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1 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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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Carbine
United States Carbine, Caliber .30, M1
M1 카빈


파일:M1-Carbine.jpg

표준형 / M1

파일:attachment/M1a.jpg

접철식 개머리판 장착형 / M1A1[1]

파일:M2-Carbine.jpg

자동발사형 / M2

파일:M3-Carbine.jpg

적외선 조준경 장착형 / M3
종류
반자동소총
자동소총 (M2)
원산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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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역사
1942년~1973년 (미국 기준)
개발
프레드릭 L. 흉스턴
월리엄 C. 뢰머
데이비드 M. 월리엄스
개발년도
1938년~1941년
생산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인랜드[1]
그 외 각종 회사들[2]
생산년도
1941년~1945년
생산수
6,121,309정
단가
45달러(제2차 세계대전 당시)[3]
사용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파일:대만 국기.svg 중화민국
파일:베트남 국기.svg 베트남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튀르키예
사용된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서부전선
- 태평양 전쟁
중일전쟁[4]
국공내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말레이시아 위기
6.25 전쟁
베트남 전쟁
수에즈 전쟁
쿠바 혁명
북아일랜드 분쟁
캄보디아 내전
앙골라 내전
기종
원형
윈체스터 M2
파생형
M1A1
M1A3
M2
M3
호와 M300
제원
탄약
7.62mm(.30 카빈)
급탄
15, 20, 30발들이 박스 탄창
작동방식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회전 노리쇠 방식
총열길이
460mm
전장
904mm
중량
2.4kg(탄창 미포함)
2.6kg(15발 들이 탄창 포함)
발사속도
750RPM(M2)
탄속
607m/s
유효사거리
270m

1. 개요
2. 역사
2.1. 활약상
2.2. 현대
3. 파생형
3.1. M1A1
3.1.1. M1A3
3.2. M2
3.3. M3
3.5. 잉그램 SAM 소총
3.6. 그 외
4. 대한민국과 M1 카빈
4.1. 예비군 사용기
5. 기타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6.1. 게임
6.2. 영화
6.3. 드라마
7. 에어소프트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hickok45의 리뷰 영상
1943년에 배포된 교육용 동영상

M1 Carbine. 풀네임은 United States Carbine, Caliber .30, M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한 반자동소총. 대한민국 예비군의 옛 동반자. 통칭은 칼빈이다.[2] 제식명이 M1이지만, 당시 제식 소총으로 쓰던 M1 개런드 소총의 카빈 버전이 아니라 독자적으로 설계된 카빈인데다, 사용 탄종도 다르다.[3]

애초부터 일반적인 보병용이 아니라 후방 부대나 운전병, 전차병, 조종사 등의 호신용 무기[4]로 개발된 총으로 현대의 FN P90같은 PDW의 조상격 개념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들의 무장을 M1911이나 톰슨 기관단총으로 하려 했으나, 1911은 권총의 한계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 도저히 소총을 상대할 수가 없었고, 톰슨은 너무 크고 무거운 데다, 결정적으로 비싼 단가 때문에 M1 카빈이 서둘러 설계, 제작 되었다.[5]


2. 역사[편집]


1938년 미 육군 병기과(Ordnance Department)에서는 지난 제1차 세계 대전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일반 소총과 기관단총 사이에 위치한 경량 소총(Light Rifle) 도입 사업을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대규모 수요가 발생함에 따라 1940년 9월에 윈체스터 사가 .32 WSL를 기반으로 탄약(7.62mm/.30 카빈)을 개발하고, 9개 업체에서 총기 개발에 참여하였다.

  • 상용화된 .32 WSL과 유사한 7.62×33mm 규격의 .30 카빈 탄약을 사용할 것.

  • 총 중량은 5lb(약 2.27kg) 내외일 것.

  • 반동을 최대한 줄일 것.

  • 300야드(약 270m)에서도 명중할 것.

  • 사수가 1분당 15발의 속도로 150발을 쏠 때까지 심각한 고장이 발생해서는 안됨.

  • 상자형 탄창을 사용해야 함.

1941년 5월에 윈체스터로부터 탄약 개발이 완성되자 상술된 조건을 만족하는 참여 기종들의 성능을 비교하는 1차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2개 업체가 탈락하고 오토 오드넌스, 새비지, 벤딕스, 콜트, 해링턴&리처드슨, 스프링필드 조병창, 우드헐 등 7개 업체만 남아 테스트를 받았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개런드 카빈이 가장 유력했었다.[6]


파일:david_m._williams 0.jpg

데이비드 마셜 윌리엄스









Forgotten Weapons의 콜트 M1929(좌상) / 윈체스터 G30(우상) / 윈체스터 G30M(좌하) / 윈체스터 M2(우하) 리뷰 영상

한편 윈체스터 사에서는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인 조나단 에드먼드 브라우닝(Jonathan Edmund Browning, 통칭 에드 브라우닝)이 미 육군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다가 탈락한 콜트 M1929를 작동 방식을 반동 이용식에서 튜브형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하는 등 재설계를 거친 G30을 개발했다. 에드 브라우닝 사후, 뒤를 이어 고용된 데이비드 마셜 윌리엄스(David Marshall Williams) G30의 설계안을 기반으로 기존의 튜브형 가스 피스톤을 쇼트 스트로크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변경한 개량형 G30M을 개발하여 미 해병대 제식 반자동소총 사업에 제출했으나, 이물질 유입에 약한 데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단점으로 인해 개런드에 패배했다.[7] 이후 노리쇠 작동 방식을 기존의 틸팅 볼트에서 개런드식 회전 노리쇠로 변경한 M2를 개발했다.

같은 해 9월에 시행된 2차 테스트에 탄약을 개발한 윈체스터 사도 참여 결정을 내리면서 이 개량형 M2를 기반으로 한 카빈 시제품을 제출했고, 15일 간의 심사를 거쳐 스프링필드 조병창, 터너 사, 라이징 사의 경쟁 기종들을 모두 제치고 M1 카빈의 제식명을 획득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년 12월 진주만 공습을 당하기 직전 미 해군, 미 해병대에서도 약 350,000정의 계약이 맺어지기도 했다.


파일:m1carbine_iwojima.jpg

태평양 전선에서의 M1 카빈을 든 미군

뒤이은 1942년에는 공수부대의 요청을 받아 개머리판이 철제 접이식으로 바뀌어 휴대성이 높아진 M1A1과 함께 다양한 업체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4년에는 자동발사 기능을 추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GM 산하의 인랜드 사의 프레드릭 샘슨(Fredrick Sampson)와 폴 해미쉬(Paul Hamish)가 개발한 T17 자동발사 부품을 적용시킨 T4가 동년 10월에 M2 카빈, 야간투시경 부착형 M3 카빈의 제식명을 받아 일본 오키나와 전역에서 운용되었다.

1945년 9월 2일 종전 선언과 함께 생산이 곧바로 중단되었으며, 기존 M1, M1A1 분량들은 30발 탄창 호환, 자동발사 기능 등이 추가되는 등의 오버홀 과정을 거쳤는데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에서 분당 750발이라는 빠른 발사속도(현대전에서는 보통의 발사속도이지만)와 복잡한 부품으로 인한 신뢰성 부족을 경험하면서 제기된 신형 제식소총으로 개발된 M14 소총에게 대체되면서 대부분은 예비 물자로 전환되거나 폐기되는 수순을 밟았다.


파일:m1carbine_vietnam 0.jpg

베트남전에서의 M1 카빈

하지만 1960년 초반에 개시된 민간인 사격술 사업(Civilian Marksmanship Program)의 일환으로 약 250,000정이 민수용으로 풀리면서 다양한 업체에서의 복제품들이 쏟아지거나 영화 등에서 대거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1970년에 이르기까지 미군에서의 공식 퇴역은 이루어지지 않고 베트남 전쟁은 물론, 그 이후의 미 공군 경비대 등에서의 운용이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M1, M2, M3 카빈의 명칭과 위치는 후속 화기인 M4 카빈이 계승하고 있다.


2.1. 활약상[편집]


총 자체가 당대의 기관단총보다 훨씬 가벼울 정도로 엄청나게 가볍고 21세기가 된 지금도 M1 카빈보다 가벼운 기관단총은 몇 개 없다. 카빈이 약 2.5kg 남짓인데 반해 톰슨 기관단총M1 개런드는 그 두 배에 가까운 무게였고 H&K MP5보다도 수백 그램 정도 가벼우며, 기관단총 중에서 가벼운 축에 드는 H&K UMP와 무게가 비슷하다. 나무와 쇠로 만든 구시대적인 디자인에 총열 길이마저 지금 기준으로는 긴 편인 18인치나 되는데도 이렇게 가볍다는 건 특기할 만하다.[8] 또 장탄수도 많으며 반자동 사격이 되고 고장도 매우 적었다. 원래 설계가 자동 사격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방아쇠를 빠르게 당기면 자동소총 못지 않은 빠른 발사 속도도 낼 수 있었다. M2 카빈은 실제로 자동 사격이 가능해 비싼 톰슨 기관단총을 일부 대체하기도 하였다.[9] 때문에 공수부대나 해병대, 일반 보병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거기에다 제작비도 85달러나 드는 M1 개런드보다 40달러 더 저렴해서, 약 540만 정을 생산한 개런드보다 50만 정 더 많이 생산되었다.

카빈을 위해 개발된 탄환 ".30 US Carbine"(7.62mm)은 M1 개런드와 구경은 같으나 형태는 소총탄보다는 권총탄에 가깝고 발사시 특성도 권총탄과 소총탄의 중간 정도다. 원래 코요테나 여우 정도의 소형동물 수렵용 탄인 .32 Winchester Self-Loading를 림리스화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개런드와 구경을 같게 했을 뿐인 것이다. 실제 위력도 중소형 사냥감 정도를 잡는데 적당하며, 사슴 사냥용으로는 간당간당한 수준이다. 당시에는 반자동/자동소총으로 불렀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화력은 아닌데 총구의 에너지만으로는 AK-745.45×39 mm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탄속이 훨씬 느리고 탄두 형상이 뭉툭해서 결국 기관단총과 자동소총 사이의 애매한 총이 되었는데 설계 시 약간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돌격소총의 시초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10]

처음에는 아예 착검 장치가 없어 카빈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일이 없었고, 한국 예비군용은 아예 착검 장치를 떼어버린 경우도 있었다.[11] 대신 지금보다 체구가 작은 2차 대전 당시 미군, 90년대 이전 한국 예비군에게는 딱 맞는 사이즈였다.

