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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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Computer

1. 개요
2. 정의
2.1. 넓은 의미의 정의
2.2. 좁은 의미의 정의
3. 역사
4. 위기?
5. 관련 회사
5.1. 부품 분야
5.2. 컴퓨터 브랜드
5.2.1. 메인프레임
5.2.2. 슈퍼컴퓨터
5.2.3. PC
5.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
5.3. 사라진 브랜드



1. 개요[편집]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주로 'PC'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개인용 컴퓨터는 기업, 기관 및 소수의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컴퓨터라는 도구를 일반 대중의 손에 전해줌으로써 정보화 사회의 기틀을 마련해준 극히 중요한 발명이다.

초창기 개인용 컴퓨터는 사용자가 부품을 직접 조립해 쓰는 키트 방식[1]이었으나, 애플 2를 비롯한 완성품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며 사용자 기반도 급속히 확산, '한 가정에 컴퓨터 한 대'라 지칭되는 퍼스널 컴퓨팅의 시대가 도래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컴퓨터 사용 저변 인구가 확대됨에 따라 인터넷이 개발·보급되었으며 이는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21세기 모바일 컴퓨팅의 전성기로 이어진다. 정보화 사회는 개인용 컴퓨터 덕분에 현실화된 것이다.


2. 정의[편집]



2.1. 넓은 의미의 정의[편집]


넓은 의미로는 개인용 컴퓨터 전반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다. 21세기 기준으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말을 들으면 "개인용이 아닌 컴퓨터가 뭐지? 회사나 학교에서 쓰는 사무용 컴퓨터를 말하나?" 싶겠지만, 사실 컴퓨터라는 것이 각 개인이 책상에 둘 만큼 작아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60년대까지 컴퓨터는 메인프레임 아니면 그 하위 등급인 미니컴퓨터(미니 PC 아님)가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21세기의 일반인이 상상하는 슈퍼컴퓨터와 비슷하다. 조직 전체가 공유하는 거대한 중앙 컴퓨터가 있고, 개개인은 네트워크 끝단에 있는 입출력 전용장치인 단말기들을 사용해 컴퓨터에 접속해 사용했다. 그렇다고 하나의 컴퓨터에 키보드 모니터 여럿 달아놓고 쓰는 아비규환이 벌어진 것은 아니고, 메인프레임 안에서 각 단말기마다의 고유한 환경이 돌아가면서 0.1초~0.01초마다 전환되는 식이었다. 전환 주기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온전히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 메인프레임미니컴퓨터는 구조적인 차이가 있기보다는 규모와 부피의 차이를 일컫는 말에 가까웠고, 이는 미니컴퓨터보다 더 작은 컴퓨터를 일컫는 마이크로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방 하나의 크기를 가득 채우는 괴물같은 크기의 컴퓨터는 메인프레임이고, 관물대 한 칸 정도로 줄어들면 미니컴퓨터고, 그거보다 더 작으면 마이크로컴퓨터인 셈. 그런데 1970년대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대중화되면서 이를 탑재하여 개인이 온전한 컴퓨터 한 대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마침 이름도 비슷하니 이러한 컴퓨터를 일컫는 말로 마이크로컴퓨터가 정착되었다. 한편 이런 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개인이 혼자서 온전히 소유하고 사용하므로 개인용 컴퓨터라 하여 Personal Computer라고도 불렀던 것이고. 물론 이 당시의 PC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는 결코 아니었다. 1970년대 초창기에는 아직은 표준화가 거의 되지 않아 사용자가 직접 납땜하고 조립해야 하는 키트 형태로 판매되기도 했고,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이른바 8비트 PC 전성시대에는 지금과 비슷한 완성품 PC들이 많이 등장했으나, 당연 그런 PC들 사이에 호환성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고 제각각 중구난방인 시대에, 일반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도 되지 않은, IT 매니아들 만의 전유물이였다.

즉, 요약하면 개인용 컴퓨터는 기존의 시분할 방식 메인프레임과 달리 아래의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1. 다른 사용자들과 타임 셰어링을 통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할 필요가 없으며
  2. 따라서 단말기와 컴퓨터의 구분이 없이 사용자가 조작하는 부분이 곧 컴퓨터이고
  3. 컴퓨터를 직접 조작하는 엔지니어/관리자와 조작을 요청하고 결과물을 받아보는 엔드유저/최종사용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의 차이가 위와 같은 탓에, 프로세서의 소형화가 이루어진 현대에는 딱히 크기에 따라 메인프레임과 개인컴퓨터를 구분하지는 않는다. UNIX 같은 멀티유저/멀티태스팅 OS를 쓰며 콘솔 자체는 계산을 하지 않는 것은 중대형 컴퓨터이고, 그것을 모두 독립한 장치, Windows나 macOS 같은 싱글 유저 OS로 하면 개인용 컴퓨터이다. 데스크탑 몇 대를 병렬로 연결하거나 서버용 랙에 설치해서 소형 슈퍼컴퓨터 비슷하게 만들어도 개인이 사용하면 개인용 컴퓨터이고, 데스크탑 컴퓨터 케이스에 어떻게든 부품을 쑤셔넣어서 여러 명이 콘솔로 접속해서 사용하게 만들면 중대형 컴퓨터인 것이다. 이런 탓에 UNIX 기기들의 전유물이었던 서버용 컴퓨터 시장에 좁은 의미의 PC가 처음 진입하던 과도기에는 절대 개인용이 아닌 서버를 PC서버라고 부르는 흥미로운 표현법도 있었다.[2]

그 정 반대로, UNIX 기기를 개인용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버급 장비와 동일한 아키텍처와 CPU를 장착하고 특정 과학기술 계산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UNIX 기기들의 경우다. 당연 소프트웨어가 돌아가고 외부에서 다수가 터미널로 연결하지 않으며 콘솔을 조작하는 것은 단 한 명 이기 때문. 주로 SUN의 ultra 시리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이들을 PC라고 부르지 않는데, 이런 기기들이 전성기였을 시절에는 PC의 성능이 보잘 것 없었고, 이후에는 아래 좁은 의미의 PC가 PC라는 명칭을 사실상 독점함에 따라 나름 차별성을 두기 위해서다. 당시 이런 기기들의 명칭은 마이크로 컴퓨터도, 퍼스널 컴퓨터도 아닌 그냥 워크스테이션이라고 불렀다.[3]

흥미로운 사실은,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에 의미가 없어진 단말기와 엔드유저라는 용어가 아직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조작하며 입출력을 받는 기기는 그 자체로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더라도 단말기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프로그램 등을 설치할 때 흔히 등장하는 EULA라는 약관은 End-User License Agreement, 즉 최종사용자 라이선스 협약이라는 뜻이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열린지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한 번 관습으로 정착된 단어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2.2. 좁은 의미의 정의[편집]


좁은 의미의 PC는 1981년에 출시된 'IBM PC'라는 상표명을 지닌 상품과 호환되는 "IBM PC 호환기종"을 뜻한다. 상술했다시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달로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처음 태동하던 시기에는 이런 컴퓨터를 지칭할 용어 자체가 뚜렷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미니컴퓨터보다 작은데다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쓰니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고,[4] 개인용이니 개인용 컴퓨터라고 부르자는 사람도 있었던 시절에 IBM이 이를 자사 상표로 등록한 것이다.


