서 문규현 신부의 북한 파견을 추인하고 국보법 폐지 등 4개항에 결의하였다.
    • 전북 민교협 소속 교수 40여 명은 전교조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시한부 단식에 돌입하였다.
    •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평양축전에 보낸 홍성담 화백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주한미군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다.
    • 소련 정부는 반체제 작가의 작품 반입을 허용하였다.


4.1.8. 8월[편집]


  • 8월 1일 - 인의협 광주/전남지회는 영광원전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역학조사 결과 방사능 오염증세가 나타났다고 발표하였다.
  • 8월 3일 - MBC는 박철언 정무 제1장관이 6월에 두 차례 방북했다고 보도하였다.
  • 8월 4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7.7 선언의 유효 여부와 북한정부 인정 여부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노태우에게 보냈다.
    • 안기부는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 필름을 보낸 홍성담 화백 등 작가 7명을 구속하였다.
    •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가해자 고금석 등 7명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 '부산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부고협)'가 결성되었다.
  • 8월 5일
    • 검찰은 전교조에 공안 차원의 수사방침을 천명하며 국가보안법 적용도 고려했다.
    • 변형윤 등 서울대학교 교수 47명은 전교조 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8월 6일
    • 한국 정부는 남북체육회담을 무기한 연기하였다.
    • WBA 미니멈급 챔피언 김봉준이 도전자인 이삼중을 상대로 1차 방어에 성공하였다.
  • 8월 7일
    • 박형규 목사 등 개신교계 인사 1천 5백여 명은 '전교조 대책 기독교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KNCC는 노태우 정부 첫 시국성명에서 방북인사 단순 사법처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 대학생 10여 명이 석관동 안기부 청사 정문에 화염병을 투척하였다.
    • 동양경제신문이 사원들의 노조설립에 맞서 폐업/폐간신청을 냈다.
  • 8월 8일
    • 대법원은 강간범의 혀를 깨문 변월수 여인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죄를 확정하였다.
    • 북한측은 제450차 군사정전위에서 임수경의 판문점 통과를 허용하라고 유엔군에 요구하였다.
  • 8월 12일
    • 전교조는 교사와 재야단체 회원 1만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국민 가두서명과 단체방문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서울시내 26개 천주교 단체는 보안법 철폐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 8월 13일 - 서울 씨네하우스 등 5개 직배영화 상영관에 방화/최루가스 소동이 발생했다.
  • 8월 14일
    • 배용균 감독 작품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이 제42회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 국사학자 두계 이병도 박사가 세상을 떴다.
  • 8월 15일
    • 노태우는 광복절 경축사에서 '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시하였다.
    •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으나 안기부에 의해 연행되었다.