사용하는 탄이 7.62 mm라고 하니까 AK-47 등의 AKM 계열 돌격소총과 같은 카트리지를 쓰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카빈의 카트리지는 7.62x33mm로 아담한 총탄이고[12] AK의 카트리지는 7.62×39mm로 이보다 훨씬 크다.[13]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널리 쓰였고 이래저래 명성이 높은 총기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못 믿을 총 취급받기도 했다. 한국 전쟁 당시엔 도망가는 중공군이 이불(바리에이션으로 방한복도 있다.)을 뒤집어 쓰고 도망가는 걸 사격했으나 총에 맞고도 계속 도망갔다는 낭설도 있다. 미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는 중공군의 방한복(방탄복이 아니다.)조차도 원거리에서는 뚫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접수될 정도였다. 소총 등의 제대로 된 보병용 화기가 미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중공군이 그냥 소총 사격을 무릅쓰고 접근해 수류탄을 던지는데 이걸 M2 카빈으로 저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7.62mm(.30 카빈)탄이 겨울옷을 못 뚫는 게 아니었다. 여기에는 이견이 몇가지 있는데, 일단 첫째로 카빈탄이 약해서 적군이 맞고도 도망갔다는 소문의 근원지가 장진호의 해병대원들이 아니다. 주로 후방 근무 하는 병과에서 이런 소문이 퍼졌다고 하며, 실제 장진호를 경험한 병사들은 혹한으로 인해 카빈 카트리지와 카빈이 제대로 작동을 안한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또한 자동사격으로 제압(Suppress) 효과를 보려면 상대가 총에 맞을까봐 두려워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중공군도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수도없이 경험한 베테랑 출신들이라 전혀 멈추지를 않았다. 또한 여기에는 해병대원들이 난생 처음 겪는 혹한의 추위에 보급품도 떨어지고 식량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동상 환자와 이질 환자가 속출하며 다 죽어가는 와중에 힘겹게 중공군에게 총을 쐈다는 점[14]도 반영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45~65m 정도의 거리라면 M2 카빈의 연사로도 어느 정도 명중률이 나오지만, 척탄병은 대충 50야드(45m) 이내로만 접근하면 수류탄을 던져넣을 수 있는 개싸움의 영역이니 팔자 좋게 사격전이나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중공군이 카빈탄을 맞고도 버티는 것이라 오인한 미군은 좀더 강력한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전투소총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이 비운의 제식소총인 M14 소총이다.

하지만 근거리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명중률이 확보되는 180m(200yd) 이내[15]의 근거리에서 적과 조우할 경우 초당 12~13발(분당 750발)의 연사속도 덕분에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야간 정찰에서 수색대가 장비하는 M3 카빈이 대활약했는데, M3 카빈은 M2 카빈에다가 적외선 스코프를 증설한 물건으로 어둠을 틈타 중공군에게 접근한 후 연사로 일망타진하는 작전이 큰 효과가 있었다. 물론 오늘날 미군이 사용하는 야시경은 당시엔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분대 중 한명은 자동차 전조등만한 크기의 적외선 램프가 달린 M3를, 나머지는 길다란 망원경처럼 생긴 적외선 스코프가 달린 M3를 소지하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M3는 겨우 2,000여정밖에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미군의 야간 작전의 기틀을 마련한 소총이다.

다만 전설적인 장진호 전투 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추운 데서 쓰려고 만든 총이 아니였던 이유가 컸는지, 카빈이 죄다 맛이 가서 병사들이 카빈을 내다버리고 어떻게든 개런드를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장약량이 적어 작동 동력이 비교적 약한데다가 일단은 소총인지라 찬바람에 계속 노출되다보니 총을 격발하더라도 제대로 화약이 전부 타오르질 않고 불완전 연소하여 작동을 위한 가스압을 제대로 못 만들었기 때문. 개런드 같은 30-06 소총탄을 쓴 무기들이야 어떻게든 딱 한발만이라도 발사하고 나면 화약이 워낙 많으니 최소한 차탄을 쏠 만큼의 가스를 만들 수 있었고 총기도 좀 데워지므로 몇 발 쏘다 보면 적어도 전투 중에 맛이 가는 일은 적었는데, 이놈의 카빈은 정상적인 작동을 할 정도로 총을 데우기 위해 필요탄 격발수가 많았고 겨우 데워도 금방 식어버리면 또 그짓을 반복해야했다. 뭐 장진호 전투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이라 기관단총도 사이좋게 맛이 가는 경우가 많았고 기관총이나 소총도 가끔 가다 몇 발 쏴서 데워줘야 했을 정도로 막장이였으니 이해 할 만 하지만, 그건 딴 사람들 이야기지 전투 당사자인 보병들 입장에선 자신의 생명을 지켜줘야 할 소총이 중요할 때 맛이 갔으니 치명적이었다. 그걸 본 미군들은 악평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미 육군이 M16의 채용에 거부감을 표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작은 탄환은 극한 상황에선 쓸모 없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린 것이다.[16] 문제는 그 이후론 미군이 이렇게까지 추운 곳에서 싸운 적이 없다는 것.[17]


2.2. 현대[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한동안 생산되었고 M16 소총이 보급되기 전, 베트남 전쟁 초반의 미 군사고문단 요원들은 무거운 M14 소총보다는 도리어 카빈을 더 즐겨 가지고 다녔다. 의외로 M16 보급 이후에도 들고 다닌 사람이 많은데, M16보다도 훨씬 작고 가볍기 때문에 총기류의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썼다. 게다가 이보다 더 작고 가볍게 마개조한 단축형 물건도 있는데, 총열을 거의 잘라내다시피 하고, 개머리판도 접철식으로 달아서 거의 팔뚝만한 길이로 줄인 경우도 있다. 장거리 정찰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등이 썼다. 걸프전쟁 당시 다국적군 사령관이었던 미 육군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 베트남 전쟁 때 들고 다니던 카빈의 사진을 보면 거의 권총(...) 수준으로 잘라내 마개조 한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파일:external/laststandonzombieisland.files.wordpress.com/chopped-m1s-vietnam.jpg

베트남 전쟁 당시 취향껏 커스터마이징한 카빈의 모습

기본형과 개머리판만 줄인 경우, 앞뒤를 다 잘라낸 다양한 형태를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2차 대전 당시의 명총이라는 이미지와 7.62mm 탄의 저반동 덕에 민수용 화기로 수요가 있는 편이다. 거기에 구조상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라곤 후기형의 착검장치 정도뿐이라 민수용으로 지금도 생산되는 것은 물론 카빈용 레일마운트와 폴리머 스톡 같은 옵션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64식 소총, 89식 소총등을 만든 호와 공업이라는 회사가 이 M1 카빈을 라이선스 생산하다가 1960년에 M1 카빈을 모델로 호와 M300이라는 자국산 민수용 엽총을 개발했다. 탄창총포도검류 소지단속법 때문에 5발들이 탄창을 끼워팔지만 M1 카빈과는 같은 .30 US Carbine 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약 호환은 물론, 불법이지만 카빈용 15발, 30발 탄창도 호환된다.

간결한 구조에 확실한 신뢰성, 가벼운 무게, 오염에 강한 점 등으로 인해 민간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지금도 팬이 많은 총이다. 이 때문에 공여 기간이 끝나 대한민국에서 회수된 카빈 중 상당수가 미국 일반 총기 시장에 풀렸고 지금도 한국 예비군 번호표가 붙은 카빈을 중고 총기 시장에서 곧잘 볼 수 있다. 참고로 이건 M1 개런드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는 대한민국에서 미국으로 골동품으로 재수출하려던 M1 개런드와 카빈이 미국 의회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개런드가 7만여 정, 카빈이 77만 정[18] 이상 있는데, 이를 재수출하면 정당 5~10만원만 받아도 큰 돈이 되는 것이었는데, 물량이 엄청나다보니 "범죄에 이용된다"고 미 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실은 그건 핑계고, 전쟁 중 공짜로 받은 걸 돈 받고 판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되고, 미국 내 총기업자들을 보호하려고 딴죽을 건 것이다.

여차여차해서 결국은 헐값에라도 수출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고, 2010년대에도 미국으로 많은 양이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예비군용중고총기사례 미국 총기 사이트에서는 한국 예비군 동대 마크가 개머리판에 찍힌 카빈 사진이 올라오고 있고, 가격도 59달러 99센트라는 헐값으로 올라오고 있다. 처음엔 "거의 사용 안 한 치장 물품이 포함되어 있다"라는 소식에 미국 총덕들이 흥분해 있었으나, 실제로 온 것들은 거의 다 현역-예비역을 거쳐 수십 년간 굴려 전부 너덜너덜하게 낡은 총들이었다. 한국군의 "서류상"으로만 미사용 신품이었던 것. 하여간 위력이 사냥용로는 충분히 사용할수 있으며, 반자동 단발, 용량 작은 탄창, 권총손잡이가 분리되지 않은 개머리판 등 모든 조건이 스포츠/호신용 소총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존 미국의 M1 카빈처럼 구입에 제약이 없어 잘 팔리고 있다 한다.


3. 파생형[편집]



3.1. M1A1[편집]



파일:attachment/M1a.jpg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공수부대원, 장갑차병, 전차병을 위해 만들어진 모델로, 왼쪽으로 접히는 접철식 개머리판을 장착한 모델.[19]

기존 M1 카빈과 상당수 부품이 호환되기 때문에, M1A1 카빈의 총열과 내부 부품을 M2 카빈의 총열과 자동 사격 부품으로 교체하여 마개조를 해서 사용하는 양덕후들도 있다. 레일을 붙이는 건 덤. 후술할 마개조형태 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기본형에 가까운 파생형 중 가장 가볍다. 참고로 접이식 개머리판의 중간 부분의 쇳판(?) 비스무리한 것은 칙패드가 아니라 탄창 2개를 보관 가능한 파우치 부착용 고정대다.

