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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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반기를 모두 우승해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자, 헛스윙! 경기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두산 베어스, 2001 한국시리즈 우승! 19번째 한국시리즈의 챔피언이 됩니다!!

19년만에 만난 두 팀, 챔피언결정전에서 4승... 네~ 4승 2패죠. 4승 2패로 두산이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 챔피언 자리, 세 번째 챔피언 자리에 오릅니다.

- SBS 김정일 캐스터의 당시 우승콜


1. 개요
2. 일정표
3. 엔트리
4. 경기
4.1. 1차전
4.2. 2차전
4.3. 3차전
4.5. 5차전
4.6. 6차전
5. 우승 반지
6. 여담
6.2. 그놈의 4차전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삼성 fn.com배 200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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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5BD%25BA%25C6%25F7%25C3%25F7%25C3%25E1%25C3%25DF.%25B1%25E8%25C0%25C0%25BF%25EB17.jpg

2001년 정규리그 1위인 삼성 라이온즈와 3위인 두산 베어스의 맞대결로 진행되었던 2001년 KBO 한국시리즈에 관한 문서.

당시 두산의 정규 시즌 성적은 65승 5무 63패로 5할을 겨우 넘기고 5할 1푼에도 도달하지 못했는데(0.508), 이는 포스트시즌에 탈락한 2006년 두산보다도 더 낮은 승률이었다. 그 원인은 로 대표되는 강력한 타선에 비해 굉장히 암울한 투수진이었는데, 팀 내 최다승 투수의 승수가 9승[1]이었다.[2] 또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선발과 계투를 오갔던 이혜천 달랑 1명이었다.[3] 심지어 정규 시즌 3위였던 두산은 1위 삼성과의 승차보다 오히려 당시 최하위였던 롯데[4]와의 승차가 더 적었을 정도였다.[5]

투타의 전력으로 보자면 타자는 백중세였지만 투수력에서 삼성의 전력이 압도적이었다. 타격은 두산이 언제나처럼 최상위권의 활약을 해준 타이론 우즈와 김동주는 물론이요 그해에 각성한 심재학심정수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 아닌,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펠릭스 호세에 이어 전체 WAR 2위로 활약하여[6]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정수근이 99년에 이어 3할타자로 복귀하였으며, 하위 타선의 안경현, 홍원기, 홍성흔 등도 만만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삼성도 김기태가 노쇠화 및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해당 시즌에 단 한개의 홈런도 쳐내지 못했으며 부진하였으나 그 자리를 마해영, 매니 마르티네스 쌍마가 훌륭하게 메워주웠고, 박한이가 신인왕 후보에 오를정도로 타선에 활력소 역할을 해줬다. 이승엽이 타율은 낮았지만 그해 OPS 3위였으니 나름 본인 몫은 했으며, 오히려 WAR 순위는 첫 홈런왕에 최다안타를 차지했던 1997시즌보다 높았다. 오히려 낮은 타율 때문에 저평가를 당한 한해였다. 이를 전체적으로 따져 보면 팀 득점과 팀 OPS같은 경우 두산:삼성은 739:732, .807 : .780으로 비슷하거나 두산이 미세하게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었다.(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쓰면 OPS는 장타율이 줄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수진을 보면 두산은 선발투수는 커녕 불펜투수조차 10승 투수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 해에 8개 구단가운데 10승 투수가 단 1명도 없었던 유일한 구단이다.[7] 당초 베어스의 에이스였던 박명환은 전년도 처럼 부상으로 들쭉날쭉하게 등판했으며 나머지 투수들도 모조리 부상 내지는 없느니만 못한 수준이었다. 용병투수 둘 또한 트로이 닐[8]의 대체용병이었던 배넷은 한국 생활의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는지 부진을 면치 못하였으며 한국시리즈에서는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SK에서 온 빅터 콜은 배넷보다는 나았지만 그냥 없는 것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 정도였다. 스윙맨으로 노예생활을 했던 이혜천과 철벽 마무리였던 진필중 그리고 방어율은 그닥 좋지 않지만 좌완 계투로서 그럭저럭 막았던 차명주 등 불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반면 삼성은 임창용, 배영수, 김진웅, 발비노 갈베스 무려 4명의 10승투수를 배출했으며, 중간투수에는 김현욱, 전병호 등이 포진해 있었고, 시즌 초반 훌륭한 마무리투수 역할을 맡았던 벤 리베라가 부상으로 퇴출당하자 김진웅이 시즌 후반 마무리 전업을 했는데 나름 훌륭하게 막으면서 투수진은 구멍이 없는 듯 보였다.[9]

