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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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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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정규 1집

S.E.S.
(1997.11.24)

정규 2집

Sea & Eugene & Shoo
(1998.11.23)

정규 3집

Love
(1999.10.29)

정규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12.23)

파일:S.E.S._Surprise.jpg


파일:S.E.S._Choose My Life-U.jpg


파일:S.E.S._Remixed.jpg


파일:S.E.S._Friend.jpg


스페셜 4.5집

Surprise
(2001.07.11)

정규 5집

Choose My Life-U
(2002.02.14)

리믹스 싱글

Remixed
(2002.08.28)

스페셜 5.5집

FRIEND
(2002.11.21)

파일:S.E.S._Love [story].jpg


파일:S.E.S._Remember.jpg



디지털 싱글

Love [story]
(2016.11.28)

스페셜 20주년 기념

REMEMBER
(2017.01.02)


}}}







S.E.S.의 주요 선정 이력

[ 펼치기 · 접기 ]



20TH ANNIVERSARY SPECIAL ALBUM
《REMEMBER》


파일:external/socdn.smtown.com/18_V6V9FF2S.jpg

사진상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유진 · · 바다


S.E.S.
에스이에스 · エスイーエス

데뷔일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1997년 11월 28일[D][1]
(데뷔일로부터 9637일, 26주년)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틀:국기|
]]

1998년 3월 27일[2][A]
(데뷔일로부터 9518일, 26주년)
[[대만|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틀:국기|
]][[틀:국기|
]]

1999년 1월 26일[3][A]
(데뷔일로부터 9213일, 25주년)
데뷔 음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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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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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 1집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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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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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1집
[[대만|
파일:대만 국기.svg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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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국기|
]]

싱글 1집
장르
K-POP, 댄스, 뉴질스윙, R&B, 발라드, 유로팝, 재즈, J-POP
리더
바다
활동 기간
1997년 11월 23일 ~ 2002년 12월 19일[4]
2016년 11월 28일 ~ 2017년 3월 1일[5]
소속사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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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테인먼트 (1997년 ~ 2002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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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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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플래닝 (1998년 ~ 2000년)
유통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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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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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엔터테인먼트[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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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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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P, avex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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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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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Records[8], avex Taiwan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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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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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S.E.S.)|

친구
]][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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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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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S.E.S.)|

HANA
]] 링크[12][13]
공식 색
펄 보라(Pearl Violet)
색상 코드 #8147B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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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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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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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eb.archive.org/web/20040803121353/http://www.smtown.com/smtown/ses/|

파일:SM엔터테인먼트 심볼.svg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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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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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4][L] 파일:VAP 로고.svg[L] 파일:에이벡스 그룹 심볼.svg[L]

1. 개요
2. 입지
3. 멤버
3.1. 케미
3.2. 이야기
4. 그룹명
4.1. 의미
4.1.1.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거짓정보와 반박
4.2. 발음
4.3. 표기
4.4. 애칭
4.5. 기타
5. 음악가적 기교
5.1. 특징
5.2. 보컬
5.3. 댄스
5.4. 콘셉트
5.5. 음악성
7. 활동
7.4. 미국 진출 제의 및 계획
15. 단독 공연
15.1. 콘서트
15.2. 공식 팬클럽 창단식
15.3. 쇼케이스
16. 광고 및 홍보대사
16.1. 광고
16.2. 홍보대사
18. 뮤직비디오
18.1. 한국
18.2. 일본
19. 콘텐츠
19.1. 직캠
19.2. 교차편집
21. 수상 경력
22. 이야깃거리
22.1. 데뷔 당시 임팩트와 사회적 상황
22.2. 안전함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함을 택하는 노선
22.3. 히트곡이 커버 무대에서 가지는 강점
22.4. K-POP이자 J-POP이었던 노선의 정체성
23. 허위루머와 반박
23.1. 음반 판매량 기록 관련
23.2. 핑클과의 차이점이라는 일화에 숨겨진 조작
23.3. 일본 야스쿠니 신사참배 허위루머



1. 개요[편집]



2016년, 데뷔 20주년 기념 스페셜 음반 더블 타이틀곡 〈한 폭의 그림〉 MV 중[15]

"안녕하세요, S.E.S.입니다."[16]

"안녕하세요, 첫 번째 S 바다, 가운데 E 유진, 마지막 S 슈입니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7]

1997년 11월 28일[D]SM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데뷔대한민국의 3인조 1세대 아이돌 걸그룹.

그리고, SM 최초걸그룹이자 SM 최초여자 가수[18].

2. 입지[편집]



한국·미국·일본·대만의 유수 언론·업계 전문가·대기업·인물·대중들의 평가와 인식[19]

[ 펼치기 · 접기 ]

2012년 조선일보 연예계 전문가 여론조사 90년대 대표 대중문화 콘텐츠 #

2016년 KBS 한국방송리서치 대중 여론조사 한국인이 사랑하는 레전드 아티스트 #[1]

2018년 CJ ENM 선정 1997년의 운명을 바꾼 사회 각계 대표사건 중 문화계 #

2023년 일본 지상파 tv asahi가 조명한 역대 K-POP 걸그룹 계보[2][3]

대만 음악 전문채널 채널V 중 패널의 평가[4]


S.E.S.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한 영상들
- Herstory of S.E.S. -






We open up the new chapter.
우리 S.E.S.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말 거예요.

K-POP 걸그룹의 시작을 알린 데뷔곡 〈I'm Your Girl〉 도입부 중.

별다른 수식어 없이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는 S.E.S.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그룹이다. 그만큼 최초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자 최초K-POP 걸그룹[20]으로서, K-POP걸그룹 역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과 대중들, 그리고 더 넘어 해외 K-POP 전문가들과 팬들도 S.E.S.를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K-POP 걸그룹의 시초로 평가하고 있다.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현재 한국과 세계 무대를 중심으로 활약하는 K-POP 걸그룹의 신호탄을 본격적으로 쏘아올렸다는 점에서, S.E.S.의 등장과 성공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S.E.S. made a monster impact in K-POP throughout the late 90s to early 00s.
S.E.S.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K-POP씬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

미국 음악잡지 billboard의 평가

S.E.S.는 데뷔와 동시에 신드롬 내지 센세이션이라고 설명될 만큼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가요계의 흐름과 판도를 180도 뒤바꿔 놓았다. S.E.S.의 등장으로 인해 전에는 없었던 '누나부대'라는 신조어가 탄생될 정도로 새로운 소비층이 음악 시장에 등장하였으며, 이는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상업성이 한층 더 확장되고 팬층이 다양화 되는 계기를 형성하였다. 즉, 소녀(少女, girl)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상업적 가치를 증명해내며, 오랜 시간 불모지라 여겨졌던 걸그룹 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S.E.S. 덕분에 그동안 음악 시장에서 철저히 비주류 영역으로 외면 받았던 걸그룹도 상업적인 지표와 대중적인 인기도 면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입증되었고,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걸그룹도 남성 가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혹은 뛰어 넘어 주류 영역에 진입하는 순기능으로 이어졌다.

등장과 동시에 진정한 걸그룹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고 당시 침체되어 있던 여자 가수 시장에도 훈풍을 일으킨 S.E.S.의 등장은, K-POP의 서막을 열은 서태지와 아이들[21], K-POP 아이돌 그룹보이그룹의 서막을 열은 H.O.T.[22]의 등장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였던 1990년대 대한민국 댄스음악의 판도를 뒤바꾼 사건이었다. 그만큼 S.E.S.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미국에서 TLC[23] 영국에서 Spice Girls[24], 일본에서 SPEED[25]가 차지하는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1990년대 세계 음악시장을 뜨겁게 달군 걸그룹의 역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팀.

'가요계의 요정', '문화상품', '아시아를 대표하는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최초로 붙여진 걸그룹이라는 점에서 당시 S.E.S.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또한, 데뷔와 동시에 언론에서는 S.E.S.에게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언론에서 걸그룹에게 하나의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용[26][27]한 사례다. 그만큼 당시 S.E.S. 인기는 하나의 문화현상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S.E.S. 특집 예능 순간 시청률이 40.1%를 돌파할 정도의 범대중적 관심도, 인터넷이 덜 보급되었던 2000년대 당시 S.E.S. 특집 방송 후 방송사 서버에 글이 3,000 여개가 도배될 정도의 파급력, 헌법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과 대통령 선거 독려를 위해 S.E.S.를 모티브화하여 전국적으로 책을 발간해줄 정도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 2002 한일 월드컵 홍보사절로 대중 35,643 명[28]이 한국을 대표하는 여자 연예인으로 뽑는 대중들의 인식 등, 활동 당시 S.E.S.는 그야말로 범국민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국민 연예인 급의 인기를 누렸다.

S.E.S.가 걸어온 발자취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만큼 강력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1990년대 여자 가수 중 누적 음반 판매량 최다 1위[29][30], 공식 유료 팬클럽 최다 1위[31], 지상파 음악 방송 최다 1위[32][33], 단독 공연 개최 최다 1위[34] 등의 기록을 써내려가며, 여자 가수로서 대중성과 팬덤의 지표에서 쌓을 수 있는 상업적인 성공의 최대치를 이루어냈다. 훗날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S.E.S.가 세운 역대 여자 가수[35] 누적 음반 판매량 최다 1위[36]기록과 공식 유료 팬클럽 기수 최다1위[37]기록, 그리고 역대 걸그룹 단일 음반 판매량 최다 1위[38][39]기록과 데뷔곡 음악방송 1위 최다 기록이 경신되었을 정도로, S.E.S.가 세운 기록은 후배 걸그룹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자 목표였다.[40]


개인적으로는 1998년에 일본에 진출한 S.E.S.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모든 한국 아티스트들의 기초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방송인 겸 한국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후루야 마사유키의 평가


S.E.S.는 일본 가요계에 진출해서 어려운 점들이 많았을 텐데 결국 성공을 끌어냈다.

일본 헤이세이 3대 가희 아무로 나미에의 평가[41]


일본어: K-POP初の日本進出。海外進出の一歩。
한국어: K-POP 최초의 일본 진출. 해외 진출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다.

2023년 3월 5일 일본 지상파 tv asahi 関ジャム 完全燃SHOW 중 평가.

1998년 3월, 기획 단계부터 한중일을 호령하는 글로벌 걸그룹을 염두로 기획되었던 S.E.S.는 일본 열도에도 진출하여 본격적으로 활동을 펼치고, 동년 10월에는 메이저 데뷔를 하였다. S.E.S.의 일본 진출은 K-POP 그룹의 본격적인 첫 일본 가요계 상륙, 한국 걸그룹 최초로 일본 현지 작업진들의 결과물인 J-POP 현지화 진출이라는 점[42], 김대중 정부 당시 한국에서 최초로 일본 대중문화가 정식 개방된 이후 이뤄진 첫 K-POP 가수의 일본 진출[43] 등으로 한일 양국에서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당시 일본한류열풍[44]이 거세게 일어나기 전인 시기인 만큼, K-POP 아티스트에게 J-POP을 결합하는 현지화 전략을 꾀하여 진출하였다. 훗날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S.E.S.가 K-POP이자 J-POP 그 중간에 서있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 일조하였으며, 글로벌 걸그룹이라는 S.E.S.의 정체성을 확실히 해주었다.

비록 결과는 당시 시대적인 여러 상황으로 기대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K-POP 그룹 최초로 당시 세계 음악시장 2위이자 아시아 음악시장 1위였던 일본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오리콘 차트의 싱글차트와 앨범차트에 진입하며 높은 일본 음악시장의 벽[45]을 허무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한국 걸그룹 최초일본 공식 팬클럽을 결성하기도 하였을 만큼, 훗날 S.E.S.의 일본 진출은 K-POP 아이돌의 일본 현지 진출의 큰 청사진을 제시한 활동으로 평가받고 있다.[46]

일본에서의 상업적인 성공은 미비하였지만, 되려 J-POP 앨범들이 한국 인기 걸그룹이라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대만한국에서 히트를 하는 기현상을 낳으며 일본에서의 상업적인 부진을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일본 걸그룹들이 추구했던 음악[47]보다 오히려 더 정통성 있는 진한 J-POP 감성[48]이 느껴지는 음악들을 선보이며 S.E.S.의 음악적 다양성을 넓혀주는 자양분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또한 대만 음악 시장에도 진출하여 준수한 성과를 냈다. 첫 한국어 베스트 라이센스 앨범부터 2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으며, 한국 걸그룹 최초로 해외 연간 음악 차트 진입[49], 한국 걸그룹 최초로 해외 음악 차트 1위[50], 한국 걸그룹 최초로 한국어 곡으로 해외 음악 차트 1위[51], 당시 일본의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각광받았던 우타다 히카루의 역작 《First Love》를 제치고 한국 걸그룹 최초로 해외 연간 음악 차트 1위[52][53][54]등의 기록을 쓰기도 하였다.

2002년 12월, SM엔터테인먼트와 이뤄진 5년[55] 계약 기간이 지남에 따라 최종적으로 해체하였다. 이미 훨씬 전부터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각자의 길을 가기로 약속했던 것처럼, 마지막 정규 앨범까지 당시 급속히 불어닥친 음반 불황기임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40만 장 이상의 독보적인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마지막까지 걸그룹이 꽃 피울 수 있는 상업성의 절정을 찍고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렇게 S.E.S.의 시작과 성공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1세대 걸그룹 시대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1세대 걸그룹의 서막을 열은 것도, 마지막을 장식한 것도 S.E.S.였던 셈이다.[56] 고작 5년이라는 짧은 활동이지만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S.E.S.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들'로 대중들의 마음과 역사 속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역사 속에 봉인된 상태로만 남을 것 같았던 S.E.S.라는 이름은 이후에도 꾸준히 타의로든 자의로든 대중들에게 기억되고 소환되었다. 2005년 11월 27일[57],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걸그룹 시장을 개척한 공을 인정받아 'PD 선정 특별상'을 수상하였다.[58] 이는 역대 아이돌 중 최초로 해체 후 활동 없이 연말 메이저 음악 시상식에서 수상한 기록이며, 2024년 현재까지도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한 기록이다.[59] 그만큼 S.E.S.가 K-POP 걸그룹의 시초로서 세운 수많은 업적들과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이바지한 공헌도를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셈.

2014년 12월, MBC 《무한도전》의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들 특별기획전 토토가에 출연하며 S.E.S.라는 이름이 다시 한번 대중에게 크게 주목받으며 역주행의 신화를 썼다. 이 같은 Y2K 문화 열풍에 힘입어 2017년 1월, SM엔터테인먼트의 지원하에 걸그룹 최초재결합을 이루어내며 후배 걸그룹들이 나아갈 모법답안을 제시하였다.

서로 함께 활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우정을 꾸준히 보여주며 팬들과 대중들에게 훈훈함을 안겨주기도 했다. 데뷔 8주년, 10주년, 15주년, 20주년 팬미팅 개최 및 2012년에서 2018년까지 7년 연속으로 멤버 바다가 주최하였던 그린하트 자선 바자회를 'S.E.S. 그린하트 자선 바자회'로 변경해 개최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데도 앞장서며 타의 모범을 보였다.

S.E.S.로부터 촉발된 걸그룹 역사가 26주년이 되는 2024년 현재도 S.E.S. 노래는 아직도 끊이지 않고 커버되는 등 S.E.S.가 남긴 음악적 발자취는 아직도 K-POP 씬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S.E.S.가 선보인 마케팅, 음악, 콘셉트는 아직도 후배 아이돌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며 래퍼런스 되고 있다.