파일:IMB_PC-IMG_7271.jpg

'퍼스널 컴퓨터'라는 용어를 널리 퍼뜨린 IBM PC 5150

이 당시는 아직 개인용 컴퓨터가 필수 가전 제품이 아니던 시절이라 사실상 표준을 가질 만큼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고, 제조사마다 별도의 규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술했다시피 개인용 컴퓨터라고 팔리는 것이 기판에 납땜해서 직접 만드는 키트였던 시대다. 따라서 IBM이 PC라는 제품명으로 출시한 컴퓨터에도 당연히 전용 규격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규격은 완전히 독자적인 하드웨어가 아닌 소매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사용했고, 따라서 당시 기준으로는 호환성이 높은 편이었다. 높은 호환성을 바탕으로 IBM PC는 불티나게 팔렸고, 심지어 다른 기업들에서도 해당 규격과 호환되는 컴퓨터를 역설계해서 제작 및 판매할 정도였다. 엉겁결에 IBM PC는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지위가 되었고, IBM 제품이 아니지만 PC 규격과 호환되는 기종들은 "PC Clone" 또는 "PC Compatible"이라고 불렸으며 자체적인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품군이 나무위키에는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문서명으로 작성되어 있지만, 사실 IBM은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것도 아니고, 호환 규격이라는 것을 제정한 것도 아니었다. 워낙 가성비가 좋고 호환성이 좋다보니 짝퉁이 넘쳐났는데 그게 시장의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린 것에 가깝다. 이 덕에 얄궂게도 IBM은 큰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IBM PC에 사용된 운영체제인 MS-DOS를 개발한 Microsoftx86 CPU를 개발한 인텔은 엄청나게 성장했다. 이윽고 이 둘은 윈텔이라 불리며 해당 생태계를 주도하게 되었고, IBM은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고 결국 2005년에 개인용 컴퓨터 사업부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친 만큼,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PC 호환"이라는 생태계에 속한 제품인가였지, "IBM"인가 아닌가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이를 생략하게 된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1980년대에의 주요한 관심사는 "이거 PC 호환되나요?"였고,[5] 1990년대에는 "PC랑 호환 안 되는 것도 컴퓨터임?"이 되었다가, 200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PC 호환 규격을 제외한 제품들(Mac, PC-98 등)이 한국에서 사실상 멸종되면서 "PC가 컴퓨터지 무슨 소리임?"에 이르게 되었다. 이 흐름이 이어져 Mac조차도 2006년부터 인텔 CPU를 쓰게 되었고 Windows 설치가 가능해지는 등 IBM PC 호환기종이 될 지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럼에도 PC와 구별해서 불린 것은 내부 규격과 별개로 매킨토시의 역사에 비추어 윈텔 진영과 뚜렷이 분류되는 제품군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컴퓨터=PC"라는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는데, 이런 역사를 모르는 21세기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스마트폰도, 태블릿 컴퓨터도, 노트북도, 데스크톱 컴퓨터도 다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인데(≒인터넷이 되는데) 왜 특정 아키텍처를 쓰는 데스크탑 컴퓨터만 PC라고 부르냐?"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2.3. 마이크로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이크로컴퓨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사[편집]


PC 이전의 컴퓨터 역사는 항목 참고, 노트북의 초기 역사는 항목 참고, 보다 덜 알려지고 세세한 역사는 각 부품의 역사 (e.g. 케이스 역사) 참고.

