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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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경과
3. 파장
4. 여담 및 유사 사건
5.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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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독일어: Sexuelle Übergriffe in der Silvesternacht 2015/16
영어: New Year's Eve sexual assaults in Germany

2015년 마지막 날과 2016년 1월 1일 사이, 즉 새해 맞이 시기에 독일[1] 쾰른에서 약 1,000여 명중동,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2]들이 행인 등을 대상으로 성폭력, 강도, 절도,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건. 특히 이 사건의 범인들은 여성들을 주로 노렸으며 대부분의 범죄가 성범죄와 함께 자행되었다. 독일 연방 내무부는 32명의 용의자 대다수가 북아프리카 출신이라고 밝혔다. # 32명 중 9명이 알제리인, 8명은 모로코인이며 시리아인은 4명이다. 이 중 18명이 난민 신청자라고 한다.

이 사건은 이슬람 난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동정선의를 철저히 짓밟고 유린한 충격적인 대규모 범죄 사건으로 인식되어 당시 유럽인들의 격노를 유발했다.


2. 사건 경과[편집]


2015년 마지막 날 밤 독일 쾰른 중앙역 부근 도심에서 대다수 북아프리카, 중동계 남성으로 이루어진 범죄자 1천여 명이 새해 축제를 즐기러 나온 여성들에게 수십 차례 성폭력을 가했다. 당시 촬영된 동영상에는 남성 집단에게 끌려가는 여성의 비명이 그대로 실리는 등 참상이 담겨 있었다. 오죽하면 이런 영상 전문인 LiveLeak에서조차 영상이 내려갈 정도였다. 또 쾰른 시내 한복판에서도 북아프리카와 중동계 출신 청년들이 거리 축제에 나선 여성들을 둘러싸고 몸을 만지거나 지갑과 휴대전화를 빼앗는 등 성폭력과 강도 행각을 벌였다.[3]

당시 성폭력·강도 등으로 경찰에 신고한 여성만 1,200여 명에 달했으며 최소 24건의 강간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공영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이 반중동 정서 확산을 우려해 보도 검열을 했다는 설이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새해 첫날부터 쾰른 지역 매체들과 일부 전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쾰른 사건이 예상보다 심각했음이 드러났는데 경찰이 힘을 쓰지 못할 정도로 치안에 구멍이 생겼다. 역에는 80명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경찰과 70명의 연방경찰관들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이들은 일반 경찰관으로 소요 사태나 다중범죄 대응에 필요한 훈련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한 경찰관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것을 난민 무리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여경에게까지 강간 미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그러나 주경찰 기동대는 경찰 수뇌부의 상황 판단 미숙으로 끝내 출동하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관의 전언에 따르면 한 남성은 "나는 시리아인이다. 너희는 나를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메르켈 여사가 나를 초청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신분이 확인된 용의자 중 시리아인은 4명 있었다.

한편 같은 날 베를린,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등지에서도 이민자들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 범죄 사례가 다수 신고되어 독일 사회의 이민자 반대 정서가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 와중에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은[4] "피해자 여성들 스스로가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낯선 사람들과 '한 팔 간격'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라"는 발언을 해 온갖 논란에 올랐다. #

거기다 독일 정부가 용의자들 가운데 시리아 출신 난민 신청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고의적으로 은폐하려고 했다는 점이 드러나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기사에 따르면 1월 2일 작성된 경찰 업무일지에서 신원 확인 시 대다수가 연방이민난민청이 발급한 난민신청서를 제시했다고 하며 여기에는 국적이 기록되므로 확인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쾰른 경찰국장과 쾰른 시장이 "출신국과 신분 지위를 비롯한 용의자 신분 일체에 관한 세부 정보가 없다"고 인터뷰에서 발언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성폭력 사태가 핀란드스위스에서도 발생했다. # 12월 31일 총 2만여 명이 모인 헬싱키 중앙 광장에서 "광범위하게 성희롱이 자행됐다"고 핀란드 경찰에 보고됐다. 헬싱키 중앙역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3건 발생했으며 이라크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범인으로 지목되었다.[5] 취리히에서도 12월 31일 성폭력 사건이 6건 발생했다. 이들은 북유럽 국가들의 난민 정책에도 영향을 끼쳤다.