게다가 두산은 한화 이글스[10]와의 준플레이오프, 현대 유니콘스와의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소진되었으며, 주전 선수 다수가 부상당한 터라 다들 이번만큼은 삼성이 이겨서 달구벌의 저주[11]를 깰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를 위해 삼성으로서는 원수나 다름없는 해태의 김응용 감독까지 모셔왔고,[12] 객관적인 전력도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 일정표[편집]




3. 엔트리[편집]



3.1. 삼성 라이온즈[편집]




3.2. 두산 베어스[편집]


두산 베어스 200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감독
1명
김인식
코치
8명
유지훤, 김경문, 김평호, 송재박, 양승호, 최일언, 박상열, 김태형
투수
10명
구자운, 박명환, 이경필, 이혜천, 정진용, 조계현, 진필중, 차명주, 최용호,
포수
3명
이대현, 이도형, 홍성흔
내야수
7명
김동주, 김호, 송원국, 안경현, 우즈, 정원석, 홍원기
외야수
6명
강봉규, 심재학, 장원진, 전상렬, 정수근, 최훈재


4. 경기[편집]



4.1. 1차전[편집]


한국시리즈 1차전, 10.20(토), 14: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두산

0
0
0
1
3
0
0
0
0
4
9
삼성
갈베스
1
2
0
0
1
0
0
3
-
7
11
중계방송사: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표영준 | 해설: 하일성

양팀 주요기록
승리투수
배영수

패전투수
이경필

홈런
타이론 우즈(4회 1점), 이승엽(5회 1점)
심판
김호인 / 오석환 / 조종규 / 나광남 / 임채섭 / 허운
시구자
이만섭 [13]

삼성은 발비노 갈베스를, 두산은 빅터 콜을 선발로 기용했다. 갈베스는 가정사로 고국으로 떠났다가 몇 번이나 복귀를 미루면서 미운털이 박혔지만, 임창용의 컨디션 난조와 정규시즌에 해준 공이 있어 1차전 선발로 낙점받았다. 그러나 두산전에서 1승 2패 평균자책점 3.32로 그리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빅터 콜보다는 나았는데, 빅터 콜은 정규시즌 기록이 6승 9패 평균자책점 5.04로, 시즌 10승 4패 평균자책점 2.47을 기록한 갈베스와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콜이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⅔이닝 9피안타 2실점으로 그나마 호투했기에 1차전 선발로 낙점받았다.

초반은 1회 2점, 2회 1점을 낸 삼성이 리드해 갔다. 그러나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물리치며 올라온 팀답게 두산도 호락호락 당하진 않았다. 4회초 타이론 우즈의 솔로홈런을 시작으로 5회초 정수근의 2타점 3루타 등, 5회에만 3점을 내면서 4대3으로 역전한 것. 그러나 이은 5회말 이승엽이 솔로홈런을 치면서 다시 균형을 잡았다.

이후로 종반까지 4대4 균형이 이어지다가 8회말 삼성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선두타자 김한수의 2루타를 시작으로 정경배의 희생번트와 진갑용의 삼진으로 2사 3루 상황에서 김태균이 적시타를 친 것. 이어 박한이가 안타, 김종훈이 2루타를 치면서 2점을 더 추가하면서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 1차전 승리는 나름대로 삼성에겐 값진 승리였는데, 창단 19년만에 한국시리즈 1차전을 이겼다. 그동안 한국시리즈 출전만 따져도 7번째만의 1차전 승리.

양팀 감독 모두 1차전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1차전부터 양팀 합쳐 10명의 투수가 기용되었다.[14]

이전까지 18번 한국시리즈 중 무승부로 끝났던 1982년을 제외하고 17번 중 1차전 승리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게 15번인 만큼, 삼성 팬들의 기대치는 상승했다.


4.2. 2차전[편집]


한국시리즈 2차전, 10.22(월),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두산
구자운
0
2
0
0
2
0
2
3
0
9
12
삼성
임창용
0
0
0
1
0
3
0
0
1
5
8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svg | 캐스터: | 해설: 박노준 [타사중계2]

양팀 주요기록
승리투수
이혜천

패전투수
김현욱

홈런
이승엽(6회 1점), 장원진(8회 3점), 김동수(9회 1점)
심판
오석환 / 조종규 / 임채섭 / 김호인 / 허운 / 나광남
시구자
전명준

우천으로 하루 연기되었다. 삼성은 임창용을, 두산은 구자운을 선발로 기용했다. 임창용의 경우 원래 1차전 선발이 유력했지만, 시즌 후반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2차전 선발로 밀렸다. 그러나 정규시즌 두산을 상대로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0.55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구자운의 경우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7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등, 포스트시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규시즌 성적을 봐도 1차전과 마찬가지로 삼성의 승리가 점쳐졌으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컨디션 난조를 보인 임창용의 속구 구속이 140km/h도 안 나오면서, 그야말로 두산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주다 5회도 못 채우고 강판되었다.

