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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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띠에
Car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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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Cartier International SNC
설립
1853년 (171주년)
설립자
루이프랑수아 카르티에 (Louis-Francois Cartier)
CEO
시릴 비그네론 (Cyrille Vigneron)
업종
하이 주얼리, 시계
본사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파리

모기업
[[리치몬트|
]]
홈페이지
파일:까르띠에타원로고.pn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까르띠에 메종.jpg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까르띠에 메종 청담
2016년 6월 오픈


1. 개요
2. 국내 매장
3. 역사
4. 컬렉션
4.1. 주얼리
4.1.1. 쥐스떼 엥 끌루(Juste un Clou)
4.1.2. 러브(LOVE)
4.1.3. 아뮐레뜨 드 까르띠에(Amulette de Cartier)
4.1.4. 트리니티(Trinity)
4.1.5. 클래쉬 드 까르띠에(clash de cartier)
4.2. 시계
4.2.1. 산토스 (Santos)
4.2.3. 발롱 블루 (Ballon Bleu)
4.2.4. 롱드 (Ronde)
4.3. 가죽제품
4.4. 향수
5. 앰버서더
6. 기타



1. 개요[편집]


리치몬트 그룹에 속한 프랑스명품 주얼리 브랜드이다.

보석, 시계 등 귀금속을 주력 상품으로 생산하는 브랜드이며, 핸드백, 지갑이나 패션 제품도 생산을 한다. 당시로서는 세공이 어려웠던 백금을 주얼리에 적용하는 등 보석의 역사에 있어 영향력을 가진 브랜드이다.

총 매출 기준 3대 명품 시계 브랜드[1](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이자 총 매출 톱 4 보석 브랜드[2](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불가리, 티파니)로 꼽힌다.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티파니의 라이벌로서 유럽을 대표하는 주얼리 브랜드로 언급된다. 티파니가 젊은층을 공략하기 위해 폭넓은 가격대의 제품을 내놓으며 예쁘고 발랄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라면, 까르띠에는 살짝 더 높은 나이대를 타겟으로 하며 우아하고 클래식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라인업과 제품 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그러한 인상을 풍긴다는 의미. 오히려 라인업끼리 비교해보면 티파니의 디자인은 대체로 무난한 반면에 까르띠에의 쥐스떼 엥 끌루, 러브, 클래쉬 등은 매우 파격적이고 과감하다.)


2. 국내 매장[편집]


시계류만 판매하는 매장은 정식 매장이 아니며 보석과 시계 모두 다루는 매장이 정식 부띠끄이다. 매장은 정식 부띠끄만을 언급한다.[3]


시계 매장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보석까지 함께 판매하는 정식 매장은 매우 적다. 3대 명품 중 하나인 루이 비통[5]보다 매장 수가 훨씬 적을 정도로 매장이 많지 않으며, 입점기준 또한 까다롭다.[6] 귀금속 업계에서 까르띠에의 위상을 생각하면, 입점 기준이 그만큼 높다고 볼수도 있다. 전라도충청도엔 아직 매장이 없으며, 과거에는 대백프라자에도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개점하면서 매장을 철수했고, 현대 대구점은 22년 3월에 철수했다. 백화점 기준 전국 10개의 매장이 있으며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는 복층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러 백화점에서도 상당히 큰 매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시계나 주얼리 매장은 의류나 잡화 브랜드에 비하여 큰 규모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층을 할당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매우 높게 보는것이다. 실제로 명품 시계/주얼리 브랜드 중 복층 매장을 운영하는 브랜드는 까르띠에와 반 클리프 앤 아펠이 유이하다.[7]

청담동에 위치한 플래그쉽, 메종 까르띠에는 2008년 오픈 당시 아시아 최초 오픈이었다. 이후 계속 영업하다가 해당 부지와 건물을 샤넬이 플래그쉽을 열기 위해 구입하면서(..), 인근으로 이전했다[8] 이전한 위치는 이전에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있던 자리. 2016년 이전했는데 상당히 빠르게 공사에 들어가 리뉴얼해 오픈했다.