    • 전남 여천군 거문도 바닷가에서 중앙대 안성캠 총학생회장 이내창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이내창 의문사 사건).
    • 월간 <다리> 지가 복간되었다.
  • 8월 17일
    • 특허청은 당해 첨단기술 공업 소유권 등록에서 외국인이 78%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보안법 철폐 범국민 서명운동'을 개시하였다.
    • 전청대협은 임수경문규현 신부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민중 유화작품 <모내기>를 그린 신학철 화백이 구속되었다.
  • 8월 18일 - 이날 개최된 영등포을구 재선거에서 민정당 나웅배 후보가 38.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8월 19일 - 대한항공 특별 전세기가 아시아핸드볼선수권대회 참석자를 태우고 처음으로 중국본토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 8월 20일 - 안기부는 '한미문제연구소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김현장과 김영애 부부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8월 21일
    • 상공부는 '뉴미디어 산업 육성계획'을 마련하고 국지정보통신망 구축에 앞서 뉴미디어시를 1990년부터 시범운영한다고 밝혔다.
    •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침공 20주년 기념식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 8월 22일
    • KNCC는 전교조 인정, 구속자 석방, 국보법 철폐를 주장하는 성명서를 채택하였다.
    • 콜롬비아 정부는 갈란 상원의원 암살을 계기로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 8월 23일 - 소련 산하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독-소 밀약 무효화 및 자치확대를 요구하며 이들 수도인 탈린(에스토니아)-리가(라트비아)-빌뉴스(리투아니아)를 잇는 총 600km의 인간사슬, 이른바 '발트의 길'을 형성했다.
  • 8월 24일 - 폴란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바웬사의 자유노조 정부가 수립되어 수백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의 사슬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 독립을 쟁취했다.
  • 8월 25일
    • '지역/업종별 노동조합회의'는 9차 회의에서 전교조 지지 활동에 참여하기로 하는 등의 하반기 사업을 확정하였다.
    • 미국의 보이저 2호해왕성과 그 위성 타이탄을 통과했다.
  • 8월 27일 - 일본 자위대가 태평양 군사훈련에 참가하였다.
  • 8월 28일
    • 정부와 민정당은 토지공개념 법안에 대해 재검토했다.
    •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협의회'가 결성되었다.
    • 국민대생 김정환은 KNCC 인권위원회에서 보안사의 생매장 위협으로 학원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양심선언문을 발표하였다.
  • 8월 29일 - 전대협은 각 대학별로 '임수경 사법처리 반대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청년학생 결의대회'를 열었다.
  • 8월 30일
    • 노태우는 민정당 당직 개편을 단행하여 이종찬 대신 새 총장에 이춘구, 새 총무직에 이한동을 각각 임명하였다.
    • KBS, MBC, CBS 3사 노조가 '방송악법 개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8월 31일
    • KNCC 소속 목회자 1천여 명은 '전국교역자 비상시국 철야기도회'를 열어 공안정국 타개에 앞장서기로 결의하였다.
    • 전자오락기 업체 남경실업이 노래방기기 업체 금영실업으로 바꾸었다.