2회초 김동주의 안타를 시작으로 안경현전상렬의 안타로 2점을 먼저 냈다. 4회말 삼성도 이승엽과 매니 마르티네스가 1점을 합작하면서 따라붙었다. 5회초 1사 1,2루가 되면서 임창용 대신 배영수가 구원등판하지만 김동주가 2타점 2루타를 치면서 3점차로 달아났다. 구자운의 호투로 삼성 타선은 침묵하다가, 6회말 이승엽의 솔로홈런을 시작으로 김동수의 2타점 적시타로 금새 동점으로 따라붙었다.[15]

그러나 삼성 마운드는 불붙은 두산 타선을 감당하지 못했다. 7회초 미들맨 김현욱이 등판했지만, 장원진과 우즈의 연속안타 후 김동주에게 다시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6대4로 역전을 허용했다. 이에 삼성은 마무리인 김진웅을 조기투입하는 강수까지 썼지만 8회초 장원진이 3점 홈런을 치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9회말 김동수가 솔로홈런을 쳤지만 그래도 4점차. 승부를 뒤집기에는 너무 늦었고, 점수차도 많았다.

여담으로 5회말 두산 장원진은 삼성 박한이의 파울타구를 잡은 후, 홈관중이 던진 캔맥주에 오른쪽 팔을 맞았다. 그리고 장원진은 7회 안타에 8회 3점홈런으로 앙갚음했다


4.3. 3차전[편집]


한국시리즈 3차전, 10.24(수),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배영수
0
1
0
1
0
0
6
0
1
9
12
두산
박명환
0
3
1
0
0
7
0
0
-
11
10
중계방송사: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표영준 | 해설: 하일성

양팀 주요기록
승리투수
이혜천

패전투수
배영수

홈런
타이론 우즈(3회 1점), 마해영(4회 1점)
심판
허운 / 임채섭 / 나광남 / 조종규 / 김호인 / 오석환
시구자
남궁진[16]

두산은 박명환을, 삼성은 배영수를 선발로 기용했다. 박명환은 정규시즌 8승에 그쳤지만 팀내 선발진 중 최다승인데다[17] 구위도 괜찮은 편이었다. 배영수는 정규시즌 13승으로, 성적은 박명환보다 우위였지만 이제 겨우 프로 2년차의 영건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두산에 행운이 따랐다. 0대1로 뒤진 2회말 두산 공격, 심재학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김동주의 빗맞은 타구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며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았다. 안경현은 희생번트를 대려했지만 2번이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게 전화위복이 되었으니, 불리한 카운트에서 동점 적시타를 친 것. 이어 홍성흔의 역전타와 이도형의 희생플라이로 두산은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이어 우즈와 마해영이 각각 솔로홈런으로 1점을 더해 4대2로 두산이 앞선 6회말, 홍원기의 볼넷에 이어 정수근의 2루타로 두산 타선에 불이 붙었다. 장원진의 유격수 땅볼로 1점을, 우즈가 고의사구로 출루한 후 심재학과 김동주의 연속안타로 2점을 더했다. 이어 안경현이 3루 땅볼을 쳤는데, 삼성 3루수 김한수가 1루로 던진 공이 2루 주자 심재학의 헬멧을 맞고 튕겨져 나가면서 또 2점 득점. 이어 홍성흔의 2타점 2루타까지 터지면서 두산은 6회에만 7점을 올렸다(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득점 기록. 이 기록은 바로 다음날 깨진다. 그것도 두번). 점수는 11대2.

그러나 삼성도 지난 경기처럼 무기력하게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7회초 2사 후 박정환의 2루타를 시작으로 볼넷 1개를 포함해 7연타석 안타를 기록하면서 7회에만 6득점으로 따라잡았다. 두산은 7회초에만 5명의 투수를 바꾸고[18] 마무리 진필중까지 등판하면서 겨우 불을 껐다. 어쨌든 두산이 승리하면서 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사실 이 경기는 대첩으로 들어가도 할말없지만 바로 다음경기가 너무 역대급이라 묻혔다. 2001년 한국시리즈/4차전 참고.