면세점은 주로 롯데와 신라 면세점 매장에 입점해있다. 청담동에 아시아 최초로 까르띠에 메종을 선보이며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으나 샤넬에게 건물을 매각 후 바로 옆[9] 옆 건물로 이전하여 까르띠에 메종 청담으로 다시 오픈했다.[10]


3. 역사[편집]


까르띠에 설립자인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화약동 제조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손기술이 좋았던 그는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보석세공 견습사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몽고트로이가 31번지의 보석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까르띠에 최초의 시작. 견습일을 하던 중에 그의 사장 아돌프가 갑작스럽게 죽자 견습생이였던 그는 자기의 스승의 회사를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메종 까르띠에’로 이름을 변경한다

까르띠에가 설립된 곳인 프랑스가 프랑스 혁명 이후로 사회가 안정되고 파리 곳곳에서 호화스러운 파티와 무도회가 열렸다. 호화로운 파티에 참석하는 귀족들의 치장을 위해 쥬얼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까르띠에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날히 발전해가는 도중 프랑스 황제의 사촌이던 마틸드 공주가 까르띠에를 방문했고 그의 작품에 매료되어 공주의 입소문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어 인지도가 큰 지금의 까르띠에로 발전하게 되었다.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당시 파리 상류층의 중심부 이탈리아 대로로 사업장을 옮겼다.

1874년 루이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아들 알프레드에게 일을 가르치며 대를 잇게 한다. 그리고 또 한 세대가 지난 1898년 알프레드는 자신의 첫 번째 아들인 루이와 함께 회사를 경영한다. 1899년 까르띠에는 현재로 치면 서울의 청담동 명품 거리와 같은 명품 거리 뤼 드라 빼 13번지에도 사업장을 열었고, 세 형제 중 사업 능력이 가장 뛰어났던 첫째 루이가 뤼 드라 빼 매장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알프레드는 자신의 세 아들들에게 회사를 맡기며 세계적인 회사로의 도약을 준비한다.


파일:까르띠에 부티크_뤼 드 라 빼 13번지.jpg

파리 뤼 드 라 빼 13번지에 위치했던 까르띠에 부티크

1902년에는 뉴욕런던에도 지점을 열게 되었다. 두 줄로 된 흑진주 목걸이와의 교환으로 얻은 뉴욕 5번가의 모트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사의 본부가 된다. 이미 이시기에 까르띠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보석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었다. 영국의 왕자가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고 칭송한 것은 유명한 일화. 왕위 대관식에서 쓰일 왕관 제작도 맡았다. 왕관을 만든다는 것은 최고의 보석사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904년 에드워드 7세는 영국 왕실의 공식적인 보석상으로 인정했다. 이와 같은 유명세와 인정은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이집트 왕실, 올리언즈 일가, 모나코 왕국, 알바니아 왕실까지 이어졌다.

루이를 비롯한 세 아들들은 최고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 세계 곳곳을 다녔다. 러시아, 페르시아 지역, 인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견한 아름다운 보석은 곧 까르띠에 상품이 되었고, 당시 제작된 쥬얼리 중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디자인으로 남았다.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던 루이 까르띠에는 수 많은 유산을 남겼다.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백금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보석계에 혁신을 가져왔고, 보석상으로 시작했지만 손목시계 제작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파일:Cartier-Santos-und-Alberto-Santos-Dumont-Opener.webp

루이 카르티에가 산토스 뒤몽에게 선물한 시계[11]
1904년, 친구인 산토스 뒤몽에게 선물하기 위해 2년간에 걸쳐 디자인한 산토스 시계는 시계 제조의 현대적인 디자인의 손목시계로 알려져 있다. 까르띠에가 시계로도 알아주게 만든 장본인. 1917년 최초로 만들어진 탱크 워치는 매우 유명한 디자인이며, 미스터리 클락, 폴딩 버클 등의 특허 상품도 대표작.


4. 컬렉션[편집]



4.1. 주얼리[편집]



4.1.1. 쥐스떼 엥 끌루(Juste un Clou)[편집]



파일:external/www.lebook.com/clourouge.jpg

저스트 엥 끌루 브레이슬릿[12]

보이는 것과 같이 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 컬렉션이다. 러브 브레이슬릿을 디자인한 알도치풀로가 1970년대에 디자인한 주얼리 컬렉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여 출시한 디자인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4.1.2. 러브(LOVE)[편집]



파일:까르띠에 러브 팔찌.webp

LOVE

이 컬렉션은 말그대로 사랑[13]에 관련이 깊은 컬렉션이다. 브레이슬릿의 경우 착용하는 법이 특이한데 착용하지 않을경우 2개로 나누어져 있어 서로 맞게 겹친 다음 특수 스크류 드라이버로 나사를 잠구는 식으로 착용한다. 이 착용법에는 서로의 사랑을 봉인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의미에 맞게 결혼 예물이나 커플들이 많이 사용한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다.