4.1.9. 9월[편집]


  • 9월 1일
    • 강영훈 총리는 전국 주요 하천의 수질을 1급수로 향상시키는 '맑은물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서울 뚝섬 경마장이 경기도 과천시로 이전했다.
    • 상공부는 8월 중 무역수지에서 4억 3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잠정 집계하였다.
    • 부시-가이후 간 미일정상회담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개최되었다.
    • 전교조 울산/울주지회 사무실에 괴청년 3명이 침입해 숙직 중이던 장인권 지회장대리를 구타했다.(울산 전교조 피습사건)
    • 인천노동법률상담소가 문을 열었다.
  • 9월 2일 - 경남 마산시 산호동 마창노련 사무실에 괴한 6~7명이 난입해 서종 홍보간사 등 상근자 5명을 집단폭행했다.(마창노련 피습사건)
  • 9월 4일
    • 파업 중이던 경동산업 노동자들이 노조 탄압과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집단 분신 및 할복을 벌였다. 이로 인해 노동자 강현중과 강이신 이사가 9일에, 노동자 김종하가 15일에 숨을 거두었다.
    •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에리히 호네커와 동독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는 베를린 장벽 붕괴, 독일 통일의 단초를 마련한 소위 월요시위(Montagsdemonstrationen)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 9월 7일 - 경찰측은 동국대 진입 후 공연 중이던 북한가극 <피바다>를 강제 중단시키고 관련자 118명을 연행하였다.
  • 9월 8일 - MBC노조는 전날 보도 및 편집국장 선거제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 9월 10일 - 소련의 외교거물 미하일 카피차와 게오르기 아르바토프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11일
    • 노태우는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였다.
    • 헝가리 정부가 오스트리아와의 서부 국경을 전면 개방하여, 동독 주민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 9월 12일 - 치안본부는 '안양민주노동자일동그룹(이하 안양PD그룹)'을 적발내 이기동 등 관련자 6명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안양민주노동자일동그룹 사건)
  • 9월 15일
    • 한국인구보건원은 한국인 성인 표준체위를 남자 키 171cm, 체중 64kg/여자 160cm, 53kg으로 발표하였다.
    • 서독 녹색당은 유럽의회와 앰네스티에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의 석방운동을 벌였다.
  • 9월 16일 - 도널드 그레그가 새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였다.
  • 9월 17일
    • 노태우는 2년마다 시상하는 '서울평화상' 제정계획을 발표하였다.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국도 26호선 모래재 구간에서 진안발 전주행 전북여객 완행버스가 벼랑 밑으로 추락해 승객 26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 9월 18일
    • 문익환 목사가 8차 결심공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 서울 올림픽공원에 '평화의 문'이 세워졌다.
    • 헝가리에 유학했던 북한 대학생들이 모두 철수하였다.
  • 9월 19일
    • 이상훈 국방장관은 수도권 북방에 동원 사단 2개를 창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 댄 퀘일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9월 21일 - 정부는 1990년 예산안을 발표하였다(전년도 대비 19.7% 증가).
  • 9월 22일: 전자시보가 <전자신문>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9월 23일
    • 종전의 문예연과 민문연이 통합하여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이하 노문연)'이 결성되었다.
    • '한국우주소년단'이 발족되었다.
    • G7 재무장관 회담이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 9월 24일 - '전교조 사수 및 합법성 쟁취를 위한 제2차 국민대회'가 전국 21개 지역에서 동시 개최되었다.
  • 9월 25일
    • 사할린 동포 39명이 한민족체전 재소동포 대표단과 함께 처음으로 방북하였다.
    •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한강 유등제에 북한 불교도도 참석시키도록 의결하였다.
    • 베트남군캄보디아에서 철수를 완료하였다.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해체)
    • 미-일-EC 등 24개국은 폴란드/헝가리의 민주화 요구를 위한 후원국 회의에서 1990년도에 3억불 이상의 신규원조금을 제공키로 했다고 발표하였다.
  • 9월 27일 - 한국자동차협회는 <89년 자동차생산분석>에서 당해 자동차 수출이 전년도 대비 39%로 줄었으나, 내수는 유례 없는 호조로 50% 이상 신장했다고 밝혔다.
  • 9월 28일
    • 종전의 도서윤리위가 '(사)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 새로 발족되었다.
    • 헝가리 정부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철폐하였다.
    • 줄러 호른 헝가리 외무장관은 유엔 연설에서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하였다.
  • 9월 29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15명이 방북을 신청하였다.
  • 9월 30일
    • '마산/창원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마창고련)'이 결성되었다.
    • <옥천신문>이 창간되었다.