M1A2 카빈이란 것도 있는데, 사실 별 다른 건 없고 M1A1 카빈에다 영점조절 가늠자[20]와 착검장치를 단 게 다다. 후기형 M1 카빈과 개선사항이 동일하며, 그래서인지 기존 M1A1 카빈과 동일 취급하기도 한다.


3.1.1. M1A3[편집]


파일:CarbinePartsManual2.jpg
M1 카빈에 아래로 접히는 접철식 개머리판[21]을 탑재한 시제품으로, M1A1 카빈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나 사장되었다.


3.2. M2[편집]



파일:2.5600_1.jpg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자동발사 기능과 총검 장착 기능이 추가된 모델.[22] 탄피 방출구 부분의 조그만 연발/단발 레버와 총열 아래 부분의 착검 장치, 그 외 몇가지 사소한 개량점이 있다. 이런 개량점은 M1 후기형 또는 후기 생산형에서도 공통으로 적용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총검 장착 기능, M1 후기형의 가늠자,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리쇠 형상 개량, 30발 탄창용 탄창 멈치[23] 등. 또한 조정간 외에도 자동 사격시의 연사 속도 조절을 위해 노리쇠 무게를 살짝 늘리는 등 M2 전용의 개량점도 있다.

1944년 5월 인랜드 사에서 개발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9월 M2의 시제형 격인 T4를 500정 생산했다. 몇가지 시험을 거친 후 750RPM이나 되는 빠른 발사속도 때문에 반동을 제어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 것[24] 외에는 별 불만 없이 쓸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탄약이 제식 소총탄 보다는 가볍고 권총탄 보다는 세고 자동사격도 되는데다 총 자체도 가볍고(물론 자동발사 기능이 있으니 M2 카빈이 M1 카빈보다 무겁긴 하지만) 대인저지력도 평균 이상이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은 톰슨 기관단총이나 M3 기관단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단총을 M2로 교체하게 된다.

총 약 60만정이 생산되었으며, 1945년 1월부터 생산되었다. 2차대전 후반기에 유럽 전선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일본군을 상대로 소수가 사용되었다. 이후 대부분의 M2 생산분은 6.25 전쟁에 쓰였는데, '반동이 적은 소구경탄을 자동사격으로 쏟아낸다'는 개념은 이후 미군의 M14 소총M16 소총의 개발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한국군에는 빠르면 한국전쟁 이전, 늦어도 한국전쟁 중반부터 미군에게 공여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군에 비해 자동화기 편제가 적었던 한국군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25]

공여량이 상당히 많아서 베트남전 참전 초기 한국군들도 베트남전 이후 M16이 제식화기로 채택된 이후까지 마르고 닳도록 사용했다. 이후로도 2선급 치장물자로 분류되어 경찰이나 향토사단 무기고에서 볼 수 있었다. 2010년대까지도 예비군 훈련에서 쓰는 부대가 남아있었으며, 2014년까지 쓰던 예비군용 카빈 중에는 M2 카빈이 간혹 섞여있다.[26]

베트남 공화국에서도 1968년까지 1선 부대들에서 M1 카빈과 함께 사용되었다. 구정 공세 이후에는 M16 소총으로 대체하나 지방군이나 의군에서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때까지 여전히 쓰였다.

3.3. M3[편집]



파일:M3-Carbine.jpg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미군은 M2 카빈[27] 중 상태가 좋은 물건을 골라 M1 적외선 스코프와 전방 손잡이, 소염기를 장착하여 시제품 T3를 만들었다.

오키나와 상륙 당시 소수의 장비가 야간 경계조에 지급되어 기대 이상의 효과를 봤다.

가시거리는 70야드(64m) 가량으로 짧고 흐릿했지만 없는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였다. 지금도 야시경은 야간 작전의 보물단지지만 당시(1950~1970년대)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밤에는 하늘에 뜬 별과 달 외에는 아무런 조명도 없는 암흑천지였다. 아무리 밤눈이 밝은 적군 병사라도 M3를 들고 접근하는 병사를 먼저 눈치채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미군 야간 수색조는 대활약을 했다.

이후 100야드(91m) 가량으로 개량된 M2 스코프가 장착되어 추가 생산되었고, 한국전쟁에서는 M1 조준기의 2배에 가까운 130야드(119m)까지 볼 수 있는 M3 스코프가 사용되었다.

M3 스코프가 장착된 M1 카빈을 조준하는 키릴 '프렌치' 레이(Cyrill 'Frenchy' Ray) 오스트레일리아군 저격수. 1953년 한국, 159 고지에서.


3.4. 호와 M300[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호와 M300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attachment/nm300-howacarbine1.jpg

일본의 국영 총기제조 기업 호와 공업에서 M1 카빈을 개량하여 만든 사냥용 소총.


3.5. 잉그램 SAM 소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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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그 외[편집]


  • M1 Enforcer, Defender
파일:external/www.thefirearmblog.com/img_1733-tm-tfb.jpg
파일:attachment/M1 카빈/m1car.jpg

권총형으로 개조된 M1 카빈으로, 권총 손잡이를 장착하고 개머리판을 제거하고 총열을 줄인 버전이다.

마를린 사에서 제작한 .22 Long Rifle 탄을 사용하는 모델도 있다.#

톰슨 기관단총을 생산한 회사인 오토 오드넌스에서 민수용 모델을 팔고 있다.

INLAND에서 제작한 택티컬 파생형도 등장했다. ##

4. 대한민국과 M1 카빈[편집]


해방 직후 미군정이 폭동진압 및 치안유지 목적으로 경찰에 M1 카빈을 지급한 것이 한국군 및 한국 경찰의 M1 카빈 보유 시초다. 그런데 정작 국방경비대 및 그 후신인 대한민국 국군은 카빈보다는 M1 개런드의 지급이 더 순조로웠는데, 단적으로 대한민국 육군 보병 연대의 총기 인가량은 M1 개런드 약 1,300정에 M1 카빈이 1,200정으로 거의 대등했으나 실제 보유량은 대부분의 연대에서 M1 개런드가 그나마 더 많고 카빈은 인가량보다 600정 이상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일정치는 않아서 어떤 연대는 M1 카빈이 더 많고 어떤 연대는 M1 개런드가 더 많은 등 들쭉날쭉이었지만, 전반적으로는 M1 카빈이 더 부족했다. 이는 특히 한국 육군의 연대 및 사단이 미군의 동급 부대에 비해 지원부대가 1/3 이하인 등 빈약한 부대였던 탓이 컸다.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이 부족분들을 미군의 군사원조로 벌충하면서 이 갭이 점자 메꿔지기 시작했다.

일선 장병들은 단순히 M1 개런드보다 짧고 가볍다는 이유로 선호했다. 심지어 장탄수도 2배 이상 많고 반동도 적어서 보병간 전투에서 화력을 투사하기도 쉬웠다.[28]

반면 관통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산악이 많은 한국지형 특성상 엄폐물 뒤에 숨은 적을 쏘아야 할 일이 많았는데, 권총탄과 다를 바 없는 카빈은 나뭇가지 몇개만 스쳐도 살상력이 대폭 떨어졌기 때문에 훨씬 화력이 강한 M1 개런드를 선호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지리산에서 활동한 빨치산들조차 M1 카빈의 화력이 약하다고 여겨서 주력 전투병들에겐 개런드를, 여성 같은 후방 인원에게 카빈을 지급했다.[29] 반면 백골 유격대의 지휘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교전거리가 짧은 산악전 특성상 신속하게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카빈을 개런드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비슷한 환경에서 치뤄진 월남전에서는 초기 M1, M2 카빈으로 무장한 한국군이 베트콩을 상대로 괜찮은 전과를 올린 걸 보면 틀리지 않은 평가다.[30]

이래저래 말이 많긴 했지만, M1 카빈은 한국군 하사관 및 장교용 개인화기, 그리고 각종 지원화기 운용병력의 개인화기로 여기저기 뿌려지면서 최종적으로는 M1 개런드의 수량보다 더 많은 50만 정에 가까운 물량이 공급되었다. 이 덕분에 실질적으로 한국군 및 민간인에게는 가장 익숙한 소총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M16 소총이 대량 도입되면서 M1 개런드와 M1918 브라우닝은 단시간에 한국군의 일선에서 퇴출되었으나, M1 카빈과 M2 카빈은 가벼운 무게와 높은 휴대성으로 말미암아 좀 더 오랫동안 현역으로 남았다. 보병전투보다는 물류작업이 주인 후방 지원부대나 향토사단에서도 꽤 오래 사용됐고, 무거운 군장으로 적지에 침투해야 하는 특전사북파공작원들도 신뢰성과 휴대성이 좋다는 이유로 M1 카빈을 애용했다.[31] M16과 K2 소총의 보급이 완편되면서 M1 카빈은 점차적으로 치장장비로 전환, 후방 지역방위사단 (구 향토)및 지역예비군의 주력 소총으로서 2014년까지 지속적으로 운용이 되었다. 이 때문에 M1 카빈용 소모품과 탄약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적으로 생산이 유지되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주력 소총으로서 쓰이기도 했다.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DQJ523b01ea1cb26.jpg

대한민국에서도 1972년부터 2년간 강도살인 행각을 벌인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두 범인이 훔친 M1 카빈을 이렇게 잘라서 사용했다. 위쪽 덮개까지 떼어 버리고 점퍼 속에 감추고 다녔다고 한다.당시 사용된 총기를 에어소프트 건으로 재현한 영상.

한국 경찰은 1980년대까지 M1 카빈이 주력 소총이었다가 1990년대부터 K2 소총 및 M16 소총으로 카빈을 신속히 대체해서 이제는 M1 카빈을 운용하지 않는다. 특히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강원지방경찰청의 보유 소총은 대부분 카빈이었는데, 사태가 급박해 경찰청에서 강원청 산하 카빈들을 M16을 건너뛰고 한방에 K2들로 교체하며 카빈이 굉장히 빨리 사라졌다.[32] 현재 경찰이 보유하고 있던 M1 카빈은 본래 육군의 M1 카빈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사원조품목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군의 재고와 통합해서 지역예비군 장비로 편입, 창고에서 스프링과 나무가 다 썩고 삭아서 사실상 더 이상 총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상태로 조용히 잠들어 있다.