까르띠에의 러브 팔찌는 워낙 스테디 셀러이다 보니 금은방에서 제작해서 판매하는 ST 모조품도 상당히 많다.(...)

기본 구성 상 문제인지 탈부착이 힘들고 자주 분리되어서 비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매장 직원들도 풀로 붙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

실제로 반클리프 아펠의 뻬를리 시그니처 팔찌와 많이 비교되는 제품인데, 탈착용의 불편함 때문인지 뻬를리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편.

4.1.3. 아뮐레뜨 드 까르띠에(Amulette de Cartier)[편집]



파일:external/kdfnews.com/cartier_ad_01.png


파일:external/bagaholicboy.com/cartier_amulette-de-cartier-collection3.jpg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

보석에 따라 상징되는 희망이나 소망, 맹세가 존재한다. 아뮬레뜨 드 까르띠에는 각각의 보석이 갖는 상징을 기초로 행운을 부르는 주얼리이다.

이 외에도 브레이슬릿, 링, 네크리스, 이어링의 종류가 있으며 각각의 보석에 따라 많은 제품이 존재한다.


4.1.4. 트리니티(Trinity)[편집]




파일:cartier_trinity_rings_logo.jpg


파일: cartier_trinity_rings.jpg

트리니티 반지

1924년에 탄생하여 거의 100년이 된, 주얼리 업계 전체로서도 매우 근본있고 유서깊은 라인업이다.

루이 까르띠에의 친구인 장 콕토(Jean Cocteau)는 20세기 초중반 시, 영화, 그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재능있는 예술가였다. 그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착용할 우정반지로서 까르띠에에게 의뢰하여 탄생한 반지가 바로 이 트리니티였다는 설이 있으며, 한편으론 콕토가 30살때 자신의 연인인 레몽 라디게(Raymond Radiguet)에게 선물한 3개 링으로 이루어진 반지에서 모티브를 따 까르띠에가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다. 참고로 라디게는 당대 유명한 소설가이자 극작가였으며, 당시 16세소년이었다. 말 그대로 남자의! 남자를 위한! 반지다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트리니티(trinity)라는 이름답게 핑크골드(혹은 로즈골드), 옐로골드, 화이트골드로 만들어진 3개의 반지가 영구적으로 분리할 수 없도록 얽힌 형태이다. 핑크골드는 사랑(love), 옐로골드는 신의(fidelity)[14], 화이트골드는 친절(friendship)[15]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구매하는 본인 내지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과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동서고금 숫자 3은 신성한 세 가지 키워드를 나열하는 데 자주 사용되므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 예시:
 - 부(富) / 명예 / 건강
 - 믿음 / 사랑 / 소망
 - 성부 / 성자 / 성령
 - 본인 / 배우자 / 자녀
 - 과거 / 현재 / 미래
 - 진(眞, 진리 내지 지식) / 선(善, 윤리 내지 도덕성) / 미(善, 아름다움),
 - 탄단지, 조식/중식/석식, 머리/가슴/배

이 가운데 핑크골드가 메인 반지로서 외부에는 Cartier 로고가, 내부에는 사이즈 / 일련번호 / 18K의 금 소재를 의미하는 Au750 등이 음각으로 새겨져있다. 따라서 오랜시간 사용함에 따라 자연스런 마찰 등으로 내부 일련번호(serial code)가 식별이 불가능해질 경우 보증서와의 일치여부 확인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16]





4.1.5. 클래쉬 드 까르띠에(clash de cartier)[편집]


스터드 디자인으로 강렬한 이미지이다.



4.2. 시계[편집]


까르띠에는 시계 브랜드로서도 매우 유명하며, 세계 최초로 현대적 손목시계를 만든 브랜드이다.[17][18] 헤리티지가 매우 중요한 시계 시장에서 이러한 상징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시계 분야 내에서의 까르띠에의 위상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보석 브랜드로써도 매우 유명하고 시계의 가격대도 주력 제품은 여성용 시계가 400~500만 원 사이, 남성용은 800~1000만 원 선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상품인 탱크 머스트가 4~500만원 선이다.[19], 기본 천만 원대 이상인 롤렉스보단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물건 구하기도 어렵지 않기 때문에 이에 힘입어 인지도 높은 예물 시계 브랜드 TOP 3에 해당되는 의 한축이며, 2021년 모건스탠리의 조사 결과 오메가를 제치고 2위로 올라갔다. 이제 롤렉스, 까르띠에, 오메가 순으로, 여성 시계 성장의 수혜를 입은 듯하다.