  • 1974년, '알테어(Altair) 8800' 컴퓨터가 출시되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로 인정되고 있으며, 'Personal Computer'라는 표현 역시 이 제품을 만든 제작자가 최초로 언급했다고 한다.
  • 1977년, Apple II[6]라는 유명한 개인용 컴퓨터(넓은의미의 PC)가 출시되었고, 8비트 컴퓨터 시대가 이어졌다. PC-8801, 코모도어 64, MSX(대우 재믹스), 패밀리 컴퓨터(현대 컴보이), 세가 마스터 시스템(삼성 겜보이)를 보면 왠지 개인용 게임용 컴퓨터 같지만, 그러라고 사준 컴퓨터가 아닐텐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981년 1월, 삼보컴퓨터에서 한국 최초 상용 컴퓨터 SE-8001(8비트)가 출시된다. 이후 1983년 '정보산업의 해' 정책의 일환으로 금성 패미콤, SPC-1000, 트라이젬 30(애플 II 호환) 등이 보급된다.
  • 1981년 8월, IBM에서 16비트 컴퓨터 'IBM PC (5150)'을 출시하였다.
    이 제품 출시부터 PC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원래 PC라는 것은 IBM에서 개발한 수많은 업무용 컴퓨터용 아키텍처 중 하나에 불과했었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업무용으로 회사와 정부기관에 이 제품을 마구마구 공급하는 동시에, 해당 아키텍처를 다른 회사에게도 공개하는 시장 전략을 취했다. 이에 따라 많은 서드파티 회사가 이를 지원하고, 또 수많은 IBM PC 호환기종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PC업계의 표준으로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PC) = IBM PC 호환기종이라는 공식(상표의 보통명사화)이 성립돼버렸다.[7]
  • 1982년, 일본의 16비트 컴퓨터 PC98이 출시되었다. 이 기종은 IBM 호환 PC가 아닌 대표적인 컴퓨터 중 하나이며[8], 후술할 각종 고전게임(프린세스 메이커 등)이 386 PC 이후 PC98 게임에서 IBM 호환 PC 게임으로 이식되어 재발매되는데 영향을 끼친다.
  • 1983년, IBM PC XT(1979, 인텔8088)가 출시되었다.
  • 1984년, IBM PC AT(1982, 인텔 80286 탑재)가 출시되었다.
  • 1985년, 인텔 80386(32비트)가 출시되었다.
  •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개장, 청계천상가(세운상가)로부터 이전되었다.
  • 1989년, 교육용 PC 사업으로 16비트 PC(XT, AT)가 교육용 PC로 결정이 되었다. 한국에 대우 코로나, 삼성 알라딘, 금성 파트너, 현대 슈퍼, 삼보 트라이젬 등의 IBM 호환 PC가 보급되었다. (브로셔, TV광고) 아울러 한국 8비트 컴퓨터는 대멸종되었다.
    미국에서는 인텔 80486이 출시되었다.
  • 1992년, 세진컴퓨터랜드가 설립되었고, 96년경까지 전국구로 확장하면서 컴퓨터매장의 맹위를 떨쳤다.
    486 컴퓨터는 90년에 현대 엑셀 가격이었으나, 92년 대기업에서는 286 사무용, 386 고성능, 486은 최고급옵션으로 '구매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ᄒᆞᆫ글 2.0이 출시되었고, 한컴 2바이트 코드 덕분에 옛한글을 쓸 수 있었으므로, 훗날 MS Word가 맹위를 떨치는 와중에도 반 필수적인 워드프로세서로 살아남게 된다. 조합형 완성형 논쟁은 당시 중요한 이슈였다.
  • 1993년, 한국에 386/486 32비트 컴퓨터가 꽤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대학 신입생들은 단돈 몇백만원으로 486(심지어 사운드 카드까지 포함[9])을 구입할 정도로 가격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졌다.[10] , 프린세스 메이커 2,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삼국지 3, 대항해시대 2, 창세기전, 동급생 등의 고전게임이 이 시기의 유명한 PC 게임이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Mdir[11]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이쯤해서 GUI 기반의 윈도우3.1이 존재하였으나, 이는 응용프로그램에 가까웠고 여전히 운영체제MS-DOS였다.
    미국에서는 인텔 펜티엄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386, 486 네이밍은 역사속으로 넘어갔고, 인텔 호환 CPU는 AMD, VIA를 빼곤 자취를 감추게 된다.
  • 1994년, 삼성 SENS 노트북이 출시되었고, 데스크탑 브랜드는 매직스테이션으로 변경되었다. 이 전후로 PC 보급의 황금기가 시작되었으며(200~400만원), 매직스테이션 외에도 LG 심포니·대우 코러스·현대 멀티캡·삼보 드림시스·세진 세종대왕 등의 브랜드가 있었고(조선컴 참고), 당대 최고 유명 연예인들을 섭외하여 광고를 하였다.
  • 1995년, Windows 95가 출시되었다. 이전에 비하면 PC 사용이 훨씬 쉬워졌고(CLIGUI), PC 대중화를 이끌게 된다.(가격하락 지속)
    ATX(규격)이 제정(출시 96년)되었다. PC의 주도권이 기존의 IBM(IBM PC AT)에서 윈텔로 넘어갔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ATX는 97년 펜티엄2(430HX) 시점에 거의 정착하게 되며, 눈의 띄는 변화로는 누워있던 데스크톱 컴퓨터가 타워형으로 일어나게 된 것, 그리고 파킹이제 컴퓨터 전원을 끄셔도 됩니다라는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눈에 안 띄는 변화로는 CPU컴퓨터 쿨러가 달리기 시작한 것[12], USB가 지원되기 시작한 점이며, USB는 Windows 98빌 게이츠의 굴욕 Plug & Play가 도입되고 USB 1.1~2.0 즈음(98~01)에 시차를 두고 보급되기 시작된다.
  • 1996년, 조립 컴퓨터에 대한 기사가 주요 언론에 게재되었다.# IBM 호환 PC 태생이 조립 컴퓨터임을 감안하면 색다를게 없는 이야기이지만(87년 전후의 청계천/용산), 컴덕이 아닌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조립 컴퓨터를 해야 할 수요(조금이나마 더 싸다)가 발생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 1997년, 1997년 외환 위기로 경제침체를 겪었고, 국민들은 박찬호(LA)로 위로받았다. 삼보컴퓨터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삼보컴퓨터 체인지업을 출시하였다. 김국진의 "밤 새지 말란 말이야"라는 현대 멀티캡 광고는 좋았다.
  • 1999년, 국민PC사업으로 셀러론(펜티엄2 열화판) 100만원(반값) PC 보급(가정당 1 PC[13])이 시작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자 정보통신(인터넷: ISDN(KORNET), ADSL(메가패스))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었다.# PC방이 생겼고, 스타크래프트(1998)는 민속놀이가 되었다.
    짐 켈러AMD64 명령어 집합(아키텍처)을 개발하여 64비트컴퓨팅 시대를 열었다.
    또한 인텔 아이태니엄 시리즈 삽질과 RDRAM과 DDR SDRAM의 경합이 있었다.
    DVI 인터페이스가 제정되었고, 아날로그(CRT)-디지털(LCD) 교체를 앞두게 된다. 이후 2005년 정도 되면 LCD가 명백한 대세가 된다.[14]
  • 2000년, 닷컴 버블의 고점을 찍었다. 1996~2000년 IT 업계(벤처기업)가 폭풍 성장을 하였고, 2002년까지 몰락하였다. PC 제조업계도 영향을 많이받았으며, 과거 IBM PC 호환 기종 업계의 선두 주자 컴팩의 명맥이 끊어지고(2001년 9월 HP Inc.에 피인수), Dell이 부상하였다.
  • 2001년, "미니노트북"으로서 후지쯔 라이프북 P 시리즈 P-1000이 출시되었다. 980g이라는 무게가 인상깊었다. 2003년 1kg 초반의 P5010 제품은 보다 널리 팔렸다.
  • 2002년, 파나소닉 렛츠 노트 CF-R1이 출시되었다. 12인치 1kg 미만의 초경량 제품으로서, 역사적인 일본 비즈니스 노트북으로 남게 된다.[15]
    윈텔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FDD)를 레거시로 취급하며 더 이상 지원하지 않기로 발표하였다. CD(DVD[16]), USB 메모리, SD카드(2010년대 이후에는 microSD)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Windows XP Media Center Edition이 출시되며 Windows Media Center를 강화하고 HTPC 시장을 공략한다. 매직스테이션의 디자인은 흡사 미니컴포넌트를 닮기도 했으며, PC 액세서리로 TV리모콘이 주어지기도 했다. 몇년 뒤 인텔 바이브까지 들고 일어났지만, PC를 TV처럼 사용하는 일은 잘 없었고, 망했어요.[17]
  • 2003년, 인텔 센트리노 플랫폼이 제정되었고, 이 기점으로 노트북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와 함께 Wi-Fi 무선랜(KT 네스팟 2002, 802.11g 2003)도 보급되기 시작한다.[18]
    소니 쇼크 사태가 있었다. 전자제품 전반에서 일본의 주도권이 약해졌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2004년, LenovoIBM PC사업부를 인수하였다. 많은 LG IBM ThinkPad 유저들은 절규하였고, LG전자는 XNOTE, XPION 브랜딩을 시작하였다.[19]
    삼성 SENS Q30이 출시되었다. 센트리노, 팬리스, ODD 미탑재의 1.08kg 초경량 노트북이었다.
    인텔 펜티엄4 프레스캇이 출시되었고, 4 GHz의 벽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멀티코어 프로세서(2005 펜티엄D, 2006 코어, 코어2)로 개발방향이 전환되게 된다. 특히 2007 코어2 쿼드는 켄츠할배라 불리며 장수만세를 외쳤다.
  • 2005년, UEFI 포럼이 발족되었다. 바이오스 대신 UEFI가 적용되며 부팅 설정이 달라졌고, 16비트에서 64비트로 넘어가 각종 제약에서 자유로워졌으며, 하드웨어 호환성이 좋아졌다(MBR 참고).
    소니는 1.1kg의 초경량 노트북 VAIO tx시리즈를 출시하였다. 더 나아가 이듬해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 노트북 VAIO SZ/Z 시리즈를 출시하였다.[20]
  • 2006년, MacBook Pro, MacBook이 출시되었다.[21] 비주류 PC 대표주자인 매킨토시PowerPC를 버리고 인텔 CPU를 탑재하여 IBM PC 호환기종이 되었다.[22] Boot Camp가 지원되며 맥에도 윈도우를 설치할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오리가미 프로젝트가 UMPC 시장을 열었고, 소니 VAIO UX 등이 출시되었다. 비싸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노트북의 가능성이 열렸다.
  • 2007년, 반도체 치킨 게임이 한창이었다. DRAM 가격이 폭락하였다. PC의 RAM 단위가 MB에서 GB로 바뀌게 되었다. 치킨 게임의 끝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대침체)로 종료되었다. 독일 반도체, 일본 엘피다 메모리가 휘청였고, 삼성전자가 승자가 되었다.