4.4. 4차전[편집]


한국시리즈 4차전, 10.25(목), 18: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갈베스
0
8
0
0
0
0
2
0
1
11
15
두산

2
1
12
2
1
0
0
0
-
18
19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svg | 캐스터: 김정일 | 해설: 박노준[타사중계4]

양팀 주요기록
결승타
정수근(3회 1사 2, 3루서 좌익수 앞 안타)
승리투수
차명주

패전투수
김진웅

홈런
타이론 우즈(1회 2점), 김동주(3회 4점), 안경현(3회 1점)
심판
오석환 / 조종규 / 임채섭 / 김호인 / 허운 / 나광남
시구자
전인화[19]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2001년 한국시리즈/4차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5. 5차전[편집]


한국시리즈 5차전, 10.27(토), 14: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두산
구자운
0
0
1
0
1
1
0
1
0
4
12
삼성
임창용
0
0
4
0
1
1
1
7
-
14
16
중계방송사: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 캐스터: 표영준 | 해설: 하일성

양팀 주요기록
승리투수
임창용

패전투수
구자운

홈런
이승엽(5회 1점)
심판
나광남 / 김호인 / 조종규 / 허운 / 오석환 / 임채섭

양팀 모두 2차전 선발이었던 임창용(삼성)과 구자운(두산)을 그대로 선발로 기용했다. 한편 바뀐 규정에 따라 5차전부터 두산 홈구장인잠실에서 중립경기로 열렸다.

3회초 1사 2,3루 상황에서 타이론 우즈의 희생플라이로 두산이 먼저 점수를 올렸지만, 곧바로 3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마해영가 동점타를 치고, 이어 매니 마르티네스의 안타로 만루를 만들고 김한수가 2루타를 날렸다. 이 때 두산의 실책으로 1루주자 마르티네스까지 득점하면서 삼성이 4대1로 역전했다.

5회초 심재학의 안타로 두산이 1점 따라갔지만, 다시 5회말 선두타자 이승엽의 솔로홈런으로 3점차로 점수를 벌렸다. 6회초 최훈재김호의 연속 2루타로 1점 따라잡지만 다시 6회말 이승엽의 안타로 1점 달아난데 이어 7회에도 1점을 더하면서 4점차로 더욱 점수차를 벌렸다.

8회초 두산이 최훈재, 김호, 정수근의 연속안타로 1점 따라붙었지만 8회말 삼성은 타자 일순하면서 5안타 3볼넷 등으로 대거 7득점을 하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2차전의 부진을 딛고, 6이닝 3실점을 기록한 삼성 선발 임창용은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 유일한 선발승을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4.6. 6차전[편집]


한국시리즈 6차전, 10.28(일), 14:03 ~ 18:03 (4시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30,500명 (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R
H
E
B
삼성
노장진
2
0
0
0
0
0
3
0
0
5
11
두산
박명환
0
0
1
0
2
0
2
1
-
6
10
중계방송사: 파일:SBS 로고.svg | 캐스터: 김정일 | 해설: 박노준[타사중계6]

양팀 주요기록
결승타
심재학(8회 1사 2,3루서 좌익수 희생플라이)
승리투수
진필중

패전투수
임창용

홈런
타이론 우즈(5회 2점)
심판
임채섭 / 허운 / 김호인 / 오석환 / 나광남 / 조종규
시구자
유연희, 김인재[20]

두산은 3차전 선발투수였던 박명환을, 삼성은 노장진을 선발로 기용했다.

삼성은 1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투수 박명환의 폭투와 김한수의 내야안타로 2점을 내면서 초반부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두산이 3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장원진의 안타 타구를 외야수 박한이가 뒤로 빠뜨리면서 1점을 득점하고, 5회말 타이론 우즈김진웅을 상대로 장외 2점홈런[21] 을 치면서 경기를 뒤집었다.

7회초 삼성은 대타 강동우의 2루타와 카를로스 바에르가가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고, 김종훈의 2타점 역전 안타와 이승엽의 1타점 적시타로 다시 재역전했다. 그러나 두산도 7회말 심재학이 볼넷, 김동주의 2루타로 출루한데 이어 홍성흔의 내야 땅볼로 1점 따라잡았다. 그리고 삼성은 전날 선발투수였던 임창용을 투입하는 강수를 두지만, 피로에 지친 임창용이 폭투를 범하며 동점을 만들어줬다.

이에 기세를 탄 두산은 8회말 정수근, 장원진의 연속 안타 이후 우즈의 3루 땅볼로 맞은 1사 2,3루 상황에서 심재학의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다시 역전하면서[22] 삼성의 추격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9회초 마무리 투수 진필중이 2사 1, 2루 위기에서[23] 삼성의 마지막 타자 마해영을 1B-2S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시리즈가 종료된다. 두산의 통산 3번째 우승.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31021173726518.jpg
우승의 순간.