4.1. 예비군 사용기[편집]


대한뉴스 제886호-유비무환
1969년 경기도 양주 무장간첩 체포 작전 당시 M1 카빈을 든 예비군.
#1 #2 1970년 6월 동작구 국립묘지(국립현충원) 공비 침입사건 당시에 동원되어 M1 카빈을 들고 공비 수색에 참여한 예비군들의 모습.

대한민국 국군6.25 전쟁 이후로도 베트남전 종전 때까지 꾸준히 사용되었고, M1 카빈을 수십만 정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어, 예비군 창설 초창기부터 2014년까지 이를 주로 예비군의 개인화기로 사용했다. 보통은 지역예비군 분대 단위에서 분대지원화기로 M16을, 나머지 기본화기로 M1 카빈[33]을 사용하는 방식. 보통은 예비군 4~5년차로 지역예비군에 편입되면서 사용하게 되나, 거주지역에 따라서는 최초 동원예비군 훈련 때부터 지역예비군으로 편입되면서 M1 카빈을 사용하게 되거나 동원미지정훈련 때 사격 훈련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일단 예비군 사용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K2나 M16에 비해서 훨씬 가벼워서 들고 다니긴 편하지만,[34] 탄창 지급이 잘 안 되어서 한 발씩 장전해서 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모 예비군 훈련 교관 말에 의하면, 탄창이 너무 낡다 보니 스프링이 다 삭아서 탄을 밀어올리지 못하므로 장전이 안 된다나 뭐라나. 지급받은 카빈의 노리쇠 뭉치와 총몸 간의 유격이 너무 커서 탄창이 탄을 밀어올려도 장전이 안 되어, 사격훈련을 받는 예비군이 탄창을 왼손으로 받치고 사격 조교가 장전손잡이로 장전해주는 아름다운 2인 1조의 하모니로 사격 훈련을 했다는 썰도 있다. 20개 사로 중 1/3 이상이 이런 상황. 1발 쏘고 장전손잡이 당기고, 쏘고 당기고 하는 경우는 저것보다 훨씬 더 흔하다. 또 너무 오래돼서 부품(단발자)이 마모되어 사격 훈련 시 단발인데 연발로 나가는 아찔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총열 위 덮개 나무가 썩어서 떨어져 나가는 건 다반사. 사격 시 화려하게 튀어올라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례가 굉장히 많다. 덤으로 좀 험하게 굴린 물건들의 경우 목재 부품들의 코팅 등이 벗겨지고 나뭇결이 거칠게 일어난 경우도 있어서 별 생각 없이 만졌다가 손에 가시가 박히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크게 다치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기분 나쁜 경험이라고.

위력이 약하긴 약한 지 25미터 사격장을 정리하다 보면 종종 탄두가 발견되곤 했다. 타이어로 막아둔 후방 진지를 뚫고 나가지 못했던 모양.

총이 너무 가볍고, 개머리판 각도가 잘못되어서 반동흡수가 잘 안되어 격발할 때마다 총구가 많이 튀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경험은 예비군 훈련 시 지급되는 카빈이 훈련용으로 막 굴려지는 물건들이라 그렇다. 예비군들에게 총 나눠줘봐야 땅에 끌고 다니고, 발로 차고, 깔고 앉고, 총구에 담배꽁초 틀어막고 등등 해대는지라 상태가 엉망인 게 당연할 수밖에. 반대로 예비군 훈련에 지급하지 않고 치장물자로 진공포장되어 관리되는 카빈들은 상태가 깨끗하며, 심지어 스크래치 하나 없이 공장에서 막 출고된 마냥 깨끗한 카빈들도 간혹 있다.[35] 2018년 기준으로 군지사 폐기장 무더기를 잘 뒤져보면 상태가 매우 좋고 깨끗한 M1 카빈 탄창이 한가득 있다.

쏘아 보면 반동은 M16이나 K2에 비해서 약간 적은 편이지만, 권총손잡이가 없고,[36] 왼손 쪽도 파지하기 어설픈 탓에 발사 시 총기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튀는 느낌이다.[37] 그런데 비해서 탄착점은 잘 모이는 편. 성과제 조기 퇴소제가 적용된 현재, 지름 9cm의 원 내에 탄착군을 다 모으는 사람이 과반일 정도. 육군이나 해병대 병장 전역한 예비역이면 이 정도 사격 실력은 당연한 거지만, 명심하자. 이 총은 2차 대전, 6.25 때 굴러먹다가 예비군 물자로 질질 끌려 다니던, 단발식 소총 이하의 연사력을 지녔고 지금은 썩어가고 있는 골동품이다. 최대 문제는 환갑이 넘은 노후한 조준 기구들 때문에 겨냥이 제멋대로인 점이다.[38]

카빈용 소모품은 1992년까지는 생산이 되었으나 그 이후로는 생산되지 않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내에서 꾸준히 생산되는 카빈용 소모품은 풍산에서 제조한 탄약과 KCI에서 생산하는 탄창뿐이며, 그나마 탄약의 경우 군용으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조사의 해외 수출용 스포츠 탄약을 재포장해서 군에 납품하는 것이며 탄창도 해외 수출용으로만 생산하기에 실질적으로 예비군에서도 카빈은 퇴출되었다. 이미 생산해놓은 탄 재고는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카빈은 신뢰성 높고 고장이 적을 뿐, 전시에는 지역예비군도 현역용과 탄환이 호환되는 M16이나 K2를 받을 것이다. 동원예비군은 전시에 부대로 복귀하니 당연 K2 소총, K1 기관단총을 쓰게 된다. 동원훈련 시즌이 끝나고 나면 몇 정씩 부숴서 나무 부분은 그냥 타는 쓰레기로 버리고 금속 부분은 분해해서 부품용으로 쓴다.[39]

실제로는 가볍고 다루기 쉽고 신뢰성 있고 잘 맞기까지 하는 명총이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접하는 카빈은 이렇게 골골대는 노인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노병(?) 카빈만 예비군 훈련장에서 접하게 되는 통에 그저 썩어 빠진 고물총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사실 몇 십 년간 써먹은, 최소한도로 잡아도 20대 중반 이상인 사용자들의 아버지들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총이 정비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아니 뭔가가 나가기는 한다는 것 자체가 무진장 대단한 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많은 회사가 카빈을 생산했는데, 잘 보면 각 제조 회사별로 나무 부품 모양이나 장전손잡이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물론 호환은 거의 된다.


현재 M1 카빈은 도태장비로 분류되어 예비군 기본훈련(8시간짜리)에서도 M16A1을 사용한다.[40]

2014년 중반에도 예비군이 여전히 카빈을 쓴다고 까는 기사가 난 이후 국방부에서 공식적인 교체 계획[41]을 발표했다. 이 당시에 예비군 훈련 지원임무를 담당하는 지역방위사단(구 향토) 보병대대에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있던 사람들은 부대 무기고에 있던 카빈들을 모조리 꺼내 망치로 직접 작살내는 전량폐기 작업에 동원되었다고 한다.[42]

현역들에게 풀리는 K2C1 소총으로 M16A1을 예비군으로 밀어내기 해서, 2016~2017년 즈음에는 M1 카빈은 예비군에서도 전량 퇴역하고 예비군용 소총은 전량 M16A1 혹은 K2로 대체되었지만 M16A1을 더 많이 쓴다.[43] 다만 지역마다 케바케는 있는지 예비군 수가 많은 수도권이나 부산 일부에서는 2018년 까지 작계훈련 참석시 동사무소에서 M1을 지급하고 기본훈련때만 M16을 줬다는 썰이 있긴하다. 이후로는 작계도 M16으로 주는듯 하다. 2023년 현재도 M1은 상태가 괜찮은 것에 한해 무기고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으며 조금씩 미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대규모 확전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남아 있다고.


5. 기타[편집]


  • 이 총의 개발자 중 한 사람인 데이빗 마셜 윌리엄스는 이 총의 개발 당시 죄를 짓고 감옥에 수감 중이었는데, 이 총의 개발로 명성을 얻고 가석방까지 되었다는 루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데이빗 M. 윌리엄스는 20세 때인 1921년 밀주 양조장을 급습한 보안관보를 살해하고 2급 살인죄로 30년 형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그의 가족이 살해된 경관의 미망인에게까지 감형 탄원서를 받는 등의 구명을 주지사에게 요청한 결과 1927년 한 차례의 감형을 받고 1929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나 31년에 형기가 완전히 끝나게 된다. 수감기간 중 데이빗 윌리엄스는 노동교도소에서 복역하면서 권총 및 기관총 설계 특허를 몇 가지 냈었는데, 이게 와전된 것.

이후 그의 기술을 적용해서 윈체스터 사의 총기 개발자 에드 브라우닝[44]이 훗날 M1 카빈의 원형이 되는 .30-06구경 M2 소총을 설계하던 중 이 총의 설계를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러자 윈체스터 사는 위의 데이빗 M. 윌리엄스를 채용해서 소총의 설계를 마무리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탄약의 변경과 육군의 신형 카빈 채택이 이뤄진 것이다.

요약하자면 데이빗 윌리엄스가 카빈의 개발로 명성을 얻은 것은 사실이나, 그 덕분에 석방된 것은 아니다. 이런 소문이 돈 것은 데이빗 윌리엄스의 인간승리[45] 스토리가 1952년에 적당히 각색되어 영화화[46]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탓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 여러 회사들이 카빈을 생산했다. GM(제너럴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Inland Division을 비롯해, 쓰레기통 깡통 만들던 Rock Ola라는 회사도 있다. 제조회사명은 가늠자 근처 상단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예비군 훈련 때 총신에 쓰여 있는 각인을 잘 보면 의외의 상표명이 가끔 보인다. 바로 IBM. 2차대전 당시에는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이라는 풀네임 그대로 사무기기, 즉 타자기같은 것을 만들던 회사였고, 총기 제조와 공통점이 많은 그 생산 라인을 개조하며 총기를 공급한 것이다.[47] 이런 회사들의 카빈은 대부분 소수만 생산되었고, 가장 많이 생산한 회사는 원 개발사인 윈체스터 리피팅 암즈,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의 비자동차 사업부인 인랜드(Inland) 디비전이다. 인랜드의 생산량은 윈체스터보다 훨씬 많다. 그 이유는 당시 윈체스터는 스프링필드 조병창의 M1 개런드 생산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1972년~1974년 사이 활동했던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의 두 범인이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3정을 탈취해 범행에 사용하였고, 최단기간내 다량학살 용의자 우범곤이 탈취해 사용한 총기가 카빈이었다. 사실 범행에 사용한 모델은 M1은 아니고 M2 카빈, 물론 조정간이 존재하지 않는 모델이다. 그 이외에도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을 비롯, 군경의 카빈을 탈취하여 범죄를 저지른 사례가 여럿 있다.


