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장교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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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장교의 난
二次莊蹻之亂
Second Rebellion of ZhuangQiao

시기
기원전 282년
장소
초나라령 강동일대
원인
초나라의 지속적인 강동지역 공출[1]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 폭발
교전세력
봉기군
초楚
지휘관
봉기군 수장 장교
초 토벌군 사령관 소어
초 원릉군수 굴위
초 연릉군수†
병력
봉기군 본대 7천
강북봉기군 2천6백

총합 9천6백
초 토벌군 1만5천
초 원릉주둔군 2천8백
초 연릉주둔군 1천5백

총합 약 1만9천3백
피해[2]
봉기군 약 2천7백
초군 약 4천2백
결과
토벌군 반란 진압 실패
영향
초조정과 장교와 협상하여 장교를 강동후로 봉작하고
구 월나라 일대[3]를 봉지로 줌 강동후령 형성


1. 개요
2. 배경
3. 전투의 전개
4. 결과
4.1. 장교 강동을 떠나나...
5. 영향



1. 개요[편집]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에 나오는 가공의 반란.

2. 배경[편집]




3. 전투의 전개[편집]




4. 결과[편집]



4.1. 장교 강동을 떠나나...[편집]




5. 영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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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속적인 반란지역인 강동에 대한 견제도 포함되어 있었다.[2] 도주, 와해된 병력등은 제외한 순수 전투손실만 계산.[3] 물길과 가까운 지역과 강북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