5. 우승 반지[편집]


파일:2001반지.jpg

우승 세 번만에 처음으로 제작한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24]


6. 여담[편집]


두산은 1992년 롯데에 이어 역대 2번째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되었다. 반대로 삼성에게는 치욕스런 참패이자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은 이걸로 7번째 준우승이었다.

두산 우승이 결정나는 순간 이때 삼성의 이선희 투수코치가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두산에게 집니까? 두산에 (투수가) 누가 있다고?!!" 그 정도로 두산의 객관적인 전력이 삼성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

준플레이오프 통과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3번의 경우밖에 없는 시리즈. 다른 하나는 롯데가 우승한 1992년 한국시리즈고, 또 하나는 2015년 한국시리즈의 두산이다.[25] 이 둘은 동시에 시즌 승률 3위가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챔피언 두산의 페넌트레이스 승률은 .508로,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가운데 가장 낮았다.[26] 그리고 역대 시리즈 중 부실한 투수진[27]에 비해 타격 하나로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시리즈[28]. 이 때 두산의 득실은 52득점 51실점이었으며, 한국시리즈 최다득점 1위와 최다실점 2위(1위야 당연히 상대였던 삼성 라이온즈) 기록이다.[29]

두산은 OB 베어스 시절부터 1997년 5위-1998년 4위-1999년 3위-2000년 2위로 매년 한 계단씩 상승해서 위의 동영상에서도 나오듯 두산 관계자가 2001년에는 우승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결국 진짜로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2000년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 뒤 3연승으로 시리즈를 끝까지 끌고 가고, 그 다음해 업셋의 연속으로 기어이 정점에 오른 두산의 활약상에 이 시기부터 언론들이 미라클 두산이란 별명을 많이 쓰게 된다.[30]

양 팀은 4년 후인 2005년 한국시리즈에 리턴 매치를 갖게 된다. 그리고 삼성은 4년 전의 아픔을 스윕으로 되갚았다.

두산 베어스는 해태 타이거즈가 1987년에 3회 우승을 이룬 이후 두 번째로 3회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되었다. 네 번째 우승 역시 정규 3위에서 1위팀인 삼성을 업셋했는데 2001년과 비슷한 점이 많다.

2017년까지는 최다 승차 뒤집기(13.5게임차)로 남아 있었지만, 2018년 이걸 뛰어넘는 뒤집기를 자신들이 되려 당하게 된다.

이 시리즈의 희생양이었던 한 투수는 18년 뒤 이 시리즈의 승리팀 소속으로 8번째의 우승반지를 얻고 선수생활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한편 이 시리즈의 숨은 주역 중 한 선수는 얄궂게도 20년 뒤 이 시리즈의 승리팀을 상대로 감독으로서 맞대결을 벌이게 되었고 시리즈 전적 1승 2패(4위팀 1승 어드밴티지 적용)로 석패를 하게 된다.

6.1. 잠실 중립구장 경기 논란[편집]


업셋으로 끝난 역대급 한국시리즈였지만, 한편으로는 잠실 중립구장 경기 규정이 다시 문제가 된 시리즈이기도 하다. 다른 한국시리즈에도 수많은 중립구장 경기로 인한 논란이 있었으나, 특히 이 해의 한국시리즈가 이토록 큰 논란이 된 이유는 정규시즌 우승 팀이 중립경기로 인하여 손해를 보고 업셋을 당한 유일한 한국시리즈이기 때문이다.

KBO도 이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93년부터 한국시리즈 진출팀이 서울 연고팀일 경우 이런 문제점을 완화하기 위해 순위에 상관없이 1~2, 5~7차전을 잠실에서 치르도록 했고[31], 1998년부터 서울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 시 1, 2, 6, 7차전은 정규시즌 1위 팀 홈구장, 3~5차전은 플레이오프 승리 팀 홈구장에서 치르는 걸로 보완이 되었다.[32]