  • M1 카빈이 처음 보급되었을 때 당시 별명은 '아기 개런드'였다. 물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총이다.

  • 전기형 M1 카빈과 후기형 M1 카빈은 차이점이 있는데 전기형 카빈들은 총검 장착을 위한 총검돌기가 없으며, 목재 부품의 색도 진한 색이다.

  • 2019년 2월 Korean 서브레딧에 한국에서 수입된 M1 카빈의 스트랩에 달린 "익숙한 국방부 마크"와 한국어 문구의 뜻을 묻는 포스트가 올라온 것으로 보아, M1 개런드가 그랬듯 미국으로 소량씩 역수출되는 중인듯. 총기 유튜브 채널 Misha’s Guns에서의 M1 카빈 사용 영상이다. "구경 .30 칼빈 보통탄 KM1" 이라 쓰인 한국제 탄입대라고 쓰여있다.[48]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편집]


M1 개런드, 톰슨 기관단총, M1918 브라우닝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모두 등장한다. 카빈이라 대부분 공수부대, 비전투병과, 전차병, 위관장교 등이 들고 다닌다.


6.1. 게임[편집]






M1 카빈
M2 카빈
주로 총탄이 약하단 이유로 리볼버보다 약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357 매그넘의 1.5배 가량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북북이(M3 기관단총)와 더불어 안 좋은 의미로 최강의 총 중 하나. 사격 딜레이가 적어 마우스를 클릭하는 족족 발사가되며 적은 반동으로 컨트롤이 용이하다. 하지만 대미지가 낮아서 1:1 상황에서도 자주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사격 딜레이가 적은 것을 이용하여 키 옵션으로 즉석 M2 카빈으로 마개조가 가능하다. 사격키 1, 2번을 마우스 휠 업 버튼과 마우스 휠 다운 버튼으로 각각 설정해준후 마우스 휠을 위아래로 마구 굴리면 톰슨에 비견할 정도의 연사속도를 보여준다.
바주카병의 부무장으로 등장. 성능은 전작이랑 비슷한 느낌이지만 일반 보병의 부무장처럼 권총이 아니고 엄연히 소총인 관계로 부무장 치고는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한다. 부무장이라 지급탄수는 좀 모자르지만... 반대로 아예 바주카를 부무장으로 하고 보급병옆에 바짝붙어서 지속적으로 탄을 보급받아 카빈으로만 적을 상대하는 굇수들도 존재한다.

장교와 통신병의 주무장으로 등장. 저지력이 낮지만 반동도 적다. 그리고 무게가 가벼워서 부무장이나 수류탄을 추가로 들 수 있다. 공수부대가 등장하는 맵에선 공수부대용 M1A1도 동시에 등장한다.

일부 병과의 반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빠른 연사력 덕에 근거리나 중거리에서 좋은 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팩션의 여러 병과의 반자동 및 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M1 카빈의 경우 월맹군과 베트콩의 새퍼나 지휘관이 AKM 대신 들 수 있는 화기로 나온다. 같은 반자동소총인 SKS-45보다 데미지는 낮지만 저지력이 더 좋고 반동도 더욱 적은 편이다.
M2 카빈은 미 육군이나 미 해병대, ANZAC, 그리고 ARVN의 여러 병과[49]들이 들 수 있는 화기이다. M16A1처럼 화력은 뛰어나지만 자동으로 사격할 시 반동 제어가 어려워 탄 퍼짐이 심해 중거리 이상에서 완전자동으로 사격할 시 명중률이 나쁘다. 따라서 보통은 근거리 교전에서만 자동으로 갈겨버리고 중거리(50m 정도) 이상부터는 반자동에 맞추어 놓고 사격한다.

위의 스코프와 야간투시경이 장착된 M3 버전이 'M1S 스누퍼' 라는 이름의 저격소총으로 등장하는데, 저격소총답게 강력하고, 소음기도 장착되어 있고, 야간투시 기능까지 있어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다만 탄이 많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속칭 '살금살금' 미션이나 미션 7-1 처럼 야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게 된다. 그 외의 장거리 교전 상황에는 탄 넉넉하고 강력한 마우저나 근접전에서도 좋고 힘 좋은 FG42가 있는지라 잘 쓰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 쓰기엔 정말 어지간히 급한 경우가 아니면 총알이 아깝기도 하고...

미래 시점인데도 등장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핑크 공업사에서 만들어낸 짝퉁으로 추정된다.

M1A1 카빈이 M1이란 이름으로 등장. 전 병과 공용무기이다.
공수부대용 M1A1이 돌격병 무기로 등장, 유저 사이에서 1티어 무기로 분류될 정도로 사기다. M2 카빈 또한 업데이트 되었다. 냉각용 구멍이 송송 뚫린 상부 총열 덮개 및 하단 수직손잡이가 추가된 형태로 등장. 낮은 데미지가 흠이지만, 저반동 고연사 라는 특징 덕에 배필의 유구한 전통인 저반동고연사=대세무기 반열에 입성했다. 또한 마지막 업데이트로 정찰병 전용 무장 M3 적외선 스코프 모델이 나왔다.
시즌 2에 1942 무기로 M2 카빈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1942 본편에는 M2는 물론 M1 카빈도 존재하지 않았고, 인게임 모델링은 M1 카빈에 더 가깝다.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이 6지역 한정 3성 전술인형으로 등장. 자세한 건 M1A1(소녀전선) 항목 참조.

M1 카빈은 정찰병이나 장교들의 무기로 등장한다. M2 카빈은 실험 무기로 취급되며 정예 돌격분대에서 소수 등장한다.

미군의 무기로 M1 카빈과 M2 카빈이 등장한다. M1 카빈은 기관단총에 비해 쓰기 불편하고 약하게 취급되는 저티어 무기이며 M2 카빈은 완전자동 사격으로 근접전에 상당히 강한 고티어 무기이다.

반군의 반자동소총으로 등장한다. 2차 대전 때 무기라 도트 사이트 등이 달린 모습을 보면 뭔가 기묘하다.

실총처럼 가볍고, 연사력이 매우 높으며[50] 또한 반자동 소총이라는 점때문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공격력이 높은 편으로 꽤나 인기가 많다. 우스운 것은 M1 Carbine을 전자동으로 개선한 M2 Carbine보다 늦게 추가된 총기이기 때문에 M2 Carbine보다 오히려 비싸다. M1 Carbine은 35000KP, M2 Carbine 33000KP 이다.

후방부대원(공병 포지션)들이 사용하는데 성능은 뭐...다만 제압사격 기능을 사용하면 적들이 몇 초 만에 제압된다. 또한 특정 지휘관으로 항로선도대(패스파인더)와 공수부대를 호출하면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을 들고나온다. 화력은 후방부대원이 사용하는것보다 강하다.


공수부대용 M1A1이 미군 무기로 등장한다. 데미지도 높고 장탄수도 많지만 탄 수급이 어렵다.
미군 무기로 등장한다. 반자동 소총 중 장탄수가 가장 많지만 데미지가 가장 낮다.
M1 카빈이 M1A1 카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멀티에서 최종 언락되는 무기로 데미지도 적당하고 연사력도 빠르고 반동도 적고 장탄수도 많아서[51] 반자동 소총 중 가장 많다. OP무기 중 하나.
Rezurrection DLC로 추가되는 월드 앳 워의 4개의 좀비맵에 등장. 성능은 월드 앳 워의 그것과 동일.
M1 카빈이 M1A1 카빈으로 등장. 서플라이 드롭 바리에이션 중 실제 M1A1 카빈도 있다.
업데이트로 전자동 버전인 M2 카빈도 추가되었는데 모델링은 M1A1 카빈에다 조정간과 방열판을 단 모양새다. 서플라이 드롭 바리에이션 중 원형 M2 카빈도 존재한다. 밸런스 때문인지 연사력이 실총보다 훨씬 느리다.

한국군측 딱전 무기로 등장한다. 캐시 총기도 있어서 막전에서도 사용은 가능하나 아무도 쓰지 않았다. 베트콩측 SKS와 더불어 성능은 큰 차이는 없다. 연사력도 그저그런 수준. 총기 모델링이 실총과 약간 다른데 상부 총열 덮개에 홈이 파여져있지 않다. 여담으로 패치를 통해 장전 모션이 한 번 바뀌었는데 원래는 총기를 옆으로 돌려 탄창을 뽑고 새 탄창을 꽂은 뒤 한번 탁 치는 모션이었다가 옆으로 돌리지 않은 채로 탄창만 뺐다가 꽂는 걸로 바뀌었다.

M1 카빈이 미군의 공수부대원과 전차병의 무기로, M2 카빈이 M1/M2 카빈이란 이름으로 미군 보병의 라이플 약장 마지막에 언락 가능한 괴악한 조건의 무기로 등장한다.

M1 카빈은 M2가 추가되기 전에는 데미지가 약 35로 몸통에 3발만 맞춰도 골로 갔는데 웃기게도 M2가 추가되면서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즉, 반자동인데도 불구하고 몸통에 4발이나 맞춰야 간신히 죽인다.. 아쉽게도 탄약을 업그레이드해도 여전히 4방컷.