쾰른에 이어 함부르크, 뒤셀도르프, 프랑크푸르트독일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성폭력 사건 신고가 계속되었다. 함부르크에서는 신고 확인되고 성폭력으로 확인된 사건만 50건, 뒤셀도르프에서도 11명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스위스와 가까운 독일 남부의 국경 도시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도 시리아 출신 남성과 청소년들이 독일 현지인 14살, 15살 소녀들을 집에 가두고 윤간[6]했다가 체포되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8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이 사건도 범죄자들이 체포된 지 수 일이나 지난 7일에야 언론에 보도되어 "이 사건도 마찬가지로 보도 검열이 가해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북서부 도시 빌레펠트에서도 북아프리카 출신인 150여 명의 남성이 유명 나이트클럽과 거리에서 독일 현지인 여성들을 성추행했다. #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혐의는 무수히 많지만 실제로 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서 엄청난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만약 이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고 흐지부지한 채 난민들을 풀어 준다면 여론은 더욱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월 18일 알제리 출신 난민 신청자 2명을 이 사건의 용의자 중 하나로 처음 체포했다. # 한편 독일은 알제리, 모로코(이후 튀니지도 추가) 등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 신청자는 난민 보호소가 아니라 추방자 대기 시설에서 대기시켜 난민 지위 판별 절차를 기다리도록 했다. # 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당일 독일의 12개 주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

1951 UN 난민협약 1F조는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경우 난민 심사에서 제외시킬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은 이 성폭력 범죄자들이 난민 신청자라고 하여도 강제송환금지 원칙을 위반하지 않고 추방이 가능하다.[7] 단, 독일은 1984 UN 고문방지협약 비준국이며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국가다. 유럽인권재판소는 "Chahal v. The U.K., (22414/93) [1996]" 판결에서 고문,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의 추방을 금지시킨 바 있다. 즉, 시리아인 범죄자는 난민 인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추방은 불가능하다. 다만 알제리모로코, 튀니지는 일반적으로 협약 난민(convention refugee)을 배출하지 않는 국가이며 고문의 위협이 미미하므로 이들 국가 출신의 범죄자에게는 추방될 운명만 남게 되었다.


3. 파장[편집]


Cologne Sex Attacks: One More Outrage Could Mean the End of Merkel

쾰른 성폭력: 대중이 한 번만 더 들고 일어난다면 메르켈 정권은 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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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푸트니크 헤드라인

이 사건으로 독일은 발칵 뒤집혔다. 안 그래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난민 적극 수용 방침에 대한 불만이 많은 판에 난민 신청자라고 입국을 허가해줬는데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그대로 넘어가기는 불가능했다. 독일에서는 큰 파장이 일어났고 쾰른 경찰국장이 사임했다. 1월 10일 초기 발표와는 달리 하이코 마스 법무장관은 이날 현지 언론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무리로 모여 범죄를 저지른 것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이번 사건은 미리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전에 기획된 일종의 조직 범죄일 가능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또 사건 이후 1월 16일 독일 제1공영방송 ARD의 조사에 따르면 메르켈의 난민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51%로 늘어났으며 에어건후추 스프레이호신용품의 판매량이 급증하였다.[8]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으로 "불법을 저지른 난민 신청자들을 추방하기 쉽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분노한 독일 국민이 어떻게 수용할지는 미지수에 빠졌고 독일 대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후 독일뿐만 아니라 난민 신청자를 수용했던 핀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국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파장이 더 커졌다.

중동 난민을 수용하려던 국가, 대표적으로 미국의 난민수용 역시 백지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캐나다는 계속해서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고 2016년 1월 19일 정도 즈음이면 더 이상의 이변이 없는 한 만 명째 난민[9]이 캐나다에 도착할 것으로 보였다. 토론토 AM640 라디오 보도

유럽과의 차이점이라면 캐나다는 UN 난민신청센터에 내전 이전의 신분증 등록한 가족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1951 UN 난민협약의 정의에 부합한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가족이 없는 성인 남성은 일단 제외한다. # 처음 이렇게 발표했을 때는 트뤼도 총리의 내각에서 "남녀 50:50으로 나누고 2015년이라서 그렇게 했다"는 발표 연설을 비꼬면서 남녀차별을 하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미혼 남성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로 백수로 지내면서 사고칠 가능성이 비교적 크지만 가족을 받아들일 경우 특히 아이들은 캐나다에 금방 동화될 가능성이 높아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유럽에서처럼 훗날 사고칠 일이 드물고 캐나다에 완전히 정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민 협약은 난민을 단지 임시적인 보호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 해결(durable solu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이를 충실히 따라 동화 정책을 펼친 것이다. 국제사회는 내전을 비롯한 문제가 호조가 되었다가 추후 급악화가 되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해 왔기 때문에 고작 5년, 6년간 상황이 나아졌다고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난민 협약의 난민(convention refugee)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이들이 PTSD를 비롯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것은 당연한데 종전되었다고 모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심각한 인권 문제다.

