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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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역사
4. 기업 시장에서의 활용
5. 기타


1. 개요[편집]


Inte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 ISDN

종합 정보 통신망은 기존의 공중전화망(Public Switched Telephone Network. 공중전화선 말고, 일반 대중이 사용하는 전화망.) 인프라에서 고속의 디지털 통신을 하기 위한 통신 규약이다.

2. 특징[편집]


기존에 깔아 둔 구리선 기반의 전화 인프라, 즉 두 가닥의 구리선으로 최대 128kbps라는[1] 통신 속도를 낼 수 있는 규약으로, 기껏해야 56kbps(7KB/s)가 고작인 모뎀을 대체하는 고속 규격이다.

ISDN에는 BRI(Base Rate Interface)와 PRI(Primiary Rate Interface)가 있는데, BRI의 경우 2개의 B채널과 1개의 D채널을 사용한다. B채널은 데이터 전송을 담당하며 D채널은 제어 정보나 시그널 전송등에 사용된다(16Kbps)

B채널은 1가닥당 64Kbps의 대역폭을 가져서 데이터 대역폭으로 BRI는 64Kbps*2로 128Kbps의 속도가 나오게 되며. 총 대역폭은 144Kbps(18KB/s)까지 나오게 된다.


3. 역사[편집]


1980년에 벨 연구소에서 개발을 시작했고, 1988년도에 표준화되었다. 초창기에는 속도가 모뎀보다 빨랐음에도 수요가 많지 않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인터넷의 보급이 이루어짐에 따라 따라 세계 각지에서 주력 통신망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통신(현 KT)에서 1990~1992년 사이에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고 1993년 말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주요 도시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당시의 PC통신 속도가 고속이라고 해도 최대 14.4Kbps, 28.8kpbs였고, 서버의 부족 및 전화 회선의 불안정으로 인하여 실제 속도는 이에 못미쳤다. 56Kbps 속도를 보장한다고 광고한 ISDN은 당대기준으로는 저화질이나마 동영상 감상이나 화상통화도 가능할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2][3]

이렇게 전화와 PC통신을 한 번에 쓸 수 있다고 등장한 ISDN이었지만, 한국통신의 ISDN 서비스는 시범 서비스 당시부터 비싼 가입비 및 장비 가격, 불안정한 서비스로 사용자들에게 불만을 샀다. 여기에 시대 환경 역시 좋지 못했는데, 2년 정도가 지나면서 전화 모뎀으로도 56Kbps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ISDN의 가치가 폭락했다. 물론 ISDN 두 회선을 묶으면 128Kbps 속도까지 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여유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광고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리 널리 알려지지도 못했다.[4]

요금 정책 역시 문제가 많았는데, 전화 모뎀과 같은 종량제였으며, 도수당 요금은 180/258(추정)분당 46원. 거기에 64kbps 두개를 쓰면 90원(46원×2)이다. 즉, 이 당시에 128Kbps 인터넷을 20분만 써도 한시간 최저시급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고 1시간 쓰면 번듯한 식당에서 1끼를 먹을 정도보다 더 많은 돈이 들었다는 얘기이다. 더군다나 이미 PC통신 사용자들에게는 일반화된 정액제 역시 하지 않아 더욱 비용 부담이 컸다. 일반 전화의 경우 1997년에 야간/할인시간정액제를 시작했으나, 014XY와 ISDN 정액제 서비스는 1999년에 서비스가 되고(수도권은 1998년부터) 그전까지는 전용 일반 전화번호(우리가 알고있는 02-0000-0000형식의 그거 맞다.)로 접속해야만 했다.

여기에 ADSL케이블인터넷의 보급은 ISDN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2000년 10월에 ISDN(014XY) 종일요금제가 도입되었지만 이미 그 전해인 1999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두루넷 등 케이블 인터넷과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이 출시한 ADSL의 10Mbps에 육박하는 초고속+월 3만원대의 정액 요금은 ISDN의 설 자리를 빼앗았다. KT는 기존 ISDN에서 이름만 바꾼 ISDN2를 출시하며 저항했으나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없었고, 결국 KT도 메가패스 라는 브랜드로 ADSL 대열에 합류하며 ISDN 서비스는 종말을 고했다.

ISDN의 낮은 경쟁력, 그리고 불안정한 서비스로 인하여 이 서비스를 한국통신에서 운영할 당시에도 PC통신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ISDN을 '이런 씨x 더러운 네트워크'의 약자라고 비아냥댔다.