M2 카빈은 최소 데미지가 권총보다 낮지만, 악랄한 1004RPM의 연사력으로 이를 커버하며 근거리의 적들을 삭제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 내의 자동소총 중 유일하게 영점 조절이 가능한 총기이다. 그리고 너프 먹고 반동이 산으로 가서 코 앞에 엎어놓고 쓰는 돌격전 병기로 그 위세가 크게 하락했다. 후에 연사력이 666RPM으로 너프되고 반동도 같이 줄었다.

Y-Build에서 M1A1 카빈이 추가되었다. 외관만 다르지 성능은 기존 공수부대원, 전차병의 M1 카빈에서 무게 1칸 줄어든 것 외에는 그대로다.

M2 카빈이 등장. 2010년도를 배경으로 하는 현대전 게임인데도 현금으로 주고 사야만 하는 총기지만 능력치나 성능은 잉여다. 현재는 판매종료되었다. 이후 기존의 M2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220레드티켓으로 판매중이다. 기존의 단점들을 보완하여 출시를 하였는데... 여전히 쓰기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그레이트 휠 버전인 M2 Black Baron이 나오면서 환골탈태. 화면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 무반동에 준수한 데미지와 빠른 연사력,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좋아진 명중률로 사기총 반열에 들었다. 블랙마켓 오픈 후에도 최소 200만 유로 정도 하는 클래식 사기총.


6.2. 영화[편집]





  • 라멜
제101공수사단 대원 중 일부가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을 사용한다.

호바스 중사가 사용하며, 그 외에도 제101공수사단 소속 대원들이 공수부대용 M1A1 카빈을 사용한다.

남베트남군 병사 일부가 들고 다닌다.

나바호족 통신병 벤 야지와 찰리 화이트호스가 주로 사용했다.

초반부 미군으로 위장한 소련군 병사들이 M2 카빈을 사용한다.


주인공 정도만이 집 창고에 있던 걸 단축형으로 개조해서 은행강도 모의훈련때 사용했다.

여러 미군 병사들이 사용한다.

잭 글로버 대위, 맨빌 중위, 의무병인 어브 셱터를 포함해서 미군 장교, 무전병과 몇몇 병사들이 사용한다.

1과 2 모두 반군 지도자인 페일러가 사용한다.

시민군들이 주로 사용하며, 택시운전사에서는 시 외곽 경계를 맡은 보병부대 계엄군도 사용한다.

강효열(무전병)이 자주 사용한다.


6.3. 드라마[편집]


아래의 영상 0:20부터 다수의 병사들이 M1 카빈을 든 모습이다.[52]


아래의 영상(0:23~0:32)에서 소블 대위에게 지도를 대령하려는 병사가 M1A1을 접어 메고 허겁지겁 가는 장면이 나온다.



7. 에어소프트건[편집]



7.1. 에어코킹건[편집]


중국 시마(CYMA)社에서 제작을 하였으며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준수한 외관의 제품이다. 토이스타에서 수입, 판매중이다. 토이스타에서 박스형 탄창과 멜빵끈을 추가로 제작, 판매한다.가격은 인터넷 기준으로 11만원 정도.


7.2. 가스건[편집]


  • 마루신에서 6mm, 8mm로서 두가지 버전을 출시했으나 마루신 특유의 고가&소량생산&낮은 신뢰성으로 인해 구하기도, 설사 구해도 쓰기 난감한 수집용 아이템 수준이다.

  • 킹 암즈에서도 일반 가스&CO2작동 버전으로 발매하며 해당 총기형태의 모델을 구하기도, 게임에 사용하기에도 수월해졌다.

  • 스프링필드 아모리에서 실총과 거의 비슷한 구조와 작동방식을 가진 CO2 에어건을 발매했다.[53] 블로우백 방식으로 다른 버전들과 다르게 발사할때 장전손잡이가 뒤로 끝까지 당겨진다.
}}} ||
스프링필드 레플리카 에어건 리뷰


7.3. 전동건[편집]


보이즈 기박을 사용한 전동건이 존재하는데...기어박스를 이식하기 위해서 실총보다 뚱뚱한 모습으로 변했다.


7.4. 탄피식 너프탄[편집]


파일:e75894847df6f6f30c2e504b70261608bf11a5c3ca63149ae638359e057f2235.jpg


8. 둘러보기[편집]






냉전기의 미군 보병장비
파일:미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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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미군보병장비
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M1903A1, M1903A4, M1917, M70, M4, MA-1, M40, M40A1, M24 SWS
반자동소총
M1 Garand, M1 Carbine, M21 SWS
자동소총
M1918A2, M2 Carbine, M1946, M14, M15, AR-10B, SPIW(Springfield SPIW, AAI SPIW), M16, Mk.I A, GAU-5, M16A1, AR-18, GUU-4/P, XM19, XM70, LMR, M231, M16A2, ACR, G11K2
기관단총
M1928A1, M1A1, M3, M3A1, M6, TRICAP
산탄총
M12, M11-48, M37, M870, M1100, M1200, M500, M520, M590, M6 ASW, H&K CAWS, AAI CAWS, S&W CAWS, Jackhammer, AA-12, MIWS
권총
리볼버
M10, M13, M1909, M1917, M1927, M15
자동권총
M1903, M1911A1, M9
기관권총
SCAMP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M249, HK23A1
다목적기관총
M1919A4, M1919A6, M37, M73, M60, M134, M240, XM214
중기관총
M1917A1, M2, M2HB, EX-17, M85, GAU-19
유탄발사기
M79, X-1, XM148, M203, M75, M129, Mk.18, Mk.19, Mk.20, T148E1, XM174
로켓발사기
M20, M72 LAW, M202 FLASH, Mk.153, RAW
미사일발사기
MGM-21, MGM-32, FIM-43, M47, BGM-71, FIM-92
무반동총
M18, M20, M28, M29, M67, M40, M136
화염방사기
M2, M9A1-7
박격포
M2, M19, M29, Mk.2, Mk.4, M224, M252
특수전 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M500, RC-50, M86, M88
반자동소총
G3/SG1, M82
자동소총
CAR-15, XM177E1, XM177E2, M653, M723, M733
기관단총
M76, MAC-10, MPL, MPK, UZI, M635, MP5A3, MP5SD3, MP5-N, MP5SD-N, HK54A1
권총
리볼버
M66, QSPR, M686, GS32-N
자동권총
HDM, Mk.1, Mk.2, Mk.22, PPK, P9S-N, P11, M45, P226
산탄총
Masterkey, M7180, M7188
기관총
Mk.23, EX-27, HK21
폭발물
수류탄
Mk.2, Mk.3, M26, M67, V40
총류탄
M7
화학탄
M7A3, M14, M18, M25, M34
지뢰
M14, M15, M16, M18A1, M19
폭약
M1, M1A2, M1A3, M2A4, M3A1, M37, M039, M112, M118, M183
냉병기
총검
M6, M7, M9
단검
Gerber Mk II, Ka-Bar USMC
취소선: 테스트만 치른 후 제식 채용되지 않음
















