원더걸스, 소녀시대, 에이핑크, 레드벨벳, 트와이스, 에스파[60] 한 시대를 대표하는 걸그룹들이 S.E.S.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우고 동경과 존경의 대상으로 여기는 롤모델로 꼽을 만큼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3. 멤버[편집]


S.E.S.
멤버


파일:external/socdn.smtown.com/16_B46F2SH7.jpg


파일:external/socdn.smtown.com/15_A71B3FZ5.jpg


파일:external/socdn.smtown.com/17_ND278HJ3.jpg

바다
유진


1980. 02. 28. (44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리더
메인보컬

1981. 03. 03. (43세)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서브보컬

1981. 10. 23. (42세)




서브보컬

3.1. 케미[편집]




관계성 맛집 S.E.S.의 케미를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는 영상[61]

파일:S.E.S. 로고 화이트.svg
바다
유진

바다

성진
희영
유진
성진

슈진

희영
슈진

[D] A B SBS 음악 방송 『충전 100%쇼』 〈I'm Your Girl〉 무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1] 원래 S.E.S.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소화한 첫 일정은 1997년 11월 18일에 라디오에 출연한 것이지만(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데뷔 당시부터 S.E.S. 본인들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양쪽 모두 첫 TV 출연날인 11월 28일을 공식 데뷔일로 안내하고 있다.[2] 첫 지상파 TV 출연일 기준.[A] A B 한국과 해외 팬들한국 데뷔일을 기억하고 기념일로 축하하는 것과 달리, 일본대만 데뷔일을 기억하고 기념일로 축하하는 팬들은 사실상 아예 없다. 또한, 일본대만 데뷔일은 활동 당시 S.E.S. 본인들과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양쪽 모두 어느 기준으로 데뷔일을 정하고 기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데뷔일처럼 명확한 기준이 없기도 하다.[3] 첫 CD 발매일 기준.[4] 해체일이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후보의 당선일이다. 해체 소식을 보도한 한 스포츠신문 기사에서 이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였다. 당시 팬덤 내에서는 새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회적인 큰 이슈에 해체 소식이 최대한 덜 부각되도록 하기 위한 SM 측의 의도적인 언론 발표가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실제로 해체 후 SM 주가는 5%에서 6.25%까지 급락하였는데, 당시 캐시카우 중 하나였던 S.E.S.의 해체로 인한 주가하락을 최대한 방어하고자 하는 전략이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해체 소식이 가시화 될 때부터 SM 측이 언론을 통해 음반 판매량이 부진(명백한 날조이다. 음반 불황기가 더 가속화 됐던 당시에도 걸그룹으로서는 유일하게 40만 장대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전체 가수들을 통틀어서도 훌륭한 성적이었다.)했고 유진의 독단적인 선택으로 해체를 한다는 뉘앙스의 허위 사실을 흘리며 언플을 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팬덤 내에서 더 강한 의혹의 시선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새 대통령 당선이라는 사회적 큰 이슈 때문에 당시 위상에 비해 해체 소식이 덜 부각된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E.S. 해체 소식은 2002년 스포츠서울과 일간스포츠 연예계 10대 뉴스에 선정될 정도로 그 해 연예계에 큰 임팩트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스포츠서울은 연예부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었다.) 더군다나 S.E.S. 해체 소식은 2002년을 단 12일만 남겨 놓은 시기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S.E.S.가 연예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참고로 S.E.S. 데뷔 20일 후인 1997년 12월 18일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정권 교체를 이뤄낸 15대 대통령 김대중 후보의 당선일이었는데, 데뷔와 해체까지 대통령이 바뀌는 시대의 큰 변화 함께 했다는 것도 우연치곤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5] 오후 1시 흰물결 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개최된 데뷔 20주년 기념 팬미팅 《그 약속들이 모인 자리》를 마지막으로 재결합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SM이 지원해 주기로 한 활동은 2017년 1월 2일에 발매된 데뷔 20주년 기념 스페셜 음반 《REMEMBER》가 끝이었고 이후로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1개월 만에 기습적으로 팬 사이트팬미팅 개최 공지글이 올라왔다. 해당 팬미팅은 전성기 활동 당시부터 응원해온 팬덤의 자발적인 주도하에 개최되었으며, SM의 활동 지원과는 무관하다.[6]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이뤄진 데뷔 20주년 기념 재결합 프로젝트 활동은 SM과 공식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활동한 것이 아니기에 소속 기간에 해당되지 않는다. SM 설립 이래 계약 없이 앨범 발매 및 활동을 지원해 주는 프로젝트는 사상 최초였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문헌)[7] 전성기 활동 당시 발매되었던 음반은 서라벌, King, Synnara, WAWA, iKpop 등을 통해 유통되었다.[8] 한국어명 록 레코드, 한자 번체차 滾石唱片, 한국 한자음 곤석창편.[9] 1998년 5월 출범. 여자 그룹 가수와 여자 솔로 가수 모두 통틀어서, 여자 가수 최초의 공식 유료 팬클럽.[10] 1960년대에 활동한 트로트 여자 솔로 가수 이금희가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활동 당시 팬클럽을 모집한 적이 있는데, 해당 팬클럽은 음반 제작자 황우루가 노래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장이 180cm가 넘는 남성 30명을 모아서 결성한 것이었다. 즉, 소속사에서 공식적으로 모집한 팬클럽이 아니었으며, 돈을 내고 일정 기간 동안 자격이 주어지는 유료 팬클럽도 아니었으며, 결정적으로 가수를 지지하는 팬덤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팬클럽이 아니었다. 또한, 애초에 소속사가 공식 유료 팬클럽을 모집하기 시작한 시기가 같은 SM 소속의 보이그룹 H.O.T. 때부터이니, 여러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여자 가수 최초의 공식 유료 팬클럽은 S.E.S.로 보고 있다.[11] 여러 관점에서 사실상 현존하는 걸그룹 팬덤의 시초를 알린 팬클럽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대만에서도 공식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아시아 중심으로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했었다는 사실 또한 K-POP 걸그룹 팬덤의 시초라는 기준에 부합한다.[12] 일본 활동 당시 소속사였던 스카이 플래닝이 모집한 공식 팬클럽.[13] 일본 소속사 스카이 플래닝 측과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에는 일본 팬들이 자발적으로 HANA라는 이름의 온라인 팬클럽 사이트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HANA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팬 사이트 Wayback Machine 링크) 한국 온라인 팬클럽과도 교류를 이어나갔으며, 유진바다가 솔로 앨범으로 활동하였던 2004년에는 'HANA' 팬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등 아티스트와 교류도 이어나갔다.[L] A B C D 활동 당시 공식 홈페이지로서, Wayback Machine을 통해 당시 자료들을 어느 정도는 열람할 수 있다. 계약 기간이 끝났기에 현재는 당연히 운영되지 않는다.[14] 일본 활동 당시 소속사였던 스카이 플래닝 공식 홈페이지. 상단 오른쪽 タレントを選択してください。(탤런트를 선택해 주세요.)를 누른 다음 S.E.S.를 선택하면 관련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15] 2017년 1월 2일에 공개되었던 뮤직비디오에 나온 모습이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촬영 시기는 2016년 연말이었으며, 촬영 시기 기준으로 바다는 37세, 유진는 36세였다.[16] 거의 모든 상황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법이며, 세 멤버 모두가 동시에 함께 말한다.[17] 주로 데뷔 초에 그룹명 의미 설명과 인지도 상승, 그리고 멤버 개인 어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사용했던 인사법이다. 소개할 때 맨 앞의 '안녕하세요'는 첫 번째 S를 담당하고 있는 바다가 선창하며 시작하고, 이후 각 이니셜은 해당되는 멤버가 단독으로 말하며, 마지막 평서형 종결어미 '입니다'는 마지막 S를 담당하고 있는 가 말하며 마무리한다. 아이돌 그룹 치고는 멤버수가 세 명으로 매우 적은 편에 속하기에 할 수 있었던 인사법이고, 그만큼 짧은 시간 내에 다방면을 효율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 그룹명과 멤버 개인의 이름을 국민 대부분이 인지할 수 있는 일명 '국민 걸그룹' 위치에 등극한 이후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가끔 데뷔 초 느낌을 살리고자 할 때 이 인사법으로 소개할 때도 있다.[18] 여자 솔로 가수까지 포함하여도 SM 최초여자 가수이다. 2001년 8월 25일에 SM 소속으로 데뷔한 BoASM 최초의 여자 솔로 가수이다.[19]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평가 자료가 있으나 각국의 대표적인 평가만 간략하게 추린 것.[20] 실제로 S.E.S.는 당시 K-POP의 세계 진출이 극히 드물었던 당시에 파격적으로 일본 현지화 활동을 펼쳤고, 대만에서는 한류열풍의 대표주자 중 한 팀으로 큰 인기를 끄는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활약하였다.[21] S.E.S. 데뷔 당시 각종 언론에서 S.E.S.를 여성판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수식어로 평가하기도 하였다.[22] SM은 S.E.S. 기획 당시 미국 걸그룹 TLC 외에도 여자 H.O.T.를 목표로 하였으며, S.E.S. 데뷔 당시 각종 언론에서도 S.E.S.를 여성판 H.O.T.라는 수식어로 평가하기도 하였다.[23] 사실상 S.E.S.의 뿌리가 되는 그룹이다. SM이 S.E.S. 기획 당시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던 그룹으로서, 실제로 그룹명과 음악 장르, 패션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만, S.E.S.가 어필하는 비쥬얼적인 요소와 이미지, 그리고 보여주는 여성상과 메시지 등은 TLC와 180도 다르다.[24] S.E.S.가 Spice Girls로부터 영향 받은 부분은 전혀 없으며, 활동 당시부터 서로 아예 다른 계열이기에 엮이지도 않았다.[25] S.E.S. 데뷔 때부터 SPEED를 벤치마킹 했다는 의혹에 시달렸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S.E.S.와 SPEED의 컨셉, 음악적인 면에서 하나도 비슷한 부분도 없으며, SM이 SPEED를 보고 S.E.S.를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 당시 일본 문화를 표절하는 풍토와 일본 대중음악이 조금 더 앞서 나갔던 시기인데, 하필 비슷한 시기에 10대 걸그룹이라는 점이 엮이기 딱 좋았을 뿐이다.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당시 양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걸그룹이었고 인기가 많았다는 거, 그리고 TLC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그룹이라는 것 말고는 없다. 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허위 가스라이팅에 시달리고 있다. 근거 없이 S.E.S.의 기원을 SPEED라고 우기는 일본 문화 추종자들이 있지만, 정작 어떤 부분을 따라했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줄행랑만 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냥 당시에는 일본 문화를 표절하였으니 당연 S.E.S.도 그랬을 것이라는 주장밖에 내세우지 못한다는 것부터,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동시에 상대에 대한 심한 결례이다. 이미 여러 정황과 결과물로도 확인되는 부분이지만, 결정적으로 당사자인 로부터 S.E.S.는 TLC벤치마킹한 팀이라는 것이 확인된지 오래이다.# 2세대 걸그룹 소녀시대도 데뷔 당시 이와 비슷한 이치로 모닝구 무스메를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냐는 허위 의혹에 시달려야만 했지만, 결국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26] 당시 각종 잡지 언론에서 수차례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각종 언론에서는 '돌풍', '폭발',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27] 언론이 여배우에게 최초로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인물이 최진실이었다면, 걸그룹에게 최초신드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인물이 바로 S.E.S.였다.[28] 보통 여론조사 표본도 1천 명을 조금 넘는 정도인데 2002년 한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인터넷 투표임을 감안 하더라도, 당시 인터넷 보급률을 생각하면 엄청난 표본.[29] 5년간의 활동 기간 중 7장의 음반으로 3,506,686 장의 판매고 달성.[30] 일본 현지화 활동을 하지 않고 국내 무대에 더 주력하고 정규 앨범을 한 장만 더 발매했다면 누적 400만 장을 찍을 수 있었던 기세였다.[31] 총 6기.[32] 총32회[33] 데뷔 후 바로 IMF 경제한파가 터져서 지상파 음악방송이 순위제를 폐지해서 1위를 많이 할 수 없었고, 2집 때는 방송에 출연해야만 1위 후보와 MVP 후보에 오를 수 있는 KBS와 SBS에서 해외 활동으로 출연을 못했던 날이 많았고, 3집 때는 당시 순위제를 시행했던 KBS와 SBS에서 금발머리와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방송정지를 당했고, 4.5집 때는 컴백과 동시에 KBS 뮤직뱅크가 순위제를 폐지하고 MBC 음악캠프는 시사매거진 2580과의 연제협 사태 때문에 음악방송이 거의 없었던 등 많은 활동 당시에 1위를 할 수 없는 악재가 가득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과이다.[34] 12회. 콘서트 3회, 팬미팅 6회, 대만 팬미팅 2회, 일본 쇼케이스 1회[35] 여성 솔로와 여성 그룹 가수 모두 통합.[36] 2019년, 3세대 걸그룹 TWICE가 기록을 경신하였다.[37] 2.5세대 걸그룹 Apink의 공식 유료 팬클럽 핑크판다가 기록을 경신하였다.[38] 2020년, 3세대 걸그룹 BLACKPINK가 기록을 경신하였다.[39] 주목할만한 것은 3세대 걸그룹의 대표주자이자 양대산맥인 BLACKPINKTWICE가 서로 S.E.S.가 가지고 있었던 걸그룹 누적 판매량 1위와, 단일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양분하였다.[40] 실제로 S.E.S.가 세운 음반 기록 등이 경신되었을 때 아이돌 팬덤 반응도 '안 깨질 거 같던 화석 기록이 드디어 깨지는구나. 이 기록이 깨지는 날이 오다니. S.E.S. 인기가 이 정도 클라스였나.' 등의 반응이 주를 이었다.[41] 하마사키 아유미, 우타다 히카루와 함께 헤이세이 시대 3대 가희라 일컬어진다.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가히 전설적인 존재.[42] 1994년, 걸그룹 S.O.S.가 일본에서 두 장의 앨범을 냈고, 1998년 9월에는 1세대 걸그룹 써클이 일본에서 앨범을 내긴 했지만, 모두 한국 작곡가나 외국곡을 번안한 곡을 일본어로 번안하여 발매하는 형태였다. 즉, 원산지가 K-POP 혹은 한국에서 먼저 발매됐던 음악을 다시 일본으로 가져간 케이스로서, 일본 현지 J-POP 진출과는 성격이 다르다.[43] 1998년 10월 20일에 한국에서 최초로 일본문화가 정식적으로 1차 개방됐으며, 바로 다음날인 21일에는 일본에서 S.E.S.의 첫 데뷔 싱글인 めぐりあう世界가 발매되었다. 한국에서 일본문화가 정식적으로 개방된 후, 일본에서 발매된 첫 K-POP 가수 음반이었던 셈.[44] 2000년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 히트하긴 했지만 큰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정도는 아니었고, 2002년 NHK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중장년 여성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시기를 일본 내 제1차 한류열풍으로 분류한다.[45]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칠 정도로 위상이 올라간 반면 J-POP 시장 특히 일본 아이돌 시장이 질적으로 하락하고, 수많은 K-POP 가수들이 일본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현재 상황과 많이 다른 시기였다. 당시로서 일본 음악시장은 넘기 힘든 벽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실례로 BoA가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수성해 한국 저녁 9시 뉴스에 대서특필됐던 사례가 당시 일본 음악시장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46] 2002년 SM엔터테인먼트 측은 S.E.S.가 일본 후지티비 공연에 초청되었을 당시에 S.E.S.의 일본 진출은 소속 후배가수 BoA일본 진출에 있어서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밝혔으며, 이수만도 훗날 tvN 예능에 출연하여 S.E.S.의 첫 발걸음이 있었기에 BoA의 성공도 있을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47] SPEED는 댄스와 발라드에 근간을 두고 있었으며, MAX는 당시 일본 음악 시장의 주류였던 유로비트를 선보이며 히트를 했다. 그 외 D&D, MISSION, PUFFY, DEEPS, DREAM, Folder5, Earth, 모닝구 무스메, Angelique 등의 음악도 S.E.S.가 선보였던 J-POP 장르와 분위기, 결이 현저히 다르다.[48] 1990년대 일본은 역사상 최대의 경제호황기라 일컬어지는 버블경제의 붕괴를 맞이한 상황이었는데, 한국 출신 걸그룹인 S.E.S.가 당시 일본인들이 느끼는 외로움, 초조함, 쓸쓸함, 과거의 영광 등의 감정을 일본인 특유의 타인과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는 등의 심리와 함께 버무려내 선보였다는 것은 매우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이다.[49] 1999년 대만 라디오 HIT FM이 집계한 '年度百首單曲(올해의 싱글 100곡)' 연간 차트에서 〈Dreams Come True〉가 86위를 기록하였다. 해당 차트는 총 24만 표의 네티즌들의 투표로 선정되었으며, 대만 등의 중화권 노래뿐만 아니라 서구 팝, 일본, 한국 노래 등 대만 내에 발매된 모든 각국의 노래를 대상으로 한 차트이다.[50] 1999년 일본어 곡 〈夢をかさねて〉가 대만 라디오 UFO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으며, 이 성과로 1999년 5월 18일 대만 방문 당시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51] 1999년 한국어 곡 〈Dreams Come True〉가 대만 라디오 방송사 Voice of Taipei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였으며, 이 성과로 1999년 5월 18일 대만 방문 당시 'Best of Voice Award'를 수상하기도 하였다.[52] 일본어 앨범 《Reach Out》이 대만 케이블 TV 채널 三立電視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 《音樂風雲榜(음악풍운방)》에서 중화권 앨범을 제외한 아시아권 인기 음반 순위에서 무려 1999년 연간 차트 1위를 기록하였다.[53] 소녀시대가 2013년 대만 KKBOX에서 집계한 '제9회 KKBOX 풍운방 연도순위 한국어 차트에서 정규 4집 〈I Got a Boy〉로 앨범 부문과 노래 부문 1위를 기록한 적이 있으나(기사), 이는 앞서 명시된 것처럼 한국어 차트에 국한된 차트이다.[54] 2022년, (여자)아이들중국의 대형 음원사이트 '왕이원뮤직'에서 연간차트 1위를 기록하였다.[55] 일본 진출 타협 당시, 굴지의 음반 레이블사인 소니뮤직과 계약이 불발된 이유가 소니뮤직 측이 제시한 계약기간은 7년이었으나, 한국 계약기간이 5년으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한국 계약기간과 맞는 음반 레이블사 VAP와 계약하였다. 한국 음악시장과 다르게 일본 음악시장은 음반 레이블사의 파워도 굉장히 중요한데, VAP는 딱히 파워가 없었던 곳이었다. 바로 음반 레이블사 선택도 일본 진출 실패 요인 중 하나. 보아가 굴지의 음반 레이블사 avex와 손 잡은 것과는 대비대는 부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VAP는 일본 지상파 NTV 계열이라 NTV 프로그램 타이업에 쓰이긴 하였으나, 이마저도 약발이 없었던 게 인기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56] 사실상 1세대 걸그룹 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데렐라이자 지배자였던 셈.[57] 데뷔 8주년 하루 전.[58] 해당 시상식에서 이와 같이 한국 대중 음악 역사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수상한 가수는 S.E.S. 외에 듀스, 신승훈, H.O.T. 등이 있다.[59] 2023년 1월 19일, 2세대 걸그룹 카라가 서울가요대상에서 'K-POP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는 카라의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 《MOVE AGAIN》 의 활동의 성과가 인정되어 받은 상이다. 서술되어 있듯, 해체 후 활동 없이 연말 메이저 음악 시상식에서 가요계에 쌓은 공헌을 인정받아 걸그룹이 수상을 한 사례는 2024년 현존까지 S.E.S.가 유일하다.[60] 이들 외에도 S.E.S.를 롤모델로 꼽은 후배 걸그룹들은 무수히 많다.[61] 전체적으로 관계성을 위주로 제작된 영상이지만 보컬 실력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 바다 x 유진 : 성진
    • 셋 중에 데뷔 때부터 마지막 활동까지 같은 숙소 생활을 한 사이다. 중간에 는 독립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이유가 글쎄 두 멤버의 애완견과 애완묘들이 의 물건을 침입하기 일쑤였어서 그렇다고 한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팀 내에서는 바다가 리더인데 오히려 동생인 유진에게는 많이 의지하고 기대는 편이다.
    • 바다가 솔로 활동 당시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남자로 태어난다면 유진과 같은 여자하고 사귀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유진에 대한 우애가 깊다. 아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굳이 유진의 미모 뿐만이 아니며, 인간대인간으로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서로에 대한 부심이 강한데 바다유진미모에 부심이 있으며, 유진바다성대에 대한 부심이 있다. 바다 결혼식 당일날 인터뷰에서 유진은, '언니의 성대를 닮은 아이를 낳아달라'라고 요청아닌 요청을 하였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유진이 밝히길, 바다처럼 술취한 모습이 귀여운 여자는 처음 봤다고 한다. 이 말을 옆에서 들은 바다안 마셔도 귀엽다며 한 술 더 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데뷔 20주년 기념 스페셜 앨범 쟈켓 촬영 현장에서 유진의 촬영 모습을 본 바다는 '너무 예쁘게 나온다 짜증난다'라며 장난식으로 동생의 미모를 치켜세우며 훈훈함을 안겼다. 여러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둘의 모습이 훈훈하고, 바다는 너무 귀엽고 웃기며, 바다도 예쁜데 겸손하다, 유진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미모라는 등의 훈훈한 반응이 넘쳐나기도 하였다.
    • S.E.S. 데뷔 후 바다는 대학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영어에 약해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 유진이 직접 한글로 발음과 한국어 뜻을 적어준 일화를 말하며 그게 너무 고마워서 잊혀지지 않는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 적이 있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유진바다의 눈빛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바다유진너무 예뻐서 질리는 얼굴이라고 디스아닌 디스를 날렸다. 심지어 유진의 남편인 배우 기태영 앞에서 이런 소리를 하였다..!! 곧이어 바다는 너무 예쁘다는 이야기이며, 실물로 보면 비현실적인 미모라고 팩트체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2020년, 바다가 자신의 Instagram에 한 유저가 게시한 유진 사진을 올리면서, '어렸을 때 유진 때문에 피해봄. 완벽힌 옆선.'이라는 글을 남겼다. 농담반 진담반이 섞인 유쾌한 유머코드로 동생을 치켜세우는 츤데레미를 보여주었다. 게시글
    • 바다가 밝히길, 유진은 언니 같은 동생이라고 한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유진 x : 슈진
    • 팀 내에서 유일한 동갑라인이다. 하지만 의 생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유진은 막내를 뺐겼어요....
    • 팬덤 내에서는 위에 서술한 이유로 가 막내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유진도 동갑이기에 이 둘은 팀내에서 유일한 막내라인이다.
    • 유진를 더 챙겨주는 듯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 말은 유진을 안 챙긴다는 말이 아니라 둘이 동갑임에도 유진이 뭔가 를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대할 때가 많다는 의미다.
    • 둘은 팀 내에서 연예계 모임인 '야채파'의 회원을 결성 초기부터 현재까지 이어가는 멤버다. 바다도 초반에는 '야채파' 멤버였지만 아무래도 중간에 자진 탈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62]
    • 유진의 오똑한 코와 이마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유진의 하트입술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2002년, 정규 5집 타이틀곡 〈U〉로 활동할 당시 M.net 『가요발전소』 인터뷰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예쁘다는 덕담을 노골적으로 나누며 서로의 미모를 치켜세운 적이 있다. 요즘으로 따지면 주접이라 할 수 있다.