    ASUS에서 Eee PC를 출시하였고, 넷북이 유행하였다. 싸고 가볍고 휴대하기 좋은 노트북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iPhone이 출시되었다. 그 이전에도 PDA란 물건이 있었지만, 아이폰의 파급력은 현재 알다시피(...)
    현주컴퓨터가 폐업하였다. 이 회사의 부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시기 즈음 완제품 데스크톱 컴퓨터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조립 컴퓨터 아니면 노트북 컴퓨터로 사용자가 갈리게 되었다.
    CUDA SDK가 배포되었다. GPGPU 병렬컴퓨팅이 발전하였고, 그래픽카드는(게임은) NVIDIA라는 인식에 확실한 못을 박게 되었다.[23]
  • 2008년, MacBook Air가 출시되었다. 서류봉투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Chrome이 출시되었다. 조금 시일이 더 걸리긴 했지만, 느리고 느린 Internet Explorer 강점기가 끝나가게 된다. 웹 표준HTML5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10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웹표준 준수 분위기가 일어나게 된다.
  • 2009년, 인텔 아톰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넷북, 넷탑의 전성기였다. 서브노트북이라는 데스크톱 외 하나 더 구입하는 컴퓨터의 개념이 보편화되었다.
    소니 VAIO P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컴퓨터라는 희망사항을 보여주었다.
    Windows 7이 출시되었고, 64비트 운영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시기 4GB RAM 장착이 보편화 되었는데, 32비트 운영체제로는 RAM을 최대 3.2GB 정도만 사용할 수 있는 RAM/주소할당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환성을 걱정하여 32비트 운영체제를 선택한 사람들을 위해 1+1+1GB 트리플채널을 지원하는 마더보드도 있었고, 잉여로운 RAM을 사용하고자 램 디스크를 설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2010년, MacBook Air(2010 late)와 그 대항마 울트라 씬 노트북(→ 2011년 울트라북)들이 출시된다. 이 과정에서 SSD가 널리 보급되었으며[24], HDDC 드라이브에서 밀려나게 되며 멀티부스트, 외장 HDD, NAS 속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잃은 ODD는 종말을 고했다. 노트북 배터리는 2cm 두께 18650 원통형 규격(파나소닉)에서 벗어나 얇은 리튬이온/리튬폴리머 파우치형 배터리(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ATL)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 2011년, 삼성 센스 시리즈 9이 출시된다. 삼성 울트라북 계보의 첫 주자가 되며, 후속 아티브 북 9(2012)으로 이어지며 이 기점부터 삼성 시리즈, 삼성 아티브(2013)라는 새 PC 브랜드 전략이 시작된다. 즉 삼성 SENS매직스테이션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난다. LG에는 xNote P210이라는 울트라 씬 노트북이 출시되었다.[25] 그보다 컴덕들에게 널리 알려진 제품으로는 인민에어(2012)가 있다(...)
    인텔 샌디브릿지 CPU가 출시되었다. 인텔 퀵 싱크 비디오가 탑재되었고[26], 장수만세 CPU가 되었다.
  • 2012년, Windows 8Surface RT가 출시되었고 망했어요. 메트로UI가 특징인데, MS는 폰/태블릿 환경의 윈도우 제품을 적극 시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스마트폰(아이폰)과 태블릿(아이패드)이 기존 IBM PC 호환기종 제품들에게 서서히 위협이 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리사 수가 AMD 총괄 부사장으로 취임하고, 짐 켈러도 AMD에 합류한다. 이들은 AMD 부활을 위해 노력한다. 라는 말은 이 시점의 AMD는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 2013년, 브라이언 크르자니치가 인텔 CEO로 취임한다. 여기까지가 인텔의 황금기였고, 곧 R&D(14++)의 암흑기가 시작된다. (2018년 해임)
    연탄맥이 출시되었다.
  • 2014년, 소니는 PC 사업부문 즉 VAIO를 적자를 이유로 매각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소니/역사 참고.
    반면 LG는 뚝심있게 초경량 노트북 LG PC gram을 출시하였다. 이후 LG gram이 되어 가벼운 노트북의 대명사가 된다.
    인텔의 베이트레일/체리트레일 저전력 태블릿들의 창고정리(중국제 태블릿 컴퓨터)가 있었다.
    반면 MS는 뚝심있게 Surface Pro 3를 출시하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윈도우 태블릿 PC명맥을 이었고, 이듬해 Surface Book 출시로 매니아들의 호응을 얻었다.
  • 2015년, 인텔 코어 M 시리즈가 탑재된 팬리스 노트북들이 출시되었다. 아톰보다는 고성능이지만 그만큼 비쌌고 가성비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삼성 노트북 9 2015 Edition이 출시되며, 삼성 아티브 브랜드가 폐지, 삼성 노트북이라는 브랜드 아닌 브랜드가 된다. 즉 삼성은 PC의 시대는 저물었다라고 판단하고 갤럭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MacBook(12형)이 출시되었다. USB Type-C를 최초로 탑재한 PC(인텔CPU)이다.
  • 2016년, 오버워치가 발매되었고, 서든어택2의 급사가 있었다. 배틀그라운드(2017)과 함께 1인칭 슈팅 게임 붐이 일었다. 잘 만든 조립 컴퓨터와 잘 선택한 그래픽 카드가 중요해졌다. 일각에서는 그래픽카드 성능 비교 밈이 유행하였다.[27]
    게이밍 PC, 게이밍 노트북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가 있었고, 알파고가 유명해졌다. NVIDIA GPU(GPGPU)와 TPU도 주목을 받았다.
  • 2017년, AMD RYZEN 시리즈가 발표되었다. 불타올랐던 불도저~엑스카베이터 대비 인상적인 성능 향상으로 유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28] AMD는 재도약을 시작했고, 사람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
    그래픽 카드 채굴 대란이 있었다. 2015년 즈음부터 암호화폐 채굴 붐이 일어나 이 시점에서 그래픽카드 수요/공급이 문제된 것이다. 여담으로 이 즈음에서 수랭 이야기도 많이 나오곤 했다. PC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마이크로소프트는 Windows on ARM을 출시하였다. x86(x64) CPU 외 다른 CPU(AP)에서 구동되는 비 IBM PC 호환기종 윈도우 제품 중 과거보다는 쓸만한 제품이 나오게 된다.[29] 이런 시도를 해야 했을만큼, 각종 윈도우 태블릿들이 망할 만큼, 인텔 CPU는 전력을 많이 먹고 많이 뜨거웠다.
  • 2018년, 초미세공정 EUV가 회자된다. 계기는 차세대 반도체라인 기공식에서 현수막이 거꾸로(...)[30]
    이쯤에서 PC 제조사들은 태블릿 컴퓨터의 성장세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고, 노트북 시장이 의외로 견고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 2019년, 갤럭시 북 Ion/Flex가 출시되며 삼성은 다시 PC에 힘을 싣기 시작한다.[31] LG도 LG gram(2019)[32] 출시로 "gram" 브랜딩을 강화하였다.
    연말, 코로나19 팬더믹이 시작되었다. 이 여파는 2020~2022년까지 이어진다. 재택근무, 비대면 수업을 비롯한 언택트사회, 넷플릭스 유튜브 알고리즘 등의 방구석 오락같은 환경변화가 IT산업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눈에띄는 사건으로는 OLED 전환기에 LCD가 퇴역을 앞두고 수요가 폭증하여 공장매각을 늦추고 생산에 다시 힘썼다는 점이었다. 정치적으로는 코로나 전후로 미국-중국 무역 전쟁(2018), 화웨이 제재(2019), 2020년 주가 대폭락, 코로나 버블(비트코인),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 인플레이션 감축법, CHIP4 사건들이 있었고, 이에 따라 환율, 반도체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끼쳤다.
  • 2020년, 애플은 WWDC 2020에서 Apple Silicon 이주를 천명하며 인텔CPU(IBM PC 호환기종)와의 이별을 고하였다. 과거에는 스마트폰/태블릿에나 탑재했던 Apple Silicon AP를 MacBook Air(M1, 2020년), MacBook Pro(13형)(2020), Mac mini(2020)부터 탑재하기 시작했다.
    AMD RYZEN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라이젠+라데온 세트를 라라랜드[33]라 부르며 그 성능향상을 칭송하기도 했다.
    MCM 방식의 AP/CPU설계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초미세공정에서 수율을 고려하면 단점보다 장점이 크게 되었다. 애플M1은 MCM은 아니지만 통합적인 설계로 극적인 성능향상을 보였으며, M1 울트라, 라이젠 3세대(2019)[34]등을 거치며 고성능 CPU는 MCM 적용이 당연한 시대가 된다.
    인텔은 인텔 Evo 마크를 붙여주는 마케팅을 시작한다.
  • 2021년, 인텔 12세대가 출시되며 인텔 빅리틀이 처음 적용되었고, 기대와 우려[35]가 공존하였다.
  • 2022년, 인텔 Arc 그래픽카드가 출시되었다. 암호화폐로 촉발된 그래픽카드 수요급증의 물살을 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부터 부동소수점연산, 행렬연산 등의 컴퓨팅 성능에 GPGPU/NPU 같은 하드웨어 가속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투자의 필요성은 높았던 상황이었다.[36]
    때마침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공지능 가속기(NPU)의 관심이 커졌다.[37] DALL·E+NovelAI+Stable Diffusion으로 촉발된 그림 인공지능대유쾌 마운틴, 그리고 ChatGPT 대화형 인공지능 등의 이슈들이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인텔이 아니라 엔비디아의 주가가 폭증했다.
    RYZEN 7 3D Cache가 출시되었다. 수직으로 CPU위에 캐시 메모리를 얹어 한정된 면적에도 불구하고 대용량의 캐시메모리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성능 향상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38]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CPU/메모리/GPU 구조/구성이 서로 달라질 수 있음을 입증하게 되었다.[39]