그러나 1999년부터 양대리그를 2년 동안 운용하고, 2001년부터 단일리그제로 돌아오면서 KBO에서 까먹었는지, 혹은 흥행을 위해 예전 규정을 적용하기로 사전에 합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KBO는 1, 2차전만 대구에서 치렀고, 3차전부터 7차전까지 쭉 잠실에서 경기를 치르게 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다만 김응용 삼성 감독이 당시의 불붙은 두산 타선을 보고 넓은 잠실구장에서 하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해서 이 같이 중립경기를 치르게 했다는 설도 있다.[33] 또한 당시에는 두산이 준플레이오프에서부터 올라오는 엄청난 체력소모가 있었거니와, 삼성의 전력도 강했기 때문에 삼성이 무난히 완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이는 시리즈 시작 전만 해도 큰 문제로 번져지진 않았지만 삼성이 설마설마하던 업셋을 당하자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이듬해였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998년의 규정을 따라 중립경기 규정이 완화되면서[34], 같은 서울 팀인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중립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다만 "삼성이 잠실 중립구장 경기 규정때문에 졌다"라는 주장 역시 여러모로 비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삼성이 이 시리즈에서 손해를 본 것이라고 해봐야 6차전 홈경기 1경기와 4차전 이후 두산에게 부여된 휴식일 하루 뿐이다.[35]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홈팀의 승률은 평균 56.41%로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다. 그리고 삼성은 6경기 중 1경기를 홈구장 대신 원정구장에서 치렀기 때문에, 1경기에서 12~13%의 기대승률 손해[36]를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규시즌에서 두 팀의 승률 격차는 무려 1할이 넘을 정도[37]로 전력차가 컸을 뿐더러, 팀 전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나타낸다는 피타고리안 승률에서 01년 두산은 .499로 5할이 채 되지 않으며 득실차도 -1이었다. 이 격차는 홈구장을 바꿨을 시 발생하는 기대승률 격차와 비슷한 수준이다. 게다가 삼성이 6경기 전부를 손해본 것도 아니고, 삼성이 손해본 것은 6차전 1경기에 불과한 반면 전력 격차는 매 경기마다 작용하는 것이다.

또한 4차전 이후 두산에게 부여된 휴식일도 시리즈 결과를 뒤집을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일단 시리즈의 흐름부터 두산이 4차전까지 3승 1패로 완전히 주도권을 쥔 상태였다. 비록 삼성이 5차전을 잡기는 했으나 여전히 시리즈의 주도권은 두산에게 있었으며, 설령 5차전 이후 대구로 내려간 다음 6,7차전을 치른다고 가정을 해도 삼성이 나머지 경기를 모두 잡았을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그다지 높지 않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01년 삼성은 1승 3패에서 5·6·7차전을 전부 이기고 우승한 팀이 되는 셈인데, 이런 경우는 역사상 단 한 번밖에 없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3승 1패/1승 3패 상황이 총 17번(무승부 포함) 있었으니 확률로 봐도 겨우 5.9%에 불과하다.

따라서 결론을 내리자면 분명 잠실 중립구장 경기 규정은 삼성에 불리하게, 두산에 유리하게 작용한게 맞으나 그보다 삼성과 두산의 기존 전력차와 한국시리즈 직행팀이 가지는 이점이 더 컸다는 것이다. 더욱이 성적 면에서 삼성의 최대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는 해태 타이거즈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중립구장 규정을 안고도 우승했기 때문에 중립구장을 원인으로 삼는 것은 본의 아니게 해태를 치켜세우는 꼴이 되는 것이다.

즉,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의 가장 큰 승인은 타자들의 각성이며, 삼성의 가장 큰 패인은 투수진의 붕괴였다고 볼 수 있다.


6.2. 그놈의 4차전[편집]



4차전 3회말 두산 1이닝 12득점 장면.

뭐니뭐니해도 시리즈 전체를 결정한 경기는 4차전. 이날 경기에서 삼성은 2회초에 8득점으로 한국시리즈 1이닝 최다득점기록을 세웠지만, 30분만에 두산이 12득점으로 그 기록을 갈아치워 버렸다. 결국 4차전 결과는 18:11로 두산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고, 한국시리즈의 승부추도 두산 쪽으로 확연히 기울게 된다. 5차전을 삼성이 간신히 잡긴 했지만, 이미 내준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어쨌든 시리즈가 끝나고 삼성이 우승한다고 장담했던 야구 전문가들은 변명하기에 바빴다(...).

이런 전설적인 패배의 원인 중 하나는 가뜩이나 한성깔 하는 성격이었던 외국인 에이스 발비노 갈베스다. 그는 정규시즌 말 잠적사건으로 팀의 불안요소로 떠올랐고, 4차전에서 핵폭발을 해버렸다. 갈베스가 일으킨 대화재를 끄기 위해 삼성은 김진웅을 내보냈지만, 젊은 에이스가 될 것이라 믿고 있던 김진웅은 잦은 등판으로 지쳐있었고, 새가슴이었다. 내보내는 투수마다 두들겨 맞는 꼴을 본 삼성팬들은 절망에 빠졌으며, 우즈가 친 투수앞 땅볼을 놓치는 박동희를 보고는 멘붕했다.[38] 삼성은 저주받았다는 삼성팬들의 울부짖음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7. 관련 문서[편집]