  • x 바다 : 희영
    • 바다의 술취한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증언하며 바다의 술취한 모습을 따라한 적이 있었다. '얘들아 언니 취했어~'라는 드립을 날리며 천연덕스럽게 술에 취했던 바다의 모습을 재연하였고, 그 모습을 본 바다는 결국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둘이 함께 붙어 있으면 아주 정신이 사납다. 요정 시절에 둘은 끼를 숨기느라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 가끔 둘이 얘기를 하면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기이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 바다가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한테 붙으면 아주 그냥 당하기 일쑤다. 바다 놀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틀림 없다는 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바다가 맏내롤이라고 할 수 있다.
    • 바다 흉내내기 1등 공신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바다기겁 했다...
    • 바다가 일본 활동 당시 일어를 잘 모르는데 가 한글로 발음과 한국어 뜻을 하나하나 다 써줘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 적이 있다.

3.2. 이야기[편집]




4. 그룹명[편집]



4.1. 의미[편집]


공식적인 그룹명 의미는 SeaEugeneShoo이다. 한국어로는 바다유진라는 의미이다.

그룹명 S.E.S.는 세 멤버들의 영어 이름 앞글자 알파벳 이니셜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바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Sea에서 S, 유진의 서구권 영어 이름 표기명인 Eugene에서 E, 일본 거주 당시 이름인 Shu(한자: 洙, 후리가나: しゅう)영어 표기명 Shoo에서 S를 따서 조합하였다. 즉,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보다는, 세 멤버의 이름이 그룹명으로 채택된 것이다.

SM은 S.E.S. 제작을 준비하면서 당시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던 미국 걸그룹 TLC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룹명의 제작 과정에 있어서도 확실히 TLC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63][64][65]

조합 순서는 나이가 많은 순에서 적은 순이다. 1980년 생으로 그룹 내에서 가장 맏언니인 바다첫 번째 S를 맡고 있다. 같은 1981년 생으로 동갑내기인 유진는 3월 3일 생으로 생일이 더 빠른 유진가운데 E를 맡고 있으며, 10월 23일 생으로 생일이 더 느린 마지막 S를 맡고 있다. 이 점을 살려서 '첫 번째 S 바다, 가운데 E 유진, 마지막 S 입니다.'라는 인사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2005년 11월 27일,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PD 선정 특별상'을 수상하였을 때, 가운데 있던 바다가 화면상 왼쪽에 있는 유진과 자리를 바꾸며 '이렇게 서야 S.E.S.죠.'라고 그룹명 순서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아무래도 S를 맡고 있는 멤버가 두 명이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헷갈릴 수 있지만, 첫 번째 S바다이고, 마지막 S이다. 데뷔 당시 케이블 TV HBS 연예 정보 프로그램 『오늘의 연예토픽』(파일:유튜브 아이콘.svg[66])이나 잡지 『시크(Chic)』 등의 소수 언론이 바다의 S 위치를 바꿔서 보도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해당 언론 측이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 내보낸 오보이다.

신기한 것은 세 멤버의 본명 가운데 자의 영어 알파벳을 조합해도 S.E.S.로 일치한다. 바다의 본명인 최성희의 영어명 'Choi Sung Hee', 유진의 본명인 김유진의 영어명 'Kim Eugene'[67], 의 본명인 유수영의 영어명 'Yoo Soo Young'을 조합해도 S.E.S.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원래 첫 번째 S는, 바다의 본명인 최성희의 가운데 '성'의 영어 앞글자 이니셜 S로 정해져 있었다.

"바다라는 이름은 S.E.S.의 유진이 지어줬어요. 제가 팀의 맏언니였는데 바다(소래포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딘가 모르게 바다처럼 신비하면서 어떨 때는 거센 파도처럼 화를 낸다고 지어주더라고요. S.E.S.의 처음 S가 원래는 '성희'의 이니셜이었는데 'Sea'의 이니셜로 바뀐 거죠."


4.1.1.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거짓정보와 반박[편집]


정말 아주 매우 극소수이지만 일각에서 그룹명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바로 'Super Emotional Sound'라는 뜻에서 앞 글자만 따서 조합한 이니셜이라는 주장이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극도로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 '감성을 자극하는 초 극강의 목소리' 정도의 의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확하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무래도 아날로그 시절에 데뷔하였던 연예인인지라 유실된 자료가 다수 있지만, 26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아 있거나 발굴된 여러 역사적 문헌에 의하면 데뷔 당시 언론에 언급된 적은 한 번으로 확인된다. 데뷔 당시 게스트로 초대된 MBC 예능 프로그램 《쇼 토요특급》 1998년 2월 21일 방송분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데뷔 후 빠른 속도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하는 코너를 방송하였는데[68], 미리 제작된 안내 화면에서 성우가 S.E.S.를 '혹자는 이들을 가리켜 Super Emotional Sound. Super=극도. Emotional=감정을 움직이는. Sound=소리. 즉 '강력하게 마음에 와닿는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는 것이다.'라고 소개하였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간단하고 분명한 팩트는, 해당 의미가 그룹명이라고 소개된 게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해당 문서에도 이 의미가 또 다른 의미라는 내용이 적혀져 있었던 적이 있었고, 팬덤 내에서도 이 내용을 접하고 정말 아주 극소수지만 이런 의미도 있었냐는 의견이 오고 간 적이 있었다.[69] 하지만 이 내용에 대해 남아 있는 문헌은 거의 없었고, 따라서 신빙성 또한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팬들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고 해당 문서에서도 삭제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사실 《쇼 토요특급》 방송분에서 언급된 내용은 프로그램 제작진이 끼워맞추기 용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는 확률도 가정해볼 수 있다. 데뷔 당시부터 모든 멤버들도 이렇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도 신빙성을 높여주었다.

그러다가 2016년 연말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리얼리티 프로그램 《Remember I'm Your S.E.S.》에서 유진이 가지고 온 데뷔 당시 다이어리에 이 문구가 써져 있는 것이 공개되었다.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간단하고 분명한 팩트는, 해당 방송에서 유진은 본인이 직접 작성하였다는 말을 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 2024년 3월 15일 바다의 유튜브 채널 '이렇게 귀한곳에 귀하신분이'에 유진이 출연하여 이 다이어리를 또 한 번 공개하였는데, 여기에서 결정적인 사실은 유진이 직접 말하길 해당 다이어리는 팬들이 작성해준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해당 내용이 전파를 탄 후 4년이 흐른 후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의미가 원래 그룹명 의미라고 마치 기정사실화 돼서 퍼지기 시작하였다. 또 이렇게 루머가 퍼지기 시작하고 결국 해명은 다른 사람이 하고... 2020.11.20 더쿠(아카이브) 2020.11.20 루리웹(아카이브)[70] 2022.12.02 루리웹(아카이브)

하지만, '~Super Emotional Sound' 의미가 정말 또 다른 그룹명 의미가 맞냐고 물음표를 던진다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선 가장 결정적인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멤버들이 직접 자신들의 그룹명 의미를 'Super Emotional Sound'라는 뜻으로 소개한 적은 26년 동안 결코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두 번째 이유는, 엄밀히 말해 이 뜻은 유진 혼자서 다이어리에 적은 내용이다. 데뷔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해당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것도, 위에 이미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방송분에서는 해당 내용이 그룹명 의미라고 소개된 적도 없다는 것이 팩트이다. 되려 어떻게 그룹명 의미라고 날조가 되는지 물음표가 던져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살을 덧붙여서 각자 나름대로 추정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추정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더 전개한다면 뇌절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 정도로만 끝내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사실이 아니기에 훗날 해당 의미가 사실로 밝혀질 일도 없다. 그리고 26년이 지났지만 사실이라는 증거는 더더욱 나오지 않고 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사실 이 문단 자체가 정보의 가치적인 측면에서 가치성이나 필요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인데, 뇌절을 하며 좆문가 코스프레하는 극소수 사람들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어느 정도 퍼져버린 상태이고, 이를 정정하기 위해 지면상의 텍스트만 차지하는 비효율성만 야기해버리게 되었다.

어쨌든 정확한 그룹명 의미는 멤버들의 영어 이름에서 알파벳 앞글자를 조합한 SeaEugeneShoo, 바다유진가 확실히 맞다.

혹시라도, 인터넷 상에서 이러한 거짓 정보를 전파하는 글을 본다면, 사실이 아니기에 귀담을 필요가 없으며 과연 사실인지 팩트검증을 꼭 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해당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렇게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여도 맞다고 우긴다면,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라는 명언에 해당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그냥 먹금이 최선이다.[71]

4.2. 발음[편집]


공식적인 그룹명 발음법은 S(에스).E(이).S(에스).이다. 각각의 알파벳 개별 발음 그대로 읽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알파벳을 결합하여 세스[72]라고 읽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73] 우선, 공식적으로 발음하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이렇게 부를 이유가 전혀 없으며, 무엇보다 S.E.S.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그룹명을 단 한 번도 세스라고 지칭한 적이 없다. 또한, 세스라는 발음은 활동 당시 안티 팬들이 비방할 목적으로 쓴 일종의 악의적인 멸칭으로 사용되었으며, 26년이 흐른 2024년 현재까지도 악의적인 안티 행위를 하고 있는 해당 팬덤 일부 극성 팬들이 이렇게 지칭하며 악용하고 있기도 하다.

데뷔 타이틀곡 〈 I'm Your Girl〉 초반 신화에릭앤디의 랩 파트 영문 가사에서 세스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근거로 원래는 세스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거 같다, 더 나아가 맞다라고 우기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런데, 해당 랩 파트를 자세히 들어보면 세스가 아닌 에쇼 혹은 에세쇼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발음하는 이유도 빠른 랩 특성상 음절에 맞춰서 불러야 되기에 이렇게 발음하는 것이며, 더욱이 S.E.S.만 빠르게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S.E.S. ya'll[74]'을 빠르게 발음하는 것이다. 즉, 이는 그룹명을 발음하는 것과 전혀 무관하며, 이를 근거로 세스라고 부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에 불과할 뿐이다.

간혹 가뭄에 콩 나듯이 팬 페이지에서도 어떤 의도 없이 드립을 날리기 위해 세스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이면 몰라도 계속 이런 식으로 지칭할 시 좋은 소리 들을 생각은 접어야 한다.

머글들도 악의 없이 간혹 세스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결코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다.

4.3. 표기[편집]


공식적인 그룹명 표기법은 S.E.S.이다. 모든 알파벳을 대문자로 표기하고, 모든 알파벳 뒤에 반드시 온점(.) 세 개를 찍어서 표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75] 표음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별로 개별적인 발음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모든 국가를 막론하고 통상적으로 알파벳 그대로 S.E.S.로 표기하는 게 대부분이다. S.E.S.의 주요 활동국인 한국한글로는 에스이에스로, 일본가타카나로는 エスイーエス로 표기한다.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규칙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속사 SM이 공식적으로 관여되어 있는 앨범 표지만 보더라도, 1997년 12월 25일에 발매된 정규 1집 음반에는 'SES'라고 적혀있다. 그러다가 1998년 11월 23일에 발매된 정규 2집부터는 매 앨범 표지에 S.E.S.라고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SM이 이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팬들에게 안내글을 띄운 적은 없으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오히려 이러한 표기법은 소속사 SM보다는 팬덤 내에서 더 이야기가 오고 갔던 부분이다. 현재로서는 팬덤 내에서 언제부터 이러한 표기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과거 팬 사이트를 확인해 보면 대략 2001년 정규 4집 음반 활동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이며, 팬덤 내에서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규칙이 정립되었는지 또한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온점(.) 세 개를 찍는 표기법인 S.E.S.가 팬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며, 팬들도 이에 수긍한다. 가끔 SES 혹은 S.E.S라고 표기된 것을 보고 S.E.S.라고 적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드립이나 장난으로 하는 주장이 아니라 진심이다..!!

하지만, 이렇다고 하여 항상 반드시 S.E.S.라고 표기하라는 의무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팬들도 S.E.S 이렇게 온점(.) 두 개만 적는 경우도 있고, 더러 온점(.) 세 개를 다 생략한 SES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때 온점(.) 세 개를 다 생략한 SES라고 적으면 딱히 환영은 못 받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성이나 팬심을 담은 글이라면, 영어로 바꾸고 온점(.) 세 개를 다 적어야 되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S.E.S.로 표기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득이하게 온점(.) 세 개가 다 생략된 SES로만 적어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해시태그(#)로 기입하는 경우이다. 해시태그는 띄어쓰기나 문장 부호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해시태그에 S.E.S.를 기입할 때는 반드시 온점(.)을 다 생략한 #SES로 적어야 한다. 간혹 이 점을 간과하여 #S.E.S, #S.E.S. 이렇게 기입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해시태그 검색에서 누락된다. 하지만.. #SES로 검색하면 외국 포스팅이 대부분 많이 나오며 간혹 일본의 기업도 나오는 등 검색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해외 팬들 모두 해시태그에 S.E.S.를 기입할 때, 표음 문자한글을 이용하여 #에스이에스라고 함께 적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실제로 해시태그 검색을 지원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서 #에스이에스로 검색하면 오직 S.E.S.와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다.