4. 위기?[편집]


먼저, 이를 논하기 위해선 PC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PC 위기론은 여러 관점의 주장이 뒤섞여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윈텔로 대표되는 데스크탑 환경에서 성장한 거대기업들이 구글 등 모바일 환경에서 급성장하는 거대기업에게 패권을 넘겨줄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인텔로 상징되는 고성능 데스크탑 프로세서가 ARM 등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을 펼치고, 누군가는 유선전화가 도태되었듯 데스크탑 컴퓨터가 도태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주장은 모두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으나, 본 문단에서는 위에서 말한 개인용 데스크탑 컴퓨터를 말하는 것으로 그 논의를 한정하자.

컴퓨터의 발전은 곧 소형화와 고성능화의 역사이므로, 휴대용 컴퓨터가 충분히 고성능화되었음에도 휴대하지 못할 크기와 조작방법을 고수하는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휴대용으로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휴대하지 않을 때의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가 휴대성을 가질 수 있는 원천인 입력과 조작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없으며, 들고 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일체화된 입출력장치를 사용하는 대신 고전적인 키보드, 마우스 등의 입력기기를 사용하고 휴대가 불편하거나 불가능한 크기의 출력장치를 사용하며, 이러한 구성요소를 일체화된 소형 케이스로 포장하지 않고 특정 장소에 비치하여 사용하는 컴퓨터가 바로 PC 위기론에서 지칭하는 PC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론은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제기되었는데, 신흥 산업의 성장에 으레 따라오는 마케팅적 수사인 측면도 크다. 팬택이 2010년 베가 X를 출시하면서 PC가 5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P의 법칙이라 명명하며 마케팅에 크게 활용한 것이 그 예시이다. 그러나 이런 과장된 마케팅을 제외하더라도 PC 시장이 계속 축소되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기존에는 PC(윗 문단에서 정의한 의미로, 고전적인 형태의 데스크탑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가능했던 작업들 중 상당수가 모바일 디바이스에서도 가능해졌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한 작업"이라는 시장을 이전처럼 독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그동안 PC가 누려왔던 대체불가능한 독보적인 지위가 약해지는 것이지, PC가 비교열위나 절대열위를 갖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체재보다 비교열위를 갖는 상품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것은 쉽지 않다. 샤프가 발명되었다고 연필이 퇴출되던가?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제품들은 대체제에 의한 완전지배를 당하는 제품들이다. 즉, 다른 제품이 이 제품의 효용을 완전히 포함할 때 퇴출되는 것이다. 모바일 디바이스는 PC가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대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PC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첫 문단에서 살폈듯 모바일 디바이스는 휴대성을 위해 특정한 형태의 입출력장치를 가져야 하고, 일체형의 소형화된 폼팩터를 가져야 하는데, 이러한 본질적인 요소들이 PC의 일부 기능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충관계는 PC와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제품군의 본질적인 요소에서 오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한 제품군이 다른 제품군을 완전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성능이 PC만큼 높아진다면, 해당 기술을 모바일 다바이스의 폼팩터에 우겨넣는 대신 데스크탑 PC의 부피에 배치하고 전원에 직접 연결하여 압도적인 열관리와 전력량을 제공할 경우 PC의 성능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다. 모바일 디바이스에 키보드와 마우스 이상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갖춘 입력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입력장치를 PC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는 마치 PC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 소형화되고 일체화되더라도 휴대성이라는 면에서는 모바일 디바이스를 압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서로를 압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강점을 발휘하는 분야가 다른 만큼,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장을 구축한 형태를 보인다. 두 시장이 하나로 합쳐져 PC가 모바일 디바이스를 잡아먹는 것도, 모바일 디바이스가 PC를 도태시키는 것도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다. 태블릿 컴퓨터가 시장에 등장할 당시, 스마트폰의 휴대성 및 편의성과 노트북 컴퓨터의 생산성 모두를 잡는 강력한 폼팩터로 시장을 흔들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아직은 휴대성과 생산성을 양립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오히려 고전적인 의미의 데스크탑 컴퓨터, 즉 표준화된 크기의 케이스 안에 표준화된 폼팩터의 하드웨어를 임의로 조립해서 사용하는 컴퓨터의 시장을 침범하는 것은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노트북 컴퓨터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시즈모드용 겜트북이 그것인데, USB Type-C를 통해 USB 3.0썬더볼트 등의 초고속 전송이 가능해지고 USB PD를 통해 충전까지 가능해져 고정된 작업장소에서는 USB 허브 또는 썬더볼트 독에 연결된 케이블 하나만 연결해서 간편하게 데스크탑 수준의 입출력장치와 전원을 연결할 수 있고, 이동해야 할 경우는 케이블 하나만 분리하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데스크탑 수준의 성능을 쑤셔넣었기 때문에 이동이 가능하다뿐이지 휴대성이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고정된 자리에서만 사용할 것이라면 같은 성능의 데스크탑을 사용하는 것이 비교도 안 되게 저렴하기 때문에, 데스크탑에 준하는 성능을 여러 장소를 오가며 사용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 유용하므로 위협적인 경쟁자가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모바일 디바이스보다는 경쟁관계가 더욱 직접적이라는 것이다.