4.1.10. 10월[편집]


  • 10월 1일
    • 보사부는 '약국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했다.
    • 치안본부 등 공항보안 당국은 항공여객 여행신고서를 폐지했다.
    • 북한측은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 염화비닐공장을 착공했다. 그러나 이는 훗날 80년대 북한 3대 실정 중 하나로 꼽혔다.
  • 10월 2일 - 동-서유럽 26개국이 프랑스 파리에서 '유레카 계획'을 발족하였다.
  • 10월 3일
    •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이 KBS2에서 더빙 방영되었다.
    • 일본 도쿄지법은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 10월 4일
    •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막되었다.
    • '자유지성 300인회'가 발족과 동시에 <자유 지성인 선언>을 채택하였다.
    • 전쟁방지국민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10월 5일 - 티베트 자치정부 수반 달라이 라마 14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10월 7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성체대회 집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
    • 헝가리 공산당이 '사회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 동독 정부는 동베를린에서 건국 4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 10월 8일 - 남북총리회담 제3차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 10월 9일
    • 한국 정부가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지위를 획득하였다.
    • 9월부터 동독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졌던 민주화/개혁개방 요구 시위가 이날을 기점으로 동독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 10월 10일 - 소련 IMEMO 소장 블라드렌 마르티노프가 통민당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 10월 11일
    •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6인 핵심인사 처리 및 전두환과 최규하 두 전직 대통령의 국회 증언으로 5공 청산을 종결시킬 것을 표명하였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소가 설립되었다.
  • 10월 12일
    • MBC 드라마 <수사반장>이 19년만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한국방송기자클럽이 결성되었다.
    • 남북교수/학술교류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문을 열었다.
  • 10월 13일
    • 노태우는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수 없고 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분담금 증액에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 서총련 소속 11개대 학생 6명이 부시 방한과 관련해 미 대사관저에서 점거농성하였다.
  • 10월 14일 - 연전노협의 후신으로 전국전문기술노동조합연맹(이하 전문노련)이 새로 결성되었다.
  • 10월 15일
    • 국방부는 군 구조 개편안을 마련하였다.
    • 노태우가 미국을 방문했다.
    • 서울 동양공전생 설인종이 연세대 '만화사랑' 동아리방에서 운동권 학생들에게 프락치 혐의로 고문당해 숨졌다.(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 10월 16일
    • 치안본부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이하 인민노련)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햤다.
    • 박영식 연세대 교수 등 한국대표단이 소련 모스크바대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하였다.
    • 남북적십자 제3차 실무대표 접촉에서 양국은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방문에 상호 합의하였다.
    • 필리핀 하원은 1991년 이후의 미군기지 전속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의결하였다.
    • 소련 모스크바에서 '한국상품 전시회'가 개최되었다.
  • 10월 17일
    • 노태우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에서 현 수준의 한미 연합방위능력 유지에 합의하였다.
    • 정부는 문공부를 문화부/공보처로, 환경청을 처로 승격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경찰은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연세대생 6명을 구속하였다.
  • 10월 18일
    • 동양그룹 창업주 서남 이양구가 세상을 떠났다.
    • 호네커의 실각으로 에곤 크랜츠 정치국원이 새 동독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
    • 평민당은 평민당의 유럽순방 추태에 대한 주간조선의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을 조건없이 취하했다.
  • 10월 19일
    • 야 3당은 총재회의를 열어 연내에 5공 청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시 노태우 정권 퇴진운동을 할 것을 결의하였다.
    • 헝가리 의회는 다당제 도입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 10월 20일
    • 제3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 양국은 대표팀 단기 제정에 합의하였다.
    • 국제언론문화사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을 창간하였다.
  • 10월 21일 - 지역/업종별 노조 대표자 회의는 1990년 1월부터 전노협을 결성키로 선언하였다.
  • 10월 22일
    • 소련 IMEMO 대표단이 통민당의 초청으로 방한하였다.
    • 한국유화시험검사소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 10월 23일
    • 시거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하였다.
    • 소련 외무장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는 나토와 바르샤바군 양대 협상과 2000년까지 소련의 외국기지를 철수할 것에 대한 용의를 밝히며 동유럽 국가에 내정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 헝가리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었다. 이 날은 헝가리 혁명 33주년이기도 했다.
  • 10월 24일
    • 북한은 한반도에서 군비 축소를 위해 남한과 미국은 다국적군축협상 제안에 응할 것을 촉구하였다.
    • 한국노사교육본부가 설립되었다.
  • 10월 25일 - 제18차 남북국회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 10월 26일
    • 진보정치연합은 새 재야 야당 창당에 합류키 위해 해산을 결의했다.
    • 폴란드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기구 외무장관회담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도록 하였다.
  • 10월 28일
  • 10월 29일 - 1989년 일본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승3패로 킨테츠 버팔로즈를 이겼다.[13]
  • 10월 30일
    • 제24차 아시아-태평양의원연맹(APU)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 각계 인사 977명이 전두환 처벌 및 정호용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 10월 31일
    • 폴란드의 얀 마예프스키 외무차관 등 정부 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 흥아해운 소속 화학제품 운반선 인천 파이오니어 호가 파나마 선적 컨테이너선 에버 가이드 호와 충돌/침몰해 9명이 실종되었다.