그러나 독일은 캐나다와는 다르게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를 받은 것이며 그 수가 100만에 이른다.[10] 2013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수용소에 난민 신청자들을 넣어 통제해 왔으나 이후에는 불가능에 다다랐다. 즉, 원래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될 사람들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한편 메르켈 총리는 1월 30일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은 내전이 끝나면 귀국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은 80여 명이었으며 이 중 성범죄 피해자는 26명이었다. 독일 당국은 사건 이후 추가적인 조사와 신고 접수 과정서 추가적인 피해자가 확인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날 추가 신고가 접수되어 피해를 입은 사람이 80명에서 12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독일 경찰은 과학적인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난민 유입이 범죄율 증가에 미미한 영향을 끼쳤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중 심리 측면에서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기 때문에 난민 반대자들의 메르켈 정부를 향한 압박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무차별적인 난민 신청자 수용 정책을 폐기하고 하루빨리 난민 신청자 입국자 수를 제한해야 하는 법률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동유럽 유대인의 반사회적인 행동의 빌미 때문에 생겨난 반감 의식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사건의 파장이 독일에 극우[11] 정부가 들어설 계기를 제공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낳았다.[12] 실제로도 당시 그나마 친난민 성향을 띄던 서유럽 국가인 독일마저 영국동유럽 국가들처럼 반난민 국가로 돌아설 분위기를 보여주었으며 범죄를 저지르고 당당한 '난민 신청자'들의 태도가 이를 부채질했다.[13]

평상시 독일에서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에 대한 심사를 진행한 후 난민(convention refugee)으로 판결이 나는 경우는 20%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LSE 다만 당시 시리아인 무조건 수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2015년 입국한 110만 명 중 50% 정도가 인정을 받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과연 언제 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였다. 일단 공식적으로 독일에서 난민 신청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고 취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When refugees want to work in Germany, <DW> 한국도 비슷해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당시 제주도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심사결정 이전까지 나갈 수 없는 출도 제한이 있었고 취업도 6개월 동안은 못 하게
규제되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한꺼번에 한 곳에 너무 몰리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특별히 취업을 제한적으로 허가했다.] 빨리 판결을 내려야 추방하거나 독일 사회로의 동화가 가능한데 그것이 지연되었다는 것이다.

당장 난민 신청자 유입으로 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2015년 9월 연방난민이주위원회장이 사실상 경질이 되고 후임자를 내정에 어려움을 겪는 등 정부부처부터 헛짓하고 있었으며(thelocal.de) 2016년 1월에는 시리아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신청인[14] 200명이 참다 못해 독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Rheinische 이 중에는 3년 이상을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는데 3년 전인 2012-13년이면 독일에 유입되던 난민 신청자가 연 5만명도 안 되던 시절이다.

결국 이 사건의 주모자 중 대부분의 국적인 북아프리카(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국가들을 안전 국가에 포함시켰다. 안전 국가에 포함되는 것은 난민으로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난민'으로 간주하여 즉시 추방되는 것. # 독일 이외의 유럽 국가들도 경제적 난민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 국가'를 늘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또 다른 비판을 받았는데 해당 국가들은 동성애자를 처벌하는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이 결정으로 인해 해당 국가 출신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독일에 난민 신청을 해도 반려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4. 여담 및 유사 사건[편집]


파일:external/cbsnews1.cbsistatic.com/germany.jpg

강간(rape)과 난민(refugee)이란 단어를 합성한 Rapefugee(강간민)란 단어가 유행했다. 그동안 피해를 접수한 여성만 500명에 달했다.