5. 관련 회사[편집]


대부분의 업체들은 문어발식으로 부품도 만들고, 완제품도 만들고 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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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부품 분야[편집]



5.1.1. CPU[편집]


  • 인텔
  • AMD
  • ARM Holdings - 일반 컴퓨터용 CPU[40]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모바일 기기용 CPU를 만든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CPU의 99%ARM 계열이다.[41]
  • VIA
  • 프리스케일 - PowerPC 계열 CPU 생산.
  • IBM - IBM Power계열 CPU 생산, 기업용 메인프레임 완제품도 생산한다. 2010년 이후로는 솔루션 회사가 되어 일반인은 볼 일이 없다.
  • 소니, 도시바 - IBM의 합작으로 플레이스테이션3에 사용된 CELL-Broadband Engine을 만들었다.
  • (주)에이디칩스


5.1.2. RAM[편집]




5.1.3. 메인보드[편집]




5.1.4. 그래픽 카드[편집]


  • NVIDIA
  • AMD: ATI였는데 AMD에 인수합병됨
  • 인텔 - 그래픽 카드 산업에선 손을 땠지만 여전히 그래픽 칩 점유율 세계 1위로서 2위인 엔비디아보다 엄청난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래픽 카드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내장 그래픽 때문에 높은 것이다. 인텔은 사실상 CPU, 메인보드 칩만 생산중이다. 2022년 기준 상반기 노트북 CPU를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데스크탑용 GPU도 생산할 예정이다
  • 매트록스
  • 3dfx


5.1.5. 컴퓨터 쿨러[편집]


  • CPU 쿨러
    • 공랭
      • ANTEC
      • DEEPCOOL
      • COOLER MASTER
      • CRYORIG
      • be quiet!
      • Phanteks
      • Noctua
      • AVC
      • 잘만테크 - 설명이 길어진 관계로 각주참고[42]
  • 수랭
  • 컴퓨터 팬
CPU 쿨러를 제조하는 회사라면 컴퓨터 팬도 만들게 되어 있다.


5.1.6. 하드디스크[편집]


  • Seagate : 2006년 Maxtor 인수 합병, 2011년 4월 삼성전자의 HDD 부문을 받고 지분 상당수를 매각했다.
  • Western Digital (WD, 웬디)
  • 히다치 : 2002년 IBM 하드디스크 부문 합병
  • 도시바 : 2009년 후지쯔 하드디스크 부문 합병


5.1.7. SSD[편집]



5.1.8. 파워 서플라이[편집]


퍼스널 컴퓨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중요한 모듈이다.


5.1.9. 수입 유통사이자 제조 업체[편집]




5.1.10. 완제품 회사[편집]


  • Lenovo - IBM이 2004년에 자사의 PC 사업부를 Lenovo에 매각하였다. 전세계 완제품 컴퓨터 업체 중 세계 1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 HP Inc.
  • Dell - 완제품으로 쓰기에 가장 좋다.
  • Apple - 2009년에 팹리스 반도체 회사를 인수해서 자사의 사업부문으로 만들었다. 그래픽, 예술 분야의 점유율이 높다.
  • 삼성전자 - 한국 한정으로 비중이 가장 높다.
  • LG전자
  • 한성컴퓨터
  • 삼보컴퓨터
  • 주연테크
  • NEC
  • 도시바
  • 후지츠
  • 파나소닉
  • VAIO - 소니가 PC사업부를 분리했다.
  • 안랩 - V3가 포함되어있다. 포장상자와 본체에 V3 표시가 있다.
  • 와콤 - 원래는 태블릿스타일러스 펜 제조업체지만 태블릿 PC인 신티크 컴패니언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 폭스콘 - 대표적인 대만의 OEM 회사.
  • ECS
  • 오코스모스 - 태블릿 컴퓨터 전문 회사.[43]
  • 엠티스 - 한국에서 특수 산업용, 선박용 컴퓨터, 주문형 컴퓨터등 개발 생산한다. 2016년 10월 선박용 컴퓨터 신제품에 대하여 DNV GL 선급 인증을 받았다.


5.2. 컴퓨터 브랜드[편집]



5.2.1. 메인프레임[편집]




5.2.2. 슈퍼컴퓨터[편집]




5.2.3. PC[편집]




5.2.4. PDA/스마트폰/태블릿 컴퓨터[편집]




5.3. 사라진 브랜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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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텍컴퓨터: 그동안 흰색 아니면 누런색(?)이던 컴퓨터 몸체를 한국 처음으로 컬러 몸체를 내놓았던 곳 중소기업으로 공룡 캐릭터를 내세우는등 아기자기한 비주얼 마케팅으로 1990년초중반 신문 및 방송광고를 많이 하던 업체. 1987년에 설립되었다. 그런데 과장광고로 경고를 먹기도 하고 부품 저작권 침해로 사장이 불구속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신문 광고로 크게 가격대반란~이라면서 5.16 군사정변 당시 사진을 붙였다가 '반란'이라는 표현에 피꺼솟한 일부 계층의 분노어린 반발을 받기도 했으며 한국논단에선 친북 운운거리기도 했다. 중소기업으로 떠오르나 했더니 결국 IMF 이후 소리소문없이 부도(1997년 12월 22일)나 사라졌다. 덤으로 이 업체도 별별 문어발 사업 확대 투자로 나서서 종말을 부채질했다.