4.1.11. 11월[편집]


  • 11월 1일
    •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야마시타 타츠로가 JOY 앨범을 발매하였다.
    • 한국-폴란드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이날 상공부가 잠정집계한 10월중 수출입 실적에서 무역 수지가 1억 1백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 이글스를 4승 1패로 이기고 전대미문의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 <대구일보>가 폐간 17년만에 복간되었다.
  • 11월 3일
    • 정부는 쌀 수매값을 통일벼 11%, 일반벼 12%로 인상하는 안을 확정하였다.
    • 전국 97개 대학생 3만여 명이 학생의날 60주년을 맞이해 '공안통치 분쇄'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 기협은 '분단상황 극복과 언론의 역할'이란 세미나에서 올해 안에 남북언론인교류 실현 및 국가보안법을 철폐키로 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 서울지검은 공업용 우지를 사용한 삼양식품 등 5개 식품회사 대표와 관계자 10명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입건하였다(우지 파동).
  • 11월 4일
    • '국가보안법 폐지 천주교공동위원회(이하 천공위)'가 결성되었다.
    • 월레스와 그로밋의 첫 작품인 화려한 휴가(A Grand Day Out)를 브리스톨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 11월 5일 - 북한의 김일성이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다.
  • 11월 6일
    •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이 호주에서 개막되었다.
    • 세계 60개국 환경장관회의가 네덜란드에서 개막되었다.
    •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5차 회의에서 덩샤오핑이 장쩌민 총서기에게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주었다.
  • 11월 8일 - 동독 정부는 당 정치국을 개혁파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여 한스 모드로프를 새 총리로 임명하였다.
  • 11월 9일
    • 북한 외교부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문제와 관련하여 남북한 및 미국 간 3자 회담 개최를 제안하였다.
    • 동독 동베를린에서 군중들이 베를린 장벽을 밤 사이 망치로 무너뜨렸다.
    •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 등 전 국경을 개방한다고 발표하였다.
  • 11월 10일
    • 1987년 13대 대선 당시 독자적 민중후보 출마를 주장했던 재야 민주인사들에 의해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준비모임'이 결성되었다.
    •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동독의 국경이 완전 개방되었다.
    • 불가리아 공산당이 지프코프 서기장 퇴진과 동시에 사회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는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 11월 11일
    • 서철협, 전노련 등을 중심으로 한 '전국빈민연합(이하 전빈련)'이 결성되었다.
    • 인노협 의장 황재철이 구속되었다.
  • 11월 12일
    • 한국 여자하키 대표팀이 제3회 인터콘티넨털 여자하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는 서울대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이 대회 도중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출범 선언문>이 공개적으로 유포되었다.
  • 11월 13일 -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첫 살인 사건,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 일가족 살해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위에 서술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과는 달리, 6년 후 옴진리교가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을 일으킨 후에야 밝혀지게 된다.
  • 11월 14일 - '호국정신선양회'가 발족되었다.
  • 11월 15일
    • 정부는 대출금리를 1% 포인트로 내리는 '경제활성화 종합대책'을 마련하였다.
    •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냉전시대를 탈피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할 것을 선언하였다.
    • 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가 설립되었다.
    • 서울 한강에 올림픽대교가 개통되었다.
    • 1990년대를 풍미한 Tseng Labs ET4000 그래픽 칩셋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 <경주신문>이 창간되었다.
  • 11월 16일
    • 보사부는 우지사건과 관련된 5개사 제품 검사결과 무해하다고 발표하였다.
    • 주한미군 단계적 감축안인 '넌-워너 수정안'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였다.
    • 남북 양국 적십자사는 제3차 실무회담에서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상호교환에 합의하였다.
    • 제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양국은 단일 대표팀 명칭을 '코리아'로 명명함에 합의하였다.
    • 인노협 소속 45개 노조 노동자 5천여 명은 동맹파업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노동자 130여 명이 연행되었다.
  • 11월 17일
  • 11월 18일 - 노태우가 서독-영국-프랑스-헝가리 4개국 순방차 출국하였다.
  • 11월 20일
    • UN 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되었다.
    • WHO는 1989년 기준 세계 인구 수를 51억 1,200만 명으로 발표하였다.
  • 11월 22일 - 레바논 대통령 르네 무아와드가 취임 17일만에 폭사당했다.
  • 11월 24일
    • 기업공개 사전 예고제가 도입되었다.
    • 안기부는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황석영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와 관련해 이시영 주간을 연행하였다.
  • 11월 25일 - 이날 강릉행 대한항공 KE175편
포커 28 여객기가 김포공항에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당시 외국인 승객 서너명이 창문을 깬 덕에 탑승객이 전부 탈출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 11월 26일 - 전민련은 ‘민운탄 분쇄 및 광주학살, 5공 비리주범 처벌을 위한 1989 민중대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약식 개최되었다.
  • 11월 27일 - 제2차 남북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연내 교환이 회담 결렬로 무산되었다.
  • 아비앙카 항공 소속의 한 여객기가 폭탄 테러로 인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 11월 28일
    • 원로 한글학자 일석 이희승이 향년 93세로 사망했다.
    •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10개항의 통독안을 발표하였다.
    • 베를린 장벽 붕괴에도 요지부동이던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마침내 시위대에 굴복, 다당제 도입을 포함한 전면적인 정치 개혁을 선언한다.
  • 11월 29일
    • 한-소 양국이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였다.
    • 종전의 대한교련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개칭되었다.
    • 구 성우구락부 회원들이 '성우회'를 창설하였다.
  • 11월 30일
    • <민주일보>가 창간되었다.
    • 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 간 국경이 개방되었다.


4.1.12. 12월[편집]