이런 난민들의 행패 때문에 유럽에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총기와 호신용품 판매가 크게 늘었는데 한 예로 오스트리아에서는 총기 판매가 2015년에 대비해 350% 폭증하였다. #

이런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쾰른시에 위치한 '알 타우히드' 모스크이맘인 사미 아부 유수프가 러시아 방송에 출연하여 사건은 "반라에 가까운 옷차림으로 향수를 뿌리고 나온 여성들의 잘못"이라면서 "그런 차림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북반구에서 1월 1일은 한겨울인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 이런 말을 한 이맘이 바보일 리는 없고 카타르이슬람 근본주의 선교 코인을 노골적으로 노린 발언이다. 실제로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선교사들 중 비무슬림 여성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후 니캅이나 부르카를 쓰게 만드는 근본주의자들을 후원해 왔다. 이슬람 선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비무슬림과 무슬림 사이에 화합을 주장하는 사람보다 "히잡 안 쓴 여자는 더러운 치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후원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유튜버도 막장 관종 유튜버가 돈 더 많이 벌잖아 '니캅이나 부르카를 입지 않으면 모두 다 이유 막론 음란한 여성들'이라는 주장인데 이는 히잡만 쓰고 니캅을 쓰지 않은 온건파 무슬림들까지 '음란한 위선자'라고 저격하는 발언으로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해당 이맘은 방송으로부터 하루 뒤 자신의 인터뷰가 예상과 다르게 독일에서 뽀록나자 부랴부랴 방송사에서 자신이 한 말을 오역했다고 주장하면서 범죄자들을 옹호하지 않으면서 단지 가볍게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린 여성들과 약과 알콜에 취한 젊은 남성들의 조합을 가능한 설명으로써 말하려던 것이라고 독일 신문사를 통해 변명했다. #

팔레스타인 출신 시리아 기자는 "범죄자들은 피해 여성들과 자기 자신만을 곤경에 빠뜨린 게 아니라, 고향을 떠나 새 삶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곤경을 빠뜨린 것"이라고 탄식했다. #

공교롭게도 나치 독일 패망 이후 70년간 금서였던 '나의 투쟁[15]'의 재출간이 이 사건의 파장과 겹쳤고 독일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한다. 다만 증오 범죄 차원에서 그런 건 아니고 오히려 히틀러의 사상에 대한 호기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실제로 책 안에는 히틀러의 주장에 대한 반박 주석을 2천 개 이상 넣어서 히틀러가 주장한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주었다.[16] 기사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를 당한 적이 있는 프랑스 언론 샤를리 엡도는 이 사건으로부터 얼마 전에 표류하다 죽어서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던 3살 아이 아일란 쿠르디를 두고 "걔가 살아서 어른이 되어 봤자, 같은 중동인인 저들처럼 성범죄를 저지르기밖에 더하겠냐"고 모욕하는 만평을 올렸다. # 샤를리 엡도를 옹호하는 자들은 "어린이 난민 신청자 1명의 죽음을 주류 언론이 감성팔이식으로 떠들고, 이에 넘어간 유럽 각국 여론이 합리적인 판단 없이 난민 신청자를 받아준 것이 유럽 난민 사태로 이어진 것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장 링크된 기사를 봐도 만평이 고인드립으로 점철되어 있오 비난도 엄청 많이 받았다. 요르단에선 맞대응 만평도 올라왔고 이에 라니아 왕비가 리트윗으로 호응하기도 했다. #

한편 러시아 무르만스크에서는 "노르웨이에서 '나쁜 행동'을 이유로 러시아로 추방된 중동 및 아프간 난민 약 50명이 현지 나이트클럽으로 놀러가 러시아 여자들을 집단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현지 남성들이 몰려와 성추행 범죄자들을 구타했다"는 주장과 함께 "난민을 구타한 러시아인들은 아무도 체포 및 기소되지 않았으며, 달려온 러시아 경찰이 되려 구타에 가세해 난민들을 체포했다"고 했다. 결국 난민 33명이 쇠고랑을 찼고 이들 중 18명은 병원실려갔다는 주장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으며 자극적인 사진 자료와 함께 인터넷상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었다. 그러나 이는 가짜 뉴스확인되었다. 언급된 사진 자료는 경찰이 난민을 구타하는 장면이 아니라 2013년 6월 하카시야에서 결혼식 피로연 중에 러시아인 의사와 경찰이 서로 싸우는 장면이다. 해당 경찰이 내부 감찰을 받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지, 난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진이다. 기사 내용에 나온 나이트클럽 역시 애초에 아랍인들이 있지도 않았으며 신고 전화가 접수되어 확인하였으나 허위 신고였다고 한다. 중간에 오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정정하였다. 애초에 오보에서도 50여 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러시아 현지 언론이 아닌 미국 언론을 인용해 기사를 내보냈는데 해당 기사에 올라온 자료 사진은 난민과는 전혀 상관 없는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의 싸움 장면이다.