  • 렉스텍

  • IPC: 완제품업체로 한국IPC는 1989년 회사 창립 후 신용카드 단말기 프린터 공급업체로 이름을 알렸다가 1996년 데스크탑 PC시장에 진출하면서 `마이지니`와 `헬리우스`란 PC 제품을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동남아시아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앞세우며(당시 한국지사장의 컴퓨터잡지 인터뷰를 보면 동남아시아 PC판매 업체 1위였다고)한국에 Tv광고도 했었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알아준다고 한국에서 알아줄 리가… 게다가 제품이 윈도우 95가 잦은 에러를 일으킨다는 게 드러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자 발매 1년도 안 가 초특가라며 떨이로 마구잡이로 팔면서 그야말로 철저하게 파묻혔고 결국 이 기사가 나온지 2달도 안 돼 진출 2년도 안 가 1997년 1월 29일, 한국지사가 문 닫았다. 이때 어음 보증을 하던 유통사 멀티그램도 덩달아 부도가 나버려서 멀티그램이 배급을 맡은 많은 PC게임 발매사까지 덩달아 타격을 받았다. 이 무렵, 용산에서 CPU와 메모리가 없는 엉터리 마이지니 제품을 50만원에 파는 똥배짱 사기극까지 벌어지면서 이 업체 이름은 흑역사로 완벽하게 사라져버렸다.



  • 큐닉스컴퓨터 : 1981년 설립되어 1990년대 초까지 PC 및 프린터사업 판매 호황으로 연평균 100%의 고속성 장을 유지했다. 금융 업무를 담당하는 '큐닉스파이낸스'를 비롯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총판 업무를 담당한 `큐닉스정보기술` 등 계열사를 확장해 갔다. 하지만 무리한 계열사 확장으로 회사는 자금 압박에 시달렸음에도 무리하게 새로운 사옥을 마련하며 회사 재정을 더 수렁으로 빠뜨렸다. 결국 계열사 큐닉스파이낸스가 IMF로 부도 위기에 처해 있는 금융사로부터 130억원의 단기 자금을 쓰던 끝에 회사 운영 자금 부족으로 1997년 12월 10일 부도가 나서 사라졌다.