전차에서 영감을 받은 탱크,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로 인정받는 산토스, 2000년대에 출시한 남성용 시계 발롱 블루 등 주옥같은 모델들이 많다. 주로 다이얼에 로마자 인덱스를 새기는 편이며, 외형과 마감 면에서도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자사 무브먼트의 내구도는 다소 낮은 편이다. 까르티에는 5년에 한 번씩 자사의 오버홀 서비스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으며, 오버홀없이 계속 사용할 경우 실제로 (심할 경우) 대략 5-7년 정도 주기로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오버홀 가격은 본사 기준으로 최저 50만원, 평균 70만원(2010년 기준) 정도의 공임을 받으므로 유지비가 많이 드는 편이다.

쿼츠 시계 비중이 높고, 외관 디자인에만 치중하고 성능이 낮은 무브만을 사용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네바 홀마크 인증을 받기 위해 자사의 무브먼트를 제출하는 나름 몇 안되는 회사이기도 하다. 리치몬트 그룹에 기술력이 좋은 시계 브랜드가 많기 때문에[20] 어느 정도의 검증된 기술력이 브랜드 간에 공유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시계에서 빅5라 불리는 최고 브랜드 중 하나인 바쉐론 콘스탄틴의 엔트리 라인업 피프티식스에 까르띠에 무브먼트를 베이스로 한 무브먼트가 들어갔다[21]


파일:Cartier-WW-1-.jpg

Masse Mysterieuse[22]
2022년, 워치스 앤 원더스에서 무브먼트 자체가 로터처럼 돌아가며 태엽을 감는 엄청난 시계를 공개하였다. 까르띠에의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4.2.1. 산토스 (Santos)[편집]



파일:637709291804123442-2059240.webp

산토스 드 까르띠에[23]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라인이다.
산토스 드 까르띠에와 산토스-뒤몽 라인으로 분류된다.

남성 예물 시계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며, 전 라인업중 유일하게 미디움 라지 두 버젼으로만 나온다.
남성 럭셔리 시계의 근본이며 남녀노소 호불호가 거의없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는 시계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미디움과 라지 사이즈의 갭이 커서 많은 남성들이 구매할때 곤란을 겪는다.[24]

탱크 머스트 오토매틱이나 발롱블루오토매틱 모델과는 다르게 자사 무브먼트를 사용한다.[25]


4.2.2. 탱크 (Tank)[편집]



파일:637709304776736185-2182255.webp

탱크 머스트[26]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까르띠에 탱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남성과 여성 예물 시계 시장의 큰 축을 담당하며, 남녀 럭셔리 시계의 근본이다. 남녀노소 호불호가 거의없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는 시계로 인지도가 굉장히 높다.


4.2.3. 발롱 블루 (Ballon Bleu)[편집]



파일:637709270284509062-2059239.webp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27]


4.2.4. 롱드 (Ronde)[편집]



파일:637709282996812473-2098765.webp

롱드 솔로 드 까르띠에[28]


이 외에도 파샤, 팬더, 꾸쌍, 마이용, 베누아, 팬더, 프리베, 드라이브, 똑뛰 라인업이 있다.


4.3. 가죽제품[편집]


까르띠에의 가죽 컬렉션은 쥬얼리, 시계를 잇는 주력 컬렉션이며, 특유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유명하다. 구성은 핸드백이나 백, 지갑, 벨트 라인 및 기타 가죽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4.4. 향수[편집]




Cartier Baiser Volé parfum video commercial

향수도 만드는데 'Baiser Volé(베제 볼레)'라는 향수 광고에 이병우가 작곡한 영화 장화, 홍련의 OST인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삽입해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속 조향사인 마틸드 로항이 향수 컬렉션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5. 앰버서더[편집]


Cartier
이름
직업
국적
지역
역임
연도

모니카 벨루치[29]
배우, 모델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글로벌
1997~
제이크 질렌할
배우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2018~
릴리 콜린스
배우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2018~
트로이 시반
가수
[[호주|
호주
display: none; display: 호주"
행정구
]]

2018~
장첸
배우
[[대만|
대만
display: none; display: 대만"
행정구
]]