핀란드에서는 2016년 2월 24일에 성폭력을 저지른 이라크 난민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 쾰른 경찰은 2016년 3월 10일에 집단 성추행을 저지른 4번째 용의자를 구금했다. #

퀄른 성폭행 사건 중 하나는 거짓말로 밝혀졌다. 납치되어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던 13세 러시아계 독일인 소녀가 실제로는 당일 밤에 친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필 러시아는 이 사건을 두고 독일 정부를 비난했던 터라 난감해졌다. 해당 소녀의 부모에 따르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17]

2016년 5월 6일 쾰른 성폭행 용의자에 대한 첫 재판에서 절도죄는 인정되지만 성폭행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성폭행 죄목으로 기소가 성립한 사례는 없다고 한다.

5월 마지막 주말 다름슈타트의 음악 축제에서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

10월에는 독일의 난민 캠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19세 여대생이 아프가니스탄 청소년 난민에게 성폭행과 더불어 살해까지 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의료 봉사를 하러 왔다가 해당 캠프의 난민에게 참변을 당했다. 이 사건은 거의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급의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부랴부랴 즉시 "난민 수를 제한하고 부르카, 니캅 등 보안을 해치는 옷차림을 제재하는 규정을 만들겠다"고 발표하여 여론을 진화시켜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전체 난민 문제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독일인들의 반난민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 참고로 이 사건 자체를 다룬 기사가 원래 링크되어 있었으나 제주도 난민 사태 이후 어째서인지 네이버가 기사를 삭제했다. 따라서 현재 링크된 기사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메르켈의 의견만을 다룬 기사다.

그리고 11월에는 독일에서 유학 중이던 중국 유학생 2명을 성폭행한 이라크 난민이 체포되었다. #

2017년 1월 1일에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이민자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19명의 여성들을 추행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

이런 난민들의 만행 때문에 일명 '안전 속바지'(Safety shorts)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실상 정조대 아니냐는 평가도 있는데[18] 누군가 강압적으로 찢으려고 하면 즉각 130데시벨 이상의 경고음이 울린다. #


5. 여론[편집]