  • 모뉴엘 - 2004년에 설립된 한국의 PC/소형 가전 제조회사였다. 주로 판매하던 제품으로 Home Theatre Personal Computer(HTPC)를 판매했으며 게다가 쿨링계에서 실험 좋아하는 회사로 이름 높은 잘만테크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잘만테크는 2011년 7월 모뉴엘에 인수되었다. 이후 2014년 모뉴엘 사기 대출 사건으로 자회사였던 잘만테크도 피해를 입었으며 모회사때문에 자회사였던 잘만테크는 2017년 6월이 돼서야 겨우 회생 절차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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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로 기판과 각종 마이크로칩을 조립해야 했으며 애플 1 같은 제품이 이에 해당된다.[2] 아래 좁은 의미의 PC에서 유래된, 즉 x86 아키텍처에 Windows NT를 돌릴 수 있는 기계를 그렇게 불렀다. 간혹 NT 대신 Linux나 x86 버전 UNIX(솔라리스 등)를 돌려서 서버 역할을 하기도 했다.[3] 지금은 PC의 발달로 인해 이 분야는 수퍼컴퓨터를 필요로 하는 고도의 연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PC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SUN은 오라클에 팔렸다.[4] 본격적인 퍼스널 컴퓨팅 시대를 촉발했다고 평가받는 애플 2조차도 당시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이크로컴퓨터라고 불렀을 정도다.[5] 컴퓨터를 구매할 때 이런 질문을 해야 했다는 것은 당시 시장이 PC 호환기종+맥킨토시로 양분되어 있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야 맥을 제외하고 어느 회사 컴퓨터 제품을 사더라도 윈도가 깔려있는 PC 호환기종인 것이 당연하지만, 1980년대는 수많은 회사들이 PC 표준의 아성에 도전하던 전국시대였다. 미국에서만도 아타리, 코모도어, 왕, 싱클레어, 애플(맥이 아니라) 등등 다양한 컴퓨터들이 개인용 및 업무용으로 출시되어 경쟁하였으며, 일본에선 교육용으로는 MSX, 업무용으로는 PC가 주류였지만 이는 IBM PC가 아니라 NEC PC라는 전혀 다른 컴퓨터였다(PC-8801 등). 우리나라도 삼성전자의 SPC-1000, 금성 패미컴, 삼보 트라이젬(애플 II 클론), MSX 등 다양한 개인용 컴퓨터들이 서로 경쟁했고 IBM PC는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독자적인 OS를 탑재하고 있어 서로 응용 프로그램 호환성이 없을 뿐더러, OS 명령어(GUI 방식이 아니었다)도 전부 달라 사용법을 별도로 배워야 했다.[6] 대한민국에서의 애플II 항목 참고[7] 당시 관공서나 기업에서 쓰던 DOS를 탑재한 IBM 호환 PC는 100% 독립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데이터베이스나 수식 계산을 할 때엔 서버에 연결해서 프로그램을 돌리고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는 PC가 아닌 3270 호환 기종 단말기로 쓰인다.[8] 당시의 16비트 IBM 컴퓨터로는 한자를 표현할 길이 없었다. IBM 호환 PC와는 지향점이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시작된다.[9]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레포트 작성용, 사무용이라면 컴퓨터가 좋은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PC 스피커 참고. 농담이 아니라 (16비트) IBM 호환 PC의 사무용이란 컨셉은 기존의 8비트 컴퓨터와 16비트 컴퓨터의 지향하는 방향성에서 비롯된 차이점이었고, 사운드 뿐만이 아니라 그래픽에서도 당시 전환기에 XT는 320×200 해상도(CGA) 그래픽을 출력하여, MSX(스프라이트)보다 나은 해상도를 얻고 색상을 잃었다(MSX 256색 vs IBM 흑백~16색). 게임용 그래픽(도트 노가다참고)으로 쓰기에는 무리였지만, IBM은 사무에만 관심이 있지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십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IBM 호환 PC가 멀티미디어 기능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10] 4~5년 전만 하더라도 UNIX 터미널을 통해 컴퓨터를 다뤘다. 대학 선후배 간 세대차가 컸다(...)[11] Mdir 이전에는 PC는 공부하지 않으면 쓸 수 없었던 그저 까만바탕의 화면이었으나, Mdir을 실행할 줄만 알면 이후로는 화살표와 엔터키 만으로 컴맹도 원하는 게임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좀 더 원활히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 PC를 조금 더 공부하여 autoexec.bat, himem.sys mouse.com등을 다뤄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12] 정확히는 쿨러는 486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다만 폼팩터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기존 공간 구조상 쿨러가 내부 부품과 간섭을 일으키기 때문이므로 ATX와 쿨러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13] 여담으로, 집에 PC가 여러 대 있으면 인터넷 연결에 추가금을 받았다. 인터넷 공유기를 설치해도 다를 바 없었다. 가정용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의 길은 요원해 보였으나,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의 보급(2010년대) 이후로 통신사의 회선당 추가금을 받는 기조는 멈추게 되었다.[14] 2004년 삼성 소니의 S-LCD 설립.[15] 역사적인게 어느정도냐면, 20년 후 2022년 ThinkPad, VAIO, 후지쯔, NEC 다 스러져간 와중에 옛모습 그대로 출시, 이유(...). 레거시 포트를 모두 갖춘 초경량 노트북이라서 유일무이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보면 된다. [16] DVD 개발과 공급의 시간차가 있으며, PlayStation 2와 함께 DVD가 보편화된다.[17] 한국에서는 DVD 판매/대여점도 성공하지 못할 판이었다. 소리바다, 프루나(...)[18] 하지만 무선랜이 진짜 실질적으로 가정마다 보급되는 것은 2009년 스마트폰 이후, Wi-Fi 4부터이다.[19] LG의 X같은 브랜딩이 한창일 시기였다.[20] 소니 VAIO는 노트북계의 (2023년 현재 기준) 애플에 준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21] Mac mini 등에도 인텔 CPU가 탑재되었다.[22] 다만, 관습상 Mac을 PC라고 부르지는 않았다.[23] 참고로 과거(2000년)에도 3D는 엔비디아, 2D는 매트록스, 인텔은 그래픽 감속기라는 밈이 있었다.[24] 이후 SSD는 TLC, 3D V-NAND 기술 덕분에 확실한 대세가 되었다.[25] 유리창에 스카치테이프로 노트북을 붙이는 TV광고를 하였다.[26] 다시 한번 그래픽 감속기 소리를 들었지만, 훗날 관점에서 QSV 역사를 보면 상전벽해.[27] 인텔 QSV와 라데온 Graphics Core Next 이후의 2012년 짤, 오버워치 광고 즈음부터 2015년 짤#[28] 암레발 짤방 중 마동석 짤방이 꽤 유명하다.# [29] PPC 시절부터 비 인텔CPU에서 구동되는 윈도우 제품을 만들어 왔었고, 많은 실패를 해 왔었다. 인텔 CPU 성능 향상의 정체기 및 x86특허 만료로 인해서 다시 시도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30] 이런 모양(...) EUV를 도입하고 안정화 되기까지 한번씩 절뚝거리는 앞날을 묘사한다 카더라(...) 단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닌게, 현재 인텔은 공정미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인텔을 따라잡을 기회이므로 발빠른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PC CPU와 스마트폰 AP는 다른 물건이지만, 시장이 겹치고, AMD는 파운드리에서 제조되고 있으며 TSMC의 공정향상에 힘입어 인텔을 위협하고 있었다.[31] 갤럭시 북 시리즈는 2017년 태블릿 PC 브랜드로 당시 프론티어 내지는 비주력 브랜드였다.[32] 이름이 단순해졌다.[33] 2020.11, 성능비교[34] 시작은 2017년 AMD RYZEN Threadripper가 있고, 훨씬 앞서 인텔 펜티엄D 시리즈(첫 듀얼코어)에서 사용되었던 기술이다.[35] 스케줄링을 잘못하면 리틀코어만 일하는 성능나쁜 CPU가 되어버린다. 게이머들 사이에 E코어 끄는 법이 공유되었다.[36] 때마침 내장GPU는 핫스웰(2012)부터 이어져 온 뜨거운 CPU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으니 이를 어찌 해결해봐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초미세공정이 가능한 외주업체에 GPU를 주문생산하여 포베로스라는 MCM 방식으로 CPU에 조립하는 방식(메테오레이크)을 도입하는 중이다.[37] 앞서 2016년 알파고 시점부터 예상되어졌던 일이며, 2017년 Face ID, 2020년 딥페이크, 2021년 달고리즘 등의 이슈들이 있어왔다.[38] 한 번 데이터를 캐시메모리에 올려두고 이를 계속 반복해서 사용하는 작업에 최적화 되었고, 게임맵 로딩 후 이 안을 돌아다니는데 최적의 성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코딩의 경우 계속 새 데이터를 얹고 연산한 후 내려놓는 과정이 반복되니, 이 CPU로 인코딩성능 향상은 미미했다.[39] 애플 M1이 AP와 GPU의 메모리를 공유함으로써 데이터를 CPU에서 GPU로 옮기는 과정을 생략해 극적인 성능향상을 이룬 것과 유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40] NAS나, 드물게 노트북 컴퓨터에 쓰이기도 한다. ARM계열 CPU를 쓴 노트북은 크롬북/3세대(삼성), 삼성 크롬북 2가 있다.[41] 칩 형태로 판매 하기 보다는, 코어를 디자인 한 다음 그 디자인 자체를 온갖 업체에게 라이센싱해서 팔아 치운다. 해당 업체는 그 코어에 기능을 추가하거나 변경하여 자신들만의 커스텀 칩을 만들어 사용한다. 엑시노스, 테그라, 애플 A 시리즈 등 스마트폰 AP의 이름은 모두 다르더라도 CPU 코어는 죄다 ARM 이다.[42] 1996년 설립돼서 CPU 쿨러로 시작해서 그래픽카드, 컴퓨터 팬, 파워서플라이 등의 여러 분야에도 진출했지만 모회사때문에 고난을 겪고 이후 2017년 6월에 겨우 회생절차를 졸업했다.[43] 다른 사업으로는 계열사인 오코스프렌즈라는 회사가 했던 오존이라는 이름의 멀티방이 있었는데 오코스프렌즈 자체가 폐업해서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 회사 연혁에는 없고 오존 홈페이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등록되어 있지 않은 도메인이라 나오고, 트위터에 있던 계정도 없어졌다. 오모스 블랙홀, 오존 UCC라는 곳도 있었는데 없어졌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의 계열사 소개남아있는 카페와 직원이었던 듯한 사람의 블로그서현점 블로그에 흔적만 남아있다. 머니투데이 2012년 7월 11일 기사에선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 자진취소 명단에 올랐었다. 자진 취소를 신청했었다고 하니 이미 폐업하려고 했던 거 같다. 온게임넷의 켠김에 왕까지 41, 42회에 나온 적이 있다. 지금은 없는 1호점의 흔적, 역시 지금은 없는 서현점의 흔적, 목표로 했다는 100호점은 저 멀리 날아갔다. 멀티방이 네 군데(대전 은행점, 둔산점, 성남 서현점, 서울 강남점)만 있었던 거로 추정된다. 오코스모스 홈페이지는 주주들에게 알리는 글만 가끔 올라오고 별다른 게 없으며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이 있었지만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