4.4. 애칭[편집]


1세대 아이돌 활동 시기에는 지금 아이돌 팬덤 문화처럼 팬들이 애정을 담은 애칭을 만드는 문화가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에 딱히 애칭이라는 개념이 통용되지 않았다.

굳이 활동 당시 존재하였던 애칭과 가장 비슷한 사례를 뽑자면, 세 멤버들의 이름을 딴 삼행시 정도가 있다.[76] 아래 서술되어 있는 것처럼, 매우 썰렁한 삼행시였지만, 당시에는 S.E.S. 인기를 등에 업고 지금의 밈 같은 개념으로 유행을 탄 적이 있었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드립이기도 하며, 얼마나 유행을 탔으면 신문에 보도된 적도 있을 정도였다.(문헌 아카이브)

이 드립 후 순간 썰렁함이 감돌 수 있다(...)}}}

2016년, 디시인사이드 S.E.S. 갤러리 개설 당시 한 팬이 줄여서 '엣'이라고 부른 게 기원이 되어 갤 내에서는 '엣'이라는 애칭이 사용된 적이 있었다. '엣'은 한글 발음 표기법인 '에스이에스'에서 가장 앞 글자인 '에'에 바로 다음 글자인 '스'의 자음 ㅅ을 따와서 결합한 것이다. 자매품으로 높임말 같은 느낌을 주는 '엣느[77]'라는 애칭도 함께 종종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해당 갤 안에서만 한정되는 경우이고 갤을 이용하지 않는 팬들에게는 생소한 애칭이기에 팬덤 내에서 공식적 혹은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애칭이 아니다.[78] 가끔 갤이 아닌 다른 팬 사이트에서 '엣'이라고 지칭하는 팬들도 있으나 이는 해당 팬이 최소 당시 갤 눈팅족이었어서 알고 있는 확률이 높다. 아니면 이 문서를 봤거나

SM 직속 후배 걸그룹 에스파도 팬들이 부르는 애칭에 '엣'이 들어가지만, 정확한 애칭은 '엣깅이'로 서로 다르다.

4.5. 기타[편집]


  • 2014년 7월 14일, 바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S.E.S.가 정식 그룹명으로 정해지기 전 연습생 시절 가칭은 '멜로즈'였다고 한다.(문헌 아카이브)

  • 표기와 발음이 SBS와 비슷[79]해서 활동 당시 SBS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진행자가 SBS랑 엮는 드립을 날린 적도 가끔 있었다. 또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SBS라고 말하는 귀엽고 웃긴 장면이 전파를 탄 적도 가끔 있었다. 심지어 언론사도 가끔 SBS로 잘못 표기해서 기사를 내는 경우도 있다.
    • 하지만.. 정작 S.E.S. 활동 당시 소속사 SM과 가장 갈등이 많았던 방송사가 SBS라는 것은 함정이다. 총 여섯 번의 활동 기간 중 두 번이나 SMSBS의 갈등이 있었다. SBS 측으로부터 방송 정지를 당하거나 반대로 SMSBS 방송 출연을 거부하는 등의 사태로 인하여, SBS 자사 음악 방송이나 연말 음악 시상식, 주관 합동 콘서트 등에서 미출연이나 수상 불발 등의 불이익의 결과는 S.E.S.가 고스란히 떠안아야만 했다. S.E.S. 당사자들이나 팬들 입장에서 더 황당하였던 것은, S.E.S.와 SM의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오히려 SMSBS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 언론사 측에서 기사를 낼 때 그룹명을 표기하는 방법은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 따라서 달라진다. 실제로 S.E.S. 관련 기사를 검색하면 알 수 있는데, 데뷔 초에는 온점(.) 세 개가 다 생략된 SES와 온점(.) 두 개가 포함된 S.E.S 두 가지가 골고루 쓰였다. 그러다 세월이 오래 흐르고 특히 활동 종료 이후부터는 통상 온점(.) 두 개가 포함된 S.E.S.로 표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긴 하다. 기자가 온점(.) 세 개가 다 포함된 S.E.S.로 표기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 그룹명이 주어로 서술되고 뒤에 조사가 생략되는 경우에는 S.E.S, 이렇게 마지막 온점(.)은 생략하고 대신 쉼표(,)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 결론을 내리자면, 여러모로 S.E.S.에게 있어서 온점(.)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해야 될까...

5. 음악가적 기교[편집]



5.1. 특징[편집]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보컬 실력, 댄스 실력까지 겸비하는 SM걸그룹의 시초이자 그 방향성을 제시한 뿌리가 되는 그룹이다. 그만큼 비쥬얼적인 요소로 승부보는 아이돌 그룹임을 넘어서, 실력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SM의 자본력과 기획력이 더 해져 컨셉츄얼한 콘셉트와 짜임새 있는 안무, 무대매너까지 더 해지며 음악가로서의 여러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총 5년 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활동 기간 동안 대중성과 팬덤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며,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음악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까지 잡으며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음악계 평단으로부터도 아이돌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25년이 흐른 지금도 S.E.S.가 남긴 음악적 유산과 무대는 지금 봐도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2. 보컬[편집]


1세대 아이돌 시기라 트레이닝 기간이 6개월 정도로 굉장히 짧았지만, 멤버 자체가 기본적으로 타고난 개인 역량이 좋은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년 6개월의 일본 현지 활동 중 거의 모든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면서 실력이 한층 성장했다. 데뷔 초까지만 하더라도 라이브에 있어서 살짝 불안함이 보였던 유진의 보컬 실력이 월등하게 향상 되었으며, 정규 4집 타이틀곡 〈감싸 안으며〉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라이브로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5.3. 댄스[편집]


S.E.S.의 댄스 실력을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는 영상들
- Dance Skill of S.E.S. -




▲히트곡 안무 모음▲
정규 3집 타이틀곡 〈Love〉 안무 동선▲

S.E.S.의 정규 5집 타이틀곡 〈U〉의 난이도를 체감할 수 있는 비교 영상
- Dance Skill of S.E.S. -




▲남성 안무 전문팀 영상▲
▲S.E.S. 교차편집 영상▲

데뷔 전부터 지하 연습실에서 노래와 춤과 안무 연습에 몰두하였을 정도로 꽤나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쳤다. 그룹은 댄스에 있어서도 멤버들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한데, 유진의 연습생 기간이 단 5개월에서 6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안무의 정확도나 호흡 면에서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금 아이돌처럼 몇 년을 거쳐서 한 곡의 안무를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아닌 단 5개월 사이에 이러한 완성도와 정확도를 보여준 것이기에 얼마나 실력이 뒷받침 됐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래 S.E.S.는 같은 SM 소속의 보이그룹 H.O.T. 여성판, 미국 걸그룹 TLC처럼 파워풀한 힙합 여전사, 즉 걸스힙합을 주 콘셉트로 기획되었기 때문에, 연습생 당시에도 웬만한 보이그룹에 맞 먹는 과격한 안무를 연습해왔다고 한다. 중국 시장을 고려해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티티마출신의 소이도 최종 멤버 직전까지 갔지만, 데뷔를 포기한 데에는 대학 진학과 너무 고난이도의 안무 연습 때문인 것도 있었다고 밝힐 정도로 안무의 난이도 수준이 엄청났다고 한다.

데뷔곡 〈I'm Your Girl〉은 비쥬얼 적인 이미지만 청순 콘셉트였지, 안무와 의상 심지어 안무도 힙합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세 멤버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딱딱 떨어지는 완성도와 파워풀함, 격한 댄스를 선보인 후 각자 자리를 찾아가는 치밀함까지 세 멤버가 함께 안무를 맞춘 기간이 고작 5개월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댄스 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포인트 안무로 내세운 일명 '둥근해 춤'과 '와이파이 춤'이 대히트를 기록하였는데, 그 중 양 팔을 위로 크게 벌리고 동선을 좌우로 왔다 갔다하여 움직임의 폭이 큰 '둥근해' 춤은 지금까지도 걸그룹 대표안무로 회자될 정도로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였다.

데뷔 정규 1집 후속곡 〈Oh, My Love〉에서도 전작 타이틀곡과 기본적으로 결이 비슷한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모습을 표방하지만, 1절이 끝난 후 남성 백댄서들과 함께 보여주는 댄스 브레이크 구간이 있을 정도로 이미 데뷔 당시부터 안무 수준에 있어서도 다른 1세대 걸그룹들과의 비교 선상에서 우월한 실력을 보여주었다.[80]

정규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의 'Funny How All Dreams Come True' 후렴 부분에서는 양 팔을 차례로 V자를 그리며 딱 맞아 떨어지는 파워풀함을 선보이며 역시 1집에 이어 파워풀하고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였다. 아예 안무 이름을 '칼춤'이라고 붙였을 정도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S.E.S.는 다른 가수들처럼 활동을 종료하고 어느 정도 휴식을 가진 후 다음 컴백을 위한 노래와 안무 연습에 매진한 것이 아니라, 아예 휴식기 자체라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데뷔를 앞두고 꾸준히 일본 방송 활동 및 노래 녹음과 안무 연습 등을 병행하며 동시에 한국 컴백을 준비하였다는 것이다. 즉, 다른 가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며 그것도 단 6개월 만에 무려 당시 19세, 18세 소녀들이 칼군무를 연마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수준이며, 다른 가수들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이 요구 되는 상황에서 나온 완성도라는 것이다. 당시 SM 홍보팀장이었던 홍현종은 훗날 S.E.S.에 대해 회고하기를, '틈만 나면 연습실을 찾는 독종들이었다.'고 하였는데(문헌), 칼춤 연마는 단적으로 S.E.S.가 얼마나 노력파였는 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S.E.S.의 안무 특징 중 하나가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보기와 다르게 동선이 굉장히 복잡하며, 무엇보다 팔과 몸을 쓰는 동작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무의 난이도와 복잡함은 정규 5집 타이틀곡 〈U〉에서 더 진화하여 S.E.S. 역대 안무 중 가장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E.S. 전성기 당시 기본 이미지가 청순하고 요정 같은 이미지, 그리고 당시 아이돌 중에서는 유니크하게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가 주를 이루어서 오히려 이러한 안무의 난이도와 완성도가 덜 주목 받은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S.E.S. 전성기 당시 모습을 현재에 와서 다시 접한 대중들이 활동 당시에는 요정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춤 또한 굉장히 파워풀하고 박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활동 당시부터 멤버 중에서 유진의 춤선이 유독 예쁘다는 반응이 많았으며, 바다도 메인보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뛰어난 댄스 실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바다는 S.E.S. 그룹 활동 종료 후에도 꾸준히 솔로 가수로서 커리어를 이어나가며 춤 실력이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81]

5.4. 콘셉트[편집]





우린 걸그룹 콘셉트백과사전이잖아요.

'요정', '풋풋한 소녀', '상큼 발랄 여고생', '걸크러쉬', '커리어 우먼'까지. 14년 만의 컴백을 선언한 S.E.S.는 대한민국 걸그룹들의 초기 콘셉트를 가장 먼저 만들고 시도했다.

멤버 바다는 지난 30일 개최된 단독 콘서트 '리멤버, 더 데이(Remember, the day)'에서 이같은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S.E.S.를 '걸그룹 콘셉트 백과사전'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S.E.S.의 콘셉트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요정돌이라 할 수 있다. 소녀가 가진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가요계의 요정으로 시작했지만, 성숙함을 보여준 3집 때부터는 '가요계의 여신'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S.E.S.가 보여준 청순, 청량, 순수, 청정 그 자체로 설명될 수 있는 이들의 콘셉트는 무해하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로 청순 콘셉트로 정상을 차지한 걸그룹일 정도로 걸그룹계에 청순함의 정석을 확립한 그룹이며[82], 그 외에도 미소녀(美少女) 컨셉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스쿨룩 컨셉, 웨딩 드레스 컨셉 등을 시도하며 걸그룹이라는 정체성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S.E.S.가 걸그룹 콘셉트 백과사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나이를 먹어가고 소녀에서 숙녀로 넘어가는 과정을 최초로 제시한 걸그룹이기 때문이다.[83]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모범적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나아가 S.E.S. 이러한 변모와 성장에 더욱더 힘을 실어줬던 건 음악적인 성장과 발전이다.


5.5. 음악성[편집]


바다: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2001.01.14 MBC 「게릴라 콘서트」[84]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S.E.S.를 평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평가가 바로 '음악성'이다. 그만큼 활동 당시부터 이미 음악적인 면에서는 탈 아이돌 급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 평가는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후대에 들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유진: 우리 S.E.S. 노래가 촌스럽지 않아요. 그렇죠?

2022.03.11 SMTOWN YouTub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오랜 세월이 지나도 S.E.S. 음악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당시로서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앞서나가는 음악을 한 것이 지금 들어도 이질감이나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세월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기에 옛 느낌의 노래도 있을 수 있으나, 다수 노래들은 조금만 다듬어 지금 발매되어도 K-POP 시장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퀄리티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SM이 직속 후배 레드벨벳에스파에게 과거 S.E.S. 히트곡을 재소환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시 S.E.S.는 한국 음악시장에서 주로 들을 수 있는 보편화된 장르보다는, 시도되지 않은 세련된 팝 사운드 위주의 장르를 선보이며 음악적으로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느 정도의 충격이었냐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S.E.S.를 소개할 때 '이제 우리 한국도 S.E.S. 덕분에 TLC의 노래와 Spice Girls의 율동을 갖게 되었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라고 대놓고 소개할 정도였으니 조금이나마 그 당시의 반응을 체감할 수 있다.

첫 데뷔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을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바로 노래의 충격적인 인상도 큰 역할을 하였다.

데뷔 1집 타이틀곡 〈I'm Your Girl〉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뉴질스윙 장르의 곡이었다. 뉴질스윙은 기본적으로 R&B 리듬을 기반으로 하되, 강렬한 힙합 비트를 첨가하여 흑인 음악풍이 느껴지는 장르이다. 미국에서는 걸그룹 TLC가 크게 히트시킨 후, Changing Faces, Black Girls, SWV, En Vogue, Jade, The Good Girls, Zhané, Jade, Nuttin' Nyce, Y?N-Vee 등 수많은 제2의 TLC를 자처하고 나온 걸그룹들이 선보이며 미국 음악시장을 이끌어온 주류장르이기도 하다.

I'm Your Girl〉의 비쥬얼적인 콘셉트는 10대 소녀의 청순함과 풋풋함, 순수함 등을 기반으로 두고 있기에, 음악 장르만 보자면 상반되어 매치가 잘 안될 수 있다. 당시 대중들이 〈I'm Your Girl〉을 듣고 느낀 문화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당시로서는 거의 사장된 시장과도 다름없던 걸그룹 10대 소녀들이 웬만한 보이그룹 급의 파워풀한 안무를 절도 있게 추며 이런 음악을 선보인다는 것은 엄청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발매 당시 역대 걸그룹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던 정규 3집 타이틀곡 〈Love〉도 뉴질스윙의 장르로서, 소녀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을 감미롭고 달콤하게 녹여내 〈I'm Your Girl〉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기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S.E.S.의 여러 히트곡과 명곡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많은 대중들은 완성도 면에 있어서 만큼은 〈I'm Your Girl〉과 〈Love〉 두 곡을 불멸의 역작으로 꼽는 평이 많다. 그만큼 뉴질스윙은 당시 S.E.S.를 대표하고 S.E.S.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주었던 장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발매된 20주년 스페셜 앨범 타이틀곡 〈한 폭의 그림〉도 뉴질스윙의 장르를 표방하며, S.E.S. 전성기 때 느낌이 나타나는 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무래도 한국 음악시장에서는 뉴질스윙의 부흥을 일으킨 게 S.E.S.였기 때문에 후대에도 뉴질스윙의 장르 곡이 이따금 발매될 때면 'S.E.S. 느낌이 난다.'라는 반응이 많다. 실제로 걸그룹 EXID가 〈내일해〉를 발매 하였을 때 S.E.S. 느낌이라는 평이 많았으며, 4세대 걸그룹 NewJeans의 음악을 들으면 S.E.S. 느낌이 느껴진다는 평도 NewJeans의 주요 음악적 노선은 힙합비트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곡들이 많기 때문이다.[85]

바다가 한 방송[86]에 나와서 밝히길, 활동 당시 SM은 S.E.S.를 통해 전 세계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목표(파일:유튜브 아이콘.svg)로 삼았다고 한다. 애초부터 SM이 S.E.S.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음악적 방향성은 확고했다고 할 수 있다. 데뷔 정규 1집의 트랙을 채우고 있는 수록곡들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기존 한국 음악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느낌의 곡들도 꽤 포진되어 있었다면, 2집부터의 음악적 노선은 완벽하게 고급스럽고 세련된 팝 음악으로 채우며 그 방향성을 확고히 하였다. 이수만이 우연히 접하고 너무 좋아서 S.E.S.에게 부르게 하겠다는 일념하에 직접 핀란드까지 날아가서 작곡가한테 공수해온 해외곡들과 국내 작업진들이 포진하여 채운 세련된 팝 음악에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10대 소녀들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가득 채워 명반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정규 2집에서 뭐니뭐니해도 음악적으로 당시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곡은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이다. 당시 한국 음악시장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유로팝 장르로서, 유로댄스에 힙합과 레게를 결합하여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물씬 자아내었다. 음악적인 충격으로 보자면 가히 〈I'm Your Girl〉에 전혀 뒤지지 않을 파격적인 시도이자 충격이었다.