8.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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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혜천, 진필중[2]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10승 투수 단 한 명도 없이 우승한 사례다. 이를 반영하듯, 프로야구매니저에서 2001 두산의 투수진은 전부 코스트가 3코스트~6코스트로만 구성되어 있다.[3] 그해 이혜천은 9승 6패 3세이브 6홀드(홀드 부문 7위), 출장경기 수 10위(53경기), 방어율 6위(3.62), 탈삼진 10위(107) 등 전천후로 굴려지며 두산의 우승을 견인하였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는 전 경기 출장의 위업을 달성하며 혼자 2승을 거두었다. 0.5최동원[4] 다만 이 시즌에는 4위 싸움이 박터져서 4위와 8위와의 게임 차가 단 2게임밖에 나지 않았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그 해 롯데는 역대 최고승률 꼴찌(.457, 59승 4무 70패)였다.[5] 정규시즌 1위 삼성이 -13.5, 정규시즌 2위 현대가 -6.5인데 정규시즌 4위 한화가 4.5경기 차고 정규시즌 7위 SK, 8위 롯데가 6.5경기 차.[6] 당시 투수들 중에 2점대에 15승을 찍은 투수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타고투저[7] 그래서 당시 삼성의 투수코치였던 이선희"어떻게 두산한테 집니까? 두산에 (투수가) 누가 있다고…"라는 말을 한 것. 지금도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물며 당시에야…[8] 파머를 퇴출이 확정되고, 이태원에서 파머, 닐, 닐의 아내가 술을 마시다가 식당에서 시비가 붙는 바람에 닐도 같이 퇴출되었다.[9] 하지만, 쓸만한 좌완투수로는 전병호 밖에 없었고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하여 2001년 시즌이 끝난 뒤 SK와의 6-2 트레이드를 통해 오상민을 데려왔으며 다음 해 시즌 중에는 나르시소 엘비라를 영입하여 좌완선발 갈증의 한을 풀었다[10] 해당 시즌 4위 한화의 승률은 0.473에 불과했으며, 두산은 2승으로 가볍게 스윕승을 거두면서 1999년 승률 1위를 하고도 한국시리즈를 못간 한을 풀었다. 한화는 신인왕 김태균의 홈런을 앞세워 1차전 4:1로 앞서갔지만, 5회 우즈한테 쓰리런을 맞고 결국 패했고, 2차전은 1회 8실점을 해버리며 그대로 패했다.[11] 삼성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힘도 제대로 못 써보고 졌기에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 저주는 이듬해인 2002년에 이르러 깨졌다.[12] 프로야구 개막 이후로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물먹인 감독이 김응용 감독이다. 그 정도로 당시 삼성이 얼마나 우승을 갈망했는지를 보여준다.[13]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장[14] 삼성은 갈베스-전병호-김현욱-배영수-김진웅, 두산은 콜-최용호-이혜천-이경필-차명주.[타사중계2] KBS 제2라디오 전우벽-장건희[15] 당시 KBS 라디오 중계진이었던 장건희 해설위원의 멘트 中 1루가 비어있는 상황에 0S-2B(현행 2B-0S)에서 김동수하고 무리하게 승부볼 필요 없다고 얘기했었는데, 무리하게 승부 보다가 적시타를 얻어맞고 말았다.[16] 前 문화관광부(現 문화체육관광부) 장관[17] 박명환은 이 해 선발로 딱 5번 나왔다.[18] 원래 이혜천이 등판해있던걸, 이경필로, 그런데 이경필이 불을 지르자 차명주로, 그리고 차명주도 불을 지르자 조계현을 올렸는데, 3 실점을 하자 최용호를, 최용호마저 불을 지르자 진필중을 중무리 투수로 썼다.[타사중계4] KBS 제2라디오 전우벽-이용철 / SBS 스포츠 임용수-이효봉[19] 파일:external/blogfiles8.naver.net/%C0%FC%C0%CE%C8%AD%BD%C3%B1%B8_asssagtkim.jpg시구는 당시 SBS의 인기 사극 여인천하문정왕후 역을 그대로 분장하여 엄상궁에게 공을 받고 시구해서 화제가 되었다.[타사중계6] KBS제2라디오 전우벽-이용철[20] 프로야구 원년 개막일 출생자.[21] 잠실구장 역대 2번째, 포스트시즌 최초 장외홈런[22] 비교적 짧은 플라이라서 홈에서의 승부를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 해의 도루왕이었던 정수근이 전력으로 질주하여 태그 시도 이전에 이미 홈으로 파고들었으며, 포수였던 김동수도 공을 놓쳤다.[23] 2아웃 상황에서 김종훈의 3루 땅볼을 김동주가 여유있게 잡고서도 악송구를 하였고 이를 1루수였던 홍원기가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어서 이승엽의 중전 안타가 나와서 주자 1, 2루가 되었던 것이다.