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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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개발
3. 고고도 비행
4. 운용


1. 개요[편집]


전간기에 독일에서 고고도 비행과 객실의 여압 기술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융커스 Ju 49(Junkers Ju 49)는 1921년에 미국에서 처음 비행한 USD-9A(Engineering Division USD-9A)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실제로 비행에 성공을 거둔 여압 항공기였다. 1935년까지 이 실험기는 정기적으로 시험비행에 나서면서 성층권에 해당하는 12,500미터까지 상승하는 기록을 남겼고, 항공 생리학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술적 목표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했다.


2. 개발[편집]


융커스 Ju 49는 당시의 항공기들이 오직 속도와 항속거리 영역을 연장시키는데 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이한 목적을 띄고 만들어진 항공기였다. 이것은 단지 1대만 제작된 실험기로,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고공 비행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를 위해, 특수하게 고공의 옅은 대기 조건에서 작동하게끔 개발된 엔진과 독일제 항공기로서는 처음으로 여압 캐빈이 마련되었다. 엔진은 융커스 L88a로 6기통 수랭식 L8 엔진 2대를 연결시켜 직립형 V-12 엔진으로 만든 것이며, 공기가 희박한 고공에서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2단 슈퍼차저와 인터쿨러가 추가되었다. 이 엔진은 그 무렵 보통의 레시프로 항공기의 한계 고도에 가까운 5,800미터에서 700마력의 출력을 발휘했으며, 옅은 공기를 밀어내기 위해서 특수하게 고안된 한쌍의 2엽 프로펠러를 반대로 회전시켰다. 마치 거대한 깡통과 같은 여압 객실은 아주 비좁았으며, 안에는 2명의 승무원이 타게끔 되어 있었다. Ju 49가 처음 설계될 때만 해도 6,000미터 고도에서 비행하면 필요한 연구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 실험기는 후고 융커스(Hugo Junkers : 1859~1935) 박사가 발명한 주름진 두랄루민 외피로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으로 응력을 받는 전금속제 모노코크 구조의 캔틸레버식 단엽기로 완성되었다. 날개 뒷전 가장자리는 표준식 융커스 더블 윙(Junkers double wing)으로 전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플랩과 에일러론, 그리고 플랩 인보드를 결합시킨 구조였다. 이 기체는 지름이 큰 대직경 프로펠러와 긴 테일 스키드를 도입했기 때문에 눈에 띄게 높고 긴 고정식 랜딩기어가 부착되었다.

필요에 따라 접을 수 있는 직사각형 래디에이터가 동체 아래의 다리 사이에 위치하고, 여압화된 밀폐식 객실에는 조종사를 위한 5개의 작은 창문이 뚫렸다. 이 작은 창문은 앞으로 2개, 옆으로 2개, 그리고 머리 위에 1개가 있어서 글자 그대로 드럼통 안에 갇힌 느낌이 들 정도로 폐쇄적이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특히 이착륙시 조종사의 시야를 확보하는 문제는 중요했기 때문에, 중량과 항력 증가를 무릅쓰고 아래쪽 상황을 볼 수 있는 잠망경이 추가되었다.



3. 고고도 비행[편집]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까지 높은 고도에서 비행 여부와 탑승자에게 미치는 생리적인 영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항공 강국들은 점차 절대 고도 기록을 세우는 작업에 도전했다. 여기에는 주로 세 가지 접근 방법이 있었다.

(1) 산소 마스크 : 기체 내부에 산소 봄베를 싣고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채 마스크를 통해 산소를 흡입하며 저산소증과 극심한 추위를 견뎌내는 것이다. 1932년 9월 영국의 비커스 베스파(Vickers Vespa)를 타고 시릴 윈즈(Cyril Uwins)가 세운 13,408미터, 뒤이어 1933년에 이탈리아의 카프로니 Ca 114가 세운 14,433미터 기록을 세운 레나토 도나티(Renato Donati) 같은 비행사들은 개방식 콕핏에 앉아서 이 방법만으로 기록을 수립했다. 이런 방식의 비행은 반드시 고공에서 짧게 머물고 하강할 때는 천천히 고도를 낮춰 신체가 압력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만 했다. 그 도전자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오래 고공을 날 수 없었으며 신속히 하강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2) 여압복 : 이것은 1934년 9월부터 미국의 와일리 포스트(Wiley Post)가 록히드 베가(Lockheed Vega 5b)를 타기 위해 발명한 것이다. 그는 이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이용해서 15,000미터 이상의 고공에서 몇 시간이나 비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1936년 9월 브리스톨 138을 탄 F.R. 스웨인(15,230m)과 1938년 10월 카프로니 Ca.161bis로 도전한 마리오 페치(17,083m)와 같은 도전자들은 상승 비행으로 고도 기록을 세우기 위해 여압복을 사용했다. 와일리 포스트의 여압복은 지속적인 고공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긴 했으나, 초기 여압복은 불편하고 신체의 움직임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

(3) 여압 캐빈 : 궁극적이고 완벽한 방법으로, 냉난방이 되며 외부 대기와 완전히 격리된 여압식 캐빈은 승무원과 승객들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비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고도 상승과 하강에 따라 반복되는 대기압의 증감과 압력 변화를 견뎌내야만 하는 여압 객실은 당시의 기술과 재료로는 가볍게 만들 방법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탑승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아주 제한되었다.



4. 운용[편집]


수퍼차저 엔진은 10월 19일에 첫 비행에 나설 때만 해도 사용 허가를 받지 못했고 Ju 49는 그 대신 과급기가 없는 L88 엔진을 사용했다. 외부적으로는 L88a의 배기관 형태가 달라 그것으로 식별된다. 1932년 여름, 검수를 마친 수퍼차저가 비행 준비가 되어 설치되었고, 그제서야 연구 프로그램이 제대로 시작되었다. 이 개조형 엔진은 별다른 문제없이 잘 작동했고, 여압 캐빈도 정상적으로 제 구실을 해냈다. 놀랍게도, 6,000m의 초기 목표 고도를 고려할 때 이 실험기는 충분히 목표 이상의 수준에 다다랐다. 1933년까지 10,000m의 비행이 이루어졌고 1935년에는 12,500m의 고도가 일상적으로 시도되고 있었다. 세계기록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융커스 기술진들이 이 실험기를 날리며 쌓은 경험은 나중에 Ju 86P 폭격기와 정찰기에 적용되었다.

오직 1대만 만들어진 Ju 49(D-UBAZ)는 1937년 10월에 독일 항공실험 연구소(Deutsche Versuchsanstalt fur Luftfahrt)에서 실험하다가 추락하는 것으로 최후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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