당시 멤버들도 도전이라고 생각하였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생각을 하였을 정도로 파격적인 장르였다. 장르의 파격과 함께 멤버들은 데뷔 앨범과는 사뭇 다른 창법을 선보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특히 바다는 대선배 나미 같은 비음이 느껴지는 창법을 구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후반 유진가 서로 외계어로 주고 받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스캣랩을 위해서 많은 변화화 노력을 기울였다.

사실 장르만 놓고 보자면 당시 한국 음악시장에서 크게 어필하기는 힘들었던 장르이며, 현재 한국 음악시장에서도 이렇게 오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풍기는 곡은 흔하게 만나볼 수 없다. 하지만 기우도 잠시, 전작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걸그룹 시장을 장악한 파급력에 오히려 신선한 장르와 180도로 변한 멤버들의 음색이 어필하여 발매와 동시에 큰 사랑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S.E.S.의 대표적인 대중적인 히트곡을 뽑을 때 상위에 반드시 언급되는 곡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사운드로 무장된 팝 노래에 소녀 감성을 끼얹는 음악적 방향성은 정규 3집까지 이어지며 큰 호평을 받았으며, 본격적으로 S.E.S.가 대중들에게 음악성으로 더 큰 평가를 받기 시작하게 된 시기는 일본 현지 활동을 다 마치고 돌아온 후에 발매한 정규 4집 때부터이다. 일본 활동 시절 S.E.S.에게 수많은 명곡을 안겨준 작곡가 시마노 사토시와 인연이 되어, MISIA의 〈つつみこむように〉를 번안한 〈감싸 안으며〉는 당시 한국 음악시장에서 흔하게 들을 수 없었던 미디엄템포에 R&B가 결합된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정규 4집에서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데, 바로 후곡속으로 째즈 리듬에 힙합을 곁들인 째지합 장르곡 〈Be Natural〉을 내세운 것이다. 당시 한국 가수 최초로 시도한 장르로서, 굉장히 고급스우면서도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예술성이 느껴지는 곡이다. 대중적인 인기도만 고려한다면 다른 곡들을 내세울 수 있었으나, 4집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발전된 음악성을 어필하고자 대중적 인기는 잠시 내려놓고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기에 전작 〈감싸 안으며〉 만큼의 히트는 아니지만, 각종 가요차트 상위권 안에 안착하여 다시 한번 S.E.S.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활동 당시보다 시간이 흐른 후 대중들과 리스너들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음악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이후 SM 직속 후배 걸그룹 레드벨벳이 리메이크하여 재조명 되며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87] 이러한 호평을 바탕으로 S.E.S.는 4집을 기점으로 분명 팬덤과 인기도로만 보자면 아이돌이지만,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일정 부분 아티스트의 이미지도 챙기게 된다. 2023년, 바다가 한 방송[88]에 출연해서 밝히길, 일본 활동을 마치고 온 후 아이돌과 아티스트 중 어느 위치에 서야할 것인가로 고민하였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분명 4집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평단들이 S.E.S.에게 내렸던 음악적 평가는 S.E.S. 멤버들의 의지도 확고하게 담겨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결성 과정[편집]





7. 활동[편집]



7.1. 한국[편집]





7.2. 일본[편집]





7.3. 중국[편집]




7.4. 미국 진출 제의 및 계획[편집]


1999년 11월, 정규 3집 활동 당시 미국의 래퍼슨 사를 비롯한 네오비전, 존 미디어 등 3개의 프로덕션으로부터 미국 진출 제의를 받았다.(문헌) 하지만, 미국 팝계의 인종차별과 음악적, 문화적 차이 등의 높은 벽을 허물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거절하였다.

현지에 진출해서 활동하였던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도 당시에는 문화, 음악산업 규모, 언어, 경제력, 국가 인식 등의 여러 면에서 벽이 높았는데, 하물며 전 세계 대중문화의 메카인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미국 내에서 K-POP은 마이너한 영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인지도였으며, 더욱이 지금처럼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며 빌보드 차트에 K-POP이 수시로 오르는 시기도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의를 받은 시기에 한창 한국, 일본, 대만을 오고 가며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89]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기에, 애초에 미국까지 진출해서 활동할 시간과 여력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무슨 로보트도 아니고

당시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통해 제의를 받은 활동 범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진 바 없고 SM 측도 이와 관련하여 추가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기에, 미국 측에서 어느 정도의 활동 범위를 생각하고 제안한 진출 제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고무적인 사실은 S.E.S.가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프로덕션 측으로부터 직접 미국 진출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며, 그만큼 팝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업계 관계자들도 S.E.S.의 음악이 통할 수 있다는 판단하에 제안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당시 잡지에 보도된 기사

그런데.. 이렇게 미국 진출을 향한 SM의 갈망은 끝난 줄 알았으나[90], 2014년 12월 바다중앙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S.E.S. 재계약 시점에 이수만은 S.E.S.에게 미국 시장에 진출하자는 제의를 하였다고 한다.(문헌)

2024년 3월 15일, 바다유튜브 채널 '이렇게 귀한 곳에 귀하신 분이'에 유진이 출연하였을 때, 미국 진출 예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방송에서는 처음으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당시 미국 진출 이야기를 접한 유진의 대답은 단호하게 '난 싫어'였는데, 그 이유가 당시로서도 본인의 인생에서 자유가 없는데 미국유럽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다고 하며, 그 말을 들은 바다는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진은 현재 K-POP이 팝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물론 각 서구권에도 퍼져나가서 활약하는 후배 아이돌을 보면부럽기도 하고, 당시 미국 진출을 감행하지 않은 것이 아쉽거나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밝혔다.(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이미 S.E.S.는 1998년 3월 일본 시장에 뛰어들어, 최종적으로는 일본 현지 내에서 상업적인 결과 면에서 실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였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당시로서는 성공 가능성 자체가 사실상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찌 되었든, 결과론적으로 여러모로 거절하길 잘했다는 게 팬들과 대중들의 중론이다.(파일:더쿠 아이콘.svg 파일:더쿠 아이콘.svg) 정말 안 가길 천만 다행

그리고 SM미국 진출을 향한 야망은, 2008년 10월 SM 직속 후배 BoA가 진출하며 드디어 실현되었다. S.E.S.가 SM 가수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여 일본 시장의 길을 닦은 것처럼, SM 직속 후배 가수 BoASM 가수 최초로 미국에 진출하여 미국 시장의 길을 닦은 것이다. S.E.S.가 첫 발걸음을 내디딜 뻔 했던 미국 진출을 사실상 BoA가 물려받은 셈이었다.

하지만, BoA미국 진출은 상업적인 결과 면에서 최종적으로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S.E.S.가 최초의 선구자로 일본 시장에 발을 내디뎠으나, 전체적인 길만 닦았을 뿐이지 상업적인 결과 면에서 실패로 끝난 것과 같은 성적표를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S.E.S.는 K-POP 아이돌 그룹 최초로 일본 오리콘 차트의 싱글차트와 앨범차트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고, BoA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으나[91], 이 결과 만으로 성공하였다고 단언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일본 시장 진출에 있어서 S.E.S.와 BoA는 각각 상업적인 실패와 성공이라는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였지만, 미국 진출에 있어서 만큼은 BoA도 S.E.S.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는 평행이론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러모로 S.E.S.와 BoASM의 첫 해외 진출에 있어서 큰 공을 세웠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두 가수의 시행착오가 쌓이고 쌓여 후배 가수들은 더 수월한 길을 걸을 수 있었다.


8. 활동 종료 후 모임[편집]





9. 기록[편집]





10. 인기 및 위상[편집]





11. 음악사적 의의[편집]





12. 롤모델[편집]




13. 업계의 평[편집]




14. SM엔터테인먼트와의 관계[편집]





15. 단독 공연[편집]



15.1. 콘서트[편집]


S.E.S.
단독 공연 / 콘서트
}}}
총 3회
날짜
국가
도시
장소
내용
2001 총1회
03.19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92]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

첫 단독 콘서트

가수 단독 공연 최초로 인터넷 예매 시도

이틀 만에 매진 세례

걸그룹 최초로 매진

가수 최초로 한중일 삼개국어 기자회견 실시
2016 총2회
12.30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
Remember, The Day

걸그룹 최초로 재결합 단독 콘서트 개최

걸그룹 최초로 재결합 단독 콘서트 2회 개최
12.31

15.2. 공식 팬클럽 창단식[편집]


S.E.S.
단독 공연 / 공식 팬클럽 창단식
}}}
총 8회
6회 2회

날짜
국가
도시
장소
내용
1998 총1회
05.31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
1기 창단식

첫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공식 팬클럽 창단식 개최
1999 총3회
05.21

高雄市
가오슝시
금인도 놀이동산
창단식 1회

걸그룹 최초로 해외 단독 팬미팅 개최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5.22
臺北市
타이베이시
워너브라더스 공원
창단식 2회

걸그룹 최초로 해외 단독 팬미팅 2회 개최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5.30

서울
KBS 공개홀
2기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2회 개최

걸그룹 최초로 2년 연속 개최
2000 총1회
03.26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 경기장
3기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3회 개최

걸그룹 최초로 3년 연속 개최
2001 총1회
05.10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 경기장
4기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4회 개최

걸그룹 최초로 4년 연속 개최
2002 총2회
02.23

서울
광운대학교 문화관 대극장
5기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5회 개최

걸그룹 최초로 5년 연속 개최
10.03
연세대학교 대강당
6기 창단식

걸그룹 최초로 6회 개최

걸그룹 최초로 한 해에 2회 개최

15.3. 쇼케이스[편집]


S.E.S.
단독 공연 / 쇼케이스
}}}
총 2회
날짜
국가
도시
장소
내용
1998 총1회
08.28

도쿄
롯폰기 벨파레
S.E.S. First Live in Tokyo

일본 데뷔 쇼케이스

걸그룹 최초로 해외 쇼케이스 개최
2000 총1회
04.30

도쿄
시부야 Q FRONT
S.E.S. SPECIAL LIVE TSUTAYA E-STYLE

6번째 싱글 발매 쇼케이스

출처 마이니치 신문


16. 광고 및 홍보대사[편집]



16.1. 광고[편집]


S.E.S.
광고
}}}
총 17개
16개 1개

기업
브랜드
분류
1998 총 4개
지브이
7nani
의류
파일:농심 로고.svg
새우깡
스낵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파일:MBC FM4U 로고 2020.png
홍보 로고송[93]
파일:문화체육관광부_국_좌우.svg
한국관광홍보 CF 'Welcome to Korea'
국가 홍보 CF
1999 총 1개
보광인터내셔날
롤롤
의류
2000 총 4개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svg
파일:에뛰드 하우스 로고.svg
화장품[94]
· 동시 온에어
파일:동아오츠카 CI.svg
화이브미니
음료
JustSystem megavi
Megavi DV
가전제품
광고
파일:LG전자 3D 로고.svg
테크폰900
전화기
2001 총 5개
파일:동아오츠카 CI.svg
화이브미니
음료
재계약[95]
파일:FIFA 로고.svg
한·일 월드컵 홍보
공익
파일:롯데 로고(1977-2007).svg
파일:캐논 로고.svg
프린터기
일본국제관광진흥회
일본 관광 홍보
공익[96]
파일:중앙선거관리위원회 CI.svg
2002년 전국 지방선거 및 대선 홍보
공익[97]
2002 총 3개
(주)성도
JVIM CLUB
의류
파일:Unilever_logo_(1969_2004).png
커레스
바디워시[98]
(주)유나이티드3
FRJ
의류

16.2. 홍보대사[편집]


S.E.S.
홍보대사
}}}
총 5회
날짜
기관
홍보대사
비고
1999 총 2회
04.11
서울 에버랜드
아기 호랑이 명예 사육사
단독 선정
04.26
문화관광부
청소년 사절단

2001 총 3회
02.09
문화체육관광부
가수 부문 한국 방문의 해 명예 홍보사절
신효범·김건모·엄정화·핑클과 공동 선정
02.15
2002 한·일 월드컵
여자 연예인 대표 명예 홍보위원
남자 연예인 대표 조성모 선정[99]

네티즌 35,643명이 참여한 여론조사로 선정
08.04
가수 부문 문화 홍보사절
조용필·서태지·김흥국과 공동 선정

17. 음반 목록[편집]





18. 뮤직비디오[편집]



18.1. 한국[편집]


2023년 3월 12일 새벽, SM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Dreams Come True〉 조회수가 게시일 2년 4개월 만에 1천만뷰를 돌파하며, 1세대 아이돌 그룹 최초로 공식 채널 뮤직비디오 1천만뷰 돌파라는 기록을 남겼다.

적어도 유튜브 조회수 지표에서 만큼은 1세대 6대 천왕 아이돌[100] 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가 전세계 K-POP 팬들의 소통창구인 것을 감안한다면,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댓글창에는 한국어는 물론 영어 댓글을 필두로 일본어 등 세계 각국의 여러 언어로 대통합이 되어 있는 광경을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1세대 아이돌처럼 현역 활동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가 아닌 과거 전성기 활동 당시 뮤직비디오라는 것이다. 공개 당시 SM 직속 후배 걸그룹 에스파의 리메이크[101]SM 리마스터링 프로젝트가 맞물린 것이 큰 이유이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꽤나 기록적인 수치인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S.E.S.의 원곡과 뮤직비디오가 고퀄리티여서 이러한 시기적인 이슈를 본 콘텐츠로도 잘 흡수할 수 있었다. 만약 원곡이 퀄리티가 떨어졌다면 아무리 시기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원곡 자체의 콘텐츠로의 관심으로 옮겨오기에는 한계가 있다.

덕분에 '당시 에스파가 주 콘셉트로 내세웠던 광야 컨셉의 시초는 거슬러 올라가면 S.E.S.가 원조', '2021년에 봐도 당시 1998년으로서는 굉장히 앞서나가는 시도', '1998년에 나온 결과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고퀄리티',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지금 나온 음악이라고 해도 믿겠다' 등의 평가를 받으며, S.E.S.라는 그룹의 네임밸류와 음악적 유산이 다시 한번 조명 받는 계기가 되었다.

파일:SM엔터테인먼트 로고 가로형.svg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만 기록한다.

S.E.S.
뮤직비디오


총 누적 조회수 21,205,463
(2024.03.13 수 KST AM 00:00 기준)
순위
곡명
조회수
게시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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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3,121
2021.11.11[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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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 그룹 최초로 공식 뮤비 1천만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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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3,405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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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4,180
2017.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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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3,474
2016.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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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0[R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6
{{{-1 ''''''
558,164
2022.06.16[R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7
{{{-1 ''''''
323,070
2022.09.29[R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8
{{{-1 ''''''
233,257
2022.04.14[R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8.2. 일본[편집]


{{{-1 아래의 공식 채널에 올라온 영상만 기록한다.
파일:VAP 로고.svg 공식 유튜브 채널
홍종호 감독의 공식 유튜브 채널 }}}

S.E.S.
뮤직비디오

}}}
총 누적 조회수 25,355
(2024.03.13 수 KST AM 00:00 기준)
순위
곡명
조회수
게시일
링크
1
めぐりあう世界
10,153
2023.07.19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
夢をかさねて
7,124
2023.07.19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03
(愛)という名の誇り
3,943
2023.07.19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4
Lovin' You
2,602
2023.07.19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5
T.O.P.
1,533
2023.07.19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
Love
165
2022.05.05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9. 콘텐츠[편집]



19.1. 직캠[편집]


S.E.S.
컨텐츠 / 직캠
}}}
날짜
일정
촬영자
링크
1999
11.06
MBC음악캠프』 〈Love〉 무대
카마엘
파일:유튜브 아이콘.svg(by LoneJJack) 파일:유튜브 아이콘.svg(by KSori) 파일:유튜브 아이콘.svg(by S.E.S. 친구)
같은 영상이며 업로더만 다름

11.20
SM 페스티벌 합동 콘서트 〈Love〉 무대
셩공시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9.2. 교차편집[편집]


S.E.S.
컨텐츠 / 교차편집
}}}
날짜
제작자
링크
정규 1집 〈I'm Your Girl
2020.01.23
김살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규 2집 〈Dreams Come True
2019.07.06
빽능 - SBS 옛날 예능
(방송사 공식 계정)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19.08.30
김살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20.12.20
조각놀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21.12.26
idol studio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규 3집 〈Love
2017.04.15
810303 alloveugen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20.07.09
김살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20.07.26
피피'P차관람영상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현재는 계정이 해지되어 삭제됨

정규 3집 〈Twilight Zone
2021.02.15
김살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규 4집 〈Be Natural
2022.02.04
키위기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규 5집 〈U
2017.08.08
810303 alloveugene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20.10.24
조각놀이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20. 팬덤[편집]





21. 수상 경력[편집]



21.1. 시상식[편집]





21.2. 음악 방송 1위[편집]




21.3. 기타[편집]


수상에 대한 증표로 트로피, 메달, 상장 등을 받았기에 누락되어서는 안 되지만,
가수 활동 성과 및 평판, 수치 등으로 받은 상이 아닌 단순한 예능 활약상으로 받은 수상 목록만 별도로 기록한다.

또한, 해당 수상 목록은 위에 서술된 사유로 시상식 수상 경력에 포함하지 않는다.