제2차 세계 대전기의 나치 독일군 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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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독일 국방군보병장비
개인화기
소총
볼트액션 소총
Gew71V, Gew88/05V, Gew98, Kar98b, Kar98k, VG1V, VG2V, VG3V, VG4V, VG5V
반자동소총
G41, G43, MP507V
자동소총
FG42, MKb42, MP43, StG44
산탄총
컴비네이션 건
M30
기관단총
MP18, MP28, M712, MP35, EMP35, MP38, MP40, MP41, EMP44V, MP3008V
권총
M1883, C96, M1907V, P08, M1915, PPK, M1934, 38H, P38, HSc, VolkspistoleV, Astra 400, Astra 600/43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MG08/15, MG15nAV, MG13, VMG27, MG30, MG35/36
중기관총
MG08, MG34, MG42, MG81
대전차화기
대전차 소총
M1918V, PzB 38/39, PzB M.SS.41, S-18
대전차 로켓
Faustpatrone 30, Panzerfaust 30, Panzerfaust 60, Panzerfaust 100, Panzerfaust 150, RPzB 43, RPzB 54, RPzB 54/1
기타
StP, H3, H3.5
화염방사기
FmW 35, FmW 41/42
박격포
8cm GrW34/42, 5cm leGrW36, 12cm GrW42, 10cm NbW35/40
맨패즈
Fliegerfaust
유탄
M24, N39, M43, M39, GrB 39, Gewehrgranatengerät
노획무기
오스트리아
P12(ö), G29/40(ö), Gew95(ö), MP34(ö), MG07/12(ö), 8.14cm GrW33(ö)
헝가리
Gew98/40(u), P37(u)
체코슬로바키아
Gew95(t) Gew24(t), Gew33(t), Gew33/40(t), Gew261(b), Gew263(b), Kar451(b), Kar453(b), ZH-29, ZK-383, P24(t), P27(t), P39(t), MG26(t) ,MG30(t), MG37(t), 8cm GrW36(t), 8.14cm GrW278(t)
폴란드
Gew29(p), Gew298(p), Gew98(p), Gew299(p), Kar493(p), Kar497(p), Wz.38M, R612(p), P35(p), P645(p), MG28(p), MG154/1(p), MG154/2(p), MG30(p), MG249(p), MG238(p), MG257(p), MG248(p), PzB770(p), 4.6cm GrW36(p), 8.14cm GrW31(p)
노르웨이
Gew211(n), Gew213(n), Kar411(n), Kar412(n), Kar413(n), Kar414(n), R610(n), P657(n), MG102(n), MG103(n), MG201(n), MG240(n), MG245/1(n), MG245/2(n)
덴마크
Gew311(d), Kar506(d), Gew261(b), Gew263(b), Kar451(b), Kar453(b), P626(d), P644(d), MP741(d), MP746(d), MG158(d), MG159(d), MG258(d), 8.14cm GrW275(d)
벨기에
Gew220(b), Kar420(b), Gew261(b), Gew263(b), Kar451(b), Kar453(b), P620(b), P621(b), P622(b), P626(b), P641(b), P640(b), MP740(b), MG125(b), MG126(b), MG127(b), MG220(b), MG221(b), MG222(b), 5cm GrW201(b)
네덜란드
Gew211(h), Gew212(h), Kar411(h), Kar412(h), Kar413(h), Kar414(h), P626(h), P641(h), MG100(h), MG241(h), MG242(h), MG243(h), MG244(h), MG231(h), PzB785(h), 8.14cm GrW278(h), 8.14cm GrW279(h), 8.14cm GrW286(h)
프랑스
Gew361(f), Kar561(f), Gew301(f), Gew303(f), Gew241(f), Gew302(f), Gew304(f), Gew305(f), Kar551(f), Kar552(f), Kar553(f), Gew242(f), Gew310(f), P623(f), P624(f), P625(f), MAB D, P647(f), P642(f), R654(f), R637(f), R634(f), R635(f), MP722(f), MP740(f), MP761(f), MG105(f), MG106(f), MG115(f), MG116(f), MG331(f), MG331(f), MG156(f), MG157(f), MG256(f), MG257(f), MG271(f), 5cm GrW203(f), 6cm GrW225(f), 8.14cm GrW278(f)
영국
Gew248(e), Gew280(e), Gew281(e), Gew281/2(e), Gew283(e), Gew283/2(e), Gew282(e), Gew282/3(e), R646(e), R655(e), MP748(e), MP749(e), MP750(e), MP751(e), MP752(e), MP760(e), MP760/2(e), MP761(e), MG135(e), MG136(e), MG137(e), MG138(e), MG230(e), MG341(e), PzB782(e), PzB789(e), 5cm GrW202(e)
유고슬라비아
Gew293(j), Gew291/3(j), Kar492(j), Gew214(j), Kar416(j), Gew252(j), Gew309(j), Gew288(j), Gew295(j), Gew307(j), Gew298(j), Gew290(j), Gew291(j), Gew291/2(j), Kar491(j), Kar491/2(j), Kar491/3(j), Kar491/4(j), Gew361(j), Gew308(j), Kar561(j), Gew301(j), Gew292(j), Gew294(j), Gew306(j), Kar505(j), Gew302(j), Gew304(j), Kar502(j), Kar503(j), Gew301(j), P641(j), MP760(j), MG145(j), MG147(j) MG156(j), MG146/1(j), MG148(j), MG246(j), MG200(j), MG247(j), MG248(j), MG256(j), MG257(j), 7.58cm GrW229(j), 8.14cm GrW270(j)
그리스
Gew307(g), Kar561(g), Gew215(g), Kar417(g), Kar417/2(g), Gew301(g), Gew305(g), Gew502(g), Gew306(g), Kar505(g), Gew302(g), Gew285(g), R612(g), R613(g), MG136(g), MG104(g), MG152(g), MG202(g), MG156(g), MG256(g)
소련
Gew252(r), Gew253(r), Gew254(r), Gew256(r), Kar453(r), Kar454(r), Gew255(r), Gew257(r), Gew258(r), Gew259(r), Gew259/2(r), Gew260(r), R612(r), P615(r), MP715(r), MP716(r), MP717(r), MP41(r), MP718(r), MP719(r), MG120(r), MG121(r), MG320(r), MG216(r), MG218(r), MG268(r), PzB783(r), PzB784(r), HG336(r), 3,7cm SpGrW161(r), 5cm GrW200(r), 5cm GrW205(r), 8.2cm GrW274(r), 12cm GrW378(r), 12cm GrW379(r)
미국
Gew249(a), Gew250(a), Gew251(a), Gew455(a), P660(a), R661(a), R662(a), MP760(a), MP760/2(a), MP761(a), MP762(a), MP763(a), MG123(a), MG124(a), MG219(a), MG321(a), MG269(a), PzB788(a), 6cm MW219(a) NbW263(a)
이탈리아
Gew208(i), Gew209(i), Gew210(i), Gew214(i), Gew231(i), Gew240(i), Kar408(i), Kar409(i), Kar410(i), Kar416(i), Kar430(i), Gew306(i), Kar505(i), P670(i), P671(i), R680(i), MP738(i), MP739(i), MG099(i), MG200(i), MG255(i), MG259(i), MG261(i), MG350(i), PzB785(i), PzB770(i), 4.5cm GrW176(i), 8.1cm GrW276(i)
※ 윗첨자V : 국민돌격대가 사용
당시 독일은 고질적인 무기부족, 점령국가의 치안을 이유로 기존의 노획 무기에 새로운 제식명을 붙여 사용했다.











































