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방콕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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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8년 태국 방콕에서 개최한 아시안 게임. 이로써 방콕은 4회 개최 도시가 되었다. 막 아시안게임을 유치했을 때야 태국이 연 8%대의 경제성장을 기록했을 정도로 호경기였기 때문에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막상 아시안게임이 치러졌을 때는 태국이 IMF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기 때문에[1] 밝지 않은 분위기에서 아시안게임을 진행했다.
2. 메달 순위[편집]
3. 대한민국의 메달 현황[편집]
3.1. 메달 현황[편집]
3.2. 세부 메달 현황[편집]
3.2.1. 금메달[편집]
3.2.2. 은메달[편집]
3.2.3. 동메달[편집]
4. 이모저모[편집]
- 마스코트는 코끼리 차이요이다.
-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3개국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라크는 8년 전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제제 조치로 참가 자격이 박탈된 상태였고, 사우디아라비아는 라마단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으며[10] , 아프가니스탄은 당시 탈레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 개최국 버프를 받고 태국이 4위에 랭크되었다. 우승은 중국. 한국이 2위, 일본은 3위.
- 한편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말미암아 여러 스포츠 팀이 모기업의 부도 내지 구조조정으로 해체되었고, 남은 팀 역시 지원이 축소되는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목표했던 종합 2위를 달성하였다.
- 허정무가 이끌던 축구대표팀은 8강전에서 태국에게 1-2로 패해 탈락했고 한국축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참패에 이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항목참조.
- 대회 개막 초반인 1998년 12월 8일, 전국의 중계유선방송국이 집단으로 전채널 방송 송출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중계유선은 커져가던 케이블TV 지역SO와의 통폐합이 서서히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정부가 케이블 TV만을 옹호한다며 이에 반발한 한국중계유선방송협회에서 당일 오전 8시부터 7시간 30여분간 방송송출을 중단시켰다.(KBS, MBC) 당연히 낮시간대에 주요경기가 방송되던 터라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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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7%, 1998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0.2%를 기록했다. 1999년 이후로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회복세가 한국에 비해 더뎠고 덕택에 한국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되었다.[2] 금메달 획득 직후 아버지가 대회를 앞두고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접하고 대성통곡하며 귀국했다.[3]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손가락과 늑골을 다치는 부상에도 투혼을 발휘하며 은메달을 따게 된다.[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맞다.[5] 1995년 3월 감기약을 과다복용했다 IAAF의 불시 도핑테스트에 걸려 선수자격을 박탈당했던 선수다.[6] 그후로 20년 후 딸 여서정이 여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땄다.[7] 당시 중학교 3학년. 너무나 당연하게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는 동명이인이다. 그 후 대한민국 여자 수영이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는 꼬박 12년이 걸렸고, 남녀 통틀어 접영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는 꼬박 25년이 걸렸다.[8] 결승에서 북한의 계순희에게 패했다.[9] 당시 최종 4위를 기록했음에도 1~3위가 모두 대만 국적의 선수였던 나머지 아시안 게임의 메달 단일 국가 독식 금지 규정 때문에 동메달을 수여받았다.[10] 명분은 그랬지만, 사실은 외교적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