  • 12월 1일
    •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삼풍백화점이 개장하였다.
    • 한국보험개발원이 발족되었다.
    • 외환시장운영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필리핀에서 코라손 아키노 정부 출범 뒤 6번째로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 12월 2일 - 부시 미국 대통령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몰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동구권의 붕괴에 소련이 개입하지 않으며 냉전을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몰타 회담)
  • 12월 3일 - 동독 크렌츠 서기장 등 정치국 중앙위원 전원이 사퇴하였다.
  • 12월 6일
    • 크렌츠의 후임으로 동독의 국가원수직에 만프레드 게를라흐가 취임하였다.
    • 닥터후 올드 시즌이 중단되었다. 이후 다음 닥터까지 7년, 다음 시즌까지 16년을 기다려야 했다.
  • 12월 8일
    • 한-소 영사관계 의정서가 발효되었다.
    •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EC 정상회담이 열렸다.
  • 12월 10일 - 일본 팔콤 사가 게임 <영웅전설>을 발매했다.
  • 12월 11일 - 전교조 측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합법성 쟁취 및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 12월 13일 - 전산망조정위는 고도 정보사회 구현을 위해 '정보사회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 12월 14일
    • 치안본부는 '반제애국청년회 사건'을 발표하며 김성기와 박동철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 칠레에서 16년만에 자유 총선거가 치뤄졌다.
  • 12월 15일
    • 민정당-평민당-민주당-공화당 등 4당 총재 회담이 열려 5공 청산 11개항에 합의했다.
    • 파나마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상태'를 선언했다.
    • 마누엘 노리에가 파나마 대통령이 교황청에 망명을 요청했다.
    • 1990학년도 전기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치루어졌다.
  • 12월 16일
    •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이하 건설노련)이 결성되었다.
    • 전교조 산하 교육문예창작회가 결성되었다.
    •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항거하는 봉기가 처음 일어났다. 이후 이 불길은 루마니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 12월 17일
  • 12월 18일 -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 12월 19일 - 제147회 정기국회는 1990년도 예산안 및 가족법 개정안 등 30개 법안을 처리하였다.
  • 12월 20일 - 미군이 노리에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파나마를 침공했다.
  • 12월 21일 -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관제행사 폭파 사건을 계기로 봉기가 일어났다.
  • 12월 22일 -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에 따라 코르넬리우 마네스쿠 구국전선 의장이 루마니아 정부의 전권을 장악하였다.
  • 12월 23일
    • 법무부는 비전향장기수 37명 등 재소자 1,161명을 가석방한다고 발표하였다.
    • 경제단체협의회가 발족되었다.
    • '정일형박사기념사업회'가 설립되었다.
    • 외국 도피 시도를 하려던 차우셰스쿠 부부가 농부와 운전기사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 12월 25일
    • 치안본부는 '인천지역노동자그룹 사건'을 발표하며 관련자인 김능구, 김영민, 정찬, 서경선을 구속하였다.
    • 루마니아 공산정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 부부가 총살되었다. 이는 공산 독재에 허덕이던 민중들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
  • 12월 27일 - 이집트-시리아 양국이 1977년에 단절된 외교관계를 재개한다고 공동 발표하였다.
  • 12월 28일 - 한국-유고 양국이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 12월 29일
    • 외무부는 1989년 6월 말 기준 재외국민 수가 227만 2,912명이라고 발표하였다.
    • 문공부는 노태우 일가를 비판한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정간시켰다.
    • 닛케이 225가 사상 최고치인 38,915.87엔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최고기록이 갱신되는 일은 없었다. 1980년대에 모든 돈을 쏟아부은 일본의 경제는 이어지는 시대에서 거짓말처럼 파행을 거듭했다.[14]
  • 12월 30일 - 한국외환은행민영화되었다.
  • 12월 31일
    • 전두환이 국회 광주특위 및 5공특위 연석회의에 출석해 125개 문항에 걸쳐 증언했으나,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4.2. 가상[편집]




5. 탄생[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1989년/탄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사망[편집]



6.1. 실존 인물[편집]



6.1.1. 1월[편집]




6.1.2. 2월[편집]




6.1.3. 3월[편집]




6.1.4. 4월[편집]




6.1.5. 5월[편집]




6.1.6. 6월[편집]




6.1.7. 7월[편집]




6.1.8. 8월[편집]




6.1.9. 9월[편집]




6.1.10. 10월[편집]




6.1.11. 11월[편집]




6.1.12. 12월[편집]




6.1.13. 일자불명[편집]




6.2. 가상 인물[편집]



7. 데뷔[편집]



7.1. 배우[편집]




7.2. 가수[편집]



7.2.1. 한국[편집]




7.2.2. 해외[편집]




7.3. 예능인[편집]


  • 김종하
  • 서승만
  • 최왕순


7.4. 만화계[편집]


  • 강동헌 - <여자> 시리즈
  • 강일구 - <해> 시리즈
  • 권선이 - <내리사랑>
  • 길문섭 - <토박이>
  • 김기혜 - <열아홉의 가을>
  • 김종민 - <깨비왕>
  • 김준범 - <기계전사 109>
  • 문계주 - <겨울풍경>
  • 오바타 타케시 - <사이보그 짱 G>
  • 요시자키 미네 - <메론☆사가>
  • 우양숙 - <고교 장희빈>
  • 유시진 - <지난 봄 이야기>
  • 이강주 - <재수 없는 친구>
  • 이동규 - <뛰는 놈 나는 분>
  • 이해광 - <웃음별곡>
  • 정재훈 - <홍대만평>
  • 키리야마 코지[16] - <地球の上のいろんなあなた>
  • 허정인 - <시간의 바다>
  • CLAMP - 성전