2020.01~
엘라 발린스카
배우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2020.06~
라미 말렉
가수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2020.09~
윌로우 스미스
가수, 배우, 댄서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2020.09~
잭슨
(GOT7)

가수
[[홍콩|
홍콩
display: none; display: 홍콩"
행정구
]]

2020.09~
멜라니 로랑
배우, 감독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2021.11~
나딘 라바키
배우, 감독
[[레바논|
레바논
display: none; display: 레바논"
행정구
]]

2021.11~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모델, 배우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2021.11~
애나벨 월리스
배우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2021.11~
골쉬프테 파라하니
배우
[[이란|
이란
display: none; display: 이란"
행정구
]]

2021.11~
지수
(BLACKPINK)

가수, 배우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2022.05~
티모시 샬라메
배우
,
2022.09~
바네사 커비
배우

2023.04~
디피카 파두콘
배우

2023.05~
엘 패닝
배우

2023.05~

(방탄소년단)

가수, 배우

2023.07~

6. 기타[편집]


  •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카르티에'라고 표기해야 맞지만, 국내에 공식 진출하면서 표기를 '까르띠에'로 결정했다.[30]

  • 링컨과의 협업으로 링컨 타운카 카르티에 에디션을 만들기도 했다. 1980년 1세대부터 1997년 3세대까지 모두 카르티에 에디션이 존재했다.

  • 영화 인사이드 맨 후반부에서 이 회사의 반지가 결정적인 증거로 나온다.

  • 2021년 VIP 고객에게만 그 해 7월 15일부터 가격이 인상된다는 문자를 발송했다.#

  • 1924년 루이 까르띠에는 친구인 장 콕토를 위해 트리니티 컬렉션을 제작했다. 트리니티 컬렉션은 장 콕토가 30살 때 16살였던 연인 레몽 라디게에게 선물한 삼환반지의 복제본이다. 까르띠에의 트리니티(Trinity de Cartier)링은 화이트골드, 핑크골드, 옐로우 골드의 세가지 색의 링이 하나로 엮인 모양이며 핑크 골드는 사랑(LOVE), 옐로우 골드는 충실함(Fidelity), 화이트 골드는 우정(Friendship)을 상징한다. 트리니티 컬렉션은 장 콕토에 의해 파리 상류층에게 널리 알려져 아직까지도 까르띠에의 대표 디자인으로 사랑받고있다. 장 콕토는 트리니티 반지를 너무나 사랑하여 항상 왼쪽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심지어 두개를 동시에 착용하여 6개의 링이 그의 왼손에 늘 함께 했다고 한다. 보헤미안적인 예술가의 삶을 산 장 콕토는 파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60세가 되던해에 파리 근교 Milly-la-Forêt의 작은 마을에 있는 집으로 옮겨 지낸다. 후에 이 집은 까르띠에사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공개당시 까르띠에사는 장 콕토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트리니티 컬렉션을 발표하는데, ‘Trinity la belle’는 장 콕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두개의 트리니티 링에서 영감을 받아 여섯개의 링의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이 한정판 까르띠에 로고 옆에는 다이아몬드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 "Star" 는 시인인 장콕토의 signature에 항상 등장하던 별을 상징한다고한다.