S.E.S.
수상 / 기타
}}}
총 2회
날짜
프로그램
부문
증표
1999 총 2회
01.01
[102]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뉴스타 대행진
MVP
트로피
03.10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머리가 좋아지는 TV
우등상
메달
상장


22. 이야깃거리[편집]



22.1. 데뷔 당시 임팩트와 사회적 상황[편집]


S.E.S. 등장 이전 한국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듀스 데뷔 이후부터 점차 성인 가요에서 10대 가요로 주류가 개편되고 난 뒤부터,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던 일명 가요계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도 패권을 쥐고 있었던 건 역시나 남자 가수였다. 10대와 20대층을 공략하는 장르를 선보이며 남자 가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자 가수는 찾아보기 힘든 시기였다. 물론 S.E.S. 등장 이전에도 베이비복스 등의 그룹이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음악 시장에서 큰 방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맥을 쓰고 있는 여자 가수라고 해도 성인 가요나 발라드 풍 계열의 음악을 선보였으며 그조차도 남자 가수에 비해서는 미비한 수준이었고, 남성 가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기였다. 당시 H.O.T, 젝스키스 등을 필두로 시작된 아이돌 가수 열풍이 분 가요계에서 이제는 이 보이 그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걸그룹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두각되던 시기였다. 그렇게 여자 가수의 극심한 기근 속에서 해성처럼 등장한 S.E.S.는 단 순간에 가요계를 장악하며 데뷔와 동시에 빅히트를 터트린다. 또한 S.E.S.의 등장은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적인 흐름 속에서 두각된 니즈와 많은 것이 부합하였다. 당시 사회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시기를 향해 빠르게 바뀌고 있었던 혼돈의 시기였다.

첫 번째 사회적인 흐름으로 S.E.S. 탄생 7일 전 터진 IMF 외환위기 사태다. IMF 사태로 경제는 한 순간에 혼돈에 빠졌으며 이러한 어려운 시기 속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으로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IMF 시대 이후 처음으로 사랑받는 여자 가수가 되었다. 실제로 당시 IMF 시대 속 S.E.S.를 보며 느낀 감정을 남긴 한 평론가의 글도 있으며 당시 한 조사기관에서 여론조사를 실시간 결과 50대 이상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가수가 S.E.S.로 나타났다는 것이 이를 대표적으로 방증하는 결과이다.[103] 경제는 혼돈을 향해 가고 있었고 국민들의 몸과 마음이 지친 시대에 S.E.S.의 흥겨운 멜로디와 밝은 이미지는 잠시라도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볍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기에 충분했다는 의견이 있다.

두 번째 사회적인 흐름으로 S.E.S. 탄생 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 간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한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이다. S.E.S. 탄생 이전 수많은 여성 듀엣, 트리오, 합창단들이 존재했고 S.E.S.는 이전의 그들과는 180도로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걸그룹이었다. 이러한 S.E.S.의 행보와 새로운 변화를 맞은 사회적인 흐름 또한 같은 흐름을 타고 있었다. 실제로 S.E.S.는 당시 한국을 세계에 널리기 알리기 위해 대통령과 함께 찍는 국가홍보 CF에서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과 함께 대표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지막 세 번째 흐름으로는 새로운 정권의 등장과 함께 급물살을 탔던 일본문화 전면개방 정책이다. S.E.S.는 애초에 기획 때부터 한국은 물론 일본중국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범아시아적 글로벌 전략을 토대로 제작된 그룹이었다. 멤버 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문화에 익숙하였고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또한 탁월하였다. 데뷔 이후 얼마 안 가서 정식으로 일본 진출을 선언하였고, 일본 기획사와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등, 해외진출을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S.E.S.의 일본 진출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고 진출 후 한일 양국을 오고가며 활동하며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S.E.S.의 탄생은 문화적인 흐름과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회적인 흐름의 태동 속에서 그 니즈에 부합하며 데뷔를 했다.


22.2. 안전함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함을 택하는 노선[편집]


자신들을 지지하는 팬덤의 견고함이 확고해지고 대중들에게는 자신들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이 됐을 때 무조건 대중들에 입맛에 맞는 안전한 음악적 노선만 추구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선보이고 싶은 음악을 선보이는 실험성을 택하는 노선을 제시한 최초의 걸그룹이라고 한다면 이 역시도 S.E.S.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고 나와도 일단 무조건 들어주는 팬덤이 어느 정도 쌓여있어. 그래서 설령 대중적으로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중박 이상의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안전 요소가 있지. 대중들한테는 우리의 이름이 너무나 커졌기에 우리의 노래가 나왔다하면 한 번이라도 들어 봐. 그러니까 우린 자신 있어. 한 번 들으면 계속 찾게 될 거야.' 이런 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 시장은 빠른 반응이 성공을 결정 짓는 곳이기에 이러한 전략은 굉장히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흘러가기에 다분하다. 음악에 대한 보통 자신감이 깔려있지 않으면 시도하기 힘들다. 특히나 대중들이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욱더 빨리 쉽게 소비되고 대체되는 잣대를 들이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S.E.S.의 시도가 얼마나 과감하고 모험적인 행보를 보여줬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1집의 초대박으로 걸그룹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후 2집 타이틀로 들고 나온 곡은 당시 한국 가요계에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생소한 유로팝 장르의 〈Dreams Come True〉였다. 만약 대중성을 고려한 안전한 노선을 택했다면 〈너를 사랑해〉를 첫 타이틀로 내세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초대박이었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각종 음악 방송과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휩쓸었으며 초반부터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하며 2집의 성공에 견인했다. 지금도 S.E.S.의 대표곡 중 하나와 대표 안무 하나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3집 후속곡으로 대중성이 강조된 〈샤랄라〉가 후보로 오르기도 했지만 3집에서 보여주고 싶은 전체적인 콘셉트와는 〈Twilight Zone〉이 더 맞다고 판단하여 밀고 나갔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각종 음악 방송과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중박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다. S.E.S. 역대 활동 노래 중 가장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4집 후속곡은 타이틀곡 〈감싸 안으며〉가 대박이 난 상황에서 당시 팬덤 내에서는 대중성이 강조된 〈Long Long Time〉이나 〈그대 맘도 나와 같다면〉 등의 노래가 후보로 올랐지만, 당시로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Jazzy Hop(째지합) 장르의 곡인 〈Be Natural〉을 과감하게 밀고 나갔다. 지상파와 케이블의 음악 방송과 순의 프로그램에서 10위권에 안착하고 벨소리 차트 5위권에 드는 등 대중성이 완전히 배제된 음악으로도 이 정도 성적을 기록한 건 순전히 S.E.S.의 브랜드 파워 덕분이었다.

걸그룹이라는 범위가 단순하게 대중들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보여주고자 하는 과감한 음악으로 대중들을 리드하는 능동적인 행보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리고 성과도 따라줬다는 것도 괄목할 만하다. 걸그룹이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 아래 아름다운 미소만 파는 인형 같은 존재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성립한 행보라고도 볼 수 있다.

후에 이러한 노선은 베이비복스가 2004년 발매한 정규 7집 〈Xcstasy〉에서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같은 SM 직속 후배 [[소녀시대[[가 〈소원을 말해봐〉, 〈Run Devil Run〉, 〈The Boys〉, 〈I GOT A BOY〉 등의 곡으로 그대로 구현하게 된다.


22.3. 히트곡이 커버 무대에서 가지는 강점[편집]


활동한 모든 노래들이 커버됐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돌 그룹이며, 1세대 걸그룹 중에서는 유일하기도 하다. 대략 커버된 이력이 있는 히트곡 라인업만 봐도 아래와 같다.

정식 활동곡만 보면 1집 타이틀곡 〈('Cause) I'm Your Girl〉과 후속곡 〈Oh, My Love〉,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와 후속곡 〈너를 사랑해〉, 3집 타이틀곡 〈Love〉와 후속곡 〈Twilight Zone〉, 4집 타이틀곡 〈감싸 안으며〉와 후속곡 〈Be Natural〉, 4.5집 타이틀곡 〈꿈을 모아서〉, 5집 타이틀곡 〈U〉와 후속곡 〈Just a Feeling〉. 이렇게 총 11곡이다.

정식 활동곡 외에도 커플링 무대 개념으로 짧게 몇 번 선보였던 수록곡들도 커버되고 있다. 3집 〈샤랄라〉, 4집 〈I will〉, 5집 〈달리기〉이렇게 총 3곡이다. 정식 활동곡과 그외 곡들을 모두 합하면 총 14곡이 커버되고 있는 것이다.

이중에 주로 많이 커버되는 곡은 1집 타이틀곡 〈('Cause) I'm Your girl〉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와 후속곡 〈너를 사랑해〉, 3집 타이틀곡 〈Love〉, 4.5집 타이틀곡 〈꿈을 모아서〉, 5집 후속곡 〈Just a Feeling〉과 수록곡 〈달리기〉 이렇게 총 7곡이다.

2014년에는 SM 직속 후배 걸그룹 레드벨벳이 정식 활동곡으로 〈Be Natural〉을 리메이크 하였는데, 이에 따라 S.E.S.의 원곡 버전도 주목을 받으며 커버가 늘어났다.

다른 히트곡에 비해 적게 커버된 3집 후속곡 〈Twilight Zone〉과 5집 타이틀곡 〈U〉등은 현재 K-POP 트렌드와 딱 맞아 떨어지는 장르와 컨셉이기 때문에 재해석 되기 좋은 곡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언제든지 어느 시대라도 S.E.S.의 히트곡이 빛을 발하기 좋다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게 다 당시에 시대를 앞서가는 장르를 개척하고 선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난이도의 실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실상 많은 가수들이 쉽사리 도전하지 못 하고 있는 노래가 있는데 바로 4집 타이틀곡 〈감싸 안으며〉이다. 우선 도입부 바다 파트부터 이걸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유진의 파트도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곡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 어떤 가수도 쉽게 커버에 도전하지 못 하고 실정이다.부르고 싶어도 공식적인 무대에서 쉽게 부를 수 없는 비운의 노래감싸 안으며〉를 커버한 가수는 2017년까지 기준으로 파파야, 카라의 박규리, 소녀시대의 효연과 샵의 이지혜, 강성연 이 세 팀만 존재한다.

너무 많이 커버돼서 이와 관련해 위엄을 엿볼 수 있는 일화도 존재한다. 바로 정규 5집 후속곡 〈Just a Feeling〉이 M.net 슈퍼스타 K 제작진이 밝힌 오디션 금지곡 리스트 21곡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참가자들이 너무 많이 부른 나머지 심사하는 데 있어서 분별력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S.E.S. 노래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대중적으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2.4. K-POP이자 J-POP이었던 노선의 정체성[편집]


S.E.S.는 모두 한국인 멤버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에서 탄생한 K-POP 가수이지만 일본 현지에도 진출하여 J-POP 곡을 받아서 활동한 J-POP 가수이기도 했다. 더 정확히 정의내리자면, J-POP을 선보였던 K-POP 아티스트라고 보는 게 맞겠지만, K-POP과 J-POP 둘 중에 어느 영역에 속한다고 묻는다면 S.E.S.의 일본 활동은 명백한 J-POP으로 분류된다.[104][105] 물론 일본에서는 한국에서 만큼 위상을 쌓지 못했기에 일본에서의 S.E.S.는 J-POP의 영역에 속한다는 부분은 덜 평가받고 있기는 하다.

S.E.S. 전에도 S.O.S가 한일합작 형태로 일본에 진출한 적은 있었지만 한국 작곡가한테 받은 한국어곡을 일본어로 번안한 형식이었으며[106] ,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펄 시스터즈가 일본 작곡가의 곡을 취입해서 발매한 적은 있지만 엔카 장르였다. 즉 엔카 장르 외의 J-POP 곡으로 일본 현지 작곡가의 곡을 받은 한국 걸그룹은 S.E.S.가 최초였다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이들의 일본 활동이 다른 이전 걸그룹들의 진출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고, 동시에 현재의 K-POP 가수들의 일본 진출 활동과 같은 양상을 띄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단발성 활동이 아닌 꾸준히 현지화 활동을 펼치며 K-POP 가수들의 일본 현지화 진출에 초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과 일본 대중 음악은 황금기를 맞이한 시기였는데 이 시기 K-POP과 J-POP을 모두 경험해본 한국 가수라는 점은 S.E.S.와 팬들만의 프라이드라 할 수 있으며, 이게 가능했던 것도 S.E.S.와 SM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일본에서의 활동 성과는 한국에서 쌓아올린 명성에 비할바는 아니였지만, 그들의 음악적 행보에 있어서 만큼은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아직까지도 이 부분만큼은 한일 양국의 음악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진출 당시 SM 측은 힙합 비트가 가미된 알앤비 장르 즉 한국에서 선보였던 뉴잭스윙의 장르로 진출하길 바랬지만 일본 현지 기획사측의 반대로 J-POP을 현지 수용화하여 진출하게 된다. J-POP을 수용하여 일본에 진출 후 S.E.S.가 현지 진출 시 선보이려 했던 힙합이 가미된 알앤비 장르를 들고 우타다 히카루가 데뷔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명과 암이 엇갈리게 됐다. 물론 당시 문화적, 경제적 상황으로 봤을 때 S.E.S.가 뉴잭스윙 잘르로 현지화 진출을 했다고 하더라도 더 잘 됐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당시 일본 가수들은 알앤비를 잘 못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고 실제로 일본 문자의 발음 구조상 영어 발음이 취약하다는 문제점도 있다. 유진은 한국인이 알앤비를 소화하기 더 적합한 목소리를 가졌다고 밝혔는데[107] 유진의 이런 음악적 선구안이 정화하게 일치했다는 것이다.

성과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J-POP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 또 다른 S.E.S.의 음악적 색깔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점도 주목할만 하다. 이는 한국에서 보여준 음악적 장르와는 대조되는 모습으로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매력마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J-POP은 꽤 퀄리티 높은 음악이 많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K-POP과 달리 시적이고 감성적인 면이 돋보이는 음악들도 많았다. S.E.S.의 일본 곡들도 당시 황금기였던 J-POP의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곡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한국 앨범보다 일본 앨범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꽤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높은 음악적 퀄리티를 자랑한다.

2001년 7월 일본 현지에서 발매한 노래들을 한국어로 번안한 《Surprise》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러한 역수입 시스템은 당시 한국 가수로서는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일본 문화가 완전 개방되기 전 일본에서의 활동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한국 팬들에게 일본활동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 〈꿈을 모아서〉도 히트를 기록하며 또 다른 S.E.S의 음악적 색채가 완성되었다.


23. 허위루머와 반박[편집]



23.1. 음반 판매량 기록 관련[편집]


S.E.S.가 세운 음반 판매량 기록에 마치 큰 문제가 개입되어 있었다거나 혹은 거품 인기지만 타인의 도움으로 기록을 달성했다는 식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후려치는 행위를 25년 째 시달리고 있다. S.E.S.가 활동한 기간은 단 5년이고 활동하지 않은 기간은 20년이다. 활동한 기간보다 활동하지 않은 기간이 무려 4배나 더 길다.진심으로 징하고 징하고 징하고 징하다.... 그 어떠한 목적도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서술하자면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쪽은 99프로가 아니 사실상 100프로 핑클 팬덤 쪽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1. H.O.T. 팬덤인 Club H.O.T. 팬들이 사줘서 음반 판매량이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만약 H.O.T. 팬들이 사줬다면 S.E.S. 앨범 중에 밀리언셀러를 돌파했을 음반이 여러장 있어야 되지만 없다. 만약 사준 팬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S.E.S.의 음반 판매량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인원수가 아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에서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라, 음악을 들으려면 CD나 테이프를 사야만 했기에 음악이 좋아서 사는 다른 팬들이나 대중들이 있었던 시기였다는 걸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처럼 다수의 랜덤 포토카드, 음악 방송 1위 및 줄세우기를 위한 초동 판매 주 몰빵, 팬사인회 랜덤권, 해외 팬들의 구매 등으로 한 명이 일당백으로 수십장 혹은 수백장을 사는 시대가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음반 판매량은 지금의 음반 판매량과의 가치가 질적으로 다르다.[108]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H.O.T.가 해체한 이후에도 항상 S.E.S.가 핑클보다 평균 1.5배 더 높은 음반 판매량을 쭉 기록했다. 만약 이러한 결과도 H.O.T.가 해체된 이후지만 H.O.T. 팬들은 강타나 문희준의 솔로 음반이나 JTL의 음반을 구매하는 것보다 핑클보다 S.E.S. 음반 판매량이 높게 나오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사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사실 이건 치료가 필요한 타진요 수준일 것이다....

음반 판매량 관련한 내용은 아니지만 말이 나와서 이와 비슷한 논리로 S.E.S.가 활동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같은 SM 소속 가수 팬들 그 중에서도 특히 H.O.T. 팬덤이 응원을 해줘서 그런 것이라며, 더 나아가서는 H.O.T.의 인기를 빨아먹고 빌붙은 무능한 그룹, SM 소속빨 거품 인기라는 비하를 2022년 현재까지도 하고 다닌다. 하지만 정작 25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대체 세월이 얼마야? 그 누구보다 H.O.T. 팬덤을 소환하며 자신들 말대로 빌붙는 건 핑클 팬덤 측의 모습이다.H.O.T. 팬덤 없었으면 어쩔뻔 했을지.. 그 어떤 S.E.S. 팬들도 무려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H.O.T. 팬덤을 이런 식으로 언급하는 일은 없다. 오직 핑클 팬덤 측만 언급할 뿐이다.