7.5. 스포츠[편집]



7.5.1. 야구[편집]




7.5.2. 축구[편집]




7.5.3. 미식축구[편집]




7.5.4. 농구[편집]




7.5.5. 씨름[편집]




8. 은퇴[편집]



8.1. 스포츠[편집]




9. 히트작[편집]



9.1. 드라마[편집]



9.1.1. 국산[편집]



  • MBC
    • 행복한 여자
    • 제2공화국(~'90)
    • 조선왕조 500년 - 파문
    • 완장


9.1.2. 해외[편집]





9.1.3. 더빙[편집]



9.2. 영화[편집]





9.3. 가요[편집]




9.4. 개그 코너[편집]




9.5. 애니메이션[편집]




9.6. 베스트셀러[편집]


  • 고삐 - 윤정모 저.
  •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 저.
  •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 필립 체스터필드 저.
  • 백치애인 - 신달자 저.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저.
  • 시간의 모래밭 - 시드니 셀던 저.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이문열 저.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임정진 저.


10. 출시 상품[편집]



10.1. 식음료[편집]


  • 남양유업
    • 8월: 로젠하임

  • 농심
    • 3월: 느타리라면
    • 8월: 새우탕 큰사발면
    • 9월: 우육탕 큰사발면

  • 롯데제과
    • 카스타드

  • 롯데칠성음료
    • 4월: 밀키스

  • 롯데리아
    • 롯데피자(소)
    • 해시포테이토
    • 치킨버거세트
    • 커틀렛세트

  • 동서식품
    • 맥스웰하우스 원두 분쇄 커피, 네오칸 이탈리안 골든블렌드
    • 맥심 모카골드

  • 매일유업
    • 바이오거트
    • 비피더스

  • 빙그레
    • 베이컨칩[20]

  • 크라운제과
    • 카라멜콘 땅콩
    • 콘칲

  • 한국야쿠르트유업
    • 슈퍼100 복숭아

  • 제일제당
    • 3월: 백설 동그랑땡


10.2. 생활용품[편집]


  • 애경산업
    • 트리오로얄, 크리오, 부라보, 썬로즈샴푸


10.3. 자동차[편집]


  • 현대 엑셀
  • 현대 그랜저 3.0
  • 대우 임페리얼
  • 대우 BV113(2세대)
  • 대우 BH120H 로얄슈퍼(페이스리프트)
  • 기아 캐피탈
  • 기아 베스타 4X4
  • 기아 와이드 봉고
  • 아시아 AM939
  • 아시아 코스모스


10.4. 전자제품[편집]


  • 삼성전자
    • 삼성 엑설런트 톱
    • 삼성 히트세탁기
    • 삼성 VTR 톱스타
    • 삼성 특선냉장고 크린
    • 삼성 한국형 전자레인지

  • 금성사
    • 금성 비디오TV
    • 금성 VTR 수퍼메리트
    • 금성 PC 파트너
    • 금성 환타지아
    • 금성 전자레인지 원터치
    • 금성 싱싱냉장고 액센트
    • 금성 비디오무비 V1
    • 금성 오븐레인지 캐러트

  • 대우전자
    • 대우 수퍼비전 PRO (DTQ-2173FW)
    • 대우 한국형 전자동 전자렌지 (KOR-647G)
    • 대우 한국형 전자렌지 (KOR-801G)
    • 대우 VTR 탤런트Q (DVR-6238)
    • 대우 디지탈 Hi-Fi VTR
    • 대우 코로나 PC
    • 대우 IC 냉장고 투투 (FR-264AV)
    • 대우 아이큐 슈퍼
    • 대우 워드프로세서 르모II


11. 최초[편집]



11.1. 방송 프로그램[편집]


  • KBS
    • 역사탐험
    • 쟈니윤 쇼
    • 현장기록 요즘사람들

  • MBC
    • 쇼 네트워크
    • 아하 복동네
    • 여론광장
    • 우정의 무대
    • MBC 리포트 (2차)
    • MBC 올스타쇼


11.2. 창간[편집]


  • 신문
    • 경상일보
    • 경주신문
    • 교차로
    • 동양경제신문
    • 민주일보
    • 부산매일신문: 창간 당시 제호는 <항도일보>.
    • 세계일보
    • 에너지경제신문
    • 옥천신문
    • 전남매일
    • 전남일보
    • 한라일보