[1] 단순 매출 기준이며, BIG 5인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브레게, 아 랑에 운트 죄네를 포함해 여러 상위급 브랜드들이 존재한다.[2] 역시 기준을 단순 총 매출로 잡지 않는다면 해리 윈스턴, 피아제, 쇼파드, 그라프 등 더 상위급의 보석 브랜드들도 다수 존재한다.[3]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세계백화점 경기점,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아직 보석류는 판매하고 있지 않아 제외된다.[4] 부산점은 신세계 센텀시티 오픈후 철수했으며, 대구점은 22년 3월에 철수했다.[5] 백화점 기준으로 전국 매장 21개[6] 참고로 까르띠에 워치 역시 업계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서 시계만 취급하는 매장도 그렇게 많지 않고 입점기준도 꽤 깐깐하다. 다만 시계의 경우 업계에서 본좌취급을 받는 롤렉스의 입점기준이 훨씬 깐깐한 편.[7] 롤렉스가 명품 업계에서의 위상이나 브랜드 파워 면에서는 이들보다 훨씬 앞서지만 롤렉스는 주얼리를 취급하는 브랜드가 아닌데다 매장규모도 브랜드의 위상에 비해 그렇게 크진 않다.[8] 700억원에 구입했다고..[9] 페라가모[10] 맨 위 사진의 건물로 7살 10살 어린이 건물주로 유명세를 탄 건물이다 #[11] 오른쪽의 남자가 산토스 뒤몽이다.[12] 경첩을 이용하여 착용할 수 있다.[13] 관습에서 벗어난 사랑을 의미한다.[14] 한국어로 이 반지를 소개하는 각종 자료에서 이 fidelity를 단순히 영어사전 해석에 따라 '충실'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반지의 탄생 배경이나 웨딩반지, 커플링으로 주로 사용되는 문맥상 연인과 배우자에 대한 신의(信義) 내지 정절(貞節)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15] 이 또한 많은 한국어 매체에서 단순히 '우정'으로 번역한다. 한국 문화에서 친구(friend)는 대체로 동갑내기와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서양에서는 나이와 관계없이 비즈니스적인 관계는 아닌데 서로 존중하고 가깝게 지내는 관계를 모두 친구라고 부른다. 실제로 friendly라는 단어는 오히려 친구와는 큰 관련이 없으며, 친절 내지 정겨운 사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 따라서 이 friendship이라는 단어 또한 '우정'이라고 번역할 경우 (따지고 들면 틀리지는 않지만) 그 의미를 좁히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본 문서와 같이 '친절함' 혹은 차라리 '정(情)', '다정함' 정도로 번역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16] 특히 이 트리니티는 세 개의 반지가 서로 안쪽 바깥쪽으로 부지런히 긁고 긁히는 구조라 쉽게 스크래치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이 제품의 매력이기도 하다.[17] 사실 최초의 손목시계라는 언급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기네스북에서 인정받은 최초로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의 개념을 제시한 브랜드는 파텍 필립이며, 브레게도 1810년에 손목에 착용하는 시계를 개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등 손목시계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까르띠에는 손목에 착용하기 위해 만든 시계를 최초로 만들었고 다른 브랜드는 시계를 손목에 얹기도 했다 정도로 거의 정리됐다. 둘 다 최초라고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18] 시계를 여성용 팔찌에 달아 최초로 손목에 얹은 것은 파텍필립, 액세서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시간 확인용 손목시계는 까르띠에, 그 이후 각종 회사들에서 회중시계에 와이어 러그를 단 방식으로 나오다가 파텍필립의 칼라트라바 Ref. 96이 직선형 러그가 달린 손목시계의 현대적 형태를 제시했다.[19] 고급 모델이나, 보석이 박혀있거나 케이스가 금으로 되어있는 모델의 경우, 가격은 수천만 원대나 억대로 올라가는 모델도 있다.[20] 바쉐론 콘스탄틴, 아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IWC 등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엄청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21] 정확하게 말하면 리치몬트에서 무브먼트를 설계하는 Val Fleurier라는 조직이 만들어준 것이다. 같은 설계의 무브먼트를 까르띠에는 1904MC, 피아제는 1110P, 바쉐론은 Cal. 1326이라는 이름으로 탑재한 것이지, 까르띠에가 하이엔드인 바쉐론에도 없는 엄청난 기술력이 있었던 건 아니다. 탁상시계용 무브먼트로 군납용 장비나 만들던 파네라이가 리치몬트에 들어간 후 갑자기 자사 무브 신제품을 쏟아낸 것도 발플러리에의 도움으로 가능했다.[22] 마쓰 미스테리우스라고 읽으며, 30개 한정판으로 가격은 기본 모델 기준 한화로 약 3억 5천만원이며 바게뜨 세트로 구입 시 약 7억 8천만원, 바게뜨 세트와 플래티넘 팔찌 세트로 구입 시에는 약 16억 3천만원이다.[23] 사진은 large모델.[24] 일단 미디움은 기본적으로는 여성용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손목 둘레가 크지 않은 남성들도 매우 잘 어울린다.[25] 칼리버 1904MC 무브먼트. 다만 ETA 2892와 매우 유사하여 독창적인 자사 무브먼트라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며 해당 무브먼트의 내구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이 있다.[26] 사진은 small 모델[27] 사진은 36mm 모델.[28] 사진은 36mm 모델이며 리테일가는 461만원이다.[29] 1997년 브랜드 앰버서더이자 뮤즈로 임명되었다. 또한 2004년 발표에 따르면 유일한 까르띠에 여성 앰버서더였다.[30] 항목과 마찬가지로 고유명사 취급되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