반면에 일본[5]독일 등 많은 나라에서 ISDN은 주력 통신망으로 깔아놓았기 때문에 2000년대 중반까지 상당히 오래써먹었고, 미국에서도 상당수 지역에서 꽤나 오랫동안 써먹었다. 물론 중국과 인도 등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하지만 ISDN이라도 깔려있으면 다행이었고, 인터넷 인프라가 안 깔려있는 지역에서는 위성인터넷을 이용해야했는데, 현지인들 기준에서 매우 부담되는 가격이라 이것이 인터넷 확산의 걸림돌이었다. 그 때문에 이들 나라는 FTTH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한국보다 인터넷 속도가 현저히 느렸기 때문에 2000년대에 해외파견을 가거나 해외여행을 간 한국인들이 후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이라는 나라들에서도 인터넷 속도는 동영상 하나 제대로 못볼정도로 구리냐면서 환상을 깨는 요소였다.


4. 기업 시장에서의 활용[편집]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개인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것과는 달리 기업 시장에서는 전화 교환기용 회선으로 2021년 현재에도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PSTN은 교환기에 물릴 회선 수 만큼 실제 물리 회선이 개통되어야 하고 외부와 통화하려면 9번을 누르는 것으로 유명한 아주 불편한 내선 국선 구분이 있어야 했던 반면 ISDN을 사용하면 물리 회선 하나로 PRI 기준 최대 30개까지 수신, 발신 회선을 합쳐서 사용할 수 있고 발신번호 표시 변경 기능[6] 등으로 내선을 국선과 통합하여 사용하기 용이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서 설명한 모든 장점을 그대로 가졌음에도 인터넷만 개통되어 있으면 별도의 회선 설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다음 세대 기술인 SIP가 보급되었다. 그런데도 ISDN이 여전히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이유는 국내 법률상 ISDN은 유선전화로 분류되지만 SIP는 인터넷전화로 분류되기 때문에 지역번호의 직접 부여가 불가능한 등의 규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개인 시장에서 고사해버린 인터넷전화의 현실을 고려하면 규제로 인해 불합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5. 기타[편집]



용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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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킬로비트/초이며,바이트로 하면 16KB/s이다.[2] 물론 초고속이라해도 당시의 고화질(이라고는 해도 480p) 동영상은 한 번 시청하려고 해도 무한 버퍼링은 감수해야했고, 그나마 끊김없이 볼려면 다운로드를 받아야했는데 이것도 모뎀에 비하면 낫지만 여전히 시간을 잡아먹는것은 여전했다. 1990년대 개표방송이나 특집방송 등에서 ISDN 인터넷망을 이용해서 화상통신을 하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속도 문제상 화상통화는 고화질로 매끄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화질도 별로 안 좋아 화질구지는 당연한 것이었다.[3] 물론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기준으로 볼 때 실시간으로 화상회의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일이었기는 했다. 각 방송사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생방송 및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등을 제공하면서 이때부터 실시간 TV 보기나 TV 프로그램 다시보기가 가능해졌지만 ISDN 속도 문제상 고화질은 아니었다. KBS의 여러 뉴스 프로그램(KBS 뉴스 9 제외)과 시사 프로그램 다시보기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2005년 이전 방송분을 통해 당대 동영상 화질이 어떠한지 체험해 볼 수 있다.[4] 그나마 유일하게 광고를 내보냈던게 하나로통신의 상용서비스가 실시된 이후인 1999년 5월 김민종-최지우를 기용하여 TV 광고를 했었던 것이다. 김민종이 출연했던 SBS 드라마 '고스트'에서도 한국통신 ISDN 2의 간접광고와 화상통화 단말기를 통해 화상통화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5] 특히 NTT에서 공중전화망을 통해 공준전화 부스에서도 인터넷 연결이 되도록 해놓았을때 ISDN을 깔아놓았을 정도로 집착이 강했고, 이 때문에 2000년대에는 일본의 IT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손꼽혔을 정도였다. 2000년대까지는 꽤 쓰였지만 2010년대에는 교체되었다.[6] 예컨데 어떤 내선 전화로 걸든지 상대측 발신자 표시부에는 02-1234-1234로 표시되는 것, 물론 외부에서 내선전화로 바로 연결되는 번호를 부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