2. 같은 소속사 SM 보이그룹 팬들이 사줘서 음반 판매량이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실 첫 번째 주장과 결이 같은 주장이긴 하지만 약간 다른 양상으로 설명되는 부분이기에 별도로 분리도어 반박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H.O.T.를 제외한 다른 보이그룹이라고 한다면 신화와 플라이투더스카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목적도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 서술하자면 신화와 플라이투더스카이는 단 한 번도 S.E.S.보다 높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적이 없다.[109]

이 주장대로 따르자면 신화와 플라이투더스카이 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보다 같은 소속사 걸그룹 S.E.S. 음반 판매량 기록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 음반을 하나 더 사는 것을 포기하고 S.E.S. 음반 한 장을 더 사줬다는 것인데 사실 해명 가치도 없을 정도다...


3. H.O.T. 음반에 S.E.S. 홀로그램을 넣어서 H.O.T. 판매량이 아닌 S.E.S. 판매량으로 올라가게 SM이 조작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내용은 H.O.T. 팬덤 측이 인터넷 상에 의문의 글을 올리면서 아주 약간 이야기가 나왔던 부분이지만 당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이 돼서 끝난 문제이며, 이 내용을 아직도 핑클 팬덤 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2002년 당시 핑클 팬덤 주장글[110]

3-1. 주장 내용에 따르면 H.O.T. 음반에 S.E.S. 홀로그램이 붙여져 있었다던데, 홀로그램이 붙여진 건 음반이 아니라 콘서트 실황을 담은 굳즈 영상물 VCD와 VHS[111]다. 해당 주장글

3-2. S.E.S. 콘서트 실황 영상물 굳즈 VCD, VHS에도 같은 소속사 신화의 홀로그램이 붙여진 채로 판매됐다. 해당 주장글 실물 굳즈에도 신화의 홀로그램이 붙여져 있는 게 확인된다.

3-3. 당시 콘서트 실황 영상물 판매량을 집계하는 기관은 없었다.
한국 대중가요 역사상 최초로 1998년 9월 한국에도 일본 오리콘 차트처럼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는 기관이 생겼다. 한국음반산업협회 혹은 한국영상음반협회[112] 등으로 불리는 집계 기관이며 당시 일명 음협이라고 줄여서 불렸던 기관이다. 음협이 생기기 전에는 90년대 초반부터 당시 최대 음반 유통사였던 신나라 레코드[113] 측이 연말에 신문 서면 발표를 통해 10위권 혹은 15위권까지의 연간 음반 판매량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음협을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 음협은 집계해서 발표하는 대상이 오직 음반 뿐이었다. 콘서트 실황물 VCD, VHS는 음반이 아니라 영상물에 해당된다. 음협은 이러한 영상물 판매량 집계 및 발표는 당시에 하지 않았으며 따로 이들을 집계 및 발표하는 기관도 없었다.[114]

만약 콘서트 관련 굳즈가 음협 판매량에 올라온 적이 있다면 그건 영상물 굳즈가 아니라 콘서트 라이브 실황 음원만 추출해서 음반 형태로 발매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핑클의 첫 단독 콘서트 라이브 실황 음원만을 추출해서 음반으로 발매한 적이 있고 이것은 음반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음협에서 발표한 판매량이 존재하는 것이다.[115]

즉 콘서트 영상 실황물에 다른 가수들의 홀로그램이 붙여져 있어도 판매량을 집계하고 발표하는 기관 자체가 없기 때문에 판매량 발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3-4. 홀로그램은 말그대로 홀로그램일 뿐이며 홀로그램의 역할은 해당 제품이 정품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해주는 용도에 불과하다. 당시 SM 홍보부가 안내한 내용 당시 음반 가게에서 알바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네티즌이 쓴 증언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건 말이 안된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해당 가격을 찍을 때 바코드를 찍지 홀로그램을 찍는 경우가 과연 있는지 그리고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4. MBC 시사매거진 2580에 S.E.S. 음반 판매량 조작이 밝혀져서 보도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디시인사이드 S.E.S. 갤러리에 주기적으로 SK 통신사 IP로 7년간 악플로 도배하는 악질 악플러 '완소경'이라는 유저와 유튜브에서 해당 유저의 아이디로 추정되는 빈고[BINGO]등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애잔한 건 이러한 주장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영향력이 1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우리나라 속담과 거짓말도 백 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일본 속담처럼 전혀 사실이 아닌 이러한 내용을 보고 진짜라고 수용하는 사람이 소수지만 발생할 수 있다는 일말의 위험도 가정해야 한다. 어차피 이럴 목적으로 조작하는 것일 테지만 말이다.

만약 당시에 이러한 파문이 일었다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됐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도 커뮤에 끌올 된다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데 역시나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실 자체가 없으니 당연하다.

MBC는 2016년 6월 11일 MBC Archive 사이트에 자사 방송 컨텐츠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100프로는 아니지만 꽤 많은 프로그램 스트리밍을 지원하고 있어서 유료 결제를 한다면 시사매거진 2580도 확인 가능한 회차가 있다. 또한, 2002년 현재는 불가하지만 2015년 경만 하더라도 MBC DVD 영상물을 주문 제작하는 사이트인 MBC C&I 사이트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인물이 출연한 방송분이 검색되는 시스템이 있었다. 당시 S.E.S. 검색 결과 이러한 문제로 시사매거진 2580에 출연한 방송 회차는 확인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당시 다음 카페에 이와 관련해 남겨진 방송 후기글 조차 하나 없다.

다만 검색 서비스가 가능하던 당시 MBC C&I 핑클로 검색했었을 때 '영원한 사랑' 표절 논란으로 시사매거진 2580에 언급된 방송분은 확인됐다. 실제로 방송까지 탄 내용이고 그 당시 다음 카페에 검색해도 방송 관련 후기글이 남아있는 실제 방송분이다. 굳이 다른 가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앞서 적었듯이 이러한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팬덤 측이 바로 해당 가수의 팬덤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수가 마치 조작이라는 엄청난 부정을 저질러서 시사프로에 고발되는 내용이 방송 됐다는 악의적 허위루머를 퍼트리고 다니지만, 결국 스스로 우스운 꼴을 자처한 셈이나 다름 없다.


5. 이수만이 인터폴에 수배된 이력이 있기 때문에 S.E.S.의 음반 판매 기록 및 모든 커리어는 다 조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수만이 인터폴에 수배자로 오른 건 회사 자금을 빼내 중자대금으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오른 것이다.게시물

즉 S.E.S. 및 자사 가수들의 음반 판매량 및 커리어를 조작한 혐의로 수배자로 오른 게 아니다. 이러한 주장이 S.E.S.와 더 나아가서 SM 가수들의 커리어가 전부 조작으로 점철된 가짜 커리어라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


사실 반박하는 이 내용을 정리하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막무가내 식의 우기기 및 허위사실 유포라서 실소가 터질 수 있다.현타가 온달까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반박하고 읽어야 하는 사태까지 만드는 루머 유포자들은 아니며 말고 식이겠지만 타인에게는 굉장한 불쾌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악의적 허위사실로 막무가내 식으로 우기는 사람들을 보면 이 짤보다 더 적절한 짤은 없어 보인다.

23.2. 핑클과의 차이점이라는 일화에 숨겨진 조작[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자료는 핑클 팬덤 측의 핑클을 띄우기 위해 S.E.S. 부분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내용까지 지어내고, 주장과 기사까지 조작해서 최초로 유포한 게시물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S.E.S.와 핑클의 차이점이라는 자료가 수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들을 일부 공중파와 케이블 프로에서도 그대로 수용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사례도 몇 번 있었을 정도다. S.E.S, 핑클 둘 다 매니저를 해 본 사람이 말하는 차이, S.E.S. 전 매니저가 말하는 차이, 핑클 전 매니저가 말하는 차이 등으로 제목으로 매번 주장하는 내용이 바뀌며 퍼지거나, 아니면 매니저의 차이를 생략하고 아예 S.E.S.와 핑클의 차이 이런 식으로 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 자료에는 핑클 팬덤 측의 역대급 조작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S.E.S. 팬들 조차 잘 모르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S.E.S. 팬들도 이 자료들이 퍼져나가며 핑클의 비글미를 영업하는데 S.E.S.가 들러리로 세워진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있고, 차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S.E.S.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담아서 퍼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팬들이 일부 있었지만, 아예 이 주장 자료 자체가 조작이라는 것을 모르는 팬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이러한 자료를 볼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데 심증만 있고 항변할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그냥 가만히 있지만, 아마 이 자료를 본다면 이 어처구니 없는 역대급 조작에 실소만 터져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료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을 타임라인에 따라 하나하나 파헤쳐 나가자.


1. 최초 유포자.
최초 유포지는 연예 커뮤니티 베스티즈의 게스트천국이다. 최초 유포자는 닉네임 'kjl452'를 쓰는 유저였는데, 해당 유저는 해당 사이트에서 닉네임을 주기적으로 asfwe sfdgd 이러한 식으로 무의미한 영문을 나열하는 형태로 바꿔가며 핑클에 관한 영업자료를 꾸준히 올리며 심지어 핑클에 관해 사실이 아니거나 근거 자료가 전혀 없는 데도 불구하고 과거 아날로그 시절 활동 당시의 가수라는 점을 악용하여 여러 커리어를 조작하며 영업해온 유저다.

대표적으로 조작하고 다녔던 커리어 내용으로는 핑클의 분당 시청률이 40%, 42%, 45%, 49%가 나왔다며 본인이 한 거짓말이 감당이 안 되었는지 매번 수치가 올라가며 말이 바뀌는 우스꽝 스러운 사태까지 일어났으며[116], 2001년 SBS 가요대전에서 수상한 최고인기상은 오로지 팬덤 투표로만 주는 상이라고 영업했으며[117], 핑클의 ARS 전화투표가 폭발적인 나머지 다운되는 사태까지 갔다는 둥, 이효리가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핑클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등등 전혀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망상으로 영업했던 대표적인 팬이었다.

동시에 S.E.S.의 인기나 커리어는 후려치는 데 앞장서거나 S.E.S.의 커리어(대표적으로 최초 누나부대 등장은 핑클이었다, 최초 걸그룹 팬미팅 개최는 핑클이었다 등.)를 핑클 커리어라고 우기는 짓까지 했을 정도다. 최초 유포 시기는 당시 베스티즈 시스템 특성 상 게시물 원본에 날짜는 표시가 안 되어 있지만, 2014년 경 정도에 올라왔다. '(매니저가 말하는) S.E.S.와핑클의 차이'라고 최초로 유포된 곳과 유포자는 해당 사이트와 해당 유저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2. 최초 유포자가 주장한 내용과 게시물.
현재 베스티즈가 사이트만 남겨 놓고 열람은 할 수 없는 형태로 남아있지만 당시 최초 유포자의 글이 아카이브 링크에 남겨져 있다. 최초 유포자의 원본글 링크는 숨김처리 된 상태지만, 해당 아카이브에 원본글이 영구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남겨져 있는 아카이브 링크에도 본문에는 아무런 내용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당시 구글 저장된 페이지에는 해당 본문 내용이 남겨져 있고, 그 링크 또한 아카이브 링크에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최초 유포자의 구글 저장된 페이지 링크는 현재 삭제됐지만, 이 링크가 살아있었을 때 아카이브에 원본글이 영구적으로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일:SES_jojak_1.jpg

2014년경 베스티즈에서 핑클 팬 kjl452가 최초로 유포한 게시물 원본 }}}


3. 최초 유포자 핑클 팬 'kjl452'의 주장 게시물이 허위 및 조작인 이유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초 유포자 핑클 팬 'kjl452'가 올린 주장 글은 기사 자체를 교묘하게 없는 말까지 지어내며 조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S.E.S.와 핑클 두 팀을 매니저 한 사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초 유포자 핑클 팬 'kjl452'가 원본 기사에 없는 내용까지 조작해서 추가하거나, S.E.S.에 대해서 사실 확인 되지 않은 허위 내용까지 조작해서 추가한 기사 원본은 2006년 11월 9일 중앙일보 기사다. "핑클·SES·god, 해체후 더 잘나가요"

실제로 두 자료를 비교해보면 해당 중앙일보 기사가 조작의 모토가 되는 원본 기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도 안다. 혼자는 외롭다는 사실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수 있다. 솔로변신한 이들이 그룹 때보다 더 매력적인 이유다. [스타뉴스] }}}

2014년경 베스티즈에서 핑클 팬 kjl452가 기사에는 없는 내용까지 조작하는 데 사용한 원본 기사 전문 }}}

조작 내용: 그룹 S.E.S, 핑클이 그 주인공. 이들은 활동 시절 당대 최고 인기 그룹으로 유명세를 누린 것은 물론 해체 후에도 개별 활동을 통해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해체 후 더 잘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팩트: 원본 기사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그룹 S.E.S, 핑클, god가 그 주인공.' 즉, S.E.S.와 핑클 두 팀만 다루는 게 아니라 god까지 함께 다루는 기사였다는 것이다.

조작 내용: 지난 26일 Y-star에서는 그 옛날 아이돌들의 매니저를 초청해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팩트: 원본 기사에 이러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Y-star에 해당 매니저가 출연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유튜브에 영상이 남겨져 있을 것이다. 해당 글 최초 유포 시기가 2014년이고 유진이 2010년 제빵왕 김탁구 활동 당시에도 Y-star 연예 프로에 출연한 영상이 2022년 현재까지도 유튜브 공식 계정에 남아있는데, 만약 출연한 게 사실이라면 해당 영상 자료가 안 남아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출연 사실 자체가 조작이라 없는 내용이지만.

조작 내용: 사실 그룹 시절에는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 주의해야 할 것도, 억제해야 할 것도 많았다. 이에 대해 당시 매니저는 이렇게 회고했다.
팩트: 원본 기사 내용 '사실 그룹 시절에는 전체의 이미지를 위해 주의해야 할 것도, 억제해야 할 것도 많았다. 이에 대해 바다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S.E.S. 멤버 바다가 회고한 내용이지, 매니저가 회고한 내용이 아니다.

조작 내용: 원본 기사에는 나와있지도 않은 S.E.S.와 핑클 일화를 조작해서 넣은 흔적이나 S.E.S.에 관해서는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까지 지어내서 작성한 흔적이 있다.
팩트: 애초에 원본 기사에는 매니저가 경험한 S.E.S.와 핑클 일화 자체가 나와있지가 않다. 언급된 내용이라면 바다가 S.E.S. 활동 당시 매니저한테 무대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것에 대해 꾸중을 들었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다.


23.3. 일본 야스쿠니 신사참배 허위루머[편집]


2016년 1월 24일 저녁 7시 26분 11초에 연예 커뮤니티인 베스티즈 게스트 천국에 '동공지진'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한 유저가 S.E.S.가 일본 활동 당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했다는 악의적 허위사실을 재점화하기 시작했다. 이 유저는 평소 여러 다중 아이디등을 동원하여 S.E.S.에 대한 모욕 및 비방글과 핑클의 존재하지도 않는 커리어를 허위로 조작[119] 영업하는 게시물을 주기적으로 올리며 활동했던 '완소경'이라는 핑클 코어 악성 팬이다.[120][121][122]

이후 25일 11시경 다음 카페 쭉방카페와 인스티즈에는 글을 올린 시간상 본인이 직접 자료를 유포한 걸로 추정되며 이후 이세모, 내아카등의 다음 카페와 더쿠에 네티즌들이 자료를 퍼갔으나 S.E.S. 팬덤 측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글을 베스티즈 게스트 천국에 올린 후에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퍼간 네티즌들이 자료를 자발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각종 기사와 팬들의 증거 자료를 통해 전면 부정된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커녕 팬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발단은 1998년 11월에 방송된 SBS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S.E.S.가 절 같은 곳에서 사진 촬영하는 것을 두고 신사 참배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게 된 건데, 촬영 장소가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도쿄의 하마리궁이란 게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쉰떡밥이 되고 말았다. 팬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S.E.S.가 촬영한 신사에는 계단이 있지만 야스쿠니 신사에는 계단이 없다는 점, S.E.S.가 촬영한 신사의 약수물 구조와 야스쿠니 신사의 약수물 구조가 전혀 다르다는 점 등 방송 캡처와 실제 신사 내 사진을 일일히 대조한 결과 야스쿠니 신사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영상을 보면 S.E.S.가 나무끈에 흰 천을 매달면서 소원을 비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이 어떻게 신사 참배를 했다는 것인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안티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국노니 뭐니 설쳐댄 탓에 괜한 욕을 20년째 먹고 있다.