[1] 전차병과 공수부대원을 위해 개발된 모델.[2] 왜 카빈이 아니고 칼빈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아무도 카빈이라고 부르지 않고 군이든 사회든 가리지 않고 모두 칼빈이라고 불렀다. 위 영상의 hickok45 할배의 발음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미국에서는 r이 묵음이 아니라서 카얼빈 혹은 카ㄹ빈 비슷하게 들린다. 때문에 맞춤법 표준안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다들 칼빈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적을 때도 대개 칼빈이라고 적었다. 따로 문서가 개설된 구로동 카빈 강도사건만 해도 당시에는 전부 칼빈 강도사건 혹은 칼빈총 강도사건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예전 드라마 수사반장에서도 저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에피소드 제목이 칼빈총 강도였다. 때문에 M1 카빈을 직접 만져본 연령대의 경우 밀덕이 아닌 이상 지금도 칼빈이라고 해야 알아듣지 카빈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제식명인 M1 또한 마찬가지인데 M1은 과거 M1 개런드를 부르던 통칭이고 M1 카빈은 칼빈총 또는 그냥 칼빈이라고 불렀다. M1 카빈에 M1, M2 등의 제식 번호가 붙는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M16도 /엠심뉵/이 아니라, /에무심뉵/이라고 발음하는 옛날 세대도 있다.[3] 비슷한 사례로는 제식명이 M1으로 같은 톰슨 기관단총이 있는데, 이쪽은 개런드가 개발에 들어가기도 전인 1차대전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사실 개런드도 카빈화되어 카빈 사업에 후보로 들어왔으나 M1 카빈에 탈락했고, 그 이후에도 T26 등 M1 개런드를 카빈화하려는 시도가 있긴 했으나 무산되었다.[4] 장교의 권총을 대체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는 설이 있다. 실제로 장교들은 권총과 카빈을 둘 다 휴대했으며, 미군 편제 상으로 M1 카빈의 인가 정수가 많은 부대는 권총의 인가 정수가 많지 않았다. 카빈으로 근거리와 단거리 교전(200m 이내)을 커버가 가능했다.[5] 또한 이로 인해 후속 기관단총으로 M2 기관단총M3 기관단총이 개발되었다.[6] 개런드 카빈은 성능이 뛰어났으나 상부에서 급탄한다는 단점이 있어 하부 급탄 방식으로 개량했지만, 이 과정에서 중량이 무거워졌고 신뢰성이 감소되었다.[7] 이후 M1 카빈이 제식화되자, M1 카빈의 설계를 반영한 개량형인 G30R이 개발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동소총형인 WAR(Winchester Automatic Rifle)이 개발되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채택되지 못했다.[8] 물론 이렇게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 총열을 상당히 얇게 만들었다. 원래 용도대로 중근거리 반자동 사격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동 사격이나 중장거리 사격에는 총열의 내열성이나 집탄성 면에서 불리하단 평을 받았다.[9] 톰슨 기관단총이 구조를 최대한 간략화 한 결과 생산비가 225달러에서 45달러까지 떨어졌지만, M2 카빈은 처음부터 생산비가 45달러였고, 톰슨보다 위력이 좋고 사거리도 더 길고 가벼웠다.[10] 다만 돌격소총은 총기의 분류이지 총기의 형태가 아니다. 히틀러가 이름 붙였기에 등장한 분류이기 때문에 돌격소총이 아닌 다른 분류이름이 등장했을 것이다.[11] 물론 2차 대전 중 일선의 요구로 착검 장치가 추가되고 전용 총검인 M4가 지급되는데, 이 M4 총검의 디자인은 M16에 착검하던 M7 총검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지고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대인 전투용(인명 살상용)으론 매우 효과적이란 평을 받는다.[12] 권총탄인 .357 매그넘(9×33mmR)보다 조금 가는 정도.[13] 7.62x33은 생긴것도 매그넘 권총탄과 비슷한 반면, 7.62x39는 탄피에 테이퍼각까지 들어간 두툼한 소총탄이다. 운동에너지 차이는 약 1.5배이다.[14] 즉 자기들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제대로 못맞춘건데, 쐈는데 못맞췄다고 하기는 뭐하니까 "총이 고장난 거 같아요", 또는 "맞았는데 도망갔어요"라고 변명 했다는 것이다.[15] 제원상 유효 사거리는 270m(300yd)이지만, 180m를 넘어가면 명중률이 낮아져서 실질적인 유효 사거리는 180m라고 봐야 한다.[16] M1 카빈이 실전에서 보여준 사례는 훗날 한국군 제식 소총으로 채용되는 K2 소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극심한 연교차를 대비해 가스조절기를 부착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주 분실해 본 사람은 그냥 M16처럼 고정식으로 만들면 안 되나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M16은 장진호 전투처럼 극한기 전투에서는 기관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비교적 더 높다.[17] 이러한 저온에서의 부족한 신뢰성은 쇼트 스트로크와 중간탄의 시너지로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의 HK416도 중간탄과 쇼트 스트로크의 조화로 추운 지방에서는 신뢰성이 의심받는다. 쇼트 스트로크 방식은 여러 변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18] 개런드 수량이 적은 이유는 90년대에 수십만 정을 수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카빈은 예비군/경찰용으로 남겨 뒀고.[19]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제101공수사단이 줄기차게 쓰던 그 물건 맞다.[20] M1 카빈은 가늠자가 2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영점 조절이 가능한 가늠자고, 다른 하나는 M16 소총에서도 보았을 만한 ㄴ자형 가늠자이다.[21] 스털링 기관단총의 개머리판이 이런 식이다.[22] 사실 총검 장착 기능은 후기형 M1 카빈에서도 추가되었다.[23] M1 카빈은 원래 15발 탄창만 상정했던지라 M2와 함께 등장한 30발 탄창은 끼울 수는 있되 탄창 무게가 탄창멈치에 부담을 주어 급탄 불량이 생기거나 탄창이 빠지는 일이 생긴다. 이를 개량한 탄창멈치를 타입 IV 탄창멈치라 하며 탄창멈치 누르는 부분 반대편에 탄창의 툭튀를 아래서 받쳐주는 보강부분이 생겼다.[24] 그런데 애시당초에 7.62mm 탄은 반동이 약한 편이다. 근데 .30 카빈 탄보다 반동이 더 강한 5.56×45mm NATO 탄을 사용하는 M16 소총은 발사속도가 700~900RPM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설계한 의도대로 자동사격시에도 반동을 제어할 수 있다. M2 카빈이 반동이 큰 것은 가벼운 무게, 권총손잡이의 부재, 빠른 연사속도, 그리고 총열과 일직선을 이루지 않은 개머리판 축선으로 인한 총구들림으로 인한 것이다.[25] 1951년 이후부터는 전선이 고착화되어 전투양상이 고지전으로 바뀌었고 중공군은 단기간에 좁은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사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특히 유엔군에 비해 화력이 빈약한 한국군 방어지역만 집요하게 노려댔다. 반면 이를 막아야햐는 한국군은 M1919A4 같은 기관총이 부족했으며 보병분대의 자동화기는 M1918 브라우닝 뿐이었다. 이 때문에 소총이면서 장탄수가 많고, 자동사격까지 가능한 M2 카빈은 정말 유용했다. 심지어 하위호환인 M1 카빈조차 장탄수가 개런드보다 2배 많은 15발이라서 단거리 화력투사에 쓸모가 있다고 봤다.[26] 단, 예비군용 M2 카빈은 조정간 레버는 붙어 있지만 내부 부품이 달라서 자동발사는 안 된다. 단발자 부품이 낡아서 그냥 자동발사되는 건 꽤 많았다.[27] 파일:attachment/M1 카빈/M3_Carbine.jpg
M1 카빈을 기반으로 한 것도 있다. 위 사진은 조정간이 없는 것과 15발들이 탄창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M1 카빈을 기반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28] 당시 한국군에게는 자동화기가 많이 보급되지 못했고, 그나마 보급되던 M3 기관단총의 경우 연사력이 느리고 무게도 많이 나가서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군과 중공군은 71발 드럼탄창의 PPSh-41를 난사하며 돌격해왔기 때문에 한국군은 단거리 접전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군 지휘부는 이 대신 잇몸이라는 생각으로 M1 카빈을 최대한 많이 보급하여 분대화력을 늘리는 선으로 해결했다.[29] 이는 전투력 측면도 있겠지만 신체적 조건을 고려한 면도 있다. 당시 한국 여성 평균 신장으로는 개런드를 메고 숲속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조정래태백산맥에서는 체구가 작은 여성대원에게는 일부러 작고 가벼운 카빈을 구해다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백골 할머니'로 유명한 간호장교 오금손은 전방 군 병원에 인민군 11명이 쳐들어오자 혼자 M1 카빈을 들고 6명 가량을 사살하는 활약으로 2계급 특진하기도 했다.[30] 사실 .30카빈탄은 권총탄 중에서 손꼽게 강력한 탄인 .357 매그넘보다 1.5배 이상의 운동에너지를 가진 탄이므로 무시하는 것도 곤란하다. 5.45mm와 운동에너지가 동급이라, 유효 사거리 내에서는 대인용으로는 충분하다. 사실 관통력문제는 탄투형상에서 비롯된 일인데, .30 카빈탄은 권총탄과 같은 라운드 팁(Round Tip) 형상이라서 소총탄에 비해 관통력과 저지력이 차이가 날 수도 있다.[31] 특히 북파공작원들은 무게와 길이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개머리판과 총열을 잘라서 개조하는 일도 빈번했다.[32] 당시 뉴스 자료화면을 보면 자동화기의 부족으로 경찰관이 창고 구석에 쳐박혀 있던 M3 기관단총까지 꺼내와서 경계를 서는 모습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33] 간혹 M2 카빈이 섞여 있기도 했었는데, 우리 군이 보유한 M1 카빈도 대부분 연발 개수를 받았으므로 구분법은 총번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 자동화기로 생산된 M2 카빈은 M2라고 적혀 있다.[34] 사격훈련이 아예 없는 동네 작계 훈련(6시간 짜리)같은 경우 괜히 무거운 쇳덩어리 그 자체인 M16에 비해 들고 다니기 가벼운 카빈이 훨씬 선호받는다.[35] 진공포장까지는 아니고 고이 모셔놓는다. 애초에 총기를 진공포장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고 나무 박스에 박스 사이즈에 따라 21정 또는 28정이 들어있고 매년 3월 경에 모두 꺼내어 총번을 탁본해서 총기대장에 정리하고, 분기별로 병기수입을 실시했다. 상태 멀쩡한 오리지널 M1 카빈의 경우 미국에서 3,000 달러에도 팔린다. 물론 우리 예비군용 M1 카빈의 상당수는 2차 세계대전 후 다시 거둬들여 L자형 오리지널 가늠자를 사거리 조정 좌우 편차 조정이 가능한 신형 가늠자로 바꾸고 착검장치를 추가한 것들이다. 그래서 새로 달은 가늠자 뭉치에 총번 부위가 일부 가려져서 총번 탁본 작업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적색 유성메직펜을 가늠자 뭉치 아래 틈으로 밀어넣어 총번에 잉크칠을 한 후 일정 길이로 자른 투명 스카치테이프를 그 틈으로 넣어서 요령껏 탁본을 했다.[36] 하지만 생각 외로 파지감이 나쁘지는 않아 사격에 큰 불편함은 없다.[37] 하지만 K2와 M16을 쏴본 예비역의 말에 의하면 K2보다는 불편해도 오히려 M16보다는 편하다고. 물론 해당 예비역이 현역 시절 K2를 썼을 테니 판단은 알아서.[38] 예전에 예비군 중대본부에서 향방예비군의 사격훈련 표적지를 보관해야 했을 때는 모나미 153 볼펜의 몸통과 뚜껑 사이에 표적지를 놓고 돌려서 잠그면 탄착구멍과 비슷한 구멍이 뚫렸고 4B 연필로 구멍 테두리를 살살 문질러서 검게 하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구분을 하기 어려웠다. 의외로 멀쩡한 표적지를 제출하는 예비군들이 많았기에 이 탄착점 위조 작업을 종일 해줘야 했다.[39] 지역방위사단(구 향토)의 정비부대 같은 경우 이런 총들을 일부 모아 부품을 구해서 정비한다. 당연히 부속이 없어서 보급되지 않기 때문이다.[40] 여전히 예비군 4년차까진 M16A1을 사용 하지만 5~6년차는 이제 갈 놈이라 생각하는지 잘못 쓰면 가는 카빈을 지급한다.[41] 47년째 사용 예비군 '카빈소총' 2017년에 도태[42] 병력감축에 대응한 예비군 전력 강화를 위해 필요했는데 마침 기사도 뜨고 해서 그런 감이 있다.[43] 그렇다고 해서 이게 엄청나게 거창한 일,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당장 위의 영상의 유튜브 댓글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으로 비유하면 80세 가까이 된 노인(41년생)을 40~50대(67년생, 82년생) 아저씨로 바꾼 거다. 다만, 소총 자체가 워낙 느릿느릿하게 발전하는 분야라는 점은 염두에 두자. 당장 그 특수부대들이 사랑하는 HK416 소총조차 2004년 생으로 벌써 개발 19년차가 된 소총이다. 최신예 장비로 도배한 특수부대조차 총은 19살 대학생을 쓰는 셈이다.[44] '상세' 문단에도 서술했듯 존 브라우닝의 이복동생이다.[45] 아버지 제임스 클라우드 윌리엄스(James Claude Williams)는 부유한 지주였지만, 정작 데이빗은 어렸을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15세에 17세로 나이를 속여 해군에 지원했다가 거부되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다만, 17살때 군사학교에 입학했다가 총 몇자루와 막대한 양의 탄약을 훔쳐 한학기만에 퇴학당한 전적을 보면, 이때부터 범죄자로서의 싹수가 짙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보안관 살인도 정당방위 같은 것이 아니라 밀주를 제조하다 발각되어서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다.[46] 당시 데이빗 윌리엄스 역을 맡은 배우는 미 공군의 전쟁영웅이자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였다.[47] 2차대전은 총력전이라 이런 사례가 많다. 다른 예로, 타이어로 잘 알려진 굿이어가 전투기를 만들었다.[48] 대한민국은 보존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잉여탄약을 꾸준히 미국 등 해외시장에 팔아왔다. M1소총과 M1카빈소총이 엄연히 예비군용 무기로 무기고에 보관되고 있던 때에도 국산 잉여 30,06 탄, 30 카빈탄, 45구경 권총탄이 미국에서 잘 팔렸다. 미국 사람들도 매번 미제 새 탄약만 쓰기에는 비용 문제가 있으므로 싼 가격에 다량의 탄약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국군 및 타국군에서 방출된 저렴한 소총탄, 권총탄들을 많이 구입했다. 우리가 무기고에서 보던 탄통 그대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한글 스탬프가 찍힌 철제 탄통에 뚜껑을 열면 마분지 봉투에 포장되어 있거나 10발씩 클립에 끼워진 탄약들이 포제 탄입대(밴돌리어)와 함께 들어 있었다. 총포상, 인터넷 사이트들이나 Sportsman's Guide 같은 우편주문판매용 사냥, 낚시용품 카달로그들에 탄통 사진과 함께 한국군용 탄약으로 소개되어 루마니아, 소련 같은 동구권에서 방출된 철제 탄피 7,62×39mm 소총탄들, 심지어 2차대전 당시 독일에서 생산된 8mm 마우저 소총탄(제3제국 독수리 마크가 찍힌 마분지 상자에 포장된 그대로) 등과 함께 판매되고 있다.[49] 소총수, 포인트맨, 통신병, 지휘관.[50] 100이다! 이것은 PPSh-41와 같은 수치이다.[51] SVT-40/G43과 데미지, 연사력은 같은데 장탄수가 15발로(확장탄창 부착시 30발)가장 많다.[52] 일부 병력은 M1 개런드를 비롯하여 톰슨 기관단총, M3 기관단총, M1918 브라우닝도 들고 있다.[53] 6mm 비비탄이 아닌, 4.5mm 연지탄을 사용하는 공기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