  • 잡지
    • 시사저널
    • 월간 노동해방문학
    • 하이센스
    • 한국논단


12. 유행어[편집]


  • 걸레는 빨아도 걸레
  • 그래, 너 잘 났다, 니 팔뚝 굵다/내비둬,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적어라, 적어/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알~~~겠느냐? - 김형곤 (탱자 가라사대)
  • 그래~ 내는 모른다, 니는 아나? - 김용 (탱자 가라사대)
  • 누가 물어 봤어? 아, 누가 물어 봤냐고~ - 조문식 (탱자 가라사대)
  • 에그머니나~ - 하상훈 (탱자 가라사대)
  • 날 샜어! - 이경래 (달빛 소나타)
  •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 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에구에구에구~ 그날 난~ OOO했다~ - 최양락 (고독한 사냥꾼)
  • 일주일만 젊었어도 - 임하룡 (청춘을 돌려다오)
  • 얜 무슨 말을 못하게 해 - 전유성 (네로 25시)
  • 아, 저 말입니까? - 김학래 (네로 25시)
  • 영숙이! 숙제 했어?! - 서세원 (스타데이트)
  • 귀신은 뭐 하는지 몰라~ 저 놈 안 잡아가고 - 조정현 (헬로우 일지매)
  • 잘났어~ 정말! - 고두심 (드라마 사랑의 굴레)
  • 여러분,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 자니 윤
  • 따봉! - 델몬트 CF
  • 싸랑해요, 밀키스 - 주윤발 (밀키스 CF)
  • 맛이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끝내줍니다! - 메가톤바 CF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 김우중
  • 이게 뭡니까~ - 김동길
  •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 미국 <이코노미스트> 기사 중에서


13. 달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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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영구 사건, 오이균 미성년자 연쇄살인 사건 등... 그 중 당해에 일어난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이춘재뿐만 아니라 경찰마저 은폐까지 한 국내 역사상 최악의 살인사건으로 남았다.[2] 다만 이 날이 매년 새해 첫 날이기 때문에, 동해안 등으로 해맞이를 보러가는 행렬은 이어진다. 신정의 귀성 및 귀경 행렬이 되면 해맞이를 보러 가는 인파까지 섞였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때부터 해맞이 행렬과 고향길 행렬이 사실상 분리되었다.[3] 이 당시 검거대상이 훗날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되는 임종석인데 그의 신출귀몰한 행적에 전국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4] 21세기 이후 친이명박계의 좌장이 된 그 이재오가 맞다. 이 시기에는 재야 운동권의 전설적 존재로 활약했다.[5] 앞서 언급된 문익환 목사의 친동생이다.[6] 토요일, 일요일.[7] 신정 연휴 2(3-1)일, 설날 연휴 2(3-1)일, 삼일절, 식목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현충일, 제헌절, 광복절, 추석 연휴 3일, 국군의 날 대체휴일, 개천절, 한글날, 성탄절.[8] 신정, 설날 연휴 2(3-1)일, 어린이날, 추석 연휴 1(3-2)일, 성탄절.[9] 시흥군 의왕읍, 광주군 동부읍·서부면·중부면 상산곡리,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 시흥군 군포읍, 화성군 오산읍, 남양주군 미금읍, 서산군 서산읍, 김제군 김제읍·월촌면, 광양군 골약면·태금면·옥곡면, 밀양군 밀양읍, 거제군 장승포읍, 경산군 경산읍이 각각 시로 승격됐다. 그중 의왕시, 하남시, 시흥시, 군포시, 오산시는 통합을 하지 않았고 미금시, 서산시, 김제시, 동광양시, 밀양시, 장승포시, 경산시는 인근 시·군과 통합했다.[10] 1985년 2월 경호실장에서 안기부장으로 이동했다.[11] 현재는 2023년에 개장한 MSG 스피어에 의해 1위를 내주었다.[12] 가장 유명한 예시로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뀌었다.[13] 여담으로 10월 24일 벌어진 3차전은 도쿄돔에서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이 시구했다.[14] 1990년 4월에 총량규제 실시 후 2년 후에 완전 붕괴했다.그러나 버블 시절 여파는 92년 후에도 남아있다가 95년에서야 완전히 없어졌다.[15] 원로가수 박재란의 딸.[16] <12지 닌자군단 닌쿠> 작가.[17] 1989년 골든디스크 대상곡[18] 1989년 MBC 최고인기가수상/최고인기가요상 수상곡[19] 1989년 KBS 가요대상 대상 수상곡[20] 1995년 스모키 베이컨칩으로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