24. 어록[편집]





25. 여담[편집]




[62]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연예인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간미연과 골때리는 그녀들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고, 2002년 5집 활동 당시에는 박지윤을 위해 셋이 함께 모여서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줄 정도로 좋은 관계다.[63] TLC의 그룹명은 세 멤버 T-Boz의 T, Left-Eye의 L, Chilli의 C를 조합하여 만들었다.[64] 그룹명 제작 과정에서 공통점을 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S.E.S.가 주요 음악적 노선으로 삼았던 뉴질스윙이라는 장르도 TLC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뉴질스윙이라는 장르는 TLC미국 대중 음악계에서 선도한 장르이며, 이 부분은 TLC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들어보면 더욱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음악 장르 외에도 힙합 패션 등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S.E.S.는 TCL걸그룹으로서 보여준 이미지와 소비된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다. TLC가 사회 메시지, 여성의 성적 주체성 등을 대변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를 보여준 것에 반해, S.E.S.는 전형적인 소녀 콘셉트인 사랑스러움, 여자친구, 풋풋함, 청순함 등을 주 무기로 내세웠다. 물론 S.E.S.도 커리어 후반으로 갈수록 당당한 커리우먼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이 역시 TLC가 표방한 콘셉트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S.E.S.가 분명 TLC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은 확실하나, 그렇다고 하여 S.E.S.가 자신들 만의 정체성 없이 TLC를 모방하기에 급급했던 그룹이라고 치부하거나 폄하할 수도 없다. 즉, 결론을 내리자면, S.E.S.는 당시 가장 앞서 나갔던 미국 음악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쳤던 걸그룹 TLC의 음악적 노선과 패션 등의 장점을 흡수하고, 여기에 당시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소녀 이미지를 결합하여 자신들만의 '여성 아이돌'로서의 독보적인 색채를 가졌으며, 이는 곧 K-POP 걸그룹의 시초를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65] 동 시대에 옆나라 일본에서도 TLC를 벤치마킹한 SPEED라는 톱 걸그룹이 있었고, S.E.S.가 SPEED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선 SPEED 또한 S.E.S.처럼 10대 소녀의 풋풋함이 강조된다는 점을 벤치마킹 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이마저도 차이점이 있다. SPEED 데뷔 당시 나이는 S.E.S.보다 훨씬 어렸고 또래 소녀들이 신나게 노는 느낌으로 여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S.E.S.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콘셉트로 남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물론 S.E.S.도 동 세대 여성들의 워너비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시간이 갈수록 1세대 걸그룹 중에서는 여성팬 비율도 꽤나 많은 그룹으로 성장하며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남성팬과 여성팬의 비율이 적절하게 조화된 이상적인 팬덤을 자랑하게 된다.) 결정적으로 원래 S.E.S.를 파워풀한 힙합 여전사 콘셉트로 기획하였던 SM이 청순 콘셉트로 변경한 데에는 유진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는 당시 H.O.T. 매니저이자 캐스팅 디렉터로서 유진을 캐스팅한 김수현이 2003년 4월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밝히며 공개적으로 점화된 내용이다. 여러 역사적 결과물로 대중들이 판단하는 지점에서도 S.E.S.와 SPEED 사이에서 차이점이 분명하지만, S.E.S. 제작을 직접 지켜보고 참여한 당사자가 밝힌 내용이니 그 어떤 것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음악적인 노선에서도 전혀 공통점이 없으며, 콘셉트, 패션, 이미지, 비쥬얼, 가창력, 음색, 댄스실력, 기획력, 뮤비 퀄리티 등 그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음악가로서의 공통점이 전혀 없다. 심지어 S.E.S.가 일본 현지인들이 만든 콘셉트와 음악으로 활동했던 일본 현지 활동에서 조차도 전혀 공통분모가 없다. S.E.S.가 SPEED를 벤치마킹 했다거나 혹은 영향을 받았다거나, 따라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 S.E.S.는 SPEED의 영향력 아래에 예속되어 있는 그룹이 아니고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음악가로서의 실력이나 이미지는 더더욱 SPEED보다 낮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던 그룹이라고 폄하하기 힘들다.(오히려 가창력이나 음색, 댄스 실력, 기획력, 퀄리티 등에서 SPEED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엄밀히 말하면, S.E.S.와 SPEED 모두 TLC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그룹이며, S.E.S.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그룹은 TLC가 명확하다. 이렇게 음악가로서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다는 것을 설명해줘도, SPEED 팬들이나 일뽕들은 지독하게 S.E.S.가 분명하게 SPEED를 따라했고 SPEED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그룹으로 예속하는 역사 날조를 시도하며 S.E.S. 폄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무려 26년 동안 현재 진형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S.E.S. 당사자인 슈가 이미 2007년 4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SM은 원래 TLC 같은 파워풀한 그룹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SM은 S.E.S.를 기획할 때 SPEED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이 정도면 SPEED 팬들과 일뽕들의 지독한 호소인 혹인 스토커 같은 집착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렇게 당사자들의 명확한 증언도 있고 여러 역사적 결과물을 보더라도 전혀 공통점 또한 없다는 게 밝혀졌어도, '그 당시에 한국일본을 따라하기에 급급했는데, 어떻게 공개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힐 수 있느냐'라는 타진요 급의 주장을 펼치며 피로도를 유발시키고 있다. 이 주장마저 어폐인 것이, S.E.S.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1세대 걸그룹 티티마 소이가 2015년 아이돌로지 인터뷰에서 SPEED를 일부 벤치마킹 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S.E.S.가 정말로 SPEED를 벤치마킹한 정황이 있다면 26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뭐라도 나왔어야 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당사자와 관계자의 증언으로 아니라는 것만 확인된다. 이럴 수록 SPEED라는 그룹에 대한 S.E.S. 팬들과 K-POP 국내외 팬들의 반감이 심해지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근거 없는 주장으로 분명 SPEED일본 대중 음악사에 엄청난 발자취를 남긴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코창력과 함께 저평가 받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66] 해당 영상을 올린 곳은 MBC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 당시 HBS 《오늘의 연예토픽》은 MBC에도 방송되어서 MBC도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67] 한국인 이름 영어명 표기 원칙상 'Kim Yoo Jin'이 맞으나, 재미교포 출신으로서 Eugene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하기에 이런 식으로 끼워 맞추면 라임이 맞는다.[68] 그만큼 데뷔와 동시에 인기가 어마어마하였다.[69] 디시인사이드 S.E.S. 갤러리에서 딱 한 번 있었다. 이를 근거로 S.E.S.의 원래 의미는 이거라며 의기양양하게 상대방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게 핵심이다.[70] 더쿠와 루리웹에 올라온 날짜가 같은 걸로 보아 같은 사람이 여러 커뮤니티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71] 보통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방어적인 태도가 강하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절대 인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일종의 정신병의 일환이니 상대할 가치가 없다. 상대하다 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들만의 성을 무너트리는 게 그들에게는 제일 위협적인 존재인 것이다.[72] 이 외 세쓰, 쎄스, 쎄쓰.[73] 같은 1세대 아이돌 H.O.T.이 아닌 '에이치오티', god이 아닌 '지오디'라고 발음한다.[74] ya'll은 You All을 줄인 Slang이다. 가사 전체가 I like S.E.S. ya'll! (Yes, S.E.S. ya'll) We like S.E.S. ya'll! (Yes, S.E.S. ya'll)인데, 의역하자면 '난 S.E.S.를 좋아하고 너희들 모두도 좋아하게 될 거야. 우리는 S.E.S.를 좋아하고 너희들 모두도 좋아하게 될 거야.' 정도의 뜻이다.[75] 이러한 표기법은 같은 SM 소속 출신의 보이그룹 H.O.T.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76] 당시 삼행시 자체가 유행이었으며, 1세대 아이돌 중에 핑클핑클빵 삼행시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핑: 핑클빵 사왔습니다 행님. 클: 클(큰 일)났습니다 행님. 빵: 빵마다 옥주현이 나옵니다 행님.[77] 유재석을 유느라고 호칭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다를 바느, 유진을 유느, 를 슈느라고 호칭하기도 하였다.[78] 심지어, 2017년을 기점으로 악성 안티 팬들의 심한 비방글과 욕설글 등의 도배에 지친 나머지 찐 팬들은 사실상 다 나갔다. 이후 의 사건까지 겹쳐서 팬 사이트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됐으며, 사실상 2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활동 당시 커리어나 인기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타 그룹 팬들의 정신질환자들 모임소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79] 가운데 알파벳만 다르다.[80] 후에 베이비복스가 이 영향을 받아서 정규 2집 타이틀곡 〈야야야〉에서 이러한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의 이미지와 댄스 브레이크를 벤치마킹하였다.[81] 바다가 보통 춤을 잘 추는 이미지가 없는 편인데, 무대를 보면 굉장히 춤을 잘 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창력과 댄스실력 등 실력 면에서는 탑 클래스이다.[82] 청순 걸그룹 계보 역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다.[83] 베이비복스도 2집 〈야야야〉를 통해서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 후 다음 앨범인 3집 〈Get Up〉을 통해서는 섹시한 숙녀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쳤지만, 데뷔 곡인 〈머리 하는 날〉, 〈남자에게 (민주주의)〉등을 통해서 소위 요즘 말로 페미니즘 컨셉을 보여줬기에 이에 걸맞은 성장 모습은 아니다.[84] 당시 S.E.S.는 11개월이라는 거의 1년에 가까운 가장 긴 공백기를 가지고 컴백하였으며, 컴백 전 바다의 성대결졀과 유진·의 대학입학 취소 등의 악재를 겪고 있었다. 더군다나 「게릴라 콘서트」가 2001년 새해 첫 주자인 S.E.S. 때부터 전 도전자들보다 더 엄격한 룰을 적용하며 시작하였다. 5,000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야 공연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시 최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보이그룹 H.O.T.god가 동원한 인원마저 뛰어 넘는 수치인 11,745 명을 동원하며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말 그대로 '체감 인기''를 누구도 부인 못하게 확인시킨 순간이었다. 전체 시청률은 TNS 집계 기준 23.2%를 기록하여 방송 당시 기준으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며, 순간 시청률은 최고 40.1%까지 치솟아 2000년대 이후 역대 MBC 예능 최고 시청률 2위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방송 후에는 당시 인터넷이 덜 보급되었을 때를 감안한다면, MBC 「게릴라 콘서트」 공식 홈페이지에 무려 3,000 여개가 넘는 엄청난 양의 시청소감이 올라올 정도로 적신호가 켜졌던 정규 4집 활동이 청신호로 바뀌며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후로 악재 및 기우와는 다르게 승승장구하였으며,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며 음반 판매량 및 음반 차트, 음방 및 가요 순위 프로그램, 시청률 상승 효과, 여론조사, 각종 지표 등의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성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S.E.S. 커리어 후반의 정점을 찍었다.[85] 비쥬얼적인 면은 소녀스러움을 어필한다는 것도 꽤나 상당한 공통점이다.[86] 2018년 KBS2 《불후의 명곡》.[87] 레드벨벳도 훌륭한 실력으로 이 어려운 곡을 잘 소화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88] KBS1 걸그룹 특집 다큐.[89] 실제로 대만에서 광고 두 개 계약을 앞두고 있었고 광고 프로모션을 위해 대만 현지에 방문해 달라는 업체 측의 제안이 있었으나, 일본 활동과 겹쳐서 최종적으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90] 물론 1999년 11월에 오고 갔던 미국 진출 건은 미국 프로덕션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긴 하지만, SM은 애초부터 미국 시장에 대한 야망이 있었으며, 재미교포 출신인 유진을 멤버로 영입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91] 2009년 3월 26일, 데뷔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차트에서 127위로 진입하였다. 이는 당시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었으며, 2004년에 일본 대중음악사에서 큰 위상을 가진 우타다 히카루가 〈Exodus〉로 기록한 160위 마저 훌쩍 뛰어 넘는 기록이었다.[92] 리모델링 전의 KSPO 돔[93] 라디오 송출 광고.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기사[94] TV CF 총 4개. 오렌지 플레이버, 리얼 파우더, 시너지 아이즈 마스카라, 컬러 토핑 라인.[95] 걸그룹 최초의 광고 재계약. 1세대 걸그룹 유일의 광고 재계약.[96] 연예인 최초 발탁. 문헌[97] 연예인 최초·유일 선관위 만화 전국 출간. 국가 헌법기관에서 연예인 그것도 주로 10대층을 겨냥하는 아이돌 가수를 내세워 지방선거와 대선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팜플렛을 발간해줬다는 것은 S.E.S.가 당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98] S.E.S. 광고 커리어 최초로 멤버 전원 단독 촬영.[99] 네티즌 여론조사로 선정되었던 남자 연예인 대표는 H.O.T.였지만 해체로 인해 2위였던 조성모가 자동적으로 선정.[100] H.O.T,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god.[101] 정확히 2021년 11월 11일에 S.E.S.의 〈Dreams Come TrueSM 리마스터링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에스파의 리메이크 버전 음원과 뮤직비디오는 20일에 공개되었다. S.E.S. 원곡 뮤직비디오가 9일 먼저 공개되었고, 에스파의 리메이크 버전이 9일 늦게 공개되었다. 다만, 시기적으로 겨우 1주일 조금 넘는 간격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며, 14일 부터는 에스파 버전의 프로모션이 진행되는 등 시기가 맞물린 것은 맞다.[RE] A B C D E SM 리마스터링 프로젝트.[102] 1998년에 녹화한 방송이므로 실제로 상을 받은 시기는 1998년이다. 정확한 녹화일 정보는 현재로서는 유실되었으므로 알 수 없다.[103] 1998년 드림콘서트 진행자 김희선, 류시원과 인터뷰에서 언급된 내용이다.[104] 이러한 노선은 직속 후배 보아동방신기는 물론 당시 일본에 진출했던 투야, 슈가, 쥬얼리 등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105] 물론 한국에서 발매했던 한국 작업진들의 곡을 일본어로 번안하여 발매하여 활동도 했지만, S.E.S.의 일본 주요 활동은 일본 현지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S.E.S. 일본 활동에 SM은 관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티스트트만 K-POP 출신이었다 뿐이지, S.E.S.가 선보였던 결과물은 일본 현지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106] 1994년 12월 발매한 일본 데뷔곡 〈きっと抱きしめて(킷토다키시메테, 꼭 안아줘)〉는 한국 데뷔곡인 〈처음 느낌 그대로〉를 번안한 곡이다.[107] 1998.11.21 SBS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에 출연해서 밝힌 내용이다.[108] 이제 아이돌 팬덤 내에서도 이러한 상술은 없어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경을 위해서도 쓰레기일 뿐이라는 자성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109] 이러한 루머에 소환되는 것조차 이 팬들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해당 악성루머를 반박하는 쪽 입장도 괜히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할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신화와 플라이투더스카이를 비하 및 비방 할 목적이 전혀 아니다. 이 두 가수들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냈으며 좋은 음악 활동을 한 팀이 자명하다.[110] 물론 이 글은 2002년 글이라 현재 글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현재도 아직도 이러한 주장을 하는 팬이 실제로 있다.[111] 비디오 테이프를 말한다.[112] 출범 초기에는 한국영상음반협회라는 명칭이 주로 쓰셨으나 시간이 갈수록 한국음반산업협회라는 명칭이 더 자주 쓰였다.[113] 혹은 신나라 뮤직, 신나라 유통이라는 표현도 썼다.[114] 인포샵에서 영상집 판매량을 집계한 당시 기록이 남아있는데 여기서 영상집은 인쇄물로 된 사진집을 말한다. 당시에는 이러한 사진집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영상집이라고 불렀다.[115] 당시 음협 발표에 따르면 약 5만 장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116] 현재는 여러 다음카페 및 더쿠 등에서 이제 수치를 줄여서 20% 30% 나왔다고 여전히 거짓말을 치고 다닌다.[117] 당시 인터넷 게릴라 투표로 성공한 가수는 유승준이고 이에 준하는 네티즌 최고 인기상은 유승준이 탔다.[118] 근거 자료가 전혀 없다...그리고 그 후로 S.E.S.가 40프로를 넘긴 기록이 공중파에서 방송되었고 해당 악플러와 이 악플러가 만들어낸 허위 조작 내용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며 떠벌리고 다닌 팬들은 부메랑을 돌려 받아야 했다. 이 사실을 지적하면 S.E.S. 팬이 핑클을 까질하는 거라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막말만 해댄다.. 본격 핑키가 꿈꾸고 친구가 이뤘다의 대표적인 예시[119] 대표적인 예: 핑클에 대해서 시청률이 40% 넘을 때 S.E.S.는 뭐 했냐[118], 최초 누나부대다,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등 셀 수가 없다..[120] 한 마디로 전에 쓰던 닉네임이 '완소경'이었는데, '동공지진'으로 닉변을 한 다음 게시물을 유포한 것이다. 여러 다중 아이디로 활동하며 수많은 닉변을 거친 전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정도는 되는 악질 안티다...[121] 2022년 현재도 디시인사이드 S.E.S. 갤러리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S.E.S. 멤버들에 대해 온갖 비방 및 입에 담기 힘든 악플로 도배하고 있으며, 멤버 유진이 드라마 펜트하우스로 한창 흥할 때에는 디시인사이드 펜트하우스 갤러리 및 드라마 커플갤인 펜트하우스 윤윤 미니 갤러리까지 찾아와서 24시간 도배를 하는 등 악행이 넘쳐날 정도의 조현병 환자다. 핑클 팬덤 내에서도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먹금이나 팬코 내지 가상인물 취급하며 적반하장 식의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 베스티즈 활동 당시 회원정보 및 악성 글 PDF 자료가 공개되면서 완소경은 S.E.S. 팬덤이 만들어낸 가상인물이라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는 꾹 들어간 상태다.[122] 이 악질 안티가 평소 주장하는 내용이나 워딩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2008년 멤버 의 미니홈피까지 직접 찾아가서 자신의 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하고 성희롱 및 인신공격 악플을 남긴 핑클팬과 동일인물이라는 썰이 거의 유력시 되고 있다. 자신의 신상 정보를 직접 드러내며, 수치심 따윈 모르고 여전히 하루도 쉬지 않고 S.E.S.에 대한 악플로 도배하며 삶을 연명하고 있는 구제불능의 히키코모리다. 유튜브 댓글에서도 프로필 사진으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고 S.E.S. 멤버들에게 인신공격적인 욕설을 남기면서, 핑클은 성역화 하고 아날로그 시절의 가수라는 점을 치졸하게 악용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커리어를 내세우며 치켜세우고 반대로 S.E.S.에 관해서는 인신공격 및 희롱이 기본이며 뻔뻔한 짓을 일삼고 있다.
[각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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