[24] 1982년 우승 반지는 2011년에 뒤늦게 제작했고,1995년 우승 반지는 제작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강병규가 공개했다.[25] 두산이 이 3번 중 2번을 기록했고, 상대도 공교롭게도 둘다 삼성 라이온즈였다!, 2013년에도 우승했으면 삼성을 상대로 세번 우승을 기록할 뻔했다.[26] 이듬해 두산은 승률 .504로 5위를 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 무승부가 2001년보다 적어서 승수는 2001년의 65승보다 1승 많은 66승을 기록했다.[27]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라인업 중 투수 라인이 제일 최약으로 손꼽힌다. 당장 선발진에 10승 투수가 없다는 것이 반증.[28] 역대 한국시리즈는 항상 경험이 풍부하고 투수력이 안정된 팀이 우승을 차지해 왔다. 즉, 이 시리즈가 유별났을 뿐. 위에 이선희 코치가 경기 후 저런 한탄섞인 코멘트를 했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이유다. 단적으로 3승을 먼저 올린 2013년의 두산 베어스MVP 4명을 보유했던 2014년의 넥센 히어로즈, 강력한 중심타선을 보유한 2016년의 NC 다이노스가 왜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는지16 두산 타선은 역대 20위 안에 드는 강타선이다. NC는 그 강한 중심타선을 가지고도 두산 타선보다 한 수 아래였다., 부실한 투수진과 빵빵한 타격의 팀컬러를 갖고 있던 1997~1999년 삼성 라이온즈와 제리 로이스터가 감독으로 있던 2000년 후반의 롯데 자이언츠가 왜 우승 근처도 못 갔는지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온다. 심지어 14.5게임차라는 역대급 업셋이 있었던 2018년 한국시리즈 역시 투수력만큼은 SK가 앞섰음을 생각하면 이 때의 시리즈만큼 충격적이라 하긴 힘들다. 괜히 이 때의 두산 베어스를 미라클 두산이라고 하겠는가? 야구는 투수놀음이란 격언이 전혀 맞지 않은 유일한 시리즈.[29] 득실차가 같았으면 양 팀이 KS 최다득점/최다실점 공동 1위를 할 뻔했다.[30] 시초는 1995년 OB 베어스의 기적같은 페넌트레이스 우승 이후 '미라클 OB' 였다.[31] 이 사례가 적용된 게 1997년 한국시리즈다. 당시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페넌트레이스 우승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홈구장인 무등 야구장이 아닌 잠실 야구장에서 1-2차전을 치렀고, 3-4차전은 무등 야구장에서 치렀다. 5차전 잠실 중립 경기는 해태가 홈 유니폼을 입고 후공을 했다.[32] 이 규정에 의해 서울팀이 없었던 1999년 한국시리즈는 잠실 중립경기가 열렸지만, 서울팀이 포함되었던 1998년과 2000년은 정규시즌 1위팀 기준 2(홈)-3(원정)-2(홈) 방식으로 열렸다.[33]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즌의 두산은 투수력이 좋은 팀이 아닌, 오직 타격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는 팀이기 때문에 리그에서 가장 큰 잠실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두산 입장에서는 홈 여부와 상관없이 큰 부담이 된다. 아니면 해태 때는 홈 어드밴티지 그런 거 없어도 우승을 잘만 했으니 이번에도 별 상관없다고 했을 수도 있고. 또한 이런 가설이 나올 정도로 삼성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은 아니었다고도 할 수 있다.[34] 잠실구장을 쓰는 팀이 진출할 경우 1 · 2 · 6 · 7차전을 정규시즌 우승팀의 홈구장에서, 3~5차전을 플레이오프 승리팀의 홈 구장에서 하는것으로 변경하였다. 이후 이 규정은 두 팀이 모두 30000명 이상의 수용규모를 가질때도 적용되었으며, 좌석 고급화에 따라 2010년에 25,000명, 2015년에 20,000명 이상의 수용규모를 가질 경우로 완화되었으며, 중립구장 규정은 최종적으로 2016년에 폐지되었다.[35] 원래대로라면 2차전에서 5차전까지 3연전을 치른 이후 대구로 이동했어야 하지만 중립구장 규정으로 4차전 이후 휴식일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정규시즌 우승팀이 가져야 될 체력적인 어드밴티지를 일부 상실한 것으로 분명 두산에게 이득이 된 부분이 맞다.[36] 홈팀 승률 56.41% : 원정팀 승률 43.59%[37] 삼성 .609, 두산 .508[38] 한국시리즈에서 백투백 홈런을 허용한게 원인이었는지, 해당 선수는, 2002년 시즌 중 방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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