독일인들은 속내를 잘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지 난민 문제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거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2016년 주 선거에서 작센 안할트 지역에서 난민 유입을 반대하는 AfD는 20% 이상의 지지를 받아 제2의 다수당이 되었다. 이 지역이 본래 통일 이후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던 걸 감안하면 이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서독 지역인 바덴 뷔어템베르크와 라인란트 팔츠 지역에서조차 이 정당이 10~15%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제3당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정당이 불과 3년 전에 창당되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약진을 예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난민들의 대거 유입과 쾰른 사건이 터진 후 독일인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겠으나 유럽의 반이슬람 정서와 우경화가 심상치 않았음을 보면 AfD의 성장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2021년에 열린 독일 연방하원 총선에서는 겨우 11%밖에 득표하지 못했으며 결국 좌파당과 함께 몰락했다. 그리고 만약 AfD가 운 좋게 20%를 얻었더라도 AfD와 연정하려는 정당이 없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여당이 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 난민도 싫지만 AfD에 대해서도 그다지 좋을 것이 없다는 여론이 강했는데 선거에서 드러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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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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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외국 정상
에마뉘엘 마크롱 · 프랑수아 올랑드 · 니콜라 사르코지 · 마거릿 대처 · 보리스 존슨 · 테레사 메이 · 데이비드 캐머런 · 조지 W. 부시 · 버락 오바마 · 도널드 트럼프 · 조 바이든 · 블라디미르 푸틴 · 시진핑 · 아베 신조 · 쥐스탱 트뤼도
관련 독일 정치인
헬무트 콜 · 게르하르트 슈뢰더 · 올라프 숄츠 · 아르민 라셰트 · AKK · 프리드리히 메르츠 · 아날레나 베어보크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기타
앙겔라 메르켈 내각 · CDU · 동독
메르켈 내각
역대 내각
제1차 메르켈 내각 · 제2차 메르켈 내각 · 제3차 메르켈 내각 · 제4차 메르켈 내각
여당
CDU
연립여당
CSU · 사회민주당 · 자유민주당
사건사고
2016년 독일 뮌헨 총기 난사 사건 · 2016년 독일 열차 테러 · 2016년 베를린 트럭 테러 ·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 2021년 독일·베네룩스 폭우 사태
기타
유로화 사태 · 그리스 경제위기 · 유럽 난민 사태
파일:파란색 깃발.svg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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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일 외에도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범죄가 벌어졌다.[2] 'Asylum'이 옛 어투로 수감소 및 정신병원이라는 뜻도 있지만 난민 혹은 망명된 사람들의 보호소를 뜻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고로 문맥상 정신병원을 찾는 사람이 아니고 난민 신청자가 맞다.[3] 신년 축제 도심서 중동·북아프리카 이민자 1,000여명 집단 성폭행 저질러,<세계일보>, 2016-01-05[4] 기민당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헨리에타 레커 시장은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2015년 10월 시장선거 유세 중에 반난민 성향의 주민에게 흉기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다. #[5] 그나마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핀란드 경찰은 대규모 경찰 병력을 투입해 성범죄를 자행하던 난민 15명을 체포하고 나머지 무리를 해산시켜서 쾰른처럼 대형 참사로 번지진 않았다.[6] Two-teenage-girls-gang-raped-by-four-Syrian-nationals-in-southern-Germany, <Telegraph>[7] 따로 말하면 난민(convention refugee)으로 인정을 받은 후에 비정치적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강제송환금치 원칙에 따라 추방이 불가능하며 자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아 감옥에 보내야만 한다.[8] 메르켈 난민 정책 반대 51%..."성범죄에 에어건 판매급증", <연합뉴스>, 2016/01/16[9] Convention refugee. 상술된 유럽의 난민 신청자(asylum seeker)와는 다르게 1951 UN 난민협약의 조건에 부합해 법적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을 뜻한다.[10] 난민 인정을 받으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해서 이렇게 많은 수가 '난민'일 수 없다. 특히 UN 기준을 만족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캐나다에 온 경우는 진짜 시급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11] 이 극우 세력들은 아울러 반(反) 나토, 반(反) 유럽연합 성향이기도 하다.[12] 다만 그렇다고 독일이 히틀러 시절로 돌아갈 일은 없다. 이들은 네오 나치가 아니라 그냥 독일 국가주의 성향을 띄며 오히려 히틀러 이전 프로이센 성향에 가깝다.[13] 현재 독일은 독일 제국이 아프리카에서 저질렀던 잔악한 식민통치, 나치가 벌였던 인종 청소와 대량 학살의 부채 때문에 난민이나 이민, 외국인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기 어렵다는 약점을 가진 것과 약탈적 성문화를 가진 일부 이슬람권 출신들의 성향이 맞물려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14] 솔직히 시리아에리트레아 출신 난민 신청인들은 현지 상황 때문에 거의 난민 승인이 난다고 봐야 한다. 이런 경우 신분 확인 및 정보 당국으로부터의 안보 확인 절차에 신체검사 정도만 끝나면 일단 준 난민급으로 대우해 취업 비자를 내 주는 정도의 정책은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들이 일을 시작하면 돈을 덜 줘도 되기 때문에 양쪽이 이득인 셈. 독일에서는 함부르크시 차원에서만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독일의 난민 신청인들은 공식적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어 함부르크로 갈 수 없다.[15] 저자 히틀러가 사망한 후 가족이 없었던 히틀러 대신 바이에른 주 정부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자 사후 70년이 지났기 때문에 저작권이 풀려서 누구나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독일에서는 히틀러 미화가 금지되어 있지만 그냥 출판하는 건 상관 없고 외국에서 히틀러를 찬양하는 쪽으로 주석을 달아 출간해도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16] 사실 '나의 투쟁'은 저자 본인도 부끄러워했던 책이다. 나의 투쟁 문서 참조.[17] 다만 이슬람 선교단체는 이 사례 하나가 마치 전체인 양 부풀리면서 물타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18] 정조대는 편견과 달리 SM 플레이 같은 특수한 성관계를 위해서